공수처는 출범하기 전부터 분석하고 싶었다. 공수처 설치는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되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도 공수처를 없애려고 공약을 했었고, 수장도 없이 상당기간 운영되었으며, 수사할 인력 부족을 호소한 적도 있었다. 초기에는 맡는 사건마다 기소에 실패하여 공수처가 맡은 사건은 공수표라는 말도 나왔다. 출범 과정에서, 출범 이후 애초의 취지대로 굴러가지 않으면서, 그리고 공수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채상병 사망사건을 담당하면서 뭔가 회복이 되나 싶었고, 12.3 내란 사태에서는 법원으로부터 내란 주범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 받고 이를 집행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월 3일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면서 위신과 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