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울리히 벡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6월말에 뜬금 없이(?) 울리히 벡의 특별기고를 내보내더니 이번에도 특별기고를 실었다. 6월의 기고는 그가 <위험사회>라는 책에서 근대화와 함께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일상적 위험을 강조하였고, 지금의 촛불시위가 그와 관련이 되기 때문에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번 글도 그가 세계화와 한국의 현실에 가진 관심에 비추어 충분히 납득은 되지만, 이 정도의 글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필자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울리히 벡은 지난 4월에 방한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때부터 울리히 벡은 한국사회의 상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나 보다.
울리히 벡은 이념적 성향을 볼 때 중도 좌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6년 저작에서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의 대안이 과연 이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민족주의가 아닌 코스모콜리타니즘에 입각할 필요가 있겠지만, 조금 더 급진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글과 관련하여 울리히 벡을 인터뷰했던 글들도 담아놓는다. 2006년에 김창호 박사가 국정홍보처장일 때 인터뷰한 것도 있는데, blog.korea.kr 내에 있었던 그의 블로그가 사라져서 원문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링크만 하는 것보다는 발췌라도 글을 담아오게 된다.
--------------------------------------- [특별기고] 세계 위기 ‘국경없는 대응’ 필요 (한겨레,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2008-10-23 오후 07:40:18) 사회·공간·시간적으로 경계선은 이미 무너져
국경없는 대응 필요한 때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중국식 체제와도 거리를 두어온 서구의 복음 원리, 즉 자유시장 경제가 하룻밤 사이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열광적인 개종자라도 되는 듯 설쳐대는 은행가들은 정작 이윤은 자기네들이 챙기면서 손실은 ‘국유화’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때론 조롱거리로, 때론 악마 취급을 당하면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중국식 국가계획경제가, 이제 자유방임을 외쳐대던 앵글로색슨 사회의 중심부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일까?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고 온 세계정치의 대변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비상 상황이 닥칠 것이란 ‘기대’는 전세계의 국경 없는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비상 상황은 더 이상 일국 단위가 아닌 범지구적인 사건이다. 세계 경제위기, 기후 변화, 테러리즘 등 ‘세계적 위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적, 공간적, 시간적인 의미에서 비상상황의 ‘탈국경화’ 가 진행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금융정책의 장이 지금 그리고 바로 여기서 열리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 상황은 ‘사회적’으로 탈국경화되고 있다. 이는 가장 좋은 구제방안을 둘러싼 각국 정부의 경쟁에서 잘 드러나는데,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처럼 경쟁의 승자에게는 국내외적으로 불사조처럼 정치적으로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고 있다. 그간의 완고한 국제정치 룰을 변화시키려는 권력 게임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사이에서, 또 글로벌 경제와 정치, 초국가적 기구들 사이 등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게임에서는 누구도 혼자서만 승리를 챙길 수는 없다. 마치 한 나라의 정부가 글로벌한 테러리즘과 맞서 싸울 수 없듯이, 한 나라 정부가 혼자 힘으로 기후변화와 맞서 싸울 수 없고, 한 나라 정부 혼자서 금융시장의 대파국에 대처할 수 없다.
비상 상황은 ‘공간적’으로도 기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극도로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금융 리스크란 계산될 수도, 만회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국가가 중심이 된 ‘첫번째 근대’의 공간에서도 가끔씩 나타나는 대규모 피해를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적어도 만회할 수 있는 것이었고, 실제로 각국은 그 피해를 (예를 들어 금전적인 수단을 통해) 어느 정도 되돌려왔다. 그러나 만일 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된다면, 지구상의 기후가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변화한다면, 테러조직이 대량살상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면, 때는 이미 늦다. 이처럼 인류가 맞닥뜨린 질적으로 새로운 위협 앞에서 더 이상 ‘만회’의 논리는 설 자리가 잃게 되고, 대신 ‘예방’의 원리가 그 자리를 꿰찬다.
마지막으로 비상 상황의 ‘시간적’ 탈국경화는 앞서 말한 위험의 계산 불가능성에서도 잘 나타난다. 모든 이들은 바로 눈앞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보며 으레 파국의 악숙환이 이제는 그 정점에 도달한 것이라 믿고 싶어한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더 나쁜 상황이 비로소 자신들 눈앞에 닥쳐 그 희망이 산산조각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세계 금융 시스템에서 ‘악성’ 신용이란, 마치 끝없는 폭설 속에서 일어나는 눈사태와 비슷하다. 즉 사람들은 리스크의 존재는 알지만, 언제 어디서 눈덩이가 무너져내릴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이처럼, 모든 이들을 나락으로 몰고가려 위협하는 각종 위험에 대한 인식은 그 위험에 맞선 대항 행동을 촉발시키는 동력이 된다. 일국 차원의 정치공간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제 세계정치 차원에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되돌아볼 때, 글로벌한 위험에 대한 인식은 만만찮은 대가를 치러야했다. 보통은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그 인식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위험의 ‘지각’(수용)이 절대적 힘을 발휘하다보니, 세계무대 차원에서 글로벌 위험에 맞서려는 시도의 유효기간도 미디어의 관심에만 크게 휘둘려왔다.
오늘날 동시대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우리들의 물질적 상호의존성의 망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그래서 세계 위험사회의 민감한 작동기제가 아예 붕괴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베버와 푸코 같은 이들에게는 공포의 시나리오였던 ‘다스려지는 세계’, 곧 통제 합리성이 지금 이 순간 금융위기의 잠재적 희생자들에게 하나의 동아줄이 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 상황에서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은 어찌됐든 국민국가의 이기주의가 제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범세계주의자(코스모폴리탄)로 탈바꿈해야한다는 점일 게다. 물론, 이는 파국에 대한 ‘기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르침의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다. 또 다른 가능성이란 이런 움직임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일테고.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위험사회> 저자인 세계적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한겨레>에 세계 금융위기에 대한 특별기고를 보내 왔다. 자유방임 시장경제의 붕괴로 일어난 탈국가적 위기에 맞선 ‘국경없는 대응’을 강조했다.
---------------------------------------- “이명박 정부, 시장·미국에 충성…절대적 국민 건강권 내버렸다” (한겨레, 울리히 벡/독일 뮌헨대 교수(사회학), 2008-06-25 오전 08:37:43) 울리히 벡 〈한겨레〉 특별기고
위험 예견, 역동성 창조…새 저항 연대 형성
정책 전반으로 불만 폭발…정부 강경진압만
세계적인 사회학자 울리히 벡(64)이 <한겨레>에 최근 한국사회의 촛불시위에 대한 특별기고를 보내 왔다.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회학자인 그는 <위험사회>에서 서구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사회의 일상적 위험이 급증하고, 그 속에서 사회변혁의 동력도 있다고 주장했다. 촛불시위를 비상한 관심 속에 주시해 온 벡은 이 글에서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내재된 위험과 사회변혁의 동력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위험을 평가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부정적인 측면, 즉 파괴적 에너지를 강조하는 게 첫째다. 둘째는 그 위험이 수반하는 공공성에 주목한다. 위험은 정치적 지형을 급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정치적 권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최근 한국 동료들과 친구들, 독일 신문 등을 통해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의미 깊은 위기갈등이 불붙듯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의 현 갈등 상황은 내가 쓴 책 <글로벌 위험사회>(Weltrisikogesellschaft)에서 묘사한 체계의 모든 특징을 빼닮았다.
재난이 아니라 재난에 대한 예견이 문제다. 바로 이 예견이 거대한 정치적 역동성을 창조해 내고 있다. 시민사회의 각종 조직과 운동 진영, 일부 대중매체 사이에 새로운 연대가 형성된 것이다. 위기 갈등의 기폭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과 관련 있다. 이 모든 것은 초국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대부분은 이 현상을 집단 편집증의 발병이라고 여기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다. 이는 그가 아직 유예기간이라는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려고 물대포와 몽둥이를 동원했다. 1700여 운동가들이 저항운동을 호소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다른 지방도시에서도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대의 권력은 그들이 가진 우려의 정당성에서 나온다. 시위대는 소비자와 연대해, 국가기관에 맞서 소비자의 이해를 관철시킨다. 국가기관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것이지만, 실상 국가기관은 시장우선주의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충성 때문에 가장 절대적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국민의 건강권을 내버렸다.
이에 걸맞게 시위자들도 쇠고기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통령이 국민의 건강기본권, 식품안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팻말에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들이 나타났다. 산발적인 위기갈등은 마침내 정치적·사회적 개혁의 전반적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국면으로 발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부문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도와 의료를 민영화하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재벌과 대기업을 비호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위신을 세워줄 사업이라 여기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관철시키려고도 했다.
그런데 이런 갈등 안에는 중요한 물음들이 숨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글로벌 위험사회 문제에 직면해 실패의 위협을 받고 있는가? 국가는 이런 갈등을 통해 국민이 점점 거세게 요구하는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적 책임을 떠맡는 방향으로 되돌아갈 것인가? 이로써 전통적 좌우 대립이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인가?
시민들이 국가의 간섭과 통제라면 무엇이든 반대하던 미국에서도 문명적 위기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정치적 힘을 얻어가고 있다. 한편 또다른 유력한 세력들은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으로든 연대를 통해서든 큰 국가적인 지원 없이 위기와의 싸움에 대비하고자 한다.
마침내 한국은 이 대안들 앞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즉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것”이라는 이론과 “국가들은 지구적인 위기에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이 변해야 한다”는 이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다면 그 원인은 글로벌 위험사회에서 꼭 필요한 능력, 곧 환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신뢰를 얻어내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경계 넘기 과정이 지배적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 세계는 연결돼 있고 이미 우리는 국민국가 경계 안팎에서 이질적인 문화와 관계 맺고 새로운 원리들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충분히 현실적인 구상이다.”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가 지난 2일 경희대에서 박희제 경희대 교수(사회학)와 가진 대담 자리에서 코스모폴리타니즘의 현실 가능성을 조명했다.
이 자리에서 울리히 벡 교수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현실적 동인을 국제적 차원의 위험과 다양한 경험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에서 찾았다. “오늘날 나타나는 근대화의 위험은 국민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지구적 차원의 위험”이며, 국민국가 내부에서는 드러날 수 없는 모순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드러나면서 세계주의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를 통해 벡 교수는 위험사회에서 근대성의 원리라 급진화 되면서 근대화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는 ‘위험사회’, 그리고 ‘성찰적 근대화’ 개념을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한편 울리히 벡 교수는 같은 날 경희대 네오르네상스문명원(원장 김여수)이 개최한 ‘위험사회를 넘어서: 동아시아로부터의 성찰’국제 심포지엄의 기조강연자로 참석했다. 심포지엄은 울리히 벡 교수가 내놓은 코스모폴리타니즘이라는 의제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는 방안을 동아시아적 경험과 새로운 가능성에 착안해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송재룡 경희대 교수(사회학)는 유연하게 변동하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항해 코스모폴리타니즘 기획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가능할 수 있을 것인지를 지적했다. 벡 교수가 그것의 가능성으로 제시한 EU의 경험을 둘러싼 논쟁도 이어졌다. 토론자들은 EU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개인들의 규범적 기준과 제도들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터키 가입을 둘러싸고 일었던 논쟁처럼 코스모폴리타니즘 자체도 스스로의 경계를 가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자리에서는 일본 오사카대의 기마에 도시아키 교수, 대만국립대의 초우 쿠에티엔 교수가 참석해 위험사회에 대한 동아시아적 경험을 발표했으며, 한상진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포스트 유교주의적 코스모폴리탄 세계관과 성찰적 근대화’를, 정진성 서울대 교수(사회학)가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다문화사회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지난달 29일 부인 엘리자베스 벡 에어랑겐대 교수와 함께 방한한 울리히 벡 교수는 서울대 공개강연, 시민사회와의 대화 등 8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5일 독일로 돌아갔다.
------------------------------------ 석학과의 대화(상) : 울리히 벡 교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 블로그, 2006.11.01 09:28:26) “세계화의 위험을 악용하는 ‘불안의 정치’가 활개치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 기간 중인 10월 2일 오전 11시(독일시간) 뮌헨대 사회학과 울리히 벡(Ulrich Beck) 교수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갸날픈 여자 조교의 안내를 받고 있는 사이 벡 교수가 도착했다. 그는 세계적인 학자라기 보다 시골의 털털한 아저씨 같았다. 푸른 와이셔츠에 윗도리를 걸친 벡 교수는 5시간에 걸친 대화 내내 활기찬 모습을 보여줬다.
벡 교수와의 만남은 현재 우리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와 다양한 쟁점을 외부 시각에서 조명해 보고,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위해 기획됐다.
벡 교수는 ‘하위정치’란 개념을 새롭게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즉 통치행위가 엘리트 중심의 전통적 정치행위와는 달리,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하위정치’ 영역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민주화 이후 시민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와도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약 20년 전 <위험사회>라는 저서로 세계적 학자로 주목받게 된 그는 대담 내내 위험의 세계화, 그에 따른 책임있는 대응도 세계적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이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동원되는 ‘불안의 정치’를 지적하면서 세계주의를 거부하는 신민족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울러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은 물론 심지어 테러와 같은 극단적인 위험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해 “진지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기보다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불안의 정치’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자기자신에만 매몰된 채 위험을 ‘불안의 정치’ 소재로 활용하며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애국주의적이지 않은 애국주의(unpatriotischen Patriotismus)가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심지어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을 ‘불안의 정치’의 소재로 삼는 ‘보호주의 좌파’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FTA,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등의 원인과 해법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감안할 때 벡 교수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불안의 정치’에 이어 벡 교수가 강조한 것은 ‘정의’의 문제. 스웨덴 선거결과에 대해 복지보다 시장을 선택했다고 분석과 관련 “잘못된 해석”이라고 단정하고, “스웨덴 총선결과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정의 문제이며, 유럽의 정치는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미래의 권력은 시장의 개방이나 새로운 기술개발 보다 더 나은 사회적 정의의 전망과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정치집단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민노동’이라는 개념도 흥미로왔다. 실업자에게 ‘국가가 기본 생계를 책임지는 대신 사회를 위해 봉사토록 시민들을 자발적으로 조직’하자는 것. 다소 이상적으로 들리긴 했지만, 그의 사회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벡 교수는 위르겐 하버마스, 앤서니 기든스 등과 함께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사회학자다.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사회학·철학·정치학을 수학했으며, 뮌헨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뮌스터 대학과 밤베르크 대학 교수를 거쳐서 현재는 뮌헨 대학의 사회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가 1986년 출간한 ‘위험사회’는 서구를 중심으로 진행돼온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이 실제로는 ‘위험사회’를 낳는다는 주장을 담아 지금까지도 주목받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성찰적 근대화’(1995) ‘정치의 재발견’(1996)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1998) 등이 있다.
다음은 벡 교수와 나눈 대담 전문.
□ <위험사회>와 정치의 역할
김: 20년 전 <위험사회>가 출간됐을 때 당시로서는 그 내용이 매우 생소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개념은 오늘날 전세계 지식인들에게 이젠 일상적 용어가 되었습니다. 특히 근대화에 따른 위험의 증가, 그리고 그 위험의 세계화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세계 지식사회에서 의미있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벡: 20년 전에는 제가 예언 같은 걸 쓰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당시의 현실을 훨씬 뛰어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체르노빌 사태를 비롯해 위험사회의 특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테러리즘은 그 한 예일 뿐입니다. 20년 전에 저는 위험사회를 근대화 과정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테러는 ‘의도된’ 재난과 관련된 현상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위험을 지각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논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김: 테러 등 극단적 예를 들었습니다만, 오늘날 사회는 다양한 형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양극화, 출산율의 하락, 에너지 고갈 등이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이런 예견된 위험을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래의 위험을 예견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이론과 실천이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
벡: 우리는 ‘위험’이라는 개념을 통해 미래를 과학적으로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문제를 과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도구와 충분한 방법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점점 더 많은 문제들과 대결해야 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위험 갈등을 공식화할 경우 예상되는 부정적 결과 때문에 될 수 있으면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위험 갈등과 정면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행위가 열릴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 세계화 시대 위험에 대한 대응
김: 중요한 지적입니다. ‘위험의 세계화’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만, 그것이 세계화의 한 단면으로, 그렇다고 세계화 자체를 위험으로 간주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계화는 보편가치의 확산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을 것이고 위험이 세계화되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를 대세로 인정하면서도 그 위험을 과도하게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벡: 독일에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 세계화를 견딜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대중 철학자가 쓴 그 책은 저를 정말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그렇게 많은 세계화를 견딜 수 없다고 미리 결론을 내려놓고, 주장의 합리화를 위해 독일의 전통, 독일의 고전과 계몽을 증거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우리가 계몽시대를, 괴테와 모든 다른 고전을 제대로 바라본다면, 그 모두는 한결 같이 문화적 세계화를 찬성하고 있었습니다. ‘세계문학’은 계몽의 보편주의의 중심개념이었으며 세계시민주의는 독일 전통의 본질적 이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긍정적인 연결지점을 찾을 수 있는 그 많은 부분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김: 저는 이미 사람들이 ‘갈등과 대립도 어떤 식으로든 세계화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갈등이나 문제들이 생기면 그것을 세계화의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그에 대한 해결은 그렇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을 세계 지식사회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벡: 옳은 지적입니다. 독일 지식인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화 요구에 대한 독일과 유럽에서의 토론도 아주 불충분합니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일국적 관점에 호소하면서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인식하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를 통해 우리는 세계 시민적으로 행동하도록 강제됩니다. 위험들은 더 이상 일국적 맥락으로 제한하거나 지역화 시킬 수 없게 됐습니다. 조류독감의 경우만 봐도 위험이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국가들 사이의 협력과 협조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김: 새롭게 등장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일국적 노력과 아울러 지역적·국제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유럽과 동아시아는 차이가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과 중국은 패권을 지향하거나 과거 제국주의 전통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 아직 개방되지 않는 빈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협력관계는 유럽의 경우와 달리 매우 현실화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벡: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유럽 연합을 주창하던 자는 당시에 정신이 나갔거나, 현실감을 상실한 유토피아주의자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50년이나 100년 후 그 제안은 자신의 현실성을 증명했습니다. 동아시아 사정은 잘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가망없어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현실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김: 다른 한편 세계화 뿐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등장하는 위험들을 책임있게 해결하기 보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한 프로파간다 소재로 활용하면서, 진정한 해결을 위한 대안이나 고민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벡: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시대의 정치의 역할은 앞으로 어떤 위험한 일들이 일어나며, 결국 누구의 책임이며, 어떤 예방책이 마련돼야 하는지 분명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식의 한계와 일반 대중의 생각을 과소평가합니다. 이들에게 맡겨 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와 그것을 예견하는 지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민들로부터 체계적인 신뢰를 쌓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정치적 이유로 안전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은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확실하다’라는 식의 정치적 약속은 자칫 과잉 기대를 만들고 결국 신뢰 상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 세계화 대응방식의 위험성 - ‘불안의 정치’와 ‘보호주의 좌파’
김: 세계화는 이미 미래 위험들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해결 가능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것이고 정부는 계산 가능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 것일 텐데요. 벡 교수께서는 앞서 정치가 빠질 수 있는 함정을 지적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를 최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내용을 소개해줄 수 있는지요.
벡 : 우리 연구소에서 유럽지역에서 세계화에 대한 정치적 대응과 관련된 연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연구를 통해 어떤 역설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는 국가들 사이의 연계가 확장되면서 국가의 자율성은 상대화되는 반면 아이러니 하게도 선거나 정당체계에서는 오히려 세계화 내지 국제화가 부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보수적이고 신민족주의적 정당들이 그로부터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이는 큰 문제입니다. 세계화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변화가 너무 크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합의를 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양극화 등 세계화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들에 대해 진지하고도 이성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려는 것이죠.
김: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좌파나 자유주의자들이 아니라 보수주의자들이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것입니까?
벡: 그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세계화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계화가 연대와 사회국가를 강탈해간다고 느끼기 때문이지요. 종종 세계화는 정치적으로 특정한 일들을 하지 않으려는 변명거리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애국주의적이지 않은 애국주의(unpatriotischen Patriotismus)도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만 매몰된 채 위험을 ‘불안의 정치’의 소재로 활용하며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그런 애국주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김: ‘불안의 정치’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불안의 정치’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극우는 북한의 위협을, 좌파는 세계화의 불확실성을,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은 강대국의 위협을 ‘불안의 정치’ 소재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불안의 정치’ 상황에서 책임있는 합리적 토론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벡: 우리는 민족주의가 정말 국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를 넘어서는 개방을 추구할 때에만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야합니다. 이는 아주 장기적인 길이지만 우린 신념을 갖고 이를 대변해야 합니다.
김: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의 경우 좌파가 오히려 국가와 개방을 이분법적으로 보고 이같은 개방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좌파는 세계화 시대에 새로운 좌표 설정이 필요합니다. 과거 식민지 시대의 이념에 기초해 미래를 진보시키는 동력을 찾아낸다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벡: 저 역시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놀랍게도 보호주의적 좌파, 민족주의적 좌파의 현상을 목격합니다. 제가 매우 높이 평가하던 정치가 오스카 라퐁텐(독일 사민당내 좌파계열이었으며, 슈뢰더 정부 초기 재무장관 역임. 이후 사민당에서 탈당하여 <좌파선거연합> 대표로 활동. 최근 발간된 자신의 저서에서 독일내 이주노동자 문제를 제기하여 당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오히려 독일 극우당이 그의 주장이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잠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음.)이 얼마 전 이러한 민족적-보호주의적 좌파로 천명하고 신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불안의 정치’가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불안의 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정당과 정부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사회, 지식사회의 운동과, 그것도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협조를 꾀하려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제가 ‘하위정치’라고 부르는 것까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안의 정치에 대항하는 ‘연합의 형태’를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저는 정부나 정당의 정책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향해 열려있는 정책이 갈등을 합리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 사회권력, 특히 언론상황
김: 당위적으로는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그 같은 주장은 아직 합리화되지 못한 사회권력이 존재할 때 적용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럽의 경우 법조, 교육, 언론, 종교 등 시민사회는 합리적 담론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들은 사회권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오히려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은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오늘의 언론 상황은 시민에 의한 시민의 선택과 정치를 기본적으로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하위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언론의 민주화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벡: 위험들은 추상적이기 때문에 언론을 통해서만 생생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언론은 이 위험들에 대한 집단적 지각기관입니다.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면 이 전체 위험에 대비하는 정치 역시 기능하지 못합니다. 언론은 항상 불안정치가 갖는 비생산성과 그것의 모순성을 테마화 해야 합니다.
김: 한국의 좌파나 진보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을 포함한 사회권력을 해체하고 어떻게 건강한 시민사회, 지식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부재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들은 자신들의 존재조건이 큰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제 좌파나 진보의 개념을 새롭게 규정해야 할 과제에 처해있습니다.
□ ‘정의’의 문제
벡 : 유럽정치를 인식하는데 본질적으로 ‘정의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시장의 개방이나 새로운 테크놀로지도 중요하지만 더 나은 정의의 지향과 목표를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지난 독일 선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 ‘정의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에서도 이와 유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유권자에게 모든 걸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정의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김: ‘정의의 문제’가 정치의 중심에 서야한다는 주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표만 의식하는 ‘불안의 정치’, ‘이익의 정치’에만 매몰될 경우 정의를 문제는 외면받기 쉽습니다. 가령 저출산·고령화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이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세대간의 균형의 관점에서 정의의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벡 : 인구감소 문제가 진지하게 다루어지기까지 독일에선 수 년이 걸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벽에 걸어 놓기는 했지만 최근에야 비로소 갑자기 중심문제가 되었지요. 독일에선 15%의 아이가 빈곤 속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재합리화 하지 않으면 ‘불안의 정치’의 잠재적 원천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많은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현실적인 정의정치는 이런 현상, 이런 ‘불안의 정치’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회학자로서 저는 항상 리얼리스트입니다. 현재의 상황은 정의의 문제와 권력문제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권력문제의 중심은 정의의 문제인데, 그건 도덕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저는 현재의 곤란 속에서 도덕이 실질적 힘을 얻을 기회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 문제에 대한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제 중심 생각이자 확신입니다.
김: 정의의 문제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복지’ 입니다. 앞으로 진행될 세계화를 염두에 둔다면 복지의 확충은 정의의 관점에서 불가피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복지 투자 확충은 언론으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 논리는 ‘복지투자를 늘리면 국제경쟁에서 성장률이 저하돼 경쟁에서 뒤떨어진다’ 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선거도 중요한 논거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복지 보다 시장을 선택했다는 것이지요.
벡: 그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스웨덴 선거 결과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정의의 문제입니다. 현재 유럽에선 벌어지고 있는 전환은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 선거에서 보듯 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선거전은 누가 정의를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하는 가에 집중될 것입니다.
김: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불안의 정치’와 위험에 대한 책임있는 대응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정치에서 갖는 역할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다양한 방식의 불안정치에 대면하고 있어 정말 우리가 미래를 위해 올바른 비전을 고민하고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벡: 사회학자들은 고도의 사유의 산물에 의존해 관점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현실은 이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김: 헤겔의 ‘역사철학’ 서문 마지막에 “가장 추상적인 것이 가장 구체적인 것이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구체에 매몰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코 올바른 의미의 구체적인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벡: 많은 사람들이 통일에 있어서 원자폭탄을 통한 위협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거의 간과하고 있지만 우린 그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물론 냉전과 동서 대립이었습니다만 지구적인 위험정치도 있었지요. 아시아에서의 지구적인 위험, 예를 들어 환경문제 같은 것을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성공한다면 대립을 해소하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완전고용’의 불가능성과 대안으로서의 ‘시민노동’
벡: 유학생들을 통해 한국도 실업율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고용이 더 이상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그 대신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는 공동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가령 ‘시민노동’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일자리가 없는 사람, 노동시간 외의 시간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시민노동’이 필요합니다. 완전고용’은 실현할 수 없으므로 이들에게 국가와 사회가 기본적 생계보장을 책임지는 대신 사회를 위해 봉사토록 하는 ‘시민노동’을 장려해야 합니다. 더 이상 국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자기생계를 더 강하게 조직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국가로부터는 근본수단, 기본수단을 받는 것입니다.
김: 그건 매우 유토피아적이라 생각합니다. 노동은 자기실현이라는 측면과 자기충족 아울러 생계유지라는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 실업이 문제가 되는 것은 특히 교육수준이 낮은 생계유지가 어려운 계층이 아닐까요. 사회적 실현을 위해 노동하려는 사람들의 실업은 대체로 자발적 실업일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벡: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생각들이 신자유주의적 경제학자들이나 저 자신 혹은 랄프 다렌도르프(Ralph Dahrendorf)와 같은 매우 이질적인 지식인 그룹들에서도 대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 어제 하버마스 교수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에게 칸트의 윤리에 입각한 세계 시민주의가 추상적인 것이 아닌가 물었습니다.
벡: 저는 실재적 세계시민주의(Kosmopolitanismus), 실현된 세계시민주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세계시민주의는 타자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타자는 당신의 관점 속에 통합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타자에 대한 당신의 관점을 보편화시키지는 않습니다. 차이는 항상 존재합니다. 상이한 문화적 배경들이 항상 존재해야합니다. 세계시민주의는 그를 위한 수단이지요. 상이한 관점들은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타인이 존재한다고 하는 인식입니다.
김: 그가 주장했듯이,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인정을 해야 한다면, 오히려 그를 헤겔적 방법에 접근하면서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식 속에 타자의 의식을 포함하는 변증법적인 자기의식 말입니다.
벡: 보편주의는 타자들의 특수성을 간과하고 그걸 추상화시켜 버리는 이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큰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한 국가 내에서의 평등, 곧 보편주의를 실현시키려고 하지만 바깥으로는 자신과 타자를 구분합니다. 세계시민주의는 여기에 새로운 다리를 놓으려고 합니다. 세계시민주의는 보편주의적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자에 대한 인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시민주의는 민족주의적이지 않습니다. 그건 자신의 나라 외부에 있는 타자들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끝>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번 방한에서 울리히 벡 교수는 위험사회의 대안으로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방한을 계기로 교수신문은 지난 2일 경희대 본관에서 울리히 벡과 박희제 경희대 교수(사회학)의 대담을 가졌다. 그가 위험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내놓은 코스모폴리탄 근대화 이론의 현실가능성, 그리고 아시아의 차별적인 근대화 경험이 그에게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견해를 들었다.
박희제(이하 박)= 위험사회의 관리를 위해 코스모폴리탄적 근대화 개념을 제시했다. 울리히 벡(이하 벡)= 근대화가 낳은 위험사회의 위험은 노동문제, 고령화 문제 같은 것들이었다. 이것은 국민국가의 영역에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날 나타나는 근대화의 위험은 환경위험, 테러라는 지구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민족주의와 국경의 경계를 넘어 인간의 평등, 그리고 차이를 동시에 인정하는 질서다. 개인들이 경계를 넘어 이질적인 타자를 만나고 세계주의 시각에서 그들을 인정하는 것은 배제된 자들을 세계의 장으로 드러나게 한다. 위험사회에 평등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근대화 과정이 될 수 있다.
박= 너무 이상적인 구상은 아닌가. 벡=코스모폴리탄은 충분히 현실적인 개념이다. 그것이 현실적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오늘날 근대성의 원리가 급진화 되면서 근대의 기반들을 무너뜨리고 있는 징후들이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근대가 낳은 개인 인권의 원리, 나아가 개인 자율성의 원리, 시장경제의 원리 등은 위험사회 국면에서 급진화 되어 기존의 틀을 위협하고 있다. 성찰적 근대화 과정은 코스모폴리탄이 현실화하기 위한 토대가 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는 일종의 ‘경계넘기’의 과정이 지배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세계는 연결돼 있고 이미 우리는 국민국가의 경계 안팎에서 이질적인 문화, 이질적인 언어와 관계 맺고, 또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모폴리탄은 오늘날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충분히 현실적인 관점이다.
박= 코스모폴리탄적 근대성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나. 벡= 물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2006년 펴낸 『코스모폴리탄 비전』에서 저는 코스모폴리탄이 인간 위에 군림하는 질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 안에서 생동하는 질서라고 강조한바 있다. 반면 세계화 시각은 경제 중심적이고 우열을 가르는 것에 입각해 있다. 코스모폴리탄은 차이(difference)들이 공존하는 시각이다. 모든 타자를 포함해야한다는 것이 특징이며, 이로써 위험의 대처와 지구적 정의의 실현이 가능하다.
박= 민족 간, 성별 간 등에서 보듯이 이미 세계구조는 차이로 환원될 수 없는 불평등이 존재한다. 벡= 중요한 지적이다.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은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분배의 문제에 대한 조명을 전제로 해야 한다. 배경적 차이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인간의 존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와 차별기제들과 관련된 문제다. 모든 차원의 평등이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이 다층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은 더더욱 코스모폴리탄적 시각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일전에 독일에서 노동운동을 하시는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중국노동자의 문제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민족국가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야 말로 비현실적이다. 민족국가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른 국가에게 문제를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차별의 기제들은 상이한 경험들이 만날 때 더욱 많이 발견될 수 있다.
박= 코스모폴리탄 성립을 위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벡= 정신병이다.(웃음) 환경문제가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의 기후변화는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 내의 사안이 될 수 없다. 물론 자본주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노동조합은 세계화된 자본 앞에서 더 이상 힘이 없다. 민족적 차원의 문제 구상은 어렵다. 국제적 차원의 연대는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나눌 수도 있다. 이것은 코앞에 직면한 아주 시급한 문제라 생각한다.
박= 지식인이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위한 주체가 될 수 있으리라 보는가. 벡= 사회학은 이제 공공에 대해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물론 지식인의 역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소 모순적이지만 버락 오바마가 코스모폴리탄 리더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는 미국인 어머니, 케냐인 아버지를 두고 자신은 인도네시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배제된 사람이었지만 지배적 질서를 다시 전복할 수 있는 힘은 코스모폴리탄의 구상과 맞닿아 있다.
박= 코스모폴리탄적 기획을 위해 동아시아 근대화 경험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방문한 지 아직 5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방문 이후 이론을 수정할 필요성을 느꼈나. 벡= 물론이다. 유럽과 아시아는 특히 이질적인 근대화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유럽의 근대화는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와 달리 한국의 근대화 경험은 다양한 형태의 근대화가 동시에 존재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런 이질적인 경험은 새로운 구상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깨지고 동시에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유럽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한다. 위험 사회에서 타자와 교류한다는 것은 생각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다. 아시아적 맥락을 포함해 코스모폴리탄 근대화 이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