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재미/사람들도 만나고
진중권
예전에 진보누리에 있으면서 진중권과 인사를 했었는데, 지금은 촛불집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칼라TV를 진행하는 그를 보고도 그냥 멀뚱멀뚱 지내치곤 한다. 그는 나를 기억못하고, 나는 그에게 기억시킬 필요를 못느끼니...
스크랩해 놓은 기사들을 정리하다가(오늘까지 마칠 수 있을까. ㅡ.ㅡ;;) 올해 3월말에 난 경향의 진중권 인터뷰 기사를 보고 이를 담아놓기로 했다, 관련하여 네이버블로그에 담아놓았던 진중권 관련 글도 발췌하여 담아온다. 나도 진중권 팬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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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악역이 필요한 때 아닌가 李정권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 (경향, 이중근 특집기획부장·최희진기자, 2008년 03월 26일 15:00:30)
진중권, 그를 인터뷰 대상에 올려놓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인터뷰감으로 괜찮으냐고. “말하난 똑 부러지게 하잖아.” “어쨌든 재미는 있겠다.” “에이~ 별론데. 이미지가 좀 부정적이지 않아?” “또 무슨 독설을 이끌어내려고?” 이렇듯 그는 이미지까지 논쟁적이다.
실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싶으면 그는 어느새 그 중심에 서 있다. ‘황우석 박사 사건’이나 ‘디 워’ 논란에서도, 최근 민주노동당 분열 국면에서도 그랬다. 주변부에서 슬쩍 발을 담그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못된다. 그가 뜨면 조용하던 판도 단숨에 달궈진다. 가끔 토론 게시판에 올라 있는 그의 이름을 두고 ‘짝퉁’ 시비가 붙는 것도 이런 그의 파괴력 때문이다. 소싯적에 ‘말쌈치기’깨나 했을 법한 입심의 소유자인 것은 분명하다. 때론 평범한 말도 그의 입을 통해 나오면 뉘앙스가 바뀌기도 한다.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양촌리 김회장 댁 둘째 아들’이라며 특유의 화법으로 비판한 것이 좋은 예다. 배우 유인촌을 긍정적으로 묘사해온 이 말은 졸지에 장관 유인촌을 비꼬는 말로 변했다.
유 장관의 비판을 들으며 퍼뜩 든 생각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으니 진중권이 바빠지겠다’는 것이었다. 예상대로였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나를 자꾸 불러낸다”고 말했다. 몇 년 전부터 ‘미디어아트’에 빠져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자꾸 이끌려나간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그것을 그는 ‘먹물’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있다. 생각보다 웃는 모습이 훨씬 착해 보이는 그와 마주 앉았다.
“보통은 가만히 있어도 언론에서 전화가 옵니다. 제가 전화 걸어서 ‘나 할 말 있으니까 방송 내보내줘요. 신문 지면 줘요’ 이럴 수는 없잖아요. 연락이 와도 대부분은 제가 자릅니다. 우선 많은 경우 의견이 없어요. 제가 모든 사안에 의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또 의견이 있어도 전문가들이 발언하는 게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나서는 일은 보통 궂은 일이죠. 악역이 필요할 때. 영화 ‘디워’ 논란 때도 전화가 왔는데, 제가 영화평론가가 아니잖아요. 저한테 전화를 거는 이유가 뻔한 거죠. 그 때도 ‘왜 또 나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어봤더니, ‘여러 평론가한테 연락했는데 안 한다고 한다’고 하더군요. 대개 그런 식이죠.”
-논란이 될 것을 예상하면서도 발언한다는 겁니까.
“이런 걸 하게 되면 일단은 아드레날린 수치가 올라갑니다. 일상에 지장을 좀 받죠. 그래도 ‘먹물’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합니다. 먹물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황우석 교수 사건 때도 보면 사건이 진행될 때는 아무도 말 안했잖아요. 끝나고 나니까 말이 나온단 말입니다. 먹물이란 게 뭡니까. 노동자, 농민이 해주는 옷 입고 밥 먹는 사람들인데 그러면 자기 할 일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다 지나간 다음에 코멘트하는 게 무슨 의미냐 이거죠.”
-발언을 하다보면 공격을 많이 받는데 괴롭지 않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제가 견해를 하나 낸 것처럼 그들도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번 개입하면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계속 지켜봐야 하잖아요. 시간을 빼앗기는 거죠. 미디어아트와 컴퓨터 그래픽의 미학 문제를 고민하다가, 다른 한편으로 양촌리 김 회장님의 둘째 아들(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걱정해야 하고.(하하)”
-논쟁을 잘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연구를 많이 합니까?
“제대로 하려면 우선 철학적, 이론적 토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논의의 지평이 보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이론적 스펙트럼의 어디에 있으며 그 입장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 토대가 없으니까 엉망진창이 되는 거죠. 두번째로 논객은 사람들에게 어필을 해야 합니다. 어법이 중요하죠. 특히 구술적인 어법. 은유나 비유법으로 얘기를 한 다음에 하나의 이미지로 요약해 주는 것. 이런 게 있어야 합니다.”
-토론 잘하는 분을 꼽는다면?
“제가 봤을 때는 노회찬씨가 최고입니다. 굉장히 구술적인 언어를 사용하거든요. 비유의 달인이고. 논리만 얘기하는 게 아니고 논리를 서민의 생활 정서와 결합시켜 나갑니다. 유시민씨나 저만 해도 먹물 티가 나잖아요, 유학물 먹은 티가. 노회찬씨는 그런 티가 전혀 안 나고. ‘(고기를 제대로 구우려면)불판을 갈아야 한다’ 이런 것만 봐도 말씀을 잘하시죠.”
-유시민씨나 전여옥씨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저와는 스타일이 다릅니다. 전여옥씨는 논리가 있는 건 아닌데 순발력이 있다고 해야 할까요. 유시민씨는 토론을 잘하죠. 논리도 있고. 옛날에는 유시민씨 만나서 밥도 먹고 그랬는데 장관이 되더니, 그 다음부터는….(하하)”
-지인 중에 논쟁에 뛰어들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없습니까.
“굉장히 재미있는 게 뭐냐면 습속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저를 걱정해주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남산 끌려가는 거 아니냐’ ‘걱정된다 몸 조심해라’ ‘조금씩 해주세요, 5년 동안 해야되니까’ 이런 것들이 늘었어요. 저야 ‘자기가 어쩔 거야, 전두환한테도 짱돌 던진 사람인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저를 걱정해준다는 건 그분들이 그렇게 살아왔다는 뜻이거든요. 아직 우리 사회에 말을 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있고 이번 정권 들어와서 그 분위기가 강해졌고. 이게 재미있어요. 노무현 정권 때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요즘 비행기 조종을 취미로 삼고 있다고 하던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습니다. 원래 2002년에 배우려고 했는데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이문옥씨가 출마했잖아요. 비행 교습비를 거기에 다 쓰고 2006년에 시작했습니다. 경기 화성에 있는 비행 허가구역에서 타는데 지금까지 비행시간이 모두 68시간입니다.”
-비행기는 빌려서 배우는 겁니까.
“제 비행기입니다. 4500만원 주고 2인승 초경량기를 샀어요.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우연히 항공잡지를 봤는데 비행기가 10만 마르크 정도 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돈으로 6000만원 정도였어요. 아주 좋아보이고 근사해 보이는데 값이 6000만원밖에 안하니까 ‘비행기라는 게 살 수 있는 거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재작년에 실제로 구입을 한 거죠.”
-관심 분야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문화평론가’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는데요.
“문화평론가는 직업이 없는 사람을 높여서 부르는 말 아닌가요?”
-대학생 때 운동권이었습니까.
“그렇죠. 그때는 운동권 아닌 사람이 없었잖아요. 제가 주도하고 그랬던 건 아니지만 돌 던지고 유인물 나르고 배포하는 거 다 했었죠.”
-서울대 82학번으로 386세대의 중심인데, 386세대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저는 누구를 386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키는 것 같던데. 386이란 게 실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386이 좌파냐 우파냐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세대교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386들이 80년대 10년 동안 나왔던 사람들이니까 10년은 이 세대가 사회를 주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유인촌 장관 파동도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을 몰아내는 건 물론 밥그릇 싸움이죠. 하지만 이것을 넘어서서 객관적으로 보자면 세대 교체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86 이후의 세대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 이후에는 힘들 겁니다. 386은 책이라도 읽었거든요. 이 사람들은 세상을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 본 세대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체제 바깥을 넘어서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이 점이 새로운 세대의 상상력을 심하게 제한하고 있어요. 우리 세대는 ‘세상을 확 엎어버리자’ 했었기 때문에 많이 나간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게 좀 안타까워요.”
-진보신당의 가능성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장기적으로는 괜찮다고 봅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 겁니다. 나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인지도도 없고. 과거 민주노동당이 친북적 색채 때문에 외연을 넓히는데 힘들었는데 거기에서 벗어난다면 전망이 있습니다. 예전엔 진보정당을 찍으면 ‘적들 앞에서 분열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욕을 먹었는데 최근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없단 말입니다. 우리가 두 번의 개혁 정권을 겪어봤잖아요. 민주당에서 낼 수 있는 최고의 개혁체가 노무현씨입니다. 그 이상의 개혁적 제스처는 못낼 거라고 봅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는데, 한달 겪어봤지만 보나마나 뻔한 거죠. 그러면 여기 찍고 저기 찍었는데 둘다 아니더라, 또 한번 속는 셈치고 진보신당도 한번 찍어보자 한단 말이죠.”
-진보신당이 독일식 사민당이나 녹색당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봅니다.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사민주의를 굳이 앞세우지 않아도 유럽식 사회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면 되는 겁니다. 이념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어요. 국가가 최소한의 의료·교육·거주 등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으로 합의를 할 수 있지 않겠어요.”
-독일 유학이 의식에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습니다.
“다른 사회를 봤으니까요. 자본주의를 조직하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본 거죠. 이탈리아적 가능성이 있고 프랑스적 가능성이 있고. 북유럽은 또 완전 빨갱이거든요. 같은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게임의 규칙은 다양하게 짤 수 있는 건데 왜 우리는 이런 규칙으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한 달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보수 정권이 들어와서 보수 정책을 펴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그런데 장관 뽑아 놓은 것들을 보면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상식 이하예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에요.’ 이런 건 우리가 부동산 투기 한 사람들을 비꼬아 말할 때 써야 하는 건데 그걸 자기들이 한다는 말이죠. 이번에 생쥐머리 사건도 그렇죠. ‘생쥐 튀김이 건강에 좋다더라’도 우리가 비꼬아서 할 얘기인데 자기들이 한다는 겁니다. 황당하죠. 코미디도 아니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내각이 저 모양인데…. 자기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그게 말이 되긴 하는 건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일상적인 한국어 능력이 의심됩니다.”
-정책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십니까.
“말을 뱉었다가 아니라고 하고 뱉었다가 아니라고 하고. 이명박 정부는 미래로 간다고 하면서 자꾸 과거로 가고 있습니다. 백골단을 부활시키고 사형제를 부활시키고. 경제도 이게 다 박정희 프로젝트 아닙니까. 경부고속도로 깔자, 운하 파자, 가격 통제하자. 1970~80년대 본인이 활약할 때의 기억으로 통치를 하려고 하는데 우리는 그로부터 20~30년을 지나왔잖아요. 이건 복고지 보수가 아닙니다. 잠재 성장률이 5%인데 어떻게 7% 성장을 합니까. 저는 그냥 공약인 줄 알았어요. 선거할 때 무슨 소리는 못하나요. 근데 이명박 정부는 그걸 믿나봐요. 정신이 좀 이상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번 정권에서 발언할 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정권 끝나면 다시 공부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정권이 나를 부르는 거죠. 저 공부해야 해요. 미디어 미학을 정리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작업량이 많아요. 그런데 정권이 저러고 있으니 제가 일을 못합니다. 이런 연구 성과들이 다 한국의 경쟁력인데, 정권이 한국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하시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지금 사회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사회를 밀림, 정글로 만들려고 하잖아요. 일제고사를 봐서 성적 다 보여주고.”
-그렇게 걱정될 정도 입니까.
“5년 후에 의료보험증 들고 갈 수 있는 병원이 몇 개나 있을까 이게 제일 걱정됩니다. 의료 민영화다 뭐다 해서, 저 놈들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에요. 막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절망한 사람들은 사회를 포기하게 됩니다. 이건 곧바로 범죄로 나갑니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사형제로 다스리겠다고 하니, 이 사회가 뭐가 될는지.”
-지금 연구하는 미디어아트 분야를 소개하신다면.
“미디어 아트를 몇 년째 연구하고 있습니다. 철학 패러다임이 매체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최신 기술과 예술이 결합하고 있어요. 예컨대 예술가들이 팔을 움직이면 그 움직임이 컴퓨터에 입력되는 것과 같은 거죠. 초기엔 예술가의 실험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중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로 보급이 됩니다. 이게 판타지 산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미디어 아트가 정치와도 접점을 가질 수 있습니까.
“진보진영이 미래를 내다보고 이런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레이저로 낙서를 할 수가 있어요. 청와대에 레이저를 쏘는 겁니다. 사라지면 어떻게 처벌하겠어요. 삼성에도 레이저로 욕 써놓고 도망 오고. 이걸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고. 사이버 게릴라들을 만드는 겁니다. 정치적 진보가 이렇게 미학적 진보로도 나타나야 합니다. 진보신당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디지털 미학의 이론 작업을 해야 합니다. 후학을 키워야 하잖아요. 미디어 아트 현황에 대해서 알려줘야 하고. 기술과 예술, 인문학의 삼각 컨소시엄이란 게 있어요. 인문학이 콘텐츠를 주면 아티스트가 이미지를 떠올리고 기술자가 기술로 구현하는. 이런 것을 할 사람을 길러내는 커리큘럼을 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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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참세상 김규항,진중권 정세 좌담 2004/07/02 13:18
참세상 방송국이 개편된 미디어 참세상에서 김규항, 진중권님의 대담을 퍼왔다. 6월 30일에 나온 것이란다. 노무현 정권 퇴진 구호에 관한 내용도 나온다. 파병이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슬로건으로 퇴진 얘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진중권은 말한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의 경우에는 의회주의 정당이라 안된다고 한다. 공당으로서 책임성을 말하는 것과 동일한 논지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때문에 책임성 있게 민주노동당이 나서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노무현 정권 퇴진이라는 것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조직화를 위한 매개이다. 대중이 파병 강행에 대해, 자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퇴진이라는 구호로서 분노를 표출한다면, 책임있는 당은 이를 어떻게 받아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7월에 파병이 이루어지는 것이 명약관화하다면 지금까지 한 언행에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정권 퇴진투쟁에 나서야 한다. 물론 이는 갑작스럽게 분출되지 않으므로 바로 지금부터 이 투쟁을 조직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대중의 투쟁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침을 내리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바로 지금 "파병 철회냐, 아니면 정권 퇴진이냐!"를 선택하도록 하는 정치방침을 내와야 한다. 이렇게 정권의 안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할 때 노무현 정권도 파병철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균열중, 전쟁세력 살아남지 못 한다" (참세상, 용오 기자, 2004년07월02일 03:08:10)
미디어참세상 김규항,진중권 정세 좌담
김규항, "개혁의 후퇴, 변질이란 말은 부적절, 개혁은 지배세력의 자구책이었을 뿐"
진중권, "노무현지지 세력 정신분열증 겪고 있어. 패러다임 변화에 새로운 발언을"
인터넷 논객으로 잘 알려진 김규항 씨와 진중권 씨가 마주 앉아 정세 좌담을 진행했다. 두 논객은 여러 파병 논리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파병을 주장하는 개혁세력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김규항 씨는 김선일의 죽음 이후 개혁세력을 바라보는 대중의 판단에 대해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대중들은 개혁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다"고 진단하고, "20년 가량 승승장구해온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진중권 씨는 "파병세력의 논리를 파헤쳐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노무현이 대통령이라서 파병에 반대해야 할 사람들이 침묵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통령이 이회창이었다면 엄청난 반대로 1차 파병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진중권 씨는 무엇보다 개혁세력이 실질적인 파병세력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진중권 씨는 "파병 철회가 안 되었다는 것은 수구세력의 문제도 아니고, 조중동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문제도 아닌, 순전히 열린우리당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열린우리당이 원하면 파병 철회가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그들이 소수정당일 때는 파병에 전부 반대해도 파병은 되는 상황이었지만 총선이 끝나고 다수당이 된 후 태도가 바뀌었다"고 비난했다.
유시민을 필두로 한 개혁세력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이 쏟아졌다. 김규항 씨는 "유시민 같은 사람의 논리적 파탄은 200자 원고지 한두 장으로도 정리가 된다"면서 "누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사람 참 나쁜 사람이구나 알 수 있는데 그런 상태로 개혁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으니 세상에 겁나는 게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진중권 씨는 "유시민도 옛날에는 좌파였다가, 방법적 자유주의라고 하다가, 지금은 자유주의도 아닌 허접이 되어버렸다"며 유시민의 변절을 비난했다.
이날 두 사람은 파병 철회 운동을 전개중인 '파병반대비상국민행동'의 대응 기조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또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퇴진' 구호에 대한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미국만을 문제삼거나, 꼬리만 자르고 이번 사태를 정리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각각의 특유의 언어와 논리로 문제를 짚었다.
두 사람은 개혁 세력의 균열을 주시하는 가운데 진보세력의 정치적 과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으며,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역사의 진전을 위한 새로운 발언을 해나가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했다.
유영주(사회/미디어참세상편집장) : 유력한 글쓰기활동가 두 분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뜻깊습니다. 최근 '전쟁세력'을 비판하는 두 분의 글도 여느 때처럼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키는데요, 김규항 씨는 작년 9월 <국익>을 통해 전쟁세력의 논리를 정확히 짚은 바 있고, 최근에는 <우리의 전쟁>, <유시민, 아비투스, 김태촌>,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인>" 등의 글을 통해 일침을 가했고요, 진중권 씨는 <노혜경, 그런다고 땅에 스민 피가 지워지나?>, <김정란의 구주, 적그리스도>,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의 글로 전쟁세력들의 이러저러한 논리를 향해 직격탄을 날리셨는데요, 전쟁과 전쟁세력을 보는 데 있어 두 분의 입장 차이는 없어 보이나 말하자면 구질은 상당히 다른 듯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젖 먹던 힘을 모아 싸우는 이라크 민중들, 그리고 고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 땅의 민중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나눠주시죠.
진중권 : 최근 인터넷 글쓰기를 잘 안 하려고 했는데, 원고를 끝내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김선일 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새벽에 속보를 보며, 크게 분노하고 황당했죠. 그래서 인터넷과 경향신문과 씨네21 등에 글 몇 개를 썼는데요,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한 번 파병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일상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돼요. 파병세력의 논리를 파헤쳐 깨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차라리 대통령이 이회창이었으면 별 문제 없었을 거예요. 노무현이니까 파병에 반대해야 할 사람들이 다 빠져나오지 못하고 잠잠해하고 있는 거죠. 만약 이회창이었다면 파병 결정조차 지금처럼 쉽게 못 했을 겁니다. 사람들의 정치의식, 즉 개혁이면 개혁, 진보면 진보, 이런 가치에 의해 현실 정치가 강제되고 활용돼야 하는데, 오히려 정치인들에 의해서 활용 당하고만 있단 말이죠. 정치인들에 의해 포섭되어서 개혁이나 진보의 가치를 자기들 멋대로 입맛에 따라 활용되고 있는 거예요.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픈 대목입니다.
26일 촛불집회에 갔었는데, 민언련의 최민희 씨, 정말 짜증나더군요. 노무현이란 가치는 절대 불변의 가치예요. 노무현을 지지하는 데도 여기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 따위 이야기를 한단 말이죠. 파병 철회가 노무현을 살린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주 짜증나거든요. 사람이 죽었는데 거기 앞에서도 아직 노무현 이런 얘기가 나오느냐 말이죠. 그런 식으로 얘기가 나오는 것들이 뭐랄까 굉장히 비정상적이에요.
김규항 : 고 김선일 씨 사건이 참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데, 그 일이 개혁의 기만적인 현실을 드러내는 데 어떤 논리적 주장보다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들 개혁의 후퇴다, 변질이다 그런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은 개혁이 그런 것입니다. 개혁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대중의 의식이 높아져서 권위주의 통치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지배세력이 선택하는 자구책이거든요.
절차적 민주주의 같은 형식적인 문제들을 최대한 수용하면서 진보세력을 대부분 체제내화하고 계급 문제나 분배 같은 실제적인 사회변화를 차단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독재를 사용하던 지배세력이 민주의 옷으로 갈아입고 지배하는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개혁이라는 게 잘 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워낙 오랫동안 야만적인 독재에 당해왔기 때문에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수구 우파나 조중동만 공격하면 나머지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그런 게 있는 거죠. 탄핵 사태로 노무현정권이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되었다가 부활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바로 그런 거지요.
길게 잡아 87년부터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번 김선일 씨의 죽음을 통해 대중들은 개혁의 정체를 의심하게 되고 개혁은 진보가 아니라는 걸 자연스럽게 깨닫고 있습니다. 20년 가량 승승장구해 온 개혁에 근본적인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유영주 : 독재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식이 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연결되었다는 점을 말씀하셨고, 개혁의 비정상성과 근본적인 균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좀더 섬세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서 이번 일련의 사태의 중심인 김선일 씨 사망 사건의 원인부터 따져보는 것이 순서일 듯 합니다. 한국 정부의 파병 방침이 결국 김선일 씨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태를 부르게 된 원인 진단을 어떻게 하느냐, 이게 쟁점이 되고 있는데요.
진중권 :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조희연 씨의 주장을 보면 미국에 초점을 맞추어야 되고,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켜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미국의 부시를 낙선시키느냐 당선시키느냐가 우리의 임무는 아니에요. 그건 미국 유권자들의 문제라는 거죠.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뭐냐면 파병이에요. 파병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의 문제에요. 노무현정권이 내렸잖아요? 또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있을 수 있어요. 터키 같은 경우는 정부에서 파병안을 제출했지만 의회에서 부결시켜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청와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회에서 부결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안 하는 거예요.
열린우리당 지금 다수거든요. 민주당 의원들 파병 철회 공약으로 내세웠잖아요? 민주노동당 의원들 원칙적 파병 반대론자들이고요. 합하면 거의 7:3이죠. 절대적 다수가 되는데 그런데 왜 안 하느냐 이말입니다. 파병 철회가 안 되었다는 것은 수구세력의 문제도 아니고, 조중동의 문제도 아니고, 미국 문제도 아니고, 순전히 열린우리당 문제에요. 그들이 원하면 파병 철회가 되는 거예요. 문제는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탄핵 때 뭐라 그랬나요? 민주개혁을 위해서 다수를 만들어내자 그랬거든요.
유영주 :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정권에 대한 태도 문제가 제기됩니다. 파병반대국민행동 안에서도 그렇고... 노무현 퇴진을 주장할 거냐 말 거냐 같은 논란도 그 연장에 있어요.
진중권 : 그런 논쟁 짜증나요. 왜냐하면 노무현 퇴진 구호 쓸 수 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건 슬로건에 불과한 거예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퇴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고, 퇴진시킨 다음 무슨 대안을 갖고 있느냐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슬로건으로 퇴진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그 정도로 파병이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게 왜 논란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예컨대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의회주의 정당이거든요. 의회주의 정당 내에서 그런다면 그건 무책임한 말이 되니까요. 그들은 합리적인 시스템 내에서 게임의 규칙을 따라야 되거든요. 의회주의 규칙에. 그런데 시민단체라든지 밖에서는 내세우려면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잖아요. 그걸 갖고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네요.
김규항 : 아까 조희연 씨 이야기와도 연결되는데. 미국에 초점을 맞추자는 말의 정확한 뜻은 노무현정권을 옹호하자는 거예요. 국민행동의 주장도 그렇게 가는 것이죠.
진중권 : 시민 핑계 대지 말라고 그래요. 자기들의 의식의 한계를 시민들의 의식의 한계로 말하지 말란 말이에요. 왜? 국민들의 60%가 반대하고 있어요. 6:4로 파병에 반대하고 있는데 자기들의 정치적 견해로 시민 전체의 의사를 보지 말라는 거죠.
김규항 : 그런 맥락이 자발적으로 모인 대중들의 의사를 보편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현장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요. 탄핵 반대 때는 분위기가 일원화되는 게 있었어요. 그 때는 전쟁반대 깃발이나 피켓이 끌어내려진다거나 해도 손을 쓸 수가 없었어요. 순수한 민주수호의 의지를 악용하지 말라 그런 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옆에서 따로 집회도 하고 너희가 왜 우리 의사를 왜곡하느냐 이런 식의 국민행동에 대한 비판도 많이 올라와요.
진중권 : 핵심적인 건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김선일 씨가 살아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보세요. 미국이 외교력이 부족합니까, 정보력이 부족합니까? 닉 버그 씨도, 다른 사람도 참수되었잖아요. 외교력과 정보력의 문제가 아니에요. 뭐냐면 파병을 했기 때문에 당하는 문제거든요. 이제 곧 국정조사로 갈텐데 자기들은 그냥 외무부만 날리면 되거든요. 그리고 한나라당 놈들은 자기네가 파병을 주장해서 김선일 씨를 죽인 공범인데, 쉽게 말하면 주범과 공범에 의한 국정조사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한 거예요.
김규항 : 설사 외교나 정책상의 기술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더라도 24시간이라는 시한이 주어졌을 때 굳이 그런 공격적인 파병 의사를 밝힌 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 무슨 전화를 받았니 안 받았니, 누가 있었다느니 없었다느니 그런 건 우스운 이야기지요.
진중권 : 그렇죠. 외무부에서 미리 알았으면 어쩔 거냐는 거죠. 그러면 파병 안 할 거냐 라는 겁니다.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게 이런 거예요. 파병론자들이 얘기하는 필연성이라는 게 여태까지 아무런 논리가 없어요. 예컨대 말은 안 하지만 파병을 안 하면 부시가 열 받는다는 거예요. 부시가 열받아 북한에 폭격을 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러면 김정일이 열 받아서 남한에 핵을 떨어뜨리게 된다는 거예요. 만화같은 시나리오거든요. 그런 식의 시나리오를 은근히 흘리는 거죠, 사실 주장은 못 해요. 워낙 황당하니까. 이라크에서 미국이 수렁에 빠져있는데 북한하고 무슨 전쟁을 할 수 있겠어요. 또 다른 전쟁은 말도 안 되요. 생각을 해 보세요. 미국의 동북아 안보전략이 대한민국에서 3천명 보내느냐 안 보내느냐에 따라 확 달라진다는 게 말이 되요?
유영주 : 그런 논리가 실재 대중들에게는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게 문제일 텐데요.
진중권 : 공포심리죠. 반공 논리 있잖아요. 이게 북괴가 내려온다의 새로운 버전이에요. 국민들에게 막연한 공포감 조성해놓고, 그런데 막상 까 보라고 하면 못 하잖아요? 우리가 파병 안 하면 미국이 정말 뭘 어쩔 건데, 한 번 생각해보자고요.
김규항 : 미군 철수 문제도 우리가 약간씩은 이견이 있지만 대중적인 이해 자체가 상당히 낮은 편이에요. 실재 정보 전달이 정확하게 된다거나 리영희 선생 같은 분의 이야기가 좀 더 편하게 전달되고 한다면, 대중들의 미군 철수 지지율이 높아질 수 있을 텐데, 지지율이 낮은 것은 합리적인 이유보다는 그런 공포에 기반하는 거죠. 그런 게 여전히 야비하게 작동되고 있죠.
진중권 : 한국이 파병을 안 하게 되면 미국과의 경제도 단절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미국의 국가 시스템이 옛날 그런 시스템도 아니거든요. 지금은 경제와 정치가 따로 놀아요. 터키가 파병 거부했는데 거기랑 단절합디까? 중남미 국가들 파병 거부했다고 고립되었습니까? 그 나라들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 굉장히 높잖아요. 유럽은 미국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어요? 중남미 국가들은 우리보다 강대국이라서 파병을 거부했냐 말이에요. 말이 안 돼요. 파병은 한국과 미국의 외교 문제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한국 내부의 문제죠. 친미파라는 놈들, 그런 놈들에게 쉽게 투항한, 또는 그런 놈들을 은근히 이용해먹는 노무현정권이 문제라는 겁니다.
유영주 : 일반 시민들은 소위 386, 운동권 세력들이 돌아서게 된 배경을 궁금해합니다. 전대협을 했던 사람들이고, 늘 반미를 이야기하던 사람들인데... 친미파는 워낙에 그렇다고 치고요, 이른바 386 개혁세력들이 그렇게 급속하게 바뀌게 되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진중권 : 총선 전에는 소수여당이었죠. 총선 전에는 개혁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나라당 보다 낫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잖아요? 그리고 그들이 소수정당일 때는 열린우리당이 파병에 전부 반대해도 파병은 된단 말이죠. 총선 끝나고 이젠 다수당이에요. 문제는 자기들이 결의하면 파병이 되요. 상황이 바뀌니까 태도가 바뀐 것이죠.
유영주 : 최근 임종석 대변인의 발언이나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도 그런 맥락일 텐데, 특히 신기남 의원이 발표한 글을 보면 개혁세력을 지지하던 사람들도 대부분 황당하게 받아들이거든요.
진중권 : 황당하죠. 특히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게 테러리스트가 내건 요구 자체가 문제냐는 거예요. 요구 자체는 정당하거든요. 외국군 철수잖아요. 그걸 요구하는 방식이 문제이긴 해요. 그런데 보세요. 예컨대 터키에서는 풀려났거든요. 왜냐하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어요. 사람을 살렸단 말이죠. 미국에 군납 안 하겠다고 한 거잖아요.
김규항 : 처음 참수 당한 미국사람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당한 사람들은 일관성이 있어요. 미국의 군수업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아주 유감스럽지만 김선일 씨가 일하던 회사도 그 쪽의 일을 하기 때문에 저항세력의 입장에서 이 사람을 순수한 한국의 민간인으로 볼 수 없는 거죠.
진중권 : 한국이 추가 파병만 안 한다고 했어도 그 선에서 해결되었을 겁니다. 일본도, 터키도, 이태리도 그렇고, 돈을 주고 빼냈거든요. 터키는 아예 군납 업체를 포기한다고 했거든요, 아마 김천호 사장 문제일 수도 있어요. 사업을 포기하고 떠나라 했는데 못 한다 그러고 협상하는 중에 추가 파병 결정이 나버리니까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항세력들의 요구 수준도 바뀐 거죠. 이제 한국군 오지 말라는 겁니다. 신기남 같은 경우 옛날에 뭐라고 했냐하면 한국의 외교라인과 안보라인은 친미세력의 문제다, 솎아내야 한다고 했거든요? 문제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거죠. 지금은 슬쩍 입장을 바꾼 거죠. 한국과 미국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문제라는 겁니다.
김규항 : 유시민 씨가 전에 그랬어요. 노무현이 처음에 파병하겠다니까 원래 대통령은 그렇게 하는 거고, 국민들은 반대하는 거다.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반대할 수 있도록 힘을 몰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후 유시민 씨의 전쟁에 대한 입장 변화를 보면 참 질이 안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유주의자라는 사람이 진보정당 찍으면 사표라는 소리나 하질 않나...
진중권 : 자기들도 먹고살아야겠죠. 이미 정치가가 되었다면 끝난 겁니다. 유시민도 옛날에는 좌파였다가, 방법적 자유주의라고 하다가, 지금은 자유주의도 아닌 허접이 되어버린 거죠. 왜냐하면 당 안에 들어가게 되면 자기가 먹고사는 문제가 생기는 거고 그 안에 들어가는 자체가 잘못이에요.
김규항 : 민주화 운동 출신이라고 우리가 말하잖아요? 민주화 운동이란 게 우리나라에선 시민이라는 말과 함께 굉장히 두루뭉실하게 쓰이는데, 민주화 운동에는 두 가지 스펙트럼이 있었죠. 70년대엔 김대중, 윤보선, 김영삼 이런 사람들이 하는 절차적 민주화 운동이 있었고, 80년대 초중반 이후에는 근본적인 민주화 운동이 있었죠. 80년대 후반에 들어서 실제로 민주화운동 성원들 대부분은 급진주의자들이었어요. 그런데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군사파시즘이 물러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서 그런 사람들의 상당한 부분이 현실적 선택을 하게 되죠. 그것이 제도 사회 주류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고, 지금 정치 쪽만 부각되고 있는데 사실은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벤처, 영화, 연예 사업 등을 보면 운동권 출신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람들의 변신, 그 행로는 아주 비슷하고 일관되죠. 그들은 변화된 세상의 개혁 진보세력을 자처합니다. 예술계도 마찬가지고, 기업계도, 정치계도 마찬가진데 이전의 정치인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차이라기보다 아주 모호한 윤리나 도덕의 차이, 비리에 연루되지 않았다거나 구 정치의 파벌에 휩싸이지 않았다거나 그런 것인데, 그런 차이들도 급격하게 없어지고 있습니다.
유영주 : 개혁세력과 정치적으로 단절하고, 그 이데올로기나 영향으로부터 대중들을 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확대해서 봐도 될까요?
김규항 : 이젠 개혁세력이 숨길래야 숨길 수도 없어요. 정체가 드러나는 거죠. 탄핵 때만 해도 수구우파와 개혁우파의 차이가 뭐냐는 말이 잘 안 먹힌 게 민주세력과 독재 세력이니 정서적으로는 굉장한 차이가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건 다 과거의 일일 뿐이죠. 엄밀히 따져보면 민주화 운동 출신이냐, 독재 출신이냐 이외에 경제, 정치, 외교, 노동정책 모든 부분을 다 봐도 수구 우파와 개혁 우파의 실제적인 차이를 발견하기는 어렵습니다.
진중권 : 유시민이 그랬잖아요. 몇 달 전만 해도 파병 반대를 외쳐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했는데 이제는 파병 찬성해서 노무현에게 힘을 몰아주자 그래요. 힘을 몰아주자는 방식이 바뀐 건데, 자기모순에 빠지는 거죠. 아무리 사람들이 광기나 열정적으로 정당을 지지한다 해도 논리적 모순을 담고 살기는 힘들거든요.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그러고, 왜 안 하냐고 따지니 전문가들이 튀어나와 안 되는 근거를 대더라고요. 그럴 거면 아예 총선 전에 약속이나 말던지... 이런 게 대중들에게 폭로가 되고 있는 거죠. 보통 사람들이 논리적 모순을 따지면서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워낙 중요한 사안에서 모순이 딱 드러나니까, 자기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서는 유지가 안 되는 거예요. 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에서 내걸 수 있는 개혁적 정치인의 최고 상태가 노무현이었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대중들에게 더 안 먹힌다는 겁니다.
진중권 : 나는 굉장히 거슬렸던 게 노무현을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나와서 감사하다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니까 나와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건 당과 당 차원에서 도와주러 온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시민의 문제이고 시민 모두의 생명이 걸린 문제거든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마치 노무현을 지지하는 게 대단한 고려 변수가 되는 양 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김규항 : 그것이 현재 광장의 형편이에요.
유영주 : 제가 보기에 그날 집회에서 최민희 씨 발언에 대중들의 반향이 가장 컸던 게 사실입니다. 내용적으로도 그렇고, 선동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이 점을 잘 봐야 하는데, 아까 균열이라 표현하기도 했고, 정신분열이라고도 했는데, 바로 지금 대중들의 상태가 이 정점에 와 있다는 거거든요. 노사모 참가자에게 감사하다는 발언이나 사회자가 "노무현 대통령님 파병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외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동요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김선일 씨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상태가 이 지점을 경과하고 있지 않나 싶거든요.
진중권 : 이제 목소리를 내야 돼요. 그 사람들이 어떤 견해를 갖는 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낯선 것은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사람들이 안 받아들이거든요. 이제 우리 목소리를 내야 되고, 그 다음에 왜 문제인지 계속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거죠. 지금 이런 상황에서 또 그렇게 나가면 저 사람들 선거 때 또 그렇게 된다는 이야깁니다.
김규항 : 개혁 비판의 목소리가 반향이 적은 시점이 있고, 큰 시점이 있는데, 균열이라고 표현하는 건 때가 무르익었다는 겁니다.
진중권 : 그 때가 언젠가는 와요. 본질 자체가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수밖에 없어요.
김규항 : 이 지점에서 좌파가 대중적인 차원에서의 정치적인 소통을 본격화해야 하는데, 좌파가 20여 년 이상 대중들에게서 오랫동안 고립, 배제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다보니 대중과의 소통 감각도 없어져서 성명서를 한 장 써도 안 읽히게 쓰고 그러죠. 그래서 좌파의 본령에 속해있지 않은 좌파들의 개인적인 활동이 부각되는 측면이 있었어요. 이젠 그것만으로는 안 되고 다들 대대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유영주 : 이 균열의 흐름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는 방법적인 부분을 좀 이야기 해보죠.
진중권 : 일단 매체에서 밀리니깐... 정치적이라는 것이 옛날처럼 총칼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설득력을 통한 지배인데 일단 우리는 매체가 없잖아요? 좌파 매체가 하나 있어야 돼요. 옛날처럼 오거니제이션 하던 시대는 지났거든요. 네크워크인데,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노사모가 먼저 보여줬죠. 지금 언론이 굴러가는 걸 보면 조중동이 있고, 그 반대편에 오마이뉴스와 한겨레가 있어요. 거기에 방송이 끼어 있어요. 이렇게 되면 아젠다는 항상 이들 사이에서 나오게 된다는 거죠. 치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요. 그렇다고 했을 때 사회적 아젠다를 제기할 좌파 매체가 꼭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 싸움들이란 게 사람들이 식상해하고 있어요. 다르지 않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노무현이 한 걸 보면서 한나라당이 했을 법한 일은 다 했거든요. 그 다음에 다시 노무현이 중요한 결정을 하면 다 조중동이 키워줘요. 그래서 조갑제가 대통령에게 "밥 먹으러 오세요, 밥 사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어차피 노무현이 이야기한 중요한 결정은 조중동이 다 편들어줬다는 거예요. 이제 남은 것은 의석 수 싸움밖에 없어요.
김규항 : 제가 노빠에 대해 경멸적인 표현을 한 적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개혁적, 도덕적으로 보이는 정치인에 대해 감성적으로 몰입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워낙 반세기 동안 야만적이고 더러운 정치에 당해 놔서 그렇지요. 그러다보니 정치의식이라는 게 자신의 계급적인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이념적으로 나뉘어져야 하는데 도덕이나 윤리 같은 모호한 기준으로 나뉘어집니다. 그 틈을 개혁이 파고들어 승승장구해왔는데 그게 균열이 나고 있는 것이죠. 김선일 씨 사건이 대중적인 계기가 되고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가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수구세력과 개혁세력의 갈등이라는 레퍼토리가 식상해진 데다,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에 의한 서민 대중들의 삶의 변화는 도저히 속일래야 속일 수 없는 것입니다.
진중권 : 사람들이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게, 대통령은 선출할 수 있지만 권력은 절대 선출할 수 없어요. 대통령 노무현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니라 시스템이고, 외교 안보라인들이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한 노무현이 됐든 이회창이 됐든 변할 수가 없는 거거든요. 대통령 열심히 뽑고 자기들은 뭔가 개혁했다고 믿을지 몰라도 요번에도 돈을 주는 구조가 똑같잖아요. 그놈들이 돈을 주거든요. 한나라당에도 주고, 열린우리당에도 주고. 돈 나오는 구조가 똑같고, 정책도 똑같아요. 어차피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란 말입니다. 예컨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하면 평당 3백만 원이 다운돼요. 30평이면 1억이에요. 20평이면 6천만 원인데 그걸 서민이 내느냐, 저들이 내느냐, 여기서 누구 편을 들 것이냐는 문제죠. 가진 자들의 편을 들어줬거든요. 가진 자들이 로비를 하고 인력을 충원하고, 이들을 위해 굴러가는 체제가 계속되는 거예요.
유영주 :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랄까, 그런 수준의 고민도 있어야 할텐데요.
진중권 : 맞아요. 우리가 지금 좌파든 진보든 간에 국방과 외교가 없어요. 외교와 안보 쪽에 전문적인 식견과 안목을 가진 사람들 키워내야 되요. 이걸 어떻게 할 노하우가 없으니까 저들이 거저 먹는 거죠. 노무현정권의 한계가 그거예요. 엔엘 애들 썼거든요. 그런데 맨날 반미만 이야기했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는 거예요. 이러니까 미국놈들이 거저먹고 그랬죠. 민주노동당은 장학금을 주고 유학을 시켜서라도 인력을 키워야 돼요. 인력이 있어야 배치도 하고 감시도 하고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경제도 실물경제를 읽어야 해요.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게 좋다는 이야기 백날 하면 뭐해요. 무지는 아무 도움이 안 되거든요.
김규항 : 중권 씨 이야기에 동의하지만, 돌아보면 진보 세력에게 지난 10년 간의 형편이란 게 개혁 세력에 몰려서 굉장히 수세적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족한 준비가 나오는 건 당연한 것이죠. 문제는 이제부터인데 개혁세력이 말하는 개혁들의 실제적인 결여부분들을 파고드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가령 정치개혁 언론개혁이 갖는 대중적인 파장력은 커요. 그런데 그 기준이 뭐냐면 정치개혁의 경우 주로 도덕이나 개인 윤리 문제로 국한하고. 낙천낙선운동은 해도 국보법에 대한 입장 이런 게 아니라, 입건된 적 있느냐, 돈 받은 적 있느냐 이런 거거든요. 무슨 학교 도덕선생 뽑는 것도 아니고 계속 그런 식으로 몰고 가요. 언론개혁도 조중동에 국한함으로써 그 외에 오마이뉴스나 한겨레가 갖는 반동성 같은 것은 아주 도외시되는 이런 부분도 이제는 면밀하게 부각시켜가야 합니다.
진중권 :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건 사실이에요. 논객들 보세요. 저쪽 논객들 강준만 유시민 저 꼴 됐지, 노혜경, 김정란 저 꼴 됐지, 조희연이라는 사람도 얼굴 들고 다니겠습니까. 웬만한 논객들 역사적으로 할 말 다했다는 겁니다. 이제는 새로운 발언이 역사를 더 진전시켜야 해요.
김규항 : 근래 시민운동 쪽에서 급진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물론 그 중엔 사회변화에 조응하려는 것도 있지만 그 보다는 시민운동이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더 이상 선도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한계가 있는 거죠. 시민운동의 기여를 무작정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중권 씨나 나나 강준만 5중대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그 긍정적인 부분에 진지하게 대응했었죠. 그러나 한국에서 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주요한 사회적 역할이 진보운동을 체제내화하고 진보세력을 고립 배제하는 것이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정체성의 한계가 왔다는 건 이젠 좌파적인 차원이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게 없게 된 상황이라는 거죠. 문제는 좌파의 준비가 부족하다는 건데 다들 힘을 모아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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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진중권님이 경향신문의 언바세바(언론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에 쓴 칼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그리고 사사건건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맘껏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는 '조중동문'을 비꼬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꽃은 추천, 돌은 반대) 더 많은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이라는 특성을 생각하면 당연히 조중동을 씹는 이 글에 대해 추천수가 많아야 하지만, 진중권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열린우리당 지지자들 내지 노빠들에게 있는 건 아닌지 싶다.
보수언론도 안보를 생각하자 : 336 : 680 (경향, 진중권의 좌향좌, 진중권 / 문화비평가, 2004년 09월 13일 17:23:08)
주민등록증 없으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그거 없이 도둑을 어떻게 잡고, 간첩은 또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주민증 없이도 잘만 산다. 우리나라에도 1968년까지는 주민증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주민등록증을 없애자고 하면, 다들 좀 불안할 것이다. 국가보안법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거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사나, 대한민국만은 그거 없으면 나라가 무너진다고 불안해한다.
북한의 강제수용소, 중국의 공개 총살형, 사우디의 공개 참수형은 우리 눈에 야만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마다 그 야만이 존속되어야 할 “특수사정”이 있을 게다. 우리의 국보법도 한반도 밖에서는 야만으로 보일 것이다. 인권단체와 유엔인권위는 말할 것도 없고, 오죽하면 전(前)미국대사까지도 이 법을 폐지하라고 권했겠는가? 하지만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국보법도 존재해야 할 나름의 특수사정을 갖고 있다. 소위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상황”이 그것이다.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은 남보다 더 적은 권리를 누려야 한다. 어차피 빨갱이가 쳐들어오면 모든 것을 다 잃을 터, 그 전에 권리를 ‘조금’ 양보하는 게 낫지 않은가. ‘안보’를 위해 대한민국 국민은 남보다 덜 보호받아야 한다. 간첩을 잡는 국익에 비하면, 간첩으로 오인되어 당하는 몇 사람의 고초야 사소하지 않은가. 게다가 자유가 좀 제약되고, 권리가 좀 침해되어도, 빨갱이들 밑에서 북한주민들처럼 사는 것보다야 백 번 낫지 않은가.
언론, 특히 대한민국의 보수언론은 어떤가? 그들 역시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고려하여 마땅히 동료 시민들만큼 그 자유와 권리가 제약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놈의 나라 보수언론은 배가 불러 터졌다. 남들 다 자유 반납하고 사는데 혼자서 무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 땅이 어느 땅인가? 이북에는 대남적화를 명시한 노동당 규약이 있고, 이남에는 조선노동당이 지도하는 통일전선이 있다. 이런 위험한 땅에서 혼자서 초호화판 방종을 누리고 있다.
아무리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었어도, 북의 언론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로동신문은 미군축출과 적화통일을 주장하고 있잖은가. 이렇게 저들은 등 뒤에 발톱을 숨기고 있는데, 이 나라 보수언론은 기합이 빠졌다. 주적 앞에서 일치단결하기는커녕, 기껏 하는 일이 툭하면 제 나라 정부나 헐뜯고, 뻑하면 제 나라 국군 통수권자나 흔드는 것이다. 밥 먹고 하는 일이 오로지 하나, 주야장창 대통령 씹어대는 일뿐이다. 전생에 무슨 웬수가 그리도 처절하게 졌는지….
한심하다. 이 시간에도 북은 지도부 이하 전 인민이 똘똘 뭉쳐 대남적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시간에도 이 나라의 보수언론은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한 마디로 방종의 자유로써 이적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 어디 불안해서 살겠는가. 언론자유, 좋지. 하지만 이번 대법원에서 판결했듯이 우리의 특수한 안보상황에서 그 자유를 무한히 허용할 수는 없는 일. 국가의 단합을 해치는 주둥이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안보를 위해 약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도 합헌이라는 헌재의 판결도 있지 않은가.
이 나라의 보수언론도 이제 무책임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안보를 생각해야 한다. ‘언론자유’ 같은 추상적인 서구의 관념을 추종하기보다는 ‘이적단체’와 맞서고 있는 한반도의 구체적인 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안보’를 위해 남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자고 주장해 온 분들이 아닌가. 그럼 ‘안보’를 위해 자신들부터 솔선해서 제 자유와 권리를 반납해야 하지 않을까? 이 땅의 특수한 안보상황을 고려할 때 대략 3공이나 5공 시절에 누렸던 정도의 자유와 권리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도 북조선 로동신문보다야 백번 나을 게다.
‘안보’를 위해 정부와 국회의 시민사회는 ‘언론자유 연동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북한의 언론은 수령 이하 온 인민을 똘똘 뭉치게 하고 있다. 그렇게는 못할망정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대립시켜서야 되겠는가. 이러다가 적화라도 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당신이 질 거야?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된다. 북한의 언론이 남침야욕을 버리지 않았는데, 남한 언론만 일방적으로 무장을 해제할 수는 없는 일. 언론자유를 허용하는 것도 철저히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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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13 04:55
진중권 님이 씨네21에 쓴 글이라고 한다. 제목이 확실하진 않으며, 씨네21에 언제 실린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다만 진중권 님이 쓴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 풍자와 해학의 정도를 생각하여 낄낄낄 카테고리에 집어넣는다.
진보누리에서 퍼왔다.
어떤 386
“국보법은 국보(國寶)다.” 과연 대한민국이다. 이 세상에 인권을 침해하는 나라는 많아도, 그 짓을 “국보” 삼아 하는 나라도 있던가? 그 점에서 나의 조국은 독보적이다. 국제사회에서 폐지를 권하는 악법. 그 야만적 습속이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영원무궁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된다. 오늘 버스 타고 남대문 옆을 지나다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국보(國保) 1호는 숭례문. 그럼 동대문은 긴조(緊措) 1호?
국보법 논란 덕에 요즘 느닷없이 학생운동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 대학가 반정부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경로대학 총학생회. 얼마 전 비상시국선언을 하더니 앞으로 거리에 나와 직접 민중과 결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도부가 쟁쟁하다. 80년 5월의 총리 신현확, 언론통폐합의 허문도, 땡전뉴스의 김원홍. 5공의 용사들이 80년 5월 전두환 장군처럼 구국의 일념으로 떨쳐 일어선 것이다. 쿠데타 선동 발언으로 유명한 이화학당 김용서 학동이 거기에 빠질 수없다.
내전을 방불케 하는 상황. 대중의 자생적 투쟁에 의식성을 부여하기 위해 월간조선 조갑제 사장이 연일 “전략과 전술, 그리고 지침”을 담은 팸플릿을 내보내고 있다. 남을 설득하려면 “스스로 이념무장, 사실무장이 되어 있어야”한다. 그러려면 “월간조선 같은 매체와 좋은 책으로써 공부해야 한다.” 아울러 거기에는 “행동이 따라야” 한다. 국민여론을 잡기 위해 “강연, 대화, 토론, 책 읽기, 밥 사주기, 공부하기, 대중 집회, 공연의 문예활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한 마디로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는 얘기. 이렇게 80년대 학생운동권에서 하던 것을 요즘은 우익들이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 팸플릿의 마지막에 재미있는 구절이 나온다. “합법적 저항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 합법적 저항의 길이 봉쇄된다면 (...) 마지막 수단으로 저항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조갑제가 동지가 주창하는 게 무엇인가. 그 유명한 레닌주의 원칙, 즉 합법과 비합법의 배합의 원칙이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을까?
학생 시절 옥살이까지 했던 조선일보 류근일씨. 40년 만에 운동의 전선으로 복귀했다. “좌파 통일전선"을 흉내 내어 거기에 맞설 힘 있는 “범 자유민주 대안진영”을 창출하잔다. 안 하는 게 없다. 꼴에 반정부 운동이라고 할 짓은 다 한다. 심지어 국보법으로 탄압도 받는다. 월간조선 조갑제 학동, 인터넷 대자보에 글 올려 노골적으로 내란과 쿠데타를 부추기다가 결국 국가보안법 제7조 l항 국가변란을 선동한 죄로 고발당했다. 코미디를 해라, 코미디를....
이것이 우익 386들, 즉 3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권력을 누리고 늙어서 60갑자(육갑)를 떠는 사람들이 요즘 하는 짓이다. 이 우익 장수무대에 이회창 옹(瓮)이 우정 출연했다. 국보법을 수호하는 성스런 싸움에 야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안보는 묵묵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 그 젊은이들의 리스트에 이회창 옹의 두 아들만은 얌체같이 빠져 있다. 그렇게 걱정돼? 그럼 두 아들, 군대나 보낼 일이지.
저들의 운동권 흉내는 저들이 지배세력에서 저항세력으로 누추해졌음을 의미한다. 그 제스처의 격렬함은 그들이 처한 상황의 다급함을 보여줄 뿐이다. 저들의 “내전” 놀이는 피식 웃어넘기자. 국보법 논란은 그것을 깨끗이 폐지하는 순간 저절로 끝나게 되어 있다.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은 불필요한 논란만 가중시킬 뿐. 안보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덜려면, 실제로 안보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공격적으로 제시해 나가라. 가령 안보에 관심이 남다른 층을 상대로 ‘국방헌금’을 신설한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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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언바세바에 실린 진중권님의 글(진중권의 좌향좌)이다. 노빠들이 좋아할 만한 글이다. 하지만 나도 의미있는 글이라고 본다. 언바세바에 올라오는 글은 모두 이 글처럼 추천하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걸보면 확실이 언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봐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런 것에 기대를 거는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이 조금은 불쌍하다.
‘정치목사’와 반공주의의 황혼 (: 640 : 1081) (진중권 /문화평론가, 2004년 10월 05일 14:36:08)
이명박 장로님이 돈 들여 만든 시청 앞 광장은 아예 우익들의 집회장이 되었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그 곳에서는 종종 내 미감을 거스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듣자 하니 또 다시 몇몇 얼을 결여한 목사님과 그분들이 인도하는 신도들이 그곳에서 우익 부흥회를 열었다고 한다.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려는 이 분들의 독특한 방식은 직사광선 받은 멸치젓으로 느껴진다. 굳이 저렇게 혐오스러워야 하나?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목사 집안에 태어나 교회를 수십 년 간 드나들었지만, 저렇게 정치적으로 광신적인 분들은 보지를 못 했다. 저런 분들 모여 있는 교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시청 앞에서 그리스도는 모욕당했다. 생각을 해 보라.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리스도가 저들처럼 시퍼런 군복 입고 다니며 북한에 저주를 퍼붓고 인공기나 태우려 드실까? 저들처럼 성조기나 흔들며 부시야말로 구세주라고 신앙고백이나 하고 계실까? 국보법 사수하여 그걸로 동료시민들이나 괴롭히라고 선동하고 계실까? 혹은 말썽 많은 사학재단 두둔하면서 입에 거품 물고 사립학교법 개정에 반대나 하고 계실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 옆에서 조갑제씨와 함께 “애국의 교과서”, 월간조선이나 팔고 계실까?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 대표에게 경사가 났다. 왜? 그리스도는 한나라당원이신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만약 몇몇 정치 목사들이 하는 짓이 정말로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한나라당 당원이다. 그리스도는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이요, 한나라당의 당원 중에 상당히 꼴통스러운 부류에 속하실 게다.
그리스도가 한나라당원이라면, ‘다빈치 코드’보다 더 선정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예수님 수준이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일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조용기 목사가 조갑제요, 정형근이요, 김용갑일 가능성은 농후하다.
조선일보는 일부 반공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에 꽤나 고무된 모양이다. 이들의 역할에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사실 우익의 시위문화는 예로부터 돈 받고 동원되는 관제시위였다. 자발적 시위를 하려고 해도 동원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우익 기독교인들이 나서주었으니 얼마나 고맙겠는가.
한국 기독교가 120여 년의 역사 끝에 고작 우익 집회장에 인원이나 대주는 우익정치조직으로 전락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얼빠진 목사들도 문제지만, 그런 목사님을 괴상한 집회장까지 따라 나가는 신도들의 맹신도 문제다. 기독교가 무슨 교주 따라 다니는 영생교도 아니고….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피식 웃었다. 다른 데서는 10만이라던데 혼자서 30만이란다. 시위참가 인원이 30만이라는 문장은 분명히 직설법 문장이 아니라, 아마도 원망법 문장이리라. 그 소망의 절실함이 내게 절절히 전달되는 듯하다. 그래, 애국시민의 물결이여, 10만이 되고, 30만이 되고, 300만이 되고, 마침내 3000만이 되어, 국보법 폐지를 저지하고 나아가 저 간악한 좌익 정권을 타도하라. 그 심정, 내가 왜 이해 못 하겠는가?
80년대에 나도 전두환 정권에 대항하는 시민의 물결이여, 10만이 되고, 30만이 되고, 300만이 되고, 마침내 3000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 경험이 있다. 그 절절함, 나도 이해한다.
그런데 10만이면 어떻고, 30만이면 어떤가? 어차피 갈 물인 것을. 다른 기사를 보니 집회에 참가한 이들의 평균 연령이 50~60대라고 한다. 이들의 생물학적 나이는 동시에 반공주의의 사회학적 나이다. 저들이 죽으면 이제 반공 데모는 누가 할까나? 촛불도 꺼지기 전에 크게 한번 타오르는 법. 우리가 보는 것은 저물어 가는 한 시대의 요란한 황혼이다. 아, 주부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 애국 주부들의 정체도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간다. 이 사회에서 저런 데에 주부를 동원해 낼 권력을 가진 것은 단 하나, 목사님들뿐이다.
시청 앞의 광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오랫동안 행패를 부려온 극우 반공주의 패러다임이 정말로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기득권을 누리다 잠시 변방으로 밀려난 세력이 제 스스로 중심에 복귀할 가능성이 없음을 (꽤 요란한 방식으로 아프게)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한국 기독교의 일부 세력은 그 동안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속의 권력자들과 같은 길을 걸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건대, 정말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에는 미래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정말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들의 희망을, 이런 사람들에게 걸고 있는 걸까? 참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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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님이 시원한 글을 써주셨습니다. 경향신문 언바세바(언론을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에 실린 진중권님의 글입니다. 인터넷 경향신문의 언바세바에는 [진중권의 좌향좌]라는 고정칼럼이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쓰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더라구요. 글쓰기는 확실히 능력입니다. 미국만 미쳐 돌아가는 줄 알았는데, 공무원노조에 대한 정부-자본-언론의 공세를 보면 대한민국 또한 그에 못지않게 미쳐 돌아가는 듯 합니다. 이성이 있는 곳은 보이지가 않아요.
대한민국, 정신병동인가? (경향신문, 진중권 / 문화비평가, 2004년 11월 16일 11:54:28)
1. 언론의 사디즘
“경제도 어려운데 공무원까지 파업을?” 본색이야 늘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상부구조에서는 제법 개혁적인 척 하는 열린우리당도 하부구조가 문제가 되면 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인다. 정부는 탄압하고, 한나라당은 공조하고, 조중동은 응원하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이럴 때는 그 드높던 안티조선의 목소리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지금 공무원 노조를 향해 퍼부어대는 저 황당한 언론의 왜곡보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다.
<전공노는 싸늘한 국민 눈길도 못 느끼나?> (조선일보)
<전공노 지도부에 법의 엄정 보여줘야> (중앙일보)
<전공노 끝내 파업인가?> (동아일보)
<파업 공무원 엄단의지 귀추를 지켜본다> (문화일보)
<희생자 양산하며 혁명할 건가?> (국민일보)
<파업 전원 파면 약속 지켜야> (매일경제)
<법질서 확립할 마지막 기회다> (한국경제)
가관이다. 이 정도면 광란이다. 30년대 나치 집권하던 시절 독일의 언론상황을 연상시킨다. 한 마디로 언론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와 공무원의 이해가 서로 엇갈리는 상황이다. 여기서 약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이해의 충돌에 관한 한 언론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저 사설들의 제목을 보라. 강자의 편을 드는 것을 넘어서, 아예 공무원 노조에 합법적 폭력을 가하라고 대국민 선동을 하고 있다.
파업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하면 그만이다. 자기들이 나서서 설치지 않아도 대통령 각하, 국무총리 각하, 장관 각하께서 단도리 하겠다고 벼르시는 중이다. 이거, 말리기는커녕 “조져라, 조져라” 응원을 하고 자빠졌다. 저 쓸 데 없는 공격성,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저 공격성은 성적 에너지다. 저거, 성욕의 표현이다. 대한민국 사디스트 언론인들은 저 짓을 하면서, 헉헉, 성적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변태도 저런 변태들은 다시 없을 거다.
이것들이 보자보자 하니까, 아주 개판이다. 지금 뭣들 하는 짓인가? 언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양자의 주장을 공정하게 제시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비판을 하려면 할 일이다. 도대체 공무원 노조에서 주장하는 것 중에서 뭐가 문제인지 차분히 지적하면 될 일이다. 반대를 하려면 할 일이다. 다만 언론에서는 비록 파업에는 반대해도, 민주시민이라면 마땅히 동료 시민들의 권리 표현에 톨레랑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국민들의 열화 같은 규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공권력을 향해서는 그 칼로 저 공무원들의 목을 치라고 성화를 부리는 언론의 태도는 한 마디로 완장 찬 나치 당원의 모습이다.
2. 정권의 정신분열
노무현 대통령은 언젠가 “악법을 깨기 위해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고, 스스로 “그것은 파업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바로 이 “원칙과 소신” 때문에 시민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찍어주었을 것이다. 근데 정작 청와대에서 요즘 들려오는 소리는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우리 대통령 각하, “억지와 떼를 쓰는 노동계와 더 이상 타협은 없다”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단다. 그 노무현과 이 노무현은 같은 인물인가?
1988년에 지금 총리로 계신 이해찬씨는 당시 노무현 의원과 함께 노동3권을 보장하는 노동법을 일반법으로 제정하라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단다. 1988년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워졌다. 그런데 정작 1988년에는 가능했던 것이 지금은 불가능해진 모양이다. 뉴스에서 본 이해찬 총리는 현상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참가자에게는 “징계와 처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 이해찬과 이 이해찬은 같은 사람인가?
행자부 장관은 “전교조처럼 복직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아예 협박을 하고 있다. 양아치도 이런 양아치가 따로 없다. 이렇게 감히 군사정권도 하지 못했던 협박을 하는 게 참여정부의 현실이다. 유시민 의원의 비아냥을 들어 보자.
“누가 공무원 되라고 협박했나? 박봉인 줄 알고도 공무원 된 것 아니냐. 공무원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 정년 보장에 은퇴 후 연금까지 나온다. 여름 6시, 겨울 5시 칼 퇴근이고 봉급은 적어도 다른 혜택이 많다. 그런데 파업까지 하겠다는 것인가?”
이런 저질스런 발언을 하고도 여전히 의원 노릇 할 수 있는 게, 그가 살았던 독일과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차이라는 것을, 독일서 공부하고 온 유의원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참 좋은 나라다. 국민들 살기에는 어쩐지 몰라도, 여당 국회의원 입 놀리기에는.(사실 대한민국에서 고소득을 올리면서, 가장 파업 많이 하는 게 국회의원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불법파업(?) 엄단을 주문하고,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징계와 처벌”의 의지를 다지고, 대한민국 행자부 장관은 “복직할 꿈도 꾸지 말라”고 협박을 가하고 있다. 유시민 정치 활동의 자양분이 된 독일의 사정을 얘기하자면, 얼마 전 독일의 슈뢰더 수상은 파업을 했다가 패배한 어느 노조를 찾아갔다. 거기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비록 당신들은 패배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훌륭하게 싸웠다.” 바로 이것이 독일 팔아먹던 ‘소셜 리버럴’ 유의원이, 그 동네 지지자들에게 꼭꼭 감춰놓고 혼자만 알고 있는 독일의 분위기다.
3. 시민의 마조히즘
언젠가 택시를 탔을 때의 일이다. 라디오에서 어디선가 파업을 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오자, 운전기사가 대뜸 “경제도 어려운데, 무슨 파업이냐”며 육두문자를 섞어 마구 욕설을 퍼부어댔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내가 그 꼴을 보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택시 기사는 파업도 안할 거냐?”고 물었다. 그제야 자기가 한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듯 말을 더듬는다. “아저씨가 파업하면, 저는 그때 옆에서 지금 아저씨가 하던 그 욕설을 퍼부어댈 겁니다. 직장 없어 굶는 사람들도 있는데 배때기가 쳐 불렀지.”
“배때기가 쳐 부른” 사람들은 파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고픈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렇잖아도 대기업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생존하기도 힘든데, 무슨 얼어 죽을 노조며, 무슨 얼어 죽을 파업이냐고 한다. 그러면 배때기가 아예 등짝에 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가? 그들은 아예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조를 만들어도 안되고, 파업을 해서도 안된단다. 그렇다면 도대체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노조를 만들어 파업을 해도 되는 노동자의 예를 한번 들어 보라.
문제는 노동자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다. 이것은 언론에 의해 부추겨진 측면도 있지만, 시민들 자신의 의식에도 책임이 있다. 소위 ‘시민’은 정치경제학적 계급이 다른가? 어차피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력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 아닌가? 저들의 운명이 언제라도 자신의 운명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대’를 표시하기는커녕 외려 감정 섞인 공격을 퍼붓는다. 남들의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격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공격이다. 한마디로 민중의 자학증상이다. “연대하라!” 그게 싫으면 톨레랑스를 가지고 최소한 중립을 지키라.
뱀발)
솔직히, 점점 낮아지는 기사의 질을 볼 때, 큰 신문사에서 굳이 비싼 돈 줘가며 기자들 고용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큰 신문사, 경제도 어려운데 이 참에 경영혁명이 필요하다. 솔직히 기자들 봉급으로 지급되는 돈의 5분의 1만 가지고도, 독자에게 훨씬 질 좋은 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반적 방법 있지 않은가. 지금 한국경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국민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노하우. 그것을 신문사에도 도입하는 거다. 즉, 기자들도 전원 비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인터넷에 널린 게 기자이고, 널린 게 칼럼니스트다. 박봉만 줘도 기꺼이 휴가 반납하고 초과 노동할 준비가 된 숨은 인재들이 도처에 쌔고 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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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2 17:36
씨네21 (2004-12-29) 에 진중권 님이 쓴 글이라고 하는데, 찾아봤더니 없다. 출처가 맞는지 모르겠다.
국가보안법 연내폐지를 가지고 공방하는 동안 이라크 파병연장안을 비롯한 온갖 악법들이 2004녕을 한시간 앞두고 국회를 통과하였다. 특히 공무원노조법의 경우 이를 폐지시키고 제대로 된 법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공무원노조에 대해서 정부가 도를 넘어선 탄압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수족이 떨어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문제가 있어서 정부가 이를 제기하면 언론에서 이를 받아서 침소봉대한다. 허성관 장관의 패러디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노조에 대해서만 잣대가 다른 것이다. 이를 보고 있으면 도대체 공무원노동자들에게 허용된 것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만 있는 것일까?
행자부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한 후배는 허성관 장관에 대해 높게 평가하던데, 단지 용역팀의 연구결과를 잘 봐줬다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배에게 공무원노조의 문제는 어떻게 다가갔을까?
허성관 장관을 지명수배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 친구 집에서 보던 TV 프로그램 중에 생각나는 게 있다. ‘왈가닥 루시’라는 미국 코미디다. 루시가 형부 회사에 취직을 해서 노조를 만든 모양이다. 회사 앞에서 노조원들이 피케팅을 한다. 물론 루시가 주동이다. “사장님은 노랭이! 사장님은 노랭이!” 이 꼴을 본 형부. 흥분해서 옆에 있는 경찰에게 왜 시위를 안 말리냐고 묻는다. 팔각모의 경찰이 묻는다. “당신이 뭔데?” 형부가 대답한다. “나, 이 회사 사장이요.” 순간 경찰은 손가락으로 그를 찌르며 “아하, 노랭이?”
전국공무원노조에서 허성관 행자부 장관을 지명수배했다. 죄목도 화려하다. 혈세낭비, 국회모독, 직권남용, 지방자치 역행 죄. 전공노 조합원에 대한 비인권적 탄압을 자행하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죄를 지은 분이 대로를 활보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기껏 경찰에서 한다는 짓이, 정작 수배당한 장관을 잡을 생각은 안 하고, 수배 전달을 뿌린 사람들을 잡아가두겠단다. 도대체 경찰 기강이 말이 아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사법의 힘으로 시민에게 부여된 천부의 인권을 부정하는 이 만행을 보고 나도 참을 수가 없어서, 내가 직접 허 장관을 지명수배하기로 했다. 앞에 전공노가 나열한 혐의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겠다.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죄. 이건 가공할 위헌적 사태다. 표현의 자유라는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쓰고 받을 원고료 전액을 현상금으로 걸고, 허성관 장관을 공개 수배하는 바이다.
먼저 효과음 넣고, 두두두두 두두두두. 허성관 57세. 2003년 9월부터 행자부 장관. 타원형 얼굴에 약간 벗겨진 머리. 평소에는 금테 안경 착용. 다시 효과음, 두두두두 두두두두. 다음은 안경을 벗고 양복 대신 추리닝을 입었을 때의 모습입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그리고 다음은 가발로 변장했을 때의 얼굴입니다. 가발은 요즘 50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입니다. 이 분을 목격한 분은 가까운 파출소로 신고해주시거나, 제 이메일로 연락 해주십시오.
내가 보기에 그냥 허장관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수배 전단의 귀퉁이에는 공범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거기에 김대환 노동부 장관, 이광재 의원, 이목희 의원과 함께 외람되게도 노무현 대통령 각하의 존함이 들어 있다. 노태우씨는 “대통령으로서 기꺼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겠노라”고 했지만, 그 제안이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은 아니잖은가. 열린우리당 정권이 이 사회를 많이 열어주었다고 착각한 공무원 노동자들의 중대한 실수가 그만 이런 불상사를 낳고 만 것이다.
보수언론에서 난리가 났다. “공무원이 장관을 지명수배 하는 나라” 운운하며 “공직기강”이 무너졌다고 한탄을 한다. 공무원이 장관을 지명수배해도 되는 나라라면, 얼마나 좋을까? 공무원이 장관을 지명수배 좀 했다고 경찰 불러다가 잡아가둘 생각이나 하니 한심한 것이지. 내가 꼴보수들 싫어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이 꼴통들은 도대체 유머 감각이 없다는 것이다. 장난스런 패러디와 진지한 직설법도 구별을 못하는 썰렁한 분들이니, 이런 분들이랑 같이 앉아 술 먹어야 하는 그 친구들이 불쌍하다.
경찰도 참 한심하다. 행자부야 유머 감각이 없어서 그런다 치고, 경찰마저 그 꼴통스런 짓에 동참할 건 뭔가? 민주 경찰은 일 처리 그렇게 하는 거 아니다. 왈가닥 루시의 그 경찰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유머 감각이 풍부한가. 행자부에서 고발을 했다면, 경찰에 연락을 했다는 얘기. 행자부에서 경찰서로 연락을 했다면, 경찰은 전공노 측에 공문을 보낼 일이다. “장관이 직원시켜 자수할 의사를 밝혀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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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검색엔진에서, 그리고 이주의 검색어를 보면 아직까지 정은임이라는 이름이 앞순위에 나온다. 이번주 시사저널의 문화비평에 진중권님이 그에 대한 글을 썼다.
한참 노무현정권이 노동귀족을 운운할 때 분신했던 귀족노동자가 있었다. 진정 정은임을 추모한다면 그가 했던 멘트, 생각을 돌이켜보고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이제 정말로 라디오의 전설이 되었다.
라디오의 전설이 된 그녀 (시사저널 773호, 진중권(칼럼니스트· 중앙대 겸임교수), 2004/08/10 16:24)
지난 7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한 정은임 아나운서가 8월4일 3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라디오 시대의 마지막 스타’라고 한다. 정말로 사랑받는 사람이었나 보다. 일개(?) 아나운서로서 팬클럽을 가졌다는 것부터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다. 그녀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니, 그들의 사랑에는 철없는 애들의 얼빠진 스타 숭배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진지함 혹은 깊숙함이 있다. 도대체 어떤 여인이었을까?
정씨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1990년대 초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으로 기억한다. 특히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와 함께 진행한 꼭지는 청취자들에게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했고, 그 프로그램을 듣고 자란 ‘영화의 아이들’이 오늘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내는 대중적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정은임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를 갖고 있다. 진보의 이념이 퇴색해 가던 1990년대에,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금지된 운동권 영화를 소개하고, 그 영화의 삽입곡이라며 운동가를 틀어주고, 심지어 빨갱이 노래인 <인터내셔널>을 영화음악이라고 내보냈다. 어떤 이들은 라디오에서 이런 노래를 들은 것을 평생 잊지 못할 감격으로 기억한다. 그들의 눈에는 정은임이 아마도 야무진 투사로, 공중파에 침투한 게릴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매력은 이 중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두 측면이 서로 뗄 수 없이 결합해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어느 신문 기사는 그녀의 프로그램을 ‘공중파라는 한계 속에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듣게 해준 방송’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 방송은 어디까지나 영화의 안쪽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청취자들은 그 안쪽의 콘텍스트를 이루는 영화의 바깥 또한 들을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의식, 이 두 가지가 하나의 인격에서 겹쳐지는 우연을 다시 기대할 수 있을까? 설사 그런 아나운서가 또 나타나도, 이제는 청취자들이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다. 천만 단위로 동원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영화는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팬을 찍어낸다. 실제로 지난해 컴백한
새벽 음악 방송에서 노동자의 죽음 이야기하고…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올 가을에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23일 새벽 정은임은 저들이 ‘노동귀족’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 얘기했다. 그보다 몇 시간 뒤에 배달된 어느 조간 신문의 칼럼에서 나 역시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들이 모두 잠든 그 날 새벽에 한 아나운서가 음악 방송에서 고공 크레인에서 목숨을 끊은 노동자 얘기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나는 이게 고맙다. 정말 고맙다. 눈물이 나도록 고맙다. 내가 고마워해야 할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공 크레인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던 그녀는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여러 가지로 번거로운 이 땅보다 어쩌면 그곳이 방송하기에는 더 좋을지 모르겠다. 저 위에서 그녀는 아직도 방송을 하고 있을까?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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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싼 넘이 방귀 뀐 넘 나무란다 2005/12/27 17:53
진중권 님이 26일 오전 ‘진중권의 SBS 전망대’ 칼럼에서 황우석 교수 사태를 보고 한국의 애국심 과잉을 얘기한 산케이 신문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서울 지국장에 대해 쓴소리를 하였습니다. 진중권님은 손석희님과는 다르게 방송을 잘 이용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아마 자신의 장점을 잘 부각시킨 것이겠지요.
한마디로 똥싼 넘이 방귀 뀐 넘 나무란달까요. 황우석 파동이 문제있는 건 분명하지만, 일본에 비할 것은 아니죠. 칼럼에서 언급된 대로 일본의 역사학자 후지무라 신이치의 ‘구석기 유물 조작’ 사건은 유명하지요. 거기에도 마이니찌와 같은 정론신문이 있어서 진실이 규명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극우 국가주의를 비웃는 것이 통쾌하면서도, 한국도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불안합니다. 진보진영이 변혁은 커녕 파시즘의 도래를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하긴 진보라는 이름으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주창하는 세력까지 포용되고 있는 바에야 할 말 다한 것이지만요.
구로다씨의 충고
산케이 신문의 서울 지국장 구로다씨가 이번 황우석 파문을 보고 재미있는 말을 한 모양입니다. “한국에는 반일처럼 외교정치는 물론이고 냉정한 학문적 판단이 요구되는 과학 분야에까지 과잉 애국주의가 퍼져 있다”고 했다는군요. 살다가 별 꼴을 다 봅니다.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죠. 하지만 ‘애국’을 지고의 가치로 삼는 극우인사가 애국심 과잉을 탓하는 것도 우습고, 또 ‘전범’까지 애국자로 숭배하는 일본의 기자가 과연 남의 나라의 과잉 애국주의를 탓할 주제가 되는지, 그걸 잘 모르겠네요.
후지무라 신이치씨던가요? 일본의 황우석이라 할 수 있지요. 이 분의 타오르는 애국심이 일본 구석기의 역사를 12만년, 20만년, 40만년, 50만년, 마침내 70만 년 전까지 끌어 올렸었지요? 물론 조작으로 드러나서 나중엔 거국적으로 허탈해졌습니다만....
MBC를 초토화시킨 대한민국 국민들의 ‘과잉 애국주의’는 사실 제게도 영 마음에 안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요.
이 나라 사람들 반일 감정이 아무리 드세도 일본처럼 ‘혐한론’과 같은 혐오스런 제목을 단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 아무리 언론이 마음에 안 들어도 일본처럼 신문사로 쳐들어가 제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기지는 않아요. 이 나라 사람들 애국심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일본처럼 멀쩡한 작가가 백주 대낮에 제 배를 가르는 일도 없지요.
다른 나라라면 몰라도 일본 사람들은 남의 나라 애국심을 탓할 처지가 못 돼요. 제가 구로다 기자라면, 그 시간에 미쳐 돌아가는 제 나라 걱정이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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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이 진중권에 대해 잘 평해놓았다. 시사인의 진중권 인터뷰도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고 있고... 진보신당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진중권의 글을 볼 때의 느낌은 글쎄, 그냥 그저 그랬다. 나에게는 자유주의적 사민주의(이런 규정이 있다면)라고 할 수 있는 진중권의 입장이 홍기빈의 입장과 어울리면서 발랄한 분위기로 변한 진보신당으로 찾아온 당원들의 호응을 얻는 것에 조금은 반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그가 현장과 떨어져 있다 보니, 그리고 인터넷으로 확보되는 정보를 가지고 현실을 보다보니, 조금은 피상적으로 노동과 정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특히나 그가 원칙적인 좌파들에 대해 내뱉는 말들은 지나치다는 인상이 들 정도이다.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진중권이나 진빠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이렇게 블로그상에서나 끄적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 현실의 쟁점들에 대해 그가 대응하는 속도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능력이라고 해야 할까. 우석훈이 말했다시피 아무쪼록 2MB 정권 하에서 그가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래에 3월말에 담아놓았던 글도 함께 퍼다놓았다.
문제적 지식인 진중권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29일 (화) 13:14:07 안철흥 기자)
진중권씨는 우리 시대 활발한 저술가 중 한 명이다. 1994년 <미학 오디세이>를 발표한 이후 지금까지 13종 17권의 책을 썼다. 공저와 역저를 합쳐 스무 권이 넘는다. 그가 쓴 미학 분야 교양서는 잘 읽힌다. 미학이라는 학문이 한국인에게 친숙해진 데는 그의 공이 크다. 그가 쓴 사회비평 칼럼은 시퍼렇게 벼린 칼날 같아서 누구든 한번 찔리면 무사하기 힘들다.
그처럼 팬과 안티 팬을 동시에 몰고 다니는 글쟁이는 없었다. 그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수천명이 몰려와서 본다. 게시판은 순식간에 찬반 논쟁으로 들끓는다. 그는 팬뿐 아니라 악플러와도 함께 ‘노는’ 드문 지식인이다. 디시인사이드에는 그의 안티 팬이 만든 진중권 갤러리가 있다.
이명박 시대를 맞아 ‘검객’ 진중권의 칼춤이 더욱 빨라졌다. 그의 글에서 오랫동안 잠복해 독기를 충전한 어휘들이 파닥파닥 불꽃을 튀긴다. 한동안 잠잠하던 논객의 시대를 그가 다시 열어젖힐 수 있을까.
2008. 3. 19 기대되는 프레시안의 진중권 칼럼
진중권이 최근에 프레시안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2월말부터 갑자기 3편이 연달아 나오길래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작을 써내면 독자들이 안타까워할 텐데 하고 생각할 즈음 시일을 두고 최근에 이제 출범한지 20여일이 지난 이명박 정부를 씹는 시원한 글을 기고하였다. 이 정도 페이스면 딱 좋다.
진중권의 글쓰기를 따라배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짧은 글에 관련되는 내용들을 집어넣어 상당히 삐딱하게 비틀면서 여기에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내공을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까. 한 때 미학공부를 하면 진중권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했는데, 미학공부하는 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더라.
진중권은 진보신당의 홍보대사가 되어 나름대로 진보정당운동에도 이바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진보신당의 당원이 되었다는 기사가 디시인사이드에 실려서 진보신당을 홍보하는데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 3월 13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하여 나왔던 내용을 정리한 기사이지만, 그런 것을 접할 길 없는 누리꾼들에게 좋은 홍보자료가 된 것이다. 하긴 디시에는 진중권갤러리도 2월말에 생겨난 판이니,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진중권을 만나본 이들 중에는 그가 매우 섬세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었으니까. 앞으로도 이처럼 통쾌하면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좋은 글을 기대하면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글 두 편을 담아온다.
덧붙여 진중권 빠돌이들에게 말 하나. 그 동안 안티조선, 깨손, 진보누리 등을 거치면서 진중권과 만난 이들 중에는 그와 안면을 트고 지낸다는 것이 무슨 벼슬인 양 하는 이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렇게 진중권을 팔아서 도대체 뭘 하자는 걸까. 진중권이야 그런 사람들에게 크게 괘념치 않겠지만, 그런 인간들이 영 맘에 들지 않더라. 특히 자칭 사민주의 운운하는 이들, 진보신당 언저리에 있는 이들 중에 많은데, 앞으로는 좀 자제했으면 좋겠다.꼴 사납다.
2008.03.24
레디앙의 이재영과의 인터뷰 기사는 진중권이 진보신당을 위해서 나름대로 뭔가 해보겠다고 하여 진행된 것이겠지만, 그 전반적인 내용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게다가 키보드 좌파가 된다고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몇 년 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인데, 온라인의 속성에 대해 좀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키보드로는 의제설정은 가능하겠지만, 정책결정을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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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논리로 이길 사람 있을까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30일 (수) 10:43:47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예전에 녹색당 만들겠다며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 진보누리를 진중권이 거의 혼자 끌어가다시피 하던 당시, 누군가 그가 하루에 하나꼴로 글을 쓴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인가보다 하고 ‘비나리’라는 필명으로 하루에 하나씩 3년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솔직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절감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다작 다상량(多作 多商量)’을 꼽으라면 진중권과 강준만을 빼고는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두 사람이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를 고종석이 뒤따라가는 형국이 이 분야의 대체적인 지형도가 아닐까. 세 사람 다 한때는 시대를 자기 어깨 위에 전부 메고 달려가는 듯했던, 하늘을 어깨에 진 아틀라스형 인간이다. 그래도 하느님이 이 나라를 망하지 않게 하려고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게 한 것인지, 아니면 어차피 망할 건데 심심하지라도 말라고 등장을 허락한 것인지, 그건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이런 사람과 같은 시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억에 진중권이 가장 멋졌던 순간은 <디워> 논란의 맨 앞에 섰을 때였다. ‘그날’ 그의 개인 블로그에 몰려갔던 백만대군을 화공법(그는 블로그로 악플러를 유인한 뒤 그들의 글을 지우고 블로그를 닫아버렸다)으로 전멸시킨 사건을 네티즌은 ‘진중대첩’이라고 부르고, 명량해전 이후 가장 통쾌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 진리는 머릿수로 결정되지 않는 법이고, 아무리 많은 사람이 맞다고 우겨도 아닌 건 아닌 것이다. 하여간 그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한국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지면에 진중권이 집중 출현했고, 마치 대한민국이 거대한 ‘진보누리’ 게시판이 된 것만 같았다. 그 뒤 신문 사설과 칼럼이 그의 글에 달린 악플처럼 줄줄줄….
진중권은 스타일로 본다면, 장군도를 휘두르는 듯하다. 전공이 미학이지만 섬세하게 정밀 폭격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조자룡이 말을 타고 달려나갈 때 기세가 저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풍우 같다. ‘조자룡 헌 칼 쓰듯 하다’라는 표현은 어쩌면 이명박 정권 이후의 진중권을 위해서 <삼국지>가 준비해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시절 ‘밤의 편집국장’이라고 불리던 순간도,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진보누리’를 홀로 지키던 시절도, 그리고 <디워> 사태 때 진중대첩을 끌어나가던 장군 진중권도, 모두 ‘2메가’ 불도저 앞에 홀로 선 지금의 진중권을 위한 준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다.
지난 몇 달간 내가 읽은 글과 인터뷰 중에서, 한국 우파 가운데 유일하게 유머를 구사했던 사람은 “어린쥐(오렌지), 어린쥐 하니까 새우깡에서 어린 쥐가 나온 게 아닌가요?”라고 말했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정도인 것 같다.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 해설석에 앉게 된 정 총장을 빼면 아마 유머로 진중권과 맞설 우파 인사는 없는 것 같다. 논리로는 어떨까? 게으르지 않던 시절의 미덕을 간직한 마지막 우파 인사는 이어령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논리적 흐름에 의한 결론에서 이어령과 진중권이 비슷한 시기에 다른 경로로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한 적이 있기는 하다. 두 사람이 내리는 결론은 대단히 상식적이라서, 우파 논리를 사용하나 좌파 논리를 사용하나 진단은 대개 비슷하다. 이어령급이 아니라면, 한국 우파 인사 중에 진중권에게 논리로 이길 사람은 거의 없다. 그것은 한국 우파의 상식이 ‘토목시대의 상식’이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대세론은? 이게 이명박 시대에 임하는 한국 우파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무기인 셈인데, 대체로 좌파가 이런 대세론에 대항해서 버텼던 자세는 예를 들면 김규항처럼 “흔들림 없이 버텨보겠다”라는 자기 다짐적인 각오였다. 그러나 진중권은 조금 다르다. 그는 각오와 패기로 우파의 대세론에 수동으로 버티지 않고, 속도전으로 누군가 대응하기 전에 먼저 날카롭게 파고들어가는, 전형적인 인파이터 스타일이다. 저놈이 세게 때리면 어떻게 해? 먼저 때리면 되잖아! 원래 다작으로도 진중권은 한국 최고였는데, 요즘은 속도로도 한국 최고이다. 물 만났다고 표현해도 되고, ‘필 받았다’고 표현해도 되고, ‘신기 들렸다’고 표현해도 내용은 다 같다. 지금의 진중권이 딱 이렇다.
도대체 왜 하늘은 이명박을 낳고, 또 진중권을 낳았는가? ‘어륀쥐’에서 대운하까지, 삽질 이명박의 신출귀몰 불도저 앞에 다작·다상량에 속도전까지 갖춘 진중권이 서 있게 된 것은, 이 어찌된 조화란 말인가? 따져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장점은 토목시대 건설족의 상식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데 있는데, 진중권의 강점은 국제표준적인 인문학 상식을 가장 잘 대변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진중권이 사용하는 이론틀은 대체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고, 인문학에서는 그야말로 ‘글로벌 스탠더드’에 해당한다. 토목 스탠더드를 인문학 상식이 하나씩 부수는 과정을, 지금 우리가 살아서 보는 중이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한국의 우파가 상식적 우파가 되면, 진중권도 다시 ‘미학자 진중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시대가 오면 좋겠는데, 당분간 올 것 같지는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당분간 진중권의 장군검을 볼 수밖에 없을 듯하다. 5년쯤 지나면 ‘정치적 비상시국’이 어느 정도 정리될까. 그렇게 되든 안 되든 우리가 지금의 진중권 같은 제2의 진중권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진중권만큼 글을 쓴다고 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누구도 그만큼 빨리 쓰기는 어렵고, 게다가 그만큼 용감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러므로 현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진중권 앞에 진중권 없고, 진중권 뒤에 진중권 없다’.
하여간 불도저 앞에서 조자룡 헌 칼 쓰듯 칼춤을 추어대는 진중권의 활약을 보는 것은, 이명박 시대에 사는 재미를 주기는 한다. 진중권이 없었다면 따분한 한국에서 어떻게 견뎠을까? 이제는 상상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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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리는 못 참고 악플은 즐긴다" (시사인 [33호] 2008년 04월 29일 (화) 13:19:17 안철흥 기자)
이번에는 전공 분야 책을 냈다.
<서양 미술사>는 몇 년 동안 대학 등에서 강의한 내용이다. 통사적으로 서술하면 쉬운데, 조형 원리와 바탕에 깔린 예술 의지를 설명하기 위해 많은 텍스트를 압축하느라 공이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책을 몇 권이나 썼나?
안 세봤다. 공저에 글 한 편 써준 것도 내 책으로 검색되는 경우가 많아서.
인터넷에서 그의 이름을 쳤더니 20여권이 더되는 책 제목이 떴다. 그 중 공저 빼고, 역서 빼고 그가 홀로 직접 쓴 책이 13종 17권쯤 됐다. 책은 크게 두 종류.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춤추는 죽음> <서양미술사> 등은 그의 전공인 미학 관련 책이고,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폭력과 상스러움> <빨간 바이러스> 등은 그의 사회비평 칼럼을 묶은 책이다.
<서양미술사>의 저자 소개에 미학자로 적혀 있던데, 네이버에는 ‘작가’, 다음에서는 ‘자유기고가’, 위키백과에는 ‘문화평론가’로 나와 있다.
자기들 맘대로 올린 거다. 그 때문에 학력 위조 시비까지 불거졌다(네이버 인물검색에 한때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박사’로 올라가 있었다). 한국 사람은 보통 직책·직위에 집착하지만, 나는 별 상관 안 한다. 교수하려면 박사학위 받으면 되지만 그럴 의사가 없다.
재작년 4월 “정치적인 글쓰기는 안 한다”라며 절필을 선언했는데.
그때는 너무 힘들었다. 노무현 지지자들이 대거 ‘황빠’(황우석 지지자)로 바뀌는 걸 보면서 대중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그들이 또 ‘디빠’(심형래 지지자)로 바뀌었지. 돈과 국익을 위해서는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시장주의 코드이고, 지금의 이명박 코드 아닌가. 내가 떠드는 게 의미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년도 못 돼서 컴백했다.
옛 논객들이 (노무현) 정권에 협력하면서 공신력을 잃었다. 정작 이명박 시대에 말할 논객이 사라진 거다. 그래서 다시 나섰다.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보나?
이명박 대통령은 시장주의 극우파다. 발상법이 거의 탈레반 식이다. 워런 버핏도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잖나. 그런데 이 대통령은 상속세 내리겠단다. 학교에 학원선생 데려다 과외 공부시키고, 0교시 부활하고···. 그걸 폭로하고, 공공교육과 의료, 분배의 정의처럼 시장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를 느꼈다.
이 대통령에게서 가장 크게 우려하는 점은?
이분이 잠을 안 잔다는 것(웃음).
당신의 출세작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박정희 현상이라는 ‘정치적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증)에 대한 혐오로 가득 차 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열풍과 최근 총선 때 박근혜 열풍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해 경선 때 박근혜 후보가 이명박 후보에게 밀렸다는 건 한나라당이 이념 보수에서 시장 보수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뜻이다. 조갑제씨가 삐친 것도 그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시장 보수로 변신하면서 민주 대 수구 구도가 사라진 거다. 한나라당이 오히려 진보 세력더러 ‘너희들 아직도 안 변했어’하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선 때 박정희 바람이 불었다고 보지 않는다.
박근혜씨에 대해서는 안 쓰나?
갈 물인데 뭐하러 쓰나. 그녀는 만만한 상대다.
대선 직후 민노당의 종북주의 논란에 불을 질렀다. 한 식구(그는 2003년까지 민노당원이었다)였는데 너무 심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차피 수술대에 누웠어야 했다. 대통령 선거 때 나도 투표 안 했다. 누가 왜 이렇게 만들었나. 민노당은 절대 스스로 혁신할 수 없었다. 할 수 있었다면 심상정 비대위원장 때 했겠지. 대의원대회 때 보니 기가 막혔다. 혁신안이 부결되니까 그들은 만세를 불렀다.
당신 글을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태에서 글이 쏟아져나온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무엇이 당신을 참지 못하게 만드나?
신문 보다가 꼭지 돌면 쓰는 거다. 애국주의·민족주의·시장주의···, 합리성이 떨어지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접하면 못 참는다.
인터넷 매체에 쓸 때는 이명박 대통령을 아예 ‘2MB’로 부르는 것 같더라.
나름으로 글을 쓸 때 ‘자유도’라는 것이 있다. 인터넷 매체에 쓸 때 가장 자유롭게 쓴다. 2MB는 일종의 민중 창작 전통에 따른 거다. 글 쓰기 전에 디시인사이드 같은 사이트에 들어가서 죽 보다가 재미있는 발상이나 용어를 캐스팅해서 쓴다. ‘운하 대신 피라미드를 건설하자’는 글도 거기서 힌트받아서 썼다.
조선일보에는 아직까지 안 쓰나?
동아일보나 중앙일보에는 썼는데, 조선일보에는 안 쓴다. ‘안티 조선’ 할 때의 합의가 아직 안 풀렸으니까. 요즘은 동아일보가 더 문제더라. 신문인지 ‘찌라시’인지. 내가 볼 때 조선일보가 영리하다. 정치권과 붙어봐야 떨어지는 게 없거든. 적절히 보수 어조로 신문답게 가자는 것 같다.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다.
진보신당 게시판 같은 데 내가 뜨면 한 4000명쯤 와서 읽는다. 보면 아군 1000명에 적군 3000명 쯤이다(웃음).
문체 때문이 아닐까. 당신 글은 설득보다 카타르시스가 목적인 것 같다.
설득이 되냐 안 되냐는 어조보다는 논리의 문제다. 오래 걸리더라도 옳고 그른 것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황우석 사태 때 당신에게 비판당한 KBS PD가 전화해서 “글을 참 싸가지 없이 쓰셨네요”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KBS가 동네방송처럼 굴었던 것 사실이잖나. 그 친구 다시 만나보고 싶다. 아직도 황우석 믿냐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자꾸 그냥 넘어가니까 유야무야되는 거다.
상대한 논객 중에서 기억에 남는 상대는?
특별히 남는 사람은 없다. 인간 자체가 아니라 논리가 문제이고 그가 행한 공적 역할이 문제였을 뿐이니까. 개인에 대한 관심은 없다.
지식인의 구실이 뭐라고 보나?
계몽의 시대는 지났다. 지식인도 대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그 속에서 자기 구실을 찾아야지 옛날처럼 위에서 일깨워주던 시대는 끝났다.
과거에 비해 지식인의 사회 발언이 줄어든 까닭이 뭘까?
돌아오는 게 별로 없으니까. 정치권에서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게시판만 시끄러워지고. 과거에는 글만 쓰면 됐지만 지금은 게시판에 악플(비난 댓글)이 쫙 달린다. 심형래 사태 때 보면 ‘네가 뭔데 떠느냐, 나도 대학 나왔다’ 식이다. 그런 변화된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수용해야 하는데, 상아탑 먹물들에게는 그게 쉽지 않다.
댓글은 안 읽나?
듬성듬성 본다. 논리가 서 있거나 정성 들인 것들은 갈무리해둔다. 제법이야, 나한테 채택됐어 그러면서. 욕을 해도 창의성 있게 해야지, 욕먹는 사람 생각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진보 쪽 네티즌과도 가끔 싸우던데.
좌파의 나쁜 점이 꼭 풍속의 감시자 구실을 하려고 하는 거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우리 토론합시다’라면서 게시판을 썰렁하게 만드는 이들이 꼭 있다. 꼭 신학자처럼 군다.
비행기 조종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
좌우 균형과 상하 평형을 유지하면서 창밖 지형도 살피고 계기판도 봐야 한다.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나 사람은 누구인가?
내 철학적 토대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다. 사회를 보는 눈은 마르크스를 통해서 배웠고, 문화 평론은 발터 벤야민에게 배웠다.
쓰는 책이 미학 쪽 교양서와 사회비평 칼럼으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 잘 팔리나?
사회비판 책은 별로 안 나간다. 논객만 해서는 밥 못 먹는다. 미학 쪽 책들은 스테디셀러가 꽤 있다. <미학 오디세이>는 초판 나온 지 10년이 훨씬 넘었지만 지금까지 팔린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책은 세계의 모상이 아니라 모형이다. 저자의 견해일 뿐이다. 그걸 내 주장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책에 빠져서 책을 세계 자체로 착각하는 이가 많다. 그런 신학적 태도를 버려야 현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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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프레시안, 진중권/중앙대 교수, 2008-02-29 오전 11:01:26)
[기고] '2MB 솔루션', 이건 호러물이다
내각(內閣)도 건물이던가? 그깟 건물, 토목공사 하듯 삽질 몇 번으로 뚝딱 지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MB건설의 설계도면을 보자. 내각 = 영남 향우회 + 기독교 신우회 + 고려대 교우회. 인수위는 아멘 할렐루야, 내각은 부어라 마셔라 막걸리, 사정기관은 우리가 남이가.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이걸 도대체 나라꼴이라고 해야 할까?
"군 복무를 영광으로 알고, 군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게 만들겠습니다." 어떻게? MB 정권의 솔루션 = 장관 후보자들의 병역면제율을 일반인의 여섯 배로 올려놓을 것. 이래놓고서 군 복무를 영광으로 아는 사회를 만들겠단다. 군대 안 가야 장관될 확률이 여섯 배로 높아지는 사회에서 도대체 어느 '볍진'이 군복무를 영광으로 알겠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선진일류국가의 바탕"이란다. 선진일류국가의 바탕을 만들기 위한 MB 정권의 솔루션 = 장관 후보자들 평균재산 40억. 집 3.6채에 부동산 4건. 위장전입. 불법농지취득. 탈세와 탈루. 이중국적. 이런 분들 데리고 선진일류국가 만들겠단다. 대통령 자리가 앉아서 이런 실없는 농담이나 늘어놓을 자린가?
그들의 '선진'은 과연 놀라웠다. 그 다채로운 재테크의 기법을 보라. 괜히 잘 사는 게 아니다. 저들이 자랑하는 '실용'을 보라. 출범도 하기 전에 벌써 세 명이 날아갔다. 실용=부도덕, 선진=재테크. 이것이 MB 방정식이다. 그 면면을 보라. 얼마나 천박하고 교양이 없는가. 전여옥 의원님, 이번엔 대통령 제대로 뽑은 건가요? 보니까 다들 대학(고대)은 나왔던데….
강남 오렌지족의 부모가 "아륀지~"라고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할 때, 우리는 아직 웃을 수 있다. "남편이 선물로 오피스텔을 사줬다"는 소리에 박장대소를 하고, "자연을 사랑했노라"는 시심에 포복절도를 할 수가 있다. 거기에 "공직자에게는 거짓말하는 능력도 필요하다"는 어느 또라이의 썰렁한 논설에 우리는 아직 유쾌하게 뒤집어질 수가 있다.
도덕성 포기하고 '능력'으로만 뽑았다더니, 노동부 장관 후보는 노동 현안을 잘 모른다고 하고, 복지부 장관 후보는 복지부 현안을 잘 모른다고 한다. 나름대로 탁월한 개그 컨셉이나, 워낙 다른 후보들이 크게 웃기는 바람에 빛이 바래 버린 느낌이다. 어찌 이 따위를 "통일은 없다"는 책을 쓴 사람을 통일부 장관에 앉히려 했던 개그에 비할 수 있겠는가.
대운하 전도사라는 분이 미국에서 받아왔다는 박사논문이 목회신학에 관한 것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아하, 그래서 대운하의 '전도사'님이시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다가, 미국에서 받았다는 그분의 논문이 한글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으니, 어쩐지 현정권의 영어정책과 안 맞는 것 같아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고. 이렇게 저절로 목 운동이 되니 건강에는 좋은 것 같다.
그들이 1억 원과 2억 원짜리 골프회원권을 "싸구려"라고 말할 때, 우리의 입가에선 웃음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1, 2억 원이 '싸구려'로 보이는 분을 장관으로 올려놓은 채, 대통령은 값 100원이라도 서민에게는 부담이 된다고 호들갑을 떤다. 자신의 1, 2억도 '싸구려'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민의 100원을 '부담'이라 불러줄 때, 우리는 감동을 해야 하나? 아니면 분노를 해야 하나?
그래, 국밥 먹는 연기는 유인촌보다 나았다. 그래서 라면 값 100원을 깎아준다 하자. 무슨 수로? 농심에 가격 인상 못하게 압력을 넣을까? 그게 무슨 시장 친화적 정책인가. 사회주의 빨갱이 정책이지. 그럼 정부에서 보조해줄까? 그게 생산적 복지냐? 국민 게으르게 만드는 소모적 낭비지. 아, 국민성금 모으면 되지 않을까?
하루에 라면 10개를 먹으면 그게 벌써 1000원이란다. 그래서 한 달이면 3만 원이란다. 5인 가족이 한 달 내내 점심, 저녁으로 라면만 먹으라는 얘긴지. 그래, 서민 가구당 한 달에 3만원씩 라면 값 보조해 준다고 하자. 영어 사교육 시장, 이미 후끈 달아올랐는데, 서민들의 자식은 저 돈 많은 사람들의 자식들과 무슨 수로 그 잘난 '경쟁'이라는 것을 해 보나?
2억에 산 집이 10억이 됐다. 일 하지 않고 번 돈이 무려 8억이다. 거기서 몇 천 만 원 세금 내는 게 그렇게도 아까울까? 세금 내기 싫으면, 집을 팔고 이사를 가면 될 일이다. 그 돈이면 다른 지역에 큰 집을 사고도, 평생 일 안 하고도 먹고 살 돈이 남겠다. 이렇게 팔자 좋은 분들의 처지가 그렇게 안타까워서 몇 천 만원씩 깎아주면서, 서민에게는 라면 값 100원으로 생색내겠다? 서민이 거지냐?
방송통신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은 신문사 경력이 전부란다. 방송통신위원장 직무와 관련하여 그가 인정받은 유일한 능력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것뿐.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는 발상을 했던 분이니, 앞으로 대통령 최측근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으면 이 나라 방송이 어떻게 될까? "뚜뚜뚜 땡, 이명박 대통령은…"
이게 결코 수사적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낯 뜨거운 정권찬양으로 가득 찬 <동아일보> 지면을 보면 알 수 있을 게다. 벌써 정권의 코드에 맞추기 시작한 검찰과 경찰은 보안법 내세워 사람들 구속시키고, 대통령 정무수석이 될 분은 "5공이 민주주의가 자랄 토양을 마련했다"는 전두환의 얘기를 들으러 버젓이 5공 잔당들의 모임을 찾아다닌다. 정말로 그들이 돌아온 모양이다.
MB야 탁자를 원탁으로 교체하고 단상에 일반인을 앉히는 이벤트를 연출하기 여념 없으나, 대중은 정권 교체 후에 이미 어떤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니 "잡혀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물론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없었던 일이다. 어느 신문에 보낸 칼럼 원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두 주가 넘도록 아직 소식이 없다.
나만은 무사할 거라고? 글쎄, 비정규직이 노동인구의 절반을 넘어가는 판에, 앞으로 자기만 무사할 거라고 믿는 게 얼마나 합리적 계산일까? 노무현 정권은 이렇게 만들어 놓고 미안한 척이라도 했다. 하지만 MB 정권에서는 제스처조차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그들의 철학이요, 신념이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최소한의 제동마저도 풀렸다. 고속질주하면 신날 것 같은가?
영어 사교육 광풍은 이미 시작됐다. 다 같이 걷다가도 하나가 뛰기 시작하면 다 같이 뛰어야 하는 게 '경쟁'의 본질. "우리 아이들, 우리 모두 잘 키우자"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 제치고 내 아이만 잘 키우자"는 것이 개개의 부모들의 심리. (이토록 이기적인 사람들이 '애국'이라는 말 한 마디에 집단 속에 하나가 되는 습성을 가진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어차피 막을 수는 없을 게다.
비정규직 확산도 막을 길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자기는 비정규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조국의 경제 성장을 위해 남들은 모조리 비정규직이 되어도 좋다는 게 개개의 시민들의 생각이 아닌가. 이것은 논리적 불가능이다. 게다가 이를 저지해야 할 진보정당은 존재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우리가 뭘 잘못 생각한 걸까?
하나 남은 것은 의료보험이다. 앞으로 보험증 들고 갈 수 있는 병원의 수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 정권 5년 끝난 다음에, 우리는 보험증 들고 아직 몇 개의 병원에 갈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병원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할까? 의사들의 배 둘레 햄은 점점 두꺼워지고, 서민들의 허리는 점점 얇아질 텐데, 그러다가 마침내 허리가 끊어질 사람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나는 지난 대선 때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이건 호러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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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했다고 피곤한가?" (프레시안,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2008-03-17 오전 10:00:15)
[진중권 칼럼] 좌충우돌 20일을 평가한다
"새 정부가 탄생한 지 20일이 됐는데 내 생각에는 한 6개월쯤 된 것 같다". 대한민국 1%를 섬기는 정부. 겨우 출범 20일 만에 피로감을 호소한다. 대통령 따라 배우기 운동 하느라 새벽잠을 못 자 하루 종일 '어리버리(early bird)'한 증상을 호소한다는 공무원의 처지에 관한 얘기라면, 이해가 간다. 또 출범 20일 만에 한꺼번에 노무현 정권 5년 치의 피로감을 느껴야 하는 불쌍한 국민들의 처지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간다. 대통령과 장관은 도대체 그 동안 뭘 했다고 그렇게 피곤할까?
듣자 하니, "취임식 날 저녁 청와대에 들어갔는데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고 열흘이 지나도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인수위는 그 동안 뭘 했던가? 오렌지를 '오륀지'로 표기해야 국가 경쟁력이 살아난다고 농담할 시간은 있으면서, 정작 청와대 업무의 인수인계를 챙길 시간은 없었단 말인가? 게다가 컴퓨터도 작동 안 했다면서, 청와대에 들어가 제일 먼저 한 일이 기껏 인테리어 바꾸는 공사였던가?
노무현 정권이 청와대에 들어가 e-정부 시스템이라도 구축해 놓은 반면, 이명박 정권은 들어오자마자 테이블 갈고 칸막이 치우는 공사부터 했다는 사실. 또 e-정부 시스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반면, 이명박 정권은 청와대에 들어가 열흘 동안 컴퓨터 사용을 못 했다는 사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명박 대통령, 혹시… 컴퓨터 전원은 켜셨나요?
연속 7% 성장을 할 거라고 장담하더니, 갑자기 '경제 위기' 운운한다. 그저 집권하는 것만으로도 주가를 3000까지 끌어올리겠다던 슈퍼맨의 출현을, 증시는 1600의 폭락 장세로 환영한다. 어찌 된 일일까? 간단하다. 슈퍼맨이 나타나 경제를 살린다는 믿음 자체가 환상이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는 이미 세계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어, 한국 혼자서, 그것도 대통령 혼자서 살릴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다.
아무튼 멋지게 보잉 747기에 오르려던 승객들. 탑승하려다가 보니, '보잉 747'이 아니다. 한나라투어에서 마련한 탑승기는 동체에 '뼁끼'로 747이라 쓴 쌍발 프로펠러기. 매직으로 'nike'라고 쓴 고무신이라고 할까? 뭘 더 바라겠는가. 싸구려 저가 여행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그저 선진 랜드로 데려다 준다던 이 비행기가 캄보디아 정글에 추락하는 일만은 없기를 바라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MB노믹스'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수사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시장, 작은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는 최신 유행의 신자유주의 레토릭과, △대통령만 바뀌어도 경제가 성장한다"는 박통시절의 시대착오적 레토릭. 이 두 요소는 원래 서로 잘 안 어울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자는 시장주도의 성장전략, 후자는 정부주도의 성장전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2MB 용량의 두뇌에서라면 이 둘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게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와 같은 규제 완화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연구는 대체로 법인세 인하가 경제성장률을 제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가령 미국에서 법인세, 소득세 인하는 반짝 효과에 그쳤을 뿐이다. 외려 세수의 감소를 가져와, 의회에서 감세안의 입법을 추진할 경우 세수결손을 충당할 방안까지 덧붙이라는 법안이 만들어질 정도였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에서 추진하는 출총제 폐지도 마찬가지다. 출총제는 그 동안 이미 상당히 완화되어 있어, 투자 제약 효과랄 게 별로 없단다. 이것은 출총제를 폐지해도 투자 증대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보도에 따르면, 설문조사에서 출총제가 폐지될 경우 투자를 하겠다고 대답한 기업은 고작 1%에 불과했으며, 투자를 검토해보겠다고 한 기업의 수도 11%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의 간담회에서, 중소기업의 92%가 현재 출총제 폐지에 반대한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이 압도적인 반대는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중소기업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게 중소기업이라는 사실이다. 보수언론에서는 대기업이 온 나라를 다 먹여 살린다고 말하나, 실제로 대기업의 고용기여율은 외려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MB 정권은 규제란 게 왜 존재하는지 잊은 모양이다. 기업은 사익을 추구하고, 정부는 공익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익의 추구가 공익에 위배되지 않도록 늘 적절한 규제와 감독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사태가 저 지경이 되도록 정부나 지자체는 뭐 했냐?'는 게 늘 언론의 상투적 마무리 멘트가 아니던가? 성과급까지 걸어놓고 규제완화 경쟁을 일으키는 앞으로 전국 곳곳에서 남대문을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효과는 변변치 않고,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MB 정권 사람들의 두개골에 뇌라는 기관이 담겨 있다면(열어보지 않아서 독자들에게 확인해 드릴 수 없다), 이걸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정부 주도로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대운하 사업이다. '대운하사업을 민간 자본을 유치해 하겠다'는 개그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정부주도의 성장이라는 서로 모순되는 요소를 억지로 결합해 놓은 것이다.
그래도 노무현 정권은 욕을 먹어가면서 인위적 경기부양은 삼갔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 일어난 카드 대란처럼 그 부작용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오직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 하나로 당선된 정권은 처지가 다르다.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경기가 살아난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경기'를 '경제'로 착각하는 생각은 이런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2%나 상회하는 성장. 이는 '뽕'을 맞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뽕이 대운하 사업이다. 하지만 약물 투입으로 성적을 올린들, 몸이 망가지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냥 땅을 팠다가 다시 묻는 삽질로도 건설 경기는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대운하는 생태와 환경을 망가뜨리고, 그것을 복구하는 데에는 천문학적 액수의 비용이 든다. 그러니 운하보다는 그냥 땅을 팠다가 다시 묻는 사업 쪽이 차라리 더 경제적이다.
물류혁명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관광혁명이란다. 제 돈 내고 3시간 동안 24㎞짜리 터널에 들어갔다가 나와 LG 창업주 생가, 박정희 생가를 들러볼 '또라이'들이 한국에만 100만 명, 중국에 1000만 명이라고 한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런 관광객들을 위해라면, 차라리 서울시와 협조 하에 맨홀 뚜껑 열고 들어가는, 24km짜리 서울시 하수구 탐방 코스를 관광 상품으로 내놓는 게 낫지 않을까?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자, 이번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를 슬쩍 빼겠다고 한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겠단다. 자기들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 대운하 사업이 아니던가? 자기들이 말하는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영어 몰입 교육 아니던가? 그런데 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총선에서 정작 핵심 공약을 빼버린다. 한 마디로 일단 다수당이 된 다음,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사실 대통령도 답답할 것이다. 경제 살린다는 구호로 당선은 됐는데, 경제를 살릴 뾰족한 수는 없고.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유인촌 주연의 드라마에서 나온 허구일 뿐이다. 현실은 허구와 다르다. 사실 그는 진짜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다 보니 경제 살리는 시늉을 하는 데에 치중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으로 구축된 이미지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으니,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동일한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당선인 시절 그는 대불공단의 '전봇대'를 뽑았다. 이 이벤트는 물론 '전 정권의 무능'과 '새 정권의 효율'을 강조하는 시각적 상징으로, 당시에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가 사진을 찍고 지나간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았던가? 전봇대를 불평하던 그 트럭들이 과적으로 마구 망가뜨린 도로가 남았다. 물론 그것을 보수하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해야 할 일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샌드위치 먹는 것도 같은 맥락. 연구에 따르면 아침형 인간이나, 저녁형 인간이나 능력과 성과에는 아무 차이가 없단다. 괜히 대통령 따라해야 하는 장관 따라 해야 하는 국장 따라해야 하는 과장 따라 해야 하는 말단 공무원들이 안 됐다. 그는 하루 4시간 자는 능력을 과시하는데, 본디 '잠'이란 뇌가 휴식하는 현상,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사는 이는 하루 네 시간 잠만으로 충분할 게다.
이 모든 포토제닉 이벤트는 결국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성장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겨 당선이 되었으나, 경제를 살리는 데 쓸 수단은 한정되어 있다. 국민들의 불만이 늘어갈수록, 그는 더욱 더 그것을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시각적 이벤트에 집착할 것이다. 기업을 향해서는 VIP룸의 개방, 핫라인의 개설, 서민을 향해서는 현장 방문의 이벤트를 강화할 것이다.
이명박의 리더십이 북조선을 닮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는 손수 '새벽별 보기 운동'을 실천하며, 공무원들에게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을 주문한다. 현장에 강림하여 인민을 감동시키는 것(노무현의 경우, 괜히 민폐나 끼친다고 현장 방문을 되도록 삼갔다.), 현장을 방문해 사소한 것에까지 시시콜콜 교시를 내리는 것, 주변을 자기 심복으로만 채우는 것도 영락없이 수령 동지의 스타일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아마도 그의 의식이 수령 동지의 의식과 비슷하기 때문일 게다. 북조선에서 수령은 뇌수, 인민은 수족으로 여겨진다. 이명박 대통령의 의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조선에서 온 인민이 수령 덕에 살아가듯이, 그도 남조선 인민의 살 길은 오로지 자신만이 개척할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의 일인독재 스타일은 도취에 가까운 자기환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미래를 전망(prospect)할 능력이 없는 사람의 눈은 과거로 돌아가기(retrospect) 마련이다. 미래를 향해 기획(project)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제 꿈을 과거로 거꾸로 던질(retroject) 수밖에 없다. MB의 통치 스타일은 남조선의 박정희와, 북조선의 김일성이 경쟁을 하던 시절에나 통하던 것. 이 과도한 시대착오가 <조선일보> 눈에도 우습게 보였던 모양이다. 대통령에게 좀 더 큰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카리스마, 다른 한편으로는 '큰 시장, 작은 정부'라는 신자유주의 이념. 양자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라. '작은' 정부로 어떻게 '큰' 시장을 살린단 말인가? 그것은 '동그란 삼각형'과 같은 형용모순이다. 이명박 정권의 자가당착, 자기모순, 좌충우돌은 바로 이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원칙과 철학 없이 우왕좌왕하는 행태는 앞으로 5년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최근의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영어 교육의 강화를 위해 더 많은 교사를 확보하여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며칠 전에는 화성을 방문하여 '살인의 추억'이 있는 그곳에 경찰서가 없어서야 말이 되냐며, 다른 것은 몰라도 경찰 인력만은 늘리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경찰과 교사는 공무원이라는 사실. 전 정권에서 공무원을 6만 명이나 증원했다고 비난했던 게 한나라당이다. 그런데 전 정권에서 늘린 공무원의 압도적 다수는 교사와 경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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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좌파가 되자” (레디앙, 2008년 03월 19일 (수) 18:28:54 이재영 기획위원)
[인터뷰-진중권] “이명박 좀 모자라 … 민노당 저절로 망할 것”
- 진보신당 홍보대사를 맡은 계기나 이유 같은 게 있는가?
= 당에서 전화가 왔다. 시키면 해야지. 돈 보내라면, 돈 보내고.
- 가장 먼저 분당을 주장하고, 이른바 선도 탈당이라는 것도 했다. 그 이유를 다시 들어보자.
= ‘그 사람들’ 받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그 사람들은 다른 목적이 있다. 진보정당이 아니라, 북한 정부 위해 일하는 것 아닌가. 그들이 바뀔 거라 보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까지 온 것 아닌가.
- 그렇다면 ‘그 사람들’과 갈라선 지금은 흡족한가?
= 너무 늦은 감이 있다. 민주노동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거나 진작에 헤어졌어야 한다. 이제 와 갈라서니 아직도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의 상징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두 번째 시도이기 때문에 열정이 떨어진다든가 아무래도 불리한 면이 있다.
- 그토록 해악스런 세력이라면 이제라도 적대한다든지 망하도록 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요즘 얘기 나오는 지역구 조정 같은 건 옳지 않은 것인가?
= 아니, 적대도 아무 것도 없었으면 좋겠다. 진보신당이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는 게 원칙이지만, 지역에서 어쩔 수 없이 조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 할 일도 많은데, 그쪽에 신경 쓸 여유 없다.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망할 것이다. 이명박은 노무현과 다른 게 없다. 더 심하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서 노무현에 실망해 이명박으로 돌아선 사람들은 금방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럴 때 대안세력으로 올라설 수 있는 세력이 누구인가. 진보신당은 대안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경쟁할 필요는 없다.
- 요즘 진보신당은 서유럽의 급진적 리버럴 정당 같이 보이지 않나?
=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본다. 전통적 노동운동 모델은 끝났다. 지금 우리는 산업혁명 시대가 아니라, 정보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조직 노동자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혁명적 잠재력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재화의 생산 유통보다는 정보의 생산 유통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예전에 ‘키보드 좌파’라는 말은 비아냥이었다. 그런데 이미 노동자들은 키보드로 일하지 않는가. 이제 좌파는 키보드 좌파여야 한다.
예전에 조직이란 건 시공간적 동일성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조직은 그런 데서 벗어나 네트워크에서 형성되고 있다. 거기에 맞춰 당이 변모해야 한다. 더 리버럴해야 한다.
물론,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같은 전통적 조직 기반을 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그런 조직운동에서도 계속 좌파운동이 생산돼 나올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에 포석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 이명박은 노무현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는 똑같고, 사실 다른 점은 없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70년대 공사판 스타일이라는 거.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컴퓨터 비밀번호를 몰라 열흘 넘게 사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컴퓨터 전원은 켜셨나요”라고 칼럼에 썼다.
며칠 지켜 보니, 객관적으로 좀 모자라는 것 같다. 땅을 사랑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소리 하는 이명박 정권 사람들, 아예 기본적 감각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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