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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인터뷰, “난 지금 이 사회 흐름에 문제제기 하는 것…천성산, 못 놓는다” (경향, 08-10-23)
언론과 법정투쟁을 하고 있다니 그 넘의 2조원의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하긴 이런 부분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한다. 아래 담아놓은 글에도 있지만, 저들은 지율스님의 단식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어 2조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고 선동해대었다. 그것은 여전히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이들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또한 보수언론과 한패였고... (이 사안은 노무현 정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주기도 한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었단다. 이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 무관심했었다. 뭐든지 지속적으로 붙여서 끝을 봐야 하는데... 경향신문의 지율스님 인터뷰 기사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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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난 지금 이 사회 흐름에 문제제기 하는 것…천성산, 못 놓는다” (경향, 영덕 | 대담 김택근 논설위원, 정리 최희진기자, 2008년 10월 23일 09:49:58)
산골은거 2년 반…언론과 나홀로 법정투쟁
지율스님이 숨어든 곳은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이었다. 5차 단식을 중단한 뒤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이 곳에 온 것이 2006년 봄의 일이다. 그 때 세상 인심은 참 흉흉했다.
경북 영덕 산골의 누옥은 오랜 단식과 여론의 뭇매로 탈진한 지율스님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스님은 “이곳은 필요한 사람에게 쓰게 하고 나는 좀더 멀리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영덕 | 박재찬기자
지율스님은 2003년부터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구간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모두 350여일을 굶었다. 본래 단식이란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겠다’는 결연한 의사의 표현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 단식을 너무 쉽게 논평했다. 언론은 지율스님이 단식으로 지키려고 했던 천성산의 환경 문제보다 스님의 단식이 진짜인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여론은 ‘비구니 하나의 아집으로 공사가 지연돼 2조원의 혈세가 낭비됐다’고 비난했다. 결국 터널 공사는 강행됐고 지율스님에게는 상처 외엔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지율스님은 2조5000억원을 근거로 들며 천성산 보존 운동을 공격했던 거대 신문사들을 상대로 나홀로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5일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에 살고 있는 지율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소송에 대해 “170배나 부풀려진 숫자가 사용됐는데도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 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 다시 나설 생각은 없다. 그는 “천성산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모습을 감춘 지 약 2년 반 만에 첫 인터뷰입니다.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려고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 안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한 번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지금 하고 있는 일(천성산 관련 소송)이 있기도 하고. 모르겠어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너무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것이 많고…. 제 기사가 나와도 한 1년은 안 봐요. 텔레비전도 안 켜요. 무서워서. 그래서 1년쯤 지나고 좀 가라앉으면 봐요. 소심해요.”
-스님이 영덕으로 오신 게 2006년 5차 단식을 끝낸 이후입니까.
“동국대 병원에서 퇴원하고 갈 데가 없어서 왔어요. 여동생이 데려다 주고 갔지요.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몸이 아파서 못 걸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참 많이 애쓰셨어요. 밥도 해다 먹이고. 좋은 곳에 왔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 같아요. 이런 데서 사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사니까 살아지고.”
-이 마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10년 전에 우연히 들렀어요. 저 밑에 소나무 숲이 참 좋아요. 그 길을 따라 오다가 이 집이 첫 집이니까 들어왔지요. 할머니가 이사갈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집값이 얼마냐고 물으니까 150만원 달래요. 돈 모아서 다시 왔더니 그 사이 길이 생겨서 집값이 오른 거예요. 결국 못 사고 1년을 돌아다니다 저희 스님이 주지 마지막 임기 때 잠깐 들어가서 봐드렸더니 용돈을 주시더라고. 그래서 여기를 산 거예요. 그 후엔 한 번도 와보지 않았어요. 올 일이 없었으니까.”
-스님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마을 주민들도 알고 있습니까.
“텔레비전에서 많이들 보셨지요. 이곳은 소도 같은 곳이에요. 저처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이 와 있어요. 그래서 마을 전체가 알려지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그분들을 보호해드려야 하니까.”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하는 게 많아요. 일도 하고, 제 농사도 하고. 기본적으로는 제 생활을 지키지요. 일어나는 시간이 거의 정확해요. 새벽 3시 정도. 저절로 눈이 떠져요. 아침에 해 뜰 때까지 앉아있다가 어르신들 농사일 하는 데 가서 일 배우고 품앗이도 해드리고. 바느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있고 기록도 많이 하지요.”
-홈페이지를 보니 글과 사진을 이것저것 많이 올려놓았던데.
“놀랍게도 필요한 건 금세 습득을 해요. 너무 절실하니까. 컴퓨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사람들한테 일일이 물어봐서 여는 것 가르쳐 주세요, 닫는 것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배운 거예요. 최근까지도 인터넷 검색이란 게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그 전에 일을 좀 벌였을 텐데(웃음). 긁어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만날 타자 치는 거예요, 독수리로. 지금도 독수리지만 그래도 천천히 배우고 사진도 찍어요.”
-홈페이지에 언론사 소송에 관한 자료가 많습니다.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소송에 대해 설명하신다면.
“천성산 터널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손실이 2조원이다, 아니다 하는 문제, 혹은 저에 대한 안티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소송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릅니다. 천성산을 지키려는 싸움 속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 사회가 가고 있는 흐름에 문제를 제기하는 거지요. 언론에서 한결같이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했던 것에 대해, 제가 ‘실은 145억원’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제가 소송을 하는 것은 이 사회가 170배나 과장된 숫자로 옮겨가도 언론뿐 아니라 연구소라든지 교수들, 우리 ‘도롱뇽의 친구들’까지 그 흐름을 같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게 하나의 이유이고. 또 직접적으로는 대운하 문제가 연결되어 있어요. 대운하를 한다고 했을 때 홍준표 의원이 ‘천성산 터널 공사를 할 때 한 비구니가 단식해서 2조5000억원이 손해가 나는 등 국가 손실이 많은데 운하가 되겠느냐’고 했어요. 국가 로펌인 ‘정부법무공단’이 출범할 때의 취지가 천성산 문제로 2조5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시민단체의 소송으로 국가적 손실이 크니까 직접 대응하는 로펌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듣지만 이해당사자인 저는 책임을 많이 느낍니다. 정부에서 그 숫자를 굉장히 정략적으로 쓰잖아요. 한 번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천성산 통해 아픔 배웠다”요즘 영덕 칠보산 기슭서 농삿일…정리되면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
-당시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는 주장은 맨 처음 어디서 나온 겁니까.
“딱 한 장이에요. 2조원대라는 엄청난 숫자를 여기저기서 많이 사용한 근거가 됐던 보고서가. 그 숫자를 언론에서 400번이나 쓰고도 문제제기가 없었다는 건 큰일이지요.”
-2조5000억원을 근거로 들며 스님을 공격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중앙대 이상돈 교수님이나 서울대 박효종 교수님처럼 반대쪽 논리를 기고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뉴라이트라고 하던가요? 그 교수님들이 칼럼에 2조원 문제를 쓸 때 언론 보도를 인용만 하는 게 아니에요. 인용에 따라오는 비약들이 있잖아요. 비약을 심하게 하신 분들에게 메일을 보냈어요. 그동안 교수님들이 알고 있던 사실과 제가 아는 사실을 비교해서 7명 정도에게 보냈는데 6명이 답장을 하셨어요. 죄송하다고. 잘못 알았다고. 그 분들, 천성산 문제에 대해 양보하지 않던 사람들이었거든요. 그 분들이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조선일보 소송을 통해 모아보는 겁니다.”
-‘나홀로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법리를 다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왜 혼자서 소송을 합니까.
“직접적인 이유는 같이 해 줄 사람이 없어요. 이제 끝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하려고 안 하시더군요. 저로서는 지금이 굉장히 중요한 고비인데도. 대운하 문제도 그래요. 공교롭게도 지금 정종환 국토부 장관이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을 했던 분이잖아요. 저는 그 분이 천성산을 어떻게 다뤘는지 아는 거예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천성산 터널공사 반대가 ‘설익은 민주화의 적폐’라고 했는데, 그렇게 얘기하실 수 없는 분이에요. 그 분은 제가 정토회에 있을 때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위한 국회의원 모임의 중요한 멤버였거든요. 지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박 수석의 발언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소송을 혼자 해야 할 경우 그냥 포기해버릴 것 같습니다.
“저도 때때로 그래요. 제가 그러잖아요, 머리를 헹궜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다른 쪽에서도 생각을 해봅니다. 왜 나같이 배우지도 못하고 세상물정도 잘 모르는 사람을 천성산이 불렀을까. 저 위에 꽂혀 있는 책이 화엄경인데 저게 발단이에요. 제가 화엄경을 사경한 적이 있어요. 천성산 화엄벌에 올라가면 화엄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원효스님이 1000명의 대중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설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러요. 그때는 그곳이 습지인지도 모르고 지뢰밭이라서 아무도 안 갔는데 제가 붓글씨로 써서 80권이나 되는 책을 들고 가서 읽은 겁니다. 큰소리로. 거기 새나 나비가 날아다녀요. 꽃밭이니까. 생명이 많이 사는 곳이에요. 저는 그것들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읽었어요. 10년 후에 그곳에 갔다가 관광지를 만든다고 길 닦는 현장을 본 거지요. 다른 스님은 거기까지 쫓아 올라갈 일이 없었을 거예요. 고속철도 문제도 산사태 현장을 제가 목격했고. 그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니까 여기 지질이 단층대다, 이렇게 된 겁니다.”
-천성산에 가 보십니까.
“부산에 가끔 가요. 모니터링은 직접 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로 일을 하고 있어요. 2조원 문제가 끝날 때쯤엔 천성산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처음에 문제제기를 했던 것들이 그대로 가고 있잖아요. 꼭 터널 구간이 아니더라도 지반이 약해서 그 입구가 벌써 무너졌고 공사 지연 얘기까지 나오고 있고요. 실제로 천성산 앞 구간의 지질이 비슷하거든요, 15-5 공구가. 지난해에 9900㎡(3000평)가 5m 밑으로 가라앉았어요. 지금 터널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고 사람이 죽기도 했다는데 밖으로는 전혀 보도가 안 되고…. 늪이나 계곡의 지하수 문제도 정리를 해야지요.”
-단식을 5차례나 하셨는데 후유증은 없습니까.
“병원에 안 가서 잘은 모르겠어요. 저는 이상하게 제 몸에 대해서는 통증이나 아픔 같은 것을 떨어뜨려놔요. 어디가 아프면 그것을 들여다보고 거기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걸 한 쪽에 놓고 저 하는 일에 전혀 지장을 안 받고 그냥 아파요. 너무 아프면 눕고. 아픈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습니까.
“거의 안 오시지요. 신문에 인터뷰가 나가면 많이 섭섭해할 거예요. 걱정이에요. 초파일에도 아무도 안 와요. 그러니까 마을 할매들이 ‘스님들 오시면 밥은 돌아가면서 우리가 해드릴 테니까 스님들 좀 받으세요’ 그래요.”
-외롭다거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 와서 배운 것 중 하나가 무서움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제가 겁이 많거든요. 혼자 있는 것도 무섭고 어둠도 무섭고.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무서움을 잊었어요.”
-도법스님은 서울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하고, 수경스님은 오체투지를 하고 있습니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도법스님이나 법륜스님의 단식, 그런 데는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거기는 보해주는 분들이 다 계시잖아요. 오히려 지난번에 기륭전자를 들여다보지 못해서 참 미안했어요. 서울 갔을 때 몇 번이나 가보고 싶었는데 또 괜히 잘못했다가…. 제가 하도 구설에 많이 오르니까….”
-천성산 문제를 겪으면서 스님 스스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까.
“마음은 별로 변하지 않았어요. 제가 늘 그렇게 얘기해요. 세상을 무심하게 살았던 벌이라고. 천성산 현장을 보고 돌아온 순간부터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피하고 싶어도 피해지지가 않아요. 그래도 거의 마무리 단계까지 오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천성산 지키기를 2001년부터 했으니 7년째이지요. 한 번도 놓은 적이 없어요. 자나깨나 서나 앉으나. 제가 놓지 못하는 거지요. ‘목숨을 건다’는 표현은 나쁘지만, 저는 제 모든 것을 걸어요. 지금도. 소송 준비하면서 잠도 거의 안 잤을 거예요. 3000건이 넘는 기사를 날마다 열어서 분석했으니까.”
-천성산 문제를 정리하고 나면 무슨 일을 하실 계획입니까.
“그건 비밀이에요. 아마 어떤 일도 하지 않겠지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공부를 했어요. 다른 분들이 보면 좀 모질게 했지만 저는 사실 즐겁게 한 일이잖아요. 고맙고 감사하지요.”
-지켜보는 사람들은 안타깝게 여겼는데 스님은 즐거웠다고 하시네요.
“즐겁다기보다 감사했지요. 아픔을 알게 됐으니까. 천성산을 통해 아픔을 배웠고 저보다 힘들었던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느끼고. 만약 밖에 나오지 않았으면 영원히 몰랐을 뻔한 많은 고통이 이 세상에 있었어요. 그 자리에 제가 옮겨갈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생각하지요. 감사해요.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곳에 있을 때 제가 신앙적으로도 완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여기서 지내는 건 저한테 덤 같은 세월이에요. 덤으로 받은 세월이지요.”
지율스님은 누구인가
2001년 환경운동 첫발…‘천성산 공사’ 중단요구 350여일 단식
지율스님이 처음 환경 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1년이다. 경남 양산 천성산 내원사에서 수행하던 중에 천성산의 습지가 관광지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훼손되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2003년부터는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터널 공사를 중단하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실시하자는 운동을 시작한다.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경부고속철 천성산 관통노선의 백지화를 약속했지만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던 탓이다. 지율스님은 2003년 2월 부산시청 앞에서 시작한 1차 단식(38일)을 시작으로, 같은해 11월 2차 단식(45일), 2004년 6월 3차 단식(58일), 같은해 10월 4차 단식(100일), 2005년 9월 5차 단식(약 100여일) 등 모두 350여일을 굶었다. 현재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상대로 왜곡 보도를 바로잡으려는 ‘10원 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며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채 경북 영덕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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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부르던 지율을 만났다, 2005년 12월8일 (경향, 김택근 논설위원, 2008년 10월 23일 09:41:01)
2005년 12월7일 지율스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주 신륵사에 한번 들러달라고 했다. 스님이 곡기를 끊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음을 부르고 있다는 소문은 이미 퍼져있었다. 다음 날 스님을 찾아 나섰다.
스님은 예상대로 바짝 야위어 있었다. 손을 만지니 뼈만 잡혔다. 그제(6일)는 주지 세영스님이 여주 시내에서 의사를 불러왔단다. 젊은 의사는 살가죽이 뼈와 붙어있는 스님의 배를 보고는 “왜 이러시냐”며 흐느껴 울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물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니, 음식을 갈망하던 세포들이 이제는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영스님이 스님의 용태를 전해줬다. 밤 새 앓다가 아침햇살을 받으면 통증이 멎는다고 했다. 아침햇살에는 형용 못할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 듯했다. 80일을 굶은 스님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에 스님을 찾았다. 스님은 그냥 얼굴 한번 볼라고 연락을 했단다. 맞다, 스님과는 이런 저런 인연이 있었다. 아마 스님의 얘기를 깊이 들었던 사람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사람을 피해, 이렇듯 죽음을 기다리는 지율은 우리 시대의 무엇인가? 죽음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스님의 뜻과는 달리 죽음은 아주 더디게 오고 있었다. 콩팥기능이 거의 정지되고 항문에서부터 세포가 굳어가고 있음에도 죽음은 아주 느리게 오고 있는 듯했다.
一스님, 왜 이리 서두르십니까?
“저는 희망을 얘기하러 가는 겁니다. 어느 순간 세상이 긍정적으로 비쳐졌어요.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어제 사숙(자광)스님을 뵈었더니 마음이 편합니다. 사숙스님께서 역정을 내시며 ‘천성산 천 개가 있어도 네 목숨보다 작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천성산을 위해 처음부터 목숨을 내놓았기 때문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문경에서 수경스님도 달려왔다. 수경은 지율이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수경 자신도 왜 이리 여자복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율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결국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지키지 못해 천성산에 들기로 마음 먹은 듯했다.)
一그래도 해야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이 대단해요. 천성산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한번도 희망을 놓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천성산 지키기는 틀렸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저에게 돌멩이를 던졌지만 한번도 절망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속이고 어떤 사람들은 저를 이용하여 돈을 챙기기도 했지요.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점점 지치고 힘이 들었고 어디로 갈 곳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생명이라기보다는 희망입니다.”
(스님은 결국 자신의 죽음을 마지막 희망으로 여기고 있었다. 나고 듦이 별 것은 아니라지만 생명을 위해 생명을 바친 예가 지구상에 있었던가?)
一그래도 스님…….
“저도 살고 싶습니다. 네 차례 단식을 했고, 300여일을 굶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겠어요. 제가 뜻한 바를 이루고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다면 밥장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못먹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보고 천성산을 놓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어찌 천성산에만 국한되겠습니까. 제가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다녀봤는데 가는 곳마다 자연의 신음소리를 들었어요. 이렇듯 우리 자연이 죽어가는데 왜 그만하면 됐다는건지 모르겠어요. 하나도 된 것은 없는데….”
(지율이 절집을 나온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산이 게으른 수행자였던 저를 불러 세운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바위를 깎는 포클레인 소리에 묻혀 그 소리는 아주 가느다랗게 들렸습니다. ‘누구 없나요? 살려주세요…’라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어머님의 신음같기도 한 이 소리는 지금 전국의 산하에 울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율스님 뒤의 천성산, 천성산 너머의 우리 산하를 보려 하지 않고 오직 지율스님만을 쳐다봤다. 거듭되는 단식투쟁, 그러나 어느날 돌아보니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곁에 있던 비구니들도 하나 둘 떠나갔다. 시민단체들은 은근히 그만하자는 투였고, 청와대 사람들은 종단과 얘기가 잘 되었는데 왜 그러냐고 했다. 더욱이 천성산을 함께 살리자며 유난을 떨던, 소위 믿었던 학자나 전문가들도 스님을 등지기 일쑤였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고 귓전에 천성산을 뚫는 기계소리만 아귀처럼 가득했다.)
一아직도 섭섭함이 남아 있나요?
“아닙니다. 다 비웠어요. 저는 이제 노를 놓고 가는 배입니다. 제 몸한테 미안합니다. 수행자처럼 걷다가 죽으려 했지만… 20일 굶으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질 않더군요. 내 명은 나도 모르는가 봅니다. 요즘 신륵사 강변을 걸었는데 너무 아름답더군요. 아니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대화가 끊기면 바로 침묵이었다. 만남의 반가움이 엷어지자 오후는 허허로웠다. 이대로 스님을 보내야 하는가. 수경스님은 일주문을 나서며 “꼭 살려내야 한다”고 했다. 어찌하면 살릴 수 있을까. 궁리를 거듭했다. 그것은 거처를 알리는 것이었다. 경향신문에 스님의 단식 기사를 싣기로 했다. 상경하며 지율스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렇게 믿었는데 이제 어찌하라고….” 스님의 탄식이 너무 아팠다. ‘세상에 쫓기는 스님에게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신륵사에 전화를 했다. 세영스님은 지율스님이 방금 떠났다고 했다. 세영스님은 전화에 대고 한참 동안 통곡을 했다. 지율이 불쌍하다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렇게 지율스님은 사라졌고, 다음 날 스님을 충주에 내려줬다는 택시기사가 나타났다. 충주에는 여동생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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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50일째 지율스님이 盧대통령에게 보내는 '유언'
6월30일부터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 터널'을 반대하며 3번째 단식을 시작한 천성산 내원사 지율 스님이 8월 18일로 단식 50일째를 맞았다.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은 어디에 정신이 있는 것인가? 지율스님과 천성산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대화가 불가능한 고집불통들인가? 프레시안에 올라온 고니아빠님의 댓글을 덧붙인다.
"남은 하루,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2004-08-18 오전 11:20:03)
[현장] 단식 50일째 지율스님이 盧대통령에게 보내는 '유언'
지율 스님은 단식 49일째 되는 17일 아침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기는 편지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노대통령에게 보내는 마치 유언과도 같은 글이었다.
"노무현대통령께
만일, 내 생에 하루가 남아있다면 그 하루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은 나라의 국운이고 민족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그 하루의 빛이 꺼지고 제가 땅에 묻히고, 남은 이름마저 묻는다 해도
세상이 빛으로 왔던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만은 가져가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저와 함께 천성(산)을 어둠속에 묻는다면
그때는....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렁저렁 아우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법을 알고 법을 바로 세워야 할 분이 당신이기 때문이며
수많은 생명을 묻은 뒤 찾아오는
이 땅의 피비린내를 역사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성의 아픔을 기억해주세요
지난날 당신이 "공약"했던 원칙과 약속이 아니라면
고향의 냇가에 발목을 적시고 미래를 꿈꾸었던 소년의 이름으로...
천성산의 아픔이 제게 빛으로 왔듯이
상처 입은 천성은 당신에게도 빛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아침 창으로 날아오듯이...
지율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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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 천 가지를 보는 법과 한 가지를 보는 법 = (고니아빠 / 2004-08-18 오후 1:33:34)
보통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그깟 천성산 하나땜에 목숨을 거는 지율에 대해서
또 혹자들은 비난합니다.
개혁의 격랑에서 온갖 고민이 많을 노대통령을 그렇게 흔들어서 뭘 얻을거냐고
그리고, 기술자들은 이렇게 욕합니다.
천성산 정도에 터널 뚫는 건 이미 그 예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정부관료들은 분노하기까지 합니다.
이건 한낱 비구니가 건드릴 수 없는 국책사업이라고
이렇게 지율스님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이유는 여러 가지 이지만,
지율스님은 단 하나의 이유만을 말합니다.
'생명에 대안은 없다'고
그렇습니다. 당신 생명의 대안으로서의 삶이 이 땅에 없듯이
온 우주에 존재하는 그 많은 소중한 생명들을 대신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눈으로 수 천 가지를 보고 수 천 가지의 이유를 대지만,
그 수 천 가지를 볼 줄아는 자신은 오직 하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 천성산때문에 목숨을 거냐는 보통사람들에게 지율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천성산이 파괴되는 것을 본 어느날 그 산의 생명들로부터 도와달라는 소리를 들었다'
'왜 하필 노대통령이냐, 국가의 중요한 기로에 선 대통령을, 그것도 개혁을 염원하는 온 국민의 염원으로 선출한 대통령을'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지율스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약속을 지켜라'
왜 천성산만 못뚫게 하느냐, 우리는 이미 그보다 더한 산들도 다 뚫었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지율스님은 이렇게 답합니다.
'뚫지 마라 하지 않았다. 제대로 조사하고 뚫어도 될만한 산이라면 뚫어라'
감히 국책사업을 가로막는게 일개 비구니라는데 분노하는 행정관료들에게 지율스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국가를 위한 사업이라면, 그 안에는 억조창생을 함께 살리는 도리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국책사업은 과연 그런 도리에서 이루어지는가?'라고
지율스님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여럿이지만,
지율스님의 답변은 오직 하나입니다.
"생명에 대한 끊없는 옹호와 사랑"
스님은 천성산에서 시작한 생명들과의 약속으로 오늘 더 많은 이들에게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에도 원칙은 있습니다. 누가 그 원칙을 어겼습니까?
양보와 화해에도 원칙은 있습니다. 양보와 화해를 통해서 미래는 더 밝아질 거라는...
당신들은 수 천 가지의 변명과 수 천 가지의 이유를 달았지만, 단 한 번도 원칙이 없었습니다.
수 천 번 양보와 화해를 이야기했지만 당신들은 단 한 번도 양보와 화해로 긍정적인 미래상을 그려주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율스님의 단식을 멈추지 못해 애닳아 하는 이유는 당신들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당신은 인간 지율의 죽음을 걱정하지만, 우리는 인간 지율의 죽음이 우리 영혼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걸 두려워 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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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단식 52일째, 지율 스님께서 죽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동샌분에게 '가족장'을 준비하라고 했다 합니다.
무엇이 한 사람의 생명을 다시 사지로 내몰고 있는 걸까요? 지율 스님이 고집스런 분이라 그런 것일까요? 과연 고집스런 사람은 누구인지...
오마이뉴스에는 이제 다시는 가지 안겠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어용선님의 글을 따라 갈 수 밖에 없었고, 이렇게 퍼왔습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국회의원 10명이나 있다는 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답답합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 밖에 할 것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단식 52일... 지율 스님이 동생에게 남긴 당부 (오마이뉴스, 김태형 기자, 2004/08/20 오후 3:56)
"내가 죽으면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고 네가 꼭 가족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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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8 02:05
지율스님이 27일 네번째 단식에 돌입하셨다고 하네요. 일방적으로 협의 결과를 파기한 환경부에 항의할 있는 방법이 단식뿐이라고 판단한 듯 합니다.
그리고 지율스님과 함께 해온 '도롱뇽 시민행동'도 기자회견을 갖고 곽결호 환경부장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곽결호 환경부장관이 (환경부로서 당연히 해야 할) '환경영향평가 재평가 작성'을 위반하고, '환경영향평가 재평가 요청'을 위반했다"며 "'환경교통재해등에 관한 영향평가법'에 의하면 '협의 내용을 통보받은 후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간인 7년 이내에 사업을 착공하지 아니할 때는 평가서를 재작성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고발 이유를 밝혔다.(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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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지율스님의 글 2005/01/03 02:49
작년 한해 지율스님의 단식 때 많이 아파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여전히 천성산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지만,
지율스님과 그에 힘을 보탰던 분들의 정성만큼
올해는 좀더 나은 쪽으로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저는 비로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한조각 땅을 찾았습니다.
저는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을 번저가게 할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그 가운데 저는 한사람의 일꾼이었습니다.
"만약" 이라는 말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
이후 일어 날 모든 업무적인 일은 도롱뇽 소송의 법적 대리인 이신 이동준 변호사님과 손정현님, 선생님께서 돌아봐 주시고 오랫동안 함께 해주신 천성산 대책위와 논의하여 진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제 곁에 있었던 철없는 동생에게 많은 것을 부탁했습니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어리섞음이 제 여동생의 몫입니다.
그동안 함께 연대하여 왔던 단체에서는 제가 모든 일을 개인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 하며 섭섭한 마음을 내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감히 그동안 함께 했던 시민단체의 운동방식이나 조직의 논리, 도덕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상태에서 정부는 조직과 단체, 언론의 힘을 잘 이용하고 있고 자짓 이 일이 정치적으로 이용 당할 수 있는 분란의 여지가 있기에 이를 줄이고 싶을 뿐입니다.
앞으로 ....천성산 문제, 생명과 환경문제는 .... 교육과 인간성 회복(도덕성)의 문제로 내려 서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생님들에게 보내 드릴 이 CD작업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득 작년 이맘때 ...일출을 찾아 화엄벌에 들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좋은날 되소서.....
을유년 아침 지율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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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4 12:55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가 있었던 지난 1월 12일은 지율스님의 단식 78일째날이었습니다. 7시경 저녁식사를 위해 정회를 하고, 다시 회의를 재개하기 전 천성산투쟁과 관련한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김혜경 대표께서는 그 전날 지율스님을 뵙고 한시간 반동안 면담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몇 차례 설득을 했지만, 단식을 멈추지 않겠다는 지율스님의 뜻이 확고해서 더이상 그에 대한 말씀을 못드렸다고 합니다. 단식을 푼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생명들이 인간과 공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풀리는 것이라는 했답니다.
지율스님은 이제 외부와 일절 연락을 끊을 작정으로 청와대 인근 독방에 1.5리터 생수 6개와 부탄가스 3개만을 사들고 들어갔습니다. 오늘로 단식 80일째입니다. 지율스님의 몸은 이미 죽은 거나 진배 없는데, 다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천성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도룡뇽 친구들 살리기' 때문이었습니다. 벌써 7개월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에 지율스님은 이미 한번 50일이 넘게 단식을 하신 적이 있고, 이번에는 돌이키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연두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경제에 걸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눈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나 봅니다. 우리의 자연과 생명과 환경이 수습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에서도 돈과 자본만이 전부입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어디에 쳐박아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몇 명이 죽어나가야 비정규직 문제에 천작을 하고, 얼마나 많은 빈곤층이 목숨을 끊어야 빈부격차에 고개를 돌리며, 몇명의 지율스님이 나와야 환경과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될런지... 아래 프레시안에서 강양구 기자가 마지막에 떠올린 말이 가슴에 박힙니다.
"이제 지율스님 걱정 안 하겠습니다. 지율스님 걱정하는 것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더 잘하는 게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의사 "지율스님의 몸은 이미 죽었다"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2005-01-14 오전 11:20:51)
단식 80일째, '생수 6개, 부탄가스 3개', 마지막 준비하는 지율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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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과 뭇생명을 살리기 위한 촛불문화제에 갔다와서 2005/01/29 23:51
오늘은 오랜만에 광화문에 다녀왔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갔을까요? 갔더니 3개의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보육교사들의 집회였던 듯 합니다. 광화문에 가는 길에 보니 "평등 지원"이라는 피켓이 보여더군요.
다른 하나는 동화면세점에서 있었던 촛불집회입니다. 1월 27일부터 매일 저녁 7시에 열리는 것이죠. 그것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집회였습니다. 2월에 있을 임시국회에 대비하여 지금부터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흐름을 종합해서 2월 4일(금)에 [국가보안법 완전폐지와 수구청산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연다고 하더군요. 지역위 게시판에 통일바라기라는 이름으로 이를 알리는 글이 올라왔어요. 작년 말 여의도에서 있었던 국보법 폐지를 위한 단식농성을 알리는 글을 올렸던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분들이 올린 듯 하더군요. 하지만 너무 성의가 없어서 오히려 역효과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해도 국보법 철폐투쟁에 대한 열의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는 '10만 촛불로 국가보안법을 끝장내자]고 하면서 2월 20일에 대규모 촛불행사를 갖기로 했다고 합니다. 올해도 '촛불켜는 밤'이 이어질 듯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뭘 추모하거나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것도 아닌데, 촛불을 왜 켜는 걸까요? 그러면 대중들이 쉽게 참여할까요? 과연 지금까지 촛불을 켜지 않아서 국보법 폐지에 힘이 실리지 않은 건가요? 이를 주도하는 이들의 머리 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저는 여기 가지 않았습니다. 100명이 조금 넘게 모였다고 하는데, 저도 들은 것이라 확실하진 않네요. 거기 있던 사람들이 광화문 교보문고 앞의 촛불집회로 오지는 않은 듯 싶습니다.
마지막 집회는 집회라기 보다는 그냥 노는 것이었습니다. [지율, 천성, 그리고 환경을 위한 촛불]이던가, 메모를 하지 않다 보니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2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단식 95일째를 맞은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한 범국민 촛불한마당을 가졌습니다. 범국민이라고 하지만 너무 조촐하지요? 그래도 맘에 맞는 사람들만 모여서 그런지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습니다. 같은 지역위의 권경락 동지의 모습이 보였는데, 아마 환경위원회 소속이어서 온 듯 합니다. 그리고 중앙당의 환경위원회 동지들과 민주노동당 서울시의원인 심재옥 동지를 비롯한 서울시당 동지들 몇명, 관악갑의 시민행동에서 일하는 박준우 동지, 민지네의 노아세님, 그리고 강남갑 지구당 깃발이 보였습니다. 서울시당은 인원이 너무 적어서 일부러 깃발을 올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참, 제 블로그 이웃인 희경님과 하이에나새끼님도 볼 수 있었는데, 인사를 못했습니다.
주로 짧게 한마디씩 하면서 이러저러한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민주노동당의 급조된 노래패 어처구니도 나와서 밥상이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웃음을 주었습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을 갈 때 사용하는 손잡이 부분을 얘기하는 것으로, 이것이 없으면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다고 얘기한다고 하는데, 그런 어처구니가 되겠다는 의미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심재옥 의원이 얘기를 해서 웃었습니다. 그런데 심재옥 의원은 거의 노래를 부르지 않던데, 나중에 노래를 얼마나 잘하는지 들어봐야겠습니다.
벌써 단식 95일째인 지율스님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촛불을 드는 것 밖에 없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정부와 청와대는 찾아와서 단식을 중단하라고만 할 뿐 단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는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그냥 그렇게 밀어붙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03년 국무총리실에 소속돼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관통터널 구간에 대한 노선 재검토를 맡았던 전문가들이 당시 검토의 문제점을 인정했다죠? 이들은 천성선 관통터널 구간보다 최소 3천7백억원을 절감하고 공사 기간도 1년 단축할 수 있으며, 천성산 터널을 뚫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대안노선을 제시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는 2003년 대안 노선을 검토할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이 안을 전문위원 검토에서 누락시켰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이 촛불한마당은 8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두가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빙둘러서서 신나게 헤드뱅잉을 하면서(머리가 긴 사람들 위주로) 마구 뛰고 몸을 흔들었습니다. 변변찮은, 주위헤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악기를 만들어서 연주하는 분들이 정말 신기하더군요. 거기서 작년 반전평화집회 등의 현장에서 꾸준히 노래하였던 별음자리표님도 볼 수 있었습니다.
참, 작년에 이라크 파병반대 집회를 축소시키는데 공헌했던 촛불집회가 싫어서 촛불을 들지 않기로 했던 결심을 버리고, 오늘은 촛불을 잡았습니다. 날씨가 춥기도 해서 촛불이 있으면 좀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일부러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기에 촛불을 들었습니다.
내일도 촛불집회가 6시 반에 광화문에서 있습니다. 저는 아마 민지네의 비정규직 기금마련 콘서트 '비정규직과 함께 어깨동무'에 가지만, 여기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지율스님과 뭇 생명을 반드시 살렸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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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100일단식이 남긴 것 2005/02/04 14:54
어제는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려 했습니다. 7시반에 지역위원회 운영위가 미리 잡혀 있었지만, 그 전에 공지를 띄우고 지율스님의 단식이 100째인 오늘만큼은 함께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갈 수 없었고, 먼 곳에서나마 마음으로 광화문의 촛불과 함께하고자 했습니다.
어제는 대부분의 언론에서 단식 100일째인 지율스님의 기사를 크게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극적으로 정부에서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수용하기로 하고, 3개월간의 환경영향 공동조사기간 동안 조사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4차단식을 시작한지 100일만에 지율스님이 이를 중단하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100일이 될 때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습니다. 50일, 80일, 90일 이렇게 뭔가 기록이 생겨야 언론에 나옵니다.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녔던 지율스님측 관계자에 따르면 기자들은 지율스님 단식 100일을 기념(?)하는 기사를 대서특필할 생각만 하였지, 지율스님이 단식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에는 신경을 껐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동조단식에 들어가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도 90일이 넘은 즈음이었습니다. 그 동안 뭘했을까요?
지속적으로 지율스님의 단식에 관심을 가지고 기사를 써왔던 프레시안에도 지율스님을 가리켜 '자살특공대', '위장단식', '근본주의자', '똘아이' 등 온갖 욕설이 난무하였습니다. 아마 이는 노무현 정권의 똘마니들도 이번 단식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에 먹칠을 하려는 의도였을 겁니다.
어제 집회에는 광화문에만 700여명이 모였다고 합니다. 종이 도롱뇽 12만 6천개에 담긴 염원도 많은 작용을 했을 것이고, 은하철도 999나 올챙이송, 꼬마자동차 붕붕 등의 동요와 만화주제가의 가사를 바꿔서(노가바라고 하지요) 집회에서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한 초록정치연대(프레시안, 2005-02-03, 촛불집회, '은하철도999', '꼬마도롱뇽붕붕' 등 개사곡 화제)나, 끊임없이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던 많은 사람들 덕분에 그래도 오늘은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전문적인 환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2004년 '올해의 시민운동가'로 뽑혔던 지율스님의 의지가 가장 큰 작용을 하였겠지요.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좋은 글을 퍼오고 저의 생각을 알리고 싶었지만, 왠지 그게 위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정산과 도롱뇽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온 분들 앞에서 나도 뭔가 했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았지요. 이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례를 만들었다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바로 생명존중과 인권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진보누리에서 직지님의 글과 프로메테우스에서 지율스님이 단식을 풀 때의 상황을 담은 강서히님의 기사를, 그리고 프레시안에서 지율스님의 단식을 둘러싼 언론의 작태를 폭로한 강양구님의 기사와, 단식 100일째를 맞는 지율스님의 심경을 그린 박태견님의 기사를 올립니다.
어떤 선례 (진보누리 게시판 베스트, 直指, 2005-02-03 19:46:50)
바로 생명입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백 가지 정치적 고려가 무모한 것으로 드러나고, 종교지도자라는 이름이 믿음의 진정한 체계 안에 자리하지 않는 "헛걸음"이 카메라에 잡히고, 종단 차원에서 참회기도가 이어지기까지 사태의 불씨는 그것이었고, 불길의 향방을 제대로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사뭇 꺼져가는 불꽃이 천지를 비추는 역설적 현실이 체감 여론입니다.
선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명분도 역전되고 있습니다. 실기를 거듭해 온 이 정부가 긴장하는 이유는 과연 어떤 선례가 될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부안이 흘린 피와 새만금의 좌절, 죽은 시화호들을 안고 신음하는 한반도의 초상 앞에서 기업도시촉진법을 버젓이 통과시킨 개발독점자본에게 거짓은 가라, 은폐하지 마라, 울산에서 부산까지 목을 축여 주고 이 땅의 혈맥을 잇는 습지에 수천 년의 타임캡슐이 있으니, 살펴라도 보자...절규를 수행으로 대신하는 지율스님은 어쩌면 이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꿀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디지털 말이 유신개발독재 마인드가 기간산업, 국책사업들로 이어지면서 주공, 도공, 토개공, 그리고 고속철도공단 등 가히 토목국가라 불리울 만큼 난개발 주역들의 몸집을 불려 준 결과가 오늘 지율스님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은 바 있고, 지율스님 스스로도 개발에 얽힌 구조적 문제에 연루되어 한 걸음이 형극이 되고 있다 하였습니다.
생명에 반하는 태도가 노동 착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반생명은 반노동과 불가분리하기에 중첩된 모순에 저항하는 모습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개발로 과포장을 하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사회적 교섭이건 비인간적인 본질은 폭로되게 마련이며, 이는 결코 해프닝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보스포럼이 충고하는 것은, 이 정부나 지배계급이 더이상 갈 곳이 없는 자가당착에 빠져들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로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유엔환경계획을 필두로 수백 개 사이트가 올라가 있는 인터넷 환경섹션에 불교환경운동 관련 사이트는 단 두 개입니다. 그 하나가 한국불교환경교육원, 바로 정토회입니다. 지율스님이 드시기까지 적쟎은 진통을 겪었다고 합니다. 극락정토는 믿는 마음이겠으나 이제 "부처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가 오고 있다..." 합니다. 전략은 발우공양 같은 사소한 것입니다. 도롱뇽을 접고 수를 놓고 하는 일들은 슈마허의 연성기술하고도 거리가 있는 듯이 비칩니다. 천성산은 가교입니다. 폭주하는 접속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 바람 앞에 간들거리는 촛불마냥 꺼졌다 연결됐다를 되풀이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조계종단이 오히려 귀를 기울이는 역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8년 장좌불와한 성철스님은 팔만대장경을 단 한 마디로 요약합니다. "마음". 지율스님이 천성산에 올린 초록의 꿈, 그 마지막 글제는 후회없는 사랑입니다. 팔 년을 뜬 눈으로 지샌 이유도 백일을 오로지 사랑으로만 온 몸을 태운 근거도 마음에 있었다는 유추가 가능합니다. 불생불멸하는 마음은 건널 수 없는 강으로만 여기는 불자들에게 돈오돈수행과 돈오점수행이 다르지 않음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지율스님은 세상에 오신 원력을 다 내어 그 "중도"에 이르신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산에도 사랑이 있습니다. 산 자체가 사랑입니다. 온 하늘이 뚫릴 듯한 비도 산은 다 받아서 수천 년을 품었다가 눈물 같은 앙금마저 걸러내고 흘려 보냅니다. 부처님이 말하지 않는 까닭은 잠자지 않는 까닭은,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이 있어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라고 지율스님은 써 두었습니다. 성철스님은 무의식까지 다 맑아지고 꿈의 경계가 지워질 때 무애로서의 승이 있다 하였습니다. 아함경에서는 질병이 창궐해도 수행자는 씻지 않은 채로 건강하게 견뎌낸 기록이 여럿 있다 했습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를 읽고 출가한 지율스님은 본래무물, 불입문자, 언어도단을 넘어서는 직지를 단식 수행으로 실현하였습니다. 대승기신론은 법신과 색신이 하나라 합니다. 성철스님은 대승만이 올바른 수행이라고 일갈하셨습니다. 다 헤어진 누더기 승복을 수십 년 손수 기워 가며 마지막까지 나는 거짓말쟁이였다고 진여를 찾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대승기신론은 진여문과 생멸문을 불이문이라 합니다. 지율스님은 아무도 돌려놓을 수 없는 사랑을 하시었습니다. 초록의 꿈 가운데는 물에 관한 단상이 있습니다. 생명의 모세혈관을 지탱해 주는 것은 물이다... 햇빛을, 아이들이 접은 도롱뇽을 받고 한없이 행복해 하는 지율스님, 단식 99일째의 모습입니다.
지율 승려로 격하하여 부르는 모 일간지의 논조는 지난 날 개발독재 세력의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민화 논리를 그대로 옮긴 듯합니다. 포장을 벗겨내면 피 흐르는 진보 진영의 시간들이 드러나 버리고 말 것을 과포장 안에서 허우적대는 망언을 유포하기에 바쁩니다. 이데올로기 우산... 접지 못해 진작에 폐기처분되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 모든 논란을 불식시키는 힘의 소재를 생명이라 하건 노동이라 하건 그런 구분은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단식 백일에 이르러 "선례"를 만들어내고야 마는 이 정부에게 우군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대응전략은 당연히 공유될 소지가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죠.
"노동"을 싸고 도는 생명운동, 지율스님의 단식을 근본주의적이라고 호도하는 입장에서는 읽기 어려운 그 관계가 실은 개발에 함락당한 우리 사회사를 적시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생산관계의 왜곡은 상상을 초월할 지경에 이르러 이제 국가 기간산업 규모의 초고층 일변도 개발이 경제를 독식한다 해도 아무도 놀라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환경을 그런 디자인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지배계급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가 드라마일 것입니다. 인간중심 환경관이란 실은 폭력적인 환경의 재구성에 다름 아닙니다.
반면, 생태는 늘 공동체를 지향하게 마련이지요. 천성산을 사백 번 오르내렸다는 지율스님이 부산 시청 앞 첫 단식 서른 날 무렵에 나비 한 마리를 보고 못견디게 눈물이 흘러내렸듯, 고향은 마음의 원형질 같은 것인지 모릅니다. 이 마음이 곧 생명이라 하면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겠지요.
지율스님 단식 푼다…정부, 요구사항 수용 (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2005/02/03 [22:57])
“참회하는 마음으로 일어서겠다”
지율스님 단식 1백일의 '언론 자화상' (프레시안, 강양구/기자, 2005-02-03 오후 4:31:17)
[기자의눈] 정작 눈귀 막은 건 지율스님 아닌 우리
<조선일보>는 2일 지율스님 단식 사태를 1면과 한 면을 터 보도했다. 이 신문은 1면에 2일 지율스님을 방문한 종교지도자들의 단식 중단 권유 목소리와 지율스님의 건강 상태를 보도하고, 다른 한 면에는 지율스님 어머니 임옥달(71)씨의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임씨의 인터뷰 자체를 문제삼을 일은 결코 아니다. 이미 임씨가 청와대 앞에서 "내 딸을 살려 달라"며 절규한 지난 1월27일, 이 신문을 비롯한 여러 언론들이 안타까운 사연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이렇게 넓은 지면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지율스님이 1백일 동안 단식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이 신문이 그 동안 단식 사태를 보도해온 태도와도 맥을 같이 한다. 이 신문은 부정기적으로 지율스님 단식 사태를 보도하면서 단식 근황만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다. 이런 식의 접근이 있기에, 일부 국민들에게 지율스님이 '자살 특공대', '위장 단식'이라는 어이없는 인신공격성 비판을 받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겨레> 역시 비판으로부터 완전 자유롭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예로 그동안 몇 차례 지율스님의 단식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공론화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있었지만 그 때는 웬일인지 보도에 소극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지난 2003년 재검토위원회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이 지난 1월28일 내놓은 대안노선. 천성산을 다치지 않고 건설비용을 3천7백억원이나 절약할 수 있으며 공기도 1년 앞당길 수 있다는 획기적 내용이었지만, <한겨레>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흘뒤인 1일자 사설에서야 '천성산터널 대안노선을 검토하라'는 글을 실어, 이 신문만 보는 독자들이라면 '도대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지금 지율스님 단식사태와 관련해 언론을 비롯한 정부, 환경ㆍ사회단체, 지식인들이 진짜 자성해야 할 대목은 한번도 우리가 그 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작 눈, 귀를 꽉 막은 것은 지율스님이 아니라 바로 이런 지율스님의 외침을 외면해온 바로 우리들이었다.
지율스님이 속세에 던진 '세가지 이야기' (프레시안, 박태견/기자, 2005-02-02 오후 5:53:01)
[단식 100일째] 어머니, 한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청와대
단식 99일을 맞아 생명이 경각에 달린 지율스님(48)을 일각에서 "자살특공대" "위장단식" 등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참여정부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으로도 해석가능하다. 지율스님은 과연 사바세계의 '정파적 중생'들로부터 이런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인가.
지율스님은 지난 2003년 부산역 앞에서 38일간 단식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루 3천배 기도, 45일간의 단식을 한 바 있다. 지율스님은 지난해 이때 적어두었던 일기 형식의 글을 엮어 자그마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지율, 숲에서 나오다>(숲 펴냄)) 이 책에는 '스님'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 지율스님이 단식동안 느껴야 했던 아픔과 번뇌가 곳곳에 배어있다.
자살한 노동자 이야기
[단식 스무하룻날] 고 김주익 열사
12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 가신
고 김주익 열사님의 애도 집회 행렬이
시청 앞을 지나갔습니다.
우리들은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 것일까요.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때묻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서
눈과 가슴이 저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독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보다는 괴로움이 적다던
권력의 힘과 자본의 논리 속에 꿈마저 매장시킬 수 없었던
한 노동자의 주검 앞에 삼가 머리 숙여 슬픔을 표합니다.
(고 김주익 열사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으로 회사의 노조파괴공작에 맞서 부산 공장내 크레인에서 1백29일동안 고공투쟁을 하다가 2003년 10월17일 목을 매 자살한 노동자다. 고인은 유서에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달 기본급 1백5만원, 그중 세금들을 공제하고 나면 남은 것은 팔십 몇만원에, 근속연수가 많아질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은 막막한 현실" 을 폭로한 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썪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인 나라"를 질타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편집자.)
청와대 이야기
[단식 서른하룻날] 헐거운 신발
걸을 때마다 발꿈치가 신발에서 빠져나간다.
아, 하고 마음속으로 짧은 비명을 지른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이 내게서 헐거워져 가고 있다.
자꾸 흘러내리는 바지춤과 품이 넉넉해지는 적삼도.
오후에 정보과에서 찾아와 강제 입원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것이 현재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의 지시 사항이다.
저들은 헐거워져 가는 내 육신에 또다시 손을 대고 싶어한다.
그러고 나면 내사 사랑했던 모든 것에 손을 댈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비리와 폭력으로 얼룩져 가는 이 땅에서 날마다
죽어야 사는 이 사회에서 죽음에 대해 연민할 리 없는 저들이.
나는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진실의 모습이기를 바란다.
또한 진실의 모습이 아니기를 바란다.
[단식 서른닷샛날] 슬픈 꿈
눈에 흙이 들어가도 천성산에 구멍을 내게 하지 않겠다고
기억도 흐린 꿈의 끝에서 버럭 소리지르며 새벽잠에서 깨어났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내 깊은 무의식까지 찾아와 위협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는 이 깊은 어둠이 싫다.
천성산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청와대의 간부와
통화했던 지인의 말을 빌면 그들은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한다.
죽이진 않는다고 한다. 입원실까지 정해져 있다고 한다.
준비가 다 되어 있다는 그들의 대답이 마음을 슬프게 한다.
죽이진 않는다는 그들의 말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입원실까지 정해져 있다는 그들의 말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들은 그들 식의 해결 방법이 있다.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죽이진 않는다.....꿈으로까지 찾아와 나를 위협하고 간다.
슬픈 꿈이었다.
위의 글에 달린 댓글
단식
터널에 딴지 걸지 말고 산을 더럽히는 사찰이나 없애라... 2005/02/05 18:13
새벽길
단식/ 서울에서 보는 것하고 천성산 주변에 살면서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은 합니다.
프레시안에 "[화제의 신간] '간이역'과 지율스님 사연 모은 <간이역>"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소개한 기사가 있는데, 거기 덧글로 '천성산 바로 옆에 사는 사람입니다.'라는 덧글은 제 사고를 조금 혼란스럽게 하네요. 그래도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http://www.pressian.com/scripts/opinion/mem_article_opinion.asp?article_num=30050205132138&s_menu=문화&idx=211&page= 2005/02/06 01:01
신선
자기 주장대로 결과가 안 나오면 또 거부하시고 다시 단식을 하실 것인가?
환경을 지키기 위한(?) 지율스님의 숭고한 단식은,
앞으로 공공사업을 추진시에 참고해야 될 선례를 만들어놓은 것이 아닌지....
결과적으로 보통사람들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다는 이유로 -실제로는자기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임에도-단식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천성산의 환경- 도룡롱까지도 배려하여, 자기 절을 지키기 위하여 단식하는 것이나, 국민(서울시민)의 환경을 위하여 판교주민들 가운데 한사람이 단식을 하면 그도 또한 들어주어야 하는 것 아닌지...헷갈림니다. 2005/02/07 03:50
새벽길
지율스님이 무조건 안된다고 하면서 단식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자는 것 뿐인 것으로 압니다. 게다가 천성산 개발 중단은 지난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공약이었고, 계속해서 정부가 약속을 위반해왔지요.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를 통해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를 겁니다. 저는 정부의 개발사업에 불리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신선님과 같은 여론을 업고 정부가 무대포로 밀어붙이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 되는군요.
그리고 신선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재산권만을 가지고 단식한 경우가 있었는지 의문이네요. 생명은 소중한 것이거든요.
위에 링크한 것은 천성산 옆 주민의 의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지, 다른 지역 사람들이 지율스님의 단식을 '자기 재산 지키기'라고 폄하하는 것은 좀 보기가 안좋습니다. 확실한 사실이 아니거든요. 2005/02/07 05:30
럭키보이
세상일을 종교적인 태도로 해결하려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도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지요. 자신만의 논리와 세계에 빠져 현실을 외면한체 대다수 국민이 낸 혈세를 낭비하게 만드는건 스님, 아니 종교인으로서의 도리가 아닙니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대승이 무엇입니까?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도룡룡도 소중합니다. 하지만 혈세 2조가 낭비됨으로써 보이지 않게 피해를 입고 서민들의 피와 땀은 더더욱 소중합니다. 지율스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보상하렵니까? 또 나라 들먹이며 나라책임이라고 할겁니까? 나라는 국민의 대의를 갖습니다. 지율은 대체 누구를 대표해서 이리도 국민에게 피해를 주는겁니까? 2005/02/07 14:50
새벽길
럭키보이/ 종교적인 태도로 세상일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는 것 맞습니다. 다만 지율스님의 단식이 꼭 종교적인 의미만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혈세라고 하셨는데, 국민이 낸 세금은 제대로 적정한 곳에 사용되어야 겠지요. 정부가 한다고 해서 무조건 타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자고 하는 것이죠. 또한 최근에는 지속가능한 개발로 가는 추세인데, 천성산 개발도 이런 것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환경파괴가 주는 낭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환경영향평가란 그렇게 세금이 엉뚱하게 사용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그에 따른 문제를 검토하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형국책사업을 무턱대고 했다가 막대한 세금을 날린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런 경우는 누가 보상해야 할까요? 저는 천성산 터널 공사를 할 때에는 그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기에 일단은 공사가 중단되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지금까지 대형 국책사업의 수혜자는 서민이 아니라 대부분 건설업자와 지역유지들이었습니다. 님이 말하는 '국민'에는 저나 서민들은 포함되지 않는 듯 하네요. 2005/02/08 00:14
사기극
어떻게 보면 100일 단식 사기극 일 수도... 최대한으로 언론에 관을 보이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이유는 사람의 인체는 단신을 하고 절대 100 일을 견딜수 없다는게 생물학적 견해인데 물만 마시고도 50일까지도 버틸까 모르겠는데 물만 마시고 또는 물도 안마시고 100일은... 상상이 안가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솔직한 입장과 견해를 밝히고 당당하게 스님답게 투쟁을 하시던가 하지 불제자의 몸으로써 어떻게 뻔뻔한 거짓말을... 희대의 사기극이 될수도... 2007/01/31 20:33
새벽길
별로 답할 가치가 없을 듯 하네요. ^^ 2007/02/01 00:36
hahizzang
지율스님 덕택에 집도 잃고 차도팔고 하신 분이 계시다면 어찌 하실련지요 . 럭키가이님의 글이 정말 와닿습니다. 모든분들이 게다가 한쪽의 견해만 보네요 새벽길님도 말투만 그럴싸하지 제가 직접 가서 약간의 조사만 해보아도 알겠던데 도룡뇽이 다 죽을것처럼 얘기하는건 정말 억측에 불과합니다. 지율스님이 그렇게 눈에보이는 생명존중만 하시는건 도리가 아니라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동네 죽어가는 강아지와 고양이들도 생각해 주시라고 말하고 싶네요. 2007/09/0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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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권리'로부터 배운다(배경내) 2005/02/19 13:03
자율스님의 100단식을 둘러싸고 자신이 뭔가 객관적이며,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 의한 문제제기가 심각하다. 안티카페까지 생겼다고 하니 대략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해찬 총리는 2월 16일 지율스님과의 합의에 따른 천성산 관통터널에 대한 환경영향공동조사 실시가 "나쁜 사례"이며,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렇게 "도룡뇽 하나 살리자고 국책사업을 중단시키는 게 말이 되나?", "극단주의적 환경론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도룡뇽 등의 자연도 좋지만, 인간이 우선 아닌가?"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천성산 관통터널 공사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실시 결정을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리고 단지 지율스님의 단식에 이은 생명 존중의 문제를 제외하고 이러한 문제를 인권의 눈으로 본다면 어떻게 보고 있나에 대해 궁금했다. 아무래도 자연보다는 인간이 존중되어야 한다면 다른 식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의 배경내 님이 인권하루소식에 좋은 글을 올려주었다. 배경내 님은 '개굴이'라는 대화명을 가지고 작년말 민주노동당 관악을지구당과 전교조 관동지부가 함께 진행했던 관악 청소년노동인권교육에 와서 진행자로서 교육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 주었고, 이번에 관악을지구당의 2월 당원월례교육토론에서 성 감수성 내지 성평등 교육의 강사로서 섭외가 고려되었던 분이다. 그런 그가 쓴 글인 만큼 나에게 주는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배경내 님은 "자연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연 보호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자연에도 현재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생존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개발정책의 결정과 재판의 기준이 될 때만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자연의 권리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고 또 자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인간에 의해서만 대행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인권 개념을 생태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편이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나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인간이 그 일부로서 자리잡고 있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본다.
동의할 수 있는 얘기이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승인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승인하는 것"이다.
<움틈> '자연의 권리'로부터 배운다(배경내, 인권하루소식 제 2752 호 [입력] 2005년02월17일 4:18:13)
인간중심적 발전권 개념의 재구성을 위하여
외국의 경우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인정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난개발에 제동을 건 판례들이 미약하나마 축적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자연의 권리 주장에 대해 매우 인색하다. 도룡뇽 소송에 대해 1심 재판부는 2004년 4월 "자연물인 도룡뇽 또는 그를 포함한 자연 그 자체에 대하여는 현행법의 해석상 당사자 능력을 인정할 만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고, 2004년 11월 항소심 재판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98년 3월에도 녹색연합이 낙동강 재두루미의 떼죽음과 관련해 재두루미를 원고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부적격 결정이 나온 바 있다. 이처럼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둘러싸고 판례들이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지만, 자연의 권리 주장이 던지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다.
자연의 권리 주장은 기존의 환경 관련 법률이 생물 다양성이나 생태계의 보전에는 무게를 두지 않는 인간 중심성에 기초해 있다는 반성으로부터 비롯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인권으로 발전해온 환경권 개념은 특정 개발사업이 인간의 재산권이나 생명권, 건강권 등에 직접적 피해를 양산할 경우 인간을 보호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연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인간이 보호를 요청하지 않는 한 자연 자체를 보전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의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자연 보호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자연에도 현재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생존권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이 개발정책의 결정과 재판의 기준이 될 때만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의미를 인정하더라도 자연의 권리가 현행 법체계 내에서 받아들여지기까지에는 상당한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의 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사람이 아닌 다국적기업들이 인간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얼마나 많은 전세계 자연을 효과적으로 파괴, 약탈하고 있느냐고. 그렇다면 왜 자연은 인간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할 수 없느냐고. 이어서 말한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승인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존엄이라는 가치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자연은 인간 밖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하는 것인 동시에 인간과 하나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가진 의미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권리 주장은 또 다른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자연'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 사이의 법적 다툼은 사실 '침묵하는 자연의 아픔을 들을 수 있는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려는 인간' 사이의 싸움이 아니냐는 것이다. 자연의 권리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통해서만 주장될 수 있고 또 자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인간에 의해서만 대행될 수 있는 것이라면, 기존의 인권 개념을 생태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편이 자연의 권리 주체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시간을 소모하는 것보다 나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발전권을 생태주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생태 파괴가 '발전'을 내세운 개발과정에서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발전권은 발전의 과정에 참여할 권리(자기결정권)를 권리의 핵심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어떤 발전을 추구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초기단계에서부터 자연의 독자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발전권은 '개인과 집단이 참여한 가운데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고 발전의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의미한다. 1986년 유엔총회에서 선언된 발전권은 애초 국제경제질서의 불평등, 인간의 포괄적 발전을 무시한 경제성장 위주의 개발정책, 발전과정에서 배제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 등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싹튼 권리개념이었다. 그래서인지 발전권 선언 어디에도 자연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존중을 명시한 조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1992년 리우선언과 이듬해 비엔나 세계인권회의 선언 등을 통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이 주창되면서 발전권 개념의 일정한 전환이 시도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도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정의를 중심으로 정의되었을 뿐, 인간과 다른 생물종 사이의 불평등 문제는 적극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그동안 자연의 가치를 등한시한 인간의 오만은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의 감소 등 생태위기의 심화와 인류 생존의 위협이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아 왔다. 그러하기에 기존의 발전권 개념이 가진 인간중심성을 반성하고,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생태주의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발전권의 주체는 여전히 개인과 집단일 것이고,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그 발전은 인간의 복지 향상만을 꾀하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다른 생명체의 존엄과 자연과의 공존을 함께 꾀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발전은 인간의 지속가능성만이 아니라 인간이 그 일부로서 자리잡고 있는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럴 때만이 발전의 혜택도 고루 돌아갈 수 있다. 생태파괴의 1차적 피해가 가난한 나라,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서부터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갯벌의 생명과 지역주민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함께 요구했던 새만금 투쟁, 도룡뇽의 독자적 가치를 주장했던 천성산 투쟁이 제기하고 있는 도전을 인권운동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기존의 인권체계 내에 생태주의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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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2. 24.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한다. 하나는 [인물과 사상] 편집위원이었던 김진석 교수가 서울신문 2월 19일자에 '근본주의적 단식의 문제점'이라는 글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운동 내부의 동의와 합의에 따른 집단적 저항행위를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한 종교인의 과도하게 근본주의적인 단식을 통해 획득되었다는 것이다. 혹시 극우 근본주의자가 그런 식으로 단식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어제 만난 경전이가 지적하는 것으로 인간이 100일단식을 한다는 게 말이 안되는데, 100일단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점에서 조갑제의 비난에 처음으로 동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물과 소금만으로 100일을 버티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종교인이라서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근거없는 답변을 주었지만, 여전히 궁색하다.
지율스님의 단식은 우리 사회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어보아야 할지 모른다. 그냥 침묵하고 있는 것이 면책의 길은 아닌 것이다.
김진석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2004년 최고의 시민운동가로 지율스님이 선정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운동진영의 동의와 합의를 얘기하는데, 정도의 문제가 있었고, 시민운동진영이 이에 대해 제대로 동참하지 못했다는 점이 평가받아야 할 뿐이지, 개인주의적인 단식이라고 비판받을 일은 아닌 것이다. 그가 종교적 신념에서 행동했다면 다시 검토해야겠지만, 나는 그 때문에 지율스님이 단식을 그리 오래했다고 보지 않는다. 환경영향평가가 그리 어려웠는가?
그가 투철한 환경운동에 대한 신념이 있는 활동가가 아니라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소박한 환경보호 의식이 있는 입장에서 절박하다고 했을 때 취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지율스님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싸움이 되었고, 지율스님이 택한 단식이라는 방식은 다른 이들이 동참하는 데 한계를 지웠다고 본다. 단식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김진석 교수가 운동진영의 동향에 얼마나 잘 알고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오해를 통해 환경운동연합과 천성산 대책위가 갈등은 있었지만, 대다수의 시민운동진영은 이에 동참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덧붙여 김진석 교수은 환경운동단체에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렇게 평론가로서 말하는 이들이 그리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100일 단식이 가능한가의 문제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들 자신들의 개인 경험으로 하루이상 굶는게 어려운데,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데, 경험으로만 따지면 저도 그 정도의 단식은 한 적이 있었지만, 그리 부담이 되진 않았던 듯 싶다. 오히려 얘기해야 할 것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하는 단식이 어느 정도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여부가 아닐까. 차라리 폭식투쟁을 하든지 말이다. 이제 단식이라는 자기학대방식의 투쟁은 지양했으면 좋겠다.
덧붙여, 삐딱선님이 '노빠' 현상의 배후에는 한국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고 봤을 때 김진석 교수가 노빠여서 그렇다는 댓글을 붙여주었다.
[열린세상] 근본주의적 단식의 문제점 (서울신문,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2005-02-19)
한 승려의 항쟁이 가져온 승리는 그 안에 갑갑함과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 승려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국가적 분쟁을 해결하려고 나서야 한단 말인가? 물론 이 경우 그의 목숨은 단순히 개인의 목숨이 아니라 생명가치를 교리 차원에서 옹호하고 있는 불교계의 목숨을 상징하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교계가 범 교단의 차원에서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고,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나섰다고 해도 항거는 성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연약한 여자 승려 홀로 극단적인 단식에 나섰기 때문에 항거는 관심을 끌었고, 정부는 굴복했다.
그 단식은 한국 생태운동의 성과이지만 동시에 함정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은 시민들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이루어진 게 아니라, 한 승려의 도박에 가까운 단식을 통해 얻어진 성과이기 때문이다.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식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지만, 사람들은 꼭 그 단식에 동의해서 열광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방식의 극단성에 홀린 듯하다. 나는 여기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과격한 저항 자체를 비판하자는 게 아니다. 사회적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 정부 정책에는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다. 80년대 이후 유럽 녹색당 계열의 운동가들도 상당히 격렬하게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나 교통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저항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행위가 생태 운동단체의 내부적 동의와 합의에 따른 집단적 저항행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승려 지율의 저항방식은 개인 중심의 시위일 뿐 아니라 과도하게 근본주의적 성향을 띤다.
왜 생태운동은 합리적이고 시민참여적인 방식에 의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종교적 근본주의 방식에 의존한 채 뒤뚱거리는가? 이 물음은 환경운동단체에도 화살이 돼 날아간다. 왜 환경운동은 시민들의 저변적인 참여와 연대를 확산시키지 못하고, 명망가적 개인과 사제들의 극단적 투쟁에 엉거주춤 기대고 있는가? 왜 민주주의는 정부 단체와 시민들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이르지 못한 채, 비참여정부와 종교적 근본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가?
물론 종교단체는 생태운동에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 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지나치게 교리 자체의 순수성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교리의 이념성에서 출발했더라도 시민 사회의 세속적이고 사회적인 동의로 확대되고 확산돼야 한다. 또 명망가적 사제의 영향력에 너무 의존하는 대신, 자발적인 시민들의 민주적인 연대로 녹아들어가야 한다. 사법 만능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지만, 일단 민주적 절차에 의한 재판에서 결정이 나면 승복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와 달리 근본주의적 단식은 이런 민주적 저항 방식과 충돌하기 십상이고, 자칫하면 도박이 될 위험이 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도박적 개발주의와 자본주의가 고질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태적 저항조차 도박적 근본주의로 가야 할까. 그 경우 갈등과 도박의 악순환만 초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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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5 (금)
경향신문 김택근 출판본부장의 2월 23일 칼럼은 김진석 교수의 글에 대한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엄밀하게 대당하지는 않지만...
행정개혁을 할 때나 재정개혁에 있어서 학자들은 제로베이스를 많이 얘기한다. 지금까지 투입된 것(매몰비용)에 대한 고려 없이 판단할 때 최선의 대안이 제출될 수 있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미 투입된 노력, 비용, 자원 등을 염두에 두다보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근거에서이다. 새만금 공사나 천성산 터널 공사와 같은 대형국책공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왜 오히려 공사강행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사회경제적 손실로 파악하는 걸까? 게다가 국책공사를 경제논리로만 계산하는 것의 문제점은 누누히 지적된 바 있는데, 이는 간과되고 있다. 여기에 지율스님의 단식과 관련한 핵심이 있다. 지율스님이 말했듯이 “스님을 보지 말고 그 뒤의 천성산 생명붙이를 봐"야 하지 않은가.
이 글이 경향신문 미디어칸에 올라오자 추천(꽃을 던지는 것)보다는 비판(돌을 던지는 것)이 더블 스코어로 많다. 아직까지 세상이 바뀌기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아침을 열며] ‘年2조원 손실’의 허구 (경향신문, 김택근 본사 출판본부장, 2005년 02월 22일 18:08:18)
지율스님이 “저를 보지 말고 제 뒤의 천성산 생명붙이를 봐달라”고 그토록 원했지만 사람들은 지율스님만을 쳐다봤다. 언론도 스님의 단식 날짜만을 꼽았다. 모두 100까지 헤아렸다. 그러다 단식을 풀기가 무섭게 스님을 다그쳤다. 감성적 환경운동, 환경 극단주의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구사하여 나무랐다. 공사를 중단하면 연간 2조원이라는 사회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이냐며 꾸짖었다. 국민의 혈세(血稅)가 새고 있다고도 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관계자에게 ‘연간 2조원 손실’의 산출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고속철도가 늑장 개통되었을 때 발생하는 제반 사회 경제적 손실을 환산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는 고속철도가 개통되는 것은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사회 경제적 손실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고속철도 건설공사는 그대로 강행되어야 하고, 이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적 손실만 키우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 아닌가.
우리는 국책사업을 중단할 수는 있을망정 취소해서는 안된다는 묵시적 동조를 해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사강행을 전제로 모든 일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스님과의 약속은 한갓 단식을 풀게 하려는 달래기에 불과한 것이며, 그들에게 스님은 한갓 훼방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생명을 위해 일찍 공사를 중단해서 빼어난 자연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활력을 얻고, 동식물을 뛰놀게 함은 왜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 것인가. 심각한 환경훼손으로 엄청난 자연재앙을 막았다면 조기 중단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얘기는 왜 없는가.
물을 막아 거대한 농지를 만들겠다던 새만금공사도 마찬가지다. 쌀소비가 줄어 농지 확보가 별 의미가 없고, 수질이 악화될 우려가 있고, 경제성도 없으니 사업계획을 바꾸거나 취소하라고 법원이 판결하자 “더이상 방치하면 경제적 손실이 크다”며 정부는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했다. 10년 만에 그 효용성이 파도에 다 씻겨갔지만 정부는 공사강행의 구실로 또다시 경제적 손실을 들었다. 기왕에 쌓아놓은 방조제가 떠내려가 연간 8백억원의 손실을 입는다는 것이다. 지금 새만금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가지고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 정부는 새만금공사의 완공을 전제로 손실액을 환산하고, 이를 다시 공사 강행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16일 교토의정서가 발효되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토의정서 발효는 환경문제를 경제문제로 끌어안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생활쓰레기를 버릴 때 돈을 내듯이 온실가스를 초과 배출하면 돈을 내야 한다.
선진국은 이미 온실가스 줄이기에 온 힘을 쏟고 있지만 우리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이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이고, 배출량 증가율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리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는 것은 그만큼 산야가 오염되고 있다는 방증인데도 모두 경제만 걱정하고 있다. 환경은 아직도 한가한 이야기다.
개발과 환경보존을 놓고 싸울 때 제발 공사강행의 명분으로 ‘사회 경제적 손실’을 들먹이지 않기를 바란다. 결론을 미리 내놓고 마지못해 협상을 벌이지 말기를 바란다. 보존되는 산야에도 값을 매겨야 한다. 그 둘을 견줄 수 있는 새로운 계산법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우리 사회가 생명을 지키겠다고 생명을 내놓은 그 절규에 돌을 던져서는 안된다. 모든 것을 백지상태에서 점검하지 않고 결론을 내는 것, 그것이 ‘사회 경제적 손실’이다. 우리 사회는 또한번 지율스님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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