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교수라고 말하면 박홍규 교수에 대한 타당한 설명이 될까. 그에 대한 이해는 괴짜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가 쓴 책 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배울 점이 많다.
그 동안에도 박홍규 교수에 대해 많은 말을 들었지만, 아래 경향신문의 창간특집기사는 박홍규 교수의 일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나라면 여전히 그와 같이 살기는 어려울 듯 싶다. 학연, 지연에 얽히기 싫기는 하지만, 이미 나는 그 혜택을 누리면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거기에 얽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아나키즘과 같은 유사 근본주의에 적응하기엔 고려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걸 안다.
술자리는 싫지만, 맘에 맞는 이와 얘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기쁨만큼 즐거운 게 또 어디 있을까. 물론 회식문화는 거부한다만 일률적으로 모임을 기피할 필요가 있을까. 대충 적당히,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도 충분했으면 좋겠다.
----------------------------------------------------- [창간특집]학연·지연 얽히기 싫다, 학기중 회식도 “NO” (경향, 최슬기기자, 2008년 10월 05일 17:45:43) 영남대 교수 박홍규, 수많은 저서 지재권 주장 안해…먹고 남은 밥 도시락 싸 출근
땅은 ‘국토÷7천만’ 만큼 소유…필요 없는데 가지는게 속박
‘그’는 초등학생도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를 가져본 적이 없다. 운전면허증도 승용차도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터는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간다. 점심 도시락도 꼭 싸들고 다닌다. 머리는 다듬지 않아 항상 헝클어져 있고 수염도 텁수룩하다. 신용카드는 있지만 쓰지 않고 TV도 안보고 인터넷도 거의 하지 않는다.
각종 회식 자리에도 가지 않는다. ‘삼천리 금수강산을 남북한 인구로 나눈 면적만큼만’ 땅을 사 자기 먹거리의 농사를 짓는다. 첨단 정보화시대에 ‘아날로그 생활’을 하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는 사람. 누굴까.
조금만 더 써보자. 그는 대학 교수다. 해마다 3~4권씩, 지금까지 60여권의 책을 펴냈다. 주말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음악 듣고 화랑도 찾는다. 직접 그림도 그리고 등산도 한다. 이해·연줄에 얽히지 않은 친구나 지인들을 집으로 초청, 가마 솥에 장작불 피워 소머리 곰탕도 끓이고 술잔도 나눈다. 수십권의 책을 쏟아냈지만 전공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그 분야가 법·예술·사회·인물 등 다양하다.
이렇게 사는 사람, 영남대 박홍규 교수(56)다. 노동법을 전공한 법학자다. 지난 해 법학과에서 교양학부로 옮겼다.
자신이 직접 일군 텃밭에 앉아 있는 박홍규 교수. 박교수는 배추·무 등 30여가지 채소를 가꿔 자급자족 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그는 학교 근처 농촌마을인 경북 경산시 압랑면 당음리에 산다. 10년 전 전세로 있던 대구의 아파트를 나와 이곳으로 왔다. 부인(서현숙)과 학교 주변을 산책하다 ‘당시(唐詩)’를 연상케 하는 ‘당음리’란 지명에 끌렸다. 그는 평소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생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왔다. 땅을 산다면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도 나름대로 계산해뒀다. 결론은 한 명이 990여㎡.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지만’ 삼천리 금수강산을 남북한 인구 7000만으로 나눈 수치란다. 자기 먹거리의 농사를 짓기 위해 이 정도의 땅은 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두 자녀는 대학 진학으로 떠나 살고 있거나 떠날 예정이어서 자신과 부인, 두 사람의 몫으로 1980여㎡를 샀다. 이곳에서 150여m쯤 떨어진 곳에 집도 구했다. 길 건너 공동묘지와 붙어있다시피한 곳이다. 이렇게 집도 사고 텃밭도 사니 아파트 전세금 1억여원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의 하루 일과는 ‘대략 여름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맞춰져 있다. 보통 오전 4시쯤 일어나 오후 8시 조금 넘으면 잔다. 새벽에 일어나 2시간30분가량 글을 쓰거나 책을 읽다가 부인과 함께 마을 주변을 산책한다. 그 전에 마당 옆 닭장에 가 모이도 주고 밤새 달걀이 몇개나 생겼는지 챙긴다. 10여 마리의 닭과 병아리가 이들 부부가 자급하는 먹거리 가운데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다.
텃밭에는 배추, 무, 콩, 고추, 옥수수 등 다양한 작물을 심어놓았다. 철 따라 작물을 바꿔가며 해마다 30~40가지의 ‘먹거리’를 재배한다. 쌀 빼고는 밭에서 나는 모든 작물을 자급하는 셈이다. 매실과 자두, 감 등 유실수도 심어놓았다. “9년 전 심은 호두는 올해 처음 열렸는데 청설모에게 수확의 기쁨을 빼앗겼다”며 부부는 웃었다.
텃밭 한 쪽에는 컨테이너 창고와 허름한 농가 한 채가 들어서 있다. 40여개에 이르는 장독과 책, 오디오, 농기구 등이 빼곡이 이들 공간을 메우고 있다. 장독에는 매실엑기스와 쑥효소 등 ‘자급용 발효식품’들이 담겨있다. 농가는 박 교수가 흙벽돌을 빚어 쌓아 만들었다. 집이라 하기엔 허술한 구조물이지만 그는 텃밭을 가꾸다 이곳에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그린다.
아침산책 후 자급을 위한 텃밭에서의 노동 시간은 1시간가량. 퇴근 후 다시 텃밭을 돌보거나 휴일에도 그때그때 팔을 걷어붙이지만 상당 부분이 집에 홀로 남은 부인 몫이다. 이 때문에 부인으로부터 “농사 일이 공평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그는 “농사 일에 관해서는 아내가 주인이고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머슴”이라고 말했다.
아침식사는 밭에서 난 채소에다 된장국을 넣고 비빈 비빔밥 한 그릇이 전부다. 다른 반찬 없이 먹고 남은 밥과 국으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학교까지 2~3㎞를 자전거 타고 다닌다. 빨리 달리지 않는다. 천천히 페달을 저으며 풀 냄새도 맡고 하늘도 보고 연꽃 밭도 구경하며 간다.
그는 휴대전화도 없다. 가르치고 연구하고 글쓰는 일에 자동차나 휴대전화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갖게 되면 그것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할 거라고 했다. 자신이야 전혀 불편한 게 없다 해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편을 겪지는 않을까. 조교 등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항상 집 아니면 연구실에 있기 때문에 연락이 안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도시락을 고집하는 건 ‘학생 때부터의 습관’이기도 하고 군대처럼 구내식당에서 밥 먹기 위해 식판 들고 줄서는 것도, 밥 한끼 먹기 위해 몇 십분씩 자동차 타고 나가는 세태가 싫어서다. 연구실 한쪽에 ‘학기중 회식 NO’란 문구가 적혀 있다. 대상이 동료 교수든 학생이든 학연·지연·혈연 등의 각종 연줄로 엮여 벌어지는 부조리를 경계하기 위해서다. 법대학장으로 있을 땐 학장실을 세미나실로 바꾸고 한 달에 2~3번 꼴로 있던 회식을 1년에 2~3번으로 줄였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공적으로 회식이 행해지는 것도, 끝없이 먹고 마시는 회식문화도 싫다고 했다.
이번 학기에 그가 가르치는 과목은 ‘노동법’과 ‘법과 예술’, 두 과목. 요즘 연세대에도 강의를 나간다. 그의 수업엔 중간고사니, 기말고사니 하는 시험이 없다. 리포트나 ‘페이퍼’를 받아 학생들이 얼마나 자신의 생각을 담았는지 평가해 점수를 준다.
그의 연구실엔 ‘그리스 신화의 이해’ 등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한 책들이 쌓여있다. 지금까지 쓴 책 대부분이 그렇듯 우리 사회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비판하는 책을 쓰고 있는 중이다. 국내에 그리스 로마신화와 관련한 책이 500여가지가 나왔지만 하나같이 영웅담으로 미화하는 것뿐이어서 비판적인 책도 있어야겠다 싶었다. 그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살인·강도·침략·근친상간 등 각종 범죄행위로 머무려진 ‘서양제국주의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책 제목은 ‘누가 그리스 귀신을 숭배하는가’로 잡아놨다. 한국 지성계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서양사대주의와 문화적 쏠림 현상이 심해, 작심하고 ‘서양문화 비틀어 보기’에 치중할 참이다. 최근에 니체를 추종하는 한국 지성계를 냉혹하게 비판한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을 펴낸 데 이어 ‘누가 함부로 플라톤을 예찬하는가’, ‘누가 함부로 릴케를 노래하는가’도 탈고해뒀다. 한동안 그에게서 ‘누가’ 시리즈가 쏟아져나올 것 같다.
그동안 그는 60여권의 책을 썼고 수십권의 번역서를 냈다. 우리 사회에 반드시 있어야 할 책인데도 소개되지 않았다 싶으면 번역했고 모두가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으면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책을 썼다. 그는 “100명 중 99명이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1명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지평도 넓어지고 차원도 한 단계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책 쓰는 것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기에 ‘지적재산권’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는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특별하게 잘하는 한 가지’가 그림 그리기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법대로 진학했다. 그러나 ‘출세’와 ‘밥학’ 이런 말들이 싫었다. 그래서 다들 민법·형법 공부할 때 자신은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노동법을 택했다. 그리고 야학 등에서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육을 하고 고흐, 밀레 등 ‘노동자계급’ 화가들의 이야기를 했다. 베토벤과 존 레논의 음악도 함께 들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잘 씻지 않는다. 천성 탓인지도 모르지만 필요 이상으로 물을 낭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 같아 께름칙한 것도 이유다. 수염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위로 자른다. 매일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은 귀찮기도 하지만 ‘수염을 기르는 것 가지고도 시비를 거는’ 우리 사회의 획일성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있다. 그는 물욕·돈·힘·공공성 붕괴·인조·획일을 대한민국의 ‘육적(六敵)’으로 지적했다. 돈과 힘 등으로 가치를 따지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고도 했다.
“국가 권력이든 관습이든 그 무엇이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서는 안됩니다. 무엇이든 넘치도록 갖는 것도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죄악입니다. 욕망을 최소화하고 의식주까지 간소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아나키즘(Anarchism). 사전에는 ‘모든 정치적인 조직·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데올로기 또는 이를 실현하려는 운동’이라고 나와 있다. 흔히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되기도 하고 아나키스트는 강권적 국가나 권력에 맞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테러리스트로 인식되기도 한다. 국내에는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 이념으로 수용돼 단재 신채호, 박열, 무력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 등이 이 계열에서 항일투쟁을 벌였다. 그동안 아나키즘은 식민지 치하 등 한계상황에서 폭압적인 권력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위해 나올 수밖에 없었던 테러 등의 모습만 부각돼 잘못 인식된 점이 많았다.
촘스키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부당한 권력이 모두 사라진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이 아나키즘”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런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 등을 강조하며 아나키즘을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물신(物神)주의 등에 맞서는 실천 대안의 하나로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2001년 뜻을 같이하는 교수 등과 함께 한국아나키즘학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아나키즘은 모든 지배와 권위, 권력을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와 자치, 자연을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소개했다. 국가 만능주의, 지배 과잉주의, 자본 제일주의에 반대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며 ‘자치’하는 삶이 아나키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을 부당하게 지배하는 것들에 대해 저항한다는 공통점 말고는 관점에 따라 아나키즘이 다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나키즘에 관한 생각은 다양할 수 있어도 적어도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삶에는 아나키즘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한겨레21에 쓰는 박홍규 교수의 칼럼이 아래 글로 끝난다고 한다.
박홍규 교수는 괴짜이다. 법학교수이면서도 법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글들을 많이 번역도 하고, 쓰기도 하였다.
게다가 아래 글처럼 말 뿐 아니라 행동에 있어서도 실천적이라면 배울 것이 많지 않을까.
나의 초라한 보수주의 (한겨레21 2007년03월15일 제651호,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어제 참 오랜만에 ‘진보’ 교수들과 개강 술 같은 걸 마시면서, 정규 교수직 임금을 10%만 깎아도 비정규 교수직 임금은 2배가 되는데 그런 운동을 하자고 했더니 모두 웃었다. 교수 임금을 반으로 깎아 정규직 수만큼 비정규직을 고용하자고 한 제안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것인데도 ‘진보’ 정규 교수는 물론 비정규 교수직마저도 냉소한다. 1주당 책임수업 시간을 반으로 줄여 노동량을 두 배 넓게 분배하고, 비정규 교수직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확보하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해도 묵묵부답이다. 그래야 최소한의 연구와 강의가 가능하고, 대학인이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이라도 누릴 수 있으며, 조금이라도 대학다워진다고 해도 메아리가 없다. 그야말로 대학과 사회를 ‘보’호하고 ‘수’호하는 ‘보수적’ 견해여서인가?
비정규직 위에 군림하는 교수들
화제가 교수들 논문 표절로 옮아가서 나에게 저작권에 대해 묻기에 ‘카피레프트’(copyleft)라고 하자 모두 다시 웃었다. 가령 몇 년 전 ‘꽃으로도 아이들을 때리지 마라’는 나의 책 제목을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고 바꾸어 사용한 어느 탤런트가 나에게 사과 전화를 했을 때도 단 한마디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의 글 전체나 일부를 베껴도 내 재산을 훔쳤다고 시비하기는커녕 내 재산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진보도 사회주의자도 아니지만 생산재의 분배라는 차원에서 저작권 해제를 주장하는데 사실 이것도 옛날 생각이니 보수다. 반면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저작권을 앞세워 원고료나 연구비를 챙기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이 진보다.
수많은 비정규 빈민 위에 군림하는 소수 정규 교수들은 연구비 경쟁이나 학회 권력 또는 실제 권력의 쟁탈을 통해 더욱 가파른 계급을 형성해 극소수 엘리트로 등극한다. 최근 표절 사건의 당사자들은 그런 경쟁과 쟁탈에 탁월한 사람들이지만, 그런 경쟁 체제 자체가 문제되지는 않았다. 그런 경쟁과 쟁탈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것에 문제가 많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도 모두들 연구비 따먹기에 환장인 것이 오늘의 대학이다. 심지어 연구비는 개인 돈이 아닌데도 그렇게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체질은 철두철미 자본주의, 이기주의, 신자유주의인데도 머리만 사회주의, 공생주의인 사람이 너무나 많고, 특히 대학이나 예술 쪽이 그렇다. 가난한 학생이나 학자, 그리고 예술가를 정규 교수가 아니면 다른 누가 돕겠는가? 그나마 월급이라도 받는 이들이 그들을 도와야 하지 않는가? 머리야 어떻든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대학이 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도 나는 보수다. 이를 위해 교수노조 대신 연구비거부연대를 만드는 것이 어떨까? 특히 탁월한 사회주의 진보들이 앞장서서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하고 더욱 어려운 것은 생산재의 분배가 아니라 노동과 소득의 분배이다. 외국 대학에 비할 것도 없이 우리 대학의 교수 수는 끔찍할 정도로 적은데도 대부분의 교수들은 교수를 뽑는 데 지극히 소극적이다. 임용 후보자가 결정돼도 개인적인 감정으로 뽑지 못하게 만드는 교수들도 많다. 교수로서 담당해야 할 책임 시수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는커녕 책임 시수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담당해 초과수당으로 큰돈을 버는 교수들도 많다. 성찰적인 강의 대신 취업 관련 학과목만 늘어 대학이 완전히 취업학원이 된 마당에 그들은 명강을 하는 유명 교수이고 현실 참여와 연구비 수혜도 최고다.
그들이 자가용을 타고 사라진 뒤…
교내 골프장 설치에 반대하고, 교수들만 교내에 주차하는 것에도 반대하면서 학생이나 교수 모두 주차를 금지하자고 했더니 교수들만이 아니라 학생들도 반대한다. 공생을 위해 대학에서는 자가용이나 휴대전화를 쓰지 말자고 하면 교수는 물론 학생들도 컴맹인 나를 시대착오적 골통 ‘보수’라고 비웃는다. 술자리에 있던 ‘진보’ 교수들이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받더니 결국은 자가용을 타고서 모두 사라진 뒤, 휴대전화도 자가용도 없어 마지막까지 자리를 ‘보’호하고 ‘수’호한 뒤 술값을 내고 나왔을 때 비로소 공생을 느꼈다. 아, 나의 초라하고 시시하며 덧없는 보수적 공생주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