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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인터뷰, “난 지금 이 사회 흐름에 문제제기 하는 것…천성산, 못 놓는다” (경향, 08-10-23)

새벽길 2008. 10. 25. 07:44
그 동안 지율스님을 잊고 지냈다. 내가 한참 블로그에 지율스님과 천성산에 대해 글을 쓴 것이 2004년 말에서 2005년 초이니 그 때가 지율스님의 4차 단식 무렵인 모양이다. 
 
언론과 법정투쟁을 하고 있다니 그 넘의 2조원의 상처가 컸던 모양이다. 하긴 이런 부분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한다. 아래 담아놓은 글에도 있지만, 저들은 지율스님의 단식 때문에 공사가 지연되어 2조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고 선동해대었다. 그것은 여전히 지율스님의 단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이들의 근거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 또한 보수언론과 한패였고... (이 사안은 노무현 정권의 본질을 제대로 드러내주기도 한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었단다. 이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참 무관심했었다. 뭐든지 지속적으로 붙여서 끝을 봐야 하는데... 경향신문의 지율스님 인터뷰 기사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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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난 지금 이 사회 흐름에 문제제기 하는 것…천성산, 못 놓는다” (경향, 영덕 | 대담 김택근 논설위원, 정리 최희진기자, 2008년 10월 23일 09:49:58)
산골은거 2년 반…언론과 나홀로 법정투쟁
 
지율스님이 숨어든 곳은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깊은 산속이었다. 5차 단식을 중단한 뒤 주변의 부축을 받으며 이 곳에 온 것이 2006년 봄의 일이다. 그 때 세상 인심은 참 흉흉했다.
 
경북 영덕 산골의 누옥은 오랜 단식과 여론의 뭇매로 탈진한 지율스님에게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스님은 “이곳은 필요한 사람에게 쓰게 하고 나는 좀더 멀리 떠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영덕 | 박재찬기자
 
지율스님은 2003년부터 경부고속철도의 천성산 구간 터널공사를 반대하며 모두 350여일을 굶었다. 본래 단식이란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겠다’는 결연한 의사의 표현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이 단식을 너무 쉽게 논평했다. 언론은 지율스님이 단식으로 지키려고 했던 천성산의 환경 문제보다 스님의 단식이 진짜인지에 관심이 더 많았다. 여론은 ‘비구니 하나의 아집으로 공사가 지연돼 2조원의 혈세가 낭비됐다’고 비난했다. 결국 터널 공사는 강행됐고 지율스님에게는 상처 외엔 남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지율스님은 천성산을 향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당시 한국철도시설공단은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145억원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지율스님은 2조5000억원을 근거로 들며 천성산 보존 운동을 공격했던 거대 신문사들을 상대로 나홀로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5일 경북 영덕 칠보산 기슭에 살고 있는 지율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소송에 대해 “170배나 부풀려진 숫자가 사용됐는데도 누구도 반성하지 않는 이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에 다시 나설 생각은 없다. 그는 “천성산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모습을 감춘 지 약 2년 반 만에 첫 인터뷰입니다. 다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그런 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려고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 안 나가려고 하는 거예요. 한 번은 해야 될 것 같아서요. 지금 하고 있는 일(천성산 관련 소송)이 있기도 하고. 모르겠어요.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너무 잘못 알려지고 있는 것이 많고…. 제 기사가 나와도 한 1년은 안 봐요. 텔레비전도 안 켜요. 무서워서. 그래서 1년쯤 지나고 좀 가라앉으면 봐요. 소심해요.”
 
-스님이 영덕으로 오신 게 2006년 5차 단식을 끝낸 이후입니까.
“동국대 병원에서 퇴원하고 갈 데가 없어서 왔어요. 여동생이 데려다 주고 갔지요. 여기 들어올 때만 해도 몸이 아파서 못 걸었어요. 동네 어르신들이 참 많이 애쓰셨어요. 밥도 해다 먹이고. 좋은 곳에 왔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자기가 사는 곳이 세상의 중심인 것 같아요. 이런 데서 사는 것은 생각도 안 해봤는데 사니까 살아지고.”
 
-이 마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10년 전에 우연히 들렀어요. 저 밑에 소나무 숲이 참 좋아요. 그 길을 따라 오다가 이 집이 첫 집이니까 들어왔지요. 할머니가 이사갈 준비를 하고 계시더라고요. 집값이 얼마냐고 물으니까 150만원 달래요. 돈 모아서 다시 왔더니 그 사이 길이 생겨서 집값이 오른 거예요. 결국 못 사고 1년을 돌아다니다 저희 스님이 주지 마지막 임기 때 잠깐 들어가서 봐드렸더니 용돈을 주시더라고. 그래서 여기를 산 거예요. 그 후엔 한 번도 와보지 않았어요. 올 일이 없었으니까.”
 
-스님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마을 주민들도 알고 있습니까.
“텔레비전에서 많이들 보셨지요. 이곳은 소도 같은 곳이에요. 저처럼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이 와 있어요. 그래서 마을 전체가 알려지는 것은 부담스러워요. 그분들을 보호해드려야 하니까.”
 

-요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십니까.
“하는 게 많아요. 일도 하고, 제 농사도 하고. 기본적으로는 제 생활을 지키지요. 일어나는 시간이 거의 정확해요. 새벽 3시 정도. 저절로 눈이 떠져요. 아침에 해 뜰 때까지 앉아있다가 어르신들 농사일 하는 데 가서 일 배우고 품앗이도 해드리고. 바느질도 하고 염색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있고 기록도 많이 하지요.”
 
-홈페이지를 보니 글과 사진을 이것저것 많이 올려놓았던데.
“놀랍게도 필요한 건 금세 습득을 해요. 너무 절실하니까. 컴퓨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요. 사람들한테 일일이 물어봐서 여는 것 가르쳐 주세요, 닫는 것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배운 거예요. 최근까지도 인터넷 검색이란 게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그 전에 일을 좀 벌였을 텐데(웃음). 긁어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고. 만날 타자 치는 거예요, 독수리로. 지금도 독수리지만 그래도 천천히 배우고 사진도 찍어요.”
 
-홈페이지에 언론사 소송에 관한 자료가 많습니다. 조선일보·동아일보를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소송에 대해 설명하신다면.
“천성산 터널 공사 지연으로 발생한 손실이 2조원이다, 아니다 하는 문제, 혹은 저에 대한 안티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소송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릅니다. 천성산을 지키려는 싸움 속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 사회가 가고 있는 흐름에 문제를 제기하는 거지요. 언론에서 한결같이 ‘공사 지연 손실이 2조5000억원’이라고 했던 것에 대해, 제가 ‘실은 145억원’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제가 소송을 하는 것은 이 사회가 170배나 과장된 숫자로 옮겨가도 언론뿐 아니라 연구소라든지 교수들, 우리 ‘도롱뇽의 친구들’까지 그 흐름을 같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게 하나의 이유이고. 또 직접적으로는 대운하 문제가 연결되어 있어요. 대운하를 한다고 했을 때 홍준표 의원이 ‘천성산 터널 공사를 할 때 한 비구니가 단식해서 2조5000억원이 손해가 나는 등 국가 손실이 많은데 운하가 되겠느냐’고 했어요. 국가 로펌인 ‘정부법무공단’이 출범할 때의 취지가 천성산 문제로 2조5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등 시민단체의 소송으로 국가적 손실이 크니까 직접 대응하는 로펌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듣지만 이해당사자인 저는 책임을 많이 느낍니다. 정부에서 그 숫자를 굉장히 정략적으로 쓰잖아요. 한 번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