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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인터뷰, 강연 및 대담

새벽길 2008. 8. 26. 14:36

장하준 교수에 대한 느낌은 이중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그의 책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글들을 블로그에 옮겨온 것도 꽤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장하준 교수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약간은 나이브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 정도의 대안으로 과연 충분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특히나 그가 조선일보에 계속 칼럼을 쓰고 있는 걸 보면 한국경제는 몰라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국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해 둔감한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서는 약간 입장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이종태 기자가 주도한 한국식 사민주의 관련 책에 함께한 것을 보면 장하준 교수가 갈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경향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나온 것에 묻어서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담아놓았던 기사들을 옮겨온다. 김창근 교수와의 논쟁은 별도의 글로 옮긴다. 이 논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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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금융 규제완화 중소기업엔 되레 反기업정책될 것” (경향, 서의동기자, 2008년 08월 25일 17:38:46)
신자유주의 경제 비판 장하준 英케임브리지대 교수
 
‘쾌도난마 한국경제’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힌 한국 경제를 비판해온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 25일 영국으로 돌아간 장 교수는 국내 체류 중 여러 차례의 강연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한국 경제의 대안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최근 국방부는 지난해 출간돼 10만부 넘게 팔린 장 교수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불온서적’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다. 장 교수는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기업 선진화, 한·미 쇠고기 협상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올해 정기국회에서 비준이 추진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내주면서까지 한·미 FTA 비준을 할 필요가 없다”며 “한·미 FTA 비준은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는 독감 걸린 환자에게 ‘해열제’를 주는 격”이라며 “금융규제 완화는 중소기업에는 반기업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들은 노동자의 양보만 기대하지 말고 고용안전판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는 사회복지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최근 상황을 보면 내수기반이 무너지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예전 우리 기업들은 공격적 투자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의 부채비율이 평균 350~400%였고,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200%로 낮추라고 했는데 지금은 평균 100%대로 150%대인 미국·영국 등보다도 낮습니다. 빚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은행들도 과거에는 기업대출이 90%대였지만 지금은 기업대출 비중이 40%에도 못 미칩니다.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취업자들의 직업 선택도 보수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대에 가지 말고 의대에 진학하라고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다 외환위기 때 해고돼 자영업자가 된 경험 때문에 자녀들에게 리스크(위험)를 지우기 싫어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들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MB노믹스’의 골간은 규제완화와 감세인데 이는 ‘대기업 편중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가 ‘한국은 공장을 설립하려면 200~300개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연간 경제성장률이 8~9%나 되는 불가사의한 나라’라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한국의 기업들은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으면 인·허가가 300개가 되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지만 실제로는 자본시장 개방으로 금융환경이 불안해졌고, 인수·합병(M&A) 공포감이 커졌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완화는 단순한 ‘해열제’일 뿐입니다. 독감환자가 해열제를 먹는다고 낫지 않습니다. 정부가 규제완화로 친기업 정책을 편다고 하는데 은행에 맘대로 대출하라고 하면 중소기업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금융규제 완화가 중소기업에는 반 기업정책이 되는 셈이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나쁜 사마리아인’에도 썼지만 공기업을 제값 받고 팔려면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개혁이 가능하다면 굳이 매각할 필요가 없겠지요. 정부는 민영화 대상 국책은행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매달리는 바람에 산업은행의 기업금융 서비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이 더 절실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올 정기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에서 가장 문제는 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입니다. 기업이 규제 때문에 손실을 봤다고 생각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지요. 호주는 미국과의 FTA협상 때 투자자-국가 소송조항을 제외시켰습니다. FTA의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승리할 경우 반드시 자동차 부문에서 재협상하자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한·미 FTA 비준은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그간 여러 저서에서 재벌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스웨덴식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사회복지를 확충하고, 노동권 보호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국내 진보학계에선 이를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당시에는 현실성 없던 정책들이 결국 실현된 예가 적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투표권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면 잡혀갔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되기 전엔 테러리스트로 분류된 인물입니다. 30년대 스웨덴에서 노·사·정 대타협이 있었지만 2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노사불안이 극심했습니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의 공격으로 SK글로벌의 경영권이 위협받으면서 기업들의 적대적 M&A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고, 또 참여정부가 막 들어서던 때였는데 지금 보면 당시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재벌들이 잇따라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제조업 대신 금융업으로 편히 먹고살려는 흐름이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국내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든 수준인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이 사회복지의 대폭적인 확충입니다. 유럽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사회복지가 발달해 있어 한국만큼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직업전환을 위한 재교육과 재취업 알선 시스템이 잘돼 있어 걱정을 덜하게 되는 것이죠. 반면 한국에서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인생이 갈리게 됩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양보만 기대하지 말고, 고용안전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나는 세대들이 직업선택을 더 진취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라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속도를 120~130㎞까지 낼 수 있는 이치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에 따른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인 동반 침체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에 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위기라는 말이 나올 때 ‘설마’ 했는데 그 예측이 맞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으로 금융과 실물경제 간 조화가 깨진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핵심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 같은 이들이 ‘금융자본주의 실패’를 거론할 정도입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금융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장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리스트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제노선에서는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비슷한데 사회분위기는 더 경직돼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책을 보면 마셜플랜처럼 미국을 칭찬한 내용도 많은데 반미 서적으로 규정한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총평을 하신다면….
“진정한 실용주의를 했으면 합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자유무역 국가지만 국민총생산(GDP)의 22%를 공기업이 맡고 있고 전 토지의 국유화에다 강제 저축제도까지 시행하는 나라입니다. 극단적인 자유시장 정책과 공산주의 정책을 적절히 섞어쓰며 경제를 훌륭히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고정관념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은 ‘반시장’이고 어떤 것은 ‘반미’, ‘반기업’이라며 꺼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리면서 정책을 펴면 실용주의는 불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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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따라하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라” (한겨레, 글 김영배 이정연 기자, 2008-08-26 오전 09:50:06)
[한겨레가 만난사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 교수는 화두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가 전세계를 휩쓰는 대세이며, 대안이 없다는 것도 신화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전세계 이데올로기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자꾸 없다고 하니까, 찾아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한다”며 “안 보려고 하니까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이면서 민간기업보다 훨씬 효율적인 데가 많으며 스웨덴처럼 (신자유주의 흐름과는 달리) 노사 대타협을 맺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활력을 동시에 이루고 있는 예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미국이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여기는 것도 잘못된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생활수준이 높은 게 아니다. 미국은 노동시간이 유럽보다 10~30% 길다.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 기준으로 해도 세계에서 7~8위다. 그만큼 저임금 노동이 많다는 이야기다. 독일은 (오후) 5시면 (가게) 문 닫고, 미국은 24시간 가게 열고 늦게까지 일한다. 범죄율, 유아사망률, 기대수명 같은 ‘삶의 질’에 관한 지표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모델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미국을 따라갈 이유가 없고, 그것은 또한 위험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곧 외환위기 이후 펴 온 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외환위기 뒤 기업의 부채비율을 400% 수준에서 200%로 무리하게 낮추는 식의 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심하게) 산업정책을 시행하는 나라가 없다. 미국의 연구개발(R&D)비 지출이 대단히 많다. 우리나라나 일본도 국가 주도형이라지만, 총 연구개발비에서 정부가 대는 게 20%, 유럽이 30%인데, 미국은 50% 가까이 된다. 1990년대 중반에는 50~60% 사이, 해에 따라서는 70%까지 된다. 미국 기술 경쟁력의 기초는 정부의 지원을 통한 연구개발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산업정책을 구시대의 유물로 용도폐기하는 것은, ‘몰래 시험공부 미리 다 해놓은 친구 따라 영화 보고 미팅하러 돌아다니다가 시험을 망치는 바보’가 되는 길이라고 장 교수는 비유했다.
 
“두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하나는 소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 가운데도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쪽이 있다. 예컨대 핀란드·노르웨이는 후진국에 원조를 활발히 하는데, 그런 나라마저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후진국에 부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신자유주의적 정책)가 가장 맞는 정책 아니냐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지칭된 이들 가운데서도 ‘아! 이게 맞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그보다 조금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소탐대실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장 교수는 덧붙인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를 잘살게 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것을 안목 있는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장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10월에 불거져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삼성 사태’는 잘못 가닥을 잡았다고 진단한다. 재벌 제도의 장점이라는 게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계열사간 상호 연계’를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데, 그 구조를 포기하는 대신 ‘가문의 승계 구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고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선 오히려 거꾸로 됐어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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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강연 및 인터뷰>

<정태인-장하준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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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 올 것"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2008.12.03 12:00)
"이명박 경제팀,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
"실물과 금융간 시차 줄여야"
"경기부양 위해 저소득층 세금 깎아야"
"자통법 도입 시점 최악"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인터뷰 도중 스쳐 지나가듯 "(1929년 미국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발언 맥락을 따져 볼 때 심도 깊은 연구나 분석을 통한 예측이라기 보다는 직관에서 비롯한 판단인 듯 보였다. 장 교수는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규제시스템을 개선해 왔다"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해법으로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간 시차를 줄일 것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제도 개선 ▲국제 신용평가 시스템 개선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경제팀에 대해서는 "개발 연대 때의 나쁜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평가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장 교수와 코드가 맞을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장 교수는 "개발 연대에 (한국이) 잘했던 장기적인 투자나 기술개발은 잊고 있다.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하고 있다"며 "슬픈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앞으로 정부의 재정지출 정책에 대해서는 일회적인 소비성 지출보다는 R&D(연구개발)와 같은 투자성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만 생각하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은 자본시장 개방 자유화 정도는 부작용이 크다"며 "외국 자본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질이 좋지 않은 자본은 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내년 시행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한다고 돈이 오겠냐"며 "법 자체도 반대였지만 타이밍도 최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 현재 금융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1950년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는 말이 있었다. 미국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60 ~ 70%를 점유할 당시 이야기다. 그런 회사가 망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서 추가로 7000억달러를 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발표한 은행 구제금융과 합쳐서 미국 GDP의 10% 규모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자본주의의 문제가 노출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이 중요하긴 하지만, 19세기엔 주식시장이나 은행을 모두 반대했었다. 이런 제도가 채택되고 발전된 것은 물론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제일 먼저 (이런 문제점을) 본 사람이 경제학자 중에는 마르크스다. 대규모 자본이 집중되면 자본주의 모순이 나오고, 사회주의 혁명이 나온다고 했다.
 
19세기의 자본주의는 문제가 나면 (회사 주인이) 다 갚아야 하는데, (유한 책임으로 바뀌면서) 그런 것이 없어져 대규모 자본 동원이 가능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퍼지면서 금융과 실물경제가 괴리됐다. 오묘한 이론 내세울 것도 없이 숫자만 봐도 그렇다. 경제성장률이라는 것이 중국처럼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곳을 빼고는 0 ~ 5% 정도다. 제조업 이윤율을 보면 3 ~ 6%다. 기본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범위다. 반면 코스피 지수는 1000 돌파 이후 2년도 안돼 2000이 됐다. 금융과 실물 경제가 따로 놀다가 일어난 일이다.
 
-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지금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세계경제가 변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위기가 얼마나 갈 지 모른다. 파생상품이 많이 생겨 누가 어디서 무얼 갖고 있는 지 파악이 안된다. 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부실 주택담보대출인데, 사건이 처음 터진 곳이 독일, 스위스계 은행이다. 무디스나 S&P에서 트리플A를 준 채권인데 회수가 안되니 문제가 시작됐다. 시작은 (미국의) 테네시였는데, 터진 곳은 스위스인 셈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오고 있다. 실물쪽에서 업체가 부실해 겨우겨우 생존하다 망하는 곳도 있지만, 금융위기 없으면 망하지 않았을 기업들도 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주일에 50만명씩 실업자가 생긴다. 이런 실물경제 위기가 다시 금융 부분으로 온다. 대출 받았던 업체들이 빚을 못갚고, 실업자들이 돈을 쓰지 않으면 위기가 금융 부분으로 다시 이전된다. 이런 상황이 끝나야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 상황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미국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면, (위기가) 얼마나 갈 지 모르겠다.
 
- 앞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나.
▲크게 3가지를 말할 수 있다. 우선 첫째 원칙으로 실물 부분과 금융 부분 시차를 줄여야 한다. 실물은 금융에 비해 늦게 돌아간다. 노키아가 전자 사업부를 만들어 흑자내는데 17년이 걸렸다. 실물은 호흡이 긴데 금융은 몇 분 안에 움직인다. 물론 이런 시차가 없으면 금융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한다. 금융은 자산을 유동화해 경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시차를 없애자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시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여러가지 일들이 많겠지만 우선 파생상품을 규제하고 사모펀드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이야기를 했지만, 금융 규제가 거시 정책뿐 아니라 경기 변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현재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8%면 자산 100원으로 1250원까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별 은행으로 보면 맞지만 전체로 보면 구성의 오류가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자산의 내재적인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데도 자산 가치가 올라가서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된다. 경기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다. 경기가 하강할 때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산가치가 떨어져서 대출을 회수하게 된다.
 
케인즈 이론의 통찰력은, 개인 입장에서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좋지만 다 같이 돈을 쓰지 않으니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다. 개별 금융기관만 금융의 건전성을 신경쓰지 말고 전체적인 국민 경제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BIS 비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BIS 비율을 올려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경기 변동과 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세번째로 금융 섹터의 공공재 성격을 봐야 한다. 금융이 모든 분야에 얽혀있어, 금융섹터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개입을 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레이팅 에이전시(신용평가사)들은 국제 공공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FDA(미국 식품의약국)가 음식물과 약품 규제하듯이 해야 한다. 신용평가사가 잘못하면 독이 든 자산이 돌아다니게 된다. 특히 바젤Ⅱ 기준의 BIS 비율이 도입되면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바젤2가 도입되면 자산을 신용등급에 따라 가중치를 두게 된다.
 
- 글로벌 금융시스템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나.
▲지금 당장 금융위기 심각하니 규제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다시 조용해지면 그런 소리가 들어간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새로운 금융시스템 이야기가 나왔는데, 위기가 주변국만 돌다가 중심국까지 가지 않으니 흐지부지됐다. 이번엔 중심부에서 터졌으니 다르다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탈규제화된 금융제도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영향력이나 돈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저항을 한다. 미국 오바마 당선인의 경우도 (백악관) 비서실장 이매뉴얼은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받았다.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금융계 출신이다. (제도를) 안고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노동자나 농민을 생각해서 뉴딜한 것은 아니다.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한 것이다. (개선 방향이 어떻게 될 지는) 현재로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의 개발 연대 시기 각각 민간과 정부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장 교수도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드가 맞을 수도 있다. 임기 첫해 새 정부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개발연대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개발 연대 시기 나쁜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전봇대가 많아서 경제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이 안되는 것이 규제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1991년 싱가포르의 영자 비지니스 잡지는 한국에 공장 하나를 열려면 199개 기관에서 300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돈 벌일 있으면 허가 300개라도 받는다.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300개 허가는 물론 30개라도 부담스러워진다.
 
근본 원인은 지난 10년 동안 소위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투자와 기술개발을 소홀히하면서 성장동력이 떨어진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하면서 단기주의 체제로 돌아가니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 개발연대에 (한국이) 잘했던 장기적인 투자나 기술개발은 잊고 있다.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해서 그러는 면이 있다. 슬픈 이야기다. 박정희(대통령)의 정신을 따른다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
 
- 영국이나 미국(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조세 정책을 보면 저소득층은 세금을 깎지만 고소득층은 세금을 올린다. 반면 한국은 소득과 관계 없거나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더 낮추는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자들의 세금 깎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입장을 떠나서 단기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만 생각하면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맞다. 저소득층의 소비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제 모델을 만들 때 노동자는 저축을 제로(0), 자본가는 저축을 100%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 강만수 장관은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결국 서민층으로 흘러내린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적하효과)` 논리를 내세운다.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적으로) 증거가 없다. 일시적 효과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잘된 나라는 없다.
 
- 한국 정부의 재정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이 대규모 재정 지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는 나중에 혜택이 나타나는 투자성 지출이 있고, 소비성 지출이 있다. 같은 액수를 지출하면 투자성 지출이 좋다. 그런 것에 비춰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반대로 간다.
 
- 한국에서는 재정지출을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에 쏟는다.
▲그냥 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토건(SOC)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중에 투자 회수율이 얼마냐는 판단을 해야 한다. 뉴딜의 경우 테네시강 개발에 집중했다. 빈곤에 시달리는 저개발 지역인데, 그만큼 효과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지어져 있는 아파트를 다시 또 짓고 하면 효과가 적다. 일괄적으로 토건에 투자한다고 해서 비판할 것은 아니다. 경제학적인 면에서 기회비용이 뭔가를 하나 하나 꼼꼼히 봐야 한다.
 
- 한미 통화스왑 체결 직후 그 효과에 대해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 받아온 것"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그 예측이 맞았다.
▲사실 정부에서 그렇게 빵빠레(팡파르)를 분지도 모르고 그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한 말이다. CBS 라디오와 인터뷰 때 했던 말인데 사실 방송 원고엔 질문이 없었다가 방송 1시간 전 질문하겠다고 전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내용을 알아본 후 말했던 것인데 요즘 보니 그 때 맞췄다고 해서 쑥쓰럽다.
 
(환율 급변동은) 기본적으로 지난 10년간 추구한 자본시장 개방의 결과다. (외국인들이) 억한 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급하다. 돈은 필요한데 들어갈 것은 없으니 (한국에서) 긁어 본사로 보내는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았을 때는 갖고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팔기 쉽다. 달러가 필요하니 달러는 사고 원화를 파니 환율이 올라간다.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2100억달러 정도인데, 한번 일터지면 하루거리도 안된다. (외환보유고 중) 여기저기 시차를 두고 쓸 수 있는 돈도 있다. 국제 자본시장 경색이 있기 전 하루 외환거래량이 2조달러로 한국 외환보유고의 10배다. 하루에 8시간 거래한다고 치면 1시간20분이면 갖고 갈 수 있는 돈이다.
 
- 현재와 같은 정도의 자본시장 자유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번 열어놓은 시장을 다시 닫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정책이라는 것이 한번 해놓으면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바뀌는 것도 있다. 서구 자본주의만 봐도 대공황까지 산업분야는 국가가 개입했지만 금융은 자유방임이었다가 (대공황 이후) 다시 규제로 돌았다. 레이건 때 규제 완화를 했다. 지금 다시 돌리자는 것이다. 한국처럼 중급(수준의) 나라가 혼자 나서서 해야겠다고 하는 것이 무섭다면, 세계 조류가 그렇게 흘러가면 바뀔 수도 있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바꿔야 한다.
 
사실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좋은 일 한 것이 별로 없다. 예전처럼 저축이 모자라 자본을 끌어와야 하는 나라도 아니고. 총 저축이 총 투자보다 많다. 외국 자본이 한 일이 주식시장 분위기를 바꿔 단기주의로 흐르게 하고 비정규직 늘어나서 사회 불안하게 만들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사주(매입)나 배당 형식으로 기업의 돈을 빼갔다. 그동안 외국인 직접투자를 해서 제대로 된 것이 있었나. GM의 전체 지사 중 흑자 내는 지사가 한국 딱 하나라고 한다. 한국의 GM은 알다시피 대우의 기술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해서 얻은 것이 없다면, 다시 닫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할 때는 `대세론` 하더니, 지금은 독야청청하나.
 
- 어떤 방법으로 자본시장의 개방도를 줄일 수 있나.
▲현재와 같은 자본시장 개방 자유화 정도는 부작용이 크다. 90년대 라틴아메리카 중 칠레와 콜롬비아만 유일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 기탁금 제도 때문이다. 기탁금 제도는 (외국인 투자의) 30%에 해당하는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한다. 1년내 돈을 회수하면 못 돌려받고 1년 후 나가면 갖고 갈 수 있다. 제도 시행을 전후로 (외국 자본) 구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외국 자본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질이 좋지 않은 자본은 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국내 사모펀드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아주 최소한으로 기본적인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밝히라는 요구 정도는 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 지만 알아도 대처하기가 쉽다.
 
- 공무원들은 자본시장을 다시 닫자는 말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힘없는 나라들이 항상 그렇다. 다 주눅이 들어있다. 우리만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대세론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대세에 맞서 혼자 독야청청한다. 지난 10년간 자본시장 개방되면서 공무원들이 이익을 봤다. 퇴직 후에는 법률사무소 자문해 주면서 이득을 봤다. 그런 기회 잃기 싫을 것이다.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시장 신봉자들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공무원들은) 사표를 내야 한다. 필요한 것 규제하고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막을 것은 막는 것이 공무원의 일이다.
 
-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주의 국가는 관치하는 것이 맞다. 시장 원리로만 사회를 운영한다면 돈없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도 하고 소득 재분배도 제대로 하려면 관치가 맞다는 의미다. 물론 공무원들이 그런 일도 했지만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일도 많이 했다. 세력이나 인원을 늘리는 것도 있다. 이는 정부를 더 통제해서 개선할 일이다. 규제를 없애 개선할 일은 아니다. 규제를 없애자는 말은 경찰이 뇌물을 받는다고 경찰을 없애자는 이야기와 같다. (민영화는) 민간업체가 경찰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 민영화도 마찬가지 논리로 반대하나.
▲마침 이명박 대통령도 산업은행 민영화 늦춰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도 있겠지만 시기와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늦춘 것은 잘한 일이다.
 
- 한국에서는 내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의미가 없다. 영국이 86년 빅뱅을 했을 당시엔 미국보다 한발 앞서 규제완화를 하면서 미국으로 갈 돈이 영국으로 몰리면서 덕을 봤다. 영국 자본시장 뿌리가 깊은 탓도 있다. 지금은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한다고 돈이 오겠나. 법 자체도 반대였지만 타이밍도 최악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나이트클럽 신장 개업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