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에 대한 느낌은 이중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그의 책을 많이 보아왔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글들을 블로그에 옮겨온 것도 꽤 된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고 그에 대한 대안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장하준 교수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약간은 나이브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 정도의 대안으로 과연 충분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특히나 그가 조선일보에 계속 칼럼을 쓰고 있는 걸 보면 한국경제는 몰라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국 사회, 정치, 문화에 대해 둔감한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서는 약간 입장이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이종태 기자가 주도한 한국식 사민주의 관련 책에 함께한 것을 보면 장하준 교수가 갈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경향신문에 인터뷰 기사가 나온 것에 묻어서 이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담아놓았던 기사들을 옮겨온다. 김창근 교수와의 논쟁은 별도의 글로 옮긴다. 이 논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의 저서를 통해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힌 한국 경제를 비판해온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 25일 영국으로 돌아간 장 교수는 국내 체류 중 여러 차례의 강연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문제점과 한국 경제의 대안에 대한 소신을 피력했다. 최근 국방부는 지난해 출간돼 10만부 넘게 팔린 장 교수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불온서적’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다. 장 교수는 지난 2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공기업 선진화, 한·미 쇠고기 협상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올해 정기국회에서 비준이 추진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내주면서까지 한·미 FTA 비준을 할 필요가 없다”며 “한·미 FTA 비준은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는 독감 걸린 환자에게 ‘해열제’를 주는 격”이라며 “금융규제 완화는 중소기업에는 반기업정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업들은 노동자의 양보만 기대하지 말고 고용안전판을 마련해야 하며, 정부는 사회복지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의 최근 상황을 보면 내수기반이 무너지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고사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예전 우리 기업들은 공격적 투자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의 부채비율이 평균 350~400%였고,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이 200%로 낮추라고 했는데 지금은 평균 100%대로 150%대인 미국·영국 등보다도 낮습니다. 빚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은행들도 과거에는 기업대출이 90%대였지만 지금은 기업대출 비중이 40%에도 못 미칩니다. 노동시장이 불안해지면서 취업자들의 직업 선택도 보수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공대에 가지 말고 의대에 진학하라고 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다 외환위기 때 해고돼 자영업자가 된 경험 때문에 자녀들에게 리스크(위험)를 지우기 싫어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들이 한국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MB노믹스’의 골간은 규제완화와 감세인데 이는 ‘대기업 편중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 ‘파이스턴이코노믹리뷰’가 ‘한국은 공장을 설립하려면 200~300개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도 연간 경제성장률이 8~9%나 되는 불가사의한 나라’라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달리 보면 한국의 기업들은 돈을 벌 수 있겠다 싶으면 인·허가가 300개가 되더라도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지만 실제로는 자본시장 개방으로 금융환경이 불안해졌고, 인수·합병(M&A) 공포감이 커졌기 때문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완화는 단순한 ‘해열제’일 뿐입니다. 독감환자가 해열제를 먹는다고 낫지 않습니다. 정부가 규제완화로 친기업 정책을 편다고 하는데 은행에 맘대로 대출하라고 하면 중소기업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금융규제 완화가 중소기업에는 반 기업정책이 되는 셈이죠.”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공기업 민영화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나쁜 사마리아인’에도 썼지만 공기업을 제값 받고 팔려면 개혁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개혁이 가능하다면 굳이 매각할 필요가 없겠지요. 정부는 민영화 대상 국책은행으로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을 선정했습니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매달리는 바람에 산업은행의 기업금융 서비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이 더 절실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올 정기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안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에서 가장 문제는 투자자-국가 소송 조항입니다. 기업이 규제 때문에 손실을 봤다고 생각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지요. 호주는 미국과의 FTA협상 때 투자자-국가 소송조항을 제외시켰습니다. FTA의 영향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승리할 경우 반드시 자동차 부문에서 재협상하자고 요구할 것이라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한·미 FTA 비준은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
-그간 여러 저서에서 재벌의 존재를 인정하는 대신 스웨덴식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사회복지를 확충하고, 노동권 보호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국내 진보학계에선 이를 현실성이 없는 제안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당시에는 현실성 없던 정책들이 결국 실현된 예가 적지 않습니다. 영국에서는 100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투표권을 도입하자고 주장하면 잡혀갔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되기 전엔 테러리스트로 분류된 인물입니다. 30년대 스웨덴에서 노·사·정 대타협이 있었지만 2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은 노사불안이 극심했습니다. 내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의 공격으로 SK글로벌의 경영권이 위협받으면서 기업들의 적대적 M&A에 대한 공포감이 커졌고, 또 참여정부가 막 들어서던 때였는데 지금 보면 당시보다는 실현 가능성이 낮아 보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재벌들이 잇따라 금융업에 진출하면서 제조업 대신 금융업으로 편히 먹고살려는 흐름이 더 강해진 것 같습니다.”
-국내 비정규직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든 수준인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것이 사회복지의 대폭적인 확충입니다. 유럽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사회복지가 발달해 있어 한국만큼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직업전환을 위한 재교육과 재취업 알선 시스템이 잘돼 있어 걱정을 덜하게 되는 것이죠. 반면 한국에서는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인생이 갈리게 됩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양보만 기대하지 말고, 고용안전판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나는 세대들이 직업선택을 더 진취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라는 안전장치가 있어야 속도를 120~130㎞까지 낼 수 있는 이치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부실에 따른 금융위기가 전 세계적인 동반 침체를 초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에 29년 대공황 이후 최대위기라는 말이 나올 때 ‘설마’ 했는데 그 예측이 맞아 들어가고 있습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으로 금융과 실물경제 간 조화가 깨진 것이 서브프라임 사태의 핵심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 같은 이들이 ‘금융자본주의 실패’를 거론할 정도입니다. 금융의 과도한 성장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고, 금융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장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국방부의 ‘불온서적’ 리스트에 올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경제노선에서는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나 비슷한데 사회분위기는 더 경직돼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책을 보면 마셜플랜처럼 미국을 칭찬한 내용도 많은데 반미 서적으로 규정한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총평을 하신다면….
“진정한 실용주의를 했으면 합니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자유무역 국가지만 국민총생산(GDP)의 22%를 공기업이 맡고 있고 전 토지의 국유화에다 강제 저축제도까지 시행하는 나라입니다. 극단적인 자유시장 정책과 공산주의 정책을 적절히 섞어쓰며 경제를 훌륭히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고정관념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은 ‘반시장’이고 어떤 것은 ‘반미’, ‘반기업’이라며 꺼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리면서 정책을 펴면 실용주의는 불가능합니다.”
-------------------------------------- “미국을 따라하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라” (한겨레, 글 김영배 이정연 기자, 2008-08-26 오전 09:50:06) [한겨레가 만난사람]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
장 교수는 화두로 삼고 있는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가 전세계를 휩쓰는 대세이며, 대안이 없다는 것도 신화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전세계 이데올로기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자꾸 없다고 하니까, 찾아보지도 않고 불가능하다고 한다”며 “안 보려고 하니까 대안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이면서 민간기업보다 훨씬 효율적인 데가 많으며 스웨덴처럼 (신자유주의 흐름과는 달리) 노사 대타협을 맺어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활력을 동시에 이루고 있는 예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흔히 미국이 제일 잘사는 나라라고 여기는 것도 잘못된 신화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생활수준이 높은 게 아니다. 미국은 노동시간이 유럽보다 10~30% 길다.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 기준으로 해도 세계에서 7~8위다. 그만큼 저임금 노동이 많다는 이야기다. 독일은 (오후) 5시면 (가게) 문 닫고, 미국은 24시간 가게 열고 늦게까지 일한다. 범죄율, 유아사망률, 기대수명 같은 ‘삶의 질’에 관한 지표가 선진국 중 최하위권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모델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미국을 따라갈 이유가 없고, 그것은 또한 위험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곧 외환위기 이후 펴 온 한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외환위기 뒤 기업의 부채비율을 400% 수준에서 200%로 무리하게 낮추는 식의 정책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처럼 (심하게) 산업정책을 시행하는 나라가 없다. 미국의 연구개발(R&D)비 지출이 대단히 많다. 우리나라나 일본도 국가 주도형이라지만, 총 연구개발비에서 정부가 대는 게 20%, 유럽이 30%인데, 미국은 50% 가까이 된다. 1990년대 중반에는 50~60% 사이, 해에 따라서는 70%까지 된다. 미국 기술 경쟁력의 기초는 정부의 지원을 통한 연구개발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산업정책을 구시대의 유물로 용도폐기하는 것은, ‘몰래 시험공부 미리 다 해놓은 친구 따라 영화 보고 미팅하러 돌아다니다가 시험을 망치는 바보’가 되는 길이라고 장 교수는 비유했다.
“두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하나는 소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규정한 사람들 가운데도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은 쪽이 있다. 예컨대 핀란드·노르웨이는 후진국에 원조를 활발히 하는데, 그런 나라마저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후진국에 부과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그 이야기(신자유주의적 정책)가 가장 맞는 정책 아니냐는 식의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지칭된 이들 가운데서도 ‘아! 이게 맞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그보다 조금 안목이 있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소탐대실이라고 느낄 것이라고 장 교수는 덧붙인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를 잘살게 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는 것을 안목 있는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다.
장 교수는 같은 맥락에서 지난해 10월에 불거져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삼성 사태’는 잘못 가닥을 잡았다고 진단한다. 재벌 제도의 장점이라는 게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계열사간 상호 연계’를 하는 데서 나오는 것인데, 그 구조를 포기하는 대신 ‘가문의 승계 구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이고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선 오히려 거꾸로 됐어야 한다는 게 장 교수의 견해다.
-------------------------------------- <장하준 교수 강연 및 인터뷰>
장하준 교수 관련 글 모음. 대부분의 논지에 동의할 수 있지만, 아쉬운 점도 많다. 도덕성의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해야만 한다고? 그렇다면 부정해야지 어떻게 하나.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2일 열린 <프레시안>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기획 연속강연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 가나'에서 재벌의 경영권 보장과 복지국가 건설을 맞교환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야 한국의 미래가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민주화 20년, 경제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발제문을 통해 87년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왜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는가를 화두로 던지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우리 사회가 지난 20년 간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불안해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 민주화'는 더 퇴보했다면서 특히 재벌정책이 잘못된 경제민주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경제민주주의를 내세워 주주권을 강화해 재벌의 경영권 세습이 위협받게 되었지만, 주주권 강화는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1원 1표'의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1원1표'의 시장주의 원리가 극단적으로 관철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돈을 많이 가진 국제금융자본의 뜻대로 개조될 수 밖에 없다면서, 서로 반목하는 집단들이 시장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일정 정도 시장의 논리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 특히 보통 사람들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장 교수의 강연 요지다. <편집자>
"1원1표를 경제민주주의로 착각"
장하준 교수는 지난 20년 간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더욱 불안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가 정치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민주주의의 원리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의 경제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자본 자유화로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가 증가하고, 주식시장의 '단기주의'가 상장된 대기업뿐이 아니라 상장되지 않은 중소기업들에게까지 숨통을 죄고 있다. 대기업조차 투자를 꺼리는 현실에서 일자리도 잘 생기지 않고, 기업들이 단기 이윤을 높이는데 주력하게 되면서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도 비정규적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높았던 비정규직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으로 솟아올랐다.
이에 더해, '사오정', '오륙도' 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정규직도 고용이 전에 없이 불안해졌다. 고용이 불안해지니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자제하고 저축을 늘리면서 이것이 내수부진으로 이어져 투자의욕을 더 꺾는 악순환 기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복지제도 역시 국제적 기준으로 보아 창피한 수준에 머물러 사회 관념적으로는 민주화 전보다도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덜 한 '잔인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민주화 이후에 도리어, 시장이 아무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 와도 정치권력이 독재적으로 강제한 일이 아니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장주의적 논리가 더 심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경제 민주화'는 더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는 장 교수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졌다는 역설적인 결과는 우리 민주화 과정의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재정권이 경제분야에서는 지극히 개입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제한하는 것이 민주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진보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를 원하는 세력들이 정부 개입의 확대를 외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민주화의 두 번째 역사적 특수성은 그것이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기세를 떨치는 시대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같은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이 여러 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이 별 성찰 없이 '정답' 내지는 최소한 '대세'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벌정책의 변화에서 이러한 역사적 특수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민주주의를 내세워 주주권을 강화해 재벌의 경영권 세습이 위협받게 되었지만, 주주권 강화는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1원 1표'의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게다가 종업원, 지역사회, 하청업체, 국민 전체 등 기업의 주주를 제외한 다른 이해당사자 집단들은 아예 '투표권'이 없는 것은 경제민주주의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 교수는 "재벌문제가 진정으로 민주적인 방향으로 해결되려면, 경영에 주주 뿐 아니라 여타 이해당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재벌 정책이 대다수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가 우리 논의의 초점이 되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 문제를 도덕성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아야"
장 교수는 '1원1표'의 시장주의 원리가 극단적으로 관철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돈을 많이 가진 국제금융자본의 뜻대로 개조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서로 반목하는 집단들이 시장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일정 정도 시장의 논리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 특히 보통 사람들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한 축에는 아직도 우리경제의 핵심부를 아직도 장악하고 있는 재벌 그룹들이 서고, 다른 한 축에는 '국민들'로 요약되는 그 외의 여러 집단들이 서야 할 것이다. 물론 더 노동운동이 발달한 나라라면 '다른 축'의 주체는 노조가 되겠지만, 노조의 조직률도 매우 낮고 노조의 정당성도 약한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그것은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장 교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적인 줄기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그 대가로 국민들이 더 적극적인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에 대한 전향적 접근, 그리고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더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재벌의 경영권 보호와 복지국가를 맞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대타협의 한 가지 예로서 장 교수는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그룹구조가 와해될 우려가 있는 재벌기업에 국민연금이나 국영은행들이 '국민 주주'로 참여해 일단 그룹 구조를 유지해 주면서 재벌 2세, 3세들에게 (단기주의 경영을 막기 위해) 10년 내지 15년 동안 정도 유예기간을 주고, 그 기간이 지났을 때 경영성과가 안 좋다면 그들을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는 과정에서 최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가 주장한 대로 콘쩨른법을 만들어, 현재 법적 실체가 없는 재벌그룹의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해 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되면 재벌들은 적대적 인수합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그룹구조를 유지하면서 장기적 시각에서 경영을 할 수 있고, 2세, 3세의 경영능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재벌기업들이 더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하청기업을 덜 쥐어짜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진다. 물론 이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재벌들이 꼭 그렇게 행동한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과정에서 명시적인 사회적 협약을 통해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 개선, 하청기업 지원, 복지국가 건설 등에 관해 재벌들의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그는 이러한 주장이 재벌을 비호하는 논리라는 비난에 대해 "우리 자본이 외국자본보다 더 도덕적, 혹은 덜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면서 "재벌문제를 도덕성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과거사까지 들추면 '깨끗한' 자본은 거의 없다. 따라서 도덕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 문제를 탈세나 주주권 보호라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국민 보험 개념의 복지국가 건설하자"
그는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는 대가 중 핵심은 복지국가의 건설이라면서 미국식으로 최저선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만 도와주는 '사회적 안전망' 개념의 선별적 복지국가가 아니라 유럽식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복지국가 모델을 제시했다. 모든 사람이 육아, 교육, 여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를 공유하며, 모든 사람이 질병, 실업, 노령화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 모든 사람이 능력이 있을 때 돈을 모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 쓰는 '전국민 보험'의 개념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장애인 등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도움을 받는 등 어느 정도의 재분배 요소는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미국식으로 잘 사는 사람에게 돈을 걷어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체제가 되면 중류층 이상에서 구조적인 반복지주의를 조장하게 되어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효율적인 복지국가는 적극적인 개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브레이크가 있기에 속력을 내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안전장치가 있을 때 개인들도 직업과 시장개방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질 수 있다"면서 "복지국가를 통해 고용불안이 해소되면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이 많이 시정되어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실현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장 교수는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만, 집단 간의 대립과 갈등도 우리나라만큼 겪은 나라들이 많다"면서 핀란드와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핀란드는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좌우내전을 치르고 정치적으로 두 쪽이 났던 나라이다. 스웨덴은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률이 제일 높았을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했던 나라이다. 삼성보다 훨씬 큰 발렌베리 재벌 때문에 재벌 문제도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했던 나라이다. 장 교수는 "역사적 조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고르는 것"이라며 사회적 대타협의 가능성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강조했다.
민주화 20년: 우리는 왜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지 못했나?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개방되고 적대적 인수합병이 자유화되면서 기업들의 경영권이 불안해지고 주주들의 배당요구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상장기업들은 '주가 관리'를 위해 투자를 줄여서라도 당장 높은 이익을 내고 배당을 많이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기구가 아니라 자금을 뽑아가는 기구로 전락하였다.
자본 자유화로 금융기관에 대한 외국자본 지배가 증가하고, 금융규제가 완화되면서 금융기관들이 위험성이 높은 기업금융보다는 소비자 금융에 치중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특히 중소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더해, 대기업들이 단기적 이익을 올리기 위해 하청단가를 무리하게 내리기 시작하면서, 중소기업들은 이윤에 압박을 받고 투자능력이 더 약화되었다. 주식시장의 '단기주의'가 상장된 대기업뿐이 아니라 상장되지 않은 중소기업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사상최대의 현금을 쌓아두고 이제는 미국보다도 낮은 부채비율을 가지고 있는 '건전 경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적 투자는 예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외환위기 때까지 국민소득 대비 13-4% 대에 이르렀던 설비투자는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1998년에는 8.4%까지 떨어졌다가 2000년 12.8%로 회복되는가 싶더니, 2001년 11% 로 떨어진 이후 계속 하락을 거듭하여, 작년에는 외환위기 이전의 절반 수준인 7.4%까지 떨어졌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올 해는 6%대로 떨어질 것이 우려된다고 한다.
투자가 없으니 일자리도 잘 생기지 않고, 기업들이 단기 이윤을 높이는데 주력하게 되면서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도 비정규적의 비율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그렇지 않아도 높았던 비정규직 비율이 OECD 최고 수준으로 솟아올랐다. 이에 더해, '사오정', '오륙도' 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정규직도 고용이 전에 없이 불안해졌다. 고용이 불안해지니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자제하고 저축을 늘리면서 이것이 내수부진으로 이어져 투자의욕을 더 꺾는 악순환 기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복지제도가 조금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하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아직도 국제적 기준으로 보아 창피한 수준이다), 사회 관념적으로는 민주화 전보다도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덜 한 '잔인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민주화 이후에 도리어, 시장이 아무리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 와도 정치권력이 독재적으로 강제한 일이 아니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장주의적 논리가 더 심하게 관철되고 있다. '진보성'을 내세우며,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 100년 전 일제와 협력한 친일파의 죄를 물어 재산환수까지 한다는 '정의로운' 정부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당장 힘들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 대해서는 자유무역 협정이니 노동시장 유연화니 하는 시장논리를 내세우며 더 양보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 '좌파 정권'이라고 욕 먹는 정부가 어떤 면에서는 과거 군부정권들보다도 불평등 문제에 대해 둔감하다. 과거 군부 정권들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을 막는다며 억제한 지나친 임금 격차, 사치품 수입, 조기 유학 등 행동에 대해서 민주정부들이 더 관대한 태도를 보여 왔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책을 쓰는 것을 넘어,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왜 민주화 이후 '경제 민주화'는 더 퇴보하였는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왜 민주화 이후에 점점 '보통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지고 있는가 – 다시 말해서 왜 '경제 민주화'는 도리어 더 퇴보했는가 –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니 민주국가에서는 다수가 원하는, 다수를 위하는 경제 정책이 채택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파멸시킬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반대했다), 따라서 다수를 탄압하는 독재를 타도했는데 불평등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은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졌다는 역설적인 결과는 우리 민주화 과정의 역사적 특수성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우선 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재정권이 경제분야에서는 지극히 개입주의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제한하는 것이 민주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진보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서구의 경우 민주주의를 원하는 세력들이 정부 개입의 확대를 외쳤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우리 민주화의 두 번째 역사적 특수성은 그것이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기세를 떨치는 시대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같은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이 여러 가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해결책이 별 성찰 없이 '정답' 내지는 최소한 '대세'로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그 가장 좋은 예가 재벌문제이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일환임은 누구나 다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에 재벌문제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주주자본주의적 시각에서 재벌 총수 가족들에 대한 '소액주주' 권한을 강화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진보' 세력마저도, 기업의 주주들 사이에서 '1주 1표'의 원리의 관철시키는 것을 기업 의사결정의 '민주화'로 보고, 주주권의 강화를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주주권 강화는 민주주의의 '1인 1표'의 원리와는 완전히 다른 '1원 1표'의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민주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종업원, 지역사회, 하청업체, 국민 전체 등 주주를 제외한 다른 이해당사자 집단들은 아예 '투표권'이 없는 것이 기업이다. 따라서 재벌문제가 진정으로 민주적인 방향으로 해결되려면, 그들의 경영에 여타 이해당사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문제,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어떤 재벌 정책이 대다수 국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가가 우리 논의의 초점이 되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서 소위 '진보' 세력이 (정확한 돈의 출처도 알 길이 없는) 국제금융자본이 투명성, 심지어는 도덕성을 들먹이면서 재벌을 공격하는데 지원군이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은, 민주화가 단순히 독재시대에 강한 권한을 가졌던 행정부나 재벌 총수 가족들과 같은 집단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의 민주화가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위해서 채택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바탕한 대항세력의 강화라는 민주주의적 수단이 아니라, 정부 개입 자체의 축소와 주주권 강화라는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상에 어긋나는, 수단들이었다. 바로 이 때문에 민주주의 하에서 군부독재 때보다 정치적 자유는 비교가 안 되게 늘어났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이 불안해지고 사회는 더 불평등하며 잔인해지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반목하는 집단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에서는 시장 논리의 제약을 원하면서 상대방의 경우에는 시장논리를 강하게 적용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약화시키고 싶어하는 상황이다. 자본가들은 시장논리를 수정하여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이나 노동자 권익 보호를 원하는 노조는 자기 이익을 위해 시장원리를 해치는 집단으로 비난하고 있다. 반대로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계 문제가 걸린 영역에서는 시장원리의 확대에 반대하여 보호무역과 정부규제의 지속을 원하면서, 금융자본가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재벌 총수 가족들을 압박하는 데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 결과는 서로 힘을 약화시키고 공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 '1원1표'의 시장주의 원리가 극단적으로 관철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돈을 많이 가진 국제금융자본의 뜻대로 개조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약간씩 조짐이 보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나라의 자본가들이 생산적 투자를 포기하고 자신들도 금융자본화 하게 되면, 일반 국민은 더 피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반목하는 집단들이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해 주고, 서로의 힘을 강화시키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게 하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반목하는 집단들이 시장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일정 정도 시장의 논리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 특히 보통 사람들의 미래는 암울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상황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한 축에는 아직도 우리경제의 핵심부를 아직도 장악하고 있는 재벌 그룹들이 서고, 다른 한 축에는 '국민들'로 요약되는 그 외의 여러 집단들이 서야 할 것이다. 물론 더 노동운동이 발달한 나라라면 '다른 축'의 주체는 노조가 되겠지만, 노조의 조직률도 매우 낮고 노조의 정당성도 약한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그것은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있어 (새마을 운동에서와 같은 강제적인, 그리고 외환 위기 직후 '국민 금 모으기 운동'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자발적인) '국민 동원'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국민' 이라는 범주는 충분히 현실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다.
구체적인 내용은 더 깊은 토론과 타협을 통해 정해 나아가야 하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적인 줄기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그 대가로 국민들이 더 적극적인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에 대한 전향적 접근, 그리고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더 단순화시켜 이야기하자면 재벌의 경영권 보호와 복지국가를 맞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문제를 중심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사회적 대타협의 내용을 설명해 보겠다.
재벌문제를 보는 시각
고성장 시대를 통해 우리 재벌기업들은 단시간에 급격하게 덩치가 커졌기 때문에 총수 가족의 지분이 매우 작고, 따라서 상속세, 증여세를 제대로 내면서 2세, 3세가 경영권을 승계하기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는 지주회사가 금지되어 있어서 복잡한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구조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또 자본시장 개방 및 자유화 전에는 적대적 인수, 합병이 제도적으로 힘들었고 덩치 큰 외국 금융자본도 못 들어왔기 때문에 내부지분 (가족지분 및 순환출자분)이 낮아도 경영권을 방어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변칙 증여, 상속 없이는 경영권 승계뿐 아니라 그룹 자체의 유지가 힘들어지게 되었다. 물론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기업집단보다 독립기업이 더 좋다고 믿는 사람들은 재벌 2세, 3세의 탈세를 처벌하여 그룹 구조가 해체되면 일석이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룹 구조 없이 후진국에서 기업이 계속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각화를 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은 힘들다. 삼성은 설탕이나 양복지를 판 돈을 가지고 반도체에 진출한 것이고, 현대는 건설에서 번 돈으로 자동차를 키운 것이다. 핀란드의 노키아도 벌목, 고무, 전선 등에서 번 돈을 17년 동안 이윤도 못 내는 전자업체에 부어 넣어 세계 최고의 이동전화 회사를 키워낸 것이다. 앞으로 현대나 삼성이 자동차나 전자에서 번 돈을 가지고 새로이 진출할 사업이 분명히 생길 것이다.
그러면 기업집단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재벌의 탈세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한 가지 예이지만,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그룹구조가 와해될 우려가 있는 재벌기업에 국민연금이나 국영은행들이 '국민 주주'로 참여해 일단 그룹 구조를 유지해 주면서 재벌 2세, 3세들에게 (단기주의 경영을 막기 위해) 10년 내지 15년 동안 정도 유예기간을 주고, 그 기간이 지났을 때 경영성과가 안 좋다면 그들을 경영에서 손을 떼게 할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는 과정에서 최근 복지국가 소사이어티가 주장한 대로 콘쩨른법을 만들어, 현재 법적 실체가 없는 재벌그룹의 권한과 의무를 명확히 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재벌들은 적대적 인수합병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그룹구조를 유지하면서 장기적 시각에서 경영을 할 수 있고, 2세, 3세의 경영능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재벌기업들이 더 장기적인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고, 하청기업을 덜 쥐어짜는 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진다. 물론 이것이 구조적으로 가능해진다고 재벌들이 꼭 그렇게 행동한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과정에서 명시적인 사회적 협약을 통해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 개선, 하청기업 지원, 복지국가 건설 등에 관해 재벌들의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재벌들의 나쁜 행실을 지적하며 "그 나쁜 놈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 하며 필자를 질책하신다. 삼성 에버랜드 사건이 한창일 때 방금 이야기한 요지로 한 일간지에 정기 칼럼을 썼더니, 한 독자는 인터넷 댓글을 통해 필자가 외국에 오래 살다 보니 한국 물정을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삼성이 옛날에 사카린 밀수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우리나라 재벌들의 도덕성 문제에 관해 말하면, 우리 재벌들은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아직도 많이 하고 있다. 필자가 외국에 20년 이상 살았지만, 삼성의 사카린 밀수 전력도 모르고 재벌의 장단점을 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벌들이 밉다고 옥죄어 그들이 망하거나 해체되었을 때 그들을 인수할 외국 자본들이 재벌들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서구의 기업들은 1960년대까지 수 백년 동안 원주민 살육, 영토 약탈, 식민지 수탈을 통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였다. 19세기 중반까지 설탕, 면화, 담배 등 노예를 써서 생산하던 원료를 썼던 기업들이 번 돈은 어떤 도덕적 기준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는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다고 비난하지만, 세계 유수의 영국계 모 은행은 아편전쟁에 돈을 댔던 전력이 있다. 아편전쟁이 어떤 전쟁인가? 영국정부가 중국에 아편을 밀매하다가 중국 정부의 규제에 부딪치자 벌인, 제국주의적 침략치고도 뻔뻔스러운 전쟁이 아니었던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많은 미국 기업들은 심지어 군부 쿠데타까지 지원하면서 후진국 정치에 개입했다. 우리 재벌들이 부당하게 노조를 탄압한다고 하지만,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의 많은 기업들은 핑커튼 등 사설 탐정단을 고용하여 파업을 진압하면서 파업하는 노동자를 쏴 죽이기까지 했다.
역사적 얼룩뿐이 아니다. 지금도 엔론, 월드콤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규모의 회계부정도 많고, 부정부패에 연루된 회사도 많다. 특히 이들이 후진국에 진출하면 노동자 착취를 착취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후진국의 민간요법을 훔쳐 약으로 만들어 특허를 내는 등 좋지 않은 짓을 더 많이 한다. 특히 문제가 많은 것은 사모펀드들인데, 이들 중 많은 수는 조세도피처에 위치하여 노골적으로 탈세를 하고 있으며, 지배구조도 불투명하다. 그러다 보니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돈 중에 부정한 돈이 있는지 아닌지 알 길도 없다.
선진국 자본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본이 외국자본보다 더 도덕적, 혹은 덜 도덕적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재벌문제를 도덕성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사까지 들추면 '깨끗한' 자본은 거의 없다. 따라서 도덕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
물론 필자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불순한' 것이기에 금지되어야 한다는 과거 군부독재 시절의 논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폐기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고쳐서 최대한 다수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전제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재벌이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것도, 재벌들이 꼭 예뻐서가 아니라, 재벌들은 우리 사회에 뿌리가 있고 국민들에게 명백한 역사적 빚을 지고 있기에 우리 사회의 다른 세력들과 '타협'을 할 동기도 더 강하고 그러한 압력에도 더 약하기 때문이다. 자본과 투쟁하는 입장에서 볼 때도, 재벌들은 그나마 이씨 가족, 정씨 가족이라는 구체적인 실체가 있고, 과거에 국민들에게 진 빚, 잘 알려진 나쁜 행실의 기록 등 약점이 많아 싸우기가 상대적으로 쉽지만, 재벌총수 가문들을 쫓아내고 국제금융자본이 우리 경제를 장악하게 되면, 우리는 뉴욕과 런던에 앉아 있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펀드매니저들과 싸워야 한다. 설사 불미스러운 일이 밝혀져도 이런 펀드들은 여차하면 떠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여론에 별로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재벌 기업들은 총수 가족들 것만도 아니지만 주주들의 것만도 아니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보조를 받고, 그들이 신산업에 진출한 초기에는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좋지 않은 제품을 사서 쓰며 키워낸 국민들의 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 문제를 탈세나 주주권 보호라는 좁은 시각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보는 시각
재벌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는 대가로 우리 국민들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물론 자세한 내용은 더 논의되어야 하겠지만,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 개선, 하청기업 지원, 복지국가 건설 등이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은 복지국가의 건설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복지국가는, 미국식으로 최저선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만 도와주는 '사회적 안전망' 개념의 선별적 복지국가가 아니라 유럽식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복지국가이다. 모든 사람이 육아, 교육, 여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를 공유하며, 모든 사람이 질병, 실업, 노령화 등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인식하에서, 모든 사람이 능력이 있을 때 돈을 모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 쓰는 '전국민 보험'의 개념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장애인 등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도움을 받는 등 어느 정도의 재분배 요소는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미국식으로 잘 사는 사람에게 돈을 걷어 못 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체제가 되면 중류층 이상에서 구조적인 반복지주의를 조장하게 되어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복지국가가 이야기만 나오면 최근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의 최근 저성장을 지적하면서 '복지병'을 걱정하는데,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1990년대 이전에는 복지국가가 작은 미국이 유럽 나라들보다 도리어 성장률이 낮았다. 상대적으로 미국의 성장률이 높아진 1990년대 이후에도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저성장을 한 것도 아니고,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미국보다 성장이 빠른 유럽나라들이 많았다. 그리고 미국은 노동시간이 유럽 나라들보다 10-30% 높기 때문에, 노동시간 당 국민소득을 계산하면 미국에 유리한 구매력 기준으로 하여도 노르웨이,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나라들이 소득이 더 높다. 독일은 1990년대 이후 성장률이 낮았지만, 이는 복지국가보다는 통일비용에 기인한 것이 크다 (지금도 독일은 구동독 지역에 국민소득 5%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주고 있다). 1990년대 이전에도 독일은 복지국가가 잘 발달되어 있었지만, 경제성장을 잘 하였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은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올라가서 GDP 대비 7-8% 선이 되었지만, 이는 OECD 평균 24% (1998년) 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낮은 수준으로, '복지병'을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물론 이 차이 중의 일부는 선진국의 고령화로 설명되지만, 같은 고령화 사회이면서도 일본은 그 비율이 15% 부근이고 스웨덴 등 북구는 30% 이상인 것을 보면 우리의 복지지출 수준이 낮은 것을 단순히 인구 연령구조로 설명할 수는 없다. 더욱이 우리의 복지지출 비율은 우리보다 소득도 낮고 인구도 훨씬 젊은 남미의 칠레 (11%), 브라질 (12%) 코스타 리카 (13%, 이상 모두 1996년 기준) 보다도 훨씬 낮다. 물론 복지제도를 만들 때 조심스럽게 할 필요는 있다. 모든 제도가 그렇듯이 복지제도도 잘못 설계하면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형평성을 강조하되 선택의 자유와 개인의 특수성을 포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또 빈곤을 탈출하자마자 복지 혜택 감소, 세금 부담 등으로 경제적 부담이 급격히 높아지지 않도록 하여 빈민들이 소위 "복지의 덫" (welfare trap) 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지제도를 노동자 재교육과 잘 연계하여 복지의 생산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웨덴 등 북구제국의 복지제도는 단순히 실업자 생계를 돕기 위해 실업보험을 지급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업자를 재교육하고 취업을 알선하며, 필요 시에는 이주 보조금까지 지급한다. 재교육 받는 기간 중에는 실직 이전 임금의 80%까지 실업 수당을 지불한다. 그런 반면에 재교육 후 정부가 알선한 새 직장을 일정 회수 이상 거부하면 실업수당을 제한하여 복지제도의 남용을 막는다. 이러한 기제가 있기에 담세율이 세계 최고인 나라들이 실업률도 낮고, 성장률도 미국을 능가하며, 하다 못해 경영자의 시각에서 주로 평가하는 기업환경 지수 같은 데에서도 세계 최상위권에 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효율적인 복지국가는 적극적인 개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흔히 복지국가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복지국가가 잘 되어 있으면 노동자들이 실직되어도 생계가 위협받지 않고 재교육을 통해 재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복지국가가 잘 되어 있는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등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랑하는 미국보다도 보호무역주의가 약하다. 노동자들이 변화를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공정 자동화율도 높고 기업의 구조조정도 상대적으로 쉽다 (스웨덴은 일본과 함께 노동자 1인당 산업 로봇의 댓수가 세계 최고이다). 이렇기 때문에 북구 국가들은 노조 조직율이 80%에 달하지만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북구식의 복지국가를 하면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대한 저항이 줄어들고 기업 복지비 부담을 줄일 수 있기에, 기업들도 더 유연하게 사업을 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복지국가는 왜곡된 인적자원 배분을 교정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이 불안정해지면서 우리 나라는 지금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의사, 변호사, 공무원 등 고용 안정성이 높은 직장에만 비정상적으로 몰리고 있다. 이러한 이공계 기피 현상은 앞으로 기술혁신으로 승부해야 할 우리 경제의 미래에 암운을 드리우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통해 고용불안이 해소되면 이러한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이 많이 시정되어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브레이크가 있기에 속력을 내어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안전장치가 있을 때 개인들도 직업에 대해 더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가능한가?
필자의 이야기에 수긍하시는 분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에서 유럽식, 특히 북구식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겠냐며 회의를 표시한다. 우리나라는 집단 간의 갈등의 골이 너무 깊고, 노사 협력의 전통이 없으며, 조세저항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하루 아침에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세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할 점은 유럽 여러 나라들도 처음부터 조건이 좋아 복지국가를 하루 아침에 손쉽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집단간의 대립과 갈등도 우리나라만큼 겪은 나라들이 많다. 핀란드는 볼셰비키 혁명 후 러시아에서 독립하면서 좌우내전을 치르고 정치적으로 두 쪽이 났던 나라이다. 스웨덴은 1920년대에는 세계에서 파업률이 제일 높았을 정도로 노사갈등이 심했던 나라이다. 삼성보다 훨씬 큰 발렌베리 재벌 때문에 재벌 문제도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했던 나라이다.
조세저항의 문제도 그렇다. 지금 스웨덴은 조세부담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나라 중에 하나이지만, 소득세를 1932년에야 도입한 나라이다. 소득세를 제일 먼저 도입한 영국 (1842년) 에 비하면 거의 한 세기, 하다 못 해 조세저항이 높기로 유명한 미국 (1913년) 에 비해도 20년이나 늦었던 나라이다. 세금을 걷어서 잘 쓰니 국민들이 그를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 스웨덴 국민들이 선천적으로 세금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에서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인구 천만도 안 되는 나라에서 뭘 배우냐" 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인구가 우리나라의 1/5 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여서 스웨덴에서 못 배운다면, 반대로 우리 인구는 미국의 1/5 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미국도 스웨덴도 우리와 다른 나라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스웨덴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훨씬 많은 나라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력과 군사력, 광활한 국토와 엄청난 자연자원, 끊임 없는 정복과 이민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 우리나라나 스웨덴과는 매우 다른 나라이다.
역사적 조건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사의 무게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 세상 모든 나라가 아직도 원시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고를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고르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대타협은 그 이름 그대로, 의식적으로 기존의 대립 틀을 깨고 새로운 합의점을 찾는 것이므로, 그를 구상하는 데에는 역사의 그림자보다는 미래의 비전에 대해 더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 장하준 "재벌 경영권 보장하는 대신 복지국가로" (프레시안, 김하영/기자, 2007-08-22 오후 8:13:16) 정성진 "한국 경제가 재벌 2·3세 연습장이냐" 비판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그런 정치는 사표를 내야 한다. 권력을 준 것은 시장을 통제하라는 것인데,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우리나라 담론 구조가 시장을 풀어주는 것이 민주화라고 돼 버렸다." 시장 자유화가 민주화라는 착각 장하준 교수가 생각하는 한국 경제의 현실은 이렇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국가의 강력한 정책적 개입에 의해 산업화가 이뤄지다보니, 정치의 민주화 과정에서 '시장 자유화'가 경제 민주화인 것으로 해석이 되면서 민주 정부들이 시장 자유화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데 시장의 자유화 과정에서 1997년 외환위기가 일어났고,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다. 문제는 외환위기로 인해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대기업 경영이 건전화 됐지만,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협에 노출되며 재벌들은 경영권 수호에만 급급하게 됐다.
그 결과 대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인데다, 정규직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이 됐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넘어서 사회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장 교수는 또 '소액주주 운동' 방식의 재벌 개혁 운동에 대해서도 "'1원(주) 1표' 방식의 소액주주 강화 운동은 결국 자유 시장의 논리를 따르는 것"이라며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벌들 시장주의에 대한 태도 이율배반적 장 교수는 이어 대립과 갈등의 구조가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장 교수는 "자본가들은 시장논리를 수정해 경영권을 보장해달라고 하면서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이나 노조에게는 시장원리를 해친다면서 비난하고, 한편에서는 재벌에 대한 규제를 요구하면서도 시장 원리인 주주권 강화로 재벌에 대항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런 대립과 반목은 서로 힘을 약화시키며 공멸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금융자본은 재벌을 더 압박하는 것을 좋아한다"며 "'1원 1표'의 시장 원리가 극단적으로 관철되면, 가장 돈이 많은 국제 금융자본의 뜻대로 우리나라 경제가 개조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장 교수가 내놓은 해법은 대립과 갈등하는 집단들의 '사회적 대타협'이다. 그 구체적 방법으로 장 교수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보호해주고 대신 사회경제 체제 자체를 북유럽식 복지국가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 교수가 보기에 '경영권 보호'은 우리나라 재벌들이 가장 원하는 아이템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재벌들에게 경영권 보호를 양보하고 더 많은 투자와 고용창출, 복지국가를 얻어내자는 것이다.
장 교수는 "기업들도 인식을 전환해야 할 것이, 스웨덴의 경우 실직을 해도 받던 임금의 80%가 실직수당으로 보장되고 재교육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해고에 대한 저항감이 미국 등에 비해 훨씬 적다"며 "고용의 유연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에 대한 저항감도 유럽식을 선택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극빈층만 보호하는 미국식 복지는 중상위층의 반감을 불러온다"며 "그러나 유럽은 많은 세금을 내지만, 그 혜택을 중상위층도 받기 때문에 저항감이 덜 하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높은 교육세를 내지만 모든 국민이 대학교육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으면, 중상위층도 충분히 높은 세금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금융/산업자본, 이분법적으로 보면 안 돼" 그러나 장 교수의 주장에는 많은 비판이 따른다. '재벌 옹호'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목되는 신자유주의의 양상도 잘못 짚었다는 지적이다. 이날 강연에 토론자로 참석한 정성진 경상대 교수는 "장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국가와 시장, 민족적 산업자본과 국제적 금융자본의 대립축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를 국가냐 시장이냐, 산업자본이냐 금융자본이냐, 민족자본이냐 외국자본이냐의 이분법적으로 봐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경고는 80년대부터 나온 것"이라며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과 국내 재벌의 관계는 모순 관계가 아니라 공생 관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또 "이번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 사태를 보면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도 FRB를 통해 개입하고 있다"며 "자본주의는 시장과 국가의 결합체로서 분리해서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97년 이후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배가 강화됐는가 보면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며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은 산업자본으로 위기에 몰린 자본이 노동 대탄압을 통해 양극화와 비정규직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재벌의 경영권이 안정되지 않아 저투자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YS 시절 과투자 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게 보이는 것일 뿐 결코 적지 않다"며 "문제는 자본 사이의 투자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특히 장 교수의 '재벌 경영권 보호' 주장에 대해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해서 경제의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장 교수는 일단 경영권의 세습을 보장해주고, 2‧3세가 경영을 제대로 하는지 10년간 유예기간을 주자고 하는데, 한국경제가 재벌 2‧3세들의 연습장이냐. 과도하게 친재벌적인 논리이고, 장 교수가 주장하는 국민기업 관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외국 자본에 비해 국내 재벌과 싸우는 게 더 어려워" 장 교수는 "정체를 파악하기도 힘든 국제적 금융자본보다 국민들에게 진 빚이 많은 국내 산업자본과 싸워 이길(통제) 확률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이 과거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제품을 '애용'해 온 빚을 갚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는 "외국 자본에 비해 국내 재벌과 싸우는게 더 어렵다"며 "삼성은 인맥, 학맥을 이용해 주요 인사들을 관리하고 있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삼성 같은 기업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다"며 "삼성의 무노조 주의 등은 굉장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하루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외환위기 때 삼성 중공업의 중장비건설기계 부문이 볼보에 매각됐는데, 볼보에서 직원들에게 노조 좀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며 "스웨덴에서는 모든 일을 노조를 통해서 하는데, 개방화 시대에 삼성도 전근대적 행태를 버리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 장하준의 무지와 착각 그리고 박정희주의 (레디앙, 2007년 08월 23일 (목) 18:17:40 이재영 기획위원) [Column of Column]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불가능한 이유들
같은 스웨덴을 보고 배우는 데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노동운동과 사회복지의 발달을 보는 게 한국 진보운동 주류의 시각이고, 이른바 사회적 타협 모델로 보는 게 노무현 정권 유럽파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런 두 방향과는 달리 ‘재벌과의 타협’에 특별히 주목하는 흐름도 있으니, 금융경제연구소의 이찬근(인천대 무역학과), 대안연대의 정승일(국민대 경제학부) 교수이고, 근래에는 케임브리지대의 장하준 교수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것은 …재벌 총수 가족들과 같은 집단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은 …금융자본가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재벌 총수 가족들을 압박하는 데에는 박수를 보낸다. 그 결과는 서로 힘을 약화시키고 공멸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적인 줄기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 주고 그 대가로 국민들이 더 적극적인 투자, 고용창출, 노사관계에 대한 전향적 접근, 그리고 복지국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 장하준, 「민주화 20년, 경제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적 대타협」,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프레시안> 공동 강연, 2007. 8. 22
이른바 사회적 타협이라는 것은 ‘죽어도 안 한다’ 거부할 필요도, 애걸하며 목맬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할 필요가 있거나, 할 수밖에 없거나, 할 힘이 있으면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떠한 계급투쟁도 끊임없이 지속되기 어렵고, 마찬가지로 어떤 계급타협도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장하준의 가설적 주장은 바람직하거나 가능한 타협안이라 보기 어렵다.
첫째, 장하준이 고용 문제의 핵심으로 들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가 재벌과의 타협을 통해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벌과 타협할 수 있는 직접 당사자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은 이미 단협상의 고용 안정을 이루고 있으므로 무엇인가 양보하며 고용 안정을 이루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중소기업의 비정규직들은 아예 재벌과 타협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다. 또, 비정규직 발생의 직접 원인이 재벌로의 독점화, 그리고 불공정 거래를 통한 비용 전가에서 비롯되었고, 재벌 통제 약화가 그 정치사회적 배경임에 비추어 재벌과의 타협은 비정규직 문제를 더 악화시키면 시켰지, 개선시킬 개연성은 전무하다.
둘째, 재벌이 사회복지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법인세 인상을 통해 사회복지 재원 확충에 다소 기여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로 한국 사회복지를 확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현재 재벌은 사회복지보다 월등히 높은 기업복지를 보장하고 있는데, 그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경제활동인구의 6%인 160만 명이다. 이 이야기는 중소기업 노동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재벌의 기업복지 수준과 비슷한 사회복지를 주려면 법인세든 뭐든 재벌이 20배쯤 더 내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재벌 고용률이 높은 스웨덴에서는 사회복지가 재벌의 문제였지만, 재벌 고용률이 낮은 한국에서는 자본 일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셋째, 지금으로서는 재벌도 노조도 사회적 타협의 주체이기 어렵다. 스웨덴과 한국의 비교할 수도 없는 노동조합 조직률 차이에 대해서는 장하준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만이 사회적 타협의 난관일까? 한국의 재벌은 어떠한가? 사회적 타협은커녕 합법 노조와의 산별 교섭도 거부하고, 아예 노동조합을 인정하지도 않는 전근대적 재벌이 과연 자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장하준은 노조 대신 ‘국민’을 내세운다. 경제학에서 국민(gross national)은 산술적 실체이지만, 정치사회적으로 국민은 산술되지 않는 유령이다. 따라서 으레 국민을 국가가 대체하기 마련이고, 투쟁과 타협의 주체여야 하는 계급을 생략한 국가 주도 코포라티즘의 산물이 오늘날의 남미다. 장하준의 구상은 기껏해야 가부장 국가인 박정희주의의 21세기판이다.
장하준과 그 동료들이 스웨덴과 발렌베리 가문을 거론하는 것은 꽤 바람직하다. 그런데 그들이, 발렌베리 가문이 금융자본에서 출발한 지배 주주이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두었다는 사실을 애써 말하지 않는 것은 불순하다. 스웨덴과 발렌베리를 예로 들며 산업자본인 재벌 일족의 경영권 세습을 옹호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재벌이라 칭해지는 대기업들과 그 산업적 토대는 마땅히 보호되어야 한다. 하지만 산업 보호를 재벌 일가 보호라고 일부러 착각해서는 안 된다. 또, 대기업의 경영 안정성이 재벌 2, 3세에 의하여야 한다고 강변해서는 더욱 안 된다.
장하준과 비슷한 사람들이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은 사회적 타협이라는 것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이고, 정책적 선택보다는 대립하는 정치적 힘의 역사적 교차점이라는 사실이다.
------------------------------------------------ "사회복지가 곧 경쟁력이다" (프레시안, 정리=김하영/기자, 2007-09-04 오전 12:18:16) [민주화 20년, 한국사회 어디로?③]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독재 경험 때문에 시장 자유화를 경제민주화로 오해" 장하준: 1986년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때는 민주화 전이었다. 사실 나는 민주화가 이뤄진 1987년 이후 우리나라에 살았던 기간이 군대 때문에 귀국했던 때와 2003~2004년 1년 반 정도 들어와 있던 기간 빼고는 별로 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민주화가 안 됐던 한국 사회가 더 익숙하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참 우리나라가 좋아진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당연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그 때는 상상조차 힘들던 것들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못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읽지 못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이 있는데, 처음 유학 갔을 때 말레이시아인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 한국 정도는 아니지만 말레이시아도 반공주의가 강했던 나라여서 마르크스의 서적이 금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영국 유학을 하다가 마르크스 책을 사서 귀국하는 길에 공항 세관에서 마르크스 책이 걸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 친구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세관원에게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 책을 쓴 마르크스는 독일 사람이고, 공산주의자 마르크스는 러시아 사람"이라고 둘러대 세관원이 그 친구를 보내줬다고 하더라.
우리도 그 시절에 마르크스의 자본론만 갖고 있어도 잡혀갔었다. 지금은 읽으라고 해도 안 읽는 책이 돼버렸는지 몰라도 사상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등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나라당도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국민경선을 도입하고 있다. 과거에는 환경운동 한다고 하면 공산당이라고 잡아갔는데, 이제 환경이니 소수자 인권이니 이런 문제들이 사회적 아젠다에 포함됐고 환경은 핵심부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옛날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발전이 이뤄졌다. 나는 민주화의 성과를 과소평가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경제민주화가 이뤄졌는지 굉장한 의문이 든다. 경제민주화가 처음 시작된 때가 김영삼 정부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태우 정부 때도 그런 움직임이 있었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 때문에 시장 자유화가 민주화의 일부로 해석되면서 민주 정부들이 사장 자유화에 박차를 가했다고 볼 수 있다.
내 해석으로는 이 뿐만은 아니지만 어설픈 자본시장 자유화가 주원인이 돼 외환위기가 일어났고, 외환위기 이후에는 우리 경제가 완전히 구조적으로 변화를 했다. 우선 제일 큰 변화는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한다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지금 이게 굉장히 역설적인 현상이다.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건전 경영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윤율도 낮았고 부채비율도 높았다. 그 해석 자체가 사실 잘못됐다는 주장을 했는데, 어쨌거나 그런 기준으로 볼 때 지금 기업이 사상 최대의 이윤을 올리고 부채비율도 한 번 하라니까 화끈하게 해서 지금은 미국보다도 더 낮아졌다.
그 결과 대기업들이 현금을 엄청나게 쌓아두고 있고 건전 경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경제에 대한 투자는 예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외환위기 때까지 보면 우리나라의 기계나 설비투자 비율이 국민소득 대비 13~14%였는데, 지금은 6~7% 수준까지 떨어졌다.
일단 투자가 줄어드니까 일자리가 잘 안 생기고, 그나마 생기는 일자리도 비정규직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 비율이 높았는데, 최근 거의 60%까지 비율이 높아졌다. OECD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이다.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늘리기도 했지만, 정규직 고용도 불안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원인은 이렇다. 주식시장 개방과 자유화에 의해 기업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 위험이 늘어났고, 기업들이 그걸 막기 위해 단기 위주의 경영으로 이윤을 높였다. 그 다음에 이익의 큰 부분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고, 하청기업과 종업원들을 쥐어짜는 구조가 강화됐다. 그렇게 되면서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처럼 정규직도 고용이 불안하게 된 것이다.
내가 63년생으로 40대 중반이 됐는데, 벌써 친구들이 퇴직 걱정하며 불안해하고 있다. 고용이 불안해지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서 내수부진이 이어졌다. 내수가 부진하다 보니 기업들이 투자 의욕을 잃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복지제도가 확대되기는 했지만, 사회 관념적으로는 민주화 이전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덜한 잔인한 사회가 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독재 정치권력이 강제적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을 움직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회적인 현상에 대해서 정당성을 의심했는데, 민주화 이후에는 도리어 시장이 아무리 부정적 결과를 가져와도 독재권력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장주의 논리가 더 심하게 관철되고 있다.
"한미FTA, 노동유연화…정의롭다는 정부가 약자들에게 더 양보하라는 기이한 현상" 역사를 바로잡는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을 환수하는 정의로운 정부가 당장 지금 힘들게 살고 있는 약자들에 대해서는 '자유무역협정(FTA)'이니 '노동시장 유연화'니 하면서 약자들에게 더 양보하라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100년 전 약한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재산은 되찾겠다는 정부가 지금 자기들을 뽑아준 약한 사람들한테 더 내놓으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니까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일부 보수 언론이 '좌파정권'이라고 부르는 정부가 과거 독재정권보다 불평등에 대해 더 둔감한 상황이다. 과거 군부정권들이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지나친 임금격차를 억제하고, 사치품 수입, 조기 유학을 억제하고 그랬는데, 도리어 민주화 정부는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며 이런 것들에 대해 더 관대하다. 물론 사회적 위화감이라는 것은 미국식 사회과학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개념일지 몰라도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고, 과거에는 그런 규제들이 권력의 정당성이 없기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요즘은 그런 것들이 거의 없다.
지금 보면 소위 민주정부가 불평등을 강화시키는 정책들을 자본시장 개방이니, 한미FTA이니, 노동시장 유연화니 하는 이런 언설을 사용하는 것에서 대한 비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민주정부가 이런 불평등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 말로는 양극화 해소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걸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 왜 민주화 이후 보통 사람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는가이다. 원래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수결의 원칙에 기반한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시장주의와는 배치가 된다. 시장이라는 곳은 '1원 1표'이고 민주주의는 '1인 1표'이다. 19세기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민주주의를 허용하면 재산이 없는 다수가 권력을 탈취해 재산이 있는 소수를 착취하고, 그렇게 되면 부의 축적 동기를 파괴시켜 경제가 망한다고 생각했다. 일부 서구 선진국들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여자와 유색인종은 물론, 가난한 자들에게도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독립전쟁 당시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우리에게서 세금을 걷어갔으면 참정권을 달라는 얘기이다. 뒤집어 보면 세금을 내지 않는 자들에게는 참정권을 주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세기 논리로 보면 다수를 탄압하는 독재를 타도했는데 왜 사회는 더 불평등해지고, 사람들은 이 불평등에 더 둔감해졌을까. 내가 해석하기로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생활이 더 어려워진 것은 우리 민주화 과정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장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유럽은 민주화가 되면서 사회가 더 평등해졌다.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투표권이 확대되고 소득세가 생기며 복지국가 개념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서구의 역사적 패턴과 반대로 가고 있다.
역시 우리 민주화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이해해야 한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과거 독재정권이 경제 분야에서 지극히 개입주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부가 경제에 대한 개입을 하는 것이 죄악시됐고, 정부개입의 제한이 말하자면 민주주의적이고 심지어는 진보적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됐다.
가장 좋은 예가 중앙은행(한국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다. 유럽에서 보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주장하는 쪽은 우파이고,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좌파들이다. 좌파들이 중앙은행의 통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중앙은행은 금융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게 돼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통제해서 민주제도로 다수 이익에 봉사하게 하지 않으면 고용이나 성장보다 물가 잡는 데만 치중하게 되고, 결국 보통사람보다 금리 생활자에게 유리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래서 유럽의 좌파는 중앙은행의 독립에 반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독립을 찬성한다. 그 맥락을 이해한다. 1985~1995년이라는 특정 시점에서 보면 재경부와 한국은행을 비교해 볼 때 어디에 힘을 실어주는게 좋겠냐고 하면 한국은행이라고 말할 사람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논쟁을 하는 데 있어서 구조적으로 금융산업에게 거시정책의 통제권을 넘겨준다고 생각해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왜냐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주지 않은 게 독재정부이기 때문에 독립성을 주는 것이 민주화고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재벌 문제도 기업의 소액주주권 강화 주장을 기업 의사결정의 민주화라고 표현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통령마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니..." 그러다보니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정치권력은 사표를 내야 한다. 권력을 정치인에게 준 것은 사회적 이익을 위해 시장을 통제하라고 준 것인데, 자기가 나서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하는 것은 직무유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 대통령이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인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의 담론 구조 자체가 그렇게 형성됐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이다. 시장을 풀어주는 것이 독재 반대이자 민주화라고 돼버린 것이다.
역사적 특수성을 살펴보면, 신자유주의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말~1990년대이다. 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여러 가지일 수 있는데 주된 조류가 된 신자유주의에 대해 별 성찰 없이 시장에서 해결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제일 좋은 예가 재벌 문제다. 재벌을 비롯한 대기업들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하나라는 대원칙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 민주화 시대의 재벌 문제라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주주자본주의적 시작에서 재벌총수 가족들에 대한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로 규정이 돼버렸다.
그런데 소액주주 강화는 1원 1표의 시장논리이다. 1인 1표가 아니다. 1원 1표는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가 아니다. 이것을 민주화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진짜로 기업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얘기하고 싶으면 기업 이해당사자 전체적 시각에서 종업원, 지역사회, 하청업체, 국민 전체가 그 기업의 의사결정에 관여할 필요가 있는데 그런 권리가 있나. 주주가 아닌 이해당사자들한테 투표권을 주느냐는 얘기를 해야 된다.
또 한 발 나아가서 재벌 문제라는 것이 단순히 주주간의 싸움이 아니라 이 기업들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진보적인 민주주의의 재벌 문제에 대한 의제 설정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재벌 문제가 단순히 소액주주가 대주주에 대한 대항의 힘을 키우는 것으로 규정이 돼버렸다.
그렇게 되다보니 정확한 돈의 출처도 알 길이 없는 사모펀드들이 들어와서 우리나라 기업들한테 너희들은 투명성도 없고 도덕성도 없다고 하면 소위 진보세력이 사모펀드들의 지적을 응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모펀드들은 조세 도피처에 있다. 이 사람들은 세금을 안 내는 사람들이고, 상장된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투명성이라는게 전혀 없다.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온 론스타니 소버린이니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있는지도 잘 알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사모펀드들이 재벌들에게 더 도덕적으로 경영하라고 주문하는데 그 옆에서 민주 진보세력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굉장히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한 얘기를 정리해보면, 우리나라 민주화가 대다수 사람들에게 경제적 실망을 안겨주게 된 것은 민주화가 단순히 독재시대에 강한 권한을 가졌던 재벌 총수 가족이나 행정부 권력을 약화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겨졌던게 아닌가 한다. 또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일어났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 대항세력의 강화라는 민주적 방식이 아니라, 주주권 강화와 정부개입 축소라는 지극히 시장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일어났다. 정치적 자유는 군부독재 때보다 비교가 안 되게 늘어났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생활이 불안해지고 사회는 더 불평등해지면서 사회가 잔인해지는 역설적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제 입맛대로 시장원리" 더 극화시켜서 얘기해보면, 반목하는 집단들이 서로 자신의 영역에서는 시장 논리를 제약해 자신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상대방에게는 시장논리를 최대한 적용해서 상대의 힘을 약화시키고 싶어한다. 자본가들은 시장논리를 수정해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면서 농산물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이나 노동자의 권익 보호를 원하는 노조에게는 시장 원리를 해친다면서 비난하고 있다.
반대 쪽에서는 일반 국민들이 자기 생계가 걸린 문제에서는 시장 원리 확대를 반대하면서 보호무역을 지속해 달라, 정부의 규제를 지속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금융자본가들이 시장원리에 따라 재벌 총수들을 압박하는 것은 좋아하고, 더 하라고 한다. 그 결과는 서로 힘을 약화시켜 공멸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서 1원1표의 시장원리가 극단적으로 관철되면, 결국 우리나라는 제일 돈 많은 국제 금융자본의 뜻대로 개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 그런 조짐들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이 진척되면서 우리 자본가들이 생산적 투자를 포기하고 자기들도 금융자본화 하게 되면 일반 국민들은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반목하는 집단들이 서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의 힘을 강화시켜주면서 균형을 맞추는 사회적 대타협이다. 시장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일정 정도 시장의 논리에서 보호를 받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타협을 하지 않으면 특히 보통사람들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본다.
이런 사회적 대타협의 한 축에는 우리나라 상황상 재벌그룹들이 서야 할 것이고, 다른 한 축에는 국민들이라고 요약할 수밖에 없는 여러 다른 집단들이 서야 한다. 물론 노동운동이 우리나라보다 발달한 나라라면 그 한 축이 노조가 되겠지만, 우리나라 노조는 조직율과 정당성이 약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국민이라는 두루뭉술한 범주가 나오는데,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면 새마을운동과 같은 강제적 동원과 외환위기 직후 금모으기 같은 자발적 동원을 한 경험이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민'이라는 범주가 충분히 현실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해 내놓은 개념이다.
사회적 대타협의 기본적 줄기는 재벌들의 경영권을 안정시켜주고, 그 대가로 국민들은 재벌기업들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노사관계에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복지국가를 요구해야 한다. 반대로 재벌들은 경영권 안정을 찾고 노사관계에 있어 더 협조적 관계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장해오던 사회적 대타협의 요지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몇 년 전 삼성 에버랜드 문제에 대해 모 일간지에 정기기고를 하던 때 이런 주장을 담은 글을 썼었다.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단시간에 급속히 덩치가 커져 총수 가족의 지분이 매우 적고, 따라서 상속세를 제대로 내면서 2~3세 경영 승계가 힘든 구조가 돼 있다. 옛날에는 주식시장에서 적대적 M&A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괜찮았는데, 이제 그게 안 된다.
"재벌문제 유연하게 생각해보자"
그래서 세금을 제대로 내면서 상속을 하면 그룹의 지배구조가 와해될 수 있기 때문에 편법을 쓰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기업들이 그룹의 구조를 갖추는 것에서 오는 장점들이 상당히 많다. 이런 그룹 구조의 효용성을 인정한다면 그룹 구조가 와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탈세를 인정해줘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나 국영은행들이 소위 국민주주로 그룹에 참여해 그룹 구조를 유지해주고 재벌 2~3세들에게 10~15년 정도 경영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기회를 너무 짧게 주면 단기위주의 경영을 할 것이기 때문에 10~15년 정도 기회를 주고 평가해서 잘 한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지지해주고, 잘 못하면 경영진을 갈아치우면 된다고 당시 칼럼에 썼다. 이것이 하나의 방법이지만 정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런 얘기를 한 것은 경영권과 소유권의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분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의도에서 한 얘기다.
그랬더니 독자 댓글에 어떤 분이 장교수가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한국 물정을 모르나보다고 썼다. 사카린을 밀수해서 판 나쁜 삼성놈들을 어떻게 국민연금으로 도와주냐고 썼다. 그 때는 오해가 심각하다 싶어 다음 번에는 이런 얘기를 썼다. 물론 우리나라 재벌들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사카린 밀수를 몰라서 하는게 아니라 재벌들이 밉다고 재벌들을 옥죄 망하게 한 뒤 해체해 외국자본이 인수하게 한다면 그 외국자본은 더 도덕적인가 말이다. 1960년대까지 선진국 자본들은 식민지 수탈의 이익을 봐 왔다. 19세기 중반까지 담배, 설탕, 면화를 판 기업들은 다 죄인들이나 다름없다.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다고 욕하지만 영국의 HSBC는 아편전쟁할 때 돈을 댄 은행이다. 사카린 정도가 아니라 중국이 아편을 금지하니까 전쟁을 일으킨 영국을 도운 것이다. 미국 기업들도 1970년대까지만 해도 중남미에 진출해 노골적으로 쿠데타 세력을 지원해 정권을 뒤집었고, 사설탐정을 동원해 파업 노동자들을 쏴 죽이던 데가 미국이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자본이 외국보다 더 도덕적이라거나 덜 도덕적이다는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재벌문제를 소위 도덕성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깨끗한 자본은 없다. 깨끗한 자본을 원한다면 자본주의부터 부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에서 자본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수정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겠나.
우리 재벌들은 그래도 우리 사회에 뿌리가 있고 국민들에게 빚이 있다. 과거 관세장벽을 높게 만들어 국민들이 후진 차를 타고 후진 물건을 써서 재벌들을 도왔다. 순수하게 자본과 투쟁한 입장에서만 보면 이 씨 재벌, 정 씨 재벌들 구체적 실체가 있고, 그들은 국민들에게 빚이 있고, 과거 나쁜 짓을 한 전과가 있기 때문에 싸우기 쉽겠지만, 국제 금융자본이 우리나라를 장악하게 되면 누구랑 싸울 것인가. 월스트리트에 가서 펀드 매니저를 붙들고 싸울 것인가.
재벌 기업이라는 데가 총수 가족들만의 것은 아니다. 주주들의 것만도 아니다. 우리나라 재벌은 국민기업이다. 국민들이 옛날에 세금을 내고 보호해줘서 큰 기업들이다. 그만큼 재벌들은 국민들에게 빚을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국민경제적 시각에서 이런 기업들이 국민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그냥 '탈세했으니까', '소액주주 권한 무시했으니까'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재벌 기업을 안정시켜주고 그 대신에 얻어내는 게 있어야 한다. 그 핵심에는 투자나 고용창출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꼭 내걸어야 하는 것이 복지국가 건설이다. 그리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미국식 선별적 복지국가가 아니라 유럽식의 '모두가 참가하는' 복지국가이다. 미국도 너무 가난하거나 늙은 사람에 대해 정부가 의료보험도 해주고 한다. 유럽식 복지국가는 다르다. 육아부터 질병, 실업, 노령화 등에 대비해 능력있을 때 돈을 모았다가 필요할 때 찾아쓰는 방식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은 더 많이 내고, 장애인 등은 더 많이 도움을 받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지혜택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중산층의 반복지 정서가 강해진다.
"미국식 복지모델은 반복지 정서 유발. 북유럽식 복지모델로" 예를 들면, 유럽에서는 모든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은 대학에 무료로 다닐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을 잘 주지만 가난하지 않은 학생들은 돈을 많이 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산층에서는 내가 세금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아무런 혜택을 못 받는 구조이다. 미국 중상류층에서는 흑인 빈민가나 미혼모에게 돈을 준다는 것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반면 유럽은 모든 국민이 부유하건 가난하건 기본적으로 받는 혜택이 있다. 그래서 저항감이 약하다.
나는 복지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유럽과 같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복지국가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독일은 복지병에 걸려 경제가 비실거린다', '스웨덴은 우파정부 집권해 복지국가를 포기했다고 한다'는 둥 굉장히 잘못 알고 하는 얘기들이 많다.
처음 영국에 유학을 갔을 때 스웨덴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고민하는 것이 스웨덴의 좌파정부와 우파정부가 80%인 실업수당을 70%로 낮출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싸운다는 것이었다. 우파 정부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좌우의 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유럽 국가들이 복지병에 걸려 경제성장률이 낮다'는 얘기도 거짓말이다. 상대적으로 복지수준이 낮은 미국이 유럽보다 성장률이 낮다. 핀란드,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도 특히 복지가 발달한 나라들은 미국보다 더 빠른 성장을 하고 있다. 독일이 90년대에 경제성장률이 둔화된 것도 복지 때문이 아니라, 통일비용 때문이었다. 복지병은 과장된 면이 많다.
'우리나라가 복지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GDP 대비 복지에 투여하는 예산의 비율이 6% 수준이다. 그런데 OECD 평균은 24%에 달한다. 남미의 칠레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도 11~13%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복지병 걱정해 복지 예산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것은 미국에서 체중 300kg 나가는 사람에게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살을 빼라는 얘기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하는 꼴이다. 우리나라는 300kg은커녕 영양실조 상태인데, 살이 쪄 생명에 지장이 있으니 밟을 굶으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복지제도를 만들 때 복지제도 디자인에 대해 잘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제일 강조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의 재교육과 복지를 잘 연결해서 복지제도의 생산적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복지는 다 같이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지만, 생산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스웨덴 복지는 오히려 고용유연화 도움"
스웨덴이 제일 좋은 예이다. 실업자가 되면 실업수당을 80% 정도 받는다. 그 기간에 정부가 알선하는 재교육을 받고 정부가 직장까지 알선해준다. 3~4회 정도 알선해주고 당사자가 직장을 거부하면 실업수당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줄인다. 다른 나라들은 실업자가 되면 기차역사의 쓰레기로 사라지는데 스웨덴과 핀란드에서는 계속 노동 현장으로 돌아온다. 스웨덴, 핀란드는 우리나라 보수언론들이 보면 나라 망할 짓만 하고 있다. 복지비가 GDP 대비 50% 가까이 되고 세금은 높다. 그런데 스웨덴, 핀란드는 미국보다도 경제성장률이 높다.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미국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이유는 복지가 잘 돼 있기 때문에 오히려 기업들이 기업 구조조정을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해고를 당해도 먹고 살 수 있고, 재교육에 의한 취업이 잘 되기 때문에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다.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해고에 대한 저항이 더 심한 이유는 해고당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하는 또 다른 통계가 있는데 스웨덴의 노동자 1인당 산업로봇의 숫자가 일본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웨덴은 공정 자동화가 제일 잘 돼 있는 나라이다. 이 역시 스웨덴이 복지국가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공정 자동화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기업 차원에서 핵심 노동자의 종신고용을 보장하기 때문에 저항이 덜하다. 그러나 일본의 시스템이 스웨덴보다 덜 공평하다. 일본에서는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면 일생을 보장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생이 팍팍하다. 스웨덴처럼 모든 사람들의 일생을 보장해줄 수 있는 나라가 복지국가다.
복지국가는 왜곡된 인적자원의 배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이 있다고 한다. 전국의 이과생들 1등부터 1000등까지 의대에 가고 그 다음부터 다른 이공계 학과를 간다고 한다.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과거에 비해 의사의 공급이 늘어나면 보수가 상대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의사 선호도가 무척 높아졌다. 이대로 계속가면 전국민이 자기 주치의를 둘 수 있을 정도일 것 같다. 굉장히 병리적인 현상이다. 고용이 불안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아이들이 부모들에게 고용불안에 대한 얘기를 한다. 공대 나와서 삼성, 현대 갔어도 정년 채우지 못하고 나와야만 하는 이모부들 얘기를 듣고 자랐다. 마흔한 살에 잘리지 말고 일흔까지 의사하라는 얘기를 한다. 문과에선 변호사다.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속도를 내서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브레이크가 없는 차는 시속 30~40km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 브레이크가 있고 에어백과 안전벨트가 있기 때문에 100~120km로 달릴 수 있다. 개인이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잘린다 해도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을 때 더 진취적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모두 의사 하겠다는 병리적 사회"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해도 서울대 물리학과에 가서 세계 과학 발전에 공헌하겠다는 얘기들을 했었다. 이제는 그런 얘기 안 한다. 그래봐야 직장은 불안하고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인식이 박혀있다. 복지국가 하면 이공계 기피 현상이 무조건 해소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제조업 부활 등을 예상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고용 불안이 우리 사회를 왜곡시키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의대만 가는 나라 어디에 있겠나. 병적인 현상이다. 재경부에서는 이런 의료인력을 바탕으로 '의료 허브'를 만든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 결코 좋은 소린 못 하겠다.
스웨덴도 1920년대 초반 파업률이 제일 높았던 나라다. 너무 싸워서 이러다가는 1930년대 되면 다 망하겠다는 인식이 퍼져 사회적 협약을 한 것이다. 스웨덴에서 조세저항도 높았다. 조세저항이 강했기 때문에 19세기 중반 소득세가 도입된 영국보다 훨씬 늦게 1930년대에야 소득세를 도입했다. 미국도 스웨덴보다 먼저 소득세를 도입했었다. 그러나 스웨덴 자본가들은 소득세를 용납 못하겠다고 버텼던 것이다. 스웨덴도 소득세를 걷어 잘 쓰니까 받아들이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소득세 내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인구가 1000만이라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배울 게 없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우리보다 인구가 5분의 1인 스웨덴에서 못 배우는데 우리보다 인구가 5배인 미국은 어떻게 배우겠다는 것인가. 미국적인 것은 다 들여오면서 스웨덴은 인구가 적은 나라라 못 배운다고 하는가. 굳이 따지자면 스웨덴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면이 더 많다. 미국은 군사력과 기축통화의 힘이 있는 나라다. 미국은 금융시장에 위기가 오니 달러 가치가 더 올라간다. 우리나라는 위기가 닥치면 원화가치가 바로 떨어져버린다. 기축통화의 엄청난 힘이다. 미국은 국토도 광활하고 처음부터 정복과 이민으로 이뤄진 나라라 불평등에 대한 인내도도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평등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스웨덴에게서 못 배운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싫기 때문에 인구 핑계를 대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조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노조의 조직률이 취약하고 정당성이 약해 스웨덴의 노조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역사의 무게가 중요하다면 이 세상 모든 나라가 원시농경사회에 머물러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역사적 과정에 의해 우리나라의 미래까지 규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고를 수는 없지만, 우리의 미래를 고를 수는 있다. 특히 사회적 대타협은 의식적으로 대립틀을 깨고 새로운 합의를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의 그림자보다 미래의 비전이 더 중요한 것이다. 역사적 조건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지만 거기에 묶여 패배적 사고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성진 "스웨덴이 재벌체제 유지해서 스웨덴 모델 강조하는 듯"
정관용 : 경상대 정성진 교수와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박사 두 분의 패널을 모셨다. 장교수의 발제를 보면 진보가 어떤 목소리를 내고, 보수가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에 대한 논평도 있었다. '좌우'라는 구분 자체가 이제는 굉장히 애매모호해졌고, 또 세계화된 글로벌 경제 하에서는 특히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다. 토론에 이에 대한 논평도 필요할 것 같다.
정성진 : 장하준 교수는 사회자가 소개했듯이, 우리나라 사회과학 분야에서 몇 안 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석학이다. 오늘 발제는 경제민주화라는 주제로 했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미국식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 그리고 지난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산업정책이라는 개념으로 연구한 점 등이 담겨져 있다.
장교수의 제도주의적 입장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안을 체계화하는 입장에 대해서 동의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기념비적 업적이고, 우리가 1970~1980년대 고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이 그랬던 것처럼, 21세기 한국경제 사상에 오랫동안 영향을 끼칠 것으로 평가를 할 수 있겠다.
제가 토론 요청을 받았는데 제가 토론자로서 적합한지 느낌이 들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보면, 장하준 교수가 오늘 비판하는 진보진영이라 일컬어지는 분들은 참여연대라 일컬어지는 그룹이다. 예를 들면 김상조 교수가 토론자로 나왔으면 재벌체제나 외국자본 평가라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내용 있는 토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면 장하준 교수가 있는 그룹을 대안연대 그룹이라고 하는데, 대안연대 그룹과 참여연대 그룹의 재벌체제 문제, 외국자본 문제 평가 엇갈리지만 같이 공유하고 있는 게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참여연대 쪽도 영미식 자본주의가 아니라 북구식 자본주의로 가자고 얘기하는 것 같다. 참여연대 그룹은 장하준 교수가 얘기하는 스웨덴 모델보다 네덜란드나 덴마크 모델을 얘기하고 있다.
아마 장하준 교수가 재벌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곳이 스웨덴 모델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문제설정이 자본주의 안에서 잘해보자는 것이다. 맑스주의나 사회주의 입장과 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탈자본주의와 비자본주의의 대안 실행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입장에서 비판하자면 외재적 비판을 할 수밖에 없어서 자본주의에 대한 주제, 좋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논의 된다면 좀 더 구체적이고 생산적 논의가 될 것 같은데, 나는 틀거리 자체에 비판적이어서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발제문을 전체적으로 읽으면서 이 논의가 2년 전에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조금 요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보면 한국경제가 급변하고 있고, 2007년 한미FTA 문제라든지. 담론 구조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폐해가 양극화 극심해지면서 이런 대안을 진보진영에서 각양각색으로 추구하고 논의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같은 데서 진보적인 대안을 만들어보자고 해서 많은 대안 내놨고,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들도 한국경제의 21세기 진보적 대안 모델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오늘 논의가 한미FTA 이후 상황이나 최근 얘기되고 있는 진보진영 입장을 포함했으면 유익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정성진 "신자유주의는 국내 재벌들이 주도한 것"
일단 토론을 해야 되니까 몇 가지 주제를 갖고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장하준 교수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갖고 있는 맑스적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 문제에 대한 장교수의 이해는 부족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장교수는 신자유주의를 국가와 시장의 관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 무엇보다 주주자본주의의 원리, 그리고 민족적 상업자본과 국제 금융자본 대립관계의 한 축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때문에 투자가 감소하고 성장이 둔화되면서 보통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지며 경제 민주화 후퇴했다고 주장한다. 또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유럽식 자본주의와 구별되는 영미식 자본주의로서의 사회체제로 신자유주의를 이해하고 있다. 이에 대해 난 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체제라기보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로, 자본의 전략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지향하는 자유시장 지상주의라고 하는 것은 현실 역사에서는 사회경제체제로 존재한 적이 없다. 19세기 영국 자유주의, 자유무역은 실은 자유무역 제국주의였다. 20세기 부시의 미국 신자유주의는 사실은 미국 제국주의인 것이다. 현실에서는 시장인가 국가인가 이분법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시장과 국가의 결합체로 항상 존재해왔다. 앞으로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자본주의는 시장과 국가의 결합체로 존속할 것이다.
그래서 1980년대 이후 세계 자본주의가 케인즈주의적 국가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주의로 이행됐다. 이런 진보진영의 통념은 조금 정정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 영역에서도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97~9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퇴조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부시 대통령이 어떤 인터뷰에서 "당신은 신자유주의자냐"고 물으니 "내가 무슨 신자유주의자냐"고 얘기했다고 한다. 부시 그룹은 요즘 들어 서슴없이 "우리들은 제국주의자"라고 얘기한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라고 할지언정 신자유주의자라고 하지 않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가 신자유주의자라고 비판한 노무현 대통령도 비판에 대해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노 대통령은 "나는 좌파신자유주의자다"라는 식으로 답을 했다. 노 대통령이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비전2030'을 보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전 2030'을 보면 선진 통상국가와 사회투자국가의 결합체라고 하는데 이건 일종의 국가주의인 것이다. 이번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를 보면 FRB가 개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중심국인 미국에서도 국가 개입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지배계급의 담론도 사실 97, 98년 신자유주의 즉 '워싱턴 컨센서스'였는데, 98년에 동아시아가 무너지고 세계 경제 위기가 오면서 '포스트 워싱턴 컨센서스'가 됐다. 국가도 시장도 같이 가자는 걸로 바뀌어 있다. 신자유주의에서 국가냐 시장이냐 산업자본이냐 금융자본이냐 혹은 민족자본이냐 외국자본이냐. 이런 이분법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고 이건 무엇보다도 위기에 몰린 자본이 바로 노동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 노동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해서 수익성을 회복하려는 전략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해해야지만 양극화 문제라든지 비정규직 문제라든지 또 장하준 교수가 설명하려는 경제민주주의의 후퇴도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성진 "현재 양극화는 자본의 노동 착취 극대화 과정"
장하준 교수는 또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것을 외적 문제, 즉 국제금융자본의 논리로 환원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라든지 이데올로기가 유행하게 된 것이 87~97년이다. 더 소급하면 80년 근처로 소급하는 사람들도 있다. IMF 이후 외국금융자본이 와서 판 칠 때도 아니고 국내 자본논리에 의해서 국내 지배계급 이해관계 의해서 기존의 국가 주도적인 발전 체계를 전환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과 재벌체제에 대해 모순 관계, 상충 관계가 있는 것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재벌체제와 신자유주의가 모순 관계라는 것은 부차적이다. 오히려 공생관계로 봐야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재벌체제라는 것이 신자유주의를 추동한다고 볼 수 있다. 전두환 정권 때 보면 민간 주도 경제라는 것이 있었고, 김영삼 정권 때 세계화 담론이라든지 전경련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도한 것이다. 그리고 97년 이후 정리해고 자유화, 노동시장 유연화 공세가 대대적으로 있었다. 또한 노무현 정권에서도 신자유주의를 극단화하는 한미FTA가 나왔는데 삼성경제연구소 프로젝트다. 신자유주의와 재벌을 상충관계로 형성하는 것은 힘들지 않겠나 본다. 신자유주의를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관계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지배한다든지, 금융화라든지 이런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산업자본은 좋고 금융자본은 투기적이다'라고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데, 맑스주의적 접근에서 보면 부당하다.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것은 산업자본이다. 산업자본에 기생하는 것이 금융자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의 근원은 산업자본에 있다. 그래서 저는 금융화라는 것. 금융자본의 지배. 주주자본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를 이해할 때 그런 이해가 현실하고 부합되는가 볼 때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본다.
과연 한국에서 보면 97년 이후에 산업자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지배라는 것이 강화됐다고 볼 수 있는가를 보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또한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를 금융자본이 더 뜯어가는 것을 금융화라고 이해한다면, 과연 그런 현상이 97년 이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나를 보면 사실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이자나 배당으로 나가는 부분을 보면 97년 이후 그 전보다 증가했다는 증거 전혀 없다. 또 제조업 부채 비율이 1997년에는 400% 가까이 됐는데 요새 100%로 떨어졌다. 미국이나 일본은 150% 정도 된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 의존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있다. 자율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요즘 보면 금산분리법 제정 논란을 봐도, 오히려 재벌을 중심으로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먹으려 하는 것이 최근의 현상이 아닌가 한다.
장교수는 주주자본주의 원리가 지배하면서 주식시장이라는 곳이 자금조달 기구가 아니라 자금을 뽑아가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사실 보면 97년 이후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많이 조달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에 의해서 배당요구가 많아지고 경영권 위협 때문에 투자가 부진하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반론 논문도 많이 나와 있다. 투자가 부진해졌다고 하는데 97년 이후에 투자비율이 낮아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김영삼 정권 때 과잉투자 됐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박정희 시대와 비교해 보면 요즘 GDP에서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투자 부진이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장교수는 투자 부진이 배당을 많이 해서, 경영권이 위협 받아서 그렇다고 하는데 사실 배당도 많지 않다. 이자로 나간 돈이 많았는데 그것도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는 저투자라는 것은 재벌 경영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고, 중소 자본의 투자부진 문제, 바로 양극화 때문이라고 본다. 바로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 자기 수익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에서 노동 대중인 서민들의 기반이 무너지고 내수기반이 무너지면서 중소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투자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재벌 문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장교수는 재벌과 신자유주의가 대립관계라고 하는데, 재벌이 신자유주의를 주도한다는 것이 먼저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체제와 재벌체제를 다른 진보진영과 다르게 장하준 교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박정희 체제와 재벌체제가 반신자유주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논거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신자유주의와 박정희, 재벌 체제는 대단한 차별성이 있다고 본다. 박정희 체제를 계승하고 재벌체제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기업 CEO들의 신자유주의의 논리를 노무현 정부보다 더 강하게 신봉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교수는 또 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재벌체제가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에 의해서 약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이 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약화되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는 것 같다.
정성진 "재벌 제멋대로 총수 자본주의 아직도 유지"
노무현 대통령이 '이미 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때 얘기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할 때 시장이 무엇인가. 아마 장하준 교수는 주주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여기서 말하는 시장이 무엇인가? 삼성이다. 권력이 재벌에 넘어간 것이다. '삼성 공화국'을 넘어 요즘은 '삼성 제국'이라고까지 그러는데 그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고, 재벌 권력이 더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신자유주의, 시장주의, 주주자본주의 논리가 결코 우리나라 재벌의 자본축적에 장애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주주자본주의가 아니라 총수 제멋대로 하는 총수자본주의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고 본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총수의 '경영세습권을 인정해주자. 인정해줌으로써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자'고 말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재벌총수의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주는 것이, 나는 반자본주의론자이지만 일단 담론 구조 안에 들어가 본다 하더라도, 그것이 경제의 효율을 과연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다. 어떤 의미에서 경제민주주의, 경제정의를 진전시킬 수 있겠는가. 난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소유권을 넘어서 경영권의 세습독점을 인정해줘야 한국 경제가 살아남고, 경제 효율성이 향상된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까지 투입을 해보자, 재벌 2,3세 경영능력을 검증 받을 수 있도록 10~15년 유예기간까지 주자'고 하는데, 무슨 한국경제가 재벌 2,3세의 시험장인가, 연습장인가? 이건 정말 진보하고는 거리가 먼 과거의 순재벌적 시장이 아닌가. 어떤 경제학 논리로도 입증될 수 없는 주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장하준 교수가 지지한 국민경제적 관점, 혹은 국민기업 관점에서라도 재벌의 탈세문제, 경영권의 불법세습독점의 문제는 바로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세계경제 조건에서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그 자체 관점에서 볼 때 과연 60~70년대식의 재벌 총수 체제, 황제식 경영, 문어발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재벌을 해체하면 기업집단이 해체되는 것으로 장하준 교수는 암암리에 이해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재벌 해체와 기업 집단 해체는 전혀 다른 문제다. 재벌이 해체돼도 기업집단은 살아남을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의 국내적 뿌리를 강조하면서 외국 자본이나 국제 금융 투기 자본에 비해 나은 게 아니냐고 하는데, 사실 재벌들이 최근 얼마나 글로벌화 되고 있나. 그리고 재벌을 대상으로 삼아야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 근거가 재벌은 그래도 '이 씨도 있고 정 씨도 있고 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고 싸우기 쉬운 것 아니냐'고 하는데, 그래서 더 싸우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외국 자본과 싸우면 싸움하기 쉬울 것이다. 민족주의 정서도 동원하고. 참여연대에서 발표한 게 있지 않나. 삼성하고 싸우면 삼성이 얼마나 인맥 학맥을 쫙 뿌려놨는지 한 다리 건너면 삼성 다 걸려 있는데 싸우기 정말 힘들다.
경제민주주의를 보통 사람의 생활수준의 문제로 환원하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이 살기 힘든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너무 경제주의적으로 격하 환원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가 87년에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고 향후 과제가 경제민주화라고 할 때 무엇보다도 산업민주주의, 작업장 민주주의, 일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얘기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작업장 민주주의 실현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사회적 생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보통 사람들의 필요에 따른 생산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참여계획 경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성진 "노조는 대타협의 당사자 왜 안 되나"
장하준 교수는 전혀 비현실적이고 백일몽과 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내가 볼 때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한다면 결국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즉 시장경제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결국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것과 민주주의라는 것이 양립 가능한가의 문제가 진지하게 고민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하는데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 같다. 재벌 경영권을 보장하고 그 대가로 복지를 하자는 주장인데, 이 때 투자 증대와 복지국가, 이런 것이 사회적 대타협의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우리가 재벌로부터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대타협의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재벌과 국민을 설정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의 설정은 국민주의, 민족주의적이고 대단히 국익주의적인 것 같다. 사실 신자유주의의 효과라는 것이 이른바 국민을 20:80으로 쪼개 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가 같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월드컵 때 빼고는 얼마나 많을지 의문이 간다.
대타협 당사자를 모호하게 국민이라고 설정하고 노조는 조직률이 낮다는 근거로 빼는데, 중심적 당사자에서 고려를 안 하는 것 같다. 재벌 양보를 받아야 하는데, 이 때 국민이나 정부가 어떤 것을 그냥 내놓을 리 있겠나. 협상 무기로 무얼 사용할지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국민도 그렇고 국가 관료도 삼성에 포획돼 있는데. 과연 국민의 대리인으로 정부가 사회와 대타협한다고 할 때 정부가 완전히 재벌 사람들인데 타협이라는게 제대로 되겠는가.
장교수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주장한다. 주주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이라든지 관련 업계라든지 종업원이라든지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1인1표'로 가자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틀 내에서는 일단 인정할 수 있다. 민주적 발전 복지국가로 묘사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유형을 보면 영미식 자본주의가 있고 이해당사자의 유럽식 자본주의 있고, 동아시아의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가 있는데, 국가 주도적 자본주의와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결합시킨 것이 장하준 교수가 제안한 모델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삼성과 같이 주주권리조차 인정하지 않는게 우리나라 재벌이다. 주주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데 재벌들에게 이해당사자 권리까지 인정해 달라고 기대를 하겠는가.
유럽식 자본주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경험을 보면 노조가 가장 중요한 이해당사자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는 노조를 배제하고 국민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대치를 한다. 지난 87년 이후 한국자본주의 변동. 87년 노동체제의 변동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의 경영권 세습독점을 인정하자고 주장하는데 결국 노조라든지 이해당사자가 다른 주장을 하면 자본주의랑 상충되지 않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이해당사자의 경영참여가 필수적인데, 경영권을 2,3세에게 세습독점을 인정해주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겠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원한다면 재벌 총수의 경영권 독점 해체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투쟁하면 공멸하니까 타협을 하자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 사회적 대타협이란 것이 거대한 계급투쟁의 도약을 배경으로 해서 이뤄졌다. 이런 사실이 환기가 돼야 할 것 이다. 북유럽 복지국가 수립 과정에서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양대 세계대전쟁, 대공황, 혁명의 시대 등을 통해 계급투쟁 고양됐고, 이런 과정에서 핀란드, 스웨덴 모델도 형성된 것이다. 북유럽 국가도 제국주의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 이런 계급적 역학관계나 그 나라들이 자본주의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위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벤치마킹해보자 하는 것이 얼마나 실현가능할까 의문이다. 장교수의 주장이 내가 주장하는 참여계획경제, 사회주의보다 얼마나 현실성 있을지 의문이다.
장하준 "주주자본주의, SK의 부메랑"
장하준 : 말씀 감사하다. 내가 까마득한 후배인데 대꾸를 하는 것이 죄송할 정도다. 토론이니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말하신 부분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인식을 공유하는 것인데, 이번 발제에서는 얘기를 안 했던 것도 있고, 내가 워낙 희한한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근원적으로 오해를 받는 면도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를 들여온 게 재벌들이다'는 얘기는 정확히 맞는 얘기다. 주주자본주의 논리를 처음 들여온 것도 재벌들이다. 80년대 말 재벌들이 머리가 커지면서 정부에게 대들려고 하다 보니, 특히 SK 최종현 회장이 시카고 유학 많이 보내고 했는데 미국에서 들여온 이론이 주주자본주의론이다. 미국 이론에 의하면 기업의 주인은 주주라고 한다. 주식을 제일 많이 갖고 있는 재벌 자신들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정부는 사회적 책임이니 뭐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96년 전경련 보고서가 발표 전에 유출됐었는데, 그 보고서에는 기업들이 못할 것은 외무부와 국방부밖에 없다고 했다. 공무원을 90% 줄이고 나머지 기업이 담당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SK에 부메랑 돼 돌아온 것이다. 장하성 교수가 '주주자본주의 논리대로라면 당신들이 주인 아니다'라고 나서면서 SK가 당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그 이론 들여온 데 앞장 선 최종현 회장 자손이 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화 시켜 설명하다보니 국제자본과 국내자본이 나뉜다고 설명했다. 내가 다른 나라 경제 발전론이 전공이다 보니 남미도 많이 들여다보는데 우리나라 자본가들 바보짓 한 것이다. 남미처럼 왕창 착취하고 옛날부터 BMW, 벤츠 사두고 외국에 별장 지어놓고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박정희 같은 사람에게 잘 못 걸려서 재벌들이 외제차도 잘 못타고 숨어서 놀러 다니고 그랬다.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그 다음에 새로운 금융자본 체제 들어오면서 이익을 보는 쪽이 법무법인이나 기업 컨설팅 하는 사람들이다. 득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 민족경제론 시각에서 '외국놈은 나쁜놈, 한국놈은 좋은 놈'이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큰 균열점들 얘기한 것이다.
그런데 말씀 중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결국 신자유주의나 케인즈주의나 그게 그거 아니냐는 지적이다. 먼 시각에서 보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신자유주의나 케인즈주의나 미국자본주의나 스웨덴자본주의나 다 같은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다르다. 내가 고등학교 나오고 평범한 노동자이며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미국에서 안 산다. 스웨덴에서 산다. 그 점에 있어서는 기본적 견해차이이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만 지적하면 될 것 같다.
장하준 "싱가포르도 사회적 소유 강한 나라" 여러 가지 중요한 말씀 많이 했는데, 일일이 다 얘기하면 끝이 없을 것 같고, 몇 가지만 집어서 얘기하겠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투자행태라든가 소유구조 문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는 다른 의견을 표시했는데, 어떤 것은 더 배워야 할 것도 있다. 그런데 시각차가 나오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기업에서 배당이나 이자로 지출하는 비율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하는데, 지금 보면 이자에 비해 배당이 훨씬 늘었고, 주주들의 입김이 세졌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무조건 배당률을 50%로 정해놓고 기업을 경영한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기업도 이렇게 경영하지 않는다. 기업이 필요하면 몇 년 동안은 투자를 하면서 배당을 안 할 수 있는 거고, 돈을 많이 벌면 50%가 아니라 70%도 배당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무조건 50% 배당 안 하면 주가 떨어지고, 외국 자본들이 철강회사 집어먹으려 돌아다니니까 겁이 나서 무조건 50%를 배당하는 것이다.
큰 그림에서는 정 교수 말이 맞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경제민주화에서 작업장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 나는 완전 사회주의적 소유, 즉 생산수단에 대한 전체 사회의 소유는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믿지만,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소유는 별 문제가 없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에서 자유경제주의의 본보기로 맨날 얘기하고 있지만 싱가포르 토지가 다 나라의 소유이고, 주택의 85%를 정부가 공급하며, 국민소득의 30%를 공기업이 생산한다. 그런 식으로 상당히 많은 부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가 이뤄져 있어도 자본주의가 굴러간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소유에 대해 일부는 동의하는데, 이걸 참여계획경제로 할 수 있을 것인가는 여기서 할 논의는 아니고 견해가 갈린다.
그리고 노조를 배제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섭섭한 것 같다. 현재 노조가 약하고 정당성이 부족한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국민이라는 두루뭉술한 집단이 뭘 할 수 있냐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상대적인 얘기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계급분화가 진화되고 있지만 자본주의 역사가 오랜 나라보다 계급분화가 깊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국민이라는 카테고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 가서 영국이 계급분화가 심한 사회라는 것을 보고 놀랐다. 영국사회 계급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어떤 은퇴 광부 부부의 인터뷰였다. 부부의 아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 대학을 갔고, 고교 선생이 됐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머니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고 그럴 텐데 이 사람들 안 그랬다. '저 자식이 우리를 배반했다'고 하더라. '어떻게 노동자의 자식이 중산층이 될 수 있냐'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축구가 요즘은 기업화 되면서 많은 영국사람들이 보지만 축구는 원래 노동계급의 운동이다. 상류층은 럭비를 한다. 영국 상류층은 축구 안 보는 사람 허다하다고 한다. 나보다 5~6살 많은 영국인이 있었는데, 이튼 같은 최고급 학교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은 돈이 많이 들어 잘 갈 수 없는 기숙학교를 다닌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학교 다닐 때 축구를 하면 선생님한테 혼났다고 한다. 상놈 운동한다고. 계급의 골 깊어서 그렇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정도는 안 됐으니까. 국민이라는 카테고리 상당히 의미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처럼 노조 중심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노조가 세다'는 스웨덴도 자본주의를 폐지 못 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정부에서 돈 받은 것도 아닌데…, 언제 스웨덴 정부에 편지 보내서 연구비라도 타봐야겠다.(웃음)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부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체제의 중심적 지위에 있었다고 얘기하는데, 스웨덴은 어느 정도 그 얘기 가능하지만 핀란드는 그렇지 않다. 핀란드는 700년 동안 식민지였고, 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 유럽에서 최후의 기근을 겪은 나라이다. 핀란드에 그런 카테고리를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결국 제 시각이 제한이 돼 있기도 한데,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별로 바람직하다고 보지도 않고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나마 우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이런 시각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얘기하는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다. 다만 그냥 이대로 놔두면 괜찮을까 항상 걱정하다보니, 그러면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만들어볼 길이 없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한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들어주면 좋겠다.
장하준 "재벌들에게 쓸 수 있는 국민의 무기 딱 하나…경영권" 정관용 :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에 대한 시각차는 진전시키기 어려운 주제인 것 같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얘기한 사회적 대타협에 대한 논의가 불분명하다. 사회적 대타협의 주체로 '국민'이라는 카테고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재벌 당사자들에게 어떤 양보를, 어떤 무기를 통해 얻어낼 거냐 등의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보충 답변을 들었으면 좋겠다.
장하준 : 지금 재벌들에게 무기로 쓸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경영권 보호 장치이다. 그것이 특정 재벌의 세습을 인정해주냐 안 해주냐는 논의를 통해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 예전에 신문에 그런 칼럼을 쓴 것은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는 것이지, 특별히 삼성의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주자는 의미는 아니었다. 지금 국민들 입장에서 재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것(경영권 보장) 딱 하나라는 의미다. 그래서 그걸 축으로 설정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사회적 대타협의 당사자로 '국민'이라는 카테고리를 생각하는 것은 복지국가라는 틀이 있어야 모든 사람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복지국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노조라는 좁은 개념이 아니라 전 국민이 커버돼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이라는 개념을 더 강조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나라에 계급정치가 발달이 안 돼 있고, 계급정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노조 세력이 숫자가 적을 뿐더러, 맞는 이유에서건 틀린 이유에서건 대중적 어필을 받지 못하고 있지 않나.
김용기 "경제적 불평등 심화는 정치적 민주주주의를 위협" 정관용 : 사회적 대타협의 모델을 설정하고 발상의 전환을 통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구체적 실천 방법론은 다를 수 있는데, 구체적 실천 방법론은 남겨져 있는 얘기인 것 같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용기 박사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김용기 : 논의를 위해 경제민주주의가 무엇인가 정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 인류가 발전해 오면서 두 가지 제도가 발달해왔다. 하나는 민주주의이고 하나는 시장이다. 양자 사이에서 민주주의는 사회적 정의, 경제에서는 효율성 등 개인의 재산이나 사회 재산권을 강조하는데, 두 가지 개념이 부딪히기도 하고 일정하게 타협하기도 한 것이 19세기 말~20세기 역사다. 경제민주주의도 20세기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민주주의 사고가 나온 배경 자체가 경제적 불평등이 일정수준 넘어서게 되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위협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반으로 오면 미국에서 재벌이나 대기업의 노조 탄압 사례가 나타났다. 상당수 기업들의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화되면서 그 결과가 파괴적으로 나타났다. 최종적으로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1920년대 공황을 맞게 되는 파괴적 결과를 통해 다수 대중들 어려움 겪게 된 것을 얘기할 수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하는 과도한 시장 자유의 확대는 파괴적 결과를 나타내는 것 아닌가 얘기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제적 불평등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여러 나라에 있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그러한 조항이 많이 있다. 무상교육, 주거, 근로의 권리. 주택 등 다양한 조항이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개인의 자유도 일정하게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에는 법에 의해 제약하는 내용이 있다. 보편적으로 경제민주주의는 각국의 헌법을 통해 각 나라에서 일정한 부분 타협을 통해 나타난 결과인 것 같다. 그 중 하나가 정 교수 얘기한 산업 민주주의도 세계적으로 노동3권이라는 것이 과거에는 보장이 안 되다가 전면적으로 보장된 것이 미국에서 와그너 헌법이라는 것에 의해 보장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에 노동3권이 너무 강화되고 노동자들에게 노동3권 이외의 많은 권한들이 보장 되면서 임금 문제가 정치화되기도 했고, 국민경제에 파괴적 결과를 나타내는 양상이 됐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정부는 노동3권은 보장하되 나머지 권한에 제약을 가하게 되는 양태가 나타났다. 이것 또한 변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형태라고 본다.
장하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생존권적 기본권이 경제민주주의의 요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정치의 민주화 이후 개선되지 않고 상당부분 약화된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민주주의가 엉뚱하게 주주권 강화를 통해 주주민주주의를 강화시켰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기업 내에서 주주의 권한 강화는 넓게 보면 경제민주주의의 하나라고 얘기할 수 있다. 소비자 민주주의 강화라든가 산업 민주주의도 경제 민주주의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주민주주의도 기본적으로 국민경제 다수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주민주주의가 나온 배경은 1930년대 미국이었다. 당시 주주는 대부분 개인투자자였다. 특히 한국과 같이 외국자본이 집중돼 있거나. 개인으로서 남의 위임 받는 기관 투자자가 아니라 대부분 실질적으로 주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나 유럽과 달리 미국은 단일한 대주주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민주주의가 정당성을 가졌지만, 이후에 들어와 정당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한다. 바로 투자 부진이나 고용의 불안정. 외국자본 중심 주주권한 강화. 결과적으로 합의를 할 수 있고, 합의를 해왔던 경제민주주의를 약화시킨 것 아니냐고 요약을 할 수 있다.
김용기 "1주1표는 글로벌 스탠다드 아니다" 기본적으로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두 가지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하나는 1주1표주의이다. 정성진 교수도 주주권한에 대해 얘기했는데, 주주권한조차 보장되지 않으면 어떤 것이 보장되겠느냐 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그런 주장은 대단히 옳지 않다. 주주민주주의는 민주주의에 부합하지도 않는다고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로 우리가 일부에서 상당수 사람들이 당연시 하고 있는 1주1표주의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는 제도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상법상의 1주1표주의를 지적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와 한국뿐이다. 러시아는 공산권 붕괴 이후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이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개인에 의해 출발을 한다. 기본적으로 기업은 가족기업으로 출발해서 성장을 하면 판단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다. 투자와 고용을 촉진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외부자금을 수혈 받아야 한다. 은행 돈을 빌리거나 주식시장 상장을 통해 외부자금을 받는데,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딜레마가 있다. 기업을 공개하면 기존 오너의 주식지분이 옅어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우리라도 70년대 재벌들이 기업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미국이나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긴급명령 발동하고 다양한 강압적 조치를 내렸다. 미국 유럽은 증권거래소가 기업과의 타협을 통해, 차등의결권 등 다양한 형태의 기존 오너의 보호 장치를 만들었다. 소유 지분이 옅어져도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타협을 한 것이다. 타협의 결과는 사회적 고용의 확대와 투자 확대를 통한 국민경제의 성장이었다. 타협의 결과가 소유와 지배권의 간격으로 나타났다. 차등의결권이 될 수도 있고, 상호출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상호출자 형태로 80년대말까지 진행돼 오다가 80년대 상호출자를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금지를 했기 때문에 순환출자가 발전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사회적 타협의 결과라는 말씀으로 드리고 싶다.
기본적으로 1주1표주의의라고 말할 수 있는 소유권과 지배권 간격 줄이기를 최근 EU 쪽에서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도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곳이다. 19개 선진국의 회사제도를 연구한 자료가 있다. 그런데 19개국 어디서도 소유권과 지배권을 일치화하는 제도를 갖춘 나라 한 곳도 없다. 464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44%가 차등의결권과 피라미드 의결구조를 갖고 있고, 상호출자 등의 제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기업의 가치를 파괴하는가? 아무런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 주가와 실제 가치가 일치한다고 믿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재벌개혁, 경제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대표적으로 나오는 얘기가 소유권과 지배권의 괴리 현상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올바른 것인가인데, 소유와 지배권의 일치가 전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타당한 논리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1주1표의 주주민주주의와 정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의 원칙에 의해 진행된다. 하지만 1주1표의 주주민주주의는 주총에서 공개적으로 찬반 의사 표명이 되고 위임투표가 허용되며, 주식의 권리에 따라 투표 권리가 형성된다. 주주가 잔여 청구권자다. 종업원은 월급을 받고 은행은 이자를 받고, 하청업체는 제품에 대한 보수를 받고 있으니까 그들이 대가를 받은 이후에 남은 것은 주주가 가질 수밖에 없으니 주주들이 잔여청구권자이고 기업 경영의 리스크를 그들이 지기 때문에 기업의 주인이라는 주장은 대단히 타당하지 않다.
주식시장에 의해 하루에도 몇 번씩 주주가 바뀐다. 그들이 회사의 종업원과 국민경제에 대해 무슨 책임을 지고 있나. 주주는 유한한 책임을 지지만 기업의 종업원이나 하청업체, 채권은행은 계약을 해지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들이 기업과 운명을 같이 하고 국민경제에 대해 오히려 가깝게 고민할 수 있는 주체인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현재 재벌개혁의 방향으로 잡고 있는 소유와 지배권 간격 좁히려는 노력이 기본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김용기 "개방화·경쟁 불가피, 재교육시켜 개방과 경쟁의 장에 돌려보낼 인프라 구축해야"
두 번째 사회적 대타협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 사회적 대타협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제 원리가 철저히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적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수 없다. 어려운 생활 속에 왜곡되는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이 경제적 민주주의이다. 일정하게 시장 경제의 효율성만을 사회의 모든 영역, 경제 외적 영역까지 확장시키는 것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경제민주주의이고, 이것을 실현시키는 수단이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공황의 시기에 그러한 일들이 분명히 목격이 됐다. 1930년대에 미국과 스웨덴에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것 알게 된다.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했고,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 어떤 세력들이 연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초기에는 과거 자유주의적 주장을 답습했다. 그러나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한국 경제 어려움의 본질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분명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해쳐나가기 위해 이해관계자들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 장하준 교수의 사회적 대타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장교수 지적처럼 어떻게 타협을 할지, 누구랑 타협을 할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인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선택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여기서 나는 결론적으로 과연 현재 다수 국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대기업 집단의 소유권과 지배권 간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줄이려고 노력을 하고, 소위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가 올리는 것이 국민경제 어려움을 해소하는 최선의 길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봐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고용의 불안, 개방화 속에서의 경쟁 가속화 등에 대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들을 재교육시켜 다시 개방과 경쟁의 장에 다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부족하고 그러한 사회적 인프라를 갖출 수 있는 재원이 부족하다. 그것을 준비하는 것이 경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정성진 교수가 '한미FTA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프로젝트'라고 하는데, 근거 없는 문제의식으로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이 120명이다. 한미FTA를 담당하는 연구원은 딱 한 명이다. 그리고 그 분이 파견 가 있는 동안 다른 연구원이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오히려 한미FTA 타결 이후에도 우리 연구소에서 보고서가 별로 나오지 않아 항의를 들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한미FTA가 삼성경제연구소의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나.
기본적으로 재벌을 해체하는 것은 전혀 진보적이지 않다. 그것을 알게 하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191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보면 알 수 있다. 1880년부터 1920년대까지가 미국에서 양극화가 굉장히 심화됐던 시기였다. 대기업에 의한 복지조차 존재하지 않던 사회였다. 굉장히 심한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난무했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쟁점이 됐던 것이 기업의 득세와 각 사회 부문이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 것이냐였다. 시장의 과다한 파괴적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속하고 국민경제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 1912년 미국 대선의 쟁점이었다.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우드로 윌슨이 선거에서 이겼다. 2등을 한 후보가 진보당의 시어도어 루즈벨트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하나인데 1900년대 초반 공화당 대통령이었다. 공화당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대기업의 파괴적 행위에 대해 오히려 억제를 하는 데 서슴없이 나섰던 인물이다. 개인의 자유나 민주주의 보호에도 노력했던 대통령이다. 1912년에는 태프트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루즈벨트가 '이 사람 안 된다'며 진보당 후보로 나와 2등을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진보당의 시어도어 루즈벨트 후보가 주장한 것이 '재벌은 우리 국민경제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대해 일정하게 필요한 부분 규제를 가하고 자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우리가 참고해야 할 내용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장하준 "삼성은 전근대적 무노조주의 하루 빨리 없애야"
장하준 : 김용기 박사의 말에 많은 부분 동의를 하기 때문에 한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하나는 삼성 같은 기업이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성의 무노조주의라든지 하는 것은 굉장히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보고, 하루 빨리 없애야 한다. 재밌는 일이 뭐가 있었냐면 삼성이 삼성중기계를 볼보에 팔아 볼보중기계가 됐는데, 들리는 얘기가 볼보중기계에서 직원들에게 제발 노조 좀 만들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일을 노조를 통해서 하기 때문에 노조가 없는 회사 경영이 상상이 안 됐던 것이다. 글로벌화한다고 하는데 전근대적인 제도다. 또 정성진 교수 지적에 따르면 삼성이 인맥 학맥 등을 통해 주요인사들을 관리한다고 하는데, 이런 행태도 빨리 버리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를 삼성그룹에게 얘기하고 싶다.
김 박사 말씀 중에는 1주1표는 세계 보편이 아니라고 하는데 좋은 지적이다. 이 문제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론', 이것이 저급화되면 '대세론'과 같은 것들이 나타나는데 여기에 대해 몇 마디 하겠다.
우선 대세론에 대해서. 그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대세론 내새우려면 친일파도 처벌해선 안 된다. 그들도 그 때는 그게 대세였다. 100년이 지나면서 잘못된 일이라며 재산까지 환수하는데, 지금은 FTA가 대세라며 밀어 붙이나. 대세론에서 고급화된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론'이다. 잘난 나라들 하는 거면 우리도 거기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 박사가 잘 지적했듯.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믿고 있는 것 중에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것이 엄청나게 많다. 1주1표가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데 아니다. 좋은 기업 지배구조 얘기하고 그러는데,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좋은 기업 지배구조라는 것이 가족이나 지배적인 주주 없고, 국가 소유 없고, 이사진은 다 사외이사고 등의 식으로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글로벌스탠드라고 믿는다.
그런데 좀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보면, 자동차 세계 10대 업체 중 그런 기업 지배 구조 갖추고 있는 기업은 제네럴 모터스 딱 하나 밖에 없다. 일본기업들은 사외이사가 하나도 없다. 독일은 노사 공동의사결정제라 주주권이 보장 안 된다. 프랑스 르노는 국영기업이었고, 민영화된 지금도 정부가 최대 주주이다. 폭스바겐도 독일식의 노사 공동의사결정제를 갖고 있고, 여기에 더해 폭스바겐이 위치한 니더작센 주정부가 20%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프랑스 푸조는 가족 소유이다. BMW는 10등 안에 못 들지만 역시 가족 소유이다. GM과 같은 미국 회사라도 포드는 차등 의결권이 있어서 포드가 사람들의 동의가 없으면 인수합병 등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다. 왜 우리만 하려 하는가. 다른 나라들이 안 하는 이유가 다 있다.
기업과 떨어진 얘기지만 산업정책 얘기하면 촌스럽다고 한다. 미국도 안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미국이 왜 산업정책을 안 하나. 우리나라 산업에서 R&D 비율이 20% 정도 되는데 미국은 50% 이상 된다. 최근 몇 년새 40%대 떨어졌는데, 6,70년대에만 해도 70%까지 됐다. 미국은 산업정책을 가장 세게 하는 나라다. 미국이 기술 우위를 갖고 있는 것 중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게 없다. 자동차, 비행기, 생명공학, 반도체 등. 그런데 우리는 미국은 산업정책 안 한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
과연 이런 식의 대세론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론을 따르며 정책을 윽박지르듯 몰아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말씀 드리고 끝을 맺겠다.
정성진 "일본도 전후 재벌 해체"
정관용 : 사회적 논의 통해서 같이 키워나가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해나갈 수 있는지. 꽤 나갈 과정 남아 있는 것 같다.
정성진 : 김용기 박사께서 장하준 교수에 대한 코멘트뿐만 아니라 저에 대한 코멘트를 하셨기 때문에 다시 답을 드리겠다. 우리나라 재벌체제 문제를 소유권과 지배권 괴리 문제로 파악을 하고 참여연대 주장이 괴리 좁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나는 이 논의 안에서 얘기하는 것 관심이 없다. 김상조 교수가 나왔으면 더 분명하게 반론을 펼쳤을 거라 생각하지만, 몇 가지 더 얘기를 해보면 이렇다.
지분이 1% 밖에 안 되는데 엄청난 선단을 경영하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경영권 보장한다는 것, 경영권을 세습하고 경영권을 독점적으로 재벌 일가가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가 재벌개혁론에서 많이 주장이 돼 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소액주주 권한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EU의 사례를 들었는데, 소액주주 권한은 유럽에서도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등의결권 전혀 인정 안 된다고 하는데. 의결권은 보통주와 우선주의 차이가 있지 않나. 그리고 외국자본과 소액주주가 단결해서 삼성의 경영권을 탈취한다고 설정한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재벌개혁론에서는 이재용이 탈세하며 세습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재벌 해체라는 것이 전혀 진보적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일본은 전후에 재벌 해체했다. 일본이 경제 망했나. 전문화된 기업가 집단으로 체질개선해 미국에 버금갈 정도로 효율성 높아졌다. 내가 한미FTA를 재벌의 프로젝트라고 한 것에 대해 '삼성연의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하니 더 밝혀봐야 할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논평의 취지는 소위 신자유주의 개혁 추진하는 데 있어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김용기 "공정거래법은 전두환 정권의 가격 안정책일 뿐"
김용기 : 일본의 재벌해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경제민주주의 과정에서 예를 들자면 일본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경우가 다르다. 맥아더 장군이 전쟁 원흉으로 일본의 재벌을 지목했기 때문에 재벌을 해체하게 된 것이다. 그것과 한국의 상황은 대단히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한국에서 재벌개혁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70년대 말이고 다수 조치가 나왔지만 법적 근거가 없었다. 1980년 공정거래법 처음 만들어졌는데 나는 공정거래법도 불법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뒤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만들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지 않은 자들이 의회 권한을 행사해 만든 것이다. 공정거래법의 등장 배경은 경제민주주의와 다르다. 1970년대 말 가격 안정화 정책이 득세하고, 국가가 가격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경제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권에 의한 가격 통제이다.
정관용 : 우리 사회에서 재벌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돼 있어서 어떤 논란이더라도 논란의 중심이 된다. 재벌 비판할 점은 많지만 살릴 건 살리자고 하다 보니 협공을 받고 양쪽 반반씩의 지지만 받게 되는 것 같다. 장하준 교수가 전경련 등에서 이런 강연을 하면 어떤 반응인가.
장하준 "내가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다르게 바라보자"
장하준 : 내 주장이 워낙 기존의 담론 틀을 벗어나있다 보니 다들 자기 편한 대로 해석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만 보고 나랑 다름에도 불구하고 내 주장을 좋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생각이 비슷한데 특정 주장 하나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욕하곤 한다. 내가 애매한 입장에 있는데, 내가 생각한게 꼭 맞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게 이런 논의할 때 과거의 이데올로기에 묶여가지고 행동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정말 정성진 교수처럼 과감하게 (자본주의의) 틀을 깨고 다시 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진보적 재벌개혁을 하려면, 재벌들이 범법행위 했을 때 국유화 해버리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문제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진보적 해결책이라면 어정쩡하게 재벌은 미운데 그렇게 까지 말을 못하니 주주자본주의의 논리를 빌어 국제금융자본이 와서 혼내줬으면 하는게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장하준 교수 "끗발 높은 카드 다 공개하고 따라지로 버티는 꼴" [노컷뉴스 대담]케임브리지大 장하준 교수, 한미 FTA 추진 거듭 비판.."스크린쿼터 축소 안돼" [영국/ euko24.com 한인신문 김홍민, 2006-08-30 14:14:19 ]
대표적인 한미FTA 반대론자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가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다시한번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장하준 교수는 지난 23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가진 <노컷뉴스> <유로저널>과의 공동 인터뷰에서 “세계교역 10대국가인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에게 FTA를 요구한 것은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것' ”이라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그동안 미국정부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주로 친미적인 중동 지역 몇몇 국가들과 중남미 저개발국가들 뿐이고 그나마 무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 국가로는 호주가 유일하다"며 "현재 한국 정부는 개념 없는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장 교수는 미국 측이 요구하는 4대 선결 조건(쇠고기, 의약, 자동차, 스크린쿼터) 가운데 하나인 스크린쿼터 축소를 예로 들면서 “끗발 높은 카드는 미리 다 공개하고 '따라지'로 버티기를 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한국은 이제 가격경쟁국가에서 이미지 경쟁국가로 변환되고 있고 그래야 생존할 수 있다”며 "스크린쿼터라는 유치산업보호에 힘입어 많은 재능 있는 감독과 영화인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여왔고 그런 보호가 없었다면 누가 헐리웃 영화에 대항해 영화를 찍을 모험을 감행할 것이며 좋은 인력들이 영화 쪽에 몰려들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장교수는 “미국이 원하는 FTA는 단순히 상품 무역의 문제가 아닌 지적 재산권, 의료체계, 교육체계, 자본시장 규제 등 거의 모든 제도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에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미국과 FTA를 체결해야겠다면, 미국 전문가를 양성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미국제도 중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 연구한 후에 체결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재벌 문제와 관련해 장 교수는 "재벌에 대한 순수한 사업적 측면과 사회적 영향력은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며 "다각화된 기업집단으로서의 재벌의 순환출자구조 등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부 재벌, 특히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삼성의 친 삼성파 육성을 위한 포섭 등 사회악적 행위는 재벌의 해체가 아닌 정치자금법 등을 통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정부의 시장개입과 독재는 구별돼야 한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볍게 생각되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른바 '코드인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 인사 문제는 유럽과 같은 내각제 하에서는 문제될게 없다"며 "그러나 한국같은 대통령제 하에서 막대한 권한이 주어지는 장관직에 단순히 코드가 맞는다고 비전문가를 임명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고 밝혔다.
세계 구도와 관련해 장하준 교수는 "미국 중심의 단극화 현상이 최근 해체되고 있고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EU와 브라질, 중국 등으로 다극화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며 "이미 인도와 브라질 등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만드는 것이 거론되는 등 UN 기구의 개혁도 시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하 인터뷰)
-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유는.
= 신자유주의는 19세기 자유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자유주의는 극도의 방임주의로서 국가의 간섭을 일체 배제하는 것 이었습니다. 은행마다 통화를 발행하여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중앙은행을 반대했고 또한 특허의 정부독점에도 반대를 했습니다. 이들은 민주주의조차 반대했으나 1,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방임주의는 몰락했다고 볼 것입니다.
자유무역과 대비되는 보호무역은 이미 미국이나 영국에서 강력하게 시행된 역사가 있습니다.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헤밀턴의 경우 영국과의 자유무역을 강력 반대했습니다. 그는 신생국가인 미국의 경쟁력이 갖추어 질 때까지 외국산(영국) 수입품을 최대한 억제하는 유치산업 [幼稚産業- 장래에는 성장이 기대되나 지금은 수준이 낮아 국가가 보호하지 아니하면 국제 경쟁에 견딜 수 없는 산업]을 주장해서 미국을 강대국의 대열에 오르게 한 장본인 입니다. 미국은 1830년대 이후 100년간 공산품관세를 제일 높게 매겼고 2차 대전이후 세계최고의 경제 강국이 된 이후에야 자유무역을 주장했지요. 현재도 불리한 것은 개방을 안 하고 있습니다.
-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이면서도 한미 FTA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데.
= 세계교역 10대국가인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에게 FTA를 요구한 것은 미국 측 입장에서 보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것' 입니다. 미국 정부와 FTA를 체결한 국가들은 주로 친미의 중동국가 몇 몇, 중남미 저개발국가 등이고, 그래도 무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 국가로는 호주가 유일합니다.
현재 한국 정부는 막연히 자유무역을 주장하나 미국 측이 요구하는 4대 선결 조건(쇠고기, 의약, 자동차, 스크린쿼터) 가운데 하나인 스크린퀴터(Screen quota: 극장이 자국의 영화를 일정기준 일수 이상 상영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현재 40%에서 FTA이후 20%로 축소예정) 예만 보더라도 FTA가 어떤 포커판에서 논의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끗발 높은 카드는 다 공개하고 따라지 끗발로 버티기를 하고 있는 꼴 입니다.
한국은 이제 가격경쟁국가에서 이미지 경쟁국가로 변환되고 있고 그래야 합니다. 스크린쿼터라는 유치산업보호에 힘입어 많은 재능 있는 감독과 영화인들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여왔다고 봅니다. 그런 보호가 없었다면 누가 헐리웃 영화에 대항하여 영화를 찍을 모험을 감행할 것이며 좋은 인력들이 영화 쪽에 몰려들겠습니까?
UN 산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에 동의하지 않은 국가가 미국과 이스라엘 밖에 없습니다.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독점하는 미국영화 지배 하에서 저질의 영화 끼워 팔기를 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가 바로 스크린 쿼터 입니다. 칸 영화제에서 프랑스인들이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반대에 한국인들 보다 더 지지를 보낸 것은 한국의 경우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통해서 타 문화를 접촉하는 것이 가장 큰 문화 전파수단 중의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남미 등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미국영화의 독점 때문입니다.
미국이 원하는 FTA는 단순히 상품 무역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적 재산권, 의료체계, 교육체계, 자본시장 규제 등 거의 모든 제도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반대이지만, 꼭 미국과 FTA를 체결해야겠다면, 미국 전문가를 양성하여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미국제도 중에 진짜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잘 연구한 후에 체결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 합니다.
- 미국전문가라면 한국에도 많은 미국 유학생 출신들이 있지 않나.
= 친미(親美) 파는 있으나 지미(知美)파는 드뭅니다. 미국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미국에 대한 상식 수준의 역사조차 무관심하고 미국의 장. 단점을 모르고 있으며 또한 알려고 하는 노력도 부족합니다. 미국은 실체가 아닌 이미지로 한국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에게 보여 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잘못 접근하는 것 중에 하나가 미국의 기술개발 연구지원 실태입니다. 한국 정부는 20%정도만이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나 미국은 50%이상을 정부가 지원합니다. 미국시스템은 절대 자유방임시스템이 아닙니다.
교과서적 상품포장용 이미지만 추종할 것이 아니라 미국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지미파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미국을 알기 위해 발을 담그면 지미파가 되기 전에 숭미(崇美)파가 되어버린다거나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정부에서 장학금을 주어 미국으로 유학생을 불러들여 친미파나 숭미파를 키워온 것은 한국의 삼성이라는 재벌이 사회지도층이 될 재목들을 사전 포섭해온 것과 비슷하다 할 것 입니다.
- 한국의 재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 재벌에 대한 순수한 사업적 측면과 사회적 영향력은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다각화된 기업집단으로 재벌의 순환출자구조 등에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일부 재벌, 특히 삼성의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래 지도자들에 대한 친 삼성파 육성을 위한 포섭 등 사회악적 행위는 재벌의 해체가 아닌 정치자금법 등을 통해 규제해야 합니다.
- 정치자금법을 만드는 정치인들 또한 삼성에서 장학금을 받지 않은 사람이 드물 텐데.
= 기업이 정치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규제해야지 자본의 집중을 막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예만 보더라도 1982년에 반독점법을 이용해 AT&T라는 거대기업을 해체했지만, 또 마이크로 소프트나 월마트 같은 거대기업이 등장했습니다. 자본주의 특성상 경제력 집중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한국은 지금까지 정부가 기업에 개입하면 독재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한국의 역사상 독재와 정부개입이 중첩되어 왔으나 이는 명확히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선진국들은 정부의 기업 활동에 대한 개입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 이런 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독재와 경제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196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프리카 가나라는 국가의 절반도 되지 않았었습니다. 유치산업 보호 및 국내자본의 국외 유출 반대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국 경제성장에 공헌한 것에 대한 평가가 너무 가볍게 생각되는 경향도 있습니다.
-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로 한국의 많은 개혁지지 세력들이 많은 기대를 가졌지만 지금은 많이 무너지고 있는데 유럽 국가들의 노조와 비교하면 어떤가?
= 양극화의 심화와 노조문제는 모두 사회복지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소득재분배전(세금 이전의 소득)의 양극화는 유럽이나 다른 선진국들이 훨씬 더 심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은 소득재분배 비율(세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시장 자체를 억눌러 그 불평등을 눌러왔지요. 대기업 혹은 강성노조가 있는 곳에 취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즉 한국 경제구조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자영 영세상인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차이는 너무 큽니다.
노조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더 강성화 됩니다. 노조에도 가입할 수 없는 비노조원들은 아무런 혜택이 없어 이러한 귀족 노동자들의 쟁의행위에 갈 수도 없습니다. 북구 유럽 국가들은 복지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노조조직률이 8-90%가 되어도 노조가 거의 쟁의를 하지 않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노조비율은 높지 않으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것은 이들 노조의 쟁의 행위가 단순히 노조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업문제, 빈민문제 등 사회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 입니다.
- 미래 한국을 짊어지고 나갈 젊은 학생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 젊은 세대들은 미래를 멀리보고 준비해야 합니다. 기성세대들이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겠지요. 2-30년 후 혹은 3-50년 후 국제사회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예견해야 합니다. 인도나 브라질 전문가를 몇 년 안에 키울 수는 없는 겁니다.
<정태인-장하준 대담>
----------------------------------------- "일본처럼 했다면 한미FTA 깨졌다" (오마이뉴스, 김종철 (jcstar21), 2007-08-30 12:10) "한미FTA 반대하면 대원군 지지자?"
[정태인-장하준 대담 ①]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다
"일본과 FTA할 때는 깐깐하더니 미국에는..." 한미FTA를 꺼냈다. 대화의 시작과 끝을 관통한 단어였다. 정태인과 장하준에겐 그만큼 절실했다. "어쩔수 없이 FTA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장하준의 말이다. "대세론처럼 잘못된 주장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세론을 따르려면 친일파 재산 환수는 왜 합니까. 그 때 그사람들은 말 그대로 대세를 따라서 제국주의 편승해서 잘 했는데….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또 한 가지, FTA가 대세라면서 자꾸 국민들 압박하는데 대세가 아니예요. 비슷비슷한 나라끼리 지역 통합하려는 것을 다 FTA로 치니까 많아보이지, 미국-한국 식으로 큰 차이가 나는 FTA는 몇 개 안 돼요."
정태인에게 다시 물었다. "참여정부 초기에 일했는데, FTA 추진방향이 이미 만들어지지 않았나"라고. 정태인은 "초기는 아니고 2003년 8월에 FTA 로드맵이 만들어졌다"고 답했다. 그 역시 이 부분에선 할 말이 많았다.
"FTA 로드맵 만들어졌을 때 미국은 맨 마지막에 가 있었어요. 이게 참여정부 임기 내에 추진될거라고 생각한 사람 아무도 없었어요. 국민의 정부 때 이미 시작됐던 일본과의 FTA는 진행돼 있었고….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현 주 UN대사)이 일본과 FTA를 탐탁치 않게 여겼죠. 일본과 협상 때 되게 깐깐하게 했어요. 가령 김 쿼터 빨리 늘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일본과 FTA) 중단됐는데, 그런 태도로 미국하고 했다면 수백번 깨졌어요."
정태인은 김 본부장이 처음부터 미국형으로 한국을 개조하겠다는 생각이 뚜렷했다고 회고했다. 미국과 FTA는 거의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에 들어갔고, 그 결과는 참담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다시 물었다. "국민들은 세계화 속에 한국이 자유무역을 해서 먹고 살아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장하준이 곧바로 맞받아쳤다. "지금은 통상국가 아니에요? 세계에서 몇 번째로 꼽히는 통상국가에다 개방 정도도 상당히 높은 나라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해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반대편에서 '자동차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아니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하자는 건데 왜 그런 식으로 사람을 반대쪽으로 확 몰아붙이면서, 마치 한미 FTA 반대하면 대원군 (쇄국정책)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립니까."
"미국 제품에만 특혜주는 게 '자유'무역?"그렇지 않아도 큰 목소리의 톤이 더 올라갔다. "전 잘 믿지 않지만 주류경제학 이론으로 볼 때도 그런 식으로 개방하고 싶으면 일방적으로 개방하면 돼요. 이런 식으로 양자간 무역협정 맺어서 개방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무역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한미 FTA 맺으면 미국 제품이 아닌 다른나라 제품은 차별을 받는 건데 그건 자유무역이 아니죠. 자유무역론자들이 '우리사회를 미국식 개조하자'고 하면 국민들이 싫어하니까 '세계화 물결을 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거죠."
정태인이 말을 이었다. '미국식 개조'가 어떻게 이뤄질지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다. 물론 그는 작년부터 200차례가 넘는 여러 강연장에서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
"한미FTA로 이제 우리의 법과 제도가 다 미국식으로 바꿔지는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법률 개정이 100여개가 될 것으로 예측도 있고, 여기에 시행령 넣느냐 마느냐에 따라 숫자가 더 커지고 작아지고 하는데…. 문제는 우리 정부가 '미국은 선진국이고 미국 제도는 선진제도다, 그러니까 한미FTA 하면 우리제도가 선진화되서 선진국 될 것이다'고 하는데, 이것이 선진경제론이거든요. 제도라는 게 그 나라 산업과 경제 행위에 따라 맞춰져 있는데, 미국 것을 가져온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선진국되는 게 아니란 거죠. 산업구조조정만 빨리 진행될 겁니다."
이어서 구체적인 사례들이 줄줄이 나왔다. 미국의 대형 의약업체인 '화이저'와 국내업체 '동아제약'을 거론하면서, "매출액과 기술개발투자에서 100대1, 160대1 차이가 나는데, 제도 바꿨다고 동아가 어떻게 화이저가 되느냐"고 지적했다. 그리고는 "이번 (한미)FTA로 국내 의약업체는 서너개만 남고 다 도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조선과 철강·반도체·자동차 최종조립 정도 빼고는 나머지 제조업은 공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육성하겠다던 정밀부품산업에 대해서는 '궤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다.
"비효율적 시스템도 미국 것이면 선진인가" 이 정도면 심각하다. 하지만 정부나 보수언론이나 학자들은 여전히 한미FTA 시장개방을 통해 국내 경제가 단계적으로 체질이 좋아질 것으로 믿고 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한미)FTA로 우리 산업에 경쟁력이 강화되는 부분이 전혀 없냐"고 말이다. 기자는 정태인과 장하준의 거센 반박을 들어야 했다. 좀 길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적어본다.
장하준 "시장 개방하면 선진기법 들어온다 하는데,우리나라에 있는 미국이나 영국계 은행들이 하는 게 뭐에요? 주택담보 대출하고 위험한 기업 대출은 줄이는 식으로 안전 운행해서 돈 많이 버는 게 선진 경영기법이거든요. 영국 은행가 격언이 있어요. 필요한 사람한테 절대 돈 꿔주지 말라고…. 우리는 위험을 줄여서 중소기업에 담보대출하는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그런 거 안 하거든요. 원래 선진 금융기법이 아닙니다.
또다른 예로는 의료도 보세요. 미국이 국민소득의 15%를 의료비에 쓰고 있어요. 세계 최고예요. 유럽에서 높은 나라인 프랑스 스웨덴도 11% 영국, 한국도 6~7% 되는데, 미국이 우리나라 포함해서 이런 나라들 보다 건강 지표가 높지 않아요. 굉장히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이거든요.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이상 돈을 쓰는데 건강지표는 영국보다 나빠요. 선진기법을 들여와서 우리를 발전시키는 효과를 기대한다 하더라도 왜 그런걸 들여오느냐는 거죠.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정태인 "영국은 국가의료제도(NHS)라고 해서 세금으로 병원 전체가 운영되고, 물론 일부 민간이 도입됐지만, 우린 의료보험 시스템으로 국가보험 시스템이고, 미국은 민간보험 시스템이에요. 건강보험이 없어요. AIG(미국계 생명보험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험을 파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부자들 보험부터 만들어요. 줄 안 서고 오래 진료받고 1인실 들어가게 해준다 약속하고 1년에 1000만원, 2000만원 내라고 하면 우리나라 부자들 드는 사람들 꽤 많을 거예요. 부자들은 병원에 잘 안 가니까 보험회사·병원 다 행복하죠. 반면에 가난한 사람 가지고는 보험이 성립 안 돼요. 보험료 조금 내고 보험금 많이 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나 파탄이에요. 미국에 5000만명은 아무런 보험이 없이 살아가고 있거든요. 보험 없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상상 못하는데, 감기 하나에 10만원이 들어갈 수도 있고, 손가락이 곪았는데 (치료를 못 받아서) 자를 수도 있고."
장하준 "미국보다 더 심한 곳이 멕시코인데, 거기서는 예를 들어 누가 슈퍼마켓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는데 미국 돈으로 1000불 안 내면 앰뷸란스 직원들이 실어주지 않는데요. 사람이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데…. 미국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극단적 시장논리가 도입되면 그렇게 되는 거죠. 현금 박치기로 1000불 내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안 간다는 식으로(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정태인 "돈 많은 순서로 고급 서비스제공하는 건데, 이제 공공서비스에 다 적용될 겁니다. 부동산·교육도 잘 생각해보면, 비싼 것에 부자들이 돈을 많이 지불하잖아요. 교육에 대한 재원이 그 쪽으로 쏠리면 공교육은 무너지게 되어있는 거죠."
대선에서 이슈화가 왜 안 될까? "범여권이 더 찬성" 이들 이야기만 듣고 있자면, 한미FTA는 한국 경제와 사회에 거의 재앙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많은 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그 폐해를 피부로 못 느끼는 것 또한 현실이다. 물론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한미FTA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꾸준히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대통령선거까지 맞물려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물었다.
- 언론들이 부각시키지 않은 측면이 있을수 있지만, 한미FTA가 이번 대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정치진영에서도 대세론에 휘말려 찬반 논의가 의미가 있느냐는 의견도 많은것 같은데.
정태인 "현재 이슈가 안되는 건, 범여권으로 본다면 다 찬성이에요. 천정배만 반대고 나머지는 찬성이라서 이슈가 안 되는 거죠. 한나라당 다 찬성이었죠. 범여권 후보가 더 찬성이에요. 손학규 지사가 제일 적극 찬성이에요. 민주노동당은 다 반대에요. 그러니까 당내 경선에서는 똑같으니까 이슈가 안 돼요. 이제 본선에 가면 민주노동당은 반대고 나머지는 찬성이 확실해지는데,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얘기가 얼마나 언론에 반영돼서 주요한 이슈가 되느냐가 문제죠. 한미FTA 반대는 혼자 하는 게 아니고 적어도 40%의 국민이 반대하기 때문에 이건 요구해야 돼요. 국회에서도 대부분 국회의원들이 꼼꼼히 살펴보고 찬반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 없어요."
장하준 "읽기도 힘들게 만들어놓은 거 아니에요?"
정태인 "그래도 읽어야죠. 이게 얼마나 큰 정책인데. 제가 알기로는 그래도 한미FTA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람 5명 이내입니다. 나머지는 몰라요. 앞으로 75명의 이상의 의원들 서명을 받아서 국정조사를 요구할 거고, 그 때 좀더 꼼꼼하게 살펴볼 겁니다."
장하준 "현재 인식이 너무 안일해요. 이게 국민 건강의 권리가 위협받을 뿐 아니라, 국민은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잖아요. 일자리도 위협 받거든요. 미래를 볼 때 미국과 FTA 맺는다는건 분업 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건데….
굉장히 큰 이슈인데 이걸 마치 농민 몇백만명 좀 희생하고 우리 다같이 미국차 좋은 차 타고 쇠고기 먹고 잘살지 뭐, 이런 식으로 보수 언론은 몰아간단 말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수언론에 있는 사람들도 자기 자손들의 미래조차 좋은게 아니란 겁니다. 안일하게 '(한미FTA) 별 거 아닌데, 약속(협정문 체결)도 했고 대강 하지' 이렇게 넘어갈 이슈가 아니거든요."
"시장만능론+토건국가... 이건 최악이다"
이들은 이번 대선에서 한미FTA가 국민들의 선택에 중요한 바로미터가 돼야 한다고 믿고 있다. 정태인은 "한미FTA라는 것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좌우하는 매우 중차대한 문제"라며 "아직 피부로 못느낄수 있지만,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국민들이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물었다. "현재까지의 대선전망을 보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쪽 집권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두 분의 우려가 현실이 되겠다"고. 정태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찌보면 그가 오늘 대담에서 진정하고 싶은 말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장만능론 더하기 토건 국가, 이것 최악이거든요. 한미FTA 막으면 되는게 아니라 과거 체제 좋다는 거냐? 아니거든요. 그러면 (한미FTA) 막으면 대안이 뭐냐는 것이고, 한미 FTA 찬성하는 쪽은 어떻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지 정교한 논거를 대야합니다. (한미FTA) 반대하는 쪽은 한미FTA 없는 상태에서 어떤 대안을 내놓고 성장하고 분배고르게 할것이냐, 이 토론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막연히 삼성이니까 잘 하겠지'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따져 보면 무엇이 현실적인 공약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5년 전 노무현 후보 정책에 관여했지만 민주노동당 세 후보(권영길·노회찬·심상정)의 공약이 훨씬 구체적이에요. 선명성 경쟁하다 보니까 일부는 비현실인 것이 있지만 5년 전보다 훨씬 구체적인 정책 세우고 있고, 이념적으로 일관돼 있다고 볼 수 있죠. 꼭 보수쪽으로 정권이 넘어가서 신자유주의가 확실히 전개될 것이다, 하기에 따라선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민주노동당이 한미FTA 반대하는 40% 국민들을 흡수하면 대통령 되는 거죠."
------------------------------------- 정태인 가족이 헌혈 거부당한 이유(오마이뉴스, 김종철 (jcstar21), 2007-08-30 12:10) [정태인-장하준 대담 ②] 물과 민영화, 그리고 광우병 이야기
정태인의 말대로, 한미FTA에 대해서는 국민들 40% 가까이 꾸준히 반대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심각성이나 피해에 대해서, 국민의 상당수가 우려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정태인과 장하준은 한미FTA 이후 달라질 공공서비스의 변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와 전기 등 각종 공공분야에서 초국적 기업들에게 진출할 기회를 열어주면서, 국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공공서비스의 민영화'다. 물론 정부는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정태인의 말을 들어보자.
"(한미FTA) 협정문엔 안 나타나 있지만, 우리 스스로 미국 식으로 법과 제도를 바꿔서 민영화를 본격적 추진할 거라는 거죠. 민영화 계획은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97년 외환위기 때 IMF가 요구한 게 공기업 민영화였습니다. 거기에 재경부 IMF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이 개방한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참여정부에서 잠깐 중지돼었던 상태인데, 이게 한미FTA로 본격적으로 추진될 겁니다."
정부가 갑작스레 '물 산업 육성방안' 내놓은 이유
그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물 산업 육성방안'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다 민영화"라고 결론짓는다. 옆에 있던 장하준이 "특히 EU하고 FTA 하려면, 프랑스같은 데서 물 산업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꼭 관철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왜 정부가 이 때 물 산업을 꺼냈을까. 정태인이 말을 잇는다.
"그러면 왜 갑자기 (물 산업이) 먼저 나왔냐. 정부는 의료도 민영화 계획을 갖고 있거든요. 그것은 지금 EU하고 FTA 협상 하는데, '(EU로부터) 강요받아서 시장을 열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으니까, 또 민영화 계획도 가지고 있었고 해서 미리 발표해 버린 거죠."
정태인은 "이건 물 뿐이 아니다"면서 "얼마나 이익이 나느냐에 따라 철도·전기·수도·가스·우편이라고 하는 네트워크 산업 분야, 의료·교육·주거 같은 분야도 민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공적인 네트워크 산업의 규제를 풀면 풀수록 민간 기업들의 이익은 높아지게 되고 공적인 서비스는 죽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수도권 인구 밀집지역에 살지 않으면, 수도나 철도·전기 비용은 아마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라며 "일반 국민에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하준은 좀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꺼냈다. 최근에 좌파정권으로 바뀐 볼리비아의 예를 들었다. "지금은 좌파정권이 들어서서 조금 줄었지만, 예전에 볼리비아에서 그 나라 민영화 한창 때 물 산업을 미국의 벡텔사라는 곳에 팔았어요. 이 회사가 얼마나 악랄했냐면, 물값을 3배에서 5배로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일반 시민이 빗물을 받아서 쓰는 것까지 고소를 했어요. 그런 사람들과 앞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것인데…."
정태인은 민영화할 때는 적절한 규제기구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공서비스의 보편성을 감안할 때, 일정하게 정부차원의 규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한미FTA에선 이같은 규제기구가 들어갈수 없거나 극히 제약돼 있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그는 주장했다.
장하준 "빗물까지 받아쓴다고 고소하는 기업들과 사업을..."각종 공공서비스와 의료·교육시스템까지 전반적인 서비스의 질 향상보단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부담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것이 이들의 전망이다. 물론 이같은 피해를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기까진 시간이 걸린다. 정태인의 말을 들어보자.
"개방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 것인데, 제일 먼저 피해는 제약업에서 나타날 거에요. 이미 중소 제약업은 수입상으로 업종을 전환하거나, 문을 닫거나하는 변화 일어나고 있고, 정밀기계 쪽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물론 농업에서 제일 먼저 피해가 일어나겠죠. 사람들이 농업에 대한 피해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요즘 주부들한테 초점 맞추고 있어요. 가족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광우병 쇠고기도 있고 유전자변형식품 문제도 있고…."
자연스레 최근 논란이 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장하준은 먼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쇠고기는 광우병 뿐 아니라 성장호르몬도 문제"라며 "우리나라에서 왜 아직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정태인과 장하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하준 "미국은 소를 키울 때 성장호르몬을 놓는데, 그것에 대한 안전성 입증이 안 돼서 유럽에서는 수입 금지가 돼 있어요. 우리나라는 왜 그 얘기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일부언론에선 '할머니가 손자에게 쇠고기 실컷 먹여보는 게 소원'이라며 '한미FTA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막고 있다'는 식으로 쓰더라구요. 손자에게 (미국산 쇠고기) 실컷 먹여서 나중에 이상하게 되면 그 할머니가 행복하겠습니까? 할머니야 그 병이 나돌 때면 돌아가셔서 안 계실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거든요."
정태인 "딸도 저도 광우병 때문에 헌혈 못해요"정태인 "(광우병은) 10년 후에나 발생하는 겁니다. 금년 가을에 우리가 뼈있는 쇠고기 수입한다고 하면 인간 광우병은 아무리 빨라야 2018년이에요. 발생하면 그게 미국쇠고기에서 발생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해요? 불가능하죠. 공무원이 책임질 일이 전혀 없어요."
장하준 "지금 광우병 잠복기를 아무도 모르잖아요. 최고 길게는 25년까지 잡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서 영국에서도 아직 잠잠해진 것 같지만 더 나올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요. 아마 이 사건 터질 때면 공무원들은 은퇴하고 없을 지도 모르죠."
정태인 "(웃으면서) 내가 영국에서 돌아온 지 10년 됐어요. 이제부터 광우병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헌혈도 못해요."
장하준 "(역시 웃으며) 언론들이 그렇게 쓰겠네. 정태인 교수 광우병 때문에 저런 소리 한다고."
- (정태인을 바라보며) 헌혈 못하십니까?
정태인 "나는 몰랐는데 우리 딸이 고등학교 때 헌혈하려고 했는데 '몇년부터 몇년까지 영국에서 살았냐' 물어보더래요. '살았다' 그러니까 '너 광우병 걸려있을 수 있으니까 못한다'는 거에요. 우리 방역 당국이 아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그 원인이 될 수 있는데 미국쇠고기 수입은 허용하거든요. 말 앞뒤가 안 맞는 거예요.
장하준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추진하던 사람이나 돈 많은 사람들은 한우만 먹겠죠. 뭐 자기들이 광우병 위험이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먹겠어요? 우리나라 사람들 건강에 강박관념이 있다시피 골라먹는데…."
정태인 "결국 쇠고기 수입 허용하면 가난한 사람이 먹게 돼요. 쇠고기가 싸지니까 상대적으로."
장하준 "이렇게 할 수 있겠네요. 미국 쇠고기 도입 찬성하는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한테 서약서를 쓰게 해가지고, 항상 미국 쇠고기만 먹겠다고 해서 감시하는 단체 만들면…(웃음)."
정태인 "예전에 TV (토론에) 나가서 얘기는 했어요. 반 농담이었는데, 대통령이 손녀를 데리고 2달간 미국산 쇠고기로 설렁탕 끓여서 먹으면 수입하셔도 좋다고."
정태인과 장하준은 참여정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물론 둘다 비판적이다. 한때 '노무현의 책사'로까지 불렸던 정태인은 이젠 노 대통령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장하준은 좀더 자유로웠다. 비판의 각도와 분석은 달랐지만, 내용은 오히려 보수언론보다 수위가 높았다.
장하준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현 정부가 '진보성'을 내세우며 100년전 일제와 협력한 친일파의 죄를 물어 재산환수까지 벌이고 있다"면서 "그런 '정의로운' 정부가 지금 시장논리만을 내세우며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더 양보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재벌·조중동·미 초국적기업들은 한미FTA가 소원" 장하준의 이같은 기조는 이날 대담 자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민주정부는 기본적으로 다수를 위해 일하기 때문에 시장에 개입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시장은 1주1표이고 민주주의는 1인1표니까…. 가난한 사람이 시장에서는 부자의 1억분의 1힘 밖에 없지만 투표장에는 똑같은 힘이 있는 거란 말이죠. 그런 사람 돌봐주라고 민주주의 만든 건데,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과거 독재정권이 개입주의였기때문에, 무차별적으로 개방하고 정부개입 무조건 안 하고 이러는 게 민주주의 같은 인상이 심어져 있어요.
마치 그것이 진보적인 것처럼 인상이 심어지면서 참여정부 집권 후반에 가서는 완전히 두 개가 융합이 돼 버린거죠. 처음에는 정태인 선배도 계시고 그래서 재경부 등과 긴장 관계가 어느 정도 유지됐는데, 그걸(시장개방) 막는 브레이크가 없어지니까, 그냥 그런 식으로 조합해버리면 못할 것 없거든요."
정태인도 목소리를 높였다. 80년대 국가동원체제를 지나 시장이데올로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 것은 94년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라고 규정했다. 그때 자본시장 개방한후에 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국민의정부때 위기 극복 차원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사회안전망을 결합했다고 평가했다. 정태인 이야기다.
"참여정부 초기 2년 동안은 양쪽으로 다 가지고 있었어요. 사회적 대타협과 시장에 맡기는 부분을 정책적으로 해오다가, 2005년 여름 지나가면서 이정우 위원장이 (청와대를) 나오면서 개혁파는 없었거든요. 그 다음에 나온 게 대연정 논리였고, 바로 한미FTA 나왔거든요. 급속하게 시장 만능론으로 간거죠. 김영삼이 시장만능론을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정책화했다면, 김대중시대에 그것이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상당히 제도화되면서 실현됐고, 한미 FTA는 그걸 완성하는 겁니다. 제도화하는 것이고 반영구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한미 FTA 확실하게 반대하는 정권과 국민들이 그걸 지지해서 한미FTA를 폐기하지 않는 한, 계속 시장화·민영화·규제완화 쪽으로 갈겁니다. 정책기조인데, 이것이 50, 100년 그 기조로만 가도록 만드는 겁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결국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재벌과 재경부·조중동의 보수언론, 미국의 초국적 기업들 입장에선 한미FTA가 소원"이라고 말했다.
"양극화는 필연적이 아니다"
우리사회의 화두인 양극화와 고용불안에 대한 분석과 해법도 분명했다. 이들은 양극화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고,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전반에 걸친 시장만능주의와 개방에 따라 어쩔수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시 정태인의 말이다.
"양극화는 옛날보다 심해요, 실제로 85~95년까지는 산업의 연관성도 크고, 임금격차나 소득격차가 줄어들어요. 수출도 잘 됐지만 내수가 잘 된 시기였거든요. 세계화 개방화하면서 무너지면서 양극화가 됩니다. 글로벌 아웃소싱하고 '세계경영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외국으로 공장 이전시킨다거나 외국공장에 맞춰 하청 도급단가 낮춰버려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겁니다. 양극화는 필연적인 것 아니에요. 정책에 의해서 충분히 줄여나가고 국내 연관 산업을 강화시키는 정책을 통해서 극복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장기투자이고, 사람에 대한 투자예요."
이어진 장하준의 설명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세계적인 통신기업으로 성장한 핀란드 노키아의 예를 들었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와 비판을 가감없이 전했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라는 게 장기투자는 안하는 체제예요. 모든 걸 다 열어놓고 움직이기 좋게 만들었기 때문에 조금만 어려워도 다 빠져나가는 거거든요. 역설적으로 주주가 명목적으로 주인인데 주인의식이 제일 약합니다. 제일 빠져나가기 쉽거든요. 외국에서 우리나라 제벌 체제 싫어하는 것도 자꾸 신사업에 진출하다고 기존 산업 이익을 당장 이익 안 나는 기업에 꼴아박으니 미운 거란 말이죠.
이걸 놓고 배임이다 공격하는데, 예를 들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노키아라는 기업을 봐요. 이 회사도 사업이 문어발식 경영이었어요. 벌목·고무 장갑·전선 피복사업 하다가 1960년에 전자산업에 진출했는데 그 부서가 17년만에 흑자를 냈습니다. 그 때 핀란드 주식시장이 꽁꽁 닫혀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지, 지금 어느 기업이 17년 적자 낼테니 밀어달라고 누가하겠어요. 현재는 구조조적으로 단기주의로 가게 돼있거든요. 그나마 성장을 하더라도 그 과실은 다 위쪽에서 가져가고, 일반 국민들은 혜택을 볼수있는 체제가 아니란 거죠."
"진보진영 뭘 했냐고? 이제 하겠다"
그럼 어떻게 가야할까. 한 마디로 한국사회 또는 경제적으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일부에선 최근 사회전반에 걸쳐 보수화와 자유시장주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을 두고 진보진영의 무능함으로 공격하기도 한다. 진보진영은 그동안 무얼했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에선 정태인도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진보진영 스스로 아주 작은 문제에 파고들었거나 너무 큰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던지, 그 중간이 비워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진보진영이) 당장 정권을 잡았을 때, 정책꾸러미가 풍부하지 못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다"면서 "그런 것을 할 것이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와 같은 시장만능·단기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복지를 통한 성장을 내세운다. 주주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다. 복지를 위한 접근 방법도 정태인과 장하준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비슷하다.
장하준의 말을 들어보자. "고용안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기업 차원보다는 사회 전체적 차원에서, 복지국가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용이 안정돼야 기술 발전이 있어요.
세계에서 노동자 1인당 산업 로보트 대수가 제일 많은 나라가 일본·스웨덴입니다. 왜 그러냐면 그 두 나라는 핵심 노동자들이 고용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신기술 도입 반대 안 하거든요. 자동화되면 일본은 다른 곳에 배치하고, 스웨덴은 잘리면 실업 수당에 재교육도 받아 다른 곳으로 가니까 그걸 목숨 결고 저항할 이유가 없어요. 역설적으로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들이 신기술 도입을 제일 잘 합니다. 대신 미국은 복지국가가 잘 안돼 있어서 기업이 구조조정하면 갈등이 많아요. 옛날에는 회사가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노조 조합원을) 총으로 쏴죽였잖아요. 보호주의 압력도 어느 나라보다 강해요."
그는 복지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스웨덴이나 핀란드와 같은 복지국가 모델 속에서 고용안정과 기업의 생산성, 국부가 커지는 것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복지나 분배가 성장이 좋지 않다는 고정관념부터 없애라는 충고도 이어진다.
"스웨덴에서 못 배운다면서, 미국에선 어떻게 배우나"
"노조 조직률 80%, 조세부담 50%인 나라들이 무슨 국제 경영지수 같은 것을 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5등 안에 들어있거든요. 이것은 복지나 분배가 성장에 안 좋다는 고정 관념을 깨주는 겁니다. 복지를 잘 하면 성장에 좋다는 거죠."
이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사회적대타협도 나왔고, 소득재분배를 넘어선 자산재분배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세금도 늘어날수 밖에 없다. 조세저항을 줄이기 위한 국민 설득 작업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항상 거론되는 대안모델로 스웨덴식 복지모델이다. 논란도 많았다. 노조조직률이나 세금에 대한 인지도, 나라 크기 등을 두고 현실과 맞지 않다는 반론이었다.
장하준의 반론으로 이번 대담 기사를 정리하려고 한다.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안 되는 거지. 스웨덴은 뭐 조건이 좋아서 사회적 대타협을 한 것이 아니거든요. 1920년대에서 파업이 가장 심한 나라예요. 노사 협조 전통이 없어요. 자본가들도 굉장히 조세 저항이 심해서 영국이 1842년, 조세저항이 심하다는 미국이 1913년에 소득세 도입했는데, 스웨덴은 1932년에야 처음 시작했어요.
그 나라가 옛날부터 사이좋고 자본가들이 책임감 있고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자꾸 안된다고 생각하니까 어려운 것만 보니까 그렇죠. 사람들이 스웨덴이 우리나라 인구의 5분의 1, 인구 1000만도 안되는 나라에서 뭐 배울 수가 있느냐라고 하죠.
그러면 전 그 분들한테 그래요, 우리보다 다섯배나 큰 미국에게는 어떻게 배웁니까라고. 미국에서는 무조건 뭐든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웨덴은 우리와 규모가 달라서 못 배운다고 해요. 5분의 1도 안되는 나라에서 못 배우면, 5배나 큰 나라에서도 못 배워야죠. 이게 안 하고 싶어하니까 안 된다고 하는 거지."
------------------------------------------- [아침 논단] 미국경제 꼭 닮는 한국경제 (조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 2008.03.30 23:13) 거품 경고 비웃고 호황 즐긴 미국, '서브 프라임' 덫에 결국 발목
우리경제 곳곳에도 거품 잔뜩, 기본 방향부터 다시 생각할 때
1990년대 말 미국에서 인터넷 붐이 일면서, '신경제'의 등장으로 경기순환이 없어지고 주가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다. 2000년 중반부터 인터넷 붐이 꺼지면서 미국 경제는 잠시 침체했지만,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이자율을 1% 수준까지 낮추면서 경기를 부양하였다.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주택담보 대출이 크게 늘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기존 대출을 저율의 대출로 갱신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주식시장의 거품이 주택시장으로 옮겨갔다.
자신들이 소유한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서, 그를 믿고 소비를 늘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시에 부동산 주택담보 대출 상환의 부담이 줄어들면서 생긴 여유 자금은 소비 증대를 가능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 사람들은 있는 돈까지 '까먹으면서' 소비를 하게 된다. 전례 없는 소비 붐이 불었던 1980년대에도 7%에 달했던 국민소득 대비 가계 저축률이 대공황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렇게 하여 미국 경제는 인터넷 붐이 끝난 후에도 호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위 '서브프라임' 문제를 통해, 1990년대 말부터 지난 10여 년간 미국경제가 누렸던 호황은 장기적으로 지탱 불가능한 자산가격 거품에 의존했던 것임이 마침내 드러났다.
미국경제가 대공황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면서, 그것이 우리 경제에 줄 충격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더 큰 걱정은, 앞으로 한국 경제에 닥칠 문제는 단순히 미국경제의 침체라는 외부충격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정적자 문제만 빼고는, 우리나라 경제의 현재 모습이 미국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2005년 9월에, 11년 전에 달성한 역사적 고점인 1,142(1994년)를 겨우 돌파했던 주가지수가 2년도 안 되어 2,000을 돌파했다(2007년 7월). 이 상승분의 대부분은 거품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치지도자들까지 나서 이 거품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고 다녔다.
주택시장의 상황도 비슷한 면이 많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 속에서 국내적으로는 기업투자의 위축으로 인해 자금수요가 줄어들면서 이자율이 낮아졌다. 동시에 은행들이 소위 '선진 금융기법'을 배워 위험도가 높은 기업대출을 줄이면서 주택담보 대출을 크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엄청난 거품이 끼었다. 노무현 정부가 세금을 올리고 기를 썼지만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가계 저축 상황은 더 우려를 자아낸다. 은행들이 안전제일주의로 흐르면서, 기업대출을 줄이고 안전한 가계대출을 늘렸다. 그 결과, 과거에 가계저축을 많이 하기로 이름 났던 나라가, 이제 국민소득대비 가계저축률이 2007년에는 2.3%까지 떨어져 저축 안 하기로 유명한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경제는 기본 체질이 괜찮으니 미국발 태풍만 잘 넘기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지금 미국 경제를 위기에 몰아 넣은, 고삐 풀린 시장경제가 가져오는 주식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 가계저축의 붕괴 등 여러 가지 병리 현상이 이같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심각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우리 경제의 기본적 방향을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다.
--------------------------------- [아침논단] 삼성, 제대로 고쳐야 한다 (조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2008.04.28 22:18) 경영권 상속 위해 '기업집단'의 효율 희생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진정한 개혁의 첫 걸음
2차대전 직후만 해도 핀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나 핀란드는 이러한 어려움을 뚫고 이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이동전화기로 유명한 노키아다. 노키아는 19세기 말에 벌목업체로 시작하여 고무·전선 등으로 다각화를 하였고, 1960년에는 전자사업체를 세웠다. 당시 핀란드의 기술 수준이나 산업구조로 볼 때 무모한 선택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던 대로 이 전자사업체는 17년 동안 적자를 냈다. 그러나 노키아전자는 기업 집단의 일원이었던 관계로 계열사들이 보조를 해주어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제는 세계 상위 기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노키아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삼성도 섬유·제당 등에서 번 돈으로 전자산업을 키웠고, 현대도 계열사 간의 상호 보조를 통해 자동차와 조선을 키웠다. 노키아, 삼성, 현대는 첨단기술을 가지지 못한 후발국의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에 진출하는 데 있어서 다각화된 기업 집단의 계열사 간 보조를 통한 '유치산업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들이다.
물론 영미식 기업지배구조 개념으로 보면 흑자를 내는 계열사가 적자를 내는 계열사를 보조해주는 것은 흑자 기업의 주주들에 대한 경영진의 '배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재벌기업들은 항상 '배임'을 하고 있었지만 외환위기 전까지는 기업 집단의 유효성을 감안하여 이러한 계열사 간 보조를 묵인해주는 것이 사회적 관례였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이후 주주자본주의적 시각에서 재벌 개혁이 진행되고 동시에 영미계 주주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기업 집단의 정당성이 부정되었고, 계열사 간의 보조는 '배임'으로 강하게 처벌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주류가 되었다.
계열사 간 상호 보조가 '배임'이라고 보는 것은 기업이 자기 주주들의 이익만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시각이다. 첫째, 주주들은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이지만 빠져 나가기가 가장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 성장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우선하는 집단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면 주주의 이익을 위해 경영을 하는 것이 개별 회사의 입장에서 보아도 꼭 좋은 것이 아니다.
둘째, 계열사 간의 보조는 흑자 계열사 주주에게는 해로울지 모르지만 이는 그룹 차원의 장기적 성장을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산업구조 고급화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고급 일자리를 창출하여 국민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 재벌 기업들의 경우에는 이들이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보조를 받고 보호무역을 통해 국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좋지 않은 제품을 사서 쓰며 키워낸 기업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주주들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운영되어야 한다.
물론 현재 기업 집단이 법적인 실체가 없어 그룹 차원 의사 결정에 있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 실정에 잘 맞지도 않는 법에 맞추어 기업 집단을 해체하는 것보다는 법을 바꾸어 기업 집단의 법적인 실체를 인정하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해결책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특검 결과와 관련, 삼성이 국민에 '사죄'하는 뜻에서 전략기획실을 폐지하고 사실상 그룹을 해체하며 계열사들에 독립 경영을 보장하겠다고 나온 것은 개탄해마지 않을 일이다. 이번 삼성의 '개선책'의 핵심은 경영권 상속을 위해 기업 집단이라는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제도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이 진정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면 특정인으로의 경영권 상속 가능성을 깨끗이 포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영미식 주주자본주의적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그를 통해 우리에게 맞는 기업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 장하준 교수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 올 것" (이데일리, 좌동욱 기자, 2008.12.03 12:00) "이명박 경제팀,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
"실물과 금융간 시차 줄여야"
"경기부양 위해 저소득층 세금 깎아야"
"자통법 도입 시점 최악"
장하준 영국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인터뷰 도중 스쳐 지나가듯 "(1929년 미국의)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발언 맥락을 따져 볼 때 심도 깊은 연구나 분석을 통한 예측이라기 보다는 직관에서 비롯한 판단인 듯 보였다. 장 교수는 "서구 자본주의 시스템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규제시스템을 개선해 왔다"며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해법으로 ▲실물 경제와 금융 경제간 시차를 줄일 것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제도 개선 ▲국제 신용평가 시스템 개선 등 3가지를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경제팀에 대해서는 "개발 연대 때의 나쁜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평가했다.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장 교수와 코드가 맞을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장 교수는 "개발 연대에 (한국이) 잘했던 장기적인 투자나 기술개발은 잊고 있다.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하고 있다"며 "슬픈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앞으로 정부의 재정지출 정책에 대해서는 일회적인 소비성 지출보다는 R&D(연구개발)와 같은 투자성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감세 정책에 대해서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만 생각하면 고소득층보다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국내 자본시장에 대해서는 "현재와 같은 자본시장 개방 자유화 정도는 부작용이 크다"며 "외국 자본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질이 좋지 않은 자본은 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내년 시행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한다고 돈이 오겠냐"며 "법 자체도 반대였지만 타이밍도 최악"이라고 평가절하했다.
- 현재 금융위기를 어떻게 진단하나.
▲1950년대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다는 말이 있었다. 미국이 세계 자동차 시장의 60 ~ 70%를 점유할 당시 이야기다. 그런 회사가 망할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팀 (인선을) 발표하면서 경기 부양을 위해서 추가로 7000억달러를 투입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발표한 은행 구제금융과 합쳐서 미국 GDP의 10% 규모다. 지금 생각해보니 대공황에 버금가는 상황이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자본주의의 문제가 노출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금융이 중요하긴 하지만, 19세기엔 주식시장이나 은행을 모두 반대했었다. 이런 제도가 채택되고 발전된 것은 물론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제일 먼저 (이런 문제점을) 본 사람이 경제학자 중에는 마르크스다. 대규모 자본이 집중되면 자본주의 모순이 나오고, 사회주의 혁명이 나온다고 했다.
19세기의 자본주의는 문제가 나면 (회사 주인이) 다 갚아야 하는데, (유한 책임으로 바뀌면서) 그런 것이 없어져 대규모 자본 동원이 가능했다.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퍼지면서 금융과 실물경제가 괴리됐다. 오묘한 이론 내세울 것도 없이 숫자만 봐도 그렇다. 경제성장률이라는 것이 중국처럼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곳을 빼고는 0 ~ 5% 정도다. 제조업 이윤율을 보면 3 ~ 6%다. 기본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범위다. 반면 코스피 지수는 1000 돌파 이후 2년도 안돼 2000이 됐다. 금융과 실물 경제가 따로 놀다가 일어난 일이다.
-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경제가 어떻게 바뀔 것으로 보나.
▲지금 시점에서 어떤 식으로 세계경제가 변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위기가 얼마나 갈 지 모른다. 파생상품이 많이 생겨 누가 어디서 무얼 갖고 있는 지 파악이 안된다. 문제의 근원은 미국의 부실 주택담보대출인데, 사건이 처음 터진 곳이 독일, 스위스계 은행이다. 무디스나 S&P에서 트리플A를 준 채권인데 회수가 안되니 문제가 시작됐다. 시작은 (미국의) 테네시였는데, 터진 곳은 스위스인 셈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오고 있다. 실물쪽에서 업체가 부실해 겨우겨우 생존하다 망하는 곳도 있지만, 금융위기 없으면 망하지 않았을 기업들도 망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주일에 50만명씩 실업자가 생긴다. 이런 실물경제 위기가 다시 금융 부분으로 온다. 대출 받았던 업체들이 빚을 못갚고, 실업자들이 돈을 쓰지 않으면 위기가 금융 부분으로 다시 이전된다. 이런 상황이 끝나야 위기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결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이 상황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미국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면, (위기가) 얼마나 갈 지 모르겠다.
- 앞으로 세계 경제 시스템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나.
▲크게 3가지를 말할 수 있다. 우선 첫째 원칙으로 실물 부분과 금융 부분 시차를 줄여야 한다. 실물은 금융에 비해 늦게 돌아간다. 노키아가 전자 사업부를 만들어 흑자내는데 17년이 걸렸다. 실물은 호흡이 긴데 금융은 몇 분 안에 움직인다. 물론 이런 시차가 없으면 금융이라는 존재는 무의미한다. 금융은 자산을 유동화해 경제를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시차를 없애자는 것은 말이 안되지만 시차를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한 여러가지 일들이 많겠지만 우선 파생상품을 규제하고 사모펀드의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돈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 이명박 대통령도 이야기를 했지만, 금융 규제가 거시 정책뿐 아니라 경기 변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현재 BIS(국제결제은행) 비율 8%면 자산 100원으로 1250원까지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별 은행으로 보면 맞지만 전체로 보면 구성의 오류가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자산의 내재적인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데도 자산 가치가 올라가서 돈을 더 많이 빌릴 수 있게 된다. 경기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다. 경기가 하강할 때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산가치가 떨어져서 대출을 회수하게 된다.
케인즈 이론의 통찰력은, 개인 입장에서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좋지만 다 같이 돈을 쓰지 않으니 정부가 돈을 써야 한다는 논리다. 개별 금융기관만 금융의 건전성을 신경쓰지 말고 전체적인 국민 경제를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BIS 비율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BIS 비율을 올려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준이 문제가 아니다. 경기 변동과 반대로 움직여야 한다.
세번째로 금융 섹터의 공공재 성격을 봐야 한다. 금융이 모든 분야에 얽혀있어, 금융섹터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개입을 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레이팅 에이전시(신용평가사)들은 국제 공공기구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FDA(미국 식품의약국)가 음식물과 약품 규제하듯이 해야 한다. 신용평가사가 잘못하면 독이 든 자산이 돌아다니게 된다. 특히 바젤Ⅱ 기준의 BIS 비율이 도입되면 이 문제는 더 중요해진다. 바젤2가 도입되면 자산을 신용등급에 따라 가중치를 두게 된다.
- 글로벌 금융시스템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나.
▲지금 당장 금융위기 심각하니 규제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다시 조용해지면 그런 소리가 들어간다.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새로운 금융시스템 이야기가 나왔는데, 위기가 주변국만 돌다가 중심국까지 가지 않으니 흐지부지됐다. 이번엔 중심부에서 터졌으니 다르다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탈규제화된 금융제도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영향력이나 돈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저항을 한다. 미국 오바마 당선인의 경우도 (백악관) 비서실장 이매뉴얼은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받았다. 재무장관 가이트너도 금융계 출신이다. (제도를) 안고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노동자나 농민을 생각해서 뉴딜한 것은 아니다.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한 것이다. (개선 방향이 어떻게 될 지는) 현재로서 예측하기가 어렵다.
-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의 개발 연대 시기 각각 민간과 정부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장 교수도 개발도상국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드가 맞을 수도 있다. 임기 첫해 새 정부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개발연대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개발 연대 시기 나쁜 것만 기억하고 좋은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전봇대가 많아서 경제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한국이 안되는 것이 규제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1991년 싱가포르의 영자 비지니스 잡지는 한국에 공장 하나를 열려면 199개 기관에서 300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돈 벌일 있으면 허가 300개라도 받는다. 돈이 안 될 것 같으니 300개 허가는 물론 30개라도 부담스러워진다.
근본 원인은 지난 10년 동안 소위 신자유주의 체제로 이행하면서 투자와 기술개발을 소홀히하면서 성장동력이 떨어진 것이다. 자본시장 개방하면서 단기주의 체제로 돌아가니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 개발연대에 (한국이) 잘했던 장기적인 투자나 기술개발은 잊고 있다. 나쁜 의미의 관치만 기억해서 그러는 면이 있다. 슬픈 이야기다. 박정희(대통령)의 정신을 따른다면 이렇게 하면 안된다.
- 영국이나 미국(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조세 정책을 보면 저소득층은 세금을 깎지만 고소득층은 세금을 올린다. 반면 한국은 소득과 관계 없거나 오히려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더 낮추는 감세 정책을 펴고 있다.
▲개인적으로 부자들의 세금 깎는 것에 반대한다. 하지만 입장을 떠나서 단기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만 생각하면 저소득층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맞다. 저소득층의 소비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아담 스미스나 리카르도 등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경제 모델을 만들 때 노동자는 저축을 제로(0), 자본가는 저축을 100%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 강만수 장관은 부유층에 대한 혜택이 결국 서민층으로 흘러내린다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적하효과)` 논리를 내세운다.
▲개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적으로) 증거가 없다. 일시적 효과가 있었던 적은 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 잘된 나라는 없다.
- 한국 정부의 재정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들이 대규모 재정 지출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는 나중에 혜택이 나타나는 투자성 지출이 있고, 소비성 지출이 있다. 같은 액수를 지출하면 투자성 지출이 좋다. 그런 것에 비춰 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반대로 간다.
- 한국에서는 재정지출을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에 쏟는다.
▲그냥 쓰는 것보다 나을 수 있다. 토건(SOC)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나중에 투자 회수율이 얼마냐는 판단을 해야 한다. 뉴딜의 경우 테네시강 개발에 집중했다. 빈곤에 시달리는 저개발 지역인데, 그만큼 효과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지어져 있는 아파트를 다시 또 짓고 하면 효과가 적다. 일괄적으로 토건에 투자한다고 해서 비판할 것은 아니다. 경제학적인 면에서 기회비용이 뭔가를 하나 하나 꼼꼼히 봐야 한다.
- 한미 통화스왑 체결 직후 그 효과에 대해 "폭풍이 몰아치는데 우산 하나 받아온 것"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그 예측이 맞았다.
▲사실 정부에서 그렇게 빵빠레(팡파르)를 분지도 모르고 그저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한 말이다. CBS 라디오와 인터뷰 때 했던 말인데 사실 방송 원고엔 질문이 없었다가 방송 1시간 전 질문하겠다고 전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내용을 알아본 후 말했던 것인데 요즘 보니 그 때 맞췄다고 해서 쑥쓰럽다.
(환율 급변동은) 기본적으로 지난 10년간 추구한 자본시장 개방의 결과다. (외국인들이) 억한 심정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이 급하다. 돈은 필요한데 들어갈 것은 없으니 (한국에서) 긁어 본사로 보내는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이 개방되지 않았을 때는 갖고 나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팔기 쉽다. 달러가 필요하니 달러는 사고 원화를 파니 환율이 올라간다. 정부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2100억달러 정도인데, 한번 일터지면 하루거리도 안된다. (외환보유고 중) 여기저기 시차를 두고 쓸 수 있는 돈도 있다. 국제 자본시장 경색이 있기 전 하루 외환거래량이 2조달러로 한국 외환보유고의 10배다. 하루에 8시간 거래한다고 치면 1시간20분이면 갖고 갈 수 있는 돈이다.
- 현재와 같은 정도의 자본시장 자유화를 재고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한번 열어놓은 시장을 다시 닫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정책이라는 것이 한번 해놓으면 바꾸기 힘들다. 하지만 바뀌는 것도 있다. 서구 자본주의만 봐도 대공황까지 산업분야는 국가가 개입했지만 금융은 자유방임이었다가 (대공황 이후) 다시 규제로 돌았다. 레이건 때 규제 완화를 했다. 지금 다시 돌리자는 것이다. 한국처럼 중급(수준의) 나라가 혼자 나서서 해야겠다고 하는 것이 무섭다면, 세계 조류가 그렇게 흘러가면 바뀔 수도 있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바꿔야 한다.
사실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좋은 일 한 것이 별로 없다. 예전처럼 저축이 모자라 자본을 끌어와야 하는 나라도 아니고. 총 저축이 총 투자보다 많다. 외국 자본이 한 일이 주식시장 분위기를 바꿔 단기주의로 흐르게 하고 비정규직 늘어나서 사회 불안하게 만들었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주식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사주(매입)나 배당 형식으로 기업의 돈을 빼갔다. 그동안 외국인 직접투자를 해서 제대로 된 것이 있었나. GM의 전체 지사 중 흑자 내는 지사가 한국 딱 하나라고 한다. 한국의 GM은 알다시피 대우의 기술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해서 얻은 것이 없다면, 다시 닫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 전세계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할 때는 `대세론` 하더니, 지금은 독야청청하나.
- 어떤 방법으로 자본시장의 개방도를 줄일 수 있나.
▲현재와 같은 자본시장 개방 자유화 정도는 부작용이 크다. 90년대 라틴아메리카 중 칠레와 콜롬비아만 유일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 기탁금 제도 때문이다. 기탁금 제도는 (외국인 투자의) 30%에 해당하는 돈을 중앙은행에 예치하도록 한다. 1년내 돈을 회수하면 못 돌려받고 1년 후 나가면 갖고 갈 수 있다. 제도 시행을 전후로 (외국 자본) 구성이 완전히 바뀌었다. 외국 자본을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질이 좋지 않은 자본은 받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국내 사모펀드도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아주 최소한으로 기본적인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밝히라는 요구 정도는 할 수 있다. 누가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 지만 알아도 대처하기가 쉽다.
- 공무원들은 자본시장을 다시 닫자는 말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인다.
▲힘없는 나라들이 항상 그렇다. 다 주눅이 들어있다. 우리만 하면 안 되지 않을까? 대세론을 따라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대세에 맞서 혼자 독야청청한다. 지난 10년간 자본시장 개방되면서 공무원들이 이익을 봤다. 퇴직 후에는 법률사무소 자문해 주면서 이득을 봤다. 그런 기회 잃기 싫을 것이다. 또 이데올로기적으로 자유시장 신봉자들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공무원들은) 사표를 내야 한다. 필요한 것 규제하고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막을 것은 막는 것이 공무원의 일이다.
-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민주주의 국가는 관치하는 것이 맞다. 시장 원리로만 사회를 운영한다면 돈없는 사람은 할 일이 없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도 하고 소득 재분배도 제대로 하려면 관치가 맞다는 의미다. 물론 공무원들이 그런 일도 했지만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일도 많이 했다. 세력이나 인원을 늘리는 것도 있다. 이는 정부를 더 통제해서 개선할 일이다. 규제를 없애 개선할 일은 아니다. 규제를 없애자는 말은 경찰이 뇌물을 받는다고 경찰을 없애자는 이야기와 같다. (민영화는) 민간업체가 경찰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다.
- 민영화도 마찬가지 논리로 반대하나.
▲마침 이명박 대통령도 산업은행 민영화 늦춰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도 있겠지만 시기와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 산업은행 민영화를 늦춘 것은 잘한 일이다.
- 한국에서는 내년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다. 현재의 금융위기 상황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나.
▲의미가 없다. 영국이 86년 빅뱅을 했을 당시엔 미국보다 한발 앞서 규제완화를 하면서 미국으로 갈 돈이 영국으로 몰리면서 덕을 봤다. 영국 자본시장 뿌리가 깊은 탓도 있다. 지금은 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규제 완화한다고 돈이 오겠나. 법 자체도 반대였지만 타이밍도 최악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데 나이트클럽 신장 개업하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