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책을 읽자

'삶과 사랑'에 초점 맞춘 <전태일 평전> 신판 발행

새벽길 2009. 4. 17. 18:28
전태일 평전이 새롭게 나왔나 보다. 
이 평전이 처음에 나왔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만큼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사람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테니 좋은 쪽으로 바뀌었기를 바란다.
관련해서 네이버블로그에 썼던 <전태일 평전> 관련글들도 담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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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이제 그의 죽음보다 삶을 먼저 읽자" (프레시안, 여정민 기자, 2009-04-17 오전 10:40:00)
[화제의 책] '삶과 사랑'에 초점 맞춘 <전태일 평전> 신판 발행
 
<전태일 평전>이 새로 나왔다. 출판사 돌배개로부터 판권을 넘겨받은 전태일기념사업회(이사장 장기표)가 일부 내용을 고치고 다듬어 다시 내놓은 새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 펴냄)이다. 1983년 암울한 시대 상황으로 저자를 밝히지도 못한 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온 지 25년만이다.
 
새 <전태일 평전>은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마침내 얼음처럼 굳고 차디찬 현실을 뚫는 불꽃이 된" 그의 죽음을 넘어 그의 삶과 사랑에 무게를 더 실었다. 기존 평전에서 300여 차례 등장하던 '죽음'이라는 단어를 30회 수준으로 낮춘 것도 그런 이유다. 덧붙여 잘못된 사실은 일부 수정하고, 문어체의 문장은 구어체로 바꿔 읽기 쉽게 만들었다.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읽고 있는가?"
▲ 25년만에 새로 나온 <전태일 평전>(조영래 지음, 아름다운전태일 펴냄)ⓒ프레시안
이 작업은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읽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전태일을 횃불이었다.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얼굴을 들추어 낸 횃불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횃불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전태일을 옳게 있고 있는가?" 저마다의 작은 욕망을 위해 읽고 있지는 않은가? <전태일 평전>은 우리가 전태일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지시한다. 우리는 그의 죽음보다 그의 삶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의 삶 속에 점철되어 있는 고뇌와 사랑을 읽어야 한다. 이 평전의 필자인 조영래 변호사의 삶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리고 전태일을 우리들의 가슴 속으로 옮겨와야 한다. 이것이 전태일을 밝은 얼굴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일이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죽음 그 자체보다 '살아있는 전태일'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기념사업회 측의 설명이다. 평화시장 어린 시다들을 위해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노임을 결정하는 협의를 할 때 약한 직공들 편에 서서 정당한 타협을 하기" 위해 재단사가 됐던 '아름다운' 그의 삶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기존 평전의 서문을 부록으로 빼고 새로 서문을 쓴 것도 그런 이유였다. 책임편집자였던 오도엽 작가는 "당시에는 분신을 통해 사회를 변혁하려 했던 것이 우리 사회에서 많은 사례가 아니었다"며 "1974년 조영래 변호사가 평전을 집필할 당시 죽음을 어떻게 미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오 작가는 "통계를 내보니 평전을 읽는 독자의 70~80%가 청소년인데 그들이 전태일의 삶을 보기 전에 죽음부터 보는 것은 기념사업회에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죽음 그 자체보다 삶과 그의 정신을 기억해야 할 때 아니냐는 얘기다.
 
"이제 전태일은 여러분에게로 간다"
새로 쓰인 서문도 '살아 있는 전태일'을 보여주는데 충실하다.
 
"오늘 전태일은 어디서 불타고 있는가? 전태일은 이 시각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대답은 이렇다.
전태일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속으로 되돌아가 그 안에 살아 있다. 아들이 죽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을 하루같이 병약한 체구를 이끌고 노동자들의 선두에 서서, 모든 잔학한 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그의 어머니 이소선 씨. 이분은 후일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것이다.
 
또 전태일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억압 아래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민중의 숨결 속에 눈물 속에 죽음 속에 살아 있으며, 역경 가운데서도 생존권과 인간다운 노동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뜨거운 가슴속에 살아 있다.
 
전태일은 부패와 특권과 빈곤과 폭압이 없는 내일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는 청년학생들을 비롯하여 자유와 정의와 진리와 평화와 통일의 새 역사를 창조해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손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전태일은 여러분에게로 간다."

 
'투쟁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부도 분량을 대폭 줄이고 제목도 '1970년 11월 13일'로 바꿨다.
 
장기표 "시대가 바뀌었다…운동권의 전태일로 매몰되선 안 돼"
"사실은 내가 평전을 쓰다가 조영래에게 작업을 넘겨줬다"고 밝힌 장기표 이사장은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전태일은 너무 운동권의 전태일로 매몰된 측면이 있다"고 신판 개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누가 잘못했다기보다는 시대 상황이 그랬다. 이제는 시대도 바뀌었기 때문에 진짜 전태일의 진면목이 드러나야 한다. 전태일은 그 투쟁성도 뛰어났지만 밑바닥에 있는 인간의 성품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특히 전태일의 삶과 사랑은 청소년에게 굉장한 교훈 줄 수 있다."
 
장 이사장은 "새 책에서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더 큰 사랑과 지혜를 얻고 높은 꿈과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돈도 학벌도 백도 없음에도 마침내 자기 뜻을 이뤄낸 성공담, 인간 승리의 내용을 부각시키려 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잘못된 사회 문제와 싸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였던 <전태일 평전>을 '우리 시대 최고의 고전'으로 바꾸려 애썼다는 얘기다. 그는 "죽은 조영래 변호사도 죽기 전에 책이 너무 투쟁 중심이라며 나에게 고민을 자주 털어놨다"고 덧붙였다.
 
"분신 당시 스스로 라이타로 불 붙여"…일부 서술 고쳐
기존 평전에서 잘못 다뤄진 일부 사실도 바로 잡았다. 오도엽 작가는 "분신 당시 김계남이라는 가명의 친구가 라이타로 불을 붙여준 것으로 돼 있는데 확인 결과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현장의 여러 진술로 전태일 스스로 불을 붙인 것이라는 것이 드러나 고쳤다"고 밝혔다. 삼동회 친구들이 던져 준 것으로 기록된 근로기준법전도 본인이 직접 들고 나온 것으로 바로 잡았다. 기념사업회는 "새롭게 태어난 <전태일 평전>은 청소년들에게 더욱 친숙하고 정감 넘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년이면 그의 죽음이 꼭 40년을 맞는다. 기념사업회는 '전태일의 삶'을 알리기 위해 '사상 연구 발표회' 등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장기표 이사장은 "청계 5가의 전태일 거리 및 다리 조성 사업과 함께 청소년에게 <전태일 평전>을 보급하는 사업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시 태어나는 <전태일 평전>이 경쟁으로 내몰리는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꿈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