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책을 읽자

내러티브 경제학(로버트 쉴러 지음)

새벽길 2021. 3. 5. 15:04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나의 관심을 끈 책. 읽어보면 썰을 푸는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 듯... (물론 아직 책을 사지도 않았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내러티브 경제학’의 사례 가운데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밝혀 감세정책을 이끈 ‘래퍼 곡선’에 대한 것은 공감대를 넓혀준다. 로버트 쉴러는 “얼토당토 않은 경제이론”인 래퍼곡선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려진 그래프라는 이미지”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입김 덕에 유명해졌고, 결국 이들 ‘이야기’는 전염병과 같은 양상으로 퍼져 경제를 움직이기까지 했다고 주장한다. 딱 맞는이야기 아닌가?우리나라의 경우 심심하면 보수언론과 경제신문에서 읊어대는 '재정건정성', '세금폭탄'의 신화 또한 이런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https://www.hankyung.com/life/article/2021030491731 
[책마을] 경제 뉴스보다 강력한 '입소문의 힘' (한경, 김희경 기자, 2021.03.05 02:14 지면A30) 
내러티브 경제학, 로버트 쉴러 지음, 박슬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 508쪽│ 2만2000원 
최근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불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런데도 비트코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의문투성이 인물이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을 뿐, 암호화폐 원리가 뭔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른다. 이 버블은 놀랍게도 투자자들이 ‘떠들어댄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처음엔 암호화폐라는 것에 대한 말들이 하나둘씩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이를 믿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렸다. 결국 사람들이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쉴러 미국 예일대 경제학 교수가 쓴 《내러티브 경제학》은 이처럼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과 그 이유를 분석한다. 그동안 세계 경제는 위기의 반복이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을 찾기보다 경기 하강이 시작한 이후 발생한 사건들에 주목했다. 이와 달리 쉴러 교수는 경기침체를 유발하거나 악화시킨 원인이 내러티브(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야기에 강한 전염력이 생길 경우 입소문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1929년 미국의 대공황도 전염력 강한 입소문의 영향을 받았다. 대공황이 발발하기 2주일 전인 1929년 10월 15일, 어빙 피셔 예일대 교수는 이런 내용의 연설을 했다. “미국 증시가 ‘영원히 떨어지지 않는 안정적인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많은 매체들은 한동안 이 화려하고 참신한 어구를 인용했고,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이 현상은 시장 붕괴가 길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 전염성은 사람들이 특정한 이야기 또는 이야기 속 인물에게 개인적인 동질감을 느낄 때 가장 강력해진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는 “트럼프가 터프하고 뛰어난 협상가이며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라는 이야기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그가 2016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이끈 경제 내러티브의 핵심이었다”고 설명한다. 쉴러 교수는 강조한다. “경제학 이론에 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을 도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우 실제적이고 아주 중요한 경제 변화의 메커니즘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2JOG3BAU6 
[책꽂이]당신의 입김이··· 비트코인 키운다 (서울경제, 조상인 기자, 2021.03.04 18:13:08) 
■내러티브 경제학-로버트 쉴러 지음, RHK펴냄 
튤립 광풍서 가상화폐 열기까지 
'이야기 힘'富의 원동력으로 작용 
SNS 발전에 전염성은 더 강해져 
"경제학에 내러티브 도입" 주장도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기업인 미국 테슬라가 대표적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매입해 지난해 전기차 판매 수익보다도 많은 최소 10억 달러(1조 1,070억 원) 이상을 벌었을 것이라고 한다. 어떤 미국 남성이 비트코인 암호를 잊어버려 약 2,600억 원을 날릴 위기라는 뉴스가 전 세계를 달구기도 했다. 아침 뉴스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회복해 상승 한계선을 강하게 두드리고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요즘은 3명 이상만 모이면 비트코인과 가상화폐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야기의 결말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지난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서명이 적힌 ‘비트코인: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짧은 논문이 인터넷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배포됐다. 신화의 시작이었다. 논문을 바탕으로 이듬해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혹자는 비트코인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에 빗대기도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기술에 기반 한 희소성 있는 새로운 화폐의 가치를 옹호하고 나선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1980년대 초 ‘케이스-쉴러 주택 가격지수’를 고안해 미국 주택 가격 동향의 일반적인 지표를 마련한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비트코인에서 19세기 아나키스트의 내러티브(Narrative·이야기, 서사)를 발견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다수의 익명 개인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유지되고 정부 규제로부터 자유롭다고 가정되는” 점 때문에 “특정 부류의 사람들에게 정서적 호소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행동경제학자인 쉴러는 “비트코인 이야기는 다소 부풀려지기도 했지만 신비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고, 비전문가와 평범한 사람들도 내러티브에 참여할 수 있으며, 나아가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고 이것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다”면서 “비트코인은 전염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아나키스트 정신을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내러티브”라고 분석한다. ‘2010년 후반, 자신의 정체에 대해 함구한 채 프로젝트에서 물러났다’고 하는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신비로운 인물은 마치 영웅 신화의 주인공과도 같다. 비트코인 가격은 2011년 월가 점거 시위와 함께 상승하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을 더 많이 통제할 것이라는 것이 또 다른 강한 내러티브로 작용했고 비트코인을 구입하는 것은 마치 미래에 대한 투자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쉴러 교수의 신간 ‘내러티브 경제학’은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이라는 부제와 함께 퍼져나가는 이야기의 힘에 주목했다. 2019년 미국에서 출간된 직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지기 시작하자 쉴러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심리가 확산되면 경제를 공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하며 심리를 담은 이야기의 위력을 강조했다. 앞서 ‘야성적 충동’ ‘비이성적 과열’ 등을 통해 세계 경제가 의외의 비합리적인 방향으로 굴러가는 상황을 예리하게 짚었던 저자는 이 책을 “내가 평생 다듬고 발전시킨 사고의 궁극적 결과물”이라고 기꺼이 칭송한다. 
책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다양한 ‘내러티브 경제학’의 사례가 소개됐다.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밝혀 감세정책을 이끈 ‘래퍼 곡선’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얼토당토 않은 경제이론”인 래퍼곡선이 “레스토랑에서 냅킨 위에 그려진 그래프라는 이미지”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입김 덕에 유명해졌다고 지적한다. 결국 이들 ‘이야기’는 전염병과 같은 양상으로 퍼졌고 그 결과 경제를 움직이기까지 했다는 주장이다. 
쉴러 교수는 특히 “1918년 유행한 ‘스페인 독감’의 역학은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확산된 궤적을 거의 고스란히 보여준다”면서 “대공황이라는 질병을 옮긴 것이 바이러스가 아니라 내러티브였을 뿐”이라고 짚는다. 수천 년 전의 신화와 설화가 등장 인물과 스케일을 바꿔가며 반복되듯 ‘경제 내러티브’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책은 공황과 신뢰, 근검절약과 과시적 소비,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붕괴, 주식 시장 거품,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사악한 노조 등 대표적인 9개 내러티브를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되는 ‘영속적 내러티브’로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정보기술, 특히 소셜 미디어의 발전과 결합한 내러티브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간다. 
저자가 ‘내러티브 경제학’을 주창한 것은 과거에 대한 학습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위해서다. 쉴러 교수는 “의학계에는 전염병 예측과 관련된 수많은 논문들이 있고 이는 단순히 통계적 방법을 사용할 때보다 질병 예측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경제학 이론에 대중 내러티브의 전염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이야기의 힘을 주목하고 사람들이 무엇에 대해 궁금해 하고 이야기하는지를 짚어야 어떤 경제 사건이 만들어질 지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2만2,0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85517.html 
‘벼락거지’ ‘비트코인’에 흔들린 당신… ‘서사’가 경제를 움직인다 (한겨레, 김진철 기자, 2021-03-05 11:06)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쉴러의 ‘서사 경제학’ 기획 

미국 경제 뒤흔든 9가지 영속적 내러티브 제시 
내러티브 경제학: 경제를 움직이는 입소문의 힘 
로버트 쉴러 지음, 박슬라 옮김/알에이치코리아·2만2000원 
‘영끌.’ 20~30대가 영혼까지 끌어모을 정도로 대출 받아 서울·수도권 아파트를 샀다는 뜻이다. 이 신조어는 지난 한 해 경제와 부동산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아파트 값 급등에 따라 자가 미보유자는 ‘벼락거지’로 전락하게 된다고 20~30대가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언론 보도와 입소문 등으로 회자됐다. 
‘세금폭탄.’ 노무현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만들자 널리 회자된 이야기다. 세금이 폭탄처럼 떨어진다는 비유법이 실제 벌어지는 일인 양 받아들여졌다. 종합부동산세는커녕 소득세도 한 푼 내지 않는 이들까지 세금폭탄 공포에 시달렸다. 당시 세제를 비롯한 경제정책은 세금폭탄론에 영향 받아 후퇴했고, 세금폭탄 이야기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자주 부활을 시도해왔다. 
영끌과 세금폭탄 이야기가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이야기가 경제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쉴러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이야기’에 주목한다. 사실이나 현상과 관련한 일정한 줄거리나 이야기, 서사를 의미하는 내러티브가 경제학 영역에서 주요하게 연구돼야 한다는 논지를, 그는 <내러티브 경제학>에 담았다. 행동경제학을 이끌어온 주요 학자로 2000년 ‘닷컴 버블’의 종말과 2006년 부동산 폭락을 예견한 그는 특히 인간의 감정이 재무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이런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전통 경제학과 달리 인간의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천착해왔기 때문이다. 비합리적 결정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경제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망하려면 사람들의 비합리가 반영된 대상을 연구해야 하며, 이 대상이 내러티브라는 점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것이 쉴러의 생각이다. 
내러티브의 핵심 요소는 ‘전염성’이다. 영끌이나 세금폭탄 이야기가 확산되는 상황을 떠올려 보라. 내러티브는 다양한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며 힘을 얻고 영향력을 발휘한다. 쉴러는 이 책에서 비트코인을 내러티브 전염성의 대표 사례로 소개한다. “비트코인 투자가가 최첨단 기술을 발견해 부자가 되었다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는 “비트코인 내러티브가 지닌 엄청난 전염성”의 원인 중 하나다. “신기술을 쥔 사람이 승자가 될 것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는 “정기적으로 비트코인의 가격변동을 알려주는 정기 뉴스로 더욱 강화되고 비트코인에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가치에 대한 인식은 또다시 비트코인 가격을 변동시키고, 그러한 가격 변동은 전염성 있는 내러티브를 창조하며 또 그 안에서 번창한다.” 최근 1비트코인이 5만달러를 넘어서고, 생활 영역 곳곳에서 비트코인을 화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되는 것 등이 내러티브의 작동원리는 물론 경제현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모든 내러티브가 영끌이나 세금폭탄, 비트코인 같은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내러티브는 전염도 되지만 1차, 2차, 3차 감염 등을 거쳐 소멸되기도 한다. 마치 감염병처럼 말이다. 쉴러가 제안하는 내러티브 경제학의 방법론은 다른 여러 학문 분야에서 가져오는데, 전염병학을 쉴러는 이 책의 부록에서 내러티브 경제학에 접목시킨다. 복잡한 수식을 사용해 설명하고 있지만 기본 모형은 이렇다. “거의 모든 전염병이 소수의 최초 감염군에서 시작해 처음에는 상승했다가 종국에는 하락하는 언덕 모양의 패턴을 따른다. 시간이 오래 지나 질병의 위력이 감소한 시점에서 변이가 발생한다면 새로운 개인이 새 변종에 감염될 수 있다.” 여기에서 전염병 대신 내러티브를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쉴러는 이뿐 아니라 역사·사회·인류·심리·종교·문학, 마케팅과 정신분석, 신경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의 통섭을 통한 공동연구가 필요하다는 대기획을 제안한다. 여기서 나아가 정기적인 설문조사 및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일기·설교·편지·소셜미디어·상담기록 등 문헌의 광범위한 수집과 분류 등을 통해 정량적, 장기 시계열 분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 초 경제학자 칼 케이스와 함께 만든 ‘케이스-쉴러 주택 가격지수’처럼 경제 모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러티브 경제학은 실천적 분야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경험한 바 있는 의도적인 내러티브 조작과 기만을 더욱 잘 이해하도록 돕고, 경제 정책을 수립할 때 내러티브를 고려하도록 보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3부 ‘영속적 경제 내러티브’다. 미국 경제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강력한 9가지 내러티브의 사례를 제시하며, 이 내러티브들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지속되거나 소멸되고 변종으로 부활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로 20세기를 배경으로 하며, 쉴러의 핵심 연구 분야이기도 한, 많은 연구자들이 매달렸으나 뚜렷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한 20세기 초 미국 대공황이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해부된다. 공황과 신뢰, 근검절약과 과시소비, 금본위제와 금은복본위제 등의 상이한 내러티브가 어떤 맥락에서 반작용이나 상호작용을 이루며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는지 살피고, 노동절약 기계, 자동화와 인공지능,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 주식시장 거품, 보이콧·폭리취득자·악덕기업,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과 사악한 노조 등의 내러티브를 광범위하게 다룬다. 쉴러가 제시하는 영속적 경제 내러티브는 미국의 과거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금본위제와 금은복본위제는 오늘날 미국 달러를 둘러싼 논란과 무관치 않으며, 노동절약 기계와 자동화·인공지능의 내러티브는 보편적 기본소득제 논의의 뿌리를 드러낸다. 부동산 문제는 한국경제의 가장 뜨거운 감자이며, 주식 시장 활황이 거품인지 여부는 ‘빚투’와 ‘스마트 개미’ 등 다양한 내러티브가 작동하는 증시를 떠올리며 곱씹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https://www.hankyung.com/international/article/202004162971i 
코로나19로 뜬 '이야기 경제학'…이야기 펼쳐보니 [여기는 논설실] (한경, 장규호 논설위원, 2020.04.16 09:35) 
'이야기 경제학' 또는 '서사(敍事) 경제학'으로 번역할 수 있는 '내러티브 경제학(Narrative Economics)'이 갑작스레 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 심리가 확산되면 경제를 공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게 계기였다. 코로나 사태에 따른 실물경제 타격 못지 않게 '코로나 공포 이야기'가 바이러스처럼 전파되며 경제가 회복불능 상태에 빠지는 데 역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서사구조를 갖추고 스토리에 강력한 전염성이 생기면 실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야기 경제학'의 핵심 주장이다. 실러 교수는 작년 9월 같은 이름의 'Narrative Economics'란 책을 펴내 눈길을 끌었다. 전통 경제학이 데이터와 계량 분석에만 머물지 말고, 소셜네트워크(SNS)로 강력해진 스토리의 힘, 서사의 힘도 연구해야 한다는 '돌직구' 같은 문제제기였다. 
◆'경제는 심리', 이야기로 풀어내다 
'경제는 심리다'란 말은 경제에 문제가 있을 때 등장한다. 경기침체에서 더 나아가 'O월 위기설' 같은 불안감이 시장을 엄습할 때 위기 경보음을 울리는 언론의 보도에 정책당국자가 제동걸며 자주 하는 말이다. 당국자의 초조한 심정이 배어있기는 하나, 딱히 근거 없는 얘기라고 무시할 수도 없다. 인간의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이 각광받고 있으니, '그렇지 심리가 중요하지'라고 수긍하게 된다. 이야기 경제학은 이런 심리라는 소재를 이야기라는 영역으로 끌고와 풀어놓는다.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사고하고, 세계를 이해하고, 결정을 내린다. 정치 지도자와 정부 당국자, 산업계 리더들은 각종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그런 이야기를 동원한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에 의해 경제라는 세상도 굴러간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베일에 싸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미스테리한 인물 이야기로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혁명의 총아로 각광받으며 진가를 인정받을 것이란 암호화폐 추종자들의 믿음이 그의 이야기로 더욱 단단해졌다. 
1980년대 미국 레이건 정부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가 된 래퍼곡선도 내러티브의 힘을 보여준다. 경제학자 아더 래퍼가 한 식당에서 세율과 세수의 관계를 휴지조각에 그려 설명했다는 스토리가 덧입혀졌다. 이 이야기는 진위를 떠나 널리 전파돼 '래퍼곡선=감세정책'을 연상시켰고, 정책 추진에 큰 도움을 줬다는 후문이다. 실러 교수는 SNS 등 미디어와 구문으로 퍼진 아이디어가 이야기로 발전하고, 증시를 움직이고, 경제적 변화를 몰고 온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대량 실업과 전쟁까지도 불러올 수 있다고 한다. 
◆데이터만으론 '경제 외눈박이' 된다 
'이야기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 경제학에선 '인간은 합리적 기대를 기초로 모든 가용한 정보를 활용해 일관성 있게 최적상태를 추구한다'는 가정을 세운다. 물론 행동경제학 등이 대두하며 이 가정의 의미는 많이 약화됐다. 실러 교수는 사람들의 많은 행위가 실제로는 최적 의사결정이 아니며, 상당수 경제 현상은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좌우된다고 강조한다. 
경제현상을 분석할 때 쓰는 각종 데이터도 그런 점에서 유용성을 다시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GDP)는 사람들의 복지 상태(Human Welfare)를 측정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쟁시기의 복지 상태는 나빠지지만, GDP는 올라갈 수 있다. 금리, 실업률 같은 데이터들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체를 설명한다며 총합 데이터에 의존해오던 것을 좀더 손에 잡히는 무언가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실러 교수의 주장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역작 21세기 자본에서 20개국의 지난 300년간에 걸친 경제, 역사 데이터를 분석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불기 시작한 자본주의 비판 흐름에 '젊은 소장파 학자의 치열한 불평등 연구'라는 이야기가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 사람들이 피케티의 방대한 데이터 분석에만 환호한 것은 아니란 얘기다. 
◆'이야기의 대가'는 트럼프 대통령 
'이야기'는 기존 서사의 퇴조, 새로운 서사의 등장이 반복되면서 계속 변화한다. 패닉에 빠진 시장 또는 자신감 충만한 시장, 검소함과 그 반대인 과시적 소비, 통화와 관련된 이야기들, 일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없애기도 하는 기계, 인공지능(AI), 부동산과 증시 붐과 붕괴 등이 주고받으며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만든다. 
전통 경제학의 영역인 화폐금융정책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SNS를 잘 활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이야기의 메이커다. 지난 해 10월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그러자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파월과 Fed가 또다시 실패했다. 배짱도 없고, 센스도 없고, 비전도 없다. 끔직한 소통가(communicator)!"라고 혹평했다. 경기 상황에 맞지 않게 금리를 너무 '찔끔' 내렸다는 얘기를 '배짱 없는 제롬 파월(Fed 의장)'이란 이야기로 바꿔 이목을 끈 것이다. 
'이야기 메이커'들이 경제적 팩트(사실)를 허위정보(가짜뉴스)로 둔갑시킬 가능성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실러 교수도 우려를 표명한 '자기 실현적 예언'이 돼 경제 전반에 큰 충격을 줄 수도 있다. 그가 제안한 '이야기 경제학'의 문제의식이 기존의 경제학 관념과 도구들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지 자못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