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이길저길-샛길(펌글)

21세기 상징 지식인분야 연구공간 수유+너머

새벽길 2008. 9. 20. 04:50
뉴스메이커에서 21세기 상징 지식인분야로 연구공간 수유+너머를 다루었다. 수유+너머의 사람들이 종횡무진 활약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인상은 2004년보다 더 악화된 것 같다. 그런 것을 통해 코뮨주의가 달성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본주의에서 독립적인 대안적 지식공동체라고 해도 생산에 대한 통제가 없는 이상 내 눈에는 자본주의 현 체제에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수유+너머의 성원들은 다들 훌륭한 사람들이고, 나 또한 백수인 입장에서 그런 생활이 부럽기는 하지만, 수유+너머가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지식권력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고미숙의 책을 읽고는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요즈음은 그런 고민마저 사라진 것이 아쉽기는 하다. 네이버블로그에 퍼놓았던 이정환의 글을 담아놓고, 고미숙의 책을 읽고 메모해놓았던 것을 트랙백해놓는다. 성광야학은 요즘도 잘 운영되고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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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21세기 상징 지식인분야 연구공간 수유+너머 (2008 09/23   뉴스메이커 792호, 글·사진 정원식 기자)
공부·생활 함께, 대안적 지식공동체 
 
“오랫동안 지식을 독점한 계몽적 공간 아카데미가 죽어가고 있다. 외적인 권력에 의해 처절하게 부서진 것도 아니고, 스스로 빛나며 폭발한 것도 아니다. 황량하게 시들어가는 지리멸렬한 죽음, 그것이 아카데미에 찾아왔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공부모임 ‘2008 대중지성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문은 지난 세기 거의 유일한 지식 생산의 장으로 기능한 아카데미에 사망 선고를 내리며 시작한다. 아카데미가 죽은 이유에 대해 이들은 이렇게 진단한다.
 
“앎에 대한 의지 속에서 삶의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돈에 대한 의지 속에서 앎의 형태가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지식은 사라지고, 지식의 가치를 환금 가능성으로만 따지는 ‘지식 기업으로서 아카데미’만이 남았다. 지식의 생산과 소통을 독점해온 근대 아카데미와 지식인의 죽음은 그러한 대학의 기업화가 빚어낸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이들은 지적 활력을 소진한 아카데미의 현실에 절망하지 않는다. 대신 아카데미 밖으로 나가 새로운 지식의 산출을 시도한다. 이름하여 ‘대중지성’이다. 이들은 “이제는 대중이 지식의 신체이고 대중이 지식을 생산하는 지성이다”라고 선언한다. 대중지성은 강단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에서 탄생한다. 소수의 천재형 지식인이나 전문가형 지식인이 지식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개인이 네트워크를 통해 지식의 생산과 소통에 참여한다. 이들은 “회사원인 채로, 농부인 채로, 학생인 채로, 예술가인 채로 지식의 생산과 소통에 참여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강조한다.
 
고미숙씨 수유연구소서 시작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활력적인 지적 공동체라는 평가를 받으며 대안적인 학문 연구 방식을 실천하는 수유+너머는 출발부터 제도권 바깥에서 살아남는 법을 고민했다. 올해로 8년째를 맞는 수유+너머는 고미숙씨가 개인공부방으로 만든 수유연구실 사람들과 이진경, 고병권 등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독립한 연구자의 공부모임 ‘너머’ 사람들이 수유연구실에 한살림을 차리면서 탄생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카페.
 
공동대표 고미숙씨가 1997년 수유연구실을 만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필요 때문이다. 당시 한국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상태였던 고씨는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느냐, 교수직을 포기하고 공부를 계속하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한국 대학 제도 안에서 교수가 되는 길은 요원했으므로, 선택은 간단했다. 그러나 대안이 문제였다. 지속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경제력과 공간을 갖추는 것이 문제였다. 고심 끝에 강북구청 뒤 건물의 3층에 66㎡(20평)짜리 공부방을 마련해 후배들과 ‘대한매일신보’강독 세미나를 시작했다.
 
고전문학 연구가 중심이던 수유연구실이 ‘수유+너머’로 발전한 결정적인 계기는 고씨가 서울사회과학연구소에서 이진경과 고병권의 강의를 들으면서다. 그는 철학과 문학, 대중문화와 동양고전을 아우르는 서울사회과학연구소 강좌를 들으면서 자신의 전공 분야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했다. 그 이후부터는 우연한 만남이 또 다른 만남을 부르며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연속 팽창했다. ‘너머’ 사람을 초빙해 강의를 열고, 그들이 평일에 공부할 수 있도록 수유연구실의 공간을 제공했다. 한데 뒤섞여 공부하고 놀다 보니 결국은 두 연구모임을 하나로 합치게 됐고,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더 넓은 공간을 찾아 계속해서 이동했다. 수유리와 대학로를 거쳐 작년에는 남산 자락 아래 용산동에 둥지를 틀었다. 495㎡(150평) 정도를 쓰던 원남동 시절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1320㎡(400평) 규모의 공간을 사용한다.
 
단순한 지식공동체가 아니라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수유+너머에서는 공부만 같이 하는 여느 연구실과 달리 공부와 생활이 한몸으로 엉켜 있다. 공부와 생활의 일체화를 가장 표나게 드러내는 것은 연구실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밖에 나가 사먹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지어 먹는다. 수유+너머 사람들이 연구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꼽는 곳은 식당인데, 매주 연구실을 드나드는 인원이 수백 명으로 불어나고 회원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는데도 회원 수가 60여 명 수준을 넘어가지 않는 이유는 식당과 관련이 있다. 공동대표 고병권씨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점심과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그러자면 연구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규모와 세미나 일정을 꿰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회원이 되는 데 평균 1~2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면 연구실을 이루고 있는 여러 공간에 들어차 있는 물건의 역사까지 꿰뚫게 된다.
 
회원의 90%, 직업없이 공부만 해
건물 4층을 통째로 빌려 쓰고 있는 수유+너머는 카페, 탁구장, 세미나실, 식당, 쉼터, 육아실 등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 공간들이 하나의 용도로만 활용되는 법은 없다. 카페는 서점이자 토론 공간이고, 탁구장의 탁구대는 세미나나 강의 참가 인원이 많아질 경우 강의용 테이블로 변신한다.

연구실 내부.
 
수유+너머 회원의 90%는 고정적인 직업을 갖지 않고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돈이 대부분 내부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연구실은 식사와 여가를 해결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고, 식당이든 카페든 매우 싼 값에 이용할 수 있다. 식당은 한 끼에 1800원이고, 쌀이나 특산물은 연구실과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 선물로 보내온 것으로 충당한다. 카페나 식당에서 얻은 수익은 연구실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로 다시 투자한다. 지출 규모도 적은 편이다. 한 달 운영비 1600여 만 원 가운데 1200여 만 원을 임대료로 쓰고 400여 만 원을 연구실 운영에 투입한다.
 
수유+너머는 공식적으로 코뮌주의를 표방한다. 어려운 개념의 외피를 걷어내고 보면, 코뮌이란 타자와 공존을 추구하는 열린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고미숙씨는 “국가나 가족 같은 기존 공동체가 애국심이나 가족애 같은 하나의 척도만 사용하는 반면 코뮌은 다양한 가치의 뒤섞임을 추구한다”면서 “척도가 하나인 조직에서는 권위와 위계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병권씨에 따르면 코뮌주의는 “사실상 우리 삶을 지배하고 한정짓던 국가와 자본에서 벗어나는 삶의 시도이며, 소속과 근거를 공유하지 않은 다양한 존재의 자유로운 협력과 소통을 발명하려는 이론적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다.
 
수유+너머의 코뮌주의 실험은 적은 돈으로 공동체를 운영하는 일상적 실천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를 통해 현실화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 질서의 지배가 점점 강화하는 현실 속에서 대안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모델로 다가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