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이길저길-샛길(펌글)
이준구 교수의 글 - 슬픈 종부세, 영혼이 없는 존재, 오락가락 정부
어디서 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준구 교수는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를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과서를 쓰는 쪽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그가 쓴 미시경제학 교과서와 재정학 교과서는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되는 책이 되었고, 그 중에 나오는 오탈자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에서는 오탈자 찾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이준구 교수는 교과서에서 우리가 죄수의 딜레마라고 부르는 prisoner's dilemma도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들을 가지고 하는 게임이므로, 죄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용의자라고 해야 한다고 하면서 용의자의 딜레마로 바꿔 게임이론 부분을 서술하였다. 지금은 용의자의 딜레마라는 용어도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그 만큼 개념의 엄밀성과 합리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최근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칼럼을 통해 MB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다. 과거의 그를 생각하면 조금은 어색할 수도 있겠으나, 주류경제학자인 그의 눈으로 보기에도 MB의 경제정책은 문제가 많은 것으로 보이기에 이를 토로하고 있다고 파악하면 될 듯하다. 이에 비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용 교수의 경우는 조금 실망스럽다. 그래도 케인즈주의 학자인 줄 알았더니 잘못 파악한 모양이다.
아무튼 이준구 교수가 최근에 홈페이지에 쓴 종부세 폐지 등의 글을 담아놓는다. '슬픈 종부세'라는 글은 프레시안에 소개되기도 했고, 다른 글도 언론 지면을 통해 소개되었다. 이준구 교수의 글쓰기를 배우고 싶긴 한데, 이것도 아마 내공이 수반되어야 가능하겠지.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까지 뽑아놓으면 우리 경제는 주택시장발 폭풍에 주기적으로 시달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지적이다. 여기서 '최후의 안전핀'이 가리키는 것은, 물론 종합부동산세(종부세)다.
이 교수는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슬픈 종부세"라는 글에서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하려는 현 정부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종부세 완화 주장이 합리적 근거에 바탕한 게 아니라 선동적 논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라는 비판이다.
이 글에서 그는 "정부는 이 세금(종부세)을 내는 2%의 납세자가 마치 좌파정책의 순교자라도 되는 양 사회정의가 온통 무너져 내린 것처럼 야단을 쳐대고 있다"며 "이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사람들이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나보다"라고 꼬집었다.
"최소한 (부동산) 거품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그로 하여금 A4용지 9장 분량의 글을 쓰도록 했다. 하지만 현 정부의 태도 앞에서 이런 간절함은 강렬한 불안으로 바뀐다. 이 교수는 이 글에서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런저런 부양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를 보면 폭약을 갖고 노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된다"고 밝혔다.
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슬픈 종부세"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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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최후의 안전핀까지 뽑았다" (프레시안, 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08-09-30 오후 3:55:07)
이준구 교수 "부모 잘못 만난 종부세…이대로 안락사인가"
머리말
2007년도 우리나라 조세수입은 205조원이었고, 그 중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수입은 2조4천억원이었다. 그 비중이 총 조세수입의 1% 남짓밖에 안되는 이 세금이 지금 우리 사회를 온통 들끓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 세금을 내는 2%의 납세자가 마치 좌파정책의 순교자라도 되는 양 사회정의가 온통 무너져 내린 것처럼 야단을 쳐대고 있다. 이보다 몇 배나 더 되는 사람들이 그날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나 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동안 '강부자 정부'라는 말만은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 왔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그런 말을 들어 싸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출범한 정부라는 점만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의 포괄적인 감세조치, 그리고 종부세 무력화 시도를 보면서 이제는 이 말을 마음대로 써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정부가 '부자들의, 부자들을 위한 정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이 명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임기 안에 종부세를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면 정체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로 4년 반 동안 우리 사회, 경제가 얼마나 크게 뒷걸음질 치게 될지 염려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에 이겼다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오만한 태도가 또 어떤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게 만들지 모른다. 이 정부가 지금과 같은 태도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그들의 임기가 끝나는 날 우리는 역사의 시계가 최소한 20년 이상 뒤로 돌려졌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우리 현대사는 끊임없는 발전과 진보의 역사였다. 사람 목숨이 파리만도 못한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선진국 못지않게 인권이 보장된 사회로 바뀌었다. 혹독한 독재정치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남부끄럽지 않은 민주국가가 되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안하무인격으로 설쳐댈 수 있던 시절도 모두 지나갔다. 바로 이런 발전이 있었기에 우리 국민은 어려운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보수적 정부가 집권해 왔지만, 진보의 도도한 흐름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한 진보적 개혁이 거의 모두 보수적 정부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이 전두환 정부 때였으며, 토지공개념이란 급진적 성격의 개혁안이 나온 것은 노태우 정부때였다. 또한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는 굵직한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지금 이런 개혁안이 나왔다면 보수진영은 좌파의 책동을 막아야 한다고 난리를 쳐댔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장 역설적인 것은 좌파정책의 표상처럼 되어 있는 평준화교육을 도입한 사람이 바로 보수 진영의 영웅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평준화의 틀은 그 뒤를 이은 보수적 정부하에서도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실정중 하나로 들먹여지는 대학입시 '삼불정책'의 기본골격도 실제로는 보수적 정부하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진보적 정부가 평준화로 우리 교육을 망쳐 놓았다고 성토하는 것은 보수진영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중요한 점은 진보적 개혁이 우리 현대사의 대세였으며, 보수적 정부들도 이와 같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이와 같은 진보적 개혁의 도도한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는 데 열중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에 일어난 민심의 일시적 보수화를 등에 업고 마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양 밀어붙이고 있다. 그 동안 어떤 정부도 지금처럼 대놓고 힘 있고 부유한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바 없다. 정부는 보수진영의 염원을 실천에 옮기려 한다고 말하겠지만, 힘 있고 부유한 사람만을 위한 정책이 진정한 보수는 아닐 터이다. 만약 이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강변한다면 국민의 지지는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종부세 폐지 시도는 이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역사 거꾸로 돌리기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종부세 폐지의 부정적 효과가 엄청나게 클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현재 정부가 시도하고 있는 역사 거꾸로 돌리기 프로그램의 그 어느 것보다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통해 종부세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밝혀보려고 한다. 이와 더불어 조세, 그리고 그 부담의 공평한 분배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오해도 바로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세금 그리고 종부세에 대한 오해와 진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재상이었던 꼴베르(J-B. Colbert)는 세금에 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조세 징수의 기술은 가장 적은 비명을 지르게 만들면서 가능한 한 많은 깃털을 얻는 방식으로 거위의 깃털을 뜯어내는 것과 같다." 정부가 세금을 걷는 행위를 멀쩡한 거위에서 깃털을 뽑아내는 행위에 비유한 것은 세금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나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내금 내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외적의 침입에 대해 의병으로 맞서 싸울 용의가 있는 사람조차 평시에 세금을 내라 하면 그리 기쁜 마음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좋든 싫든 민주국가의 국민이면 누구나 납세의 의무를 기꺼이 져야 마땅한 일이다. 세금을 걷는 정부가 부당하게 국민의 재산을 강탈해 가는 것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바로 이와 같은 잘못된 인식에서 세금과 관련한 첫 번째 오해가 발생한다. 세금은 적게 낼수록 더 좋은 것이라는 오해가 바로 그것이다. 국민이 모두 세금을 덜 내게 되면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그만큼 줄이던가 아니면 정부의 빚을 늘려야 한다. 또한 내가 세금을 덜내면 남이 정확하게 그만큼 더 내야만 한다. 세금을 적게 낼수록 더 좋다는 생각은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나온 오해에 불과한 것이다.
정부의 감세정책과 종부세 폐지론은 이런 오해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세금을 깎아주면서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양 생색을 낸다. 그러나 세금을 깎아주면 깎아준 만큼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사람이 되었든 세금 덜 내게 되는 만큼의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이 세금과 관련된 진실이다. 예컨대 종부세를 폐지해 세금을 깎아주는 경우에는 종부세를 내지 않는 98% 국민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것만큼 자명한 진실이다. 정부는 국민이 이런 진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어느 때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게 마련이다.
세금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소득에만 부과되어야 하고 재산에 대해서는 부과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물론 재산에 대해 부과되는 조세가 현금흐름(cash flow)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재산은 많지만 현금이 없어 세금을 내기가 어려운 딱한 처지의 사람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재산과세를 부당한 것으로 몰기에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보기에 따라서는 현금흐름에 문제가 있다는 결점에도 불구하고 재산과세가 소득과세보다 더 바람직한 세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뿐만 아니라 현금흐름의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고 창의적으로 대응한다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조세부담의 공평성이란 관점에서 볼 때 재산과세는 소득과세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공평한 과세의 원칙은 각자의 경제적 능력에 걸맞은 납세의무를 지우는 것을 요구한다. 모두들 잘 알고 있듯, 어떤 사람의 경제적 능력은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따라서 소득과세를 재산과세로 보완해야 비로소 진정한 경제적 능력에 따른 조세부담의 분배가 가능해진다. 현재 징수되고 있는 지방세로서의 재산세는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과세의 원칙을 충실하게 구현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현행 재산세제하에서 전국 각지에 여러 채의 주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중과세를 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생각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공평한 과세라는 측면에서 종부세 같은 재산과세가 갖는 장점이 특히 두드러진다. 최근 다시 문제가 된 바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고소득층의 탈세가 유달리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 소득의 정확한 파악이 힘들다는 사실을 악용하기 때문인데, 종부세는 이와 같은 소득세의 문제점을 훌륭하게 보완해줄 수 있다. 소득을 감추기는 쉬워도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을 감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각종 편법을 동원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소득의 경우보다는 감추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또한 재산과 관련된 세금은 지방세여야 하기 때문에 국세인 종부세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많은 나라들이 재산세를 지방세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어야 할 이론적 근거는 단 하나도 없다. 다시 말해 단지 편의상 그런 체제를 취하고 있을 뿐이지 그래야 할 당위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지역간의 경제력 격차가 극심한 경우에는 재산과세 중 일부를 국세의 형태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기까지 하다. 종부세 도입 후 지역간 경제력 격차로 인한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이 그 좋은 예다. 재산과세를 국세의 형태로 징수하면 큰일이나 날듯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은 종부세가 재산에 대한 이중과세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또한 조세에 대한 무지에서 나오는 근거 없는 주장이다. 정부는 필요에 따라 이미 걷고 있는 세금에 가산세(surtax)를 부과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가산세를 이중과세의 성격을 갖는다고 위법으로 규정할 수 없듯, 일정한 범위 안에서 똑같은 과세대상에 두 번 세금이 부과된다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세이론 어디를 뒤져 봐도 하나의 과세대상에 단 한 번만 과세해야 된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종부세가 부자들에 대한 약탈적 성격을 갖고 있는 주장 역시 명확한 근거를 결여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정의조차 어려운 '약탈적'이란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선동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보수진영과 정부는 늘 집 한 채만 있는 은퇴자의 딱한 처지를 들먹거리지만, 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의 비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종부세 부과 대상자의 60%가 다주택보유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비율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만약 정말로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구제하면 된다. 예를 들어 주택 역모기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종부세를 부채로 모아 두었다가 나중에 주택을 팔 때 청산하면 현금흐름의 문제는 없어지게 된다.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아예 종부세를 대폭 깎아주는 방법도 있다. 지금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고령자에 대한 종부세 감면조치가 그런 성격을 갖는 구제책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종부세의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탈적 세금이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주장에는 부자들의 세금을 한 푼이라도 깎아주려는 의도 이외의 다른 합당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소득세조차도 도입 초기에는 약탈적 세금이니 사회주의적 세금이니 하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소득세가 완전하게 정착된 지금은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종전에는 내지 않던 세금을 갑자기 내게 되었을 때의 부담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조세제도를 언제까지나 유지할 수 없는 일이고 보면, 새 조세의 도입으로 인한 일시적 혼란은 참고 견뎌낼 수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사고해야 할 지식인까지 가세해 '약탈적 세금', '세금폭탄' 같은 선동적인 표현으로 종부세를 깎아내리는 데 동참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종부세를 주택관련 규제의 일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규제(regulation)라는 것은 정부가 시장기구를 통하지 않고 민간부문의 행위를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종부세는 주택담보대출 규제라든가 전매금지 규제와 달리 시장기구 혹은 가격유인을 통해 민간부문의 행위를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정책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규제가 갖는 일반적 문제점, 즉 시장의 왜곡 같은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주택관련 규제 완화 얘기가 나올 때 종부세도 함께 엮어 완화 혹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주택관련 규제가 완화될수록 종부세가 수행해야 될 역할은 오히려 더욱 커져야만 한다.
종부세는 기본적으로 교정과세(corrective taxation)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교정과세란 민간부문의 행위를 정부가 보기에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되는 조세를 말한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석유류 제품에 세금을 부과하던가 환경보호를 위해 오염물질 배출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교정과세 역시 민간부문의 자유로운 선택행위를 교란한다는 문제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선택행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교정하는 데서 나오는 이득이 교란에서 나오는 손실을 상쇄하고 남는다는 점에서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종부세가 갖는 문제점만 지적하고 교정과세로서 갖는 순기능을 무시하는 것은 균형 있는 평가가 될 수 없다.
종부세 폐지는 결코 정답이 될 수 없다
지금 종부세가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뿌리부터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선거에 이겼으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좀더 신중하게 접근할 수는 없을까? 종부세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나 역시 이의가 없다. 이 세상에 문제점 없는 완벽한 세금은 없을 테고, 그렇다면 종부세에도 당연히 문제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거론하는 종부세 개정안은 단순히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을 넘어 거의 무력화시키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임기 중에 종부세를 완전 폐지하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보면 무력화의 수순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종부세가 폐지된다고 할 때 이로 인해 발생할 문제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예상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안전핀이 제거됨으로 인한 주택시장 불안정성 증대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등장할 것이다. 종부세 반대진영에서는 굳이 부정하고 있지만, 종부세의 주택가격 안정효과는 분명하게 발휘되고 있다. 최근의 주택 가격 하락추세가 전반적인 경기침체와 각종 규제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부세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만약 종부세 효과가 전혀 없었다면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이 소형 아파트의 가격과 거의 같은 비율로 떨어져야 한다. 종부세 과세대상인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이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종부세의 가격안정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종부세의 가격안정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여건이었다. 현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종부세를 흔들어왔기 때문에 과세대상자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자세로 유인에 반응하기를 거부해온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종부세가 원래의 계획대로 확실하게 자리 잡을 것이 분명했다면 중대형 아파트의 가격하락은 훨씬 더 빨리, 그리고 큰 폭으로 이루어졌으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투기적 목적으로 주택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처분에 나섰을 것도 분명하다. 현행 종부세제도하에서 최고세율이 3%인데, 여러 채의 주택을 소유해 이 세율의 적용을 받는 사람은 10억짜리 주택 하나에 매년 3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아무리 집값 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도 이 정도의 세금을 내고 버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한다.
미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너무 급격한 주택가격 폭락 역시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와 같은 거품 붕괴가 우리 경제에서도 일어날 가능성이 그리 작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안전장치들을 너무나 빨리, 그리고 너무나 과격하게 제거해 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다 할 부양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초조해진 정부가 더욱 과격한 부양정책을 쓸 가능성이 크다. 모든 정책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그 효과가 발휘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지금 쓰고 있는 부양정책의 효과가 어느 시점에서 화산이 분출하듯 한꺼번에 터져 나올 때 우리 주택시장은 또 한 번의 큰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지금 당장 거품을 꺼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거품을 더 키우지는 말아야 한다. 자신의 임기 동안의 일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긴 미래를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당장 먹기에는 곶감이 달다고, 주택가격 폭등을 막는 최후의 안전핀까지 뽑아놓으면 우리 경제는 주택시장발 폭풍에 주기적으로 시달리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이런저런 부양정책을 쏟아놓는 정부를 보면 폭약을 갖고 노는 어린애를 보는 것 같은 불안한 심정이 된다.
종부세 폐지가 가져올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부자들에게서 덜어낸 조세부담을 중산층과 저소득층에 떠넘기게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부세 폐지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은 내일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고 하는 것만큼이나 분명한 일이다. 정부가 내놓은 종부세 대폭 감면안과 관련되어 이 부담 전가의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 말이 달라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그 누구의 말도 이 문제에 대한 만족스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층은 종부세 감면으로 인해 줄어든 조세수입을 재산세를 더 걷어 메우겠다고 말했다. 재산세는 주택을 가진 사람은 모두가 내는 세금이니, 그렇다면 2%가 내던 세금을 나머지 98%의 사람에게 나누어서 지게 만드는 셈이다. 재산세로 부족한 조세수입을 메울 경우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자 정부의 다른 사람은 종부세 납부자의 재산세를 올리는 방식으로 메우겠다는 말로 진화를 시도했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닐뿐더러, 그럴 것이라면 왜 종부세를 감면해 주는지 모를 일이다. 종부세 내던 것을 재산세로 이름만 바꿔서 내면 기분이 더 좋아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또 다른 정부의 고위층은 재산세를 더 걷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것은 더 웃기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 말에서 국민을 속이려는 의도가 너무나도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재산세를 더 걷지 않는다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세금 부담이 더 커지지 않는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종부세 감면으로 인해 줄어든 조세수입은 어떤 방법으로든 메워져야 한다. 재산세를 더 걷지 않는다면 소득세든, 부가가치세든 어떤 세금의 형태로든 다 걷어야 하는데, 이 경우에도 98%의 사람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것은 전혀 다를 바 없다. 한 가지 남은 가능성은 조세수입이 줄어든 만큼 정부지출을 줄이는 방법인데, 나머지 98%의 사람이 정부지출 감소로 인한 손해를 보게 되니 앞서의 경우와 아무 차이가 없다.
종부세 감면 혹은 폐지가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다. 정부가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이 명백한 사실을 뒤엎을 수는 없다. 정부로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 부유층이 과도한 조세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부담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전가된다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만약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자신이 없다면 종부세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서슴없이 포기해야 한다.
현 종부세 감면안의 문제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종부세가 약탈적 성격을 가진 세금이라는 데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부세를 납부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해 있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 방향으로 종부세를 보완해야 한다는 데 100% 동의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명확한 목표의식을 갖고 종부세를 보완하려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 종부세를 무력화함으로써 부자들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나아가 주택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려 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종부세를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제해 준다는 점에서 볼 때, 과세대상 기준을 공시지가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세대상자 중 58.8%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들어 이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또한 여당 내부에서도 현재의 정부안과 관련해 이 부분에 대한 우려가 특히 많은 것으로 보도되고 같다. 그러나 내 판단으로는 현재의 정부안 중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과세대상자 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의 비율이 비록 2%에 지나지 않지만, 그 중에 딱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소수라도 섞여 있으면 종부세를 반대할 좋은 명분이 생긴다. 정부와 보수진영은 바로 그 전략으로 종부세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대의 명분을 제거하고 종부세의 지지기반을 넓히기 위해서는 과세대상자의 범위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의 정부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세율을 대폭 인하한 부분이다. 집 부자에게 집중적인 혜택을 몰아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세율의 대폭 인하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율은 과세표준이 3억원까지 1%, 14억원까지 1.5%, 94억원까지 2%, 그리고 94억원 초과시 3%로 되어 있다. 현 감면안에 따르면 6억원까지 0.5%, 27억원까지 0.75%, 그리고 29억원 이상은 1%로 대폭 낮춰지게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 대폭적 세율 인하가 종부세 무력화 작업의 핵심 중 핵심인 것이다. 주택을 몇 채씩 갖고 있는 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에서 말한 과세대상 기준 상향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이 알토란같은 이득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세율 인하 부분 때문이다.
세율 인하는 주택투기 억제와 이를 통한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종부세의 중요한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 다주택 보유자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우는 것이 주택투기 억제의 핵심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솔직히 말해 주택을 다섯 채, 열 채씩 보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세금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많은 주택을 계속 끌어안고 가격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최고 세율 3%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테지만, 1%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느낌일 것이 분명하다.
현 종부세 감면안에 대한 비판이 과세대상 기준의 상향조정에만 그 초점이 맞춰져 있고 세율의 대폭 인하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간단한 계산만 해 봐도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세율 인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여당이 여론에 부응한답시고 과세대상 기준은 올리지 않고 세율만 인하하는 방식으로 감면안의 틀을 다시 짠다면 그것은 최악의 선택을 한 셈이 된다. 세금을 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의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집 부자들에게만 막대한 이득을 가져다주는 결과를 빚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헌재의 위헌판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사안이지만, 세대별 합산방식을 개인별 과세 방식으로 바꾸는 것 역시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누진세율 구조하에서 과세대상 부동산을 반으로 나누어 부과대상으로 삼는 것은 집 부자들에게 생각 밖으로 큰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조치 하나로 집 부자의 세금 부담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여당 일부에서 개인별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세력이 있는데, 그들의 저의가 어디 있는지 짐작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법률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위헌판결이 어떤 쪽으로 내려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위헌판결 결과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로서 내가 보는 상식은 이렇다. 종부세의 과세대상이 세대여야 하느냐 아니면 개인이어야 하느냐의 여부는 부동산을 취득하고 처분할 때의 의사결정이 누구에 의해서 내려지느냐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예컨대 부부가 함께 의논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세대별 합산과세가 타당성을 갖는다. 이와 반대로 각 개인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면 개인별 과세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세대별 합산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양성평등이란 관점에서 볼 때 개인별 과세방식이 옳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런 주장이 양성평등의 근본정신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본다. 양성평등이라는 것을 단지 세금 깎는 도구정도로나 사용하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양성평등은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 부동산 취득과 처분에 관련된 결정을 배우자와 상의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어느 쪽이 적절한 과세대상이냐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우리 사회가 상식과 어긋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않으리라고 믿는다.
다시 한 번 정리해 말한다면, 현재 제시된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세율을 대폭 인하하겠다는 부분이다. 최고세율을 현행의 1/3수준으로 대폭 낮추겠다는 것은 종부세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조치는 정부가 늘 부르짖어 오던 딱한 처지의 종부세 납부자 문제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오직 집 부자에게 막대한 혜택을 가져다주는 효과만 낼 뿐이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지만, 세대별 합산방식을 개인별 과세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실질적인 개선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과세대상 기준의 상향조정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맺음말
종부세 폐지를 부르짖는 사람은 그것이 정치논리의 소산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또한 이 세금에는 부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녹아 있다는 과격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종부세를 도입한 사람의 속마음에 어떤 생각이 도사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아가 그것의 도입이 경제논리는 배제된 채 정치논리에 의해서만 결정된 것인지의 여부도 잘 모른다. 이런 것들을 잘 모르기도 하려니와 알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점에서 종부세가 바람직한지의 여부를 평가할 때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조세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오직 그것이 공평하며 효율적인 조세인지의 여부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종부세는 부모를 잘못 만난 탓에 태어난 지 채 몇 년도 되지 않아 안락사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내가 보기에 종부세 그 자체에는 바람직한 측면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단지 참여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종부세의 본질, 즉 이것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어떤 동기에서 도입되었는지 같은 애매하고 지엽말단적인 논의만 판치고 있다. 특히 종부세가 부자들을 괴롭히려는 동기에서 도입된 세금이라는 이념적인 색칠로 본질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생산적인 논의가 더욱 어려운 형편이다.
경제적 효과 그 자체만 놓고 볼 때 종부세는 여러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우선 주택가격 안정이란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떤 주택관련 규제보다 더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기구에 의해 투기억제 효과를 내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줄곧 폐지 논쟁에 시달려 왔기 때문에 종부세의 효과가 아직까지는 본격적으로 발휘되지 못한 상황이다. 만약 현재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유지한 채 정착된다면 괄목할 만한 주택가격 안정효과를 가져올 것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다.
또한 조세부담의 공평한 분배라는 측면에서도 다른 어떤 조세보다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조세제도는 간접세의 비중이 높아 납세자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과세가 기본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다. 고작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누진적 소득세 정도인데, 이것 역시 고소득자의 탈세 때문에 기대만큼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봉급생활자의 유리 지갑'이라는 말이 있듯,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조세부담을 지는 불공평한 기본구도가 계속 유지되어온 것이다. 최근 들어 고소득자의 탈세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도 공평한 조세부담의 분배와는 거리가 먼 형편이다.
이와 같은 불공평성을 획기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것이 바로 종부세다. 종부세는 최상위 2%에 집중적인 과세를 함으로써 소득세의 허점을 훌륭하게 메워줄 수 있다.
만약 총 조세수입의 상당 부분을 이런 방식으로 부과한다면 '부자 괴롭히기'라는 불평이 당연히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비중이 고작 1%에 지나지 않는 세금을 최상위 2%가 낸다고 해서 특별히 불공평하다고 말해야 할 이유는 없다. 최상위 계층이 고작 이 정도의 조세부담을 지는 것을 두고 약탈적 세금이니 세금폭탄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평과세라는 관점에서 종부세가 갖는 최대의 강점은 아무리 세무사를 동원해 보았자 납세액을 한 푼도 줄일 수 없다는 데 있다. 고소득층이 주로 내는 종합소득세나 상속세는 세무사가 얼마나 재주를 피우느냐에 따라 납세액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다. 반면에 종부세는 보유 부동산을 처분하기 전에는 납세액을 줄일 수 없다. 역설적인 점은 종부세가 갖는 바로 이 장점이 이를 한사코 반대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약 종부세 부담을 쉽게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면 집 부자들이 그렇게 열렬한 반대투쟁에 나서지 않았을지 모른다.
종부세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장점은 지방자치단체들 사이의 재정능력 격차를 메워주는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행 재산세제도하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아는 사실이다. 종부세 수입 전체를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는 현 체제는 이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해 주는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정부는 종부세 폐지후 발생할 문제에 적절히 대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말하는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돈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기득권을 선뜻 포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부세를 궁극적으로 재산세와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근거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경제이론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하등의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목적이 부자들의 조세부담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데 있다면 모를까, 그 이외의 합리적 이유를 하나라도 생각해 보려 해도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부유층의 조세부담을 중산층과 저소득층으로 전가시키지 않는 한, 재산세로 통합한다 해도 그들이 지적하고 있는 종부세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산세로 통합하는 것 그 자체는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장점을 많이 갖고 있음에도 왜곡된 여론 때문에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는 종부세의 슬픈 운명이 가엽기만 하다. 나는 지금 당장 정부가 종부세 무력화의 시도를 접어야 한다고 부르짖고 싶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종부세를 폐지하고 나면 우리 조세제도의 효율성과 공평성에 심각한 후퇴가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 역시 종부세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데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러나 보완한다는 핑계로 이것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저의가 엿보이기 때문에 걱정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비록 종부세 폐지라는 발판을 딛고 정권을 잡았다 하더라도 이제는 좀더 냉정하고 사려 깊은 자세로 종부세의 앞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정치가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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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없는 존재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2008/09/02 11:25)
인수위원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공무원은 영혼이 없는 존재’라는 한 고위 관료의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자조적인 말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최소한의 자존심은 갖고 있어야 할 공직자가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게 일반적인 정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말을 하게 된 심정을 점차 이해하는 쪽으로 바뀌어 갔다. 정치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 그 자체도 무척 피곤한 일임에 틀림없다. 어디 그뿐인가? 열심히 일을 해도 정권이 바뀌면 열심히 일한 것 그 자체가 시비의 대상이 되는 판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자신을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비하했을까.
현 정부가 들어오면서 공무원의 입지는 과거보다 한층 더 좁아진 듯한 느낌이다. 공무원을 개혁의 동반자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심지어는 정치가의 허물을 덮는 도구로 공무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인상까지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쇠고기 파동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이 초기 단계에서 솔직하게 사과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어도 사태가 그 정도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바람에 결국 방패막이로 나선 공무원들이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했다. 촛불 드라마에 등장한 수많은 영혼 없는 공무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 여름의 유난스런 무더위를 공무원들은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견뎌내야 했다. 공무원이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문 때문이었다. 민간부문에서는 2천원짜리 라면을 사먹는 사람도 냉방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나라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은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서도 부채질로 비지땀을 식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난데없는 승용차 홀짝제로 인해 많은 공무원들이 출퇴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림픽을 치른 중국을 빼놓고, 주요국에서 홀짝제란 과격한 규제로 고유가에 대처한 경우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상황이 급박하다면 전국적으로 홀짝제를 실시할 것이지 왜 공무원에게만 적용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만만한 공무원을 홀짝제 쇼의 엑스트라로 동원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공무원들이 행동으로 에너지 절감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무원에게 주어진 더욱 막중한 임무는 에너지 절감의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이다. 부채질로 땀을 식히고 이틀에 한번 차를 쓰지 않는 쇼는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이 아니다.
별 효과도 없는 전시성 정책에 공무원을 도구로 이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뒤늦게 대통령이 공무원 다독거리기에 나섰으나 수사만 있을 뿐 알맹이는 없다. 아직도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눈치다. 평범한 공무원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니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활짝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지 않는 한, 입 다물고 사는 데 익숙한 공무원의 진심을 알아내지 못 한다.
물론 공무원들이 반성해야 할 점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공공부분의 혁신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현안과제라는 데 한 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철저히 고치되, 쓸모없는 희생을 강요해 공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현명한 지도자라면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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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정부 (이준구 교수 홈페이지, 2008/09/06 13:23)
요즈음 경제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들어선 정부가 과연 맞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지난 정부 때보다 더 나아지기는커녕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성장도 지지부진한데다가 물가, 외환, 주식시장 등 불안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형편이다. 근래에 우리 경제가 이토록 심각한 총체적 어려움에 빠진 것을 기억하기 힘들 정도다. 오죽하면 ‘9월 위기설’ 같은 근거 없는 루머가 그렇게 널리 유포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물론 세계경제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경제를 어렵게 만든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다’라는 말이 시사하듯, 모든 것을 세계경제 상황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도 무책임한 태도다. 현 정부의 명백한 과오, 그나마도 한, 두 개가 아닌 수많은 과오들이 위기상황을 불러왔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그토록 많은 정책상의 과오를 저지른 정부는 그 예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정부가 저지른 가장 심각한 과오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상황이 전개되는 데 따라 임기응변적인 대응으로 일관한 나머지 정책의 일관성을 거의 완벽하게 상실하고 말았다. 그 결과 시장이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게 되고, 정부가 어떤 정책을 써도 그 약효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바로 이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해 있는 위기의 본질이며, 이것은 세계경제의 상황과 아무런 관련을 갖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지금의 위기상황은 거의 전적으로 ‘오락가락’ 정책이 빚은 결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책 일관성의 결여가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 사례로 성장과 물가안정 목표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온 것을 들 수 있다. 정부가 들어선 직후의 상황은 도저히 ‘747 공약’을 지킬 수 없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정책의 중심축을 물가안정에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747이라는 허황된 약속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정부는 물가안정을 도외시하고 오직 성장률을 높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결과 가중되는 물가상승 압력에 대한 초기대응에 실패해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다. 물가안정이 초미의 과제인 상황에서 고환율정책을 추구해 물가상승을 부채질한 것은 졸렬함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뒤늦게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성급하게 방향전환을 시도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의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물가안정 대책이랍시고 나온 것이 특정 품목의 가격 상승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는 케케묵은 정책이었다. 개발독재시대라면 이런 정책이 약효를 발휘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경제에서는 그 어떤 긍정적 효과도 낼 수 없다. 불과 몇 달 만에 성장에서 물가안정으로 방향을 반전시킨 데다가, 그나마 아무 효과 없는 정책으로 일관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오락가락 정책의 부작용이 가장 극적으로 표면화되어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외환시장이다. 정권 출범 직후 외환시장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쓸모없이 고환율정책을 추구해 혼돈의 첫 장을 열었다. 그러나 바라던 수출 증대는 일어나지 않았고 물가불안 요인만 잔뜩 부풀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섣부른 개입은 ‘긁어 부스럼’이었을 뿐 아니라,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외환시장의 모든 불안요인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만든 악수(惡手)였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갑자기 저환율로 정책기조가 바뀌고 이에 따른 대규모 개입이 감행되었다는 데 있다. 몇 달 사이에 정책기조가 정반대로 바뀔 정도로 오락가락하니 시장은 매우 큰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환율을 내리기 위해 보유 외환을 대규모로 내다 팔았지만, 이를 비웃듯 환율은 근래 최고의 수준으로 치솟아 올랐다. 이 두 차례의 불행한 개입으로 인해 외환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은 일시적으로 거의 마비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순전히 가정이지만,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외환시장의 자율에 맡겨 두었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어 가는 추세에 따라 환율이 어느 정도 오르는 것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환율 상승의 과정이 상대적으로 더 부드러웠을 것은 분명한 일이며, 따라서 급격한 환율 변동으로 인한 부작용도 훨씬 더 줄어들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와 같은 정책실패로 인한 인재(人災)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다. 정부는 세계경제의 상황에 핑계를 돌리고 싶겠지만 그것을 흔쾌히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태도는 공기업 민영화 문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수도사업을 민영화 하겠다는 말이 나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민영화는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정부의 기본 입장이 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정청(黨政靑) 사이의 불협화음 때문에 생긴 혼란이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들은 정부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것으로 인식하게 마련이고, 이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한편으로 민영화를 통한 효율성 제고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정권보다 더 노골적인 공기업 낙하산 인사를 감행하는 모순적인 태도는 정부 대한 신뢰를 한층 더 깎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당정청이 제대로 사전 조정을 하지 못하고 각자 제 마음대로 발언해 혼란을 일으키는 현상은 참여정부의 전매특허인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바로 거기에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이끄는 ‘아마추어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정청 사이의 불협화음은 참여정부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더 자주, 그리고 더 크게 들려오고 있다. 참여정부를 아마추어정부라고 불렀다면 도대체 이 정부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마땅할지 궁금해진다.
최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망령에서 오락가락 정책의 극치를 보게 된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대운하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말한 지 겨우 두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거의 모든 국민이 대운하는 지나간 과거로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운하라는 말의 기억조차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사이에 대운하 사업에 대한 지지가 극적으로 증가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국토해양부 장관은 뜬금없이 대운하 사업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말을 꺼낸다. 단지 말실수였다면 대통령의 호된 꾸지람이 뒤따라야 할 텐데 조용한 것을 보면 그것은 고도로 계산된 발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불과 두 달 전의 말을 번복하고 싶어 하는 정부의 태도는 과연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땅바닥을 기던 대통령 지지율이 올림픽 특수에 힘입어 얼마간 올라간 데서 자신감을 얻은 것일까? 그렇다 해도 지지율은 다시 20% 수준으로 추락했고, 무리하게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다가는 홑자리 지지율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무리 판단력이 무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지지율이 잠깐 상승한 것에 고무되어 대운하 사업을 다시 띄워 보려는 생각을 갖게 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들도 대통령, 그리고 대운하 사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럴듯한 추측은 토목사업을 통해 경기를 활성화시키고 싶은 구시대적 욕망이 가장 중요한 동기라는 것이다. 요즈음 갑자기 신도시, 재개발, 재건축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토목공사를 통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낡은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에게 대운하 사업은 정말로 포기하기 힘든 호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과 두 달 정도의 짧은 기간에 대운하 사업 포기에서 재고로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정부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는 우를 범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터에 대운하 사업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계경제 상황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경제가 당장 살아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 문제를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출범 초부터 무리한 개입을 삼가고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경제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바람이 거셀 때는 몸을 납죽 엎드려 날려가는 위험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공연히 바람에 맞서 싸우겠다고 몸을 꼿꼿이 세우는 만용은 피해를 더 크게 만들 뿐이다. 정부가 바보같이 그런 만용을 부렸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까지 겪고 있다.
그토록 시장을 부르짖으면서 등장한 정부가 걸핏하면 개입을 일삼아 시장의 자율조정 기능을 손상시킨 것은 매우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개입이 시장친화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부작용이 줄었겠지만,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개입의 방식은 반시장적 규제일 경우가 많다. 현 정부는 최근 우리가 보아온 정부 중 가장 반시장적 정부 중 하나로 꼽혀야 마땅하리라고 생각한다. 정부는 지난 6개월을 되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이런 반성 없이 지금까지의 반시장적 정책기조를 고수한다면 우리 경제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747 공약은 현 정부가 벗어던지려야 벗어던질 수 없는 태생적 한계다. 그 공약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제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5% 수준으로 내려와 있기 때문에 5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성장률을 7%대로 올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어떤 이유로 세계경제가 전대미문의 호황국면으로 접어든다면 모를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는 그 공약을 지키려고 몸부림쳐 보았자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정부는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 체면을 지키기 위해 7% 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식의 잠꼬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책의 일관성을 회복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이를 통해 경제 전반을 안정시켜야만 시장의 자율조정기능이 되살아날 수 있다. 그 대가가 너무 크기는 했지만, 지난 6개월은 아마추어들의 수습기간으로 접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4년 6개월 동안에도 ‘오락가락 정부’의 오명을 그대로 달고 산다면 우리 경제는 치유되기 힘든 중병을 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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