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아직 가고픈 곳이 많은데... (해외여행)

몽골여행 7박8일 4-5일차 - 홍고르엘스, 바얀작, 만달고비

새벽길 2023. 8. 16. 04:38

■ 4일차

ㅇ 06:49 맑음
새벽에 비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 우려를 했는데, 화창하더라. 오늘은 5시반 기상. 어제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 것에 비하면 일찍 일어난 셈이긴 하나, 중간에 많이 깼다. 2시반 즈음에 무슨 소리가 들려 일어났고, 3시반에도 ㄱ이 쥐가 나서 다리를 두드리길래 좀 봐주러 깼다. 게다가 그 사이사이에 쪽잠을 잘 때 무슨 꿈을 많이 꾸는 건지...
하나는 ㄱ네 커플이 일이 생겨 급하게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답답해하던 게 떠오르고, 또 이와 유사한 상황도 있더라. 거참...

 
ㅇ 08:50
8시반이 조금 넘어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가 어디인지 체크해놨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했다. 게르촌에서 키우는 듯한 몽골 개 두마리가 우리 숙소 13번 게르 앞에 자주 와있었다. 아마도 어제 감겹살 몇점을 던져준 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떻든지 공간감각력이 있는 셈이다. 똑같은 게르에서 우리 게르를 찾아냈으니 말이다. 우리 게르에 삼겹살 냄새가 배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별을 보는 것도 좋고, 사막이라는 걸 처음 보는 것도 좋은데,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네 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는 시간이 즐겁다. 매일 보드카 한 병과 맥주 한 캔씩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물론 정치 얘기를 하진 않지만, 그게 없어도 대화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동행을 잘 구하는 게 중요함을 보여준다. 다들 배려심도 강하다. 그래서 고맙고... 9월 여행 때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늘 날씨는 상당히 쌀쌀하다. 그래서 체면 치우고 노조 점퍼를 꺼내입었다. 어제는 차안에서도 더워서 심심하면 창문을 열었는데,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 사막의 모래위를 걸을 텐데, 이런 날씨가 좋긴 할 듯하다.
오늘도 힘들고 새로운 하루가 될 듯... 기대된다. 암튼 어제 잠을 제대로 못자서 잠을 좀 자야겠다.

ㅇ 09:53
9시 30분경에 마트에 들렀는데, ㄴ이 찾는 요거트가 없어서 그냥 그 옆의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켜 마시고 있다. 맛은 괜찮다고... 난 잠을 위해 안마시기로 했다. 물론 잠 자는 것은 커피 마시는 것과 무관하지만...

오다 투어, 데일리 몽골리안 등의 여행사 차량도 여기에 멈춰 있다.
앞으로 100여km 비포장도로라고 한다. 힘든 여정. 잠을 잘 잘 수 있을까?
2024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터무니 없는 액수다. 이른바 공익위원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사용자위원 편을 들어 최근 들어 가장 낮은 상승률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거다. 공익위원제에 대해 이젠 정말로 재고해야 할 때가 되었다. 권모 선배는 완전히 자본의 주구로 전락한 걸까?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도 그렇고, 최임위에서도 그렇고, 정말 그의 변화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몽골 땅에서 여행하면서 최저임금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좀 거시기하다.
10시 5분 출발. 아까 머물렀던 곳이 사막투어가 이제 시작될 테니 준비하라는 의미에서 최종적으로 머무르는 곳 같다. 화장실에 갈 걸.

ㅇ 12:38
아까 스타렉스를 추월할 때까진 좋았는데, 운전기사가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전화도 하고 여기저기 물어물어 다시 가고 있다. 스타렉스를 따라가는 모양새. 
곧 숙소에 도착하겠지? 차 안으로 먼지가 엄청나게 들어왔다. 
서서히 더워진다. 그래도 중간에 비가 와서 오늘은 사막을 나다니기엔 최적의 날씨가 아닐까 싶다.

ㅇ 15:44
노트북으로 심플노트를 사용하니 시간설정이 한국시간으로 되어 있어 한 시간 빠르게 되어 있는데, 이걸 첨에 몰랐다가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하고 깜빡 놀랬다. 3시 46분 정도밖에 되지 않아 다행.
12시 40분경에 숙소에 도착했다. 이 숙소도 쓸만하다. 다만,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왔더니 모두 기진맥진해졌다. 아무리 푸르공이라지만, 승차감은 다른 푸르공만 못하고, 더욱이 스타렉스보다 훨씬 떨어지는 듯하다. 

암튼 15번, 16번 게르를 우리가 사용하는데, 콘센트 위치가 모호하지만, 게르 안에서 전기사용도 가능하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첫 게르보다는 나은 편이어서 안심이다. 
현지식당에서 쇠고기잡채 비스무리한 것으로 점심을 했다. 여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 ㄴ과 ㄹ은 고추참치와 볶음김치와 함께 밥을 주문하여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도 한국친구들이 식사를 했는데, 그 중 절반은 현지식 대신 컵라면을 먹더라. 식사 또한 투어비용에 포함되어 있을 텐데,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앞에 붙은 주의사항. 영어 단어가 잘못 쓰여 있는데, 그래도 뜻은 잘 통한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서 낙타 타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란다. 하지만 바람은 여전히 세지만, 비는 잦아들어서 먼저 한 팀이 낙타를 타러 갔다. 우리는 4시반경에 나갈 예정이란다. 예정된 시각보다 1시간반 정도가 느려진 것이다. 그래도 낙타를 탈 수 있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당연히 홍고링 엘스 사막에 올라가는 것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을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 날씨에 그건 불가능하고... 

비가 와서 낙타 탈 준비만 한 채 게르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금 다시 비가 오는 것 같다. 홍고르 사막에 오르고, 모래썰매만 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로 족하다.
다들 피곤한지 잠을 자고 있다. 멀미를 했다고도 하고... 난 그럭저럭 쌩쌩하다. 그래서 지금 눈 뜬채 이 짓을 하고 있는 건지도... 다행히 7월 27일 토론회 발제문 초안을 약간이나마 손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데이터를 가지고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이 숙소는 태양광 발전을 하는 모양이었다. 전지판이 보여서 한 컷.

 
■ 5일차

ㅇ 05:28 맑은 듯...
12시가 못되어 잠이 들었다가 5시가 조금 넘어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이불 속에서 뭉그적뭉그적...
어제는 피곤해서인지 바로 잠든 편이다. 오늘도 비포장도로의 연속, 힘든 하루겠지만, 어제 밤 ㄷ에게 말했다시피 생각보다는 괜찮은 편이다. 무슨 오지탐험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셈이다.
어제 오후에 데이터를 2기가 썼다는 경고가 들어왔다. 여행사 가이드에게서 받은 유심이 7월 한달동안 7기가 쓰는 걸로 해서 1만투그릭이었고, 그 정도면 충분할 거라 그랬는데, 양호한 편이다. 아무리 많이 써도 6기가 정도 쓰지 않을까 싶다. (나중에 봤더니 4기가가 제한인 듯했다. 떠나기 전날에 데이터 사용량이 4기가에 다다르니 그 뒤부터는 데이터가 안되는 거다. 내 폰에 문제가 있나 했더니 그게 아니었던 거다.) 

 
어제는 5시반이 넘어서 낙타체험을 했다. 3시 정도에 2시간 할 거였는데, 비도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10분 정도 탔나? 그것도 1시간 정도를 낙타 타고 이동해서 차량과 만나 홍고링 엘스 사막으로 가는 거였는데, 바뀐 거다. 앞팀이 30분 정도 왕복했다면 우리는 비 때문에 제자리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걸로 만족해야 했다. 원래는 비가 오면 위험해서 낙타체험을 하지 않는단다. 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낙타체험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여행사에게도 그리해선 안될 것이고... 

그래서 잠깐이라도 체험하게 된 건데, 여성들도 그렇고, 모두 다 위험해서 차라리 그렇게 짧게 체험한 것에 만족해했다. 실제 그런지 모르지만... 난 혹을 잡고 탔는데, 그게 쉽지 않았다. 낙타가 갑자기 몸을 흔들기도 하고 낙타체험 가이드가 고삐를 잡고 움직이는 통에 혹 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낙타체험 가이드가 단체사진을 남길 수 있도록 카메라(휴대폰)를 달라고 하는데, 아무도 쉽사리 주지 못했다. 간신히 ㄷ의 폰으로 사진에 담는데는 성공. ㄴ은 계속 무섭다고 내리겠다고 했지만, 가이드들은 이를 무시하고 10여분을 채웠다. 암튼 낙타체험은 그 정도로 충분했다.

가까이에서 본 낙타는 매우 순해보였는데, 막상 타니 상당히 위험하더라. 역시 낙타는 물건을 싣는 용이지, 사람이 타는 용은 아니다. 

ㅇ 07:50
7시 20분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8시가 조금 못되어, 아니 7시 53분 출발이 아니라 가이드가 오지 않아서 8시가 좀 못되어서 출발.

게르가 냄새가 나서 조금 힘들었다. 처음엔 괜찮았다가 나중에 그러했는데, 아마 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게르 천이 비에 맞으면 그런 꾸리한 냄새가 나는 모양.
지금 차가 출발했는데, 비포장도로라 메모하기 어려울 듯...
잠이나 자자. 잘 수 있을지 모르지만...

ㅇ 11:23
3시간 이상 잠을 청해봤지만,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전혀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럴 바엔 주변 경치라도 구경할 걸 그랬다.
이제 바얀작까지 10km 남았단다.

ㅇ 11:38
차가 많이 흔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지를 써보려 헌다.
바얀작 가는 길은 광활한 초원이다. 

어제 낙타체험 이후 6시가 넘어 차로 40여분 가서 홍고링 엘스에 도착했다. 우리는 거의 마지막 팀이었다. 거기 가는 데에도 차량에 대해 입장료를 받더라. 차량이 허가 없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입구 말고는 모두 울타리를 쳐놓았다.
사막으로 출발할 때 가이드에게 우리는 모래썰매를 챙기지 않느냐고 했더니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보트카 가이드가 말했지만, 결국 가지고 왔고, 우리 게르촌의 다른 팀도 모래썰매를 챙기지 않았기에 맨 마지막 출발한 우리가 그 팀 것까지 가지러 되돌아갔다 와야 했다.

도착한 시간이 6시 55분. 각자 자신의 모래썰매를 챙기고 신발을 벗어놓고 사막으로 들어섰다.

홍고링 엘스 정상에 2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은 연이어서 모래썰매를 타고 내려오더라.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잘 타는 사람과 못 타는 사람이 갈리는 듯하다.

300m 거리인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보통 2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발이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기 때문에 별로 진전이 없다는 거다. 
우리는 비가 와서 모래가 젖어 있었기 때문에 올라가는 데 그 만큼 시간이 소요되진 않았다. 내가 일착이다. 게다가 차로 가는 동안에는 비가 왔지만, 우리가 모래언덕을 올라가는 동안에는 비가 그쳐서 잘하면 노을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하지만 햇무리만을 볼 수 있어 해가 나오는 걸 볼 수는 없었다. 


ㅇ 15:18
점심은 게르형 식당에서 했다. 색다르긴 하다. 점심식사하기 전에 말우유를 마셨는데, 몽골인인 가이드와 운전기사와는 달리 역시 다들 반응이 별로다. 치킨 커틀릿 같은 걸 점심으로 먹고 2시 50분 만달고비로 향하고 있다. 5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고 구글맵에 나오니 쉬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9시가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할 듯하다. 참, 여기는 식당이 게르형이어서인지 화장실도 제대로 된 게 없다. 

점심식사 후에 근처 커피숍(?)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물론 나는 마시지 않았다.
푸르공 옆에 고양이

포장도로일 듯했는데, 비포장도로다. 그래서 뭘 하기도 힘들어 동영상을 보고 있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서 말이다. 근데 잠이 온다. 다른 이들이 다 자고 있어서 그런 모양이다. 잠도 전염되는 건가.
그런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깨버렸다. 앞에 차 한 대가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자 맘씨 좋은 운전기사 아무가가 이를 돕기 위해 정차한 것이다. 이런 도구도 싣고 다니는 모양이다. 


ㅇ 16:37
드디어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이전에도 포장도로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지 않았는지... 그리 가는 길이 없었나?
암튼 이제 쭈욱 포장도로다. 그래서 일정정리도 가능.

ㅇ 17:12
달란자드가드에서 저번에 들른 Nomin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그리 많이 살 것도 없었지만, 라면이 잘 팔려서 라면 몇 개와 과자들, 그리고 몽골 로컬 맥주캔 5개를 샀다. 그리고 여기에 노트북 마우스에 쓸 aa 배터리도 함께... 건전지는 1,490투그릭이다.
지금은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는 중. 갈 길이 멀다.
달란자드가드는 몽골 남부에서 그나마 큰 도시가 아닐까 싶다. 만달고비까지 계속 포장도로겠지?
 
ㅇ 17:30
방금 전 가이드와 오늘 일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숙소가 있는 만달고비까지 300km, 3시간 반 정도 걸릴 듯하다. 식사는 현지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제육볶음으로 하기로 했고, 10시 넘어서도 가능하단다. 그 정도면 되었다.
사진을 모임방에 올리려 했더니 네트워크가 안된다고 나온다. 사진 업로드는 나중에...

다시 어제 홍고르 엘스 얘기.
정상에 올라가 보니 폭이 그리 넓지 않은 듯했다. 고비사막이 겨우 이 정도야 애개개했는데, 길이는 120km에 달한다고 한다. 그럼 인정. 아무튼 제대로 된 사막을 처음으로 영접하게 된 거다. 사실 우리가 어릴 때 들었던 사막은 사하라사막, 고비사막뿐 아니었던가.
비온 후에 홍고르엘스에 올라가본 한국인들도 그리 많지 않을거다. 이 또한 다른 이들은 누리지 못한 특별한 경험. 물론 모래에 푹푹 빠지는 경험도 했기에 다양성 측면에서 좋았다.
나는 30여분만에 정상에 올랐다.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숨이 많이 차더라. 그래서 중간에 이쯤하고 그냥 내려가자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는데, 제일 연장자라는 것 땜에 그냥 입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다른 친구들이 이쯤하면 되었다고 내려가자고 했으면 맞짱구쳤을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일행 가운데 맨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조금 무겁더라도 와인이나 맥주를 가지고 와서 마셨으면 정말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진 않았지만, 이런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스마트폰 이외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다.
양말과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올라가게 되는데, 평소라면 뜨거운 햇볕에 모래가 달궈져서 대낮에는 오르지 못하고 늦은 오후에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비로 식은 모래를 밟았기 때문에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 오히려 모래가 차가워지는 게 우려스러웠다. 
정상에서 본 홍고르엘스는 나름 장관이었다. 한편은 사람들이 올라온 흔적이 있지만, 반대편은 아무 흔적도 없이 깨끗한 것도 대비가 되더라. 다시 올라오기 쉽지 않겠지만, 한번 굴러봐 하는, 엉뚱한 생각도 잠깐 했다.

여기에 뒤늦게 오른 김에 노을까지 봤으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거기까지는 무리였다. 거기서 많은 이들이 다양한 설정과 포즈를 잡았을 테지만, 난 그때부터 조금 자제가 되더라. 부부나 커플인 이들은 모르겠지만, 혼자 뭐가 좋다고 포즈를 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바양작에서도 독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물론 바얀작은 해질 무렵 불타는 절벽을 찍을 게 아니라면 공룡알이나 화석 같은 유적에 관심을 가져야지 포즈 사진을 남기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다.
모래썰매 타는 체험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300여미터의 내리막길을 네번 정도에 걸쳐 썰매 타고 내려오는 기분은 거의 40여년만에 느껴보는 것이었다. 예전 광주에서 조선대 의대 병원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도로가 있었는데, 폭설이 내릴 때 즈음엔 거기에서 비닐포대 등으로 썰매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 타고 내려오는 걸 해본 적이 있다. 꼭 그 기분이다.
힘들게 올라가서 단번에 내려오는 게 아쉬웠지만, 그 속도감이나 흥분 등은 잊기 힘들다. 난 썰매 조정을 잘 못해서 한번에 내려오진 못하고 중간에 서버리고 다시 타야 할 경우도 있었지만, ㄱ은 정말 잘 타더라. 난 내가 잘 못타는 게 체중 탓으로 돌리고 싶었는데, ㄱ은 그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 거다.
그렇게 홍고르엘스에 갔다가 오니 9시가 넘었다. 뒤늦게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는 전날 먹고 맘겨두었던 삼겹살과 김치를 가지고 김치볶음밥을 해먹었다. 이는 ㄱ이 실력발휘를 했다. 김치가 많이 부족했지만, 쌈장으로 보완하여 그럴듯하게 해서 먹었다. 물론 ㄴ과 ㄹ은 컵라면으로 떼우고...
다들 넘 피곤해서 술자리 없이 마감하려다 나와 ㄷ, ㄴ만 맥주 한 캔씩을 마셨다. 물론 나만 한 캔을 다 마셨고, 둘은 조금 남겼다. 
다음날 아침엔 7시20분에 나서야 한다고 해서 일정표와 왜 다르게 서두르나 했는데, 지금 만달고비에 가면서 보니 그래야 했구나 싶다. 여기까지 어제 일정 정리.

욜린암, 바얀작 등을 둘러보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지금은 그냥 몽골국이지만, 세계 두번째로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몽골인데, 국가가 민중들에게 해주는 게 너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선주의 체제 시절 집권당이었던 몽골인민당은 공산권이 붕괴된 이후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변모하여 지금도 주요정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뭘 한 걸까.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이들을 통한 외화수입이 나름 될 텐데, 주요 관광지를 보면 국가가 나서서 뭔가 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도 몽골여행사와 패키지로 했지만, 몽골여행사가 주축이 될 뿐 국가가 관리하여 조성한 게 거의 없는 거다. 울란바토르와 테를지 정도가 개발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부의 주요 방문지들은 주요길목만이라도 도로 포장도 하고, 관광포인트는 뭔지, 무엇을 보고 즐겨야 하는지를 최소한이라도 안내한다면 훨씬 감명 깊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오지체험하듯이 한번 방문하면 마는 곳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다. 나라도 푸르공의 체험이 색다르기는 하지만, 비포장도로에서 멀미를 염려하고, 화장실과 샤워 걱정을 해야 하는 곳에 약간의 순간적인 감동을 위해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9월에는 홉스골로 가야겠다.
아무튼 국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겠지만, 몽골의 정치인, 관료들이 몽골이 가지고 있는 것과 잠재력을 잘 파악하고 개발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몽골에 와서 몽골 정치나 행정의 영향력, 권위를 느낀 적이 징기스칸공항에서 입국심사할 때 빼고는 없었던 듯하다.
 
바얀작 얘기도 하고 넘어가자.

바얀작 입구에 수많은 차량이 줄지어 있다.

바양작(Bayanzag, Баянзаг)은 이 지역을 조사 발굴하러 온 서양학자들이 해질녘 절벽의 색이 붉게 보이는 것을 보고 ‘불타는 절벽’같다 라고 하여 ‘Flaming Cliffs’라고 불린다. 실제 사암 절벽이 붉은색과 주황색을 띠고 있으며, 다양한 공룡 화석 발견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바얀작을 방문하기 전에 바얀작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게 된다. 

바얀작은 낙타인형 기념품을 사야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곳의 기념품가게에서 다양한 낙타인형을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얀작을 상징하는 것은 공룡뼈와 공룡알 화석이다. 바얀작에서의 마그네틱(자석)도 공룡을 중심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정작 바양작에 가보면 공룡뼈와 공룡알 화석 등에 대한 내용은 영상문화관말고는 발견할 수 없다. 일몰시의 불타는 절벽을 누구나 보게 되는 게 아니라면 이와 관련된 표지판, 이를테면 공룡뼈가 발견된 장소 등을 표시하는 것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암튼 일몰시가 아니더라도 바얀작에 훌륭한 포토존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ㅇ 19:21
배가 고파서 장 볼 때 사온 스니커스와 내가 가지고 온 곡물21, 핫브레이크를 나눠 먹었다. 
조금 있다가 초원 너머로 해가 지는 장면을 보는 것도 나름 인상적이지 않을까.
화장실에 가진 않더라도 밖에 나가 잠시 맨손체조라도 하면 좋겠다. 운전기사님은 장시간 운전이 힘들지 않을까.
 
ㅇ 20:23
허리가 약간 아파와서 맨손체조도 할겸 가이드에게 5분 정도 쉬었다 가자고 했더니 8시가 조금 못되어 인근 초원에 차를 세웠다. 차가 선 김에 푸르공 위에 올라가 사진도 찍고 석양과 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와 같은 게르에 묵었고 일정을 거의 비슷하게 하는 렛츠고 스타렉스 팀도 같은 장소에 와서 우리 다음으로 푸르공에 올라가 사진을 찍더라. 그 친구들은 카메라도 두 대나 있어서 남의 차로 우리보다 더 잘 찍었을 수도...
아마 카메라로 별 사진도 잘 찍었을 듯한데, 나중에 그 친구들에게 별 사진 찍은 걸 공유해달라고 요청해볼까.
암튼 그 때문에 5분 쉴 게 20분이 넘어 밥먹을 시간이 더 늦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픈 허리 덕에 푸르공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ㅇ 20:37
좀 전에 일몰 풍경을 찍었다. 메모하느라 놓친 줄 알았는데, 그래도 몽골에서의 일몰을 약간이라도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몰 풍경은 언제 어디서 보든지간에 아름답다. 갑자기 일몰과 노을을 좋아했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 친구에게 몽골 일몰 사진을 보내볼까. 뭐, 찍은 사람만 알지 누가 구별하지도 못할 텐데... 별 생각을 다하는구만.
 
밤 9시 45분경에 숙소에 도착했다. 만달고비에 들어가는 초입에 게르가 있다. 스타렉스 팀이 우리와 동행했다.
10시가 다 되었기에 바로 숙소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메뉴는 제육볶음. 먹을만하긴 했는데, 하루종일 이동에 시달려서 그런지 입맛이 없더라. 역시나 우리 팀의 여성 두명은 이것도 먹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 ㄴ은 불닭라면을 군대식으로 먹었고(봉지에 그대로 넣어 삶는 거다), ㄹ은 제육볶음을 약간 먹고 도시락 컵라면도 먹지 않았다. 몸이 안좋단다. 그래서 오늘은 대충 씻고 일찍 자겠다고... 
나도 점심 이후 갑자기 허리가 안좋아서 식사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래도 밥이 보약이란 생각에 주어진 것은 다 먹었다.  

게르에 와서 보니 쌀쌀한 날씨에 샤워까지 하기가 귀찮았다. 일단 세면도구는 다 챙겼지만, 하나뿐인데도 쫄쫄쫄 나오는 샤워기에서 샤워하기가 거시기해서 얼굴과 발을 씻는 걸로 대체했다. 여행에서 밤에 샤워를 하지 않은 건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 언젠가 호텔에 돌아와 너무 피곤해서 바로 골아떨어져서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한 적은 있다. 사실 집에서는 매일 샤워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여행만 가면 하루 두 차례나 샤워를 하게 되는 걸까?
샤워를 마치고 짐 정리를 한 후 허리도 안좋은데 술을 마시지 않고 바로 잠을 잘까 했다. 그런데 인터넷 사용 가능이라고 했지만 우리 게르는 외곽에 있어서인지 데이터 사용이 잘 되지 않았다. 찍은 사진을 다시 훑어보는 것 외에 할 게 없어서 몸이 좋지 않은 ㄹ을 제외하고 나머지 4명이서 술을 마셨다. 허리 아픈 건 술로 치유?
3시가 넘어서까지 맥주 한 캔씩과 보드카 한병을 마셨다. 그리고 그 사이에 ㄱ과 ㄴ 커플은 오늘은 반드시 별사진을 찍어보겠노라 결심을 하고 자신들이 준비한 카메라를 가지고 한 시간 여를 씨름하더니 조작법을 익혀서 드디어 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카메라를 가져온 보람을 찾은 거다. 덕분에 아주 잘된 사진은 아니지만, 나도 별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고... ㄱ, ㄴ의 열정에 감사.

테를지에선 ㄹ까지 포함해서 푸르공을 배경으로 괜찮은 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암튼 3시간 넘게 여러 얘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 정치 얘기가 없었던 것도 인상적이다. 하긴 그거 없어도 할 얘기는 많긴 하다.
게르는 이전보다 더 추운 느낌이었다. 이불도 얇고, 공간도 넓고 해서다. 그래도 3시간여 동안 잘 잤다.
ㄷ에게도 말했지만, 몽골여행이 이런 정도라면 생각보다는 그리 힘든 여행은 아닌 듯하다. 그렇다고 같은 여정을 또 하고 싶진 않고... 이날 하루 500km가 넘게 이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