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헌법재판소가 설립 20돌을 맞았다고 한다. 이에 한겨레신문에 그 성과와 과제를 짚는 기사가 올라왔다. 공무원시험 때문에 헌법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했던 9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의미에 대해 상당히 높게 평가했던 것 같다. 정치적 사법이라고 하여 대법원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하지만 대통령탄핵사건과 신행정수도 사건을 거치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헌재만이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국정운영을 좌우한다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는 최장집 교수의 일련의 글들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사실 헌재 재판관들도 일종의 관료들 아닌가. 관료들의 판단이 민중의 의사 내지 그 대의기구의 결정보다 더 우선시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대의기구 위에 선 그 사법관료들이 언제나 불편부당하다고 할 수도 없을 뿐더러 불편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보다는 정치가 우선이어야 한다. 물론 정치가 부정적으로 읽혀지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 또한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관련하여 과거에 헌법 및 헌법재판소와 관련하여 담아놓았던 글들을 함께 옮겨놓는다. 대의에 대해, 법치에 대해, 헌법 및 헌정구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스무살 헌재 `기본권 억압하는 가짜법치’ 견제할 때 (한겨레, 김남일 기자, 2008-08-31 오후 10:16:06) [헌법재판소 설립 20돌] 성과와 과제
헌법 수호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라는 소임을 맡은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 설립 20돌을 맞았다. 헌재를 두고 헌법전에만 존재하던 기본권의 의미를 되살리고 그 폭을 넓혔다는 찬사와, 보수성 강한 결정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보호라는 헌법 가치 실현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모두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법치주의’를 앞세운 공권력에 의해 집회·표현·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이 무시되고 기득권만이 강조되는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어느 때보다 헌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 세상을 바꾼 결정 헌재의 이력은 ‘민주화 이후 20년’과 겹친다. 이제까지 헌재에 접수된 사건은 헌법소원심판 1만5782건, 위헌법률심판 586건 등 1만6417건(7월 말 기준)에 이른다. 이 가운데 214개 법률에 대해 위헌, 138개 법률에 헌법불합치, 한정위헌, 한정합헌 결정 등을 내렸다.
이제는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졌지만, 헌재는 기대보다 우려를 안고 출발했다. 변정수 초대 헌법재판관은 “문을 열 때만 해도 예전 헌법위원회처럼 ‘휴면기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컸다”고 회고했다. 이런 부정적 전망과 달리, 헌재는 4개월여 만에 ‘위헌 결정’으로 존재를 알렸고, 반민주 악법 철폐와 개정을 바라는 열망이 헌재로 향하기 시작했다.
헌재는 100시간이 넘는 평의 끝에 재범 개연성과 관계없이 감호처분을 받게 하는 보호감호제도에 위헌을 선고했다. 5공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만든 법률에 대한 첫 제동이었다. 또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죄 규정에 대해 엄격하게 축소적용될 때만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한정합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인습적 사고를 극복하고 제대군인 가산점제, 동성동본 금혼, 호주제 등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보호의 길을 텄다. 영화 사전심의 등을 위헌으로 판정해 표현의 자유 확장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 보수적 한계 그러나 노동권 등 사회적 기본권 신장에는 내내 어깃장을 놓아왔다. 대표적 노동악법인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합헌이라 하고, 교사의 노조 활동을 막은 사립학교법 조항, 필수공익사업장 노동쟁의에 대한 직권중재 등에도 합헌의 날개를 달아줬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법학)는 “기본권에도 등급이 있다”고 말한다.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와 같은 정신적 자유권의 제한은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 제한보다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은 반대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시민사회의 끈질긴 개폐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4차례나 합헌 결정을 받았다. 양심범의 준법서약서 작성,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반면 투기를 막으려는 토지초과이득세법에는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재산권에 민감한 헌재의 경향성을 보여줬다. 위헌 결정이 난 법률의 상당수가 재산권 행사를 규제하는 상속세법, 법인세법, 국세기본법, 지방세법, 소득세법 등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적 보수성도 끊임없이 도마에 오른다. 1992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연기에 대한 헌법소원은 2년 넘게 끌다가 해당 재판부의 마지막 결정 선고에서 “심판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12·12와 5·18 사건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도 합헌 결정을 받았다.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본안심사를 한 것이나, 관습헌법을 위헌의 유일한 근거로 삼은 신행정수도 사건은 정치의 사법화, 헌재의 권력화 논란을 촉발시켰다.
■ 부당한 공권력 행사 견제해야 헌재의 위상이 부풀려졌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위헌 결정은 주목 받지만, 수많은 합헌 결정은 묻힌 탓이다. 법학자들 사이에서는 “헌재가 헌법 가치를 균형있게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환 전북대 교수(헌법학)는 “재판관들이 헌법재판의 외피를 두르고 정치를 해버린다”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안고 있는 법률을 다룰 때는 보수 편을 드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국순옥 인하대 명예교수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헌재가 잘못 운영될 경우 형식적 민주주의까지 사문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 교수는 “지난 정권부터 정치화되기 시작한 헌재가 이번 정권에서 어떤 방향으로, 어떤 나쁜 선례를 남길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공권력의 기본권 침해를 견제하며 존재가치를 뚜렷이 새길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검찰까지 정부와 코드를 맞춰 인권을 후퇴시키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기댈 곳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며 “헌재가 제 구실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헌법에 바탕한 ‘진짜 법치주의’를 보고 싶다는 주문이다.
--------------------------------------- 재판관 모두 판·검사…“비법조인 충원을” (한겨레, 김남일 기자, 2008-08-31 오후 10:12:12) [헌법재판소 설립 20돌] 참여연대 39명 분석
» 헌법재판소 연도별 심판사건 접수 현황
“헌법재판관들은 흐르지 않는 물, 늪에 고여있다. 사회 변화에 맞춰 썩지 않고 고루하지 않은 헌법 해석을 위해 신선한 물로 충격을 줘야 한다.” 조승형 전 헌법재판관은 “창조적 감각으로 헌법을 해석할 수 있는 재판관이 필요하다”며 비법조인 출신의 헌법재판관 충원을 제안했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을 ‘법관 자격이 있고 법조 경력 15년 이상인 사람 가운데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명씩 임명·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31일 참여연대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분석한 역대 헌법재판관 구성을 보면, 지금까지 임명된 재판관 39명(2명 연임 포함)은 모두 판·검사 출신이다. 특히 현직 법관이 임명된 경우가 43.6%로, 법관에서 퇴직한 지 3년 안에 임명된 사례까지 합하면 절반 이상(51.3%)이 판사 출신이다. 헌재가 또 하나의 법원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초대 재판부만 해도 법원·검찰을 떠나 길게는 10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하거나 정치인으로 있다가 재판관이 된 사람이 7명이나 됐다. 가치관과 경력이 다양한 당시 재판부를 두고 ‘9인의 사무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의 과정에서 고성과 격론이 자주 오갔고, 그만큼 의미있는 결정도 많았다. 최근 헌재가 보여준 보수화 경향은 현직 고위 법관들이 헌법재판관 충원의 주요 풀이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은 추상적 의미를 담은 헌법 해석에는 재판관의 가치관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재판 실무능력이나 법률 지식보다는 인간과 사회를 폭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대 출신의 50~60대 엘리트 판·검사 출신’들만으로는 다양한 가치와 사회변화의 방향을 읽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만 해도 우리의 헌재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으로 법학 교수, 외교관, 행정부 공무원 등도 많이 임명된다.
» 헌법재판소 역대 주요 결정
이국운 한동대 교수(헌법·법사회학)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강의 사법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헌재가 법률가 네트워크에 갇혀 있다”며 “적어도 재판관 3명은 비법률가로 임명하는 등의 헌재 민주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관을 보좌하는 헌법연구관들도 마찬가지다. 참여연대 분석을 보면, 역대 연구관 195명 가운데 법원·검찰에서 파견된 사람이 72.8%(130명)나 된다. 법원 파견자만 50.3%다. 박근용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팀장은 “인권운동가나 다양한 관점에서 국가정책을 검토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학 전공자들도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제 제8회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본 '볼리바리안 혁명: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에 보니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개정하여 통과시킨 헌법에 대해 민중들의 수호의지가 드러나더군요.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최근 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위헌판결과 함께 각종 기득권 세력들이 헌법에의 호소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이들 기득권세력의 눈에는 기존의 것을 바꾸려는 거의 대부분의 시도가 다 위헌으로 보이나 봅니다.
국민적 합의라고 칭송된 여야간의 합의에 의해 탄생한 1987년 헌법은 분명 민중이 피흘려 싸운 투쟁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이해에는 복무하지 않은 채, 오히려 기득권 유지의 빛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전혀 민중에 기반하지 않는 율사들에 의해서 말이죠. 이를 경향신문의 박노승 논설위원이 잘 짚었습니다. 물론 대안은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말입니다.
87년도에 학생운동의 주류가 '독재 타도, 직선제 개헌 쟁취!'를 구호로 내걸고 대중들을 자신들 쪽으로 끌어들일 때 소수파인 CA는 이런 구호를 외쳤다고 합니다. "파쇼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제가 직접 들어본 적이 없으니 확실하진 않은데, 그 만큼 헌법의 중요성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호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법은 그렇게 정치적인 투쟁의 산물입니다. 물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을 겁니다.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 헌법공부를 할 때에는 최종사법기관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을 제고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막상 활성화되고 보니 영 맘에 안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는 부시가 당선되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확실하게 보수적으로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새로 교체되는 넘들이 다들 꼴통들일 텐데...
잠시 가냘픈 기억을 따라 어릴 적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뭔가를 요구하며 고집을 부리다가 어른들한테 곧잘 듣던 소리가 있다. “그러면 에비가 온다.” 그렇다, ‘에비’라는 말이다. 이런 것도 있다. “에비, 그거 손대지 마라.” 지금도 그 말의 연원은 정확히 모르지만, 어쨌거나 에비는 그 어떤 것도 일순 제압하는 무서운 것들의 상징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것은 또한 넘어서거나 범해서는 안되는 금기의 영역, 혹은 그 장벽 앞에서는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해서는 안되는 자기 절제의 공간이기도 하다.
-민주화의 부산물인 憲裁- 그런 에비가 최근 ‘위헌’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에비가 부르는 합창소리는 힘차고 요란하다. 사립학교법 개정안, 언론개혁법안 등 이른바 4대 개혁법안은 인권침해 요소가 많고 재산권을 제약하므로 위헌(한나라당), 종합부동산세는 이중 과세이므로 위헌(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호주제 폐지는 관습헌법에 위배되므로 위헌(성균관), 성매매특별법 역시 오래된 관습을 거스르므로 위헌(성매매업주) 등등 그것이 관여하는 범위는 넓고도 넓다.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끌어내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른 사람은 이석연 변호사이다. 그는 최근 한 강연에서 “국민의 모든 정치와 권력은 헌법을 기준으로 해서 나오는 것인데 최근 헌법을 뛰어넘으려는 세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 세력이 사회 곳곳에 헌법 무시, 헌법 위반의 골을 깊게 파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에 따르면 출자총액 한도제,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재벌개혁 관련 제도나 심지어 고교 평준화정책도 모두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위헌심판의 전도사답게 정말 막힘이 없다. 움직이는 것은 모두 위헌, 위헌이다!
지금의 헌법재판, 그리고 그 담당 주체인 헌재는 사실 과거 민주화운동의 부산물이다. 5·16 세력은 권력 운용에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헌재를 없앴으나, 1987년의 6월항쟁이 이를 되살려낸 것이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헌법소원 등 헌법재판은 주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일반 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구제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렇다고 무슨 기대감이 컸기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이것 말고 어디 호소할 데 하나 없는 이들의 몸부림쯤으로 보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간혹 인권신장에 기여하는 결정도 없지 않았지만, 헌재는 대부분 이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국가보안법상의 찬양고무 조항은 합헌,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도 합헌. 요 근래 내려진 결정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언제부터인지 기득권층이 헌재 문을 더욱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 앞에는 지금도 위헌이라는 이름의 에비가 줄지어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헌법재판이 현상을 유지하거나 사회변화를 거부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기본권 증진이라는 헌재 설립 취지와는 계속 거꾸로 간다! 자신을 낳아준 민주주의의 대의를 배반해도 상관없다! 기막힌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설립 취지와 달리 거꾸로 가- 헌재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위헌 결정에서 관습헌법이라는 절묘한 카드를 꺼내듦으로써 유례 없는 정치적 승리를 맛보았다. 국가기관이 스스로만의 노력으로 위상을 몇배쯤은 제고시킨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헌재가 지금처럼 고위 사법관료 출신들만으로 채워지는 한, 아마 이같은 승리자의 지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누군가가 무엇을 바꾸어 보겠다고 의미있는 시도를 한다면, 먼저 헌재에 물어보는 것이 순서일 터이다. 그것을 거치지 않으면 단박에 ‘에비’라는 소리가 무수하게 날아올 테니까. “그건 위헌이란 말이야, 위헌. 바보들아, 아직도 그것을 모르는 거야?”
교수신문에 실린 최장집 교수의 아래 글은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에 관한 것이지만, 사법부의 문제에 대해, 그리고 헌정구조의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에도 함의를 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김인규 님 작품에 관한 글을 쓰다가 이 글이 생각났다. 일독을 권한다.
요새 최장집 교수에 대해 너무 자주 언급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래도 글이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은 일치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적어도 분석은 탁월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결함…새로운 헌정구조 모색을 (교수신문, 2004년 03월 18일, 최장집 고려대 정치학) 21세기 한국사회를 위한 학술아젠다(2) 정치개혁과 부패척결
국회에서의 대통령탄핵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정치위기를 몰고 왔다. 현재 한국민주주의는 탄핵을 결행한 야당과 이를 지지하는 정치권 밖의 보수적 동맹세력들의 전략적 개입가능성을 한편으로 하고, 탄핵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 저항하는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동원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두 힘 간의 불안한 균형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이 균형이 깨어진다면 국면적 위기로부터 시작된 사태는 사회의 모든 갈등들을 불러내고 극대화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무정부적 상태로 빠져들른지 모른다.
현실로 나타난 탄핵이 당내문제와 리더십위기에 직면한 두 야당의 전략적 선택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시켜온 헌정체제의 취약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사태를 헌정체제의 중단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의회다수파가 민주화의 결과로 성립한 헌정체제의 가장 핵심부분을 공격하고 마비시킴으로써 헌정체제에 중대한 손상을 가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퇴출위기에 몰린 보수적 야당의 지도부와 의회 밖의 극우적 세력의 동맹이 이러한 사태를 빚어냈다는 사실은 한국민주주의의 커다란 비극이다. 정부 對 의회 대립 일상화 탄핵이라는 정치위기가 갑작스럽게 도래했지만 그러나 큰 사건은 언제나 그러하듯 긴 과정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민주화이후 기득이익에 기초한 보수파들은 대통령선거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그 중심적 지지 세력을 한국사회의 기득이익 외부에 뒀던 김대중, 노무현정부에 이르러 더욱 그러했다. 이번 탄핵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자해적인 방법도 불사하는 결사항전식 투쟁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된 구세력들의 이런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탄핵위기로 드러난 보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도 이제 제도의 문제로부터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간 대통령의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상이한 분할정부적 상황은 민주화이후 한국정치의 패턴이 됐고, 정부 對 의회의 대결구조는 거의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부의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정부의 작동 그 자체를 매우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의회가 모두 국민주권을 대표하게 되는 이런 이중대표성의 문제는 대통령중심제에 내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두 부문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이며,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한 3권분립은 또 어떻게 작동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게 됐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대통령제를 모델로 한 한국의 대통령제가 미국의 제도디자인과 정반대의 내용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세 개의 정부부문 가운데서 의회를 가장 강한 권력의 중심으로 봤던 미국의 헌법제정자들은, 의회의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에 제도디자인의 초점을 뒀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견제할 초강력한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체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는 대통령의 권력제한 가능성은 경시됐다.
정당체제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국정치가 직면한 문제의 중심에는 정당이 있다. 민주주의란 사회의 갈등과 균열이 정당으로 조직되고 그것이 정치경쟁의 중심적 단위가 되는 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민주화이후에도 지속돼온 보수독점적 정당체제는 민주화이후의 사회변화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들이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 그리고 기능적이고 계층적인 이익에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사회의 대표기능과 유권자에 대한 책임의 고리는 더더욱 허약하다.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대중의 참여, 대표, 책임의 원리가 정당을 통해 구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정당체제는 기본적으로 사회로부터 괴리된 엘리트간 균열과 단기적 손익계산에 의한 이합집산의 결과물 이상이 아니다. 당 지도부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당내개혁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파국적 전략선택을 결행할 수 있었던 것도 사회로부터 괴리된 당의 자율성과 당내민주주의 결여에 의한 당지도부의 폐쇄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체제가 현재와 같이 보수독점적 엘리트카르텔 구조로서의 성격을 지속하는 한 파국적 정치위기의 가능성은 일상적인 위험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사회로부터 괴리된 정당체제 이번 사태에 새로운 면이 있다면 사법부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다.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은 이제 헌법재판소 판사들의 양식 즉 “법리적 판단”에 의존하게 됐다. 절차의 순서로 볼 때, 탄핵의 첫출발은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한 선관위가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선거법 위반으로 결정한 것으로부터 왔다. 그들은 “대통령은 공무원”이고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한다고 판결했다. 이와 같은 협애한 해석은, 그 자체가 합법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현행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직의 역할과도, 그리고 파당성을 그 본질로 하고 있는 정당정치의 원리와도,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의 원리와도 상치한다.
탄핵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탄핵을 정당화하는 헌재의 평결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탄핵이 결정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헌재의 결정에 우리는 어느 정도의 권위를 부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헌재가 의회의 결정을 번복하는 결정을 내린다고 해서 사태가 종결될 수 있을까. 헌재에 의해 ‘구제된’ 대통령직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한국민주주의의 운명이 9인의 판사들의 평결에 맡겨지게 되기 이전까지 많은 국민들은 헌재가 이런 권한을 갖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또한 헌재 위원들은 누구인지, 얼마나 민주주의가치를 준봉하는지도 이제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됐다. 하나의 법과 그 평결이 민주적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형식적 절차적 정당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 원리에 부응하는 내용적이고 실질적인 정당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사법부의 역할이 증대하는 것에 비례해, 사법부의 구조가 민주화되고, 민주적 내용을 갖춰야 할 필요는 절실하게 제기되고 있다.
오늘의 정치위기 상황에서 한국민주주의를 위해 그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총선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제도적인 차원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만약 국회의 탄핵에 의해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직의 운명이 사법부의 법률적 결정에만 의존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주지하듯이 우리의 경우 서유럽의 민주주의국가들처럼 의회의 내각불신임에 대해 정부가 의회해산 및 총선거 실시를 통해 주권자로서 국민의 의사를 물을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법부의 판결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현재와 같은 정치위기에서, 위기가 악화되기 전에 대통령 탄핵에 대하여 직접 국민의 의사가 무엇인지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천혜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탄핵이 만들어낸 위기의 해결은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지인가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이뤄져야 하고 그것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투표라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 국민들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다른 어떤 결정도 이보다 민주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
탄핵을 주도한 의회다수파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게임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러저러한 제도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오늘의 위기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가장 부정적인 요인이다. 최근 보수적 언론들이 앞장서 생산해내고 있는 담론들이 보여주듯이, ‘대통령없는 체제’를 미화하거나 혹은 아예 제도적으로 대통령제를 부정하는 경향 역시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 이런 가능성을 억제하면서 정치위기의 악화를 막아주고 있는 것은 광범한 시민적 공분에 기초를 둔 운동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탄핵이라는 방법을 통해 민주주의를 공격한 순간 시민적 공분과 운동의 힘은 16대 국회에 대해 해체를 선언해버렸고 이로써 16대 국회의 권능은 도덕적으로 종식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는 입법권의 행사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국회의 권한과 자격이 그 힘의 원천으로부터 부정된 상황으로 이해돼야 한다.
반정치주의 담론 극복해야 민주화이후 그동안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가치와 관점은 보수적인 주류언론이 주도하는 반정치주의 내지는 탈정치화의 담론에 의해 주도돼왔다. ‘정치가 문제다, 정치는 무능하고 썩었다’ 라는 인식의 확장은 모든 정치적 문제에 대한 해결자를 정치의 영역 밖으로부터 찾고자 하는 사회심리를 부추겼다. 그간 시민운동이 이런 지배적 가치를 선봉에서 강조하고 실천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의 입장에서 말할 때 이번 탄핵위기를 기존 운동의 한계를 벗어나는 전기로 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날의 탄핵위기는 단순히 야당의 무모한 선택에 기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제도의 결함과도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총선이후 새로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고 시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안들을 만들어내는데 진력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일정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새로운 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수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헌법재판관, 인권감수성이 첫번째 인선 기준" (프레시안, 권태욱/기자, 2006-08-01 오후 5:14:12) "검찰 배정 관행ㆍ정당별 나눠먹기식 배분도 사라져야"
9명의 헌법재판관 중 5명이 8월과 9월 중에 교체될 예정인 가운데, 새사회연대,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등 13개 단체로 구성된 '인권과 민주 실현을 위한 헌법재판관 임명 공동대책위원회'(이하 '헌재공대위')는 31일 토론회를 갖고 헌법재판관의 인선 기준을 제시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 보호해야"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중강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아주대 오동석 교수는 "헌법재판관 선정의 첫 번째 기준은 인권감수성"이라며 "인권감수성은 사상표현의 자유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국민주권 원리와 의회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인식, 그리고 헌법적 식견과 전문성을 헌법재판관이 갖춰야 할 자질들로 꼽았다. 그는 또 "'관습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더라도 '헌법재판소가 헌법이라고 말하면 헌법'이라고 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며 "문서화되어 있는 헌법을 해석하는 게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헌법재판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헌법재판소는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특별법이 '관습헌법'에 위배돼 위헌이라고 판정한 바 있다.
"헌법재판관 인선과정 투명하게 밝혀져야" 토론회 참석자들은 또 헌법재판관 인선을 둘러싼 언론 보도가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면서 "인선원칙과 절차에 초점이 맞춰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오 교수는 헌재재판관 인선 과정과 관련해 ▲후보자 선정의 기준과 근거가 투명하게 밝혀지고 ▲후보자의 성향과 능력을 판정할 수 있는 판결, 발표논문, 변론활동 기록 등이 공개되며 ▲인사청문회가 충분한 기간을 가지고 열려 제대로 후보자를 검증할 수 있고 ▲인사청문회 결과 부적격으로 밝혀진 사람이나 시민단체 등에서 거부를 분명히 한 사람은 제외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송기춘 전북대 교수는 대법원장이 법관들의 서열을 감안해 추천하는 것과 능력이나 자질과 상관없이 재판관 9 명 중에 1명은 무조건 검찰 출신에게 배정하는 관행은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또 "국회추천 몫의 헌법재판관을 정당별 나눠먹기식으로 안배하는 것은 폐기돼야 한다"며 "대법원장은 헌법재판관 추천을 대법관 제청 탈락자 구제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심판 증가…누가 헌법재판관 되느냐가 매우 중요" 1998년 출범한 헌법재판소에는 매년 심판 신청건수가 증가해 왔다. 이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이 헌법재판소의 판정으로 결정되고, 시민운동단체들도 현안의 해결을 헌법재판소에 의존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있다.
송기춘 교수는 "정치와 시민운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헌법재판은 엄밀한 규칙에 따라 조작되는 기계가 아니라 자연인인 재판관들의 합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재판관 개개인이 가지는 인권의식, 사법철학 또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헌법 '해석'이 다르게 내려질 가능성이 많다"면서 헌법재판관 임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 헌법재판소를 구성하고 있는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올 8월과 9월에 정년(재판관 65세, 헌재소장 70세) 또는 임기만료(6년에 연임 가능)로 물러난다. 8월에는 권성 재판관, 9월에는 윤영철 헌재소장과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재판관이 물러난다. 또 내년 3월에는 주선회 재판관이 임기만료로 물러난다. 윤영철 헌재소장과 송인준, 주선회 재판관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인사이며, 권성, 김효종 재판관은 국회 추천, 김경일 재판관은 대법원장 추천 케이스다. 따라서 내년 3월까지 선임될 헌법재판관 중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추천하는 재판관 수는 각각 3명, 2명, 1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