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판사가 집시법의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에 대한 파장이 꽤 있는 듯하다.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구속되어 있었던 참여연대는 물론 진보신당과 민주당에서도 환영하는 논평을 냈다. 이에 근거해서인지 속속 연행되었던 이들이 석방되고 있다. 신문기사에서는 박재영 판사에 대해서도 언급이 된다. 가히 몇 년 전 모 판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법의 힘이 어떠한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하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에 의해 정치적 쟁점이 되는 사안들이 결정되는 모양새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입법, 행정이 완전히 맛이 가서 그 나마 사법부에서 가뭄에 콩나물 나듯 나오는 전향적인 판결이나 결정에 환호하면서 사법부에 대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지금도 행정법원이나 민사법원, 그 위로 올라가 대법원 등에서는 자본 편향적인 판결이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고 하여 과연 헌재가 야간집회 금지 합헌 결정을 14년만에 뒤집을까. 판사 개인은 의미 있는 판결을 내릴 수 있지만, 헌재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하지만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러한 움직임이 무형의 압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헌재 재판관들이 고려를 하든, 하지 않든...
----------------------------- 야간집회 자유 이번엔 되찾나…집시법 위헌제청 이후 (경향, 박영흠기자, 2008년 10월 09일 18:13:21) 朴판사 “간접 민주제서 집회의 자유 중요”
100여건 재판 진행중… 선고 연기 가능성
법원이 9일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 심판을 제청함에 따라 헌법재판소가 1994년 내린 ‘야간집회 금지 합헌’ 결정을 14년 만에 뒤집을지 주목된다. 문제의 집시법 10조는 ‘누구든지 일출 전이나 일몰 후에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해서는 안되며, 다만 주최자가 질서 유지인을 두고 신고하면 관할 경찰서장이 조건을 붙여 허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40·사시 37회)는 “이 조항이 헌법이 금지한 ‘집회에 대한 사전허가제’가 명백하다”며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박 판사는 또 “권위주의 정권에서 범법행위로 치부됐던 집회의 자유에 원래 자리를 찾아주려 한 87년 (개정) 헌법의 입법 의도와도 배치된다”고 밝혔다. 박 판사는 “대의제 등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참여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집회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 사건이 법원이 위헌심판을 제청한 중요 사건에 해당되기 때문에 전원재판부에 넘겨 공개변론 등 심도 있는 심리를 거친 뒤 위헌 여부를 가릴 것으로 보인다. 민변의 송호창 변호사는 “헌재가 94년에는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14년 동안 이뤄진 민주주의의 진전과 법원의 취지를 살펴 위헌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촛불집회 재판은 헌재 결정이 나올 때까지 선고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헌 결정이 나오면 피고인들은 재심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어 헌재 결정에 앞서 선고를 내리는 것이 재판부로서는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촛불집회 관련 사건은 100여건으로 여러 재판부에 분산 배당돼 있다.
또 공안당국이 촛불집회 참가자 처벌 대상을 계속 넓혀나가는 데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은 “헌재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검찰과 경찰은 야간집회 금지 규정을 적용해 사법처리하는 것을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판사는 서울 출신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삼육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95년 사시에 합격해 부산지법·의정부지법·서울북부지법을 거쳐 올해부터 서울중앙지법 단독 판사로 근무해왔다. 법원 내에선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과는 거리가 먼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8월 광우병국민대책회 안진걸 조직팀장의 보석 신청을 심리하며 “풀어주면 촛불집회에 다시 나가겠느냐는 질문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겠다”고 말하자 보수 언론으로부터 “법복을 벗으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기본권 침해 대표 독소조항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제동 (한겨레, 박현철 기자, 2008-10-09 오후 10:34:11) ‘야간집회’ 위헌제청 의미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 허가만 인정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10조는 집회의 자유라는 중요한 헌법적 자유권을 부정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정부가 법치주의를 명분으로 집회·시위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법원이 분명한 어조로 이 조항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나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더욱 주목된다.
이 조항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야간 옥외집회는 폭력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논리를 편다. 헌재도 1994년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야간에는 주간보다 흥분하기 쉬워 집회가 난폭화할 우려가 있고, 불순세력의 개입이 용이해 단속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관할 경찰서장의 재량 아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야간 옥외집회도 허용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전허가제가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헌재는 현실적으로 정치적 성격의 야간집회는 허용되지 않고 있고, 이 조항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옭아매고 처벌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에는 눈을 감았다. 당시 반대의견을 낸 변정수 전 재판관은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확립되지 않는 우리 경찰제도 아래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성격의 야간집회를 경찰관서장이 허용하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9일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재영 판사는 “야간 옥회집회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국가안전보장, 공공복리를 위해 법률로서만 기본권을 제한하되 사전허가제는 인정될 수 없다’고 한 헌법 21조의 취지를 도외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이어 “독재, 권위주위적 정권에서 정치적 소수자들의 집회의 자유는 사실상 기본권이라기보다는 범법행위로 취급됐다”며, 정치적 이유로 헌법적 권리가 제한돼 왔다는 점을 언급했다. 검찰과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처벌한 주요 법적 근거도 집시법 10조였다.
박 판사는 간접 민주주의 제도에서 집회의 자유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결정문에서 “집회의 자유는 선거가 끝난 뒤 다음 선거까지는 선거를 통해 정치적·사회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국민들이 대의민주주의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이번 결정에 대해 “촛불집회와 관련해 검찰과 경찰의 무리한 법집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고 법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지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본다”며 “헌법재판소도 합헌 결정 뒤 14년이 지난 만큼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해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야간집회 금지’ 헌법에 정면 배치” (내일, 이경기 기자, 2008-10-10 14:08) 법원, 위헌심판 제청 … 대표적 기본권 침해조항 바뀌나
야간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집시법이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기본권 침해라는 법원의 해석이 나왔다. 촛불집회 관련 사건 재판에서 법원이 야간집회 금지 법조항에 대해 위헌 견해를 밝히고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해당 조항은 대표적 기본권 침해 조항으로 비판받아 왔지만 14년 전인 지난 94년 4월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린 이후 법제도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서 “야간 옥외 집회를 미리 금지하고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허용하는 집시법 10조와 23조1호는 집회의 자유에 대해 금지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허가하는 ‘사전 허가제’이고 헌법 21조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 법률 조항임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박 판사는 또 “집시법은 법원, 국회, 외교기관 등 집회 금지 장소에 관한 예외 규정을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지만 10조는 집회 금지 시간이 하루의 절반이나 돼 예외적 규제로 보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으며 국민이 낮에 생업에 종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사실상 무력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지가 원칙이고 예외적으로 경찰서장이 허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과잉제한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비판해온 헌법 학자들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이번 재판부의 결정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안진걸씨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재판부는 헌재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안씨에 대한 선고를 연기할 방침이다. 또한 야간 집회 금지 조항 위반 혐의로 기소된 다수 피고인들의 사건도 헌재의 심판이 끝날 때까지 재판이 중단된다.
한편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옥죄는 대표적 악법조항으로 거론되어왔고 최근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무분별한 수사와 기소의 근거가 되고 있는 해당 집시법 조항에 대해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을 환영한다”며 “헌재의 위헌심판 결정이 나올 때까지 경찰과 검찰은 야간집회 금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與·조중동 '촛불 진압', 부메랑 맞나? (프레시안, 윤태곤/기자, 2008-10-10 오후 3:19:49) 전향적 판결 속출…與의원 "판사 관리" 발언 물의
법사위, 행정안전위 국감 등에서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 진압이 도마에 올랐지만 한나라당과 정부 당국자들은 "문제 없는 법집행"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젊은 판사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해 사법권 침해 논란까지 낳고 있다.
하지만 법원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기소된 인사들에 대한 무죄, 보석 판결이 잇따르고, 중앙지법 판사가 현행 일몰 후 집회금지 법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제청을 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고법원장 역시 법원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정연주 전 KBS사장을 배임죄로 기소한 검찰에 대해 '사법권 독립 침해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경찰, 검찰과 밀월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정부와 법원 사이에 미묘한 갈등양상이 감지된다.
'촛불시위자'에 대한 보석 이어져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는 지난 9일 '미국산 쇠고기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 안진걸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여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집시법은 헌법이 금지한 집회에 대한 사전 허가제"라며 집시법 10조와 23조 1호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판을 제청하기로 결정했다.
박 판사는 "헌법21조는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고, 2항에서 이에 대한 허가ㆍ검열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며 "'집회의 금지'가 원칙이 되고 '집회의 자유'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관련법 조항은 결국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박 판사는 "대다수 국민은 주로 주간에 학업이나 생업에 종사한다는 현실적인 측면을 볼 때,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고 이는 헌법에 규정된 '과잉입법금지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인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은 국감장에서 박 판사를 언급하며 신영철 중앙지법원장에게 "평소 젊은 판사들을 자주 만나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사법부가 권력으로 부터 독립하는 것도 중요한데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요즘 가장 중요한 것은 여론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류에 편승하면 안된다"고 압박했다.
홍 의원은 거듭 "젊은 판사들이 나이와 경험이 짧아 문제되고 있는데 법원 차원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을 자주 만나고, 식사도 하면서 예전 판사들은 이랬다는 것도 얘기해주고 자연스럽게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 중앙지법에 판사 300여명이 있는데 어떻게 관리하느냐"며 박 판사를 '관리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사법권 침해로 해석될만한 자신의 발언이 물의를 빚자 홍 의원은 10일 해명자료를 통해 "본인이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법관들이 법정에서 함부로 사견을 표출하지 말 것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판결을 선고하기까지는 엄격히 중립적이고 공정한 자세를 가져야 함에도 일부 법관들이 법정에서 함부로 사견을 표출하는 것은 법관으로서의 온당한 태도가 아님을 지적한 것"이라고 했다.
선제 공격 나섰던 <조선일보>
박 판사가 공격을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 판사가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의 진술을 자세히 청취하고 보석 결정을 내렸던 지난 8월, <조선일보>는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면서 "이 판사는 자신이 그 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맹공을 가했다.
하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보석 허가 등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엄상필 판사는 10일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석운 진보연대 상임운영위원장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다. 다음 아고라에서 '권태로운 창'이라는 아이디로 누리꾼이 참여하는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나 모씨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보석을 결정했다.
박 판사가 위헌제청 신청을 한만큼 그 결과를 본 뒤 재판을 하겠다는 것. 엄 판사의 보석 석방은 촛불집회로 기소된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적용되며 촛불 재판이 줄줄이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우리는 박 판사를 통해 사법부의 살아있는 양심을 보았고,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릴 수 있는 희망의 불씨를 보았다"고 극찬한 뒤 박 판사를 걸고 넘어진 홍일표 의원을 향해 "뭘 잘 가르치란 말인가. 방송언론 재갈물리기, 네티즌 재갈물리기에 이어서 이제 판사들까지 재갈을 물리고 쥐락펴락 하겠다는 것인가"라고 맹공을 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해 온 '촛불에 대한 역공'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사법부에서 속속 반려되고 있어 여권과 보수언론 등이 취할 향후 행동이 주목된다. 홍일표 의원의 국감장 물의를 사법부에 대한 압력의 징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