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민주주의, 국가론

자유민주주의 좁은 틀 깨야 (경향, 최갑수 교수, 2008-12-12)

새벽길 2008. 12. 18. 09:51

 

[정동칼럼]자유민주주의 좁은 틀 깨야 (경향,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학, 2008-12-11-18:02:19)
 
오늘날 민주주의 하면 최선의 정치체제를 말하며, 마땅히 추구해야 할 정치적 덕목을 가리킨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선호는 세계 각국에서 정당들이 ‘민주적’이라는 수식어를 앞다투어 채용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민주주의는 근대성의 핵심적 내용이자 척도를 이루기에, 독재자들조차 반민주적이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으면서도 민주주의로 포장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한국적 민주주의’로 자처했던 유신독재에 저항해 많은 양심있는 인사들이 ‘민주화’를 외쳤던 역설 역시 민주적 가치의 보편주의를 웅변한다.
 
민주주의, 그 기만의 역사
하지만 근대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는 유럽에서조차 불과 한 세기 전만해도 민주주의가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 흔히 고대 민주주의와 근대 민주주의의 차이를 말할 때 전자는 직접민주주의이고 후자는 간접민주주의라고 하나, 이는 대의제를 정당화하기 위한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양자 사이에 더 본질적인 차이가 있으니,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공동체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구성원들 사이에 빈부의 차가 커지면 ‘민회’의 결정을 통해 그것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하곤 했다. 바꿔 말하면,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란 명실상부한 ‘인민의 지배’였고, 다수를 이루는 하층민들의 ‘계급적 지배’였다. 선거는 귀족적인 제도로 간주되었고, 공직자를 뽑는 일반적 방식은 추첨이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소크라테스 이래로 2000년이 넘게 서양의 사상가들 가운데 민주주의를 훌륭한 정치체제로 여긴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플라톤이 노골적인 반민주주의자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민주주의를 최악은 아니지만 결코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서양의 근대세계에서 민주주의를 옹호한 최초의 사상가가 루소이며,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 민주주의는 처음으로 추종자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까 근대 민주주의의 탄생은 2세기가 조금 넘는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보편적 가치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온전히 한 세기가 흘러야 했다. 프랑스혁명기에 민주주의는 인민의 직접 지배를 뜻했고, 누구도 대의제를 민주주의의 요소로 보지 않았다. 이런 체제를 새 지배층으로 등장한 부르주아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였다. 이들이 내세웠던 정치교리가 자유주의이며, 19세기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확연히 다른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상호 적대적이었다. 자유주의는 제한선거제에 입각한 유산자의 계급지배였던 반면에, 민주주의는 보통선거제에 입각한 민중의 계급지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 모든 성년 남자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면 ‘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벌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배층이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민중(주로 노동자들)의 점증하는 압력 하에서 보통선거제를 ‘인민의 지배’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보통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대의제가 그 비결이었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자유민주주의’가 성립했다. 대의제가 민주주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임에도 새 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여겨졌고, 이제 민주주의는 추구해야 할 적극적인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의 한 세기는 자유민주주의가 여타의 민주주의를 제압하면서 독점적 위치를 굳혀가는 과정이었다.
 
자본 통제할 정치 복원 절실
한 보수논객이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속에서 ‘역사의 종언’을 자신만만하게 외쳐댈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촉발시킨 세계경제위기를 목도하면서 우리는 자본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민주주의는 그런 정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좁은 틀을 깨고 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데, 민주주의의 기만의 역사를 성찰해내는 일은 그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