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민주주의, 국가론
이광일. 2008.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계보와 현재. 「문화/과학」2008년 여름호 (통권54호)
「문화/과학」2008년 여름호에 '특집 1. 자본주의 국가' 중의 하나로 실린 이광일 교수의 글이다. 노무현 정권 및 이명박 정부의 성격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하다.
이광일. 2008.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계보와 현재. 「문화/과학」2008년 여름호 (통권54호): 28-51.
1. 신자유주의는 누구에 의해 추동될까
2. 신자유주의국가의 성격과 기능
3.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형성, ‘짧은 희극’과 ‘장기 비극’의 반복
4. 극단으로 향하는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권과 공공재의 사유화
5. 이명박 정권의 딜레마와 그 ‘반문화주의’를 넘어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계보와 현재 (이광일)
1. 신자유주의는 누구에 의해 추동될까
이러한 질문에 주목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질문이 군부파시스트 세력과 자유주의정치 세력 가운데 누가 신자유주의에 더 친화적이며 그것을 추동하는 데 적극적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오랫동안 군부파시스트 지배에 대항하여 전개된 민주화운동이 진보, 혹은 좌파의 대중적 영향력 빈곤을 반영하여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헤게모니 아래 진행되어 왔다면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이유는 이러한 역사가 적지 않은 대중들로 하여금 군부파시스트 세력과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과거 대립관계에 의존하여 전자를 신자유주의에 친화적인 수구 세력으로, 자유주의정치 세력을 그것에 대립하는 민주 세력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경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은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집권 이후 과거 민주화운동의 주요 주체였던 세력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옹호, 확산시키며 자신들의 삶을 고통 속에 빠뜨릴 수 있는가 격분해 하면서도 그들을 신자유주의 진영, 정확히 말하면 파시스트 세력들, 혹은 그에 뿌리를 둔 보수정치 세력들과 동일한 범주에 넣는 것을 꺼려하고 있다. 아직 대중은 그들이 신자유주의의 핵심 세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을 자신의 정치적 대표로 간주해 왔던 다수의 대중이 그 오랜 헤게모니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하는 낯선 상황과 대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런 행태는 자유주의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대중들 가운데 다수를 정치적 무관심의 영역으로, 혹은 보수세력에 대한 지지로 다시 내몰고 있다.
대중은 그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기존 사회관계를 조망하는 인식틀, 그들 삶의 양식들을 스스로 생산하는 주체들이기도 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배 세력들의 그것들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산물이 바로 그들의 ‘경험과 상식’이다. 대중은 이를 통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재 삶을 해석하고 미래를 꿈꾼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비록 대중은 자유주의정치 세력과 보수정치 세력이 공유하는 성격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그들 양자가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모르지 않는다. 대중에게 그들 모두는 “그 놈이 그 놈”인것이다. 그런데도 왜 다수의 대중은 주로 그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대중이 공유하는 상식과 경험들 자체의 비일관성, 분열성, 단절성 등에 기인하는 바 크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움직이는 추동력이 현실에서의 실현가능성 여부에 있기 때문이다. 즉 대중은 어떤 합리적인 희망이나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있을 때만이 자신이 알고 있는 기존의 것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일을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다수의 대중이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왼편에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사회정치 세력이 없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현실 속에는 좋든 싫든 신자유주의 정치 세력들만이 이 세상을 구성할 수 있는 의미있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실의 사회관계를 넘어 또 다른 대안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이며 아직 다수대중의 상식과 경험 속에서 실현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스튜어트 홀, 『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임영호 옮김, 한나래, 2007, 355쪽.
이 지점에 이르면 신자유주의를 추동하는 것이 군부파시스트 세력 혹은 그 후예인 보수정치 세력인가, 아니면 자유주의정치 세력인가라는 물음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이들 두 세력은 해방 이후 권력투쟁의 과정에서 분기한, 동일한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 세력들이지만, 민주화이행과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는 이들 사이에 존재했던 작은 차이마저 주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각각의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예로 영국에서는 노동당에 의해 “대처없는 대처주의”가 강화되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민주화이행 이후 케팔주의(Cepalism), 종속이론을 옹호했던 많은 세력들, 사회주의자들조차도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이러한 궤적은 라틴아메리카 칠레의 경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피노체트에 반대했던 세력들이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김원호, 칠레의 패러독스: Pre-피노체트세력의 신자유주의 발전전략, 「라틴아메리카연구」 제1권 제1호, 2005 참조.
따라서 이제 필요한 것은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자유주의정치 세력이 신자유주의로 전화한 요인을 살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이 자신의 상식과 경험을 새로이 재구성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현실가능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어 지금 어떤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과거 ‘민중지향적 대중경제론’을 주장하며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자유주의좌파정치 세력―개혁자유주의 세력―에게 왜 그것을 버리고 신자유주의의 품에 안기었는가라고 추궁하는 것이 지금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러한 변화를 추동한 역사특수적인 궤적을 추적하며 현재적 의미를 곱씹어보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2. 신자유주의국가의 성격과 기능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는 질문이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국가는 무엇인가. 자유(다원)주의자들이 말하듯 시민사회 외부에 존재하는 중립자인가, 아니면 좌파가 말하는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행위원회인가. 이 오래된 질문과 다시 대면하는 순간, 그 속에서 한 가지 공통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가 이른바 ‘공공선’을 상징하든,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도구이든, 그것의 개입 없이 자본주의 사회는 한 순간도 재생산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근대 초 원시적 축적기에 보여준 그것의 수탈성과 억압성, 서구 복지사회에서 보여준 그것의 포섭적 능동성은 그 경험적, 역사적 예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개입 배제라는 담론은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계급투쟁, 계급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상이한 투쟁들의 지형과 연관된 국가의 성격, 위상과 기능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 왔는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신자유주의시대의 국가는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 브레튼우즈시대에 주권의 최고 형태로서의 국민국가는 자신의 권위가 배타적으로 미치는 영토를 근거로 하여 타국에 대해, 그리고 자국의 구성원에 대해 그 유일대표성을 주장하였다. 그 위에서 국가가 수행한 역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 자본의 이해를 보장, 증진시키기는 것이었다. 국가는 자본주의 산업화를 위하여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의 조직, 관리, 투입을 계획하였고 이 와중에 국가구성원이 누려야 한다고 간주되는 기본권리조차 제한하였다. 그것이 이른바 발전국가(development state), 개발독재였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의 자율성은 타국의 존재 및 그들 이해와의 연관 속에서 무한정 추구될 수 없었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관련 국가들 혹은 다자간의 ‘자유로운 협의와 조정’을 통해 그것을 풀어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이들 각각의 국가들이 자본주의국가체계에서 점하고 있는 비대칭적 위상과 영향력으로 인하여 그 협의 및 조정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결과는 현실 속에서 비대칭적인 모습을 지닐 수밖에 없었음은 물론이다.
노동자들이 국가의 발전, 경제성장을 위해 동원과 착취의 대상이 되었을 뿐,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실현하는 적극적인 사회구성원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발전국가’에서는 어땠을까. 이 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시기 국가와 지배계급이 비록 대중을 착취하고 억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유일한 현실의 삶’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 사회구성원의 인권을 탄압하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언젠가는 ‘정상적인 것’으로 돌아가야 할 ‘비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대중 또한 현실의 고통을 자발적으로 수용, 그것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미래에 대한 꿈 때문에 그 담론을 받아들였다. 이 속에서 노동자 등 사회구성원들은 자기절제와 규율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삶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자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경로임을 내면화시켰다.
그런데 70년대 중반 이후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와 더불어 선진 국가들에서 초국적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발상이 확산되고 그것이 구체화되면서 기존 국민국가는 그 성격과 기능의 변화를 요구받게 되었다. 이러한 요구는 운송, 정보 및 통신기술 등의 발전으로 인한 지구화의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가는 단지 수동적인 존재만은 아니었다. 상대적이지만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자유주의를 추동한 것이 거대한 초국적 자본이었다면, 결국 그것을 수용하여 그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탈식민지사회에서는 브레튼우즈시대의 발전국가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신자유주의를 전면화, 심화시키는 강력한 기제로 기능하였다.
자본의 운동이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섰다면, 그것을 제어하거나 새로운 대안으로 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 빈곤하거나 부재한 경우, 국민국가의 위상과 역할 또한 그 운동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재조정되는 것 또한 필연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고려할 때, 국민국가의 쇠락 여부를 묻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한 질문일 수 없다. 왜냐하면 국민국가는 이처럼 변화된 조건 속에서 진행되는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여전히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역설적이게도 ‘지구화’가 자본의 순수 경제적인 힘을 특정 국민국가의 영역을 훨씬 넘어 확장시켰다는 바로 그 사실은 그 지구적 자본이 행정적이고 억압적인 필수 기능들을 수행하는 많은 민족국가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Ellen M. Wood, "A Manifesto for Global Capital," in Gopal Balakrishnan, ed., Debating Empire, London: Verso, 2003), p. 68.
이제 국가의 역할과 기능은 단지 자국 자본의 이해를 보호하고 그것의 가치실현을 세계시장에서 잘 구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그와 같은 민족적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국민국가의 정당성은 그 영토성을 중요한 근거로 하여 재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자국의 자본이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 ‘민족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사이의 간격에 의해 촉발되는 긴장과 모순이 완화될 수 있고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대중적 헤게모니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자본을 더욱 더 많이 유치하여 자국의 영토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고정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브레튼우즈 시대에는 가치실현을 위한 국민자본들 사이에서의 경쟁이 핵심이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유동하는 자본을 유치하기 위한 국민국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이 핵심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역할과 기능의 효과적인 수행 여부가 국가능력을 검증하는 판별식이 되어버렸다. 초국적 자본을 대변하는 신용평가기관 무디스(Moody's Investors Service), 스탠더드앤드푸어스(Standard & Poor's), 그리고 피치(Fitch) 등의 입 모양에 국가 운명이 걸리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그것이 주도하는 시장은 국가를 포함한 모든 사회관계들을 자신들에게 머리 숙이도록 만들고 있다.
* 존 할러웨이, 지구적 자본과 민족국가,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 이원영 옮김, 갈무리, 1999, 189쪽 참조.
그렇다면 이 판별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해는 무엇인가. 한편으로 경쟁력 있는 더 많은 글로벌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이들 국가는 자국자본의 이해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했던 장애물들을 거두어 들여야만 한다. 이른바 규제완화 및 철폐이다. 물론 여기에는 환경 및 생태, 문화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규제들도 포함된다. 자본이 자유롭게 흐르는 데 장애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본의 기피국가가 되기 때문이다. 자본이 자유롭게 생산현장을 조직하고 노동조건을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른바 노동의 유연성 제고이다. 다른 한편 글로벌자본의 투자유치와 자본의 자유로운 운동, 그리고 그것의 가치실현에 방해가 되는 사회정치 세력들은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명분으로 배제되고 억압된다. 즉 글로벌 자본은 노동의 가격이 가장 저렴하고 유연하며 착취를 보장하는 행정력이 가장 강한 곳으로 이동한다.* 이 와중에 자본은 공장이전과 아웃소싱, 투자유보 등의 가능성을 무기로 한 위협효과(threat effect)를 통해 더욱 많은 양보와 이익을 챙긴다.** 이렇게 하여 글로벌 자본과 융합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와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를 두 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시대 국가일반의 대강이 구축된다.***
* 안토니오 네그리ㆍ마이클 하트, 『제국』,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2, 436-437쪽 참조.
** 이강국, 『다보스, 포르투알레그레 그리고 서울』, 후마니타스, 2005, 163-182쪽 참조.
***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에 관해서는 김세균, 신자유주의경찰국가와 한국민주주의, 「마르크스주의연구」 제4권 제2호, 2007 참조.
그런데 이 지점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지니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사회관계의 구성 원리이자 삶의 유일한 현실태이며 자신만이 규범적 판단의 유일한 척도임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이 국가가 서구에서는 경향적으로 권위주의국가의 모습을 보이고 탈식민지사회에서는 경찰국가로서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는 비밀이 간직되어 있다.
그러면 양자 사이의 이러한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신자유주의를 벗어난 모든 영역의 상이한 사회관계와 그에 근거한 삶 자체가 부정, 봉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의 외부에는 그 어떤 사회관계들도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며 규범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이 된다. 바로 이 지점에 신자유주의시대 정치, 국가의 억압성이 각인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시대가 대중에게 가하는 고통과 폭력성의 근원은 지금 이 순간에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현실에 더하여 더 나은 그 어떤 사회관계도, 그에 근거한 어떠한 미래의 삶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그 교의(dogma)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독단에 저항하여 그 관계를 해소, 극복하지 않는 한 대중에게는 그 어떤 선택지도 주어질 수 없다. 다만 자본과 시장이 요구하는 경쟁력을 길러 신자유주의에 부응하는 삶을 영위할 것인지, 아니면 그로부터 배제, 추방당할 것인지 양자택일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다양한 삶의 가치들, 문화적 양식들, 그리고 그 속에서 형성된 인생의 연륜은 단지 자본과 시장의 논리 앞에 무릎 꿇을 때만이, 아니 그것에 최소한의 이익을 남겨줄 때만이 존재 가능한 틈새를 허용받을 수 있다.
3.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형성, ‘짧은 희극’과 ‘장기 비극’의 반복
어떻게 97년 이후 10년이 채 안되어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등장하고 ‘신자유주의의 전도사’가 될 정도로 숙성할 수 있었는가. 이른바 ‘개발독재의 발전국가’로 상징될 정도로 ‘국가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되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처럼 신속하게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조직원리가 되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우선 이러한 의문과 관련하여 재차 확인해두어야 할 것은 국가개입과 신자유주의는 대당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가개입’은 항상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그것은 사회와 경제에 내재되어 작동하기에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국가개입의 내용과 형식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급속하게 진전될 수 있었던 역사구조적 토대가 이른바 브레튼우즈시대의 발전국가에 의해 마련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요인으로는 첫째, 브레튼우즈시대에 한국자본주의는 세계자본주의에 긴밀히 포섭되어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에 한국은 해외시장에서의 가치실현을 핵심으로 하는 대외개방형 경제발전프로젝트에 운명을 걸고 있었다. 나아가 냉전을 수행하는 전방위국가로서 정치 및 군사전략적으로 세계맹주인 미국에 긴밀하게 포섭되어 있었다. 둘째, 한국전쟁 이후 보수독점의 정치가 계속 재생산되어 왔다는 점이다. 나아가 반독재민주화운동에서 자유주의정치 세력, 특히 민중지향성을 내세운 자유주의좌파가 ‘민주주의와 진보’를 대표하는 대안 세력으로 대중적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지형은 신자유주의 실현=민주주의라는 발상이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셋째, 이러한 상황에 더하여 사회주의블록의 붕괴로 인해 급진적인 진보세력들이 대중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요인들과 관련하여 ‘제도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제도적인 다른 선택대안이 존재하지만, 제도의 완고함 등으로 인해 비용의 측면에서 기존의 선택을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현상을 적절히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새로운 대안을 추진할 수 있는 사회정치 세력들의 존재와 그들의 대중적 영향력 빈곤 내지 부재의 상황을 간과하는, 따라서 정치를 단지 시장으로 간주하는 한계를 보인다. 즉 제도의 완고함으로 상징되는 비용의 측면 때문만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의미있는 정치세력, 사회관계들이 존재하지 않기에 그 경로의존성으로부터의 탈구 자체가 힘든 것이다.
그렇다면 70년대 이후 이른바 개발독재의 발전국가를 비판하면서 대안 세력으로까지 인식되었던 자유주의정치 세력은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등장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이 질문은 이른바 발전국가를 비판하던 자유주의정치 세력들이 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오히려 그것을 추동하는 핵심주체로 전화하였는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의 실마리는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브레튼우즈시대의 발전국가와 긴장, 대립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재편된 형태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정치 세력에게 국가와 사회는 외재적으로 분리하여 존재한다. 그렇기에 중립적인 국가(정치)는 사회(경제)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그것을 부정하는 개발독재, 파시스트지배는 해소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외재적, 중립적인 것으로 존재해야 할 국가가 사회에 개입하여 그 안의 생기있는 자율적 숨구멍을 모두 막아 훼손시키는 것은 그러한 형태 분리를 매개로 하여 재생산되는 자본주의사회의 장기발전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이것은 오히려 지배블록의 헤게모니 약화를 조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그러한 분리를 담보하는 정치적 민주화를 핵심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미 사회를 삼켜버린, 혹은 삼켜버리고자 개입한 국가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제반 영역의 사회관계들 또한 자율성을 회복하게 되고 따라서 억압과 불평등은 제거될 것이다. 사회(경제)가 비대칭적 관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에 국가(정치)가 그것들에 내재되어 있다는 발상을 수용할 수 없는 이들은 국가가 불편부당한 본래의 모습을 찾아 정상화된다면, 애초 합리적이었으나 국가의 개입으로 왜곡된 자본의 운동과 시장 또한 정상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 결과 그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구성원 모두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민주화운동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한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꿈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그 꿈이 실현되었다. 먼저 정치적 투쟁의 대상이었던 공개적 독재체제가 87년 6월항쟁을 계기로 해소되었다.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오랜 숙원이었던 대통령직선제에 의해 정부가 구성되고 의회 또한 총선거에 의해 구성됨으로써 정치는 법과 제도 안에서 예측가능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민주화가 되었으므로 어둠의 경로에 의해 고착된 정경유착은 해소될 것이고 자유주의적 인권에 대한 탄압이라는 맥락에서 인식되었던 자본과 노동의 문제 또한 더 이상 ‘정치문제’일 수 없다. 이제 그것은 ‘자율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관계’일 뿐이다. 그 다음으로 사회에 대한 통제와 억압, 자본운동의 조절과 시장개입을 정당화했던 알리바이로서의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 반공을 모토로 한 파시스트 개발독재의 불가피성과 효율성이 타당했음을 사후적으로 승인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 공간적으로 자본과 시장의 자유로운 운동을 더욱 심화,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 변화는 자유주의정치 세력과 보수정치 세력의 화해를 촉진시키는 한편 그들을 신자유주의동맹으로 수렴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특히 그 비판의 대상이 파시스트국가를 대상으로 하였을 뿐, 기본적으로 자본과 시장에 대한 것은 아니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박정희로 상징되는 개발독재는 역사적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 이들 양자의 관계는 ‘적대적 갈등관계’에서 ‘경쟁적 갈등관계’로 이동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정치 세력이 과거 민주화운동의 헤게모니 세력이었다는 점은 그들이 신자유주의의 핵심 추진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대중의 비판과 저항을 분산, 약화시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하였다. 이 점은 왜 자유주의정치 세력이, 특히 자유주의좌파가 신자유주의를 확대, 심화시키는 데 더 적절한 주체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또 다른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정치 세력에게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경쟁하는 엘리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고 그것의 핵심목적은 자본의 사적소유와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자유주의는 시장합리성을 내세우며 ‘국가개입배제’를 철저하게 옹호할 뿐만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자본과 시장의 지배를 무한정 확장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말 그대로 ‘새로운 자유의 이상’이었다. 물론 그들의 꿈은 대중에겐 악몽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 실현’이라는 그 핵심적 원리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의 그것은 항상 타자의 설정과 그들의 배제, 억압을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이다.
대중은 민주주의는 항상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지금 그들의 신자유주의정책에 고통 받는 대중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실망하면서 다시 브레튼우즈시대의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보수정치 세력의 주위로 몰리고 있다. 대중의 상식과 경험은 자유주의정치세력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그들에게 밥을 먹여줄 수 없다는 것을 간파하였다는 점에서 날카롭지만,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관계들의 존재가능성에 대한 숙고로 이어지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그것은 여전히 무디다. 그리하여 다수의 대중은 ‘민주화운동의 적자’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주체’라는 과거 코드와 이미지에 지배당하며 지금 신자유주의동맹의 견고한 두 축이 된 자유주의정치 세력과 보수정치세력 사이를 힘들게 왕복운동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1987년 정치적 개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권자인 대중’의 정치적 선택이 희극으로 시작하여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4. 극단으로 향하는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권과 공공재의 사유화
우선 3당합당을 통해 등장한 자유주의우파 김영삼 정권은 정적 박정희로 상징되는 ‘발전국가’를 ‘지양’하고자 하였다. 70년대 이래 재야와 제도정치를 넘나들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김대중의 집권은 자유주의좌파의 오랜 프로젝트, 즉 ‘민중지향적 대중경제론’이 구체화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인식되었다. 글로벌자본의 공세로 IMF관리를 받게 된 대중은 민주주의의 상징인 김대중의 ‘민중적 대중경제론’이 위기의 한국을 구해줄 것으로 기대하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중의 이런 기대와 달리 71년 대선에서의 패배 이후 이미 이 기획은 그 실현가능성의 측면에서 현저히 제약받고 있었다. 무엇보다 70년대 중반 이후 브레튼우즈체제는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97년 ‘외환위기’와 IMF관리의 도래는 글로벌자본의 냉혹한 힘 앞에 더 이상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이 와중에 자유주의좌파 정치 세력의 상징인 김대중 또한 IMF의 경제안정화, 구조조정프로그램을 승인하였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을 말했을 때, 그것은 ‘과거의 기억’에 근거한 대중의 주관적 기대를 반영한 정치수사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김대중 정권은 이른바 ‘외환위기’의 근인이 발전국가의 산물인 정경유착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국내에 만연된 ‘어둠의 경로’를 제거하고 시장투명성(합리성)을 제고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개입배제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렇게 하여 97년 외환위기는 노동자총파업으로 유보된 김영삼 정권기의 신자유주의 세계화프로젝트를 다시 전면에 부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부문을 넘어 금융, 기업, 공공 등을 포함하는 4대부문에 걸친 더욱 포괄적인 구조조정으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IMF관리 상황’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알리바이로 기능하였다.
이처럼 김대중 정권에게 민주주의는 공개적 독재체제 아래에서 심화된 비대칭적 사회관계들(권력관계들), 특히 노자 간의 비대칭적 관계를 해소시켜 자본과 시장의 힘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힘을 제반 사회영역으로 확대, 심화시키는 것을 의미하였다. 따라서 그의 민주주의는 노동운동에 대한 공세를 다른 한 면으로 하였다. 노동운동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장애물로 인식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의 활동이 성과를 낼 수 없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렇게 하여 상대적 진보성을 강조하며 오랫동안 진보진영에 헤게모니를 행사해왔던 자유주의좌파는 ‘민중주의적 대중경제론’을 폐기하고 신자유주의자로서 자신의 정치적 삶을 마감하였다.
김대중 정권이 IMF관리를 계기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국내의 중요 부문에 적용하고자 하였다면, 그것을 계승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지방화와 연결시켜 촉진시키고자 하였다. 노무현 정권은 이른바 ‘통합적 균형’과 ‘역동적 균형’을 통해 지역간 경쟁, 선택과 집중에 의한 지역발전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지역혁신체제(regional innovation system: RIS)의 구축과 지역전략산업육성을 중요 과제로 설정하였다. 그리고 지역혁신체제의 중추는 ‘역동적 균형’을 가능케 할 알파(α)의 창출자인 지역전략산업클러스터에 두어졌다. 결국 첨단지식 및 기술자본의 경쟁력 증진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획은 신자유주의 방식을 통해 지역불균형을 해소시키겠다는 것으로 모순적인 것이었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극단적 불균등발전을 핵심적 교의로 삼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상황에도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과 지방의 경쟁력에 필수적인 각 지역의 혁신역량을 살펴보더라도 서울과 수도권은 여타 지역을 압도하고 있었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의 지역균형발전계획은 이러한 기존의 불균등한 현실을 해소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지역혁신체계를 통해 지역의 성격과 특징을 감안한 다양한 발전전략과 삶을 구현하겠다는 애초의 목표와 달리 지역을 오히려 획일화된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외견상 각 지역은 첨단산업도시, 관광도시, 문화도시 건설 등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맞물린 지방정부의 기업주의화 속에서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 그나마 존재하였던 지역다양성은 점차 훼손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은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성격과 기능을 반영하여 지역차원의 장소마케팅(place marketing)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자본, 혹은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것이 되도록 경쟁자인 타 지역보다 좋은 사회문화적 환경을 제공하고, 외부자본의 유치를 위해 물리적 도시재건을 위한 도시개발전략을 구사하며, 지역의 문화 및 유산을 이용한 이벤트, 페스티벌 개최 등 지역의 이미지 개선을 도모하는 종합적 지역판촉전략이 대세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역은 자본과 시장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발전동맹의 하위주체로 더 내밀하게 포섭, 재편되었다.
* 기업주의화의 특징은 첫째, 외부기금, 새로운 직접투자 또는 새로운 고용원을 유치하기 위하여 전통적 선전주의를 지방정부의 권력이용과 통합시키는 공사파트너십의 사고를 지니고, 둘째, 공사파트너십의 활동은 합리적으로 계획되고 조정된 개발과는 달리 집행과 설계에서 투기적이며, 셋째, 특정한 통치권역 안의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경제계획(주택, 교육 등)과 관련된 영역의 정치경제보다는 새로운 도시센터, 산업단지 조성, 이와 관련된 조건의 재생산에 관심을 두는 장소의 정치경제에 보다 집중한다는 점이다. 최병두, 세계화와 지방정부의 기업주의화, 제3회 맑스코뮤날레학술문화제, 서강대사회과학연구소, 『세계화시대 한국민주주의: 검토와 모색』, 2007, 16쪽.
노무현 정권은 이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시스템 전체를 세계표준으로 대체시키고자 하였다. 그것은 미국과의 FTA체결로 표현되었다. 미국이 신자유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모델이라고 할 때, 이러한 행태는 한국 사회의 사회관계 전반을, 그것의 응집인 법, 제도를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기준에 일괄적으로 맞추어 재편하고자 한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이 IMF관리를 계기로 노동에 대한 공세와 더불어 대내적 구조조정의 정치를 실시하여 자본 우위의 관계를 확보하였다면, 노무현 정권은 한미FTA라는 자유무역협정의 정치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요구에 부응하는 탈영토화를 더 강하게 추동하고자 하였다.
과거 자유주의 정권들과 이명박 정권의 차이를 논의의 중심에 놓고 그것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이 시대에 그들이 공유하는 성격과 기능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념의 대상이다. 양자의 차이는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라는 범주 안에서의 차이이고 이것은 지금 쟁점이 되고 있는 ‘쇠고기수입 문제’와 한미FTA협정비준을 둘러싼 갈등과 긴장이 다른 차원의 것임을 의미한다. 쇠고기수입 문제에서 갈등을 노출하고 있는 이들 양자는 한미FTA 비준 자체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권의 성격,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정권이 추진하였던 신자유주의 기조를 더욱 급진적인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체결한 한미FTA의 조속한 비준을 넘어 한반도대운하 건설, 공기업의 민영화를 포함한 공공재의 사유화 시도로 나타나고 있다. 공공재는 신자유주의의 최종적 공격의 대상이며 그것의 사유화는 신자유주의 최종완결을 의미한다. 그것은 자본과 시장의 밖에 어떤 새로운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 교의를 최종적으로 담보하는 것이다.
먼저 한반도 대운하는 민간자본 주도의 사업방식이 대변해주듯 전국토를 사적 자본의 이익 아래 복속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유일한 조직원리와 가치판단의 준거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 도그마가 가장 잘 나타나 있다. 따라서 각 지역의 특이한 문화, 환경 및 생태, 이와 어울린 창의적 지역발전의 디자인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이로 인해 자본은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할 것이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 토지와 토지의 이용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다. 다른 한편 이명박 정권은 공기업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산업선진화, 경쟁력강화 차원에서 모든 공기업을 대상으로 하여 적어도 3년 안에 민영화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권의 계획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권이 추진했던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심화, 확대시킨 전면적인 것이다. 한반도대운하 건설과 공기업의 사유화는 지금 비록 초입단계에 있지만 과잉축적된 자본의 새로운 이윤창출의 대상을 마련하기 위한 ‘공유재의 종획’(enclosure of commons)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 ‘공유재의 종획’에 관해서는 데이비드 하비, 『신제국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 2005, 152-156쪽 참조.
따라서 토지, 물(수도), 전기, 철도, 의료(건강보험) 등을 포함하는 공공재의 사유화 시도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 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구성원들의 기본적인 삶, 따라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적 책임으로부터 국가가 자유스러워지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으로 국가의 계급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공재의 사유화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를, 그것을 매개로 한 자연과의 관계를 사적인 것으로 전면 재편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더불어 사는 사회’,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비자본주의적 ‘코뮌’에 관한 발상과 실천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공세적인 정치기획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명박 정권이 과거 자유주의 집권정치 세력들이 단속적으로 노출시켰던 신자유주의 경찰국가로서의 특징들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유가 각인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사회에서 공공재의 존재 양식과 범위는 국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회정치적 대립과 적대의 수준을 반영하여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구-일국 수준에서 진보,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정치 세력이 수세의 상황에 처해 있는 지금, 이명박 정권이 ‘공안정국’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극단으로 나아가는 반민주적인 행태를 내보이는 것은 결코 의외의 일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들이 ‘민주화의 대강이 실현되었다’는 자유주의정치 세력의 언술을 넘어 ‘민주주의가 과잉상태에 있다’고 수시로 역설하는 것에 함축되어 있는 정치적 의미를 재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5. 이명박 정권의 딜레마와 그 ‘반문화주의’를 넘어
그렇기에 지금 너무나 상식적인 물음을 다시 한번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 국가는 진정 다원주의와 중립성의 원리 위에 서있는가. 권력은 다원적인 조직들 혹은 정치 세력들에 분산되어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으로, 따라서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타자에 부당하게 강제될 수 없는 ‘민주적인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과거 노무현 정권은 권력이 자본과 그것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넘어갔음을 공언한 바 있고 지금 이명박 정권은 그것을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의 다양한 삶의 가치와 양식은 그 어느 때보다 배제, 억압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다양성 빈곤의 다원주의’는 그 이데올로기로서의 성격만을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민주주의’를 말하면 말할수록 기존의 비대칭적, 억압적, 배제적 사회관계를 문제시하고 해소하려는 ‘민주주의’는 점차 약화된다. 민주주의는 복수이다. 따라서 그 긴장과 모순은 확대, 심화되는데,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 경쟁국가 일반에 내장된 자기 파괴의 딜레마이자 특징이다.
바로 이로부터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반문화적 성격’ 또한 추출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문화들을 오직 이윤과 시장의 원리에 근거하여 그 위상을 설정하고 존재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이 시대에 문화들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있는 시선도 받을 수 없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유일 척도에 부합하는 것만이 ‘문화’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 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가치를 실현하는 상품으로서의 ‘문화산업’만이 존재의미가 있다. 이러한 발상과 행태는 그들이 ‘문화적 소양’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문화가 정치와 경제의 외부에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면, 또한 단순히 토대를 반영하는 상부구조가 아니라면 이러한 문화관은 신자유주의 경쟁국가가 자본과 시장에 근거해 추구하는 극단의 계급정치, 대중배제적 엘리트민주주의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단지 대중은 시장에 넘치는 문화산업의 소비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대중의 ‘상식과 경험’은 이러한 욕망의 자극을, 저 뿌리깊은 비아냥거림을 언제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진정 그것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주체적 활동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것이라면, 지금 대중은 그 주체화의 과정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이와 맞물려 대중이 기존의 상식과 경험에 근거한 생각들, 행태들을 뿌리째 뽑는 것을 고려할 정도의 실현가능한 구체적 대안은 재구성되고 있는가, 또한 제시되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반문화적 신자유주의 경쟁국가를 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그 ‘기나긴 혁명’(long revolution)의 문화과정을, 아니 정치경제혁명의 과정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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