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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리언, 집단지성, 인터넷 공론장

새벽길 2008. 12. 22. 22:02

올 한해 언론들은 한 해를 결산하면서 촛불을 빼놓을 수 없었고, 그래서 아고라와 집단지성, 인터넷 공론장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분명히 이명박 정권이 온라인 공간에 대해 무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촛불이라는 현상 또한 붉은 악마에서부터 이어져온 흐름과 MB정권 초기라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이 무지막지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광우병 쇠고기 등 이슈 등이 모여서 발생한 특수한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다시 그러한 현상이 재현되기는 어렵다는 것.
 
집단지성에 대해서도 여전히 동의하지 않으며, 인터넷 공론장에 대해서도 전자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처럼 점차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 언론에서 언급되는 것과 논문 등을 통해 분석된 것 사이에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2009년에도 제2의 촛불이 가능하다고 파악하는 이들이 많다. 비슷한 현상이 가능하겠지만, 이명박 정권을 갈아치우기는 어렵지 않을까. 경제위기, 공황의 상황이 혁명으로 연결된 경우보다는 파시즘으로 귀결된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오히려 현재의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고, 사회 각 부문으로 퍼져나가는 보수화의 물결에 맞선 진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인터넷 공론장에 대해서는 좀더 분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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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메카 ‘다음 아고라’…떠오르는 ‘인터넷 공론장’ 주목 (경향, 강병한·유정인기자, 2008년 05월 26일 18:25:48)
 
반정부 투쟁으로 번지고 있는 ‘쇠고기 민란’의 근거지가 된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고라는 보수언론의 여론공세에 맞선 시민들의 대안적 공론의 장으로 떠올랐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소수의 지도부가 명동성당에 모였다면 수많은 네티즌들은 아고라에 모여 광우병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장관 고시를 앞둔 26일 아고라 ‘토론게시판’에는 현 정부를 규탄하고 촛불시위 동참을 호소하는 ‘격문’들이 초 단위로 올라온다. 네티즌들은 이 글에 수백개의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거대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있다. 격화되고 있는 시위의 ‘배후’가 아고라라는 이야기도 나올 정도다. 경찰은 ‘특정 운동권’ 세력을 찾고 있지만 지난주부터 아고라에는 ‘이제는 거리투쟁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
 
아고라 ‘청원게시판’은 현대판 신문고다. ‘4대강 정비계획은 대운하’라고 폭로한 ‘김이태 박사를 지킵시다’ 서명운동에는 3일 만에 4만5000명이 참여했다. 과천 학부모들의 ‘광우병 현수막 걸기운동’을 국민적 운동으로 발전시킨 곳도 아고라였다. 수업 중인 고등학생을 조사해 물의를 빚은 경찰에게 사과를 받아낸 것도 모두 아고라 네티즌의 힘이다. 아이디 ‘안단테’로 유명한 한 고등학생이 발의한 ‘이명박 탄핵 서명’ 숫자는 26일 132만명을 넘어섰다.
 
아고라가 광우병 사태의 여론형성 기지가 된 것은 주류매체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여론을 독점하는 보수언론이 자신들의 의견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시민들이 독자적인 ‘언론’을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 매체가 갖지 못한 인터넷의 빠른 속도가 강점이다.
 
2008년 아고라는 2002년 미선·효순양 사건이나 2004년 탄핵사태 때 형성된 사이버 공론의 장과는 조금 다른 양상이다. 과거에는 소위 ‘논객’들이 특정 사이트를 중심으로 글을 올리면서 여론이 만들어졌지만 완전 개방된 공간인 아고라에는 10대 청소년, 30대 아줌마, 해외교포 등 다양한 계층이 자유롭게 참여하고 있다.
 
‘88만원 세대’ 저자 우석훈 박사는 “아고라의 네티즌들은 완벽한 분산형으로 누구도 통제하거나 지휘할 수 없다”면서 “지극히 시민적인 상식, 헌법적 권리로 느슨하게 묶인 연대의 공간으로 마치 헌법이 걸어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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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디지털 저널리즘’의 힘… ‘언론 사각’ 틈새 급속 확산 (경향, 오동근기자, 2008년 05월 27일 02:03:31)
디카·캠코더·노트북 들고 시위 현장 누비며 생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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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信’을 넘어 ‘疏通’의 시대로> 두 얼굴 e공간… 괴담·테러의 통로되기도 (문화, 한동철기자, 2008-06-09)
<6> 인터넷 소통
 
인터넷은 왜곡과 괴담의 공장인가, 소통과 민주주의의 광장인가.
전세계를 그물망처럼 연결하는 ‘정보기술의 총아’가 처음 대중들 앞에 출현했을 때부터 시작된 이 논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지난달 초부터 한 달 넘게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궈 온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수많은 논쟁과 개선 시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그 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여전히 우리들에게 두 얼굴을 한 야누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괴담과 욕설의 배설구 = 최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대논쟁은 인터넷이 익명성에 기반한 괴담과 왜곡, 사이버테러에 얼마나 취약한 공간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
 
지난 4월 한국과 미국 정부 간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협상이 타결된 직후부터 인터넷 공간은 각종 괴담으로 몸살을 앓았다. ‘울산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가 사망했다’는 인터넷 게시글이 신호탄이었다. 지난해 9월 울산에서 인간 광우병과는 무관한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CJD) 환자가 숨졌다는 언론 보도 내용이 인터넷 상에서 떠돌다 각색을 거듭, 결국 ‘인간 광우병 환자 사망’이라는 괴담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교육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5·17 휴교’ 메시지 역시 한 재수생이 장난 삼아 친구에게 보낸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발단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백골단 재등장’이라는 제목의 동영상도 파문을 일으켰다. 한 재미교포가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 동영상은 이번 시위가 아닌 지난해 시위진압 당시의 동영상인 것으로 판명됐다. 경찰의 과잉 시위진압 논란 와중에 터져나온 ‘여대생 사망설’, ‘여성 강간설’ 등도 모두 근거 없는 괴담으로 확인됐다.
 
괴담만이 아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압도하는 욕설, 비아냥에 더해 사생활 침해 등 사이버테러의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시위진압에 참여했던 일부 전·의경의 사진과 개인 정보가 확인 과정도 없이 인터넷에 까발려지고, 성난 일부 네티즌들은 ‘숨어서 지내라’는 식의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05년 당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논문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황우석 지지 네티즌 중 일부는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펼치는 평론가나 네티즌들을 향해 ‘진보 먹물이라는 이×을 저는 개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들은 집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는 식의 협박성 욕설을 쏟아냈다. 심지어 이 사건이 줄기세포 기술을 빼돌리기 위한 미국의 계략이라는 음모론까지 등장했었다. 지난해 심형래 감독의 SF영화 ‘디워’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을 했던 영화평론가들은 자칭 ‘애국 네티즌’들의 융단폭격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여전히 진화 중인 소통의 공간 = 여러 부정적 면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은 여전히 소통의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인터넷이 무너져버린 오프라인 공동체를 대체하고 대의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그릇이 될 것이란 기대도 여전하다. 최근 10대 중·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작은 촛불집회가 광범위한 계층이 참여하는 거대한 촛불문화제를 낳고, 마침내 정부의 정책변화까지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씨는 이에 대해 “인터넷이 없었다면 국민들은 미국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에 대해 정부 말만 믿고 있었을 것”이라며 “인터넷은 여전히 소통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괴담’처럼 일부 잘못된 정보가 유통될 때도 있지만, 네티즌들의 소통이 계속되면서 이런 왜곡된 정보들은 스스로 걸러지고 있다”며 인터넷 소통이 지닌 ‘자정 능력’을 강조했다.
 
인터넷을 통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토론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인터넷이 소통의 공간으로 진화 중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과장되고 조작되기까지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포항공대 생물학정보연구센터(BRIC)의 인터넷 토론방에서였다. 전문 지식으로 무장한 학자들과 연구원, 네티즌들이 한데 어우러져 최선의 소통을 이뤄낸 것이다. BRIC 운영진은 “감정적인 악플이나 토론과 상관없는 글을 올리는 네티즌에 대해 경고조치와 게시글 삭제, 탈퇴 조치 등을 통해 게시판의 룰을 엄격하게 지켜온 게 BRIC의 소통 비결”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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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세계도 세대간 단절 (문화, 한동철기자, 2008-06-09)
10대 이용 가장 많고 40대 이상은 소외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세대 간의 이해와 공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주요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의 세대별 이용자수를 분석해 보면,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인터넷 이용 실태 면에서 세대차가 크게 나타날 뿐 아니라 각 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도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9일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한국의 인터넷 이용자를 세대별로 나눠보면 10대 이하가 27.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30대가 22.7%, 20대가 20.5%, 40대가 18.5%로 뒤를 잇는다. 그러나 50대의 비중은 7.5%, 60대 이상의 비중은 3.3%에 불과하다. 인터넷 이용 면에서 40대 이하와 50대 이상 사이에 큰 폭의 강이 놓여 있는 셈이다.
 
주요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의 이용자 비율에서도 세대별 격차는 뚜렷하다. 웹사이트 분석평가 기관인 ‘랭키닷컴’에 따르면 대표적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지난 4월 이용자 중 50.9%는 20대 이하였다. 30대가 32.6%를 차지하고, 40대 이상은 16.5%에 불과했다. ‘광우병 괴담’이 유포됐던 다음 카페 ‘진실 혹은 엽기’는 20대 이하가 72.6%를 차지한 반면, 40대 이상은 14.0%에 그쳤다. ‘웃긴대학’ 역시 20대 이하 사용자가 65.3%, 40대 이상은 14.3%로 나타났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네이버 카페 역시 40대 이상 이용자는 각각 전체의 14.0%, 19.0%에 불과했다. 잦은 방문이 필요하거나 사진·동영상 공유 등의 기능을 갖춘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40대 이상 세대가 뚜렷한 소외층으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면에서도 세대차는 나타난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쩐다(황당하다/예쁘다, 좋다)’, ‘열폭(열등감 폭발)’, ‘킹왕짱(가장 좋다)’ 등 10~20대에 익숙한 인터넷 용어들은 40대 이상 세대들에겐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우주어’와 다를 게 없다. 심지어 ‘디시인사이드’에선 이같은 기성세대들을 위해 ‘폐인사전’이라는 인터넷 용어 사전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젊은 세대만의 커뮤니티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인터넷 공간을 세대 통합과 소통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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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견 경청·존중하는 문화를” (문화, 김병채기자, 2008-06-09)
전문가들 “부정확한 정보 확산에 소통 막혀”
 
두 얼굴을 가진 인터넷을 ‘착한 인터넷’으로 가꿔나가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인터넷 소통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네티즌들이 참여·공유·개방이라는 ‘웹2.0 정신’에 보다 철저해질 것을 주문한다. 정확한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구분하려는 노력,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구축될 때에야 비로소 인터넷이 명실상부한 ‘소통과 민주주의의 광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택수(사회학) 고려대 교수는 “지금 인터넷 공간에선 네티즌들이 부정확한 정보를 너무도 쉽게 옮기거나 주장하고, 이로 인해 소통이 막혀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우선 네티즌들이 정확한 정보를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네티즌 스스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인터넷을 통한 ‘자정 기능’은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다.
 
신율(정치학) 명지대 교수도 “인터넷에 떠다니는 모든 정보가 사실이나 지식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특히 “‘황우석 사태’나 ’광우병 괴담 사태’에서 보듯, 전문가들도 인터넷 공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중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전문가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인터넷이 오프라인 공간의 투영체인 만큼, 사회 전체적인 토론문화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은미(언론홍보영상학) 연세대 교수는 “우리 사회에 듣는 문화가 없는 게 아쉽다”며 “이러한 모습이 인터넷 공간에도 그대로 투영돼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 주장을 하는 만큼 잘 들을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동규(신문방송학) 중앙대 교수는 “기존의 소통 매체들에는 없는 인터넷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다”면서 “참여·공유·개방이라는 ‘웹2.0 정신’이 잘 구현된다면, 인터넷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소통 공간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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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 (2008). 사이버 공론장의 영향력 확대와 역기능. <신문과 방송>, 통권 452호, 38-41.
이상길 (2008). 시위-놀이-저널리즘의 혼종문화 탄생. <신문과 방송>, 통권 452호, 32-37.
임종수 (2008). 1인 미디어의 등장과 여론 형성. <신문과 방송>, 통권 452호, 44-47.
황용석 (2008). 인터넷공간, 표현의 자유와 규제. <신문과 방송>, 통권 452호, 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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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 온라인 공론장 뜨는 한국 (서울, 류지영기자, 2008-12-01  15면)
‘촛불시위에서 미네르바까지’ … 모든 세대 자발적 참여
  
“20세기와 21세기 사회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이라면 세계가 국가주의 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바뀌었다는 데 있겠죠.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졌을 뿐 아니라,서구에서도 복지국가의 위기가 대두되면서 국가가 주도하던 사회질서가 약화됐잖아요. 한국도 권위주의 정권이 쇠퇴하면서 시민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는 바로 공론장의 활성화 덕분이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만난 한 학생은 세계 진보학계를 이끌어 온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산물인 공론장 이론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이러한 공론장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한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된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에서부터 한국의 경제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한 사이버 논객 ‘미네르바’까지 최근 사회 변화와 맞물리면서 ‘공론장’(公論場)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1962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 위르겐 하버마스가 주창했던 공론장은 18세기 서구 부르주아 귀족들이 모여 국가에 대한 담론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던 공간에서 유래했다.
 
이후 공개된 장소에서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아무런 성역없이 합리적 토론으로 국가 권력의 방향을 논의하는 공간으로 개념이 확대, 정착되면서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이 됐다. 이러한 공론장은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 우리 시민사회에서도 기반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가와 언론이 이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면서 한국 공론장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논객 대신 이웃이 여론 주도하는 시대
2008년 우리사회 최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촛불시위’는 근대적 공론장의 21세기 버전인 ‘온라인 사이트’의 위력을 잘 보여줬다. 단순 육아모임이던 ‘82쿡닷컴’이 시작한 보수 언론매체 광고 중단운동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김이태 박사가 “4대강 정비계획은 대운하”라고 밝혔던 곳도, 그를 지지하기 위한 서명운동이 펼쳐진 곳도 현재 대표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논객’들이 점유하던 온라인 공론장이 10대 청소년부터 40대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활동하면서 논객 대신 ‘이웃´이 여론을 주도하는 시대가 됐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신분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의 특성은 공론장의 기본 원칙과도 일치한다. 인터넷으로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을 주도한 ‘안단테’라는 이름의 네티즌은 고등학생이었고, ´사이버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미네르바´ 역시 아직까지 정확한 신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기존 언론매체의 경우 시민은 철저히 소비자로 분류돼 ´독자의견´이나 기사의 ´댓글´정도로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블로그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구나 네트워크를 통해 여론 을 생산할 수 있는 ´프로슈머´(prosumer)로 대우받아 ´집단지성´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김성태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이름 없는 생물학도가 올린 글이 황우석 교수의 논문 위조를 밝히고 촛불 집회를 이끌어내는 등 과거에는 상상하지 못한 ‘역의제설정’이 가능해졌다.”면서 “여론을 환기하고 수렴하는 미디어의 측면에서 볼 때 인터넷이 전례없던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와 내용적인 변화를 동시에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정부 언론의 규제 강화 움직임…미래 불투명
하지만 우리 공론장의 미래를 낙관할 수만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사이버 모욕죄 등을 통해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규제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일부 보수 언론매체가 이를 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20~30년을 내다본 시민사회의 성숙에 과연 도움이 되는지는 좀 더 숙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사이버모욕죄와 국가 사이버 위기관리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등을 시도하고 있다. 사이버모욕죄는 인터넷 활동에 대한 본인확인제와 비(非)친고죄가 핵심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네티즌은 인터넷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며, 사이버 범죄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어도 공소가 가능해진다. 통신비밀보호법은 휴대전화 감청을 허용하고 있고,국가 사이버 위기관리법은 국정원이 온라인상의 개인정보에 대해 감시할 근거를 마련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는 것은 문명사회를 떠받치는 기본”이라며 “사이버모욕죄는 실제로 인터넷 공간상에서 기존 국가보안법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시민사회의 미래에 부정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별취재팀〉미래기획부 손성진부장(팀장),이도운차장,류지영·박건형·정현용기자,도쿄 박홍기·파리 이종수특파원,국제부 박홍환차장,사회부 안동환·이재연기자,문화부 박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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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은 촛불시위에서의 사이버 커뮤니티의 역할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이다. 여기에 비판적인 입장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사이버 커뮤니티가 나름의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한계 또한 짚어야 하지 않나 싶다. 적어도 전반적인 상황은 훨씬 악화된 현실에 비추어... 권력과 자본이 이들을 제대로 억압할 때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상황은 정권이 용인하였기에, 수인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에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까.
 
 
10대 촛불의 비밀은 사이버 커뮤니티 (시사인 [66호] 2008년 12월 15일 (월) 10:46:27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행정학과))
촛불집회 당시 10대는 평범한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역이었다. 이들이 이런 집합적 힘을 발휘하는 데는 일상적으로 드나들던 사이버 커뮤니티가 큰 구실을 했다.  
 
한국 시민운동사에 거대한 족적을 아로새긴 2008년의 촛불시위는 먼 미래에도 두고두고 회자할 것이 분명하다. 이 촛불시위의 주역이 누구였던가. 청소년. 이제는 청계광장에서 교정으로 돌아간 그들의 가슴 한편에는 여전히 작은 불씨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에서 목도된 청소년 정치참여는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서구와는 달리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청소년의 정치사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노력이 소극적이었다. 장기간의 유교문화와 권위주의 통치는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억제해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과도한 교육열과 입시경쟁 환경은 청소년을 탈정치 집단으로 온존시켰다.
 
과거 4·19 혁명과 유신반대운동, 1987년 민주화운동 등에서 중·고생 참여가 간헐적으로 목격되기는 했지만, 정의감에 불타는 소수가 운동의 후방집단으로 참여하는 정도였다. 이에 비하면 이번 촛불집회에서의 대규모 참여는 매우 역설적인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와 경찰의 추산을 종합해보면 전체 참여자의 50~60%가 청소년일 정도로 참여가 폭발적이었다. 
 
정치의 ‘변방 집단’에서 ‘선도 집단’으로 탈바꿈한 청소년의 배후를 대라면 인터넷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여 년간 인터넷은 소통의 공간을 확장하며 익명의 존재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참여를 촉진해왔다. 현재 10대의 99% 이상이 온라인 공간에서 일상을 소비한다. 인터넷 접속 비율이나 시간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번 촛불시위의 발화자는 ‘안단테’라는 인터넷 필명을 쓰는 일개 고등학생이었다. 2002년 촛불집회에서도 누리꾼의 제안에 의해 대규모 촛불집회가 촉발되었지만, 이번의 경우 그 주체가 청소년이라는 점이 매우 놀랍다. 더욱이 인터넷 공론장을 활용하여 대통령 탄핵이라는 고강도의 정치적 목표를 제시하고 139만여 명의 온라인 청원을 동원한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 통해 촛불 활활

이번 촛불시위에서 눈길을 끌었던 것 중 하나가 이른바 인터넷 생활 커뮤니티의 참여이다. 연예인, 패션, 성형, 요리 등 정치와 무관한 커뮤니티 공간에 촛불의 목소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금을 거두어 촛불광고를 게재하거나 커뮤니티 깃발을 들고 조직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들의 참여는 정치와 탈정치의 경계를 일거에 무너뜨렸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도 청소년 커뮤니티들이 있었다. ‘엽혹진(http://cafe.daum.net/truepicture)’ ‘쭉빵(http://cafe.daum.net/ok211)’ ‘연이말(http://cafe.daum.net/nowwetalktwo)’. 모두 얼짱이나 연예인 추종 카페로, 회원 수가 많게는 280만명을 넘는다. 이들 카페에는 촛불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별도 게시판이 개설되었다. 지정 게시판 외에 글을 올리면 회원 등급을 강등한다는 경고 메시지가 붙을 정도로 참여 의욕이 대단했다.
 
게시판마다 글과 촛불 패러디와 동영상이 수천 개씩 봇물을 이루었다. 자칭 국내 최대의 인터넷 카페라는 ‘엽혹진’의 온라인 참여는 이미 미선·효순이 사건, 오노 사건, 김선일씨 사건에서도 맹위를 떨친 바 있다. 이들은 촛불을 무슨 돈으로 샀느냐는 옹색한 대통령 앞에 200여 만원을 모금한 내역과 지출 현황을 버젓이 공개했다. ‘쭉빵’과 ‘연이말’도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거두어 촛불과 물대포용 비옷을 구입했다. 그리고 이들은 깃발과 손등의 별 그림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촛불시위대 속에 어우러졌다.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 전문적인 청소년 운동카페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촛불시위의 진원으로 지목된 미디어 다음에서 청소년 운동 카페들을 조사해보았다. 청소년 촛불카페가 모두 32개 관찰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대학생(12개)보다 중·고생(20개) 카페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올해 5월 이후 등장했다. 촛불시위 확산이 청소년 조직화의 직접 계기가 된 것이다.
 
이 중 전국청소년학생연합(전청련)은 온라인상의 청소년 연대와 오프라인 촛불집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커뮤니티이다. 전청련의 정치적 지향은 매우 선명했고 조직의 체계와 운용도 기성 사회운동 단체에 못지않았다. 촛불집회를 함께 주도하고 온라인에서 의견을 교환하던 전청련과 전국청소년모임(전청모)은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조직을 통합하기도 했다. 두 단체 외에도 청소년들은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집단행동을 취했다.
 
남학생·여학생 참여방식 달라

이번 촛불집회의 특징 중 하나는 여자 청소년의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의 배경에는 남녀 청소년 간 인터넷 이용 행태의 차이가 작용한다. 인터넷 이용은 주로 게임에 편중된 ‘게임형’과 사회적·개인적 이해나 행동 결정을 위한 ‘블로그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나은영 교수(서강대·신문방송학)의 2007년 연구에 따르면, 남학생은 게임형이, 여학생은 블로그형이 지배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블로그형은 게임형에 비해 평일 독서시간과 휴일 신문 열독시간이 더 긴 것으로 나타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음을 뒷받침했다.
 
이런 이용 행태 차이는 필자가 경희대 윤성이 교수와 올해 6월3일 촛불시위 참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의 분석 결과, 남학생이 ‘일반적인’ 인터넷 이용 행태를 보이는 데 반해 여학생은 ‘목적의식적’ 행태를 보였다. 남학생의 인터넷 평균 이용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남학생들이 ‘따로’ 인터넷 게임에 빠져 있는 동안, 여학생들은 ‘무리 지어’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여 소통했음이 관측되었다. 촛불집회 관련 사이트들에 대한 접속에서도 여학생의 46.4%가 촛불집회 관련 사이트를 매일 접속한 반면 남학생은 33.7%에 그쳤다.
 
인터넷은 청소년에게 유희의 공간이자 동시에 저항의 공간이다. 얼짱과 연예인을 찬양하는 가운데에도 촛불을 노래하는 탈정치와 정치의 공존이 이들에게는 자연스럽다. 물대포를 맞으며 격렬히 저항하는 뒤쪽에서 춤추고 노래하던 촛불시위 현장은 이러한 청소년 놀이터와 다를 바 없었다. 청소년의 정치에 대한 문화적 수용은 ‘놀이로서의 정치’를 새로운 사회현상으로 등장시켰다. 이는 참정권이 제약된 청소년의 창조적 선택이자, 청소년 정치사회화 과정의 새로운 패턴으로 해석된다. 사회정치적 의제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비판의식을 제도적으로 학습해온 논술 세대의 반란이 비단 촛불로 그 막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이 촛불시위에서 공유한 집단의식과 역사적 경험은 장차 거대한 정치변화의 서막에 불과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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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집단 지성 ‘아고라’ (시사인 [67호] 2008년 12월 23일 (화) 15:12:05 김은남·변진경 기자)
아고라는 21세기형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케 했다. 쇠고기 협상 파동과 금융위기로 기성의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서 아고라는 더욱 빛났다. 
 
<시사IN> 기자들은 격론 끝에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아고라’를 최종 선정했다. 촛불이 점화되기 전이나, 사그라진 뒤나 아고라가 변함없이 보여준 역동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포털 사이트 ‘다음’이 ‘아고라’를 서비스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2월. 아고라(광장)에 모여 정치·사회 및 일상의 대소사를 논의했던 그리스인처럼 누리꾼이 온라인에서 크고 작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토론의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다고 회사 측은 밝히고 있다. ‘토론’ ‘이야기’ ‘즐보드’ ‘청원’ ‘네티즌과의 대화’ 같은 하위 메뉴로 구성된 아고라가 ‘폭발’한 것은 2008년 봄이었다.
 
4월6일 고등학생 ‘안단테’가 시작한 ‘이명박 탄핵 서명운동’이 기폭제가 됐다. 애초에 안단테가 핵심적으로 문제 삼은 것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었다. 이것이 이른바 쇠고기 졸속 협상 파문과 맞물리면서 일파만파가 됐다. 인터넷 미디어 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미디어다음 순 방문자 수는 2008년 4월 1875만명에서 2008년 5월 2000만명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페이지뷰(웹페이지를 열어본 횟수) 또한 4월 29억여 건에서 5월 38억여 건, 6월 47억여 건으로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새 아고리언들이 유입됐다.
 
이들을 매료시킨 아고라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뉴스 24> 김익현 기자는, 아고라에서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 장(public sphere)’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사이버공론장의 영향력 확대와 역기능>). 하버마스에 따르면 공론 장은 사적 개인의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주권 의지를 지닌 사적 개인이 모여 스스로의 의지를 표현하는 공개된 장소이다. 그곳은 △토론을 통해 형성되는 공간이고 △이전에는 배제됐던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며 △발화자의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 그 내용의 장점에 따라 평가되는 공간이다.
 
실제로 아고라에서 ‘계급장’은 필요없다. 오직 ‘내용’에 따라 평가받는다. 중요한 것은 제안자가 아니라 그가 제기한 이슈에 다중(多衆)이 얼마나 공감하느냐였다. 이 과정에서 논리와 설득은 필수이다. 닉네임 ‘장자_누리꾼’은 아고라를 알고 난 뒤 ‘아직도 인터넷에서 존댓말을 사용하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한다. 진지하게 글을 써야 남을 설득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공감을 얻은 ‘개념글’은 ‘베스트’에 올라간다. 그렇지 않은 글은 밀려난다. 자연스럽게 자정작용이 이뤄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의 합세는 아고라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정 언론에 기고하는 등 기성 매체의 권위를 빌리기보다 아고라에서 ‘계급장 떼고 맞짱 뜨기’를 선택한 전문가의 존재는 이전에 찾아보기 어렵던 것이었다. 국토해양부 산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46)가 ‘대운하 참여하는 연구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아고라에 글을 올린 것은 5월23일이었다. 하반기에는 ‘미네르바’와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성균관대 교수) 등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넘나드는 경제 논객이 이 흐름에 대거 합류했다.
 
아고라는 ‘집단 지성’뿐 아니라 ‘집단 감성’이 꽃피는 공간이기도 했다. 촛불시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누리꾼은 기성 언론을 보지 않았다. 대신 아프리카TV, 칼라TV로 생중계되는 집회 현장을 지켜보았고, 자신들이 생산한 동영상 UCC와 휴대전화·디지털카메라 데이터를 끊임없이 온라인에 유통시켰다. 이렇게 ‘운동’과 ‘놀이’와 ‘저널리즘’이 일체화된 새 혼종 문화의 등장을 이상길 교수(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는 ‘커뮤니케이션적 사건’이라고 명명했다(<시위·놀이·저널리즘의 혼종문화 탄생>).
 
“시위대가 청와대로 가야 하는 이유”(‘짐승이라오’)와 “시위대가 청와대로 갈 필요가 없는 이유”(‘임일오’) 같은 ‘기성 언어’가 치열하게 논전하는 한쪽에서 “대운하 하면 뭐가 좋은데요? 물 민영화? 헐, 장난하세요? 진짜 어이없다. 이명박 대통령. 그쪽께서 대한민국 물 주인 아니잖아요”(18살 학생) 같은 ‘10대 언어’가 공존하는 곳이 아고라였다. 시인 김형수씨는 이렇게 썼다. “난적, 난제를 풍자와 해학으로 무력화시키는, 오직 최강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아고라는 끝없이 찾아냈다. ‘심재철 의원 18원 후원 사건’ 같은 것들을 보면서 나는 놀랐고, 동시에 나의 ‘낡음’이 두려웠다.”
 
반면 아고라는 여론의 쏠림 현상을 극대화한다는 염려를 낳기도 한다. 이상길 교수는 “이견이나 이론의 여지를 인정하지 않고 그 존재를 관용하지 않는 태도가 공론 장에 참여하는 개인·집단·미디어 모두에게 공통으로 발견된다”라고 지적했다. 때로는 이 과정에서 사실 왜곡이나 명예훼손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부 여당이 사이버모욕죄 등 온라인 공간에 대한 규제 장치를 도입하겠다는 것도 표면으로는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나 아고라 대표 논객 중 한 명인 나명수씨(48, 닉네임 ‘권태로운 창’)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고 아고라의 뿌리가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인터넷 공간, 특히 포털 사이트에 대한 각종 사전·사후 규제가 강화되면서 일부 아고리언 사이에 ‘검열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곳에 포스트 아고라를 구축하자’는 의견이 개진된 일이 있다. 그러나 아고라는 반드시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 ‘권태로운 창’의 주장이다. “아고라는 조직도, 모임도 아닌 여론 그 자체다. 아고라의 패배는 우리의 패배다”라는 그는 12월31일 서울 종각에서 열릴 예정인 촛불 집회 현장에서, ‘YTN 살리기’ ‘전교조 해직 교사 살리기’ 등 공안탄압에 맞서는 현장에서 촛불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지금도 치열하게 ‘광장의 상상력’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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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현상’이 말하는 것 (시사인 [67호] 2008년 12월 23일 (화) 15:15:36 박형숙 기자)
2008년 대한민국 경제를 말할 때 미네르바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리꾼들은 ‘얼굴 없는 인물’을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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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신인류 아고리언,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다 (2008 12/30 위클리경향 806호, 정용인 기자)
촛불·노트북·디카로 무장한 ‘시민 지성’
온·오프 경계 허무는 힘의 원천은 ‘속도’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거대한 흐름, 그 가운데 아고라, 아고리언으로 대표되는 ‘시민 지성’이 반복적으로 호명되는 것이다. 이 2008년 올해의 인물로 아고리언을 꼽은 이유다. 삼성경제연구소도 12월 17일 발표한 ‘2008년 10大 히트 상품’ 보고서에서 ‘주요 이슈마다 화제를 일으켜온 인터넷 토론방’을 4위로 꼽았다. 주요 언론사 토론방과 함께 거론되었지만, 역시 핵심은 ‘아고라’다.
 
'아고라’에 따라붙는 것은 촛불시위다. 촛불은 2008년 5월부터 타오른 것이 아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 당시 학원강사 김기보씨의 제안에 따라 켜진 촛불이 그 시발점으로 이야기된다. 촛불은 2004년 국회의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철회 운동 때도 불붙었다. 촛불은 대표적인 평화적 시위문화,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했다. 2008년 누리꾼은 2005년 서울시장 당시 촛불을 들고 ‘사학법 개정 반대’ 시위를 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사진을 찾아냈다. “야간 촛불시위는 불법”이라는 정부·여당의 주장은 조롱거리가 됐다. 2002년과 2004년 촛불과 2008년 촛불이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아고라의 존재다.
 
다음 서비스 아고라는 2004년 12월 24일 첫선을 보였다. 다음은 뉴스토론방을 바탕으로 이 서비스를 만들어냈다. 아고라를 운영하고 있는 미디어다음 뉴스팀 관계자는 “오픈 당시에도 화제가 됐고, 2006년과 2007년을 거치면서 여러 이슈도 만들어냈지만, 2008년에 벌어진 일은 우리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일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지난봄과 여름 촛불시위. 누리꾼은 자발적으로 ‘토론의 성지 아고라’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왔다. 이들의 ‘오프라인’ 활동의 준거는 아고라였다. 온라인 ‘아고라’에서 진행되는 논의와 상황, 정보는 즉각적으로 ‘오프라인’ 촛불에 전달됐다. 유비쿼터스 환경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허물었다. 시민은 촛불과 함께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 와이브로 무선인터넷 덕분에 거리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집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즉석 토론은 다시 오프라인의 시위대 활동에 참고가 되었다. 시청 앞 광장에서 KBS로 향하는 거대한 촛불의 물결은 그렇게 연출된 것이다.
 
촛불시위 초기부터 아고라와 주요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고라가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자 힘의 원천은 ‘속도’라며 이렇게 평가했다. “매체적 속성을 갖고 있는 다른 인터넷, 예컨대 블로그나 카페는 트랙백이나 댓글 등으로 피드백이 오는 경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반면 아고라에서는 반나절 단위로 여론과 전략, 전술이 형성됐다. 블로그나 다른 커뮤니티에서 하지 못한 역할을 아고라가 맡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블로그나 메타블로그, 그리고 카페와 같은 커뮤니티는 일상적 커뮤케이션 공간이며 이탈리아 사상가 그람시의 견해를 빌리자면 일종의 ‘진지’ 역할을 한다. 촛불시위와 같은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곳이 ‘아고라’다. 누리꾼은 다시 ‘아고라’에서 부상한 ‘정보’를 제각각 블로그나 카페에 퍼 나른다. 올린 글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과 토론, 새로운 정보의 교류와 실천 전략 등을 논의할 때 아고라와 같은 온라인 광장의 유용성이 2008년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것이다.
 
새롭게 형성된 이 ‘패턴’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사회운동 형태가 될 것이라고 사회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조대엽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사회의 참여 형식을 놓고 볼 때 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특징짓는 운동 형태를 각각 재야·민중·시민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라며 “200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또 다른 ‘제4의 결사체’가 주도하는 운동 형태가 바로 촛불시위”라고 말했다.
 
‘제4의 결사체’는 유연, 탈조직, 온라인화가 특징이다. 조 교수는 “형식이나 규모에서 제한이 없고, 이슈의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온라인 논의 구조를 통해 소통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공감대가 커지면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 수도 있는 유연자발 집단이라는 것이 특징”이라며 “2008년 촛불집회에서 그 양태를 확연히 드러낸 것이 아고라·아고리언”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촛불시위 초기, 정부 당국자는 이 ‘새로운 유형의 결사체’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것 같다. 촛불시위를 통해 자발적으로 연행된 누리꾼은 풀려난 뒤 취조받은 내용을 다시 아고라에 올렸다. 그들이 받은 질문은 “당신은 아고라의 회원인가요” “손 팻말의 내용은 누가 알려준 건가요”였다. 아고라의 사용자들은 구시대적 조직표에 끼워 맞추려 애쓰는 그들의 모습에 배꼽을 잡았다. 그렇다고 진짜로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한 IT 관련 업계 전문가는 “청와대나 관계 당국이 촛불시위 주요 국면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각계 전문가 의견을 모니터링했고, 실제로 당국 관계자가 나를 만나 의견을 청취한 적도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 비공식적으로 여론조사도 하면서 꼼꼼히 여론 동향을 체크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가 결론을 잘못 내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전문가는 “인터넷 여론에 대해 초기 대응을 잘못해 문제가 커졌고, 커지기 전에 싹을 잘랐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결론이었던 것 같다. 보복성이라고까지 말하기는 그렇지만 진화할 방법을 모르니 포털을 규제해 풀려고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2004년 말에 첫선을 보인 아고라가 2008년 촛불시위 국면에서 이슈의 중심으로 ‘갑자기’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물론 촛불시위 이전에도 아고라가 만들어낸 이슈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05년 아고라 누리꾼은 전여옥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의 ‘대졸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공식 사과를 요청하는 청원을 제기한다. 이 청원은 6531명의 서명을 이끌어냈다. 결국 당시 박근혜 당대표가 공식 사과하고 전 대변인이 사과의 뜻을 밝히는 성과를 냈다.
 
이밖에도 인사동 쌈지길 유료화 철회, 2007년도 태안자원봉사 지원 모금 등의 ‘희망 모금’은 사회적 변화를 이끈 온라인 실천으로 남아 있다. 김호기 교수는 “2006년과 2007년 사이에 소위 ‘집단 지성’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공론장에서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즉 서프라이즈 등으로 대표되는 종전의 인터넷 공론장이 소위 ‘논객’이라는 엘리트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정치적 변화라는 측면에서 ‘민중주의’, ‘시민 지성’으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아고라와 같은 인터넷 공론장의 매력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실현된다는 데 있다. 단지 누군가 제공한 콘텐츠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글을 쓸 수 있고,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짧은 형태의 댓글이나 답글, 링크 등 여러 형태로 정보나 자료 제공의 용이성도 아고라가 가진 장점이다.
 
여기에는 오프라인 신문매체로 대표되는 기존 공론장이 신뢰를 잃은 것도 크게 작용했다. 쇠고기 협상 국면에서 정부 편을 든 주류 보수매체에 대한 실망이 역설적으로 급속도로 인터넷 공론장의 신뢰로 전환된 것이다. 김 교수는 “언론매체처럼 정보가 종합적이지 않지만, 기존 공론장이 제공하지 않던 전문 정보뿐 아니라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했다는 것”이라며 “기존 공론장이 사회적 권위를 잃었기 때문에 아고라에 대한 폭발적 관심이 일어났다”고 풀이했다. 아고리언은 블로그와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검색을 통해 정보와 지식을 생산했고, 적극적으로 담론을 만들어 나갔다.
 
아고리언과 소통의 중요성을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언론이다. KBS와 YTN의 구성원이 차례로 아고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SBS노조도 “보수매체의 논조를 따라가지 않기 위해 내부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뒤를 이었다. 김성훈 한나라당 디지털 위원장은 “한나라당은 인터넷 사이드카 법안을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해명 글을 아고라에 올렸다. 이에 질세라 백원우 민주당 유비쿼터스 위원장도 글을 올려 인터넷 탄압과 촛불 인권유린에 대한 공개토론을 한나라당에 제안했다.
 
촛불시위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아고라에 대한 참여율도 눈에 띄게 줄었다. 랭키닷컴의 통계를 보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6월 절정을 이뤘던 페이지뷰는 8월과 9월 4분의 1로 줄었다. 방문자 수도 3분의 2가량 줄었다. 누리꾼은 여기에 1, 2차에 걸친 아고라 개편도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포털의 정권 눈치 보기 결과라는 것이다. 게시물 차단이나 촛불시위 참가자 구속도 아고라와 같은 ‘포털 제공 서비스’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켰다. 일부 누리꾼은 대안으로 만든 ‘아고리언’ 사이트(http:// agorian.kr)나 아예 검열과 삭제를 피해 해외 서버에 구축한 ‘대한민국 네티즌 망명지’(http://exilekorea.net)와 같은 사이트로 이동했다.
 
다시 아고라가 주목받은 것은 아고라 경제방의 미네르바 활동이 부각되면서다. 미네르바는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마침내 정부도 아고리언과 대화에 나섰다. 기획재정부가 올린 첫 글은 ‘종부세 개편은 부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글이다. 9월 23일이다. 기획재정부가 미네르바가 올린 글을 언급하며 해명 글을 올린 것은 한 달 뒤인 10월 25일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다음 아고라에 직접 글을 올린 것은 처음이지만 이전 정부부터 정부는 국민과 직접 소통한다는 면에서 온라인 홍보를 강화해왔다”면서 “미네르바라는 개인에 대응하기 위해 글을 올린 것은 아니며, 미네르바를 직접 지칭한 것도 딱 한 번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아고라에는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도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식 DC인사이드 대표는 “일부 DC인사이드 사용자가 아고라에 대한 ‘파블로프의 개’ 실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단 지성이라기보다 집단 패닉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아고리언은 허위로 내용을 작성해도 ‘자신들의 편’처럼 보이면 무조건 찬성을 클릭한다는 일부 누리꾼의 비아냥을 소개한 것.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9월 발표한 ‘사이버액티비즘과 숙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이라는 논문에서 “아고라와 같은 촛불시위 관련 인터넷 게시판을 분석해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배척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언론이나 논문 등 공신력 있는 정보보다 주로 인터넷 정보와 개인적 경험에 근거해 정치적 사안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것도 보인다”면서 “아고라 등에서 보이는 토론문화는 충분한 의견과 토론을 거친 ‘숙의 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와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아고라 좀비’나 ‘프락치 논란’이 그것이다. 신진욱 교수는 “아고라가 배타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고리언의 책임이라기보다 도저히 ‘숙의’가 안 되게끔 전체주의적 입장에서 공격을 반복적으로 수행한 사람의 문제”라며 “소위 ‘알바’로 불리는 사람들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왜곡된 일부 아고리언이 생겨났다”라고 말했다. ‘정보의 신뢰성’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는 “보수언론이나 쇠고기 정국 당시 정부의 주장처럼 공식 권위를 빌려 생산되는 정보는 신뢰할 만한 내용인가. 또 당시 그곳에서 절실했던 정보를 제공해줬나”라고 반문했다. 전형적인 괴담 프레임에 기초한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직접 면접한 대부분 온라인 공론장 경험자들의 공통점은 지난 촛불을 계기로 굉장히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라며 “정보의 소스가 무척 다원적이어서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 걸러 자신의 입장을 만들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시민들 모두 분열적으로 괴담에 휩쓸렸다고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촛불시위가 2008년 하반기 잦아들었고, 누리꾼이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장으로 돌아갔지만 여론의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긴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2008년 봄과 여름 촛불을 이끈 배경 조건은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신 교수는 “촛불시위가 촉발되던 당시는 소위 ‘민주주의 10년의 끝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겁이 없었지만, 탄압을 경험한 후에야 참여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라며 “그 문턱을 어떤 조건이나 방법으로 넘을 것인지가 중요한 변수”라고 덧붙였다.
 
김호기 교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사회의 변화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어섰다”면서 “이미 우리의 삶 자체가 네트워크화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다음에 존재하는 인터넷 공론장으로서 아고라의 역할은 줄어들지 몰라도, 곧바로 또 다른 아고라가 대치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가 ‘아고라’를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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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아고라의 진화, 어디까지 이뤄질까 (2008 12/30 위클리경향 806호, 민경배<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고착된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유비쿼터스화 진행될 듯
 
2008년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고라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올 상반기를 휩쓸었던 촛불시위의 도화선을 아고리언 안단테가 당겼다. 시위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급 시민단체들을 제치고 두 달이 넘는 촛불대장정을 이끈 주역도 아고리언들이었다. 하반기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미네르바라는 아고리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렇듯 아고라는 국민 여론의 진원지였다. 아고라는 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으며, 학자들에게는 경이로운 연구 대상이었다. 심지어 수사기관에도 아고라는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관찰 대상이었다. 그렇게 아고라는 올 한 해 대한민국 역사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광장이 꼭 물리적으로 탁 트인 넓은 공간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광장 문화는 참여와 소통, 그리고 규율되지 않은 자유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 정치사의 시작과 함께 광장은 금기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광장으로의 자유로운 참여와 소통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불순한 집단들의 도발이거나 방종한 시민들의 무절제한 행위 따위로 간주되었다. 가장 일상적인 삶의 터전이었던 광장은 이렇게 아무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금지된 공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데 인터넷이란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시민들은 폐쇄된 오프라인 광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의 공간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잘 발달된 인터넷 게시판이 온라인 광장을 일군 인프라였다. 매일 수많은 누리꾼이 온라인 광장에 접속해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때로는 누리꾼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관심과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인터넷 게시판을 근간으로 형성된 온라인 광장은 이렇게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이자 누리꾼 여론의 진원지로 발전해갔다. 그리고 누리꾼은 이 새로운 광장을 통해 서서히 참여와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본래 광장의 주인이었던 시민들이 다시 온라인 광장으로 귀환한 것이다.
 
인터넷은 늘 끊임없는 변화와 흐름을 특징으로 하는 공간이다. 온라인 광장의 주 무대와 주인공 역시 변화와 흐름을 거듭하며 진화해왔다. 포털의 영향력이 본격화하던 2006년 이후 온라인 광장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세워진 아고라가 말 그대로 광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포털이기에 가능했던 방대한 이용자 수와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 등 ‘규모의 경제’가 온라인 광장의 위력을 한층 증폭시켰다. 아고라의 주역인 아고리언들은 과거 사이버 논객이나 폐인들과 달리 특정 부류의 누리꾼이 아니다. 그들은 포털을 이용하는 누리꾼 일반이며, 네그리(A. Negri)가 정의했듯이 다양한 개별 주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중(multitudes)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고라는 애초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안에 http://agora.media. daum.net란 주소로만 존재하는 고착된 공간이 아니었다. 온라인 광장으로서의 아고라는 앞으로도 또 다른 형태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람시(A. Gramsci)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소규모 시사사이트에서 대형 포털까지 온라인 광장이 외연을 확장시켜온 과정은 곧 누리꾼 여론의 진지전이 확장되어간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포털에 구축한 아고라는 진지전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어질 아고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동전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다중으로서의 개별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타고 유연하게 모임과 흩어짐을 거듭하면서 인터넷 공간 곳곳에 온라인 광장이 출몰하는 아고라의 유비쿼터스화가 진행될 것이다. 고착된 진지로서의 아고라가 아니라 블로그, RSS, 북마크, 개인화 포털 등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유연하게 기동하는 흐름의 아고라다. 이미 촛불시위에서 블로거들은 아고리언들과는 다른 한 축에서 흐름의 아고라를 형성해보였다. 이미 블로고스피어에는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 못지않은 쟁쟁한 파워 블로거들이 사이버 강호를 누비고 있다.
 
촛불에 놀라고 미네르바에 또 놀란 정부 여당이 갖가지 인터넷 통제 장치를 내놓고 있다. 어쩌면 다음 아고라가 가장 첫 번째 타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국 이 모두 부질없는 헛수고라는 점이다. 설령 진지로서의 아고라가 와해되더라도 흐르는 물처럼 결코 손에 움켜쥘 수 없는 새로운 아고라가 쑥쑥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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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30~40대 장년층, 아고리언 이끈다 (2008 12/30 위클리경향 806호, 정용인 기자)
익명성이 큰 무기… 운동 경험 없어 시행착오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sKUISYs가 밝힌 ‘스무 살 대학 새내기’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다. 로그인을 해야 글을 쓸 수 있지만 아고라의 토론은 철저하게 익명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이메일조차 스스로 공개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하지만 ‘익명’은 때로는 진솔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밝힐 수 있는 수단이다. puruna가 자신이 누군지 밝히진 않았지만 그날 열린 첫 촛불집회에 참석한 뒤 글을 남겼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익명성은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말했다.
 
오프라인에서 수십 년간 형성된 권위는 아고라 내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오직 실력과 진정성으로 평가받는다. 보수매체도 거부당했지만, 지난 촛불시위 과정에서 광우병대책위로 대표되는 기존의 민주화·시민운동의 의제 설정이나 조정에 대해서도 많은 누리꾼은 비판적이었다.
 
미네르바는 아고라의 익명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한 경우다. 경제 관료와 기성 언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가차없다. 한국 경제 위기에 대한 그의 경고는 불행히도 꽤 적중했다. 정부 당국이 어떤 식으로든 미네르바에 대한 개인 정보를 입수했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지만 익명성을 보장한 아고라 내에서 아직까지 미네르바가 누군지 아무도 모른다. 사실 미네르바나 경제방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고수’는 지금까지도 자유토론방의 핵심 토론 주제인 촛불시위와는 그다지 관계없다. 사회운동도 그렇지만 제도권 학계와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도 별로 없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네르바를 아고라를 특징짓는 ‘시민지성’의 전형이라고 평가한다. “전통적인 지식분업 구도에서는 도저히 생산할 수 없는 지식과 담론을 만들어낼 능력을 가졌고, 그 역시 다년간에 걸쳐 보통 사람이 생업 현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라는 점에서 아고라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철저하게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공간이다 보니 역기능 혹은 폐해가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 폭력이 이슈가 되자, 시민들이 찍은 전경 사진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개하거나 관련 인터넷 자료를 뒤져 신상을 공개하는 등의 경우다. 일부 시위 참가자의 사진을 올려놓고 프락치 의혹을 제기했던 경우도 대표적이다. 조대엽 교수는 “익명성에서 오는 문제가 어느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실제 논의 과정에서 불확실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의견을 배제하는 자정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일부 부정적인 측면을 과장하여 문제삼아 규제하려는 법을 만들려는 정부 당국의 태도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어쨌든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아고리언들이 온·오프를 넘나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누리꾼 네트워크의 주축은 ‘경험적으로’ 3, 40대 장년층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 공통점은 이들 온·오프 아고리언의 주축이 운동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아고라 집회 공지를 도맡아했던 나씨도 환경 관련 동화를 쓰기는 했지만 대학 시절 운동권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촛불 이후’ 아고리언과 연계를 맺고 있는 커뮤니티들 내에서는 크고 작은 내홍이나 시행착오를 겪는 경우도 많다. 신 교수는 “기존의 권위가 무너지고 아고리언이 대안정치 세력으로 등장했지만 아직까지 아마추어리즘에 머무르다 보니 생기는 문제”라며 “아고리언의 정치적 열정·투쟁의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념적·정치적 숙련 집단이 나와 스스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다음 아고라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의 성별이나 연령대는 어떻게 될까. 다음 측이 집계한 자료는 없다. 웹데이터 분석 통계기관 랭키닷컴 접속 자료에 따르면, 아고라에 접속하는 비율은 남성이 67.12~71.18%, 여성이 28.82~32.88%(2008년 5~11월 월별 통계)였다. 남성 대 여성의 비율은 얼추 7 대 3이다. 여기에 다시 연령대를 대입해보면 30대 남성>20대 남성>40대 남성>20대 여성>30대 여성 순이다.
 
특이한 것은 10대 비중이 작고 성인 사용자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포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는 사용자들의 촛불집회에 대한 태도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토론방에서 ‘지역논쟁’은 단골메뉴지만 지역분포에서 특이점은 없다. 아고라를 운영하는 미디어다음 뉴스팀 관계자는 “아고라 사용자도 다음 전체 사용자와 지역 분포에서는 딱히 차이가 없으며, 대체적으로 인구 분포와 일치한다”라고 덧붙였다. 적어도 통계상으로는 “촛불을 든 사람은 다 특정 지역 출신” 식의 주장이 바로 괴담이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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