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과학기술정책에 있어서 시민참여가 왜 필요한지, 시민참여의 모델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참여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참고하면 좋겠다. 이 글이 나온지 6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과학기술정책에서 시민참여는 다양한 모델이 도입되었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소개하는 것에서 넘어서야 할 때이다.
--------------------------------------- 과학기술정책과 시민참여 모델 (시민과학, 2002/07/02 00:00)
I. 머리말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이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분명하게 알려지면서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의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서구에서는 1970년대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중요한 정책결정과정에 시민들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관행으로 굳혀져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구에서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의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진 바 있고, 그 중 일부는 지속성을 갖는 제도로 굳어지기도 하였다.
이 글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고 알려져 있는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도 시민참여가 왜 필요하고 또한 어떻게 가능한가를 규명하고,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어떠한 시민참여 모델들이 과학기술정책 분야에 있어서 실험되고 응용되어 왔는가를 분석하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를 둘러싼 다양한 찬반 논란들을 살펴보고, 이어 두 번째 부분에서는 1970년대 이후 발전되어 온 시민참여 제도들을 소개하며, 세 번째 부분에서는 과연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정책 분야에 시민참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분석해 보도록 한다.
II.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를 둘러싼 논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과학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높아가고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의사결정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가 바람직하며, 또한 가능한가를 둘러싸고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 사이에 논란들이 있어 왔다.
1. 시민참여 반대론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를 반대하는 입장들은 기본적으로 "전문가주의"에 입각해 있다. 전문가주의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사회의 다른 영역과는 달리 복잡성과 난해함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만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고 있다(Jasanoff, 1990). 전문가주의는 일반 시민들은 바로 이러한 과학적 훈련과 지식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예컨대 일반 시민들은 생명공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생명공학정책의 결정과정에 참여해서는 안되며, 오로지 그 분야의 과학기술자들만이 정책결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통상적인 민주주의 제도들에서는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하지만, 과학기술 영역에서만큼은 참여는 전문가로 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문가주의가 제도화된 것이 바로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이다(Fischer, 1990). 기술관료주의는 기술적인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지배하는 정부체계이며, 공공적 정책결정의 메카니즘이기도 하다. 기술관료들은 시민대중이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기 때문에 공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전문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2. 시민참여 찬성론
1) 과학기술의 공공성과 "기술시민권"
과학기술은 기본적으로 공공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형식적인 측면에서의 과학기술의 공공적 성격은 과학기술의 산업화와 더불어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과학기술은 여전히 공공적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과학기술의 공공성은 다음 몇 가지 점에서 지적될 수 있다. 첫째, 대부분의 과학기술은 그 영향의 범위가 국지적이지 않고, 매우 포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한 사회의 대다수의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특정 과학기술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둘째, 특히 정부에서 추진하는 특정 과학기술 연구개발 프로그램은 그 재원을 시민들의 세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공공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즉, 시민들의 세금으로 추진되는 국가적 과학기술 연구개발사업은 한정된 특정 집단의 협소한 이익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이익을 향상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공공적 성격은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곧바로 제기한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이란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에게 포괄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세금이 특정한 과학기술활동의 재원으로 쓰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의 개발방향과 내용에 대한 시민의 참여에 기초한 민주적 통제는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권리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현실적으로 과학기술개발의 주요 담당자들인 과학기술자들은 연구개발 프로그램의 선정과정이나 구체적인 연구개발과정에서 시민의 참여가 없이도 시민의 이해관계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술시민권"(technological citizenship)이라는 개념이 갖는 중요성이 부각된다. 기술시민권이라는 개념은 기술사회에서 과학기술정책결정과 관련하여 사회구성원들이 향유해야 하는 참여의 권리를 말한다. 기술시민권은 크게는 첫째, 지식 혹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리, 둘째, 과학기술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 셋째, 의사결정이 합의에 기초해야 함을 주장할 권리, 넷째, 집단이나 개인들을 위험에 빠지게 할 가능성을 제한시킬 권리 등으로 구성된다(Frankenfeld, 1992; Zimmerman, 1995).
2) "평범한" 지식(lay knowledge)의 중요성
앞의 두 가지 논의가 주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의 필요성을 논증하는 것이었다면, 일반 시민들이 삶 속에서 축적하는 평범한 지식의 중요성 문제는 과학기술과 같이 복잡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처럼 보이는 영역에서도 실제로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론의 핵심적인 근거가 된다.
통상적으로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항은 그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교육훈련을 받은 전문가만이 다룰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어 일반인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영역에 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문제가 되고 있는 과학기술 관련 이슈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과학기술에 대한 신비화 과정을 통해 널리 퍼져 있는 통념, 즉 과학기술 지식은 언제나 확실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인식이 그릇된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오히려 일상적인 삶의 경험 속에서 축적한 일반 시민들의 지식이 문제해결에 더 효과적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일반인들도 스스로 인식하건 인식하지 못하건 간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의 경험과 통찰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안목과 지식을 축적하게 되기 때문이다(Fischer, 2000).
과학기술에 대한 전문가의 지식은 주로 교과서나 통제된 실험실에서의 탐구활동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임에 반해, 일반인의 지식은 주로 삶의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과학기술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러한 과학기술의 환경에 오랫동안 놓여져 있던 일반인이 오히려 문제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생생한"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Wynne, 1991; Irwin, 1995).
이처럼 전문가의 지식이 완벽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과학기술의 문제를 오로지 전문가들의 손에만 맡겨둔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위험한 발상일 수 있다.
3) 공공정책의 정당성(legitimacy)과 효과성(effectiveness)
앞의 두 가지가 공공의 관점에서 본 시민참여 필요성이라면, 정책결정자/집행자의 관점에서도 시민참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것은 바로 정책의 정당성과 효과성의 문제이다. 이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특히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이의 중요성은 증대된다. 효율성(efficiency) 논리를 떠받드는 권위주의 정치·행정체제 하에서는 공공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할 때 정책의 정당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크기가 그다지 중시되지 않는다. 기술관료들은 그냥 '결정하고, 선포하고, 밀어붙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할 경우에만 사후적으로 시민들을 설득하는 절차를 밟았을 뿐이다. 그러나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이제 효율성 논리보다는 정당성과 효과성 논리가 더욱 중요해진다.
여기서 정당성이란 주로 절차적 정당성을 말하는데, 공적 의사결정과정이 얼마나 개방적이며 민주적인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즉 공적 의사결정과정이 개방적이고 민주적일 경우, 그 의사결정의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는 반면 아무리 신속하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라고 하더라도 의사결정과정이 비민주적이었다면 그 의사결정의 정당성은 그만큼 훼손되는 것이다. 한편 효과성이란 결정된 정책이 원래의 의도대로 잘 집행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공공정책의 효과성은 시민대중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가 없이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에, 정책결정과 실행과정의 정당성 제고가 무엇보다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참여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정책은 정치적 정당성과 정책집행의 효과성을 제고시키는 효과도 거두게 된다(Brooks, 1984). 사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동안 많은 과학기술정책들이 시민사회의 저항에 부딪혀 많은 애로를 겪은 바 있는데, 이 역시 정책에 대한 정당성 획득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이영희, 2000).
III. 시민참여의 모델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학기술은 일반 시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구에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 모델들이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소극적인 참여에서부터 적극적인 참여에 이르기까지, 비공식적인 참여로부터 공식적인 참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간접적인 참여로부터 직접적인 참여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에 대한 시민참여 모델들은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Schomberg, 1999; Kleinman, 2000). 그런데 현재 과학기술정책결정과정에서 활용되는 대표적인 시민참여 모델들로는 국민투표, 공청회/청문회, 여론조사, 규제협상,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시민패널, 시민자문위원회(planning cell), 포커스그룹, 시나리오 워크숍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각각의 특징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의 <표 1>과 같다.
자료: Rowe, G. & L. Frewer(2000)를 필자가 수정·보완한 것임.
IV. 한국에서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의 현황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에서는 지난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도 시민참여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과학기술정책의 결정과정에서 시민참여가 어느 정도나 이루어지고 있는가?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결정과정에서의 시민참여는 매우 빈약한 상태이다. 물론 군사정권 시기에 비해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시민참여 역시 조금씩 확대되고는 있지만, 앞에서 살펴본 서구에서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시민참여 모델들이 개발되거나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정부 차원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시민참여 제도로는 공청회와 자문위원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청회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정부에서는 주요 과학기술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일단 공청회를 거치는 것이 현재 관례화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공청회는 진정으로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시민참여의 제도로서보다는 단지 절차적 정당성 획득을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 시민들을 대표해서 시민단체 인사들이 참여하는 자문위원회의 경우에도 정치적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1990년대 이후에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자문위원회를 통한 시민참여는 특히 환경정책 분야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도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문위원회를 통한 시민참여의 대표적인 예로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인문사회과학자(5명), 시민단체(2명) 및 종교단체 대표(3명), 생명과학자(5명), 그리고 의학자(5명) 등 총 20명의 자문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비록 전체 20명 중의 2명에 불과하지만 시민단체 대표들도 여기에 참여하여 정책결정에 시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문위원회를 통한 시민참여 역시 상당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문위원회는 말 그대로 장관에게 자문하는 역할만을 부여받고 있어 이 위원회에서 결정된 사항이 강제력을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자문위원회가 정부의 방침과는 상당히 어긋나는 안을 정부에 가져올 경우에 정부는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히려 시민사회 내부에서 서구에서 개발된 시민참여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19998년과 1999년도에 개최한 합의회의이다. 1998년 11월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유럽에서 개발된 합의회의 모델을 도입하여 '유전자조작 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에 관한 합의회의를 우리나라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농민, 주부, 학생, 교사, 노동자 등 일반 시민 14명으로 구성된 시민패널은 전문가패널을 상대로 유전자변형 식품의 안전성과 생명윤리에 대해 이틀동안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자신들의 의견을 보고서로 제출하였다. 이어서 1999년 9월에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생명복제기술'에 대한 합의회의를 개최하였다. 시민패널로 지원한 88명의 일반 시민 중에서 선정된 16명은 두 차례의 예비 모임과 9월 10일부터 3박4일에 걸친 본 행사를 통해 전문가들로부터 수강과 토론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생명복제 기술에 대해 합의된 의견을 발표하였다. 이처럼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시민참여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적지 않은 파장을 야기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과연 정부의 최종적인 정책결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가는 미지수이다.
V. 맺음말
민주주의의 확대와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는 뿌리깊은 "신화" 중의 하나는 전문적 영역에 대한 시민참여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비록 전문성을 특징으로 하는 과학기술정책분야라고 해서 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반 시민들도 자신들의 삶의 경험에 기초하여 축적한 나름의 전문성과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기술정책과 관련된 논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앞에서 소개한 다양한 시민참여 모델들이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개발된 시민참여 모델들은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를 부정하는 주요 논리인 전문가주의가 사실은 시민참여를 봉쇄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부각시켜 주었다. 전문가들만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독단은 결국 과학기술정책의 결정과정에 대해 기술적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도구적 합리성"의 논리가 지배하도록 부추겼다. 이러한 기술관료적 "도구적 합리성" 논리의 지배는 현대 사회의 생태위기와 빈발하는 기술적 재난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연구개발이냐와 같은 논란이 많은 심각한 가치적 문제들에 대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시장가능성의 차원에서의 기술적 효율성의 기준만을 중시한 결과 사회의 안전과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할 과학기술이 역설적으로 "위험사회"(Beck, 1986)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구의 경우에는 향후 사회적으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시민참여가 더욱 촉진될 것으로 보이며, 보다 많은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토론하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체계적인 시민참여 모델들을 개발하려는 노력들도 계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까지는 시민참여도 미흡하고 시민참여 모델에 대한 연구도 빈약하지만 향후에는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시민참여의 모델에 대해 활발히 연구하고 토론하고 실험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이영희. 2000. 『과학기술의 사회학: 과학기술과 현대사회에 대한 성찰』. 한울 아카데미.
Beck, U. 1986. 홍성태 역. 1997. 『위험사회: 새로운 근대(성)를 향하여』. 서울: 새물결. Brooks, H. 1984.'The Resolution of Technically Intensive Public Policy Disputes.'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9. No.1. Fischer, F. 1990. Technocracy and the Politics of Expertise. London: Sage Publications. Fischer, F. 2000. Citizens, Experts, and the Environment: The Politics of Local Knowledg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Frankenfeld, P.J. 1992. 'Technological Citizenship: A Normative Framework for Risk Studies.'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17. No.4. Irwin, A. 1995. Citizen Science: A Study of People, Expertise and Sustainable Development. London: Routledge.
Jasanoff, S. 1990. The Fifth Branch: Science Advisers as Policy Makers. Cambridge: Harvard Univ. Press. Kleinman, D. 2000. Science, Technology and Democracy.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Rowe, G. & L. Frewer. 2000. 'Public Participation Methods: A Framework for Evaluation.' Science, Technology, and Human Values. Vol.25. No.1.
Schomberg, R. ed. 1999. Democratising Technology: Theory and Practice of Deliberative Technology Policy. Hengelo: International Centre for Human and Public Affairs.
Wynne, B. 1991. 'Knowledges in Context.'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19. No.1.
Zimmerman, A.D. 1995. 'Toward a More Democratic Ethic of Technological Governance.', Science, Technology, & Human Values. Vol.20. No.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