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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봄의 자서전_ 미완의 시대 (경향, 이권우, 2008-10-18)

새벽길 2008. 11. 30. 15:18
경향신문 기사 가운데 흥미롭게 읽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도서평론가 이권우가 일주일(격주인가?)마다 한번씩 쓰는 '자서전 읽기'라는 연재기사이다. 그 중에 맘에 안드는 인간도 있지만, 그래도 그 자서전을 유려하게 소개하는 것이 이권우의 장기이다. 일단 기사를 보고 자서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은가. 
  
언젠가 말한 적이 있는 듯한데, 그 자서진 중에서도 역시 좌파의 자서전을 소개하는 글이 흥미롭다. 홉스봄의 자서전도 그러하다. 홉스봄은 일련의 <시대> 시리즈로 유명한데, 자서전 또한 <미완의 시대>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이권우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강한 열망이 그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었고, 평생 그 길에 남도록 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은지...
 
홉스봄의 68혁명을 보는 시각도 조금 독특하지만, 나에게는 와닿는 지점이 있다. 그라면 이번 촛불시위를 보고서도 비슷하게 평가하지 않았을까. 
 
마지막에 나오는 말은 인상적이다. 그래서 지금 나의 메신저 대화명에 이 홉스봄의 말을 집어넣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특히 지금 이 시기에 딱 맞는 구절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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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읽기](8) 홉스봄의 자서전_ 미완의 시대 (경향, 이권우 | 도서평론가, 2008년 10월 17일 17:33:14)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강한 열망이 그를 평생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민음사)는 다른 무엇보다 자서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그가 역사학자 특유의 시선으로 자서전을 문제 삼고 있어서 그러하니, 심리학자라면 사실의 무의식적 왜곡을 염두에 두는 것만큼이나 전문적이며 독자적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는 머리말에 자서전이 너무나 많아 적이 놀랐으며 그렇다면 자기 같은 사람은 왜 자서전을 써야 하는지 되물어보았다고 밝혔다. 공인으로서 기록에 남을 만한 사람도 아니잖은가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늘 “평생을 공산주의자로 좀 특이하게 살았던” 홉스봄에 호기심을 품었다. 그렇다면, 그는 대중적 관심사에 답변하려 자서전을 쓴 것일까.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지식인의 자서전은 “그 사람의 생각, 태도, 행동에 대한 기록도 담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것이 한낱 변호로 끝나서는” 안 되는 법이다. 홉스봄의 고민은 계속된다.
 
동시대의 역사를 그려야 하는 역사가는 늘 개인의 경험과 객관적 역사가 충돌해 일으키는 긴장의 한복판을 가로질러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균형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역사가에게 역사와 자서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는 아그네스 헬러의 말을 인용하는데 “역사는 일어난 일을 밖에서 기록하는 것이고 회고록은 일어난 일을 안에서 기록하는 것”이란다. 이 말을 이해하면 홉스봄이 자서전을 일러 “세계사가 경험의 내용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그린 거라 말한 뜻을 눈치채게 된다. 그래서 <미완의 시대>는 홉스봄의 바람대로 두 층위로 읽어나갈 수밖에 없다. 전문가라면 역사가로서 “자기 몸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바깥에 설 줄 아는 능력”이 어떻게 드러났는가 주목해야 하고, 일반인이라면 “다른 식으로는 살아갈 수 없었을 한 인간의 편력을 통해 세계사에서 가장 색달랐던 세기를 소개하는 책”으로 읽으면 된다. 나는 마땅히 후자의 독서법을 권하는데, 이것이 홉스봄이 자서전을 쓴 진정한 이유이기도 해서다.
 
<미완의 시대>를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홉스봄을 괴롭혀온 대중적 호기심의 덫에 걸리고 만다. 그는 왜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왜 아직도 공산주의자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서전의 많은 부분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할애되어 있지는 않다. 세 대륙에 걸쳐 살며 한 세기를 거의 다 산 인물답게 자서전의 내용은 풍요롭다. 역시 그는 20세기의 증인이다. 그럼에도 앞의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단지 괴팍한 이력을 자랑하는(?) 홉스봄을 이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그것은 지난 역사에서 왜 그토록 많은 젊은 지성들이 공산주의를 신봉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소로가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것과 더불어 공산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그들에게 도대체 어떤 뜻이 있었는가 하는 물음은 20세기를 이해하는 열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놀랍게도 열여섯의 나이에 공산주의가 되었다고 밝혔다. 아무리 올되더라도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그런 의구심에 대해 그는 1930년대 초반 베를린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마르공화국이 몰락의 조짐을 보였고, 그 결과는 파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모두가 타이타닉호를 타고 있었고, 곧 빙산에 부딪힐 것이다. 관심은 하나로 모였다. “누가 새로운 배를 제공할 것인가?” 파시즘의 진군 앞에서 그는 공산주의에 희망을 걸었다.
 
시대배경으로만 그의 정치적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가 공산주의에 매료된 이유는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집단황홀경과 유물변증법이 준 미학적 매료. 앞의 것은 섹스와 대중시위의 차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그는 육체적 경험과 맹렬한 격정이 가장 깊이 맞물린 행위로 섹스와 대중시위를 든다. 둘의 차이점은 섹스는 개별적 경험이고, 대중시위는 집단적 성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섹스의 절정이 남자의 경우 순간에 그치지만 대중시위에서 맛보는 희열은 몇 시간이나 이어진다. 시위가 섹스보다 나은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는 말인데, 결국 파편화한 개별자의 삶을 강요하는 체제에서 집단과의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힘이 그를 공산주의로 이끌었다는 뜻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그 사상의 총체성에 매료되었노라 했다. “무기체와 유기체의 본성을 인간세계와 연결하고 집단과 개인을 연결하고 끝없이 유동하는 세계에서 모든 상호작용의 기본이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예루살렘을 염원하는 소망. 그는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바람직한 삶의 조건을 만들어줄 수 없다고 믿었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임금 노동자의 이익을 지켜주고 사회정의와 국민 복지에 온 힘을 쏟는 대안체제에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신화학자 엘리아데는 마르크스사상을 천년왕국에 대한 염원과 비교한 바 있다. 홉스봄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는데, 공산주의가 그리는 이상낙원은 세 가지 점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다른 열망과 차이가 있었노라 말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자신들의 승리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는 점, 국제주의가 살아 있었다는 점, 비극적인 의식 등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속물근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적 혐오감이 그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었다.
 
홉스봄은 20세기를 일러 극단의 시대라 했다. 그 세기는 “패전의 파편과 허물어진 제국과 경제 파탄”에 둘러싸여 시작해서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혁명과 대량 살상이 일어나는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홉스봄은 공산주의는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는 인류의 배를 지켜주는 바닥짐이라 여겼다. 좌초하지 않고 억압받는 자들이 열망하는 약속의 땅에 이르리라 믿었다. 과연 그랬는가?
 
홉스봄은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남게 된 이유를 소상히 밝혀놓았다. 의혹과 의구심이 없을 리 없건만, 서양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동반자로서 제3세계 국가가 따를 만한 경제발전의 전범으로 소련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노라 말한다. 더욱이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이 다스리는 동독을 냉대하는 나라들을, 민족해방운동보다는 낡은 제국주의를 선호하는 나라들을 지지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한다(그렇다고 홉스봄을 교조주의자로 몰지는 말 것. 그는 인정한다. “공산주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모든 불의와 잘못에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을).
 
그는 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영국 학계에서 불이익을 당했다. 쉰이 넘어서야 정년교수가 되었고, 학술원 회원도 되고 명예박사도 받았다. 결코 자조 섞인 말이라 할 수 없지만, “남들 같으면 내리막길을 미루기 위해 골몰할 나이에 아직도 이루어놓아야 할 일이 많았다”고 되돌아볼 정도다(물론 세계역사학계에서 홉스봄의 위상은 높았다. 그러기에 그는 혹여 주류역사학계에 마르크스주의자가 드물어 자신이 주목받는 것은 아닌지 꺼림칙하다고 말한다. 그는 끝까지 정직했다).
 
그런데도 공산주의자로 남은 데는 이유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존심 때문이라 말했다. 공산당원이라는 멍에를 벗어버리면 얼마든지 잘 나갈 수 있었다. 미국학계가 그를 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냉전시대에 이름이 알려진 공산주의자로 성공해보이려 했다.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싶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기억의 문제다. 그는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20세기에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들을 기억조차 해주지 않고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미완의 시대>에는 중요한 논쟁거리가 숨어 있다. 68혁명에 대한 주류적 평가와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 홉스봄은 1968년 5월 파리에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마르크스 탄생 150주년 기념학술대회가 그곳에서 열렸던 것이다. 현장에서 68혁명의 태동을 지켜본 그는, 상당히 회의적으로 평가한다. 알량한 권위를 쓸어버리겠다는 개인의지, 그러니까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겠다는 젊은 반항은 느낄 수 있으나, 새롭고 더 나은 세상을 이루려는 정치목표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이유다. 물론, 그도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라든가 억압적이거나 부패한 정치체제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안에서 사람들과 개인의 행동 안에 고착된 인습관계를 파괴하는 것”이라면 그 의미를 새롭게 평가할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홉스봄은 전통 좌파적인 시각을 버리지 않는다. 문화적 저항과 항거는 어디까지나 징후이지 그 자체가 혁명의 원동력은 아니었고, 그런 일이 두드러져 보이면 보일수록 정말로 큰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우리의 촛불시위를 분석하는 데도 유효한 이론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소련의 몰락으로 인류의 선택은 확실해졌다. 근대를 이끈 이란성 쌍생아 가운데 형님 격에 해당하는 자본주의의 손을 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행복해졌는가. 그는 1990년에 “자본주의와 부자는 당분간은 겁먹을 일이 없다”고 썼노라 했다. 정말, 그러하지 않았던가. 제동장치가 사라지자마자 이윤의 극대화라는 광란의 폭주를 감행한 것을 일러 신자유주의라 한다. 부자가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고, 부자가 더 부유해져야 그나마 가난한 사람도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협박했던 시대다. 힘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배려와 연대의 손길을 내민 것이 아니라 경멸의 시선을 보낸 시대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신자유주의의 성공이 아니라 그 몰락이다. 신자유주의의 나팔수를 자임했던 사람 가운데 누군가 답변해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사회주의냐 야만주의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회주의에서 등을 돌린 것을 세계는 다시금 후회할 것이다”라는 홉스봄의 ‘예언’에 말이다.
 
홉스봄은 에필로그에서 “나만큼 오래 산 사람은 20세기를 겪으면서 역사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마련이라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겸손히 물어보자. 당신이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은, 20세기의 역사에서 얻은 지혜가 무엇이냐고. 그 답은 이 책의 맨 끝에 나와 있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앓는 이들이 평생의 화두거리로 삼을 만한 말이다.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혁명과 대량살상을 체험한 그는, 공산주의를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가는 인류의 배를 지켜주는 바닥짐이라 여겼다. 공산주의는 과연 억압받는 자들이 열망했던 약속의 땅이었나. 의구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서양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의 동반자로 소련을 지지했고, 소련 몰락 후에도 여전히 공산주의자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는 묻는다. “20세기 자유와 정의를 위해 죽어간 사람들을 잊고 어떻게 인류가 살아갈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