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여성,소수자,인권,가족

2030 여성들의 집회 참여 소감과 참여 계획, 다짐에 대한 목소리

새벽길 2024. 12. 16. 22:00

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2030 여성들의 집회 참여 소감과 참여 계획, 다짐에 대한 목소리를 담았다. 윤석열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지금 시점에서도 의미 있는 목소리들이 많다. 많은 이들이 이런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아래 발췌한 것뿐만 아니라 전문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31620001
“바람에 날려 촛불이 약해질 수 있지만 옆 동지의 불을 나눠 받으면 되니까요” 응원봉과 2030 여성 ‘탄핵 집회 참여 계획’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 2024.12.13 16:20)
이번 일로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있다. 계속 그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더라도 감히 다짐할 수는 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다. 충격을 받고 잠을 못 자고 생활이 망가질지언정 내 일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깃발을 들고 걷지는 못해도 뉴스를 보는 일을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친구들에게 말할 것이다. 시위에 나가는 친구에게 따뜻하게 챙겨입고 몸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되어, 사람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다짐이 그저 입 밖으로 나와 휘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응원봉은 그런 것입니다. 두려움을 떨칠 수 없기에 들고 나간 것입니다. 소녀들은 자신들이 가장 행복했던 기억에 의지해 나간 것입니다. 그 용기들이 다시 모여 국회 앞에 꺼지지 않는 촛불이 된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다시 건강해질 때까지 시위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여성들은 계속 정치에서 여성의 자리를 고민해왔고, ‘충분’하거나 ‘적절’하지 않더라도 계속해서 정치를 말해왔습니다. 그게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흐름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 트위터의 여성들은 정치가 일상과 연결된다는 걸 이미 충분히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탄핵을 외치는 시위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지치지 않고 계속 싸울 거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는 20대 여성도 사회구성원이라는 것을, 또 사회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응원봉을 들고 나간 것뿐입니다. 나의 최애를 지키기 위해, 그에게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에겐 살기 좋은 세상이니까요. 저를 비롯한 여성들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간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진 계속 참여할 예정입니다.
저는 집회가 인생에서 처음이었습니다. 단 한 번뿐인 경험이지만 참여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과정을 젊은 세대들이 몸소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한 명이라도 더 올 수 있도록 주변에 알리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는 한 교수가 여성들이 많으니 남자들 나오라 하며 여성을 무슨 유인용 도구인 양 말했다고 합니다. 촛불행동의 대표는 성폭행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자이고요. 이 뉴스들을 본 이상, 저는 그냥 시위에만 집중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또 장애인, 소수자처럼 같은 시민으로 있음에도 특별히 혐오를 온몸으로 감내해야만 하는 이들의 편에 설 수 있도록 인권 감수성을 예민하게 가져가려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다음엔 주최단체라도 잘 보고 참여하겠지만, 그래도 광장에 나갈 것입니다. 거기서 받은 상처보다,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에 대한 소속감이 더 컸으니까요. 거기서 당신들이 잊은 여자들이 분명히 살아있다고 외칠 겁니다. 내가 두 다리 단단히 딛고 서서 세상에 목소리를 내야 내가 선 땅이 넓어지고, 옆 사람의 땅이 커져서 끝내 광장이 될 겁니다. 혐오와 부정은 언젠가 반드시 소멸되고, 사랑이 반드시 이깁니다. … 우리는 그저 아이돌만 좋아하고 쫓아다니는 ‘빠순이’가 아니라, 누군가를, 인생을,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대로 아는 ‘민주시민’입니다.
긴 싸움이 될 거고, 그 싸움에서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길거리에서 인권을 외치는, 소수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의 문제가 더는 다음에, 밀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차별금지법을 간절히 바라는 퀴어로, 수많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페미니스트로 더더욱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와는 멀어 보이지는, 그 무엇보다 가깝고 감사한 모든 사람의 시위를 응원합니다.
언론에서는 2030세대라고 지칭, MBC PD수첩의 남성 인터뷰이 중점 선정 등 시위 참석 여성을 제대로 호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이 있다. 긍정적인 주제에서는 여성과 페미니스트를 호명하지 않고 부정적이거나 성적인 주제에서만 여성을 가시화시키는 언론 습성도 바뀌어야 한다.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대통령 탄핵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 라는 목적이 큽니다. 저뿐만 아니라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의 마음은 다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집회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지금까지는 나랏일을 논할 때 여성이 뒤로 빠져 있는 게 당연시되었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중심으로 향하기 시작한 여성들은 절대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목적을 위해 투쟁하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그리고 반드시 쟁취할 겁니다.
과거에 각종 집회에 참여하고 연대했던 나와 더 평등한 세상에 살아갈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현재를 살아가고자 참여할 겁니다. 그리고 집회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과 어린이 등 각종 소수자가 참여했다는 거. 그걸 꼭 민주당 등의 정치인들이 각인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길바닥에 앉혀줄 겁니까.. 언제까지 나중에, 탄핵부터 하고, 뭐부터 하고 하면서 미뤄둘 겁니까. 다양한 소수자들의 고혈을 빨아 동력을 마련하고 행진했다면 이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전 지금 당장 필요합니다. 아직도 나중에를 외친다면 제가 관짝에 들어가고 나서도 그 소리를 할 작자들이 널렸습니다. 똑바로 직시하십시오. 누가 연대하여 길 위를 지키고 있는지.
정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따라 결정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다시 시위에 참석한다면 2차 가해자가 무대에 들어설 때 목소리를 높여 반대하고 야유할 것이며, 페미니스트의 발언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직접 항의할 것입니다. 또 무대에서 틀어주는 가요 중 빅뱅, 싸이 등 버닝썬 게이트에 연루된 가수의 노래나, 여성 혐오적인 가사의 노래를 틀 때 즉각 항의할 것입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임. 자유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지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어떤 행동이 ‘정치적’인지, 우리의 지향점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지향점을 어떤 방법으로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개개인 차원에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고 이러한 의견을 수합할 체계적인 조직들(중요! 조직이 아닌 조직들)이 필요하다고 느낌.
지난 탄핵 시위 때도 1020여성들은 시위에 충분히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안티페미니즘뿐입니다. 양당 어느 곳도 여성의 안전과 생명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동안은 국힘을 막기 위해 더민주를 지지했지만 이제는 저를 위해 여성을 위해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성을 위해 시위에 참여합니다. 여성의 목소리가 정치인들의 멱살잡이가 될 수 있단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참여합니다. 2030대 여성의 파워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참여했고 타인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하여 비난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입니다. 또한 현재는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가하고 있는 2030여성들이 조명받고 있는 상황인데, 앞서 민주주의를 이끌어주었던 405060 여성분들, 그리고 역시 집회에 활발하게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주고 계시는, 여성 혹은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다양한 성별을 지닌 퀴어 분들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주길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나라를, 터전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참여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여성들에게는 혐오적인 정치의 끝을 내겠다는 싸움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시위에서 선곡하는 것도 참여한 여성들의 ‘눈치’를 보며 선곡합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존재가 그만큼 확실하게 내비쳐진 곳이 지금 이 시위 현장이 아닐까요.
선하고 의로운 일은 희생과 불편함이 따르지만, 행한 뒤에는 보람과 사랑이 남습니다. 소수의 이익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공생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일에 대해 깊은 영감을 받았고, 더 많은 곳에 용기를 낼 생각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있는데요, “어린 여자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려 돌아온다.”라는 문구가 우리 여성들에게 정말 맞다고 생각해요. 전 20대 초반이고 우리 세대는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을 듣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에요. 결코 그 생명을 잃지 않을 거예요.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목소리 높여 싸워준 사람들에게 이렇게라도 그 빚을 갚고 싶습니다.
목소리가 모여 의미를 전달합니다. 우리는 늘 사고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그 사이에서 좌절할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있지만, 함께하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시위에 참여하겠습니다. 시대를 다시 잃고 싶지 않습니다.
여성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를 부정하며 탄생한 정부의 종말을 목격하고 싶습니다. 모든 혐오와 차별을 이겨내고, 탄압받던 우리가 세력화하는 미래를 기대합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춥지 않습니다. 정권교체 너머의 평등한 세상을 위해 계속해서 광장으로 빛을 들고 나갈 것입니다.
집회에서 노조 깃발과 무지개 깃발이 참 많았는데요 그걸 보면서 나는 정말 많은 연대의 깃에 안락하게 빌붙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같이 같은 목표를 향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짜릿했어요. 추운데 춥지 않고 든든한 연대가 생긴 느낌. 혼자 오셔도 돼요. 같은 목소리를 내다보면 외롭지 않아요.
일은 결국 옳은 길로 이뤄질 것이니까, 연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마음으로 참여할 것 같습니다.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는 투쟁이 됩시다. 바람에 날려 촛불이 약해질 수 있지만, 그렇다면 옆 동지의 불을 나누어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31534001
“내 생애 계엄이 교과서 밖으로 튀어나왔어요”…응원봉과 2030 여성 ‘탄핵 집회 나온 이유’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 2024.12.13 15:34)
아마 윤석열 정부에서는 ‘선량한 시민’이 아닐 나와 내 친구들이 어떻게 미래를 견뎌낼까 너무 무서워졌습니다. 뭘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 당장 집 밖으로 뛰쳐나가 소리라도 악 질러야하는게 아닐까? 손이 차갑게 식고 땀이 흥건해졌습니다. … 제가 침대 속에서 비는 동안 많은 사람이,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경찰과 군대에 맞서고 있었습니다. 그게 감사했고 동시에 부끄러웠습니다. … 나의 살길, 나의 안전할 길을 궁리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그 정도로 무섭지도 않은데 벌벌 떨기부터 한 스스로가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 앞으로 나섰습니다. … 아이돌 팬들은 아이돌의 일정을 따라 함께 모였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볼 기회도 훨씬 많고, 아이돌이라는 취미를 구심점으로 굉장히 친해집니다. 그리고 트위터에서는 오히려 일상보다 정치 얘기를 접할 기회가 더 많고요. 따라서 온라인상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정치적 의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아이돌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나오는 일은 전혀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제 친구들은 급한 마음에 나 홀로 행동을 한 저와 다르게 다 같이 모여서 시위에 참여했더라고요. 오늘 아이돌 인형이 배송 오는데, 도착하면 다음 시위는 저도 친구들과 같이 모여서 인형을 들고 갈 것 같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있다는 자체가 우리가 한 데 묶여있다는 소속감과 안도감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같은 또래 여성들이 주변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든든하고 마음이 푼푼해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곧 우리가 사회를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K-POP의 소비자로서 음악을 향유하고 음악 산업의 발전과 확장에 기여해 온 소비자로서도, 더불어 남성과 동등한 시민(또는 가족, 동료 등)으로서도 결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이삼십대 여성들이, 탄핵 집회에 나서면서 주변으로부터 다른 목소리, 예컨대 칭송이나 감격의 후기들을 듣고 있다는 것이 잠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응원봉의 등장이 민주화 운동의 세대교체 또는 세대 통합과 같아 보여 감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요. 허나 돌이켜 보면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지금껏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옳지 않거나 가치 있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고 무시당해왔던 것일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삼십대 여성인 우리는 항상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사랑을 외쳤고, 우리의 존재가 지워질 법하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손을 번쩍 들었고, 외롭고 힘든 누군가가 있을 때는 응원봉의 불빛을 켜듯 주변을 밝혀 보려 애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지 매번 응원봉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입니다. … 우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집회 주최자가 성범죄 2차 가해자고, 집회 참여 가수가 여혐 가사를 쓴 사람이라는 걸 시위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고 절망했습니다. 7일 서울 집회에서도 페미니스트 운동가분이 자유발언 하시러 무대에 올라왔을 때 주위의 반응이 냉담했던 것까지 떠올랐습니다. 여기에도 내가 원하는 미래가 없구나, 여자는 여기서 또 지워지는구나. 어떤 의미에서는 계엄령 상황을 TV로 지켜본 그 155분, 그리고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느꼈던 것보다 더 극심한 공포와 절망을 느꼈습니다. 서브컬쳐에서 퍼져나가는 (말도 안 되는) 손가락 논란에 정치권, 노동권 아무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것, 인터넷에 만연한 여성 혐오와 여성 범죄, 지지부진한 딥페이크 조사, 일상이 되어버린 화장실 몰카(불법촬영), 생존 자체에 대한 위협. 여자란 이유로 겪어야 하는 이 모든 일들이 계엄령 이전에도, 이후에도 여전할 거란 공포였어요. 혼란스러웠고, 그럼에도 이 나라를 사랑하는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시위에 참여하니 기대에 없던 많은 위로를 받게 되더군요. 나만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 내가 생각한 정의는 틀리지 않았다는걸... 그러니 저에게 촛불집회는 참여해야 마땅한 것. 기회이자 다시 시작입니다. 더는 사람 죽어가는 소식을 접하고 싶지 않습니다. 더는 피해자들의 설움을 외면하고 싶지 않습니다. 촛불집회에는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약자·소수자·노동자 시민들이 각자의 결의를 하고 골이 울리게 저항합니다. 증인으로서 이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정의를 지키려 합니다. 그렇기에 촛불을 든 저는,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두려움을 더는 느끼지 않습니다. 불의를 참지 않는 이들이 함께하기에 외롭지 않습니다.
노래는 살아온 시간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집회에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는 그 모든 노래에는, 각자 다른 색깔로 수없이 빛나는 응원봉 색깔만큼이나 각자가 살아온 삶과 추억이 얽혀 있습니다. 그 사실이, 수십만 개 응원봉의 스펙터클로 눈앞에 시각적으로 현현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같이 쌓아온 기억의 공유가 바로 공동체 의식이었습니다. 그걸, 완전히 사적인 야욕으로 짓밟으려는 게 이번 내란의 수괴였고 국회에 틀어 앉은 채 외면하고 있는 한 줌의 무리였습니다.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나 사람이 많았기에 더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겨졌습니다.
빨리 저의 안전한 일상과 행복한 덕생을 되찾기 위해 탄핵 표결 날 국회로 나섰습니다. 오타쿠라고 해서 정치와 분리된 존재들은 아니에요. 언론에서 응원봉 들고나오는 2030여성을 신기하듯 보지만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강남역 살인사건의, 이태원 참사의 생존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대다수 여성들은 노동자일 것이고요. 대한민국 여성이야말로 정치에 참여해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존재입니다. … 집회에 참여했는데 그냥 퀴퍼 때 보던 사람들 다 모였더라고요. 저는 오타쿠 깃발 만들어 갔는데 원정 공연 때 뵈었던 동지분을 만나서 기쁘고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많은 여성들, 퀴어동지들을 광장에서 만나서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반드시 민주주의 쟁취하고 행복한 퀴어로 늙어서 이 광경을 증언하고 싶어요. 
참여한 후에는 조금 씁쓸한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다른 다양한 발언자들의 연설에는 호응하다가도 페미니스트의 연설에는 내려와라, 등등 야유를 참지 못하고 내뱉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분의 생각에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페미니스트의 의견에 특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기란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 윤석열 정부가 표심을 얻은 방법의 하나는 분명 여성 혐오였고, 그 정부가 실패한 지금 우리는 대선 당시 윤 씨의 여성 혐오 공약과 발언에 대해 비판적으로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현 시국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유권자들은 약자를 짓밟는 권력자를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해당하지 않는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에겐 자신 또한 약자일 뿐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지키는 일조차 욕을 먹는다. 이렇게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페미니즘은 욕을 먹으며 검열당하고 제외된다. 민주주의가 없는 대한민국에게 페미니즘과 장애인, 퀴어, 소수자와 약자는 더 척박한 환경에서 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또 죽을 것이고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금보다 더. 그렇기에 난 국가에 검열당하지 않고 사회에게 검열당하지 않기 위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다수의 공방 참여로 KBS 주변 지리는 꿰고 있다는 여성 팬들, 사전녹화 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추운 거리에서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다는 여성 팬들, 여당 국회의원들이 특정 단어가 들어간 문자는 걸러내는 앱을 사용한다니까 검색에 안 걸리는 단어 만드는 건 오타쿠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는 여성 팬들, 인신공격에도 타격 없는 집단이라 말하는 여성 팬들을 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살아간다는 일이, 특히 여성으로서 ‘팬질’을 하는 일이 어쩌면 끝없는 투쟁의 길을 걸어왔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팬 사인회 들어가기 위해 몸수색을 받고, 매크로 사이에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증명서를 떼가고, 사랑하는 이들이 사랑해주는 팬들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소비자의 권리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이에서 여성들은 강해졌다. 그렇게 전사로 키워졌다. 불의에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을 배워왔던 여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확실히 가서 마음껏 연대하고 오니까 괜찮아졌습니다. 나만 이 상황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확인하고요. 그리고 형형색색의 무지개 깃발도 보니 안심도 됐습니다. 이전 탄핵 집회와 달리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혐오 발언을 하지 않게 막아줄 이들이 나를 지켜준다 생각했으니까요.
집회 현장에서 서로 핫팩이나 led촛불, 간식 등을 나눈다거나 하는 등 챙겨주는 모습에서 문득 ‘한국인들은 정이 많다’는 얘기에서 ‘정’은 ‘한에 대한 공감’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따뜻하고 동시에 슬펐다. 이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모이는 순간이 아닌 평소에도 서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눌 수 있는 세상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내 손엔...비싸게 주고 산...바람에 꺼지지 않는 빛나는 도구가 있었고, 나라 꼴을 보니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응원봉 들고 나와서 튀는 행동 아닐까? 콘서트장이냐고 뭐라고 할까(헬조선 생활 3n년차 자기검열 max)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 응원봉을 보시고 이거 어디서 사냐, 너무 좋다 물어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보면서..귀엽기도 했고, 다른 팬덤들의 수많은 응원봉을 보니, 2030 여성들 갑자기 멋있고 막....든든하고 막.... 외롭지 않고....서로의 불빛이 되는 게 멋졌다. NCT 응원봉이 네모난 이유가, 도시의 꺼지지 않는 창문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 그런 건데... 어두운 밤 국회 앞에서 이 불빛들을 보니 그 의미가 다시 생각났음. 탄핵당할 때까지 절대 우리는 꺼지지 않아!!! 농담으로, 최애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고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지만, 막상 시위를 나와보니까, 소중한 응원봉 품에 안고 뛰쳐나온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졌다. (우리가 잘 살면 최애도 잘 살겠지)
탄핵 시위의 주축인 여성을 비난하고 차별하는 목소리가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점차 줄어갈 것이라고 기대하며, 탄핵 및 국민의힘 당 해체, 그리고 내란 주도 세력들을 끌어내릴 때까지 여성으로써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깃발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주변 여러 여성분들이 핫팩이나 간식을 서로 챙겨주고 친구와 장갑을 나눠 끼며 구호를 외치는 등 감동적인 순간들을 보면서 더 오래 버틸 수 있겠다, 계속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습니다. 지난 주말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또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나보다 더 이른 시간부터 추위에 떨며 그곳을 지키고 있는 분들께 작은 보탬이 안되면 평생을 죄책감을 느낄 거 같았거든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죄스러운 기분이었습니다. 표결에 참석하지 않은 그자들은 최소한의 죄책감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뒤늦게라도 그곳에 함께 서 있을 때, 조금이나마 저는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비겁하지 않았고,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서 분노가 있나 봐요. 애정도 없었다면 분노도 없었겠죠. 제발 우리의 목소리가 닿길 바랬어요. 그동안 일구어 놓은 민주와 자유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참여했을 때는 제 나이 때 여성분들이 많더라고요. 아 다 같이 한뜻으로 나왔구나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이곳으로 나왔구나 연대감을 느꼈어요. 좌절하더라도 회의감이 들더라도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느꼈어요. 목이 튼튼한 편인데도 노래방에서도 2시간 하면 목쉬는데 집회에서는 간절해서 그런지 집에 갈 때까지 계속 소리 지를 수 있더라고요.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도 성장한 데다가 10년 넘게 케이팝을 사랑하는 20대 여성으로서 저번 주에 유난히 돋보였던 응원봉 물결에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또한 당장 힘을 보태지 않으면 젊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만큼 커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릴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위에 참여해 그 어느 때보다 응원봉을 세게 흔들었고, 팔이 아프고 손이 얼어붙더라도 멈추지 않고 흔드는 행위를 볼 누군가가 저처럼 힘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그때그때 손에 든 건 다르지만, 이번에는 건전지만 넉넉하다면 꺼지지 않는 응원봉을 들고나왔어요. 박근혜 탄핵 시위처럼 우리는 목소리 높여 외쳤고, 그때처럼 즐겁게 시위하며, 좌절되는 순간마다 분노하지만 다음을 도모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박근혜 탄핵 당시 붉어졌던 여성, 그리고 소수자 혐오 문제 등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사태를 보면서 무력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그렇게 화를 내면서도 여전히 퇴근하고 시위 장소로 향하지만요.
20대 중반인 제게 민주주의는 공기처럼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가 한 번도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공포를 느낀 이상 참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6년 촛불집회 때는 수험생이라는 핑계로 참여하지 못했기에, 시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고, 그들이 모두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다는 사실을 접한 뒤 두려움이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참여한 뒤에는 생각보다 정말 젊은 여성들이 많아서 놀라움과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도 21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보다 어린 소녀들이 추운 겨울날 다른 것도 아닌 나라를 위해 연대한다는데 시험이 뭐 별건가요. 재수강하면 되고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됩니다. 나만 집에서 편할 수 없었고 어떻게든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주말 집회에 다녀온 후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탄핵을 외치는 수많은 케이팝 팬들, 촛불을 든 제 또래의 여성들,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을 보고 연대감을 느꼈고 우리가 바꿀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응원봉과 저와 같은 여성, 소수자를 보고 이건 단순한 탄핵 집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박근혜 탄핵 때 수많은 혐오 표현들과 여야불문 계속된 성폭력 사건 고발이 이어진 기억이 납니다. 또 민주당 정권에서 끊임없이 소수자를 지웠던 것을 기억합니다. 페미라는 이름이 욕이 되고 여성혐오범죄가 막연한 사회를 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내란으로 규정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나의 마음을 보태고 싶었고, 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도 계속해서 집회를 하는데 언론은 너무 서울만 주목하고 서울에서 하는 집회만 집중하는 꼴이 너무 싫어서 일부러 더 지역의 집회에 가서 머릿수를 채우고 싶었다. 참여하니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마음이 든든했고 자신의 정체성 중 하나인 덕질하는 것들을 들고 와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게 이렇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었다.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를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더 나은 나라를 위해서 나왔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뜻으로 나온 시위 현장은 나라 정세와 정반대로 너무 따뜻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에서는 추운지도 몰랐습니다.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온몸이 떨리더라고요.. 따뜻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걸 몸소 느꼈네요!
집회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외치는 여성들의 연설에 저를 포함한 많은 2030 여성들이 함께 환호하고 대답하는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직접 와닿았고 이는 정말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정말 나이 불문하고 여성이 많았습니다만, 여성들의 참여를 지우고 ‘청년들’, ‘MZ들’이라 표현하는 다수의 기사들에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집회에서 자유 발언 들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참 많이 제대로 잘 살고 싶어하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살아갈 힘이 생겼어요.
제가 챙겨간 팻말을 보고 초콜릿과 육포를 나누어주시며 말을 걸어주신 여성분들과 퀴어 깃발을 들고 나오신 분들 덕분에 끝까지 있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투표 결과를 듣고 허무했지만 안 부끄럽냐며 큰 소리로 외쳐주신 여성분들과 시위가 끝나도 지하철에서까지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신 분들 덕에 허무함이 가시고 다시 힘낼 수 있게 됐습니다.
탄핵이 부결되었지만, 그것보다 광장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고, 여성들이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생각해요. … 단순히 2030 여성들이 촛불집회에 많이 참여한 것 외에도, 2030 여성과 기성세대 운동권 사이에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 이번 집회 때 ‘민주노총이 길을 열겠습니다’라며 경찰을 밀고 시민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잖아요. 친구가 저에게 먼저 이 영상을 보내면서 민주노총을 칭찬하더라고요. 민주노총과 2030 여성들은 분명 다르지만, 달라도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이 보여요. 여전히 성평등한 사회,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사회가 되려면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함께 투쟁할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