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의 신경아 교수 인터뷰는 이번 12.3 내란 사태 이후 광장으로 쏟아져나와 아이돌 응원봉을 흔들며 시위의 주축으로 떠오른 것으로 알려진 청년 여성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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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페미니즘 장벽 무너뜨리고 보편화시킨 일등 공신"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박상혁 기자 | 2024.12.23. 05:01:20)
[인터뷰]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上
2세대 여성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1978년 동일방직 '똥물 투쟁'을 시작으로 50년 가까이 여성 운동 현장과 대학 강단을 오가며 이론과 실천을 이어 온 그에게 2024년 겨울 국회의사당 앞은 특별한 장면으로 기억될 모양이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응원봉을 들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는 청년 여성들. 그들은 과거처럼 전체 운동에 '복무'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히 광장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신 교수는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지금의 청년 여성에 대해 "페미니즘을 삶의 방식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나타난 최초의 세대"라고 했다. 이 신세대를 만들어 낸 1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윤석열 대통령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저 말이 정말 맞나' 의구심을 갖게 하면서 오히려 평범한 여성들이 각성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의 우려대로,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윤석열 정부는 결국 제 명을 반으로 단축시켰다.
신 교수는 윤석열 정부뿐 아니라 이전 보수 정부가 자행했던 백래시 시도에도 주목했다. 그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여성부 폐지를 시도하며 이전 정부의 성과였던 여성 정책들을 후퇴시켜 지금 청년 여성들의 엄마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결과가 바로 지금 사태를 초래한 배경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청년 여성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이들의 '엄마'다. 이 엄마들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다. 그때는 페미니즘 교육을 막 1000명씩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다 어디로 갔나. 일터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딸에게는 '너는 네 인생 살아라'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일찍 막을 내리게 된 상황이 된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부메랑 효과,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한다."
그는 청년 여성들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로 부상한 지금, 여성들의 정치 세력화를 독려하는 동시에 청년 남성이 고립되지 않게 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다만 여학생들이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을 때 피해자는 여성도 있지만 남성도 있다.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 남자들은 인간의 친밀한 관계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굉장히 불행한 현실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굉장히 우울하다. 자살률이 높다. 만약 그들에게 정말 따뜻한 관계,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그들을 붙잡아줄 수 있을 텐데, 자기를 붙잡아줄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다음은 신 교수와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신 교수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번 편에서는 여성 운동의 역사, 보수 정권의 백래시, 다음 편에서는 동덕여대 사태와 '민주당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대화를 실을 예정이다.
"민주주의에 예민한 여성,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
프레시안 :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직접 참여했나.
신경아 : 물론이다. 주말 집회뿐 아니라 여성들 시국 선언할 때도 가고, 그 전 집회들도 자주 갔다. 페미니즘은 실천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이 현실에서 본인 의지만으로 깨기 어려운 구조적인 장벽이 있다. 그걸 깨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힘을 모아 연대해야 한다. 페미니즘의 역사도 그러했다. 여러 장벽을 뚫어온 역사가 결국 현실을 변화시키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것을 설명하고 전략을 찾기 위해서 마련하는 게 이론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시위를 나갔다. 여성학자로서, 사회학자로서 필수적인 의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 어느 때보다 이번 탄핵 집회에서 젊은 여성의 참여도가 높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 몸소 체감했나.
신경아 : 그렇다. 집회를 매일 나간 것은 아니지만, 처음 갔을 때부터 청년 여성이 많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물론 역사적으로 따져 보면 이미 2008년 미국 소고기 수입 파동 때 '촛불소녀'와 유아차 부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도 여성의 집회 참여는 익숙한 것이긴 한데, 이번에는 유난히 더 그런 것 같다. 단순히 수가 많은 것도 있지만 청년 여성이 문화를 바꿔놓았기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로서 이번 집회에 2030 여성 참여율이 높은 이유를 분석해달라.
신경아 : 2008년 10대였던 촛불소녀가 20대 때는 박근혜 탄핵 집회에 나왔고, 지금은 30대가 되어 윤석열 탄핵 집회를 이끈 것이다. 정치·민주주의에 대한 여성의 민감성에 대해 나는 이렇게 비유한다. 여성은 '광산의 카나리아'라고. 광산이 무너져 산소가 부족하고 결핍되기 시작하면 카나리아들이 먼저 죽거나 알아채고서 갱을 탈출한다. 여성이 그러한 역할을 해왔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을 때 그걸 가장 먼저 예민하게 알아채는 그런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멀리 가면, 1979년 YH 사건이 있다. 그때 10대 여성 노동자들이 몸을 던져 싸웠고, 그 일이 결국 18년에 걸친 장기 독재를 한 박정희 정권을 몰락시킨 도화선이 됐다.(☞관련기사 : "깨질 거면 크게 깨지자" 여성들의 결의, 유신 붕괴의 도화선 되다 ) 최근으로 오면 2016년도 마찬가지였다. '강남역 살인 사건'이 2016년 5월에 일어나고 많은 여성이 강남에 모였다. 물론 남성들도 많이 있었지만 당시 여성이 중심이 됐다. 그 흐름이 9월, 10월까지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려 이화여대 시위, 광화문 시위로 이어져 박근혜 탄핵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미투(MeToo) 정국이 열렸다. 한국 사회 민주주의와 관련한 주요한 흐름, 중요한 사건, 중요한 장면마다 항상 여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년 여성들이 아주 집단적으로 등장해 집회 문화를 새롭게 바꿔버리지 않았나. 나에게는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기성세대, 특히 중장년 남성들 가운데서도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해오신 분들은 엄청나게 새로운 현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그분들께 '앞으로도 좀 더 관심을 가지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지금의 청년 여성은 집단적으로 페미니즘 받아들인 최초의 세대"
프레시안 : 여성 운동이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었음에도 유독 이번 집회에서 젊은 여성의 참여율이 높았다면, 그것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 차원으로 볼 수 있다고 보나.
신경아 : 그렇다. 윤석열 정권의 반(反)여성 정책에 대한 거부 반응이 표출된 것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반페미니즘 경향이 심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러한 기조는 2000년대 이후 보수 정권의 일관된 흐름이기도 했다는 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배경을 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여성 운동은 1987년 민주화 이후 1990년대 들어 성과가 나타났다. 남녀고용평등법이 만들어졌고 가정폭력 관련 법들도 새롭게 바꾸고, 2000년대 들어선 여성부가 신설되고 성매매방지법도 만들어지면서 87체제 성과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문제는 87년 체제를 만들어낼 때 민주화 세대 안에서 여성의 위치라는 것이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았다. 여성들은 분명히 굉장히 여러 가지 방식으로, 노동이나 문화 운동, 또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같은 인권 세력으로 참여를 했지만 그것들이 하나의 여성 운동으로 명명되지는 않고 어머니들의 운동, 노동자들의 운동으로 여겨졌다. 여성 운동은 늘 부문 운동이라는 굴레에 갇혀 있었고, 항상 전체 운동에 '복무해야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 인식 속에서 여성은 자칫 잘못하면 분리주의, 분파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해야 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성 정책이 국가 정책의 굉장히 중요한 기조로 부상했다. 여성 운동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분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들어가서 페모크라트(femocrat; 국가 관료조직 안에서 일하는 여성)로 활동을 해서 제도적인 개선을 이루어낸 것이다. 사실 당시에는 미진하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엄청난 성과였고, 그때가 (여성 운동·정치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다. 여성 정책이 황금기를 맞이하자 반작용으로 소위 말하는 보수당에서는 여성 의제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990년대까지는 시민사회가 가장 앞서고 그 다음엔 민주당이 따라오고, 보수당도 같이 협력해왔다. 가정폭력방지법 같은 것도 보수당에서도 같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당과 보수 계열 정당의 격차가 커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 이명박 정부의 등장이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명박 정부 때도 초기에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시민사회, 여성계 반대가 겨우 막았다. 이명박 정부가 여성에게 한 일 중 가장 나쁜 것이 낙태법이었다. 여성도 남성도 거부해서 수십 년간 사문화되어 있던 법을 가지고 와서 실제 낙태 금지를 시키면서 피해 사례가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낙태 금지법을 다시 가져온 게 일종의 '백래시'인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성과를 공격한 셈이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페미니즘 리부트'가 시작됐다. 2015년경에 학교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사건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너무 힘이 없으니 그 전까지는 침묵을 강요당하고 살다가 온라인을 통해 이를 고발하는 목소리들이 어느 순간부터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시기, 한국 정치에서 매우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윤석열 씨'보다 더한, 이준석이라는 사람이 남성들의 표를 끌어모으며 정치권 전면에 등장했다. 이준석은 내용은 없는데 남성들을 자극시켜서 자신의 지지 기반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득을 봤다. 그러다가 어느 날 국민의힘 대표가 되고, 같은 당 대선 후보였던 윤석열 씨는 갑자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SNS에 공약인 양 올렸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상징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누구도 설명하지 않고 단 일곱 자만 올렸다. 이준석이 어느 방송에 나와서 그랬다고 하더라. '내가 그런 걸(여가부 폐지를 SNS에 올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말을 던져버린 것이다. 누가 어떤 계기로 그런 공약을 내세웠는지 나중에 파헤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대선에서 0.73%p 차이의 아주 작은 차이로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는데, 비전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데다가 처음부터 인기가 별로 없었으니 자신의 지지 기반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 지지 기반 중 하나가 극우였고 또 하나가 청년 남성이었다. 그래서 계속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하고, '무고죄 폐지'를 던졌다.
그러고 나서 지금 2년 반이 지났다. 그동안 학교 교과서에서는 아예 성평등이라는 말이 사라졌고, 여성가족부는 거의 식물 부서로 전락했다. 특히 여가부에선 성평등과 여성 노동 관련 예산을 없애버려서 그간의 성과를 무너뜨리는 상황이 되었다.
다들 먹고 살기 바쁘니까 페미니즘에 대해 특별한 의식이 있는 청년 여성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데 그런 사람들마저 여성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으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데 저 말이 정말 맞나' 이러면서 오히려 평범한 여성들이 각성을 하게 돼버렸다. 사실 여성가족부 하면 '게임 못 하게 셧다운하자'고 했던 일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부처인데, 지금의 청년 여성은 윤석열 때문에 여가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 응원봉 들고 집회에 나온 청년 여성들은 과거처럼 주체성을 갖고 페미니즘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집단적으로 각성해서 페미니즘을 받아들이게 된 최초의 세대라고 본다. 윤석열이 페미니즘에 대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보편화시킨 일등 공신이 된 셈이다.
참고로, 나는 2030 여성이라는 표현 대신 청년 여성이라고 표현한다. 2030은 단순한 생물학적 나이라고 생각하고 청년이라고 하는 건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동시대에 중요한 역사적 경험을 한 역사적 세대의 개념이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처럼 지금의 청년 여성들이 그런 세대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술적으로는 청년 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합하지 않나 생각한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 넣은 부메랑 효과"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이 페미니스트 탄생을 부추겼고, 그 페미니스트들이 윤석열 정부의 몰락에 기여했다고 봐야 하나.
신경아 : 연구자들이 좀 더 연구를 해봐야 하겠지만, 윤석열 씨가 처음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을 때,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나는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린 정부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했다.
여가부 폐지 공약, 성평등 정책 폐지, 교과서에서 성평등 삭제, 이런 게 사실은 10대 여성들이나 20대 여성들에게는 더 문제로 문제적으로 와닿을 수 있다. '이 정부는 여성은 밟고 간다'는 하나의 시그널(신호)로 느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 전반에서 여성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제도들이 아주 미미하지만 시행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시그널을 국가가 준 것이다. 그럼 일반 기업에서도 채용이나 승진 등 인사를 할 때 여성에 대한 고려 없이 사업주 마음대로 선발하고, 출산이나 육아휴직 제도도 기대하기 어려워지지 않겠나.
그리고 젠더 폭력에 대해서도 국가가 관심 없어 보이니까 계속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정부 들어 관련 통계에서 수적 증가가 나타나기도 했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22년 직후부터 수적으로 젠더 폭력 피해 사례가 늘어난다. 여성 혐오하고 아주 밀착돼서 나타나는 것이다. 화가 나서 죽이는 여성 혐오에 기반한 폭력은 굉장히 치명도가 높은데, 그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대응하려고 하는 의지도 없어 보이니 여성들이 분노가 차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청년 여성들이 각성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이들의 엄마 때문이다. 이 엄마들이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이 많다. 1990년대는 한국의 대학사에서 가장 황금기였고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온 문화 부흥기 시대였다. 성평등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때는 페미니즘 교육을 막 1000명씩 들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이 다 어디로 갔나. 일터에서 나와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딸에게는 '너는 네 인생 살아라'고 한다. 실제로 지금 청년 여성들은 집단적 비혼이나 비출산이 반사회적이라고 공격 받으면 '우리 엄마가 그렇게 하랬는데요'라고 한다. 지금처럼 윤석열 정부가 막을 내리게 된 상황이 된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들을 집으로 밀어넣은 부메랑 효과, 자업자득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프레시안 : '촛불 광장에 여성이 많이 나온 게 뉴스가 아니라 반대로 청년 남성들이 안 나온 게 그게 뉴스'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신경아 : 나도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사실 내 수업을 듣는 남학생들은 굉장히 적극적인데 친구들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친구들이 별로 안 나가려고 한다고 하더라. 일단 이번 사태에 대해 말 자체를 안 하려고 하고, 광장 나가는 건 더욱 회피한다고 하더라. '회피'라는 말을 썼다.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지지한 정치 세력이 너무 무참한 행태를 보여서 실망스럽다는 것이다. 이 청년들도 자신이 지지한 이들이 민주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는 걸 안다. 그래서 배신감, 분노감이 드는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그걸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 내지는 불편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 우리 모두 대선 때는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지 않나. 첫 번째 선택은 잘못할 수 있다. 두 번째 선택의 기회, '세컨 찬스(second chance)'가 있다. 그때 좋은 선택을 하면 된다. 대신 이번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해봐야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광장에 나와보면 더욱 좋고.
우리 학생 중에 3일 밤에 여의도에 간 친구가 있었는데 남성들이 너무 없어서 속상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미안해했다. 확실히 초반에는 청년 남성 참여가 낮았다. 그런데 내가 영상도 자주 찾아보고 비교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게 보인다. 탄핵 표결 때도 1차 때보다 2차 때는 남녀노소 다 많이 나온 게 눈에 보였다. 청년 남성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언론에서 남성이라고 호명하는 그 남성은 과연 누구인가. 청년 남성 가운데 일부가 여성을 혐오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제 수업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 제 수업에 남학생들이 많은데, 군 가산점제에 대해 토론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아무도 찬성을 안 했다. '이미 위헌으로 판단이 끝난 사안을 왜 끄집어내냐. 우리가 왕조시대로 돌아갈 필요 없지 않나. 토론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청년 남성들 가운데 일부를 제외하면 성차별 문제에 대해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본인이 남성으로 태어난 것도 별로라고 생각한다. '왜 남자로서 출세를 해야 해? 생계 부양자가 돼야 돼? 케이(K)-장남 너무 싫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는 페미니즘 공부를 해본 부류다. 뭔가 짧지만 강렬한 접촉이 있었을 때, '조우'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냥 친구 또는 여자친구를 통해 페미니즘을 조우하면서 굉장히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많은 남성은 여성과 잘 지내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한다. 다만 여학생들이 믿을 수 없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결국 안전하지 못한 사회를 만들었을 때 피해자는 여성도 있지만 남성도 있다.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 남자들은 인간의 친밀한 관계 같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굉장히 불행한 현실이다. 지금 청년 남성들이 굉장히 우울하다. 자살률이 높다. 만약 그들에게 정말 따뜻한 관계, 친밀한 관계가 있다면 그들을 붙잡아줄 수 있는데, 자기를 붙잡아줄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
내가 언제 여론조사 하는 분이랑 굉장히 격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분이 '정당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왜냐고 물어보니, 여론조사를 할 때 항목에 민주주의·페미니즘 등등을 넣어놓고 '당신이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이념 순으로 고르라'고 했더니, 그 결과 페미니즘은 제일 싫은 것 중에선 위에서 두 번째, 좋은 것 중에선 끝에서 두 번째 안에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묻지 말고, 당신은 성폭력에 찬성하십니까' 이렇게 한 번 물어보라고 했다. 누가 찬성하겠냐고. 워낙 페미니즘 용어가 왜곡돼서 '나 페미니스트'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 많지 않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를 물으면 반대할 사람 많지 않다.
그리고 여성 혐오한다는 이들도 아무 데서나 대놓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학에서만 봐도, 나 같은 선생이 있을 땐 대놓고 표현 못 한다. 그런데 '여성이 드세다, 이대남 불쌍하다'고 말하는 교수 수업에서는 눈빛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하는 그런 환경이 혐오와 적대 감정을 키우는 것이다.
프레시안 : 여성의 정치 세력화에 의미를 부여하다가 자칫 성별 갈등을 만들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신경아 : 그럼에도 일단 여성은 정치 세력화가 되어야 한다. 그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모든 운동은 중심을 주체 세력은 있어야 한다. 주도 세력이 있고 거기에 함께 연대하는 세력이 있다. 이번 집회에서 주도 세력은 분명히 청년 여성이었다. 청년 여성들이 역사상 최초로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로 지금 이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청년 남성들은 옆에서 지지하고 연합하면 된다. 청년 여성들을 세력화시키는 작업과 동시에 청년 남성이 고립되지 않게 하는 작업을 동시에 병행해 나가야 한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언급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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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탄핵 집회 이색 깃발들은 '제3의 세력', 민주당에 대한 경고" (프레시안, 서어리 기자/박상혁 기자 | 2024.12.25. 04:59:59)
[인터뷰]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下
'전국 집에누워있기연합', '전국 치즈냥 연구회'.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응원봉만큼이나 주목받았던 재치 있는 깃발들. 언론은 깃발 문구가 보여주는 해학성에 주목했다. 사회학자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는 그 재기발랄함 속에 숨어있는 결연한 태도를 읽어냈다.
"'우리는 윤석열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야. 우리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아니야. 우리를 민주당으로 보지 마'라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제3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신 교수는 특히 이번 집회에서 거대 정치 세력으로 급부상한 청년 여성들에 대해 "공이 어떻게 튈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민주당이 계속 반여성 기조로 간다? 그럼 여성들은 돌아설 것"이라며 "여성계는 이미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못지않게 반여성 기조로 흘러가고 있는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는 "민주당은 자신들의 메시지에 동조해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광장을 만들어 줬을 땐 환호한다. 그런 그들은 여성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은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바탕"이라며 페미니스트와 민주주의자를 분리시키려는 민주 진영 내 움직임을 꼬집었다.
신 교수는 이번 집회 특징 중 하나인 '비폭력성'이 다수 여성의 참여로 인한 여성성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여성의 시위는 비폭력이어야 해' 이렇게 재단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역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점에서 동덕여대 학생들의 집회가 폭력성을 띠었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선 안 된다고도 지적했다. "다수가 분노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분노가 누적된 것이었다면 일정한 파괴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나는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매우 반대한다. 동덕여대 사태는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굉장히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다음은 신 교수와 지난 18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신 교수 사무실에서 나눈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동덕여대 사태와 윤석열 탄핵 집회에 대한 비교 분석과 더불어, 민주당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두루 짚었다. 지난 편에서는 여성 운동과 보수 정권 백래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윤석열 탄핵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민주주의의 보루'라며 칭송받고 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동덕여대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비난받고 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비폭력과 폭력의 차이로 봐야 하나.
신경아 : 동덕여대 사태와 관련해선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동덕여대 사태는 학교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다. 학교 측이 남녀공학 전환 문제 전부터 계속해서 학생들을 무시하고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였고, 그래서 학생들이 터진 것이다. 갈등이 불거졌을 때 그것이 제도화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억누르는 권위주의가 행태가 나타나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폭발해 버린다. 그런데 그 폭발력이 강렬하다. 지금 폭발의 주체가 특히나 열정 넘치는 20대 청년들 아닌가.
동덕여대 사태를 언급할 때 항상 '폭력'이라는 표현이 따르는데, 나는 그 정도로는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명 피해도 없었다. 다수가 분노하기 시작하면, 그리고 그 분노가 누적된 것이었다면 일정한 파괴가 나올 수밖에 없다. 기물이 깨질 수 있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충돌이다. 동상 테러? 이화여대에서도 초대 총장이었던 김활란 동상에 계란 던지고 래커칠 했다. 왜 그땐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충돌을 막을 칼자루를 누가 갖고 있었나. 학생이 아니라 학교다. 학생들이 계속 소통하자고 나오라고 했는데 나오지 않은 게 누구인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방법이 없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협상 테이블에 강자가 나오지 않을 때 약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나는 동덕여대 사태를 폭력으로 정의하는 데 매우 반대한다. 동덕여대 사태는 기성세대가 학생들을 굉장히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본 결과라고 본다.
프레시안 : 많은 이들이 이번 탄핵 집회가 비폭력으로 진행된 이유가 여성의 참여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신경아 : 여성이 비폭력이면, 남성은 폭력인가? 그럼 남성들은 집회 나오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러한 이분법에도 반대한다. 이런 젠더 이분법은 서로에 대한 모욕이다. 그리고 '여성의 시위는 비폭력이어야 해' 이렇게 재단하기 시작하면 여성이 정치 세력화할 수 있는 역량을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여성들도 어떤 경우에는 폭력이 필요하다. 방어하기 위한 폭력은 필요하다. 수많은 여성이 젠더 폭력에 희생당하고 있는데, 여성은 비폭력주의자니까 맞고만 있어야 하나. 미투가 한창일 때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에게 다그쳤던 질문이 '왜 너는 저항 안 했냐', 가정폭력 피해자들한테도 '왜 맞고만 있었냐' 아니었나.
여성이 나와서 비폭력적이었다기보단, 집회 문화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계엄 옹호 세력들이 폭력 문제를 트집 삼아서 걸고넘어질까 봐 조심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프레시안 : 동덕여대 사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사태의 원인이 학교 본부 측의 권위주의적 태도에 있다고 했지만, 남녀공학 전환 이슈에 대한 학생들의 상당함 거부감이 있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신경아 : '여대가 필요한가' 이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자. 여대가 몇 개 더 있지만 일단 동덕여대만으로 좁혀 이야기하면, 동덕여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여자 대학을 선택해서 온 것이다. 보통 '성적 맞춰 가는 거 아니냐' 하는데, 동덕여대와 비슷한 수준에서 갈 수 있는 공학 대학 선택지가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그중에 굳이 동덕여대를 골라서 간 것이다. 동덕여대 학생들 상당수가 여자 대학이 가진 장점을 보고 간 것이다.
만약 아무도 여대를 선택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공학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여대를 선택하고 있다면 그 교육에는 수요가 있는 것이다. '수요자 교육',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란 말 참 많이 하지 않나. 학생을 중심으로 놓고 교육을 생각해보자. 학생들이 선택한 여자 대학을 이렇게 함부로 없애도 되는 건가? 이 중요한 문제를 밀실에서 논의했다는 것 아닌가. 반민주적인 행태다. 그래서 학생들이 분노한 것이다.
대학 사회의 일원으로서 말하자면, 대학은 특별한 공간이다. 사회 밖으로 나가면 오만 종류의 이상한 사람들, 이상한 일들이 많은데, 그런 현실에 부딪히기 전에 민주주의를 미리 학습하고 훈련하는 공간이다. 초·중·고등학교 때는 입시에 매달리느라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하다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민주주의 학습 공간이 바로 대학이다. 그런 곳에서 교육 주체인 학생들이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에 처했는데, 그래서 표출하는 분노는 매우 정당한 것 아닌가.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는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 대학의 다양화 차원에서라도 여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계엄 사태만 해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꼽는 서울대의 법대 나온 사람들이 지금 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어 놓지 않았나. 특정 고등학교 또는 특정 대학의 특정 전공 코스를 밟은 사람들만 모인 세계에서는 반대를 못 한다. 그 안에 서열화가 분명하고, 서열의 힘이 매우 강력할 수밖에 없다. 그 질서를 흐트러뜨리려면 다양해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국 사회의 낮은 생산성이 다 다양성의 부족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데, 이 기회에 다양한 교육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성평등 지표를 보면 여전히 성별 격차가 큰데 해소가 안 되고 있다. 여자 대학이 이런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주체들을 키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리고 왜 여대에만 질문하는가. '여대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나는 이렇게 돌리고 싶다. '공학대학에서 여성의 지위는 어떤가. 공학 대학은 성평등한가?'. 총장·보직 교수·교수 비율 다 남자들이 높다. 그런데 강사 선생님들 가운데는 요즘은 여성이 많다. 그리고 학생은 남녀 반반이다. 이런 환경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는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는 남자가 위야. 남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면화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대학이 딥페이크 온상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공학 대학에서 과연 성평등 교육을 제대로 했는가. 남학생들의 불균형한 젠더 의식을 교정할 수 있는 그런 교육을 하고 있나. 결코 아니다. 그러니까 여학생들이 여대를 가는 것이다. 나 같아도 여대에 갈 것 같다.
"민주당, 여성 표는 원하는데 페미니즘 싫어해…여성들, 돌아설 것"
프레시안 : 지금 청년 여성들이 광장에서 보여준 거대한 정치적 에너지가 어떻게 흘러갈지 좌우할 중요한 기로에 있다. 이 흐름을 어떻게 해야 잘 끌어나갈 수 있을까.
신경아 : 청년 여성들은 이미 잘하고 있다. 누군가 앞길을 막지만 않으면 된다. 결국 우리 삶이 바뀌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하니 정치와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거대 양당 중에 여당은 망하기 직전이니, 아무래도 민주당 역할이 막중하다. 그런데 과연 민주당은 지금까지 여성 운동 진영과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해왔나. 시민사회에서는 이제 여성 운동은 힘이 세져서 여성계 눈치를 많이 본다. 그런데 민주당과 여성 운동 진영 사이에는 많은 불화가 있어 왔다고 본다. 문제가 뭘까. 민주당은 여성의 표는 원하는데, 페미니즘이 싫은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즘은 생물학주의가 아니다. 성 불평등의 해소라는 과업을 실천해 나가려는 움직임인데, 그게 민주당 내에 최근에 매우 정체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도 한 게 많지 않다. 하도 스토킹으로 사람들이 많이 죽으니까 스토킹방지법 만들고 그런 거지, 별로 한 일이 없다. 그런 민주당이 지금 와서 '광장에 있는 청년 여성들을 보니 놀랍다. 감동스럽다'고 한다. 민주당은 자신들의 메시지에 동조해 주고 자신들이 원하는 광장을 만들어 줬을 땐 환호한다. 그런 그들은 여성의 요구를 얼마나 들어주고 있는가. 그것을 판단하는 단적인 잣대가 정당 내 여성 정치 세력을 얼마나 조직적으로 키우고 있느냐, 다르게 말하면 '페미니스트 블록화'인데, 민주당은 그런 노력이 매우 불충분한 상황이다.
2022년 대선 이후에 민주당 청년 여성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한 4~500명 정도 왔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했는데 다들 놀라더라. '페미니즘이 이런 거였냐'고. '우리가 알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내가 더 놀랐다. 민주당의 지지자들조차도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페미니즘을 아마 '워마드'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대학에서도 여성학 교육이 안 되고, 그런데 민주 정당이라고 하는 정당의 당원 교육에서조차 그런 내용이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여성 의제를 개발하고 수렴하고 개발할 의지와 역량을 가진 집단을 키워야 한다.
프레시안 : 이른바 보수 정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 정당의 대표 격으로 간주되는 민주당 내에서도 반페미니즘 기류가 상당히 강한 것 같다.
신경아 : 여기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 안에 1만 개의 페미니즘이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페미니즘의 갈래가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워마드, 메갈을 다 하나로 묶어버리니까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생긴다고 본다.
86세대가 주축인 민주당이 지금까지 페미니즘에 대해 가져왔던 생각은 유시민 작가 말대로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다'는 수준이다. 이들의 의식 속에 여성 운동은 '부문 운동'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은 서구 부르주아 운동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걸 깨뜨리겠다. 여성 운동은 부문 운동도 부르주아 운동도 아니다. 지금 여성 운동은 그 어떤 운동 아래 들어갈 수 없는, 가장 높은 수준의 '프라이머리 아젠다'다.
나는 전태일을 보고, 똥물 투쟁으로 알려진 동일방직 투쟁 보고 여성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 운동가가 대개 여성 노동자 운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87년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세력 가운데 여성 운동 세력이 굉장히 중요한 세력이었고, 또 그 가운데 핵심이 여성 노동자 운동이었다. 결코 부르주아 운동이 아니란 이야기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이제 페미니즘을 부문 운동이라고는 안 하는데, 아예 분리시킨다. '너 페미니스트야? 그럼 민주주의자는 아니겠네, 노동운동가는 아니겠네' 이런 식이다. 생물학주의에 입각해서 여성만 챙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페미니즘 내에 아주 소수의 일탈적인 집단만 생각하고 페미니즘을 낙인찍고 고립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여성들은 모든 반폭력 운동을 해왔고, 통일·평화 운동에도 가장 앞서왔다. 지금은 환경을 넘어 생태 운동으로까지 가고 있다.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쭉 뻗어나간다. 내가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서 모든 약자와의 연대로 나아가는 게 페미니즘이다. 그리고 비주류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그 비주류들이 불편해하는 그것들을 바꿔나가는 게 철학에서 말하는 '진보'다. 진보를 향한 운동과 페미니즘을 분리시키면 안 된다.
페미니즘은 모든 민주주의 운동의 바탕이다. 예를 들어 한 남성이 밖에서는 '민주화 투쟁, 노동 운동' 외치다가 집에 와서는 부인에게 '네가 밥 차리고 설거지해'라고 하면, 그 사람을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은 차별로 만드는 수많은 기제들에 대해 반대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문제의식인데, 그 시작점이 젠더인 것이다. '여성은 광장 어디에나 있었다'고 말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은 민주주의의 현장 어디든 구석구석에서 싸워왔다.
프레시안 : 응원봉 집회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아이돌을 비롯한 팬덤의 정치 집회 참여가 고무적인 현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그렇지 않아도 정치권의 병폐로 꼽혀왔던 팬덤 정치가 더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내 '개딸' 현상도 그런 이유로 비판받아 왔다.
신경아 : 아까 대선 직후 민주당 지지자들 대상으로 페미니즘 강연한 적 있다고 했지 않나. 내가 그때 강연 막판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민주당은 분명히 당신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판단을 잘해야 한다"고. 최근 유입된 2030 여성들이 민주당을 흔드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주류 세력이자 이른바 '노무현 세대'인 4050 세대가 그들을 흔드는 것이다. 4050 주류 집단 가운데 반성평등주의자로 보이는 이들이 많은데, 그들 세력이 '개딸'의 플랫폼을 좌지우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민주당에 그래선 안 된다고 이야기해왔는데, 지금 지도부가 과연 청산 의지가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민주당 내에서 청년·여성 의제 담당하신 분들도 22대 총선 때 다 조국혁신당으로 넘어간 걸로 안다. 그래서 총선 끝나고 내가 어디서 발표할 때 '이제는 우리가 민주당만 바라보지 말자. 다른 당도 좀 보고 투표를 좀 분산시켜서 우리 민주당 안 찍어줄 거라고 한 번 운동을 해보자'고 말했다. 동의하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윤석열이 반여성 정책만 안 했으면 총선 전에 이미 그렇게 운동을 하려고 했다. 민주당이 김준혁 같은 반여성 후보만 안 내보냈어도 나는 200석 넘겼다고 본다. 이번 총선 투표율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안 나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집회에서 응원봉 말고 내가 주목했던 것은 다양한 깃발들이었다. '전국 집에누워있기연합', '전국 치즈냥 연구회', 그런 깃발이 나오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윤석열에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도 아니야. 우리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 아니야. 우리를 민주당으로 보지 마'라는 걸 보여주려 한 것이다. 제3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만나는 많은 여성이 그렇게 생각한다. 민주당은 정말 죽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찍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민주당이 계속 반여성 기조로 간다? 그럼 여성들은 돌아설 것이다. 그리고 여성계는 이미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청년 여성이라는 공이 어떻게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에 촛불 행동 김민웅 논란도 여성들이 굉장히 재미있게 싸웠지 않나. 집회는 촛불행동이 주최하는 데로 가지만, 돈은 퇴진운동본부 쪽에 내고, 이렇게 현명하게 싸우고 있지 않나.
그리고 하나 더. 팬덤은 엄청난 힘을 가진 이들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우상에게 돈 모아 선물 바치고 추종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자기들이 그 우상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트럭 시위, 화환 시위 많이 하지 않나. 팬덤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무서워해야 한다. 이번에 뉴진스, 아이유가 집회에서 '선결제'한 것도 그 때문인 것 아닌가. 그들을 돌아서게 해선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이 아주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싶다.
프레시안 : 이번 집회에서 청년 여성이 크게 주목받으면서 함께 광장을 지키고 있었던 성소수자들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데 대해 섭섭해하는 분위기도 있다.
신경아 :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가운데 약간의 갈등이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페미니스트들 때문이야'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서운함은 정치권을 향해야 한다. 지금 여성들이 주목받은 것은 정치권 남성들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고, 그 시야에 아직은 성소수자가 안 보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제부턴 그들의 눈에 성소수자도 보이게끔 여성들은 같이 싸울 것이다.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도 말했지만 이제 22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을 밀어붙일 때가 됐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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