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네팔 공화국 어떻게 되려나

새벽길 2009. 5. 6. 23:39

 나름 기대하고 있었는데... 역시 투쟁하는 것과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별개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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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공화국 첫돌’…흔들리는 걸음마 (한겨레, 권태호 기자, 2009-05-06 오전 01:31:55)
여·야, 참모총장 해임 놓고 갈등…총리 사퇴
새 연정 움직임…정부 찬·반 충돌 우려
 
지난해 240년 왕정체제를 종식시키고 공화제 국가로 새출발했던 네팔의 민주주의가 1년 만에 연정이 무너지면서 비틀거리고 있다.
 
마오주의 공산반군 지도자 출신인 프라찬다(본명 푸슈파 카말 다할) 총리가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끝에 4일 전격 사임하면서 정국이 혼란 속으로 빨려들었다. 네팔은 지난해 총선에서 승리한 집권당인 마오주의 네팔공산당(M) 소속 총리가 정부를 이끌고 있지만, 의회가 제1야당(네팔국민회의당, NC) 소속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여야가 공존하는 독특한 정부 구조를 갖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제헌의회 총선에서 승리한 프라찬다 총리가 2만명에 이르는 공산반군 대원들을 정부군에 편입시켜줄 것을 육군에 지시하면서 시작됐다. 루크만구드 카타왈 육군 참모총장이 이를 거부하자 프라찬다 총리가 지난 3일 카타왈 장군을 전격 해임했으나, 야다브 대통령은 참모총장 해임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참모총장직 유지를 명령한 것이다. 프라찬다 총리는 결국 4일 사임 의사를 밝혔으며, 5일 수도 카트만두에서는 친정부와 반정부 시위대 수천명이 동시에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제3당인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네팔공산당(UML)은 지금의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뒤 22개 군소정당과 함께 새로운 연립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제2당인 네팔 국민회의당도 새 연정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네팔공산당은 프라찬다 총리의 마오주의 공산당도 새 정부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며 사태 수습과 정국 정상화를 제안했다.
 
프라찬다 총리의 사임 결정에는 네팔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압승한 네팔공산당 정부는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했다. 반군 출신인 네팔공산당은 제3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왕정 철폐, 토지개혁, 군 개혁 등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구정치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했고, 여기에 하루 16시간 이상 정전, 인플레이션 등에 시달리면서 공산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더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네팔 국민들은 (총선 이후) 빈곤에서 벗어날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국민들은 곧 권력남용, 고물가, 연료부족 등과 싸워야 했다”고 표현했다.
 
네팔공산당과 정부는 이번 사태를 ‘헌법적 쿠데타’로 규정하고 참모총장 해임이 관철되지 않으면 새 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이 경우, 공산반군이 다시 무장투쟁에 나서며 내전이 재발하거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야다브 대통령은 새 정부 구성 시한을 오는 9일로 제시해, 안개 속에 쌓인 정국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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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과 부탄의 민주주의 (2008/08/05 17:57)
 
지난 7월에 있었던 네팔의 제헌의원 투표에서 제2당인 네팔국민회의당 소속 람 바란 야다브 후보가 예상을 깨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네팔 제1당인 마오주의 공산당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네팔의 상황을 알려주는데 있어서 아래의 먼슬리 리뷰의 글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탄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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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산맥 중앙에 위치한 세계의 지붕 네팔, 한반도 면적의 약 3분의 2의 크기에 인구 3천만 명이 살아가고 있으며 바로 얼마 전까지 왕정을 유지해오던 나라이다. 우리에게는 히말라야 등반이나 남들과 조금 다른 여행코스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 네팔이 최근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239년 간의 오랜 왕정을 끝내고 마오주의 공산당을 제1당으로 한 공화정 수립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네팔은 지난 4월 10일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치렀다. 24일 네팔 선거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마오주의 공산당이 전체 601석의 제헌의회 의석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217석을 차지했다. 지역구 의석의 과반인 120석과 비례대표 의석의 약 29.3%에 해당하는 97석을 얻은 결과이다. 그 외 우익정당인 네팔 국민의회당이 107석,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공산당이 102석을 차지했다.
 
이번 총선은 수많은 전쟁과 유혈사태를 겪어 쟁취한 것이며, 민중들의 목숨을 건 저항이 만들어낸 성과이다. 국왕의 오랜 독재에 불만이 쌓여온 민중들은 1991년 4월 “국왕 타도”를 외치며 항쟁을 벌였고 그 결과 정당이 설립이 허용되고 국회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국회를 구성한 후에도 새로운 헌법을 만들지 못해 실질적으로는 왕정이 계속 유지되었다. 2006년 4월 마오주의 공산당이 야당과 손을 잡고 국왕의 독재에 저항하는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있었고 마침내 국왕은 국민들에게 권력을 이양한다는 발표를 하게 되었다.
 
제1당이 된 마오주의 공산당 역시 1996년부터 10년 간 ‘왕정 폐지’를 주장하며 무장봉기를 벌여온 ‘반군’들이다. 지방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벌여온 마오주의자들은 전쟁 기간 동안 군사력과 지지세력을 확장했다. 그 결과 2006년 정부군은 이들과 휴전협정을 맺었고, 2007년에는 이들의 의회 진출을 허용하고 국왕의 행정권을 총리에게 이양하는 임시헌법이 발표되었다. 그 후 마오주의 공산당은 네팔 국민의회당과 공동으로 임시정부를 운영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두면서 새로운 헌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마오주의자들은 10년 간의 무장투쟁이 제헌의회 선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평한다. 혁명적 방법을 통해 일반 국민들이 자신의 힘을 알게 되고, 스스로 지배계급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단련된 사람들이 있었기에 평화협정을 맺고 의회에 진출한 후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다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오주의 공산당의 진짜 투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마오주의자들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미국, 네팔과 국경을 맞댄 중국과 인도라는 강대국은 네팔의 새로운 변화를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국내적으로 빈곤을 극복하는 경제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또한 제1당이 되기는 했으나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까닭에 새 헌법 제정과 정부 운영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왕정 폐지를 주장하며 10년 동안 끈질기게 싸워 마침내 목표를 달성한 마오주의자들이 새로운 헌법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어떤 투쟁을 만들어 갈지 주목하게 된다.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스리 리뷰(Monthly Reiview) 2008년 4월호에 실린 네팔 선거 관련 기사와 인터뷰를 번역 소개한다. 부족한 정보 속에서 네팔의 역사적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총 3편의 글로 ①선거 과정과 평가를 담은 ‘네팔 혁명, 무장투쟁이 공정한 자유선거를 가능하게 했다’와 ②네팔 최대 좌파 월간지 물얀칸 전 편집장 샴 슈레스트와의 인터뷰 ③마오주의 네팔 공산당 중앙위원이자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히시라 야미와의 인터뷰다.
 
아래 인터뷰에서 샴 슈레스트는 네팔 국민들이 평화와 변화를 원했고, 마오주의 공산당이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평한다. 또한 투표자의 52%를 차지한 젊은이들과 하층계급이 마오주의 공산당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마오주의 공산당이 10년 동안 벌여온 전쟁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며, 전쟁 외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10년 간의 전쟁이 이번 선거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라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아래 인터뷰에서 히시라 야미는 마오주의 공산당이 선거 기간 동안 왕정에 반대하는 모든 정당들, 특히 좌파 정당들의 연대를 주장했기에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연대를 거절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연대 공산당은 대중들의 지지를 잃었다고 한다. 그녀는 앞으로의 가장 큰 도전으로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꼽았으며, 국내적으로 경제 문제를 꼽았다. 하지만 네팔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매우 높으며, 마오주의 공산당의 조직적 힘이 있기에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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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대신 마오주의 공산당 선택한 네팔①] 무장투쟁이 공정한 자유선거를 가능하게 했다
마오주의 네팔 공산당 중앙위원 히시라 야미 인터뷰
2008.05.15 ㅣ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국왕 대신 마오주의 공산당 선택한 네팔②] 네팔 국민들은 평화와 변화를 원했다
네팔 좌파 월간지 물얀칸 전 편집장 샴 슈레스타 인터뷰
2008.05.15 ㅣ 이수연/새사연 연구원 
 
[국왕 대신 마오주의 공산당 선택한 네팔③] 왕정 반대 세력의 단결 주장한 것이 선거 승리 요인
마오주의 네팔 공산당 중앙위원인 히시라 야미 인터뷰
2008.05.15 ㅣ 이수연/새사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