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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길을 묻다](5)장진호 서울대 사회문제硏 연구원 (인터넷서울신문, 2009-02-12)

새벽길 2009. 2. 16. 05:10
 서울신문의 [진보에 길을 묻다] 기획기사에 진호가 나왔다. 의외이다. 지금까지 학부 동기들 중에서 이렇게 언론에 크게 난 녀석은 없었던 것 같은데... 
 
서울신문이 대체적으로 사민주의 지향을 진보로 보고 이런 지향의 진보적 지식인을 인터뷰하는 것 같았지만, 진호가 나올 줄은 몰랐다. 하긴 그 친구의 전공으로 보아 지금과 같은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분석하고 예측하는 전문가로서 장진호 박사를 빼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기획기사를 준비했던 측에서 그 친구를 추천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충분히 좋은 기사였고, 많이 배웠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 "난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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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길을 묻다](5)장진호 서울대 사회문제硏 연구원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2009-02-1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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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길을 묻다 5] “美·유럽 두 카드 쓰는데 한국은 한 패만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2009-02-11)
엘리트의 일차원적 사고·부자되기 신드롬도 위기 부채질”
 
“미국과 유럽은 두 팔을 쓰는데 한국 정부는 한 팔만 고집하고 있어요.” 장진호(40)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정부나 사회가 1997년 외환위기를 당하고도 그보다 더한 실패와 재앙을 준비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4일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된 데 이어 금산분리 완화, 금융지주회사법, 보험업법 등 ‘금융 빅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그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이 동남아 어느 국가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인 근저에는 지배 엘리트의 무지와 일차원적 사고, 나아가 지성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장 연구원은 “자통법은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와 정확히 역행한다.”며 이들 나라의 지배 엘리트들은 한 팔로는 대외적으로 주창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 쪽에선 필요에 따라 현실주의적인 정책을 펴는 반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납작 업드려 다른 한 팔을 사용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없애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월스트리트 최고경영자(CEO)의 연봉 상한을 도입하고 지난해 말 AIG에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 말레이시아가 자본통제를 밀어붙일 때 성토했던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가 얼마 뒤 당시로선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평가한 사례를 우리 정책 당국자들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장 연구원은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1998년 재벌의 제2금융권 소유를 허용한 것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잘못 진단한 끝에 나온 악수(惡手)란 것이다. 그는 “금융위기에 한국이 더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된 것은 세계시장에 통합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유동성이 원활해진 데도 원인이 있다.”며 만약 재벌에 은행마저 내줄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폐해는 재앙 수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지난해 말 환율 방어에 연기금을 동원하는 등 국민이 노후에 대비해 믿고 맡긴 자금을 쌈짓돈 쓰듯이 하고 있다는 것. 더욱 문제는 지난 10년 간 초국적 금융자본이 국내에서 수익을 챙겨 떠날 수 있게 만든 것처럼 정부가 연기금 등을 동원해 떠받치는 행태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그나마 시민단체·노동계가 간여할 여지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펀드매니저 등에게 운용을 맡겨 거의 ‘조공(朝貢·emperial tribute)’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 부채는 줄었지만 국민경제 전체의 부채는 줄지 않고 오히려 가계는 대출 이자로, 정부는 세금으로 은행을 이중으로 돕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은행마저 재벌 소유가 될 경우 사금고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 성장의 근본적인 동력인 제조업을 기피하고 인수·합병(M&A)으로 머니게임이나 벌여 국민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다. 장 연구원은 이에 따라 “글로벌 스탠더드와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금융주체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준국유화 또는 반(半)국유화 은행의 출범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또 일본처럼 지역 밀착형에 비영리(NPO) 성격의 은행을 시민운동 차원에서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지난 10년간 ‘부자되기 신드롬’이 중립적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연대와 공동체 정신을 사라지게 만든, 보수적인 정치적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장 연구원은 “진보세력은 ‘욕망의 물꼬’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정치세력화를 기약할 수 있다.”고 정리했다.
   
다음은 장진호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4일부터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됐다.법 시행의 의미와 전망,진보진영에 던지는 과제부터 정리한다면.
자통법은 금융기관의 업무 장벽을 없애 금융 허브로 가는 길을 열어주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다른 업종에 있던 금융기관들끼리 한 링에서 싸우게 만든 것이다. 은행 보험 증권사가 자기 영역을 허물고 함께 겨뤄야 하기 때문에 경쟁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쟁이 격화되면 수익성 추구의 강도가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사의 지급결제기능 허용 등은 은행과 증권사간 경쟁 격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동시에, 외국계 금융기관의 국내 진입장벽을 대거 허무는 결과로 금융부문의 초국적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또 경쟁 과정에 탈락되는 기관도 있을 것이고 많은 이들이 구조조정되는 한편,외국의 금융회사들이 국내 영업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 97년 외환위기때 은행에서 일어났던 자본의 탈국적화가 제 2금융권에서 일어날 가능성도 더 커졌다. 자통법이 안고 있는 급진적 규제완화는 미국과 유럽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와도 역행하는 것이어서 진보진영이 이를 지적하고 대안을 마련해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금융위기에 대한 언론 보도를 보면서 사회과학도로서 느꼈던 문제점이 있다면.
금융위기 진행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보도는 성실했지만 왜 위기를 불러왔는가를 시스템의 위기라기보다 관리의 문제로 보는 정부당국의 변명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데 지성의 위기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글로벌 스탠더드에는 비현실적 교조적으로 국가의 정책 엘리트들이 단순히 무지해서가 아니라 이해가 녹아들어 있는 측면이 있다. 지경부 간부들이 판단 근거나 권위의 기반을 외부에서 찾는 경향이 짙다. 이를 만든 미국과 유럽의 정책 엘리트들은 두 팔을 모두 사용한다. 한 팔은 대내외적으로 내세워온 자유주의 이념을 외치고, 다른 팔은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현실적,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월가 최고경영자에 대한 보수 상한이라든가 AIG에 대한 구제금융은 언제라도 국유화 등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일이다. 몇년 전만 해도 사회주의적 짓이란 비판받을 수 있는 내용인데도 최근에는 이를 무시하는 두 팔을 주어진 글로벌 스탠더드에 너무 집착한다. 외부의 권위와 영향력을 업은 지배 엘리트가 영향력을 미친다는 역사적 관성에 따른 것이다. 지성의 위기가 정치사회의 위기와 결합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 금융지주회사법,보험업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금융빅뱅 법안의 처리 전망과 향후 대응, 진보진영이 염두에 둘어야 할 관점들을 요약한다면.
1948년 건국 이후 미군정이 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이식하면서 은행의 민간 소유를 장려했다. 그러면서 재벌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 박정희 군사정권이 산업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해 은행 국유화를 시켰다. 그런데 재벌은 은행을 갖고 싶다는 욕구를 내비치다 1980년대 이후 2금융권을 먹기 시작했고 그것도 모자라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은행을 소유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1948년 이후 1960년대 이전 문제점이 되풀이 되지 않겠는가 걱정된다.
자금 동원력이 커지니까 산업 부문의 경쟁력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돈놀이, M&A를 통한 머니게임에 몰두할 수 있다. 재벌의 사금고화와 산업의 경시가 둘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굳이 제조업에 투자하고 연구개발에 몰두할 이유가 없어진다. 잘못된 보약을 처방해 큰 탈이 날 수 있다. 산업자본으로선 단기적으로 횡재로 비치겠지만 국민경제적 입장에서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외환위기 이후 재벌의 2금융권 소유를 허용했는데 재벌의 과잉투자를 위해 종금사 등이 과도한 외채를 끌어들인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우리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하는 데 작용했다. 2금융권 소유 만으로도 재앙을 불러왔는데 은행마저 소유하게 하면 더 큰 규모의 빚잔치를 불러올 수 있다.
  
●재앙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해법을 제시한다면.
바둑에서 복기를 하듯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에 대해 짚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때 꼭 그런 결정을 해야 했는지,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그 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왔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현안에 매몰되다가 오늘 그런 위기를 불러온 원인을 짚는 데 소홀했다. 사실 어떤 결과가 현실화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니까 꼭 늦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경제가 동남아 어떤 나라보다 급격한 환율변동과 타격을 입었는데 이것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잘못과 연계돼 있다.
신자유주의화, 금융자본주의화, 은행에 의해 자산운용을 더 적극적으로 만들자는 제도의 전환보다 욕망의 전환, 행동방식의 전환도 크게 나타났다고 본다. 일상생활의 금융화가 최근 10년동안 공세적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동남아보다 한국에서 더욱 불안정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국내 경제가 세계경제에 긴밀하게 통합되었다는 측면도 있고 국내 자본시장에 들어와 있는 초국적 자본의 이동이 용이해졌기에 가능한 면도 있다. 최근 10년동안 경제정책에 금융 주도 노선이 관철됐던 배경에는 국내 자본시장의 유동성이 대폭 증대한 데도 원인이 있다. 펀드 투자 붐이 이어졌고 최근 위기로 많은 손실을 봤다.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인해 제도와 법률, 규칙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고와 행동양식의 변화까지 수반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부자되기 신드롬과 일상생활의 금융화로 자산 설계와 재무적인 관심이 생애 설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것이다. 10년간 재테크교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팽배해졌다.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는데 과연 그런가라는 질문을 뒷전으로 밀어놓았다. 부자가 늘어난다는 건 빈곤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부자란 타인의 노동을 평균 이상으로 집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자가 늘어나면서 국민 전체가 잘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집적한다면 가능하겠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부자되기 신드롬이 개인적 자산추구 경쟁으로 몰두하게 만들면서 사회 공동체적 연대성을 파괴시켜왔다. 나 아니면 경쟁자로 파악하게 만들어 사회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보다 개인적으로 탈출하는 전략에 몰두하게 하면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80년대 전태일 평전이 대학가에서 꼭 읽어야할 책이었다면 지금은 워런 버핏이나 잘나가는 CEO의 평전이 팔리는 세태가 의미하는 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위기를 통해 개인적 경쟁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이제 그런 경쟁이 모두를 안정되고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 개인에 도움을 주는 기법이라 하겠지만 정치적 연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연민을 묻어버리고 개인적 생존전략만 추구하게 만드는 굉장히 효과적인 정치 프로모션이라 할 수 있다. 이걸 바꾸지 않고선 진보세력의 정치세력화도 어렵지 않겠느냐 보고 있다. 대중의 욕망의 물꼬를 어떤 방향으로 돌리느냐 이걸 고민해야 한다.
 
자통법을 시행하는 이유도 금융 허브화를 노리는 것인데 이게 뭔가. 결국 외환위기 때 당한 것을 동남아에서 벌어(만회해) 보자 이런 얘기다. 우리가 욕하던 국제적 수탈을 똑같이 다른 이에게 하려는 모순도 포함돼 있다. 서구의 복지국가가 식민지 수탈을 통해 이룩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70년대 서유럽 국가들은 재정 적자의 위기에서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연기금을 초국적 자본으로 바꿔 신흥시장의 배당을 뽑아 지원받는 전략을 썼다. 연금을 시장화하기 때문에 위기에 취약해졌다. 연기금을 시장화하니 불안정성이 높아진다. 신흥시장의 노동가치를 배당 등으로 유출하는 것이니까 노동가치가 자본시장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니까.
  
●금융빅뱅 법안에 그런 내용들이 포함됐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건가.
전혀 내용을 모르고 있다. 심상정 같은 이가 어느 정도 그런 안목을 갖고 있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법안에 대해 무감각하다. 월가 급여를 제한한다는 사회주의적인 규제가 나오고 있다.지금은 상식처럼 받아들이고 있다.월가가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고 그런 공감대가 맞춰질 정도로 위기가 심각한 것이다.유럽도 그런 식이다.우리는 그 정도 규제는커녕 있는 규제도 없애는 판국이다.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아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조금 더 잘하면 되겠지,정신무장을 잘하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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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에 길을 묻다 5] 장진호 “준국유화·NPO 은행 대안으로” (2009-02-11) 
 
●어떤 점에서 지성의 위기인가.
역사의 관성일 수 있겠다고 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와 청나라, 일제시대에는 일본, 해방 이후는 미국으로 엘리트 재생산의 근거를 두어왔다. 자기 눈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권위를 동원할수록 우월한 지위를 얻는다는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란 점에서 역사의 관성이다. 국내 학계가 미국 학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고 미국에서 공부하면서도 학위에 필요한 것만 얻지, 미국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오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 공부했으니 미국을 잘 안다고 택없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관료로 입신하는 데 미국에서 공부한 학위가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관료의 입지를 검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권위를 외부에서 찾는 게 단기간에 더욱 극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교조적으로 추구하게 만든 원인이 아닌가.무조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납작 엎드린다.
 
우파인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은행을 절대 외국인의 손에 넘길 수 없다는 얘기를 한다. 우파지만 게임의 룰을 알고, 만들어본 경험이 있어 두 팔을 쓴다. 강만수 같은 이는 환율주권론을 얘기할 때 1980년대 미국에 가보니까 환율을 조작하더라, 충격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도 환율을 컨트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 규모가 다르고 국제경제적 위치가 다른데 국제적 자본시장이 통합된 과정에 80년대의 일차원적인 사고를 했다는 것이다. 중심부 국가들은 3차원적 사고와 행동을 하는데 우리만 1차원적으로 논다. 우석훈 박사가 인문학의 위기, 철학의 위기라고 말했는데 전적으로 공감한다.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자기 시각이 없다. 국제금융기구나 선진국 지배엘리트들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란 이데올로기를 만들었는지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다. 얼마나 복잡한 정치적 계산과 힘이 얽혀있는지를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고 교조적으로 따른다.
  
초국적 신자유주의 세력과 이해관계가 닿는 것도 있다. 97년 경제부처 수장들의 자제들이 초국적 금융 관련 컨설팅이나 회계법인 등에 영입된다. 고위직 공무원이 GE 에너지부 부사장으로 갔다. 추상적 개념 이상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데 우리 지배 엘리트의 문제가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윔블던화를 주장하던데.
윔블던 효과는 1986년 영국의 금융빅뱅 이후 외국계 은행들이 영국 금융시장의 안방을 차지하게 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영국에서 열리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고 우승 상금을 싹쓸어가는 현상이 금융시장에서 되풀이된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시중 4, 5대 은행에서 윔블던화가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은행 뿐아니라 블루칩 기업도 외국계 자본에 잠식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동남아 어떤 나라보다 심하게 노출되게 된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공공적 관점에서 경제가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시장에 연동돼 금융이나 기업이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면서 대중의 경제를 향상시키는 것보다 주식시장 참여자나 자산가들을 위한 경제구도로 가져가는 데 초국적 탈국적화가 영항을 미쳤다고 보아야 한다. 외환위기때 정부가 은행에 구제금융을 지원했는데 부채는 국민경제적으로 줄지 않았다. 기업 부채는 줄어드는 대신 정부와 가계 부채가 늘었다.이 과정에서 탈국적화된 은행은 이중의 이득을 봤다.
  
●반전시킬 방법은 없나.
정부가 은행에 중기 지원을 많이 하라고 압박하지만 소용이 없다. 정부 말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게 됐다. 은행은 정부 지원은 받되 더 이상 공적인 역할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이익은 주주들이 가져가고 손실은 사회화, 국민들이 메워주는 기형적 구조다. 과도한 민영화 비중을 낮추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 수 있다. 산업은행마저 포스코처럼 됐다면 더 어려워졌을 것이다. 더 이상 은행 민영화를 막아야 할 뿐아니라 국유화된 은행을 만드는 노력까지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은 미국도 AIG를 대마불사시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두 가지 카드를 갖고 있는데 위기 시에는 현실주의 정책을, 보수적인 정권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실행한다. 한국은 한 패만 고집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도 은행 국유화로 자본거래를 통제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는 외환위기때 말레이시아의 은행 국유화를 엄청 때리다가 나중에 당시로선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제대로 하면 인정해주더라는 얘기다. 우리는 너무 눈치를 본다.
 
●금융위기의 충격이 어느 동아시아 국가보다 폭력적으로 나타나게 된 원인은.
외환위기 이후 처리 방법과 분리될 수 없는데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돼 구조개혁이 방향을 잘못 잡았고 그 잘못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 위기가 터져나왔다. 97년 위기의 진단이 잘못됐다는 것은 정실자본주의 문제, 잘못된 규제, 국내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짚었는데 IMF가 주문한 내용에 재벌의 이해관계를 덧붙여 4대부문 구조조정을 실시했는데 이게 규제완화가 됐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금융시장 육성 명목으로 주식투자자가 저금을 빼내 유동성이 증가했는데 국내 자본시장을 세계경제와 밀착시켰다. 외국자본이 시세차익을 얻어내고 탈출하려는 데 국가가 이들이 팔고 떠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일개 헤지펀드 투기세력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공매도하는 데 자금을 대준 기관투자가의 대표가 국민연금이었다. 국민들이 노후 대비로 정부를 믿고 맡겨놓은 돈이 국민경제를 파괴하는 주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연금의 관리 주체가 펀드매니저 등으로 바뀌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대표가 참여했는데 그마저 없어졌다. 국민연금은 공매도 세력에 돈 빌려주고 수수료 더 받았는지 모르지만 환율급등을 불러왔다.
  
국민연금이 해외 사모펀드(블랙스톤)와 합작투자해 헐값으로 자산관리공사(켐코)가 했던 역할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다. 불량채권을 우량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론스타에게 팔아먹는 데 급급했다. 경제가 회복되면서 채권의 가치가 올라 어마어마한 횡재를 챙겨 다시 외환은행에 투자했다. 외환위기 때 가계 불량채권, 중기 대출 채권을 다 팔아버리고 론스타는 잘라서 매각하는 방식으로 했다. 국민경제적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 우려스럽다. 국민연금을 공공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이상할 만큼 논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은 조공이라 할만 하다. 프랑스 경제학자는 ‘Imperial Tribute’라고 정의했다. 주변부 자본주의 국가에서 중심부로 이전되는 잉여차익이나 노동가치를 적나라하게 짚은 것이다. 
 
법무법인 김앤장이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보다 더 많은 납세 실적을 낼 만큼 돈을 벌고 있다. 외국자본이 국내에서 돈을 벌 수 있도록 법적 일을 다 처리하면서 엘리트와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누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등을 다 알려줬다. 그 대가로 지금의 부를 축적했다. 일제시대 이완용이 뭐가 다른가. 노무현 정부때 이런 일이 이뤄진 것을 보면 친일파 청산한다고 해놓고 뒤에선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현재의 잘못은 되풀이되면서 역사는 청산되고 있다고 국민들을 속였다.
 
●은행 소유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은.
새로운 국책은행을 만드는 방안과 국민연금을 활용하면서 비영리(NPO)에 기반한 지역밀착형,사회연대형 은행을 사회운동 형태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시중은행들이 공공성과 거리가 멀거나 역행하기 때문에 그 빈자리는 남겨져 있는 것이다. 지역은행조차 탈국적화에서 안전하지 않다.은 행업에서 공공성 지향을 하도록 촉구하고 압박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지 않느냐. 일방적으로 민영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하는 건 일차원적이다. 이상이 교수가 말한 토종 의료제도처럼 우수한 제도를 금융에서는 왜 만들지 못하는가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규제와 감독이 아니라 은행 소유와 통제 개혁이 논의되어야 한다는 결론이었던 것 같다. 한데 정권이 바뀌거나 국가발전 모델의 틀 자체를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안바뀔 수 있고, 정권 내에서 방향이 바뀌면 틀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의제를 바꾸는 게 중요하다. 물론 정치세력의 관성은 지대하지만 정권교체가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실행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인 대안을 진보진영이 보여야 한다. 관료들도 납득할 수 있게 보고서를 만들어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안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고민이 더 치열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제조업과 1차산업을 포괄하는 비금융업의 재편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최근 일본의 예에서 보듯 제조업의 기반이 건실해야 장기적으로 재생의 여지가 남아있다. 여기에 더해 선진국이 우리와 다른 것은 (정부 지원을 주면서까지) 농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흡수의 안전판이 존재하되 보다 다양화되는것도 중요하다.
  
●미네르바의 경제전망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의 환율정책 등을 구체적 수치들을 가지고 비판하는 점에서는 경청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비판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시장원리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심이 없어 보인다. 현 정권을 심하게 비판하는 것이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차원도 있는 것 같다. 큰 그림은 맞는데 세밀한 부분에서 잘못된 부분도 있다. 정치적 효과를 얻기 위한 대중적 글쓰기에 성공한 경우다. 하지만 기준이 편의적이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문제를 비판할 때는 공공성을 비판하고 다른 때는 시장의 원리를 근거로 비판하는 이중잣대가 없지 않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 수준에서 발빠른 데이터를 제시한 것은 공부 안하는 교수보다 훨씬 나았다고 본다.
 
●미네르바 박모 씨와 신동아 K가 확연히 갈리는 게 중국 경제의 전망에 대한 전망이었다.중국 경제는 어찌될 것인지.
중국 경제는 미국의 경제상황과 분리되어 성장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중국의 내수 성장 시도가 이뤄졌지만 차이메리카라 할 정도로 양국 경제는 연동돼 있다. 경제적 운명 공동체로 보는 것 같다. 1980년대 니치메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과 일본 경제는 한 몸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중국 자체만으로 승승장구하기는 어렵다. 단기적으로 낙관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 폭이 지난해 엄청 커 충격적이었다. 별도로 중국 경제가 잘 나가기는 어렵다.
  
우리 경제도 수출지향적으로 간다면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내수를 진작시켜야 하겠다는 데는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위기에 처한 나라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문제는 내수 진작에 대한 고민이 정부당국에도 있지만 대운하와 도로 건설이라는 견해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 장기적으로 국민경제에 안정과 장기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데 비관적이다.
  
외환위기 10년 동안 내수가 살아나지 않은 것은 양극화에 있다. 소득 재분배가 되어야 한다. 미국도 양극화 문제가 심각했지만 증시 부양 등을 통해 자산 증식이 이뤄져 내수가 반짝 살아나고 대출로 내수를 떠받치고 금융기관 외채 발행 등으로 반짝 진작을 시켰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과가 없었다.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제를 확충하는 한편, 교육과 사회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감세로 인한 재정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민영화나 소유 주식 지분을 매각하는 것인데 레이건 대처처럼 위기를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이후 1998년 1차 충격요법과 얼마나 다르게 이명박 정부의 2차 충격요법이 나올지에 대해선.
1차 충격요법 당시에는 그래도 미국 경제가 한국의 수출을 흡수할 여지가 있었고, 정규직에서 퇴출된 이들의 퇴직금 등 여유가 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자영업마저 위기에 봉착하면 전망이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정권을 교체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궤도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정권의 주체를 바꾸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에 대해 보수와 진보개혁 세력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공유하거나 무지하다. 단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대한 맹종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보다 정치경제의 작동방식에 천착하고 세계의 상황에 대한 ‘현실주의적’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보수정권은 중심부 자본주의 국가의 보수와 달리 권위의 근원을 외부에 두는 경향이 강하다. 개혁자유주의 정치세력도 수사와 달리 여기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고 본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