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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환의 시대] 도쿄대 교수 우자와 히로후미 대담, ‘민영화 만능주의’가 세계 공황의 씨앗 (한겨레, 09-02-13)

새벽길 2009. 2. 16. 14:04
생각한 것에 비해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는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와의 대담 기사. 사실 아직 그가 쓴 저서를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의 글을 하나라도 읽어보았으면 좀 다르게 보게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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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 만능주의’가 세계 공황의 씨앗 (한겨레, 정리 최우성 기자, 2009-02-12 오후 09:27:37)
[대전환의 시대] 도쿄대 교수 우자와 히로후미 대담  
 
<한겨레>가 연초부터 진행해온 ‘특별기획 - 대전환의 시대’ 1부 세계 석학과의 대담 마지막 순서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진보적 경제학계와 비판적 지성을 대표하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와 우자와 히로후미 도쿄대 명예교수의 대담으로 꾸며본다. 올해 나이 여든살의 우자와 교수는 ‘사회적 공통자본’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경제학의 탐구영역으로 끌어들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경제학자다. 우리 주변에는 사적으로 관리되고 시장에 의해 그 가치가 결정되는 일반 재화(사적 자본)와는 달리, 공동체의 건전한 유지·발전을 위해 반드시 사회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공통자본’이 있다는 게 우자와 교수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다. 환경·교육·의료와 같은 영역이 사회적 공통자본의 대표적인 예다. 그의 이론은, 이들 영역까지 자유로운 시장 메커니즘 아래 두려는 신자유주의적 전통과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두 학자의 대담은 지난달 16일 도쿄 시부야의 우자와 교수 자택에서 약 7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담에서 우자와 교수는 과거 시카고대학 교수 시절의 생생한 에피소드들을 풍부하게 곁들여 가며, 세계경제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넘나드는 다양한 주제에 걸쳐 노학자의 생각을 열정적으로 쏟아냈다.
 
이정우 교수(이하 이정우) 지금 세상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 빠져들고 있다. 평생을 경제현상 연구에 매진해온 노학자로서,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느끼는 소회가 무엇보다 궁금하다.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이하 우자와) 현재의 위기상황을 논하기에 앞서 과거 얘기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보고 싶다. 20세기 경제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교황 칙어가 한가지 있다. 바로 1891년 교황 레오13세가 발표한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새로운 것’이란 뜻으로, ‘노동헌장’으로 번역된다)이란 칙어다. 교황 레오13세는 이 칙어를 통해 ‘자본주의의 남용과 사회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경계했다. 먼저 자본주의를 보자.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아래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19세기 영국 공업도시에서의 삶이란 지극히 불안정하고 빈곤한 것이었다. 그러자 사회주의가 그 대안으로 등장했다. 사회주의는 얼핏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종속시킬 위험이 컸다.
 
자본주의 역시 대공황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어야했다. 1929년 10월 뉴욕 증권시장에서 주가가 폭락한 것이 대공황의 시발점이었다. 당시 미국의 후버 대통령이 취한 정책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소득세율을 인상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정부지출을 삭감하는 것이었다. 둘 다 공황을 치유하기는커녕 되레 더 악화시키는 엉터리 처방이었다.
 
90년대 일본 ‘수출 해법’ 가능, 지금은 세계불황…상황 달라, 실업자 ‘농촌수용’ 모색해야
이정우 당시 정통파 경제학에서는 균형예산을 선호했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정부가 허리끈을 졸라매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다. 적극적인 정부 재정정책의 역할에 대한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을 때였다. 케인스 이론이 나옴으로써 비로소 현실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가능해졌다.
 
우자와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 1939년에는 이미 은행이 1만개가 문을 닫았고, 농업부문을 제외하면 실업률이 37%로 치솟으며, 국민소득은 1929년에 비해 절반으로 감소했다. 이런 상황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1차 내각회의를 열어 ‘뉴딜 정책’을 채택했다. 상업은행과 투자회사를 서로 분리하는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TVA: Tennessee Valley Authority) 사업을 통해 미국 남부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개발사업이 펼쳐졌다. 댐, 도로, 발전 등 사회간접자본을 구축하는 내용이었다. 이 사업은 남부에서 시작해 점차 북부로 확산됐다. 그 뒤 2차 대전이 일어나 미국은 독일 및 일본과 잇따라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
 
이정우 미국에서 경기가 회복된 게 뉴딜 정책 때문이 아니라 2차 대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뉴딜 정책은 당시로서는 개혁적인 조처였지만 대법원에서 잇따라 위헌 판정을 받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 아닌가? 그에 비해 2차 대전으로 군비 지출이 늘어나고, 정부가 경제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덕분에 대공황에서 비로소 벗어났다는 평가가 있다.
 
우자와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실제로 뉴딜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기란 어렵다. 미국 대법원은 잇따라 뉴딜 정책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사업은 민간이 할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게 그 근거였다. 그래서 루스벨트는 사업의 주체를 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바꿔 우회전략을 폈다.
 
40년 시장주의가 위기 불러, 부시정권 8년 실책 ‘결정적’, 오바마도 시장과 타협 우려
이정우 지금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이번 경제위기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보나? 대체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시절 시작돼 부시 정권 때 자리잡은 시장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 정책의 실패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듯한데, 이런 평가에 동의하나?
 
우자와 크게 봐서 지난 40년 동안 시장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제도 및 정책이 누적된 결과다. 시장만능주의는 거의 종교적 광신에 가까울 정도로 강력한 신념체계다. 설령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연환경이 위협받는 일이 있을지라도 개인의 기업가적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고 사적 이윤을 최대한 획득할 수 있도록 경제적, 사회적 활동을 확대하는 데서 인간의 행복이 올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다. 지난 부시 정권 8년 동안에는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 부자를 위한 감세라든가 빈민을 희생시킨 서브프라임 대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책적 미숙함에서 위기가 비롯됐다.
 
이정우 미국과 영국에서 레이건과 대처가 각각 집권하면서 시장만능주의가 시작됐다고 보는 통설에 동의한다는 얘기인가?
 
우자와 1970년대 말에 이르러 경제사상의 대세는 이미 케인스주의에서 통화주의로 넘어갔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밀턴 프리드먼 교수의 사상이야말로 시장만능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물론 자유주의적 전통의 뿌리는 좀더 거슬러 올라간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1947년 4월 스위스의 몽페랑에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프랭크 나이트 등 일군의 자유주의자들이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이른바 ‘몽페랑 운동’이라고 하는 새로운 운동을 제창했다. 그 운동의 목표는 한마디로 자유와 평화였다. 이 사상을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사회 공통자본’ 확충 통한 부양책 필요 
이정우 몽페랑 운동의 목표는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스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시장만능주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우자와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은 이들과 분명 다르다. 그의 사상은 자유주의를 넘어서 거의 시장만능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에서는 돈벌이가 중요하고, 기업활동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그는 정부와 사회의 통제는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원래부터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던 교육이나 의료 같은 분야에서도 시장을 형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정우 다시 화제를 미국으로 돌려보자.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어떻게 생각하나?
 
우자와 오바마의 승리는 2차대전 후 최고의 사건이다. 레이건과 부시로 이어지는 시장만능주의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국민들의 민심이반이요, 응징이다. 오바마는 흑인으로서 최초로 대통령이 되었으므로 그것만 해도 위대한 일이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선택은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는 타협이 곧 운명이다. 각료 임명 과정을 보면 이미 그런 타협이 드러난다. 특히 로런스 서머스의 임명은 잘못됐다고 본다. 나는 1993~1994년에 세계은행 비상임 자문역으로 일했는데, 그때 수석경제학자 겸 부총재가 바로 서머스였다. 그는 당시 ‘내부 지침’이란 것을 쓴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선진국에서 공해를 일으키는 공장을 후진국으로 이전하면 선·후진국 모두에 이득이 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사람 한명의 경제적 가치가 3만달러이지만 필리핀에서는 500달러밖에 안 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 공해시설을 후진국으로 이전하면 쌍방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전형적인 시장만능주의 사고방식이다.
 
재정·금융부문 위기 해결, ‘케인스주의’ 현재로선 최선, 장기적으론 ‘구조 변화’ 해법
이정우 이번 위기를 계기로 시장만능주의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케인스주의의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케인스주의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우자와 현재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다. 경기가 워낙 나쁘기 때문에 재정과 금융 부문에서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 정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장기적으로는 케인스주의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야를 좀더 넓혀, 경제의 구조 변화, 제도 개혁, ‘사회적 공통자본’(Social Common Capital)의 확충 등을 도모해야 한다. 건전한 이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하고, 문화 발전과 상호협력, 자연에 대한 존중을 분명하게 지향해야 할 가치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돈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정우 요즘 ‘녹색성장’(Green Growth)이라는 용어가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녹색성장이 위기에 빠진 세계경제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 당신은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고, 이 문제의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는데, 녹색성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자와 올해 말 코펜하겐에서 열릴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덴마크 경제학자 옌센은 내가 1990년 로마 회의에서 제안했던 탄소세 인상을 주장하고 있더라. 세계 최초로 지구온난화 문제를 다루는 국제회의가 지난 90년에 로마에서 열렸다. 이때 나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각국의 1인당 소득수준에 비례하는 탄소세를 부과하자는 것과, 숲 조성에 대한 보조금 지급, 그리고 지구의 환경 안정을 위해서 국제기금을 조성하자는 것 등이었다. 각국은 소득에 비례하는 탄소세에서 숲 조성 보조금을 뺀 차액을 납부하면 되는데, 이 돈을 모아서 국제기금을 만들어 세금 납부 능력이 없는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주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 안에 대해 스웨덴, 독일 등 유럽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교토의정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당시 일본 총리 무라야마에게 만일 탄소세를 의제로 다룬다면 탈퇴할 것이라고 위협할 정도로 비협조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요즘 거론되는 이른바 ‘녹색성장’이란 매우 중요한 이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환경이야말로 바로 내가 말하는 사회적 공통자본의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통화주의에 기댄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런 사회적 공통자본을 모두 민영화할 것을 주장하는데, 현재의 경제위기를 가져온 진짜 이유는 바로 이런 무모한 시도 때문이다.
 
이정우 이번 위기 속에 다시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바로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다. 일본 경제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자와 일본의 1990년대를 일러 ‘잃어버린 10년’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당시와 지금의 모습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일본이 수출을 통해서 경제위기를 벗어날 최후 수단이라도 갖고 있었는 데 반해, 지금은 세계경제 전체가 한꺼번에 불황에 빠져 있다. 과거와 같은 수단이 통하지 않는다.
 
이정우 일본 경제는 10년 이상 저성장일 뿐만 아니라 소위 ‘격차사회’라고 하는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 같다. 한국도 비슷한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처방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자와 실업자들을 농촌에서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농촌에는 병원이 부족하고 교육여건 등도 열악하다. 지방정부도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지 못하다. 중앙정부는 균형예산을 회복해야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재정지출 부담을 지방정부에 전가했고, 이에 따라 지방정부들이 적자와 부채를 떠안게 됐다. 고이즈미 정부 때 소위 개혁을 한다고 해서, 종전에 해오던 부채에 대한 이자 부담마저 거부하는 바람에 지방의 재정 사정은 더 악화됐다.
 
병원·학교·금융제도 등 강화, 인간 존엄성 존중하면서 개인 자유 최대 보장돼야
이정우 이번 위기를 통해 유일 패권국가이던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면서 새롭게 주목을 받는 주인공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에 대해선 미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초강대국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개혁노선의 미래는 어떻게 보고 있나?
 
우자와 중국에 대해선 지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1980년대 초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덩샤오핑의 농업개혁 정책을 평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양에 체류했다. 그곳은 거의 대부분 빈농이 살고 있었는데, 일곱 농가만은 부농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공산당 당원이었다. 당에서 각종 특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고서를 쓰면서 “자본주의의 착취에는 한계가 있으나 사회주의의 착취에는 한계가 없다”며 덩샤오핑의 자유화 정책을 비판했더니 곧이어 베이징으로 소환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당시 정치국원이던 자오쯔양이 내 말을 “일리 있다”고 두둔해줘 그나마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다. 훗날 1989년 톈안먼(천안문) 사태가 나기 직전에 베이징에 머물고 있었는데, 베이징대 학생들이 몰려와서 건물을 포위하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자 자오쯔양이 혼자 나가서 학생들과 조용히 대화하는가 싶더니, 30분 만에 학생들은 모두 해산해 버리더라. 천안문 사태가 벌어지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자오쯔양은 천안문 사태 때 학생들에게 유화적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로 총서기직에서 해임되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정우 그렇다면,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는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바뀔 것으로 보나? 어떤 방향으로 가야 자본주의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을까?
 
우자와 자본주의의 각종 제도장치를 시장만능주의 손에 맡기지 말고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공통자본의 주요 요소인 자연환경, 병원, 학교, 사법제도 및 경찰·행정서비스, 금융제도 등을 강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면서도 각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그런 경제체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제1부 끝>
 
우자와 히로후미(80) 교수는 도쿄대에서 수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꾼 색다른 이력의 학자다. 1960년대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6년간 교수로 일하면서 경제성장론 분야에서 유명한 ‘우자와 2부문 모델’을 제시해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당시 일본 학자 가운데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는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찬사를 학계 안팎에서 받기도 했다. 하지만 우자와 교수는 1968년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항의하는 뜻으로 돌연 교수직을 버리고 일본으로 귀국해, 전후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특히 1970년대 도쿄 나리타 공항 건설 당시 정부의 일방적인 거주민 추방에 항의하는 지역농민 지원활동을 펴는 등 실천적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는 같은 학부의 명예교수로 있으며 일본 학사원 회원이기도 하다. 매일 도쿄 시부야에 있는 자택에서 도쿄대까지 6㎞를 마라톤으로 출퇴근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한다.
시카고대학 교수 시절 밀턴 프리드먼 등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전통의 ‘태동기’를 곁에서 생생하게 지켜봤고, 케인스의 수제자이자 걸출한 이단 경제학자인 조앤 로빈슨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 그의 저서를 일본어로 옮기기도 했다. 환경·교육·의료 등 흔히 경제학의 연구영역 밖에 머물던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여 수많은 연구업적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 <공공경제학을 위하여>, <지구온난화의 경제학>, <사회적 공통자본> 등이 있다. 
 
이정우(59)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마친 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지금까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이 관심을 두지 않는 빈곤과 양극화, 소득분배 같은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국내 대표적인 진보·개혁 성향의 학자다.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을 맡으며 초기 정책방향의 큰 줄기를 잡는 데 기여했고,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재임 시절, 금산분리나 부동산 대책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뚜렷하게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 보수 세력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기도 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소득분배론>, <헨리 조지: 100년 만에 다시 보다> 등이 있고, ‘한국의 경제발전 50년’ 등 많은 논문을 발표했다.  
  
 ■ 대담 뒷얘기
한국유학생 만나 경제학 관심, 아소 총리 ‘극우적 망언’ 비판도 
 
오후 2시 무렵 우자와 교수 자택에서 시작된 대담은 곧이어 도쿄대 구내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늦은 시간까지 계속 이어졌다.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저녁자리까지 마련한 우자와 교수는 이날 하루 동안 무려 7시간 넘게 풍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 대담에서 우자와 교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뿌리라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들려줬다. 
 
예를 들어 우자와 교수는 프리드먼이 한 강연 석상에서 “누구에게나 10대 때 공부하느냐 노느냐의 선택이 주어지는데, 흑인들 가운데는 합리적 선택에 따라 노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많다”면서 가난은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자 어떤 흑인 학생이 일어나 항의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기도 했다. 우자와 교수의 신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강한 거부감,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 공통자본’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빈곤과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우자와 교수의 시선이 주류 경제학자들의 시선과 크게 엇갈리는 것은 그 자신이 걸어온 인생 역정과도 관련 있다. 대담 말미에 이정우 교수가 “도쿄대 수학과를 마친 뒤 어떻게 해서 경제학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20세기 초 교토대학 경제학부 가와가미 하지메 교수가 쓴 <빈곤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경제학을 하게 됐다고 쓴 것을 보았는데…”라고 묻자, 우자와 교수는 “그렇다. 또 하나, 제일고등학교 재학 때 조선과 중국에서 건너온 유학생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처음 키워줬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대담에서 우자와 교수는 아소 다로 일본 총리를 강하게 비판했다. “아소 총리는 전전 사고방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증조부는 아소탄광의 창업주인데, 많은 조선인들을 탄광에 강제징용해서 착취했다. 아소 총리는 또 몇년 전 강연에서 ‘창씨개명은 스스로 원해서 한 것’이라는 내용의 망언을 한 적이 있다. 아소 총리는 전임자들보다 위험한 사상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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