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현장에서

선거만 고민 말고 대중 '조직-투쟁'을 (레디앙, 2008-12-20, 노중기)

새벽길 2008. 12. 21. 18:56
노중기 선배의 주장 중에 틀린 말은 없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당이 언급된 주요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당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고, 진보신당 또한 지금의 당원 상황으로선 현장에 개입할 역량이 되지 못한다. 노동자가 당원으로 가입하더라도 거기에서 정치의식이 고양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유주의' 수준으로 후퇴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좌파 정당이 생겨나야 하는데, 노건추와 사노준은 왜 이리 허우적대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들이 통합된 대오를 갖춘다면 한계는 있을지언정 충분히 위력적인 힘을 발휘할 텐데... 나같은 이도 조그마한 힘을 보탤 것이고...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다. 총연맹 선거를 비롯한 각종 선거가 아니라 현장에서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고용을 보장받는다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자본과 권력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물로 삼아, 기업단위 양보교섭을 강요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투항해서는 안된다. 상황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1997년 경제위기 때의 대응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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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만 고민 말고 대중 '조직-투쟁'을 (레디앙, <주간 진보신당> 23호, 2008년 12월 20일 (토) 09:15:00 노중기 /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위원장)
[공황기의 노동정치] 퇴락하는 노동운동 앞에 놓인 두개의 길 
  
2008년과 다가올 2009년은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조운동이 구조적 위기 속에서 급전직하 퇴화하는 상황에서, 또 노동자 정치운동이 심각한 오류와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전후 최대의 경제공황이 도래한 것은 노동정치의 구조 변화가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노동정치 구조변화
더욱이 민주화 국면이 소멸하고 재벌권력의 일방적 계급정치가 막 시작된 시점에서 대공황의 위기가 도래하여 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그것은 1980년대 중반 민주화투쟁, 3저 호황의 한 가운데 벌어진 노동자대투쟁이나 민주노조운동의 투쟁역량이 최고조로 상승한 그 때에 갑자기 들이닥친 IMF 외환위기와 마찬가지로 상징적이고 의미심장한 것으로 생각된다.
 
올 한 해의 노동정치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소리 없이 일어났다. 1987년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의 노동정치는 매년 대규모 노동쟁의와 노사정 간의 심각한 대립으로 점철되어왔다. 그러나 2008년은 너무나도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대규모 공권력 투입과 쟁의진압으로 마무리된 심각한 쟁의도 없었고 대량의 구속 수배사태도 없었다. 일부 법제도 개악 시도가 문제로 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사회적 대립과 갈등의 강도는 크게 낮아졌다.
 
결국 이전 정권들에서 집권 첫해에 심각한 노사정 대결이 폭발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민주노조운동에 특히 적대적인 신자유주의 보수권력이 집권한 첫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폭풍전야의 특별한 고요함일 것이다.
 
2008년, 폭풍전야의 고요함
2008년 노동정치의 특수성을 세 달 간의 촛불집회나 갑자기 닥친 경제공황이라는 상황적 요소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예컨대 촛불집회에 편승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시도와 화물연대의 파업이 있었으나 그 위력은 보잘 것 없었다. 또 반대로 정부의 대응과 탄압도 예상과 달리 그 강도가 크게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체전략과 연관된 보다 구조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서로 맞물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국가와 자본이 보다 세련된 저강도 통제전략으로 대응하는 변화가 있었다. 강하게 억압함으로써 노동문제를 사회적 쟁점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대응이었다. 이는 촛불집회의 정치상황과 연관되어 있었으나 보다 중요한 구조적 원인의 표현 형태에 불과했다.
 
곧 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종속적)신자유주의 노동체제와 정책’이 이미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10년 동안 정리해고 중심의 구조조정, 비정규노동법 입법과 노동시장 유연화, 민주노조에 대한 체계적 공격을 계속하였다. 그 결과 남은 정책적 의제가 거의 없을 만큼 신자유주의 노동체제가 완성된 것이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국가와 자본의 전략변화는 두 번째 요인인 노동운동의 구조적 약화를 반영한 일이기도 하였다. 노동운동이 운동성을 상실하고 퇴락하는 상황이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통제 필요성, 곧 노동정치의 활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썩은 당근과 채찍
노동운동의 약화를 불러온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업별 노조에 기반을 둔 조직노동의 경제주의 운동양태를 제어하지 못한 것에 있었다. 현장 수준에서는 노조 간부와 대중이 괴리되었고 조합원 대중들은 협소한 경제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퇴보해 갔다. 또 상급조직 수준에서 노동조합 조직이 분파적 패권적 방식으로 장기간 운영되었던 것도 이런 경향을 심화시켰다.
 
전략의 측면에서 전투적 조합주의의 운동성을 계승하기보다 이를 폐기하고 노사정위원회 중심의 사회적 합의주의로 경도되었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썩은 당근’과 채찍을 교묘히 결합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노동통제전략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한편 이와 같은 노조운동을 비판하고 견인해야 했던 노동정당이 오히려 이 구조에 편승하여 패권적 당 운영체제를 고착화하였던 것도 부차적이지만 중요한 요인이었다. 결국 현재 노동운동은 종속적 신자유주의 노동체제가 구조화된 조건에서, 적대적인 계급권력의 강력하고 세련된 배제전략 앞에서 속수무책인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총연맹과 산별노조를 비롯한 상급조직의 결정이 현장에서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이념적 퇴락은 한국노총과의 차이를 불식시킬 정도라고 한다면 심한 과장일까?
 
이런 상황과 조건에서 우리 노동운동이 부닥친 대규모 경제공황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상황이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좋지 않음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당시 민주노조운동은 그 조직, 투쟁역량이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정권의 성격도 신자유주의 정권이었으나, 민주화 개혁세력임을 표방하는 등 지금과는 크게 달랐다.
 
외환위기 때와 지금
또 당시에는 경제위기가 한국과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된 단기적인 것이었음에 비해 현재의 상황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은 전 세계적 규모의 위기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취약하지만, 산별노조가 있고 힘없는 노동정당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두 번째 경험이라는 것도 약간은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요컨대 10년 전의 위기가 비정규직 확산과 양극화, 노동운동의 구조적 위기를 불러왔다면 지금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필자는 1998년과 비교하면 위기의 강도도 훨씬 더 강하지만 동시에 기회의 가능성도 더 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제공황 앞에서 기회의 함의가 커지는 이유는 전략적 변화의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또 ‘바닥을 친 노동운동’의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전략적 선택지, 두 개의 길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첫 번째 길은 위기의 심화, 나아가 노동운동의 몰락으로 곧장 나아가는 길이다. 객관적인 가능성의 측면에서 이 길은 보다 밝고 넓은 대로(大路)이다. 운동의 혁신 없이, 정파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노사정위 등 합의기구에 목을 매는 한 이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의 협소한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물로 삼는 기업단위 양보교섭이 횡행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때 노동정당은 여전히 정파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선거정치에 매몰되거나 민주대연합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노동조합 및 대중투쟁과 괴리될 것이다.
 
혁신의 계기로 삼기 위해 
두 번째 길은 이 위기를 노동운동 혁신의 전반적 계기로, 그 출발점으로 삼는 길이다. 1998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시나리오이며 어둡고 좁은 험로(險路)이다. 10년 전의 경험을 반성한 결과가 산별노조 건설이라면 이제 그 내용을 채우는 실험, 곧 산별 연대를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기업단위의 양보교섭 대신 산별 공동교섭, 공동전선체를 만들고 비정규, 하청노동자를 방패가 아니라 연대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반발과 반대가 있다면, 지도부는 자신의 조합원을 먼저 설득하는 어려운 일에 나서야 하고 때로는 그들과 싸워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총연합단체를 필두로 한 노동운동 지도부의 대대적인 혁신운동이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특히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노동정당의 역할이 크다는 점이다. 지난 10년의 ‘민주노총당’ 방식의 노동정치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 필요하다. 우선 현재 고착화된 정파대립구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당 주도의 대승적인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핵심 조합원들을 당원으로 조직하고 단기간에 그들의 정치의식을 제고해야 하는 임무도 정당이 일차적으로 맡아야 한다. 당의 지역조직의 일차적 과제는 해당 지역 노동자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일이다. 당은 체계적인 협력과 더불어 때로는 민주노총이나 단위 노조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공황기의 진보정치운동에서 노동대중을 조직하고 이들과 함께 투쟁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진보정당이 선거 전략만 고민해선 안 되는 엄중한 시기이다. 노동대중을 조직하고 투쟁 속에서 그들을 만나기 위한 운동적 기획이 절실히 필요하다. 노동자를 조직하지 않고 그들의 투쟁에 참여하지 않는 진보정당, 계급정당에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