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예비군과 민방위,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자

새벽길 2008. 12. 3. 23:18
나는 이제 민방위도 1년에 한번 새벽에 나가 출석체크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피곤하다.
예비군과 민방위, 이제는 없애도 되지 않을까. 수많은 동대장들이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문제일까.
국회 국방위에서 7대 5로 다시 군가산점제도를 부활시키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군가산점제도를 두느니 예비군과 민방위로 인한 간접적 비용과 손실을 없애는 편이 훨씬 낫다. 이전 네이버 블로그에 예비군, 민방위제도와 관련하여 담아놓았던 글을 옮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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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자 (시사인 [59호] 2008년 10월 27일 (월) 11:46:32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나는 철저한 반전 평화를 부르짖거나 징병제 철폐를 주장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예비군이나 민방위 같은 징병제의 부차 요소에 대해서만은 경제성을 따져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얼마 전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에서 알몸시위를 한 강의석씨의 행동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전후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나 한국 사회에서도 반전 평화를 외치는 운동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은 해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발생한 고시원 방화 및 살인사건 범인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인해 벌금이 밀려 있다는 기사를 읽다가, 문득 우리의 현실은 반전운동을 논의할 수준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이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 신체검사장에서 방위병,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공익근무 판정을 받게 된 내 또래의 청년이 눈물이 글썽거리며 현역으로 가게 해달라고 군의관을 조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사연인즉, 집에서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면서 돈 버는 일은 할 수 없는 방위병이 되느니 자기 한 입이라도 덜 수 있는 현역 입대가 가족에게 부담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시간강사 시절 정규 직장이 없기 때문에 지역 예비군 훈련에 나가야 했을 때의 경험이다. 그곳에 모인 예비역은 대부분 자영업자나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비정규직 강사이기는 해도 과외라도 해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던 나 같은 ‘먹물’에게는 예비군 훈련에 불려나가는 것이 그저 귀찮은 일일 따름이었지만 다른 많은 이에겐 절박한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하루벌이가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모인 우리가 하는 ‘훈련’이란 고작해야 제발 좀 움직여달라고 애원하는 방위병들 골려먹으며 어슬렁거리다가 길에 주저앉아 담배나 피곤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전투 능력(?)이 남아 있던 예비군 시절에는 총이라도 들어보았으나, 강의까지 휴강하고 달려간 구청 회의실에서 받아야 했던 민방위 훈련은 정말 가관이었다. 아마도 잘 엮으면 선거법 위반 가능성까지 있을 선출직 구청장의 자기과시용 정치 선전이나 들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워야 했다.
 
예비군과 민방위 덕에 형제자매가 발 뻗고 자는 게 아니라면…
군대 다녀온 남성들의 술자리 뒷담화 가운데 비교적 솔직한 얘기 하나는 아까운 시간 버리고 헛고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에서, 때로는 지난 시간을 합리화하려는 잠재의식 때문에서라도, ‘그래도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며 마무리짓기도 한다.
 
나는 사실 철저한 반전 평화를 부르짖을 확신도 없고, 새삼스레 징병제를 철폐하자라는 식의 주장을 할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최소한 예비군이나 민방위 같은 징병제의 부차적 구성 요소에 대해서만은 진지하게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에 들이는 사회적 비용에 비해 얼마나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는가라는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토예비군은 남북한 냉전이 절정에 달한 시절에, 더욱이 군사정권의 통제 및 동원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맞물려 만들어졌다. 출석부에 서명하는 것으로 동원 태세를 점검받는, 그래서 자는 남편 대신 부인이 완장 차고 나가서 출석 부른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민방위 훈련은 또 어떤가? 설마 예비군과 민방위 때문에 형제자매가 발 뻗고 잘 수 있다거나, 그래도 예비군은 다녀와야 사람 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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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5
오늘은 58년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이제는 민방위이기 때문에 예비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과거보다는 약화되었지만, 예비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다. 특히 촛불집회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일단의 예비역들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서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더더구나 집단적으로 뛰어가는 그들을 향한 환호와 박수를 보면서 과연 이 촛불집회를 통해, 거리의 정치를 통해 무엇인가 얻는 게 있을지라도 많은 한계가 있을 것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비군이 상징하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얻을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비군 논란이 촛불집회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오늘은 군복입은 할아버지들의 날이 될 것이다. 국가에 의해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국가를 옹호하고, 전쟁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세력의 개가 되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전쟁은 훌륭한 체제옹호의 수단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