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민방위도 1년에 한번 새벽에 나가 출석체크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도 피곤하다.
예비군과 민방위, 이제는 없애도 되지 않을까. 수많은 동대장들이 실업자가 되기 때문에 문제일까.
국회 국방위에서 7대 5로 다시 군가산점제도를 부활시키자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군가산점제도를 두느니 예비군과 민방위로 인한 간접적 비용과 손실을 없애는 편이 훨씬 낫다. 이전 네이버 블로그에 예비군, 민방위제도와 관련하여 담아놓았던 글을 옮겨온다.
-------------------------------------- 예비군, 비용과 편익을 따져보자 (시사인 [59호] 2008년 10월 27일 (월) 11:46:32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나는 철저한 반전 평화를 부르짖거나 징병제 철폐를 주장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예비군이나 민방위 같은 징병제의 부차 요소에 대해서만은 경제성을 따져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얼마 전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에서 알몸시위를 한 강의석씨의 행동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전후 사정을 자세히는 모르나 한국 사회에서도 반전 평화를 외치는 운동이 등장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은 해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발생한 고시원 방화 및 살인사건 범인이 예비군 훈련 불참으로 인해 벌금이 밀려 있다는 기사를 읽다가, 문득 우리의 현실은 반전운동을 논의할 수준보다도 훨씬 열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이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 신체검사장에서 방위병,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공익근무 판정을 받게 된 내 또래의 청년이 눈물이 글썽거리며 현역으로 가게 해달라고 군의관을 조르던 장면이 떠오른다.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사연인즉, 집에서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면서 돈 버는 일은 할 수 없는 방위병이 되느니 자기 한 입이라도 덜 수 있는 현역 입대가 가족에게 부담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시간강사 시절 정규 직장이 없기 때문에 지역 예비군 훈련에 나가야 했을 때의 경험이다. 그곳에 모인 예비역은 대부분 자영업자나 그날 벌어 그날 먹고사는 사람이었다. 비정규직 강사이기는 해도 과외라도 해서 어느 정도 먹고살 수 있던 나 같은 ‘먹물’에게는 예비군 훈련에 불려나가는 것이 그저 귀찮은 일일 따름이었지만 다른 많은 이에겐 절박한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하루벌이가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모인 우리가 하는 ‘훈련’이란 고작해야 제발 좀 움직여달라고 애원하는 방위병들 골려먹으며 어슬렁거리다가 길에 주저앉아 담배나 피곤 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전투 능력(?)이 남아 있던 예비군 시절에는 총이라도 들어보았으나, 강의까지 휴강하고 달려간 구청 회의실에서 받아야 했던 민방위 훈련은 정말 가관이었다. 아마도 잘 엮으면 선거법 위반 가능성까지 있을 선출직 구청장의 자기과시용 정치 선전이나 들으며 하릴없이 시간을 때워야 했다.
예비군과 민방위 덕에 형제자매가 발 뻗고 자는 게 아니라면… 군대 다녀온 남성들의 술자리 뒷담화 가운데 비교적 솔직한 얘기 하나는 아까운 시간 버리고 헛고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때로는 국가에 대한 소명의식에서, 때로는 지난 시간을 합리화하려는 잠재의식 때문에서라도, ‘그래도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며 마무리짓기도 한다.
나는 사실 철저한 반전 평화를 부르짖을 확신도 없고, 새삼스레 징병제를 철폐하자라는 식의 주장을 할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말이다. 최소한 예비군이나 민방위 같은 징병제의 부차적 구성 요소에 대해서만은 진지하게 재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것에 들이는 사회적 비용에 비해 얼마나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는가라는 경제성을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향토예비군은 남북한 냉전이 절정에 달한 시절에, 더욱이 군사정권의 통제 및 동원이라는 정치적 목표와 맞물려 만들어졌다. 출석부에 서명하는 것으로 동원 태세를 점검받는, 그래서 자는 남편 대신 부인이 완장 차고 나가서 출석 부른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민방위 훈련은 또 어떤가? 설마 예비군과 민방위 때문에 형제자매가 발 뻗고 잘 수 있다거나, 그래도 예비군은 다녀와야 사람 된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 2008. 6. 25
오늘은 58년전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이제는 민방위이기 때문에 예비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과거보다는 약화되었지만, 예비군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 없다. 특히 촛불집회에서 예비군복을 입은 일단의 예비역들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서 그 선의에도 불구하고 좋은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더더구나 집단적으로 뛰어가는 그들을 향한 환호와 박수를 보면서 과연 이 촛불집회를 통해, 거리의 정치를 통해 무엇인가 얻는 게 있을지라도 많은 한계가 있을 것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비군이 상징하는 국가주의와 군사주의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얻을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예비군 논란이 촛불집회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하다.)
아마 오늘은 군복입은 할아버지들의 날이 될 것이다. 국가에 의해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국가를 옹호하고, 전쟁을 통해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 세력의 개가 되고 있는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전쟁은 훌륭한 체제옹호의 수단이 되고 있다.
==================================== 열받는 예비군 훈련, 그리고 민방위 교육 2004/10/05 04:47
서울대인터넷뉴스 스누나우( http://snunow.com/ )의 한 독자가 자발적으로 기고한 글이다. 나야 이미 예비군 훈련 단계를 넘어 민방우 교육에 돌입한지 상당히 된 사람이기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예비군 훈련에 아직도 이런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싶어 퍼왔다.
사실 민방위 교육도 할 말이 많다. 좀 뜸하다 싶으면 한번씩 비상소집 교육에 참가해야 하기에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지금은 가까운 거주지의 교육장소에서 받아도 된다지만, 이 또한 시간을 빼앗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별 것도 아니고, 일년에 많아야 한두 번, 그것도 4시간밖에 되지 않는데, 그리고 요새는 조금 쓸만한 내용들을 교육하던데, 이런 것까지 문제삼으면 되는가 하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넘기는 사람에게 하루 4시간의 민방위 교육조차 사치스럽지 않을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별로 배우는 것도 없이 이름과 주소만 적고 확인도장을 받는 훈련을 꼭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 민방위 교육도 빠지면 시간이 추가되고, 보충 교육조차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게 되거나 상당히 먼 교육장으로 가서 고생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려면 짧게 대충 정확히 받으라는 식이다. 그런데 민방위 교육장에 가보면 다들 속칭 '어둠의 자식들' 뿐이오, '신의 아들'들은 없다. 힘있고 빽있는 사람들도 따로 교육을 받는지 모르겠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하루하루의 삶에 지친 군상들이다. 이는 신림동의 교육장에서도, 광주 북구의 교육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민방위 교육에서도 계급이 나뉘는 걸까.
민방위 교육의 내용은 뻔하다. 민방위 담당 직원이나 공무원의 계도성 강의(선거 때는 투표율제고에 관한 내용을 강의한다), 자동차보험회사의 초빙강사나 인근 대학의 강연전문강사의 강연, 그리고 의용소방대장 등의 화재 등 재난 대비훈련 등. 이런 내용을 굳이 시간 들여서 할 필요가 있을까?
민방위 교육이나 예비군 훈련은 북한의 간첩 침투에 대비해서 시작되었으나, 지금은 직접적으로 그런 목적이 아닐지라도 재난이나 긴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소집점검의 목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요즘같이 정보화가 강조되고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 처리되는 때에 과연 소집점검, 인원 점검을 위해 민방위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강남구에서던가 인터넷을 통해 소집점검을 하는 식으로 민방위 교육을 대체한다고 하던데, 부자 강남구의 그런 태도가 약간은 얄밉게 느껴지면서도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니리라.
일단 생겨난 조직은 자신의 목표가 소멸하거나 달성되면 다른 것으로 목표를 바꿔 계속 유지되려는 속성이 있다. 민방위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이 민방위 교육이 자신의 존재요건이 되는 사람들은 저항하겠지만, 소위 신자유주의식 시장논리에 따르더라도 이런 비효율적 낭비는 제거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지... 이런 것이 규제완화 내지 규제 철폐의 대상이다. 그러고 보니 국가보안법 사수하자는 움직임이나 공격용 헬기 도입 예산의 증액 등 시장 논리에 전혀 맞지 않은 비효율성이나 비용부담에 왜 우리의 시장지상주의자들은 꿀먹은 벙어리인지 모르겠다. 이런 것에 제 목소리를 내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민방위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재난방지, 위기관리에 꼭 필요한 내용, 이를테면 인명구조법이나 방독면사용법(사실 이를 가르치려면 한 가구당 하나씩은 보급한 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등을 누구에게나 철저히 교육시켜야 한다. 물론 이는 찾아가는 교육이 되어야 하며, 민방위 교육장으로 누구나 오라고 해서 생계에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교육이라면 폐지하는 게 낫다. 내가 민방위교육장에서 배울 것은 사회에서 다 배웠다. 아니면 배울 필요가 없든지...
퍼온 글에 서론이 너무 길었다. 헉... 퍼온 글보다 더 길다.
왜 항상 글을 주저리주저리 하는지... ㅡ.ㅡ;;
[기고] 예비군 훈련에 화났다 (스누나우, 2004년 09월 19일 물빛) 한 예비군의 쓴소리,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철없이 멋도 모르고 지껄이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군인 시절부터 나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과연 국가가 '국방의 의무'라는 그럴듯한 미명으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방해할 수 있을까? 남과 북이 가파르게 대치 중인 상태라고는 하지만, 엄청난 수의 청년들을 군대로 거의 반강제적으로 끌고 가서 장기간 썩게 만드는 게 과연 온당한가 하는.
군대 안에 있으면 개인은 개성과 인권이 어느 정도 사장된 채, 전투력의 일개 단위로 분류되는 것 같다. 말 그대로 인간의 도구화이다. 그러다보니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생명권을 움켜쥐고 있는 수동적이고 그다지 가치 없는 존재로 하찮게 여기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또 다시 고민했다. 왜 내가 일방적으로 국가권력에 의하여 불쾌한 대우를 받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 지금이야 거의 잊혀진 악몽이지만, 한 달에 2만원 안팎의 군인월급을 받으며 아파트 경비원과 교통경찰의 기능이 혼재된 헌병으로 지내던 시절, '12~17'이라는 근무가 있었다.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꼬박 5시간 동안 근무를 서는 것이다. 군대에서 이 시간 동안은 으레 가장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이므로, 근무량도 다른 시간들에 비해 몇 배쯤 힘겨워진다. 그럴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게 장시간 서 있기에 발생하는 다리 통증이나 총을 메는 자세 때문에 생기는 어깨 통증뿐만 아니라, 화장실에 맘대로 갈 수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이었다. 내무반 내의 에피소드 가운데 초소 안에서 눈치를 보며 몰래 빈 병에 오줌을 누다 누구에게 발각되었다든가, 소변을 습관적으로 장시간 참다 보니 나중에 전립선염에 걸렸다는 말을 종종 돋곤 했다.
이는 인간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인권침해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5시간 동안 일어서서 소변도 참은 채 근무를 설 수 있다는 발상을 쉽사리 품겠는가. 하지만 사병들에 대한 만성화된 착취 속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관행은 이어지고 있고, 모두들 '전역'이라는 '굿바이 의식'과 함께 복무 시절 사무치게 느껴왔던 문제들과 결별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하였다. 간부급 군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인 만행을 보면서도, 그리고 인간의 삶과 심성을 불행하고 악하게 조장해버리는 못된 군대체제 속에서 나는 변혁을 꿈꾸었지만, 죄다 잊은 채 사회로 복귀했다.
오랜만에 찾은 군부대. 또 다시 '강제'라는 성격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하고, 만일 받지 않으면 법을 어긴 범죄자로서 벌금을 내고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 늘 국가가 나보다 앞서 있는 것이다. 개인은 복종해야 하는 나약한 소수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런 관행이 직업군인들에게 남아 있어서인지 교관들과 지휘관들의 태도는 황당한 게 적잖았다.
어쨌든 9시간 넘게 군부대 안에 갇혀 있으면서 도대체 이런 식의 예비군 훈련이 과연 최소한의 의미라도 머금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끊임없이 잤고 지루해했고 딴 짓을 했고 서둘러 나가고 싶어했다. 사격 시간 정도를 제외한다면, 누가 가장 무의미한 시간을 무던하고 곰 같은 끈기로 극복할 수 있을까 테스트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야말로 군대 조직 그 자체처럼, '삽질'하는 무의미한 허송 시간을 공공연하게 서로 주고받는 것 같았다.
끝나기 전에 보여줬던 안보 비디오. 예전과 달리 안보 시청각 미디어에 코미디를 불어 넣었다, 이용식과 전원주를 등장시키며. 무엇인가 새로운 시각을 넣은 것 같아 지켜보니 틀은 예전 그대로다.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는 가당찮은 얘기를 전통적인 군사 국가들인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과만 견주어서 비교를 하고 있고 (물론 그 무식한 비교 속에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나, 국방비 지출로 인해 파급되는 사회복지의 축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촛불집회' 장면이 나오면서 친북세력들의 교묘한 위장 논리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부화뇌동하여 추종하고 있다는 둥, 미국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고마운 나라인데 '반북'이 아닌 '반미'를 외치냐는 둥, 나아가 예비군 훈련 체제가 다른 선진국에서도 아주 중요한 목적으로 실시된다는 둥. 어떻게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인용을 통해 이런 왜곡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그맣고 속 좁은 나라에서 태어난 죄로 인해 하루를 썩히고 온 날,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저 청명한 초가을 하늘처럼 드넓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꿈은 가만히 있으면 다가오는 게 아니겠지만, 우선 여전히 국가권력이 개개인을 억누르는 나라에서만큼은 피해 있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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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비군의 편지'는 제목을 봐도 그렇고, 멜로디로 그렇고, 김광석이 리메이크하여 유명해진 '이등병의 편지'를 떠올리게 한다. 나야 이미 민방위로 넘어간지가 상당히 오래되었지만, 예비군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노래이다. 그냥 재미는 아니고 그 메시지가 나름대로 인생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런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다.
윤종신(with 유희열) - 어느 예비군의 편지
집 떠나와 버스타고 어디로 가는지
오늘 하루는 나라에 몸을 맡기련다
우리동네 지켜보려 한다
부모님께 꾸중 듣고 서러운 아침은
반갑지 않은 한 동네 친구 만나면서
힘든 하루 고된 날 예고한다
어색해진 군복속에 숨겨진
무력해진 나의 근육은
이젠 말을 듣지 않고 쉬려고만 한다
피로해지는 나의 젊음이여
가고 있다 빠르게 가고 있다
단 한 번뿐인 겁없는 계절이
곧 다가온다 꿈보다 후회많은
아저씨라는 길고 긴 계절
입대할 때 그 눈빛은
일생에 단 한 번 그 때 뿐일가
아무리 힘줘 부릅떠도
떠오르는 걱정에 늘어진다
어색해진 군복 속에 배었던
기대뿐인 나의 출발은
아직 늦은것 같지는 않아
반도 안된 나의 인생을 다시 믿어본다
오고있다 빠르게 오고있다
잡힐것 같은 뿌듯한 계절
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
-------------------------------------------- 2007/02/13 06:03 예비군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담은 나동혁 님의 글에는 우리 사회의 군사문화, 군사주의, 국가주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고발하면서 이에 대해 재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비군 훈련만이 아니라 민방위 훈련마저 끝난 지금, 내가 이를 다 마쳤다고 하여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방의 의무 대신 이를 사회적 노동의무로 대체하자는 얘기가 전진의 선거강령 논의에서 나왔는데, 구체적으로 예비군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이 필요하겠군요.
"예비군 제도, 이제 작별을 이야기할 때" (프레시안, 나동혁/'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2007-02-12 오후 6:01:30) [기고] 국방부의 예비군 제도 개혁안을 접하고
국방부는 지난 11일 현행 예비군 제도 개혁의 밑그림을 드러냈다. 현재 3800여 개인 예비군 중대의 수를 2020년까지 2200여 개로 줄이는 대신, 훈련의 질을 높이고 관리인력을 정예화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에 따른 예비전력 정예화 방안의 일환이다.
이런 밑그림을 발표하면서 국방부 관계자는 "예비군 규모를 줄이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의 예비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방안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병력 감소, 예비군 조직의 비대화에 따른 사회적 낭비 등이 이런 계획의 배경이다. 결국 군사적, 경제적 효율을 높이는 게 이번 개혁 조치의 목적인 셈이다. 그리고 최근 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에 담긴 병역 제도 역시 비슷한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조치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국방개혁'은 다른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가 차지하는 사회적 위상을 그대로 둔 채, 단지 군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진정한 국방개혁'은 군대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줄이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인 남성의 상당수에게 군 복무 경험을 안겨 주는 징병제로 인해 사회 곳곳에 스며든 군사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병영사회의 특징을 상당히 강하게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강제적인 군 복무 경험, 그리고 전역 이후에도 군대에서의 경험을 계속 상기하게 만드는 문화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 경험을 계속 되새김질하게하는 장치 중 하나가 '예비군 제도'다. 실제로 많은 성인 남성들이 "예비군복을 입는 순간, 군 복무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또 훈련 조교들이 예비군들에게 '선배님'이라며 존대하는 예비군 훈련장의 문화 역시 병영에서 경험한 서열 문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예비군 제도의 진정한 개혁은 '예비군 폐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회적 자원 투입에 비해 전력(戰力)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는 이유로 '예비군 폐지'를 요구해 온 기존 주장과 다른 맥락에 있는 것이다.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는 나동혁 씨도 병영사회의 문제점에 공감하면서 예비군 폐지를 주장해 온 이들 중 한 사람이다. 11일 국방부가 내놓은 예비군 제도 개편안을 접한 나 씨가 예비군 제도와 병영사회에 대한 평소 생각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다음은 나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군복무기간 단축에서 예비군 제도 개혁까지
참여정부가 국방관련 개혁안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지난해 나온 '국방개혁 2020'에 이어 지난 5일, '비전2030-인적자원 활용전략'을 발표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2014년까지 현역병 복무기간 6개월 단축 △첨단전력 분야 등 숙련병 확보가 필요한 분야에 '유급지원병제' 도입 △전의경과 경비교도, 산업기능요원, 공익행정요원제도 폐지,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복무하는 '사회복무제' 도입 등이 주요 골자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2010년부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므로 다가올 인력부족 현상에 대처하려면 보유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참여정부가 전부터 강조해 오던 국방개혁의 큰 방향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이런 취지에서 참여정부는 지난 11일 예비군 제도 개혁안을 추가로 제시했다. "'국방개혁 2020'에 의한 예비전력 정예화 계획에 따라 현재 300만 명인 예비군을 2020년까지 150여만 명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읍·면·동 단위로 편성되어 있는 예비군 중대를 인근 시·군·구 단위로 통폐합하고, 대신 상근복무 예비역 간부 2600명 정도를 선발해 질적 향상을 꾀한다는 내용이다.
국방개혁안에 담긴 참여정부의 정신은 무엇인가
한 동안 '노무현 리플달기'가 온라인 공간에서 유행했었다.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따위의 리플을 다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향한 냉소적 시선은 끝이 없다. 물론 여기에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태도를 취하는 탓도 있다.
얼핏 보면 참여정부가 내놓은 국방 개혁안들은 부족하나마 과거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느낌을 준다. 이를 테면 '군복무 기간 단축'은 군사주의가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이다. 또 사회복무제도는 신체등급이 낮은 대상자뿐만 아니라 본인이 희망할 경우 여성이나 혼혈인, 귀화자, 고아도 복무할 수 있도록 규정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동시에 인력 활용의 다양성을 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여기에 예비군 제도 개혁안은 참여정부가 구질서 타파에 온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모든 구태의연한 것과 이별을." 항상 그렇듯 참여정부의 개혁안은 이런 명분을 달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참여정부가 국방개혁안을 마련한 취지를 살펴보자. 결국 '효율', 그리고 '국력'이다. 정책을 둘러싼 세련된 포장을 한 꺼풀 벗기고 나면 구태의연한 국가주의, 권위주의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경제성장 동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의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군사 정권의 구호만 반복될 뿐이다.
참여정부가 지향점으로 내건 '인권', '평화', '탈권위'의 정신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우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이 사회복무제 적용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모든 사람이 군복무를 동등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기묘한 명제로 귀착됐다. 이런 점에서도 참여정부는 시민의 참여로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국가의 권위와 국가주의적 일체감에 기대는 방식으로 회귀했다. 결국 화려한 수사를 제외하고 나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던 셈이다.
예비군 제도는 어떻게 탄생했나
참여정부는 종종 우리 사회가 '냉전시대 사고방식'과 단절하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정말 '냉전시대 사고방식'을 극복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예비군 제도 개혁안에서도 이런 면모는 잘 드러난다. 이런 논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하려면 예비군 제도의 역사를 잠시 살펴봐야 할 것 같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른바 '1.21 청와대 습격미수사건'이다. 곧 이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이 발생했다. 정국은 경색됐고, 박정희 정권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본격적인 병영국가 건설 작업에 나선 것이다. 같은해 2월 7일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 재향군인의 무장을 선언했다. 이어 같은해 3월 예비군 편성을 마무리했고, 4월 1일 향토예비군 창설식을 개최했다. 그리고 같은해 5월 29일, 향토예비군설치법을 개정·공포했다. (참고자료 : "의외로 '빡센' 예비군 훈련" <인권오름>)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향토예비군은 현재 300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에 이르게 됐다. 극단적인 반공 분위기 속에서 창설된 예비군은 군사정권의 의도에 충실했다.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이들을 계속 훈육하는 반공교육의 장으로 기능한 것이다. 그리고 국가와 조직의 목적에 충실하게 따르는 집단성, 일상적인 폭력에 둔감한 태도를 교육하는 효과도 낳았다. 이런 사고방식을 군복무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체화시켜 온 사람들에게는 수시로 지난날을 상기시키는 복습 효과도 만만치 않다.
많은 이들은 이런 훈육 효과를 애써 무시하거나 아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일년에 그저 2~3일쯤 고생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회사에 안 가니 좋다"는 친구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어쩐지 훈련장에 가면 불편해진다"거나, 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군대식으로 돌아가고 사람들을 볼 때도 같은 눈높이로 바라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며 답답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예비군 훈련에서는 해마다 적들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정신교육이 진행된다. 법적으로도 예비군은 군형법의 적용을 받는 군인 신분이다. 언제든 국가가 원하면 군인이 되어야만 하고 총을 들어야만 한다는 현실을 계속 깨닫게 한다.
이런 것이 바로 병영국가의 작동원리다. 총은 들고 있지 않지만 군인 정신이 학교, 직장, 가정 등 삶의 곳곳에 스며들어 인간관계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 다양성에 대한 인정보다는 획일적 가치에 대한 복종과 충성을 중요시하고, 민주적 절차와 과정보다는 일의 효율과 결과의 총량만 중요시하는 분위기는 이런 사회적인 교육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까칠한 사람'이나 '반조직적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 알아서 기는 문화가 대부분의 조직 분위기를 압도한다.
요즘 드라마 '하얀거탑'이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하다. 너무나 한국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권력과 재화의 수단으로 여기는 병원의 현실. 그 드라마에 얼차려 같이 낯익은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외과 의사들이 옥상에 불려가 단체기합을 받고 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장면을 외국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한국에서는 의사도 맞고, 개그맨도 맞고, 학생도 맞고, 아내와 아이들도 많이 맞는다. 군대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지만 병영국가 한국에서 살아 온 사람들은 누구보다 강력한 군인정신으로 무장돼 있다.
집단적 상처의 재생산
<전쟁과 인간,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분석>라는 책이 있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비교문화정신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전후 일본인의 집단적인 망각 상태를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집요하고 파고 들어간다.
인터뷰 대상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에 징집돼 만주 지역에서 군 생활을 했던 일본인들이다. 난징대학살과 태평양전쟁은 물론 731부대(흔히 '마루타 부대'라고 불린다)의 존재까지, 군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이 개인들의 증언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난다. 난징대학살의 끔찍했던 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삼는 생체실험, 초년병의 총검술 연습 대상이 되어 살해당한 무고한 농민….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살육에 무뎌져가는 과정, 그리고 전쟁 이후 가해의 역사를 망각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그 집단적인 망각과정이 군국주의에 대한 반성의 부재로 나타나고, 결국 또 다시 일본사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가는 원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죄의식이야말로 우리들(일본사회)의 귀중한 문화이며, 진정으로 상처를 입는 데 익숙해진 사람만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번에는 한국 사회 이야기를 해보자. <대한민국은 군대다>의 저자 권인숙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권 선생님이 심리학 관련 강의를 맡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트라우마(심리적 내상)가 무엇인지 써내는 것으로 한 학기 강의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렇게나마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게 된 것도 한 학기 수업의 결과라고 했다. 학기가 시작할 무렵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어색해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남학생들은 80% 이상이 군대 관련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군대와 같은 압도적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소 분산되는 경향은 있었지만 30% 정도가 성폭력 내지는 유사 성폭력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하지 못하고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고통까지 생각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 곳인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외국의 경우, 이런 상처는 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에게서 나타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비롯된 분노는 대개 상처를 낳은 근본적인 원인으로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직접 관계가 없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로 발전하는 게 보통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 이론적인 근거 등을 들지 않아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의 경험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병영국가가 탄생했다. 그래서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서도 비슷한 상처와 욕구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예비군 제도는 이런 상처를 반복해서 상기시키며 왜곡된 심리를 더욱 강고하게 만드는 장치일 따름이다.
군대의 존재는 대다수 성인 남성들에게 커다란 상처로 남아 있지만, 역설적으로 세대를 넘어 국가주의적 욕망으로 질주하게 만드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 왜곡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국가주의와 군사주의의 앙상블
전쟁이 없어도 늘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것. 이것이 군사주의다. 예비군 제도는 한국사회 일상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다. "여기는 아직 전쟁터"라는 생각, "지금은 그저 휴전"일 뿐이라는 인식을 끊임없이 확인하게 된다. 따라서 일상은 언제나 전쟁을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맞닿아 있다. 한국사회는 과거의 역사에서 '힘을 얻어야 평화도 가능하다'는 교훈만을 되새김질 해냈다. 침략과 수탈로 굴곡된 일제강점기,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현대사.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했던 피나는 노력이 뒤따랐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에 비해 국력은 여전히 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강한 힘을 끝없이 갈망한다. 거기에 비례해서 열등감은 쌓여간다. 이런 과정이 국가적인 의제 앞에 무섭도록 단결하는 힘을 낳았다. 그 힘이 전쟁과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런 힘의 의미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이 군사적, 경제적 약자에서 강자로 올라서면 지난 역사 속의 상처가 주는 교훈이 완성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근대국가의 역사는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구 근대국가의 역사는 다양한 형태의 상비군 제도가 정착된 역사이기도 하다. 프랑스 혁명을 거쳐 나폴레옹 때에 이르러 징병제가 도입됐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근대 국민 국가 형성 과정에서는 '시민의 동등한 병역의무'가 시민권을 확보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팽창한 군사주의는 국가주의와 결부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끔찍한 결말로 이어졌다.
뒤늦게 이들 국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한국은 서구 국가들의 지난 오류까지 고스란히 반복하며 따라간다. 그리고 서구 근대 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민주주의와 인권의식은 이제서야 조금씩 한국사회에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국가주의적 욕망은 대개 인간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다. 총동원 전시체제는 비인간적 국가모델의 극단이다. 오늘날 예비군 제도는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완성된 총동원 전시체제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크다. 그 이야기는 한국사회가 일상적인 전쟁 준비에 짓눌리고 있는 사회란 뜻이다. 물질적인 측면은 물론 정신적인 측면까지 말이다.
예비군 제도를 다시 생각하자
참여정부가 내세운 국방개혁의 취지가 '효율'과 '국력'에 중심을 두고 있는 한 시민들은 '참여의 주체'가 아니라 '동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예외 없는 병역의무 이행'과 '예비군 제도 개혁'은 군사정권이 낳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없다. 예비군 제도 개혁은 궁극적으로는 예비군 제도를 없애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물론 국방정책의 속성상 주변 정세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축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쪽의 국방력 강화가 상대방에게 군사력 증강의 명분을 준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힘으로 주변정세를 돌파하는 게 아니라 다자적 안보체제에 기반한 평화적 관계를 구축해나갈 생각이라면 자신부터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진 근대 국민 국가의 비극이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물론 예비군 제도를 폐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득권 세력, 그리고 예비군 제도에 의지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의 반발이 엄청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별 생각없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 동안, 잊고 지낸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어려운 길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것은 군사주의, 국가주의가 팽배한 사회구조를 뜯어고치는 작업과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일이다. 전쟁과 집단적 광기가 판치는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예비군 제도의 목적은 군사주의, 국가주의적 가치를 훈육하는 데 있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어 있다. 개인의 참다운 삶을 위해 국가 안보가 필요한 것이지, 안보를 위해 참된 삶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군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 [벼리2] 예비군, 이제 폐지하자 (강성준, 인권오름 제 61 호 [입력] 2007년 07월 04일 21:38:58)
한국사회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 배경에는 수십 년에 걸친 국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킨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종교적 신념에서 정치적 신념으로 병역거부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지금도 감옥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사회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현역의 벙역거부에 비해 예비군의 병역거부는 상대적으로 덜 조망받은 것이 사실이다.
군사쿠데타 정권에서 태어난 예비군 제도
지금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예비군은 정부 수립 당시부터 있었던 제도가 아니다. 예비군의 역사는 5.16 군사쿠데타 직후인 1961년 12월 향토예비군설치법(아래 향군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되지만 소요 예산 등의 문제로 당시에는 부대 편성까지 이르지 않았다. 예비군이 소집훈련을 받고 무장하게 된 것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의 지시로 1968년 4월 1일 예비군이 창설되면서 부터다. 이 해는 1월 21일 김신조 등 북한 특수공작원 31명이 청와대 뒷산까지 접근한 이른바 ‘1.21사태’와 그 이틀 뒤 발생한 이른바 ‘푸에블로호 나포사건’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감돌던 때였다. 박정희는 2월 7일 경전선 개통식에서 250만의 무장을 천명했고, 2월 20일 각의가 향군법 시행령을 의결하면서 예비군의 창설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유신이라는 영구 집권을 도모하던 쿠데타 정권이 ‘북괴’라는 외부의 위협을 빌미로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군대’로 편제한 것이 예비군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곧바로 나왔다.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은 향토예비군 무장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놨다. 국방차관을 지냈던 박병배 의원은 “현 군경의 해이한 기강과 부패가 1.21사태의 교훈을 낳은 것”이라며 “전면전이 아닌 공비침투에 대처하기 위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향토예비군 전면무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같은해 6월 17일 김영삼 의원 등 의원 41명은 향군법 폐지안을 내놨다. 이들은 △향군조직과 무장이 아니라도 기존군경의 강화 및 장비개선,정신무장의 쇄신강화 등으로 적의 침략도발을 방어할 수 있고 △만40세까지의 남자는 사실상으로 항상 정부에 대하여 소위 특별권력관계를 형성하는 까닭에…국민의 의무를 지나치게 확대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여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한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고 △전국민을 비민주적 전체주의로 몰아 넣는 결과가 되므로 위헌이라 할 수 있고 △향군조직과 무장등은 국가안일의 위압분위기를 조장하여 전국민을 전체주의체제 속으로 몰아 넣어 비상사태를 이유로 위기의식과 전쟁의 공포감을 조성시켜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감을 초래케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폐지안은 같은달 27일 국회 본회의 표결 결과 34대81로 부결되었다.
이어 1970년 11월 19일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현 향토예비군은 이중병역의 의무를 강요한 위헌적인 것이며, 경찰의 보조기관으로 전락되고 지휘계통이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에 이중으로 되어 있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고 생업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민폐를 조성, 부정부패를 가져올 뿐”이라며 향토예비군 폐지를 공약했다. 하지만 예비군을 폐지하자는 본격적인 논의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폐지를 주장한 두 사람은 대통령이 된 후 복무연령제를 복무연한제로 바꿔 훈련기간의 형평성을 높이거나(1994년) 훈련시간을 줄였을 뿐(1999년) 예비군 제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예비군이 없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비군은 병영국가의 표지
향군법에 따르면 예비군은 “전시·사변 기타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하에서 현역군부대 편성이나 작전수요를 위한 동원에 대비”해 △적이나 무장공비의 침투 또는 무장소요가 있거나 그 우려가 있는 지역안에서 적이나 무장공비의 소멸과 무장 소요를 진압하고 △중요시설 및 병참선을 경비하며 △기타 민방위기본법에 의한 민방위업무의 지원업무를 수행한다.
예비군 복무 기간은 창설 이후 1988년까지는 전역시기와 관계없이 35세까지, 1989년부터는 33세까지 복무하는 ‘복무연령제’가 실시되었다. 1994년 이후 지금까지는 전역 후 8년동안 복무하는 ‘복무연한제’가 실시되고 있다. 전역 이후 1년차부터 4년차까지는 동원지정자의 경우 연간 28시간(2박3일 입소), 동원미지정자의 경우 연간 36시간(출퇴근 방식)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5년차와 6년차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향방기본훈련과 향방작계훈련을 합해 연간 20시간 정도의 훈련을 받는다. 7년차와 8년차는 별도의 훈련이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약 200시간의 훈련을 강제받고 있는 것이다.
전역한 사람 모두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예비군의 숫자는 현역보다 더 많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의 수는 창설 다음해인 1969년 222만5384명이었다가 1976년 300만명을 넘어섰고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6년에는 483만2822명으로 최고에 달했다. 이후 증감을 거듭한 예비군의 수는 2004년 말 기준으로 304만625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장교는 14만6388명, 부사관은 12만215명, 병은 277만4022명으로 이뤄졌다.
지난해 국방부가 발행한 <2006 국방백서>에 따르면 2006년말 현재 예비군의 규모는 304만명에 달하며 임무별로는 향방예비군 151만명, 동원예비군 153만명으로 이뤄진다. 또 편성형태별로는 지역예비군 238만명과 직장예비군 66만명으로 나눠진다. 육·해·공군을 합친 현역의 규모가 60만명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현역의 5배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대로 편성되어 연간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셈이다. 여기다가 645만명의 민방위대원을 합치면 전체 인구의 1/5을 넘는 약 1000만명이 전시에 대비해 군사훈련을 받거나 부대에 편제되어 있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병영국가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다.
한편, 예비군은 전역한 장교들의 일자리로 기능하고 있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관련 예산은 2001년 2412억에서 2005년 3011억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인건비로 2534억원에 이른다. 이는 예비군 지휘관 5152명(지역예비군 3804명, 직장예비군 1348명)의 임금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휘관은 1년에 2번 공개선발 되는데 응시자격이 △예비군 여단장·연대장·대대장은 대대장 경험이 있어야 하고 △예비군 중대장은 중대장 경험이 있어야 하며 △행정담당 군무원은 부사관 등 장기복무한 경험이 있어야 한다. 즉 예비군 제도는 국가가 장교로 복무했다 전역한 사람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다.
거듭되는 처벌과 강제 동원
1939년 이래 한국에서는 1만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로 처벌을 받아 왔고 지금도 900여명이 수감되어 있다. 그런데 예비군 병역거부자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현역 병역거부자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할 경우 병역법과 향군법에 따라 동원훈련은 6개월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일반훈련은 1년 이하의 장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게다가 전역 후 예비군 복무 기간인 8년간 수십 차례 벌금형에 처해져 수백에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납부한다. 경찰과 검찰, 법원에 거듭 출석하는 사이에 직장을 잃기도 하고 변호사 비용으로 수천만원을 쓰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비군 훈련은 ‘전과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 처벌받은 첫 사례는 향군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벌어졌다. 1956년 초 전역자에 대해 5주간의 ‘병무소집’이 시작되면서 예비군 훈련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집총거부로 실형을 받고 복역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그해 7월 안식교 신자 김응호, 박해종, 김창호 씨가 70여일 동안 구금당했고 3년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양심적 병역 거부 수형자 가족 모임’(아래 가족모임)에 따르면 예비군 창설 이후 2007년 5월말까지 누적된 예비군 거부자 숫자는 모두 1359명에 달하고 이 가운데 예비군만 거부한 사람은 739명, 현역과 예비군 모두를 거부한 사람은 620명이다. 2000년 이후만 해도 145명이 예비군 병역거부를 결심한 것이다. 이들이 낸 벌금 납부 총액만 해도 3억3926만원에 달한다. 가족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명단이 확인된 예비군 거부자는 71명으로 이 가운데 60명이 벌금형을 받았다.
하지만 양심에 따른 거부자들만 처벌 받는 것은 아니다. 2005년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예비군 훈련에 불참해 고발당한 사람은 2000년 2만4955명에서 2003년 4만9247명으로 두 배 가량 증가했다. 2004년에는 3만2114명으로 줄어들었지만 2001년 이후 매년 3만명 이상의 사람이 예비군 훈련 불참을 이유로 고발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후 무혐의로 처리된 수백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벌금형을 받고 있다. 이들의 경우 예비군 제도가 자신의 양심에 반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생계 문제 등으로 정해진 훈련 일정을 지키지 못했을 수 있는데 단지 국가가 소집한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처벌받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비군 거부가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족모임의 집계에 따르면 3명이 집행유예형을, 1명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향군법 위반으로 기소된 윤장운 씨는 지난 3월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했다 법정 구속되기도 했다. 한편 예비군 훈련에 불응할 경우 한 번 처벌받은 후에도 계속 훈련 소집되어 이를 또 거부하면 반복 처벌받는 점은 큰 문제다. 즉 1년에 2~3회 훈련에 불응할 때마다 기소되므로 전체 8년에 걸쳐 10~20차례 처벌받게 된다. 이 때문에 벌금 액수도 늘어나며 초범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도 가중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유엔자유권위원회는 지난해 11월 3일 한국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에서 병역 거부자들이 재소집될 수 있고 새로운 처벌을 받게 되는 횟수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제한이 전혀 없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위원회는 이들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고용에서 배제되며 전과자 낙인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예비군은 언제나 ‘불평’과 ‘개김’의 대상이지만 ‘거부’의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을 지탱하는 강력한 힘은 법적 처벌이라는 물리력이다. 앞서 소개한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훈련 소집에 응하는 비율인 ‘응소율’은 2000년 이후 줄곧 95%를 넘어섰을 정도로 예비군의 ‘충성도’는 높다.
예비군의 존재 의미를 묻자
지난 4월 18일 울산지법 송승용 판사(형사5단독)는 전역 이후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어 교리에 맞지 않는다는 양심상의 결정에 따라 예비군 훈련 소집에 2차례 불응해 기소된 신동혁 씨의 향군법 위반 사건에서 향군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송 판사는 결정문을 통해 “현역병 입영대상자와 현역복무를 마친 예비역과 사이에 실제로 그 복무형태, 복무기간, 훈련의 정도 및 내용 등에 현저한 차이가 있으므로…예비역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함에 있어…우리나라의 안보상황, 징병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 대체복무제를 채택하는데 수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약적 요소 등을 보다 완화하여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고, 국가안보라고 하는 중대한 공익의 달성에 미치는 영향도 훨씬 가볍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예비군 훈련 불참을 범죄로 여기고 처벌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상식’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미 1985년 대법원은 향토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종교의 교리를 내세워 법률이 규정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한 종교와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따라서 헌재가 다른 판단을 보일지는 주시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현역의 병역거부와 마찬가지로 대체복무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즉 헌재가 긍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국회가 예비군 대체복무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이는 속성 상 양심 즉 신념을 가진 소수를 대상으로 할 뿐이며 따라서 예비군 제도는 상처입지 않는 것이다. 즉 예비군이라는 병역 의무가 왜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은 누락된다는 말이다.
선도적 군축으로서의 예비군 폐지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예비군은 군대에서의 경험, 즉 일상화된 폭력과 명령에 대한 복종, 애국심 따위를 상기시킨다. 특히 현역 복무를 마치고 각자 다른 생활공간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획일적인 인식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가 예비군 제도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주입할 수 있는 ‘안보교육’은 매 훈련마다 빠지지 않는다. 국방부가 예비군 훈련 항목 중 다른 훈련은 수임 군부대장에게 위임하면서도 사격 훈련과 함께 ‘안보교육’은 ‘통제 과목’으로 틀어쥐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예비군의 목표는 ‘사회의 병영화’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겉으로 내세우는 예비군 제도의 명분은 한반도의 군사적 대치 상황을 고려할 때 현역 뿐만 아니라 ‘예비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6 국방백서>는 북이 △교도대(17~50세) 62만 △노농적위대(17~60세) 572만 △붉은청년근위대(14~16세) 94만 △인민보안성 등 기타 42만 등 770만의 ‘예비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다. 즉 국방부 통계는 인구의 30%를 위협적인 ‘예비전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노농적위대는 남측의 민방위대, 붉은청년근위대는 남측의 고교 학도호국단 성격을 가지며 인민보안성은 남측의 경찰에 해당하므로 남측의 예비군 성격을 가지는 것은 교도대 뿐이다.
남북 양측이 서로를 빌미로 군비를 확충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힘들다면 남측에서 먼저 예비군을 폐지하는 선도적 군축, 즉 무력의 포기를 통해 평화체제를 선도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특히 ‘예비전력’은 일상의 군사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예비군 폐지는 국방과 안보에 대한 민중적 통제를 강화하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일방적 군비축소라는 적극적 평화주의의 미덕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40년 강제 동원의 역사, 이제 끝내자
현재 국회에는 3건의 향군법 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현대전 양상의 변화에 따라 예비군 복무기간을 현행 8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강창일 의원안, 급식비와 소득획득 기회의 박탈에 대한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이근식 의원안, 그리고 훈련 소집통지서 수령 의무를 분명히 하고 벌칙을 규정해 ‘훈련회피’를 방지하려는 정부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그동안 국가가 예비군 훈련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훈련 시간을 단축하거나 급식비용 등을 증액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한 연장선상에 있다. 오히려 국방부는 ‘국방개혁 2020’을 통해 예비군 중대의 수를 줄이는 대신 훈련의 질을 높이는 ‘정예화’, ‘상비군의 대체전력화’로 나아가고 있다.
돌아보면 그동안 예비군에 대한 개인적인 불평과 불만은 넘쳐났지만 예비군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품고 그 불만을 사회운동으로 조직한 적은 없었다.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논의는 검토된 적도 없을 정도로 예비군은 성역에 머물러 있다. 내년 4월 1일은 향토예비군이 창설된지 40년이 되는 날이다. ‘불혹’의 나이를 맞는 예비군 제도가 그 말처럼 ‘흔들리지 않기’ 전에 예비군 폐지 운동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