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재미/낄낄낄
유쾌한 시위가 좋긴 한데...
어제도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있었고, 그 상당시간은 거리에서 행해졌다. 당연히 경찰이 강경진압에 나서지 않는 한 아침 7시 정도까지 진행되는 것은 상식이 되어 버렸다. 아침이 되면 시위대는 더 기가 살아나서 노래하고 춤추는데 반해, 이러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전의경들은 교대가 되지 않는 한 누적된 피로가 쌓여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거리에서 졸기도 하고...
아프리카를 통해 새벽의 전의경과 시위대가 탑골공원 앞 큰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는 장면에서 시위대들이 "일어나요 바람돌이 모래의 요정"과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전경들에게 함께 놀아줄 것을 요청하고, 그래도 전경들이 수면에 빠지는 것처럼 보이자 갑자기 대로를 횡단하여 전경들에게 다가갈 것처럼 하여 깜짝놀란 전경들이 깨어나고 다시 대열을 갖추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 즈음 되면 전경들이 불쌍해진다.
항상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유쾌한 시위가 좋긴 한데, 문제는 2MB정권의 촛불에 대한 탄압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면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답답하기도 하고 해서 촛불집회 때 나왔던 패러디들을 담아왔다. 대부분 6월 초에 나왔던 것들인데, 이를 떠올려보면 지금은 상황이 많이 열악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심각병에 전염되는 것은 답이 아닌 것 같다.
---------------------------
시위중에도 잊지 않는 우리민족의 개그혼 (필명숨김2008.06.04 18:58:55)
★ 30일이던가 31일이던가... 덕수궁 앞에서 대치 中..
남대문김서장 : 찍찍찍.. 멍멍멍..
사람들 : 퇴근해!!! 퇴근해!!! 집에가!!! 집에가!!!!
소녀들 : 아빠~~~~ 엄마가 빨리 오래~~~~~~~~ ㅋㅋㅋㅋㅋㅋ 집에가자~~~~~~
사람들 : 전경들은 재워라!!! 전경들은 재워라!!!
남대문김서장 : 지금 여러분은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사람들 : 안들려!! 안들려!! → 노래해!! 노래해!! → 춤도춰!! 춤도춰!!
→ 개인기!!! 개인기!!! →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가요~ 아~ 미운사람~
(몇몇 전경들 피식거림ㅋㅋㅋ)
남대문김서장 : 어쩌고~ 저쩌고~~ 여러분의 의견은 충분히~ 어쩌고저쩌고
이제 행사를 접어주십시오~
( 나이트냐?? 행사하게~~~~ )
어떤 아저씨 : (전경중에 맨 앞에 있던 지휘자(?!?!) 한테..)
아저씨~ 아저씨도 노래한번 해요~ 에???
전경 : 이러지 마십쇼 -_-
사람들 : 노래를 못하면 ☆제대☆를 못해요~ 아~ 미운사람 ㅋㅋㅋㅋㅋㅋ
사람들 : 이번판은 나가립니다~ 다음판을 기대하세요~ 다음판도 나가리면~ 소주한병 원샷입니다~~
→ 한박자 쉬고!!! 두박자 쉬고!!! 네박자 마저 쉬고 핫!둘!셋!넷!
남대문김서장 : 여러분의 행위는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사람들 : 안녕히 가세요~~~
남대문김서장 : 찍찍찍.. 멍멍멍.. 왈왈왈
사람들 : 노래해!! 노래해!!! 노래하면 집에간다!!! 노래하면 집에간다!!!
남대문김서장 : 시청앞 광장으로 자리를 옮기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 : 여기서!!! 여기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맨 앞 쪽에서 카메라로 찍고 계시던 기자분 캐폭소하심. ㅋㅋㅋ
무전기들고 현장 지휘하던 높으신 경찰 두명. 서로 귀에대고
경찰 1 : 뭐래는 거야??
경찰 2 : 노래하래 ㅋㅋㅋㅋㅋㅋ
경찰 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대문김서장 바보였음.. 그날 사람이 그렇게 많은편이 아니었음..
노래했으면 진짜 갔을텐데 ㅋㅋㅋ
이 때 시끄러워서 잘 안들렸는데, 다음날 신문에 경찰이 한 망발이 실렸따. -_-
▷ 11차선을 가로막은 시민 대열 사이에서 구호가 일치되지 않자, "여러분끼리도 통제가 안되십니까?"
▷ 밤 12시를 넘어서자, "여러분은 돈이 많으셔서 전부 택시를 타고 돌아 가십니까?"
▷ 경찰이 채증 사진을 찍는 탓에 고개를 숙인 '예비군 시민 지킴이'들에게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 예비군복 입으신 분들"
▷ 여러분 추잡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바랍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악을 쓴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1일이던가? 처음으로 물대포 쏜날.. 삼청동 쪽..
확성기든 아저씨 : 전경여러분~~~~~~~
우리 좀 보내주세요~~~~~ 우린 절.대.로 명박이를 때리지 않아요~~~~
그냥 애기가 좀 하고 싶은 거에요~~~~~~~~~~~~~~
" 보고싶다 이명박!!! "
" 보고싶다 이명박!! "
" 쥐를잡자 쥐를잡자 찍찍찍!!! 쥐를잡자 쥐를잡자 찍찍찍!!!
명바기~~~~~~~~ (원래는 몇마리~~~~~ 이거 ㅋㅋㅋㅋ)
셋팅만 해놓고 안 쏠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물대포 쏟아짐;;;
주로 깃발들고 서있던 운동권 학생들 쪽으로 집중공격...
물대포 끝나고 나서, 난리가 남...
그래도 도망안가고 다들 제자리 지킴!!!!!!!!!!!!!!!!!!!!!
물대포의 주둥이(?!?!)와 카메라가 움직이기 시작...
본인은 솔직히 너무 무서워서 뒤로 빠질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뒤쪽에서..
" 온수!! 온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야~ 춥다!!!!!!!!!!!!!!!!!!!!!!! 따뜻한 물로 쏴라!!!!!!!!!!! "
" 세탁비!!! 세탁비!! "
" 수도세는 니가 내!! 수도세는 니가 내!! "
" 샴푸!! 샴푸!! "
우리 민족의 개그센스란. ㅋㅋㅋㅋ
★ 2일 광화문 대치 할 떄...
살수차 셋팅만 해놓고 그냥 있음..
" 야~ 덥다~~~ 물대포 좀 쏴봐라~~~~ "
" 오늘은 안쏘냐??? 좀 쏴라!!!!!!!!! 한번 맞아보자!!!!!!!!!!! "
ㅋㅋㅋㅋㅋㅋ
선두 왼쪽에서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남..
팡팡~ 탁탁~~~~~~~~~~~~~~
설마 최류탄???????? 놀란 마음에 시선 돌려보니..
우비소녀들.. 초대형 방수막 탈탈 털면서..
" 쏴라!! 쏴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경찰이 시위대들이 앞을 못보게 하려고
초대형 조명으로 강렬한 빛을 발산...
우리의 용사들 : 시력 감퇴!! 학습 저하!!!
전경들 앞으로 어떤 아저씨가 당당하게 다가가서는~
" 야~ 너네 소개팅 안할래??? 여기 이쁜 아가씨들 엄청 많다~
빨리나와 빨리~ ㅋㅋㅋㅋㅋㅋ "
뒤에 있던 소녀들
" ㄱㄱㄱㄱㄱㄱㄱㄱ ㅑ ㅋㅋㅋㅋㅋㅋ "
시간 지나고, 여경이 또 방송시작..
" 여러분은 지금.. 불뻡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씁니다~ "
내 뒤의 남학생 " 야!!!!!!!!!!!!! 너 남자친구는 있냐??? ㅋㅋㅋ "
자정이 넘어감....
" 택시비!!! 택시비!!!!!!! "
" 야간점호 보장하라!!! " (전경들 밤에 좀 재우라고. ㅋㅋ)
★ 그 밖에..
- 새벽에 배고프니까..
배고프다~ 밥줘라!!!
- 이명박은 군대면제!! 전경들이 불쌍하다!!
어청수 성매매!!!
- 현장에 뛰어들어오는 MBC취재메라를 향해
엠비씨!!! 엠비씨!!! 사랑해요 엠비씨!!! ㅋㅋㅋㅋㅋㅋㅋ
뚱.뚜.둥.뚱.뚱!!! 만나면 좋은친구~~~ 엠비씨 문화방송~~~~~
(엠비씨만 보면 흥분하는 용사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새벽4시.. (명박이는 4시간만 잔다고함)
네시다!!! 네시다!! 명박이를 깨워라!!!
- 경찰에 연행되시던 분. 경찰이 험악하게 옷을 잡아끌자..
야!! 신상이야 조심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시험기간인 대학생들
기말고사 책임져라!!! 에프뜨면 책임져라!!!
ㅋㅋㅋㅋㅋㅋㅋ
6월 1일 새벽 4~5시경(과잉진압 있기 바로 전 시간)
YTN 내려와, 씨방새(SBS)도 내려와..
반응이 없자
기자증을 꺼내라, 기자증을 꺼내라, 안꺼내면 조중동...
결국 몇몇 기자분들 기자증을 들어보이며 조중동이 아님을 증명하자 환호..나머지는 뻘쭘 ㅋㅋ
그밖에...불법주차 견인하라도 기억에 남는군요
그래도 최고 압권은
이명박을 점지하신 삼신할미 각성하라 ㅋㅋㅋ
------------------------------------------------------
‘구호와 노래’ 6월항쟁 업그레이드 (한겨레, 황춘화 기자, 2008-06-01 오후 07:50:42)
“명박타도” “사랑도 명예도”…“물절약 수도세” “엄마가 시장가면 미친소”
31일 넓게 트인 광화문 거리에서 쏟아져 나온 구호와 노래는 시민들을 1987년 6월로 데려다 놓았다. 절반 이상은 ‘6월 민주항쟁’을 겪어 보지 못한 10대와 20대였다.
“명박 타도! 고시 철회!”
시민들의 구호는 하나로 통일돼 갔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던 87년 6월과 닮아 갔다. 삼청동 어귀에서 만난 조광일(40)씨는 “87년에 구호는 ‘독재 타도’ 단 하나였다”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도 다양한 구호를 넘어 이명박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모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호들은 ‘통통 튀었다’. 경찰이 “불법 집회를 한다”고 경고 방송을 하면, 시민들은 경찰에게 “노래해”라고 주문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해산 권고엔 “퇴근해”라고 외쳤다. 물대포를 맞은 시민들은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물 절약, 수도세” 하며 맞섰다. “명박 지옥, 탄핵 천국” “촛불은 내 돈으로 샀다, 배후는 양초공장” 등 손팻말에도 기발한 말들이 넘쳐났다.
자정을 넘어서자 비장감이 돌았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30대·40대 귀에 익숙한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남자 친구와 함께 촛불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조은정(26)씨는 “처음 들어 본다”며 난감해하더니, 이내 후렴구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침이슬>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등이 이어졌다. 노래를 함께 부르던 학생 최진우(16)군은 “‘이명박 탄핵 투쟁 연대’ 카페에서 들어 본 노래”라며 “집회에 나와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10대·20대에게 익숙한 노래도 울려 퍼졌다. 시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불렀다. “아빠가 출근할 땐 기름값, 엄마가 시장 가면 미친 소, 우리가 학교 가면 0교시 ….” 10대들이 만든 <뽀뽀뽀 개사곡>도 인기였다.
87년 6월의 기억이 흐릿한 2008년 6월1일 새벽, 청와대를 1㎞쯤 앞둔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들은 20년 전 거리의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
촛불의 6월 첫날, 동생에게서 온 문자 (참세상, 문설희(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 2008년06월02일 9시57분)
[기고] "말로 다 안 나오지만 역사가 증명하잖아"
우리의 촛불은 밤새 꺼지지 않을 기세였고 우리의 불길은 청와대까지 기어코 향할 태세였다. 그러자 물대포가 등장,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물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놀란 사람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넘어지는 사람들...그러나 물대포 덕에 사람들은 더욱 더 똘똘 뭉쳐 하나의 몸이 되었다. 어디선가 구해온 비닐장막을 지붕삼아 모여서서는 물세례를 이겨내다가 물대포가 약해지면 다시금 흩어져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격전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는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한 모닥불이 피워지기 시작했고, 자발적인 시민들로부터 김밥과 물, 담요와 수건 등이 전달되어오기도 했다.
모든 생명이 잠들어야 마땅할 깊은 밤에 수천의 사람들이 잠들지 못하고 깨어서 빚어내는 진풍경은 참으로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그 모습에 한편으로는 서글픔을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쁨을 느꼈다. 위험한 먹거리를 거부하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목소리마저 이런 식으로 짓밟는 대한민국 정부라니 너무나 부끄럽고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러한 정부를 혼내주러 한명 한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뭉쳐 커다란 불길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상반된 감정이 교차되면서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새벽이 다가왔다.
급기야 체포전담반이 배치되었다. 경찰방송은 거리의 시민이라고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 외엔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너희들은 불법이라고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전투경찰들이 군홧발 소리와 방패 찍는 소리를 내면서 시위대를 덮치기 시작했다. 물대포가 거대한 장갑차마냥 위용을 과시하며 시위대를 향해 다가오더니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내며 사람들을 쓸어내렸다. 영화에서나 보는 전투장면 마냥 기이한 풍경이 또 한 차례 연출되었다. 시위대는 놀라서 뒤로 물러서면서도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시민이다! 이명박이 불법이다! 미국경찰 물러가라!
차가운 물세례에 “온수! 온수!”를 외칠 정도로 위트가 넘치면서도,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에 혈안이 되어있는 이명박 정권에 있음을 너무나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물대포를 맞아 바닥에 엎어지고 경찰에 쫓겨 뛰어다니면서도, 맞아 피 흘리고 끌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오르면서도, 그러면서도 다만 처참하거나 슬프지만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명하면서도 용감한 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착한 시민들의 유쾌한 불복종 (프레사안, 김하영,손문상/기자, 2008-06-02 오전 11:21:46)
[현장]'재협상' 시위, '정권 퇴진' 운동으로 확산
○…주차신공 경찰버스. 5월 31일 집회에 이어 1일 집회에서도 경찰은 광화문 일대에 경찰 버스를 겹겹이 세워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았다. 이순신 동상 앞의 세종로 대로는 물론 골목골목마다 경찰 버스를 세우고 좁은 틈은 경찰 병력으로 틀어막았다. 이렇게 경찰 버스를 동원해 길을 막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효순.미선 촛불시위 때부터. 이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던 한 운수노조원은 "예전엔 골목은 사람으로 막았는데, 이렇게 차를 가로로 집어넣는 걸 보면 경찰의 주차신공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한 마디.
○…불복종의 줄다리기 한 판.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 앞에 겹겹이 쌓여 있던 경찰 버스에 시민들이 밧줄을 매고 한 두 대 씩 끌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경찰 버스 탈취는 중대한 불법행위"라고 거듭 경고했지만, 시민들은 불복종으로 맞섰다. 오히려 경찰 버스에 시민들이 자체 제작한 '불법주차'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뒤 "불법 주차 버스는 시민의 힘으로 견인한다"며 수백 명이 밧줄에 달라붙어 한 밤의 줄다리기를 펼쳤다. "의쌰, 의쌰" 구호와 함께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두 박자로 외치기도 했다. 시민들은 쇠고기 재협상 요구에 꿈쩍하지 않고 어설픈 사과 담화문을 내놓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 '가두 시위' 정도는 불법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1일 새벽의 물대포와 의경의 군홧발에 여학생의 머리가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경찰 버스는 그저 '불법주차 차량'일 뿐이었다.
○…헬멧과 우비에 우산까지. 경찰의 '물대포 공격' 경고 방송이 시작되자 오히려 시민들이 경찰의 저지선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우비를 꺼내 입은 사람들이 상당수였고, 인라인스케이트 때문에 구입했음직한 헬멧을 꺼내 쓰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산을 펴드는 모습은 보통 시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사실 동네에서 깡패들과 싸움을 할 때도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위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은 "날 잡아가라"며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이다. 2일 새벽 경찰들이 진압을 위해 대열을 정비하자 일부 시민들은 경찰들을 막겠다며 오히려 경찰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경찰이 몰려들어올 때도 사람들은 스크럼을 짜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뒷 편으로 물러난 운동의 선수들. 이날 집회 현장에서는 이른바 '데모의 선수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들은 거의 대부분 경찰 저지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위 현장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나설 경우 보수 언론의 공격 표적이 된다"는 이유도 있고, 현재의 시위 양상 자체가 이들 단체들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렇게 하면 다치는데"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찰의 무력 앞에서는. 이렇게 맞서던 시민들이었지만 경찰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는 비무장한 시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을 막아보겠다고 인근 보도 공사장의 펜스를 갖다 쳐봤지만 순식간에 무너졌고, 한 부부가 유모차로 경찰을 막아보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순식간에 유모차를 돌아가 시민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1단계로 광화문 네거리를 점령했고, 차례차례 밀고 나와 시민들을 인도로 밀어냈다. 전날 과잉진압 논란 때문에 이날은 물대포를 사용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방패 날을 치켜 세워 시민들을 공격하는 경찰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이 과정에서 한 여대생이 이가 부러지고 코뼈가 주저 앉는 중상을 입어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후송되는 모습이 <프레시안> 기자의 눈에 목격됐다.
○…'확성녀'의 탄생. 경찰 측 해산 경고 방송을 하는 이름 모를 여성 경찰에게 시민들은 '확성녀'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확성녀가 "여러분은 지금 불법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이명박이 불법이고, 우리는 헌법이다"라고 응수했고, 확성녀가 "여러분의 불법 도로점거로 인해 서울 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하면 "우리가 시민이다"고 장단을 맞췄다. '확성녀'의 방송이 뜸해지면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합창한 뒤 확성녀에게 "노래해! 노래해!"를 외치며 "우리 동네 명가수 확성녀를 소개합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쉬고 하나 둘 셋 넷~"이라며 한껏 유쾌하게 흥을 돋웠다.
○…57분 교통정보를 들으세요. 이렇게 단일한 '지도부' 없이 시민들 자발적으로 나오다 보니 현재 가두시위 행령이 어느 어느 곳에서 열리는지 파악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 때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이 라디오의 '57분 교통정보.' 한 시민은 "시위 행령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57분만 되면 라디오를 켠다"고 말했다. DMB는 주로 언론의 보도 동향을 파악하는데 이용된다. 시위 도중 방송 뉴스 시간이 되면 DMB를 켜고 뉴스를 시청한 뒤, 시민들에게 유리한 보도가 나와 '엠비시'를 연호하기도 했고, 불리한 뉴스를 하는 방송사에 대해서는 "OOO랑은 인터뷰도 하지 마세요"라고 하거나 해당 방송사 카메라 기자를 향해 "어이 OOO! 보도 똑바로 하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시민 모두가 기자. 경찰이 소화기를 발사하거나 물대포를 쏠 때 어김없이 여기저기에서 시민들의 팔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손에는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 등이 들려있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재치 있는 구호나 경찰 버스에 부착된 시민들의 '불법주차 스티커'를 지날 때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렇게 찍혀진 사진들은 광활한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에 옮겨진다. 또 '촛불문화제 후기'와 같이 시민들이 직접 발로 뛰어 보고 들은 훌륭한 '르포'들이 삽시간에 퍼진다. 심지어 '경찰 유치장 체험기'를 올려 인기를 얻은 블로거도 있다. 누군가 그랬다고 한다. '디지털 시위대에 아날로그 경찰.'
▲ ⓒ프레시안
-----------------------------------------
“무질서가 힘이다” (레디앙, 2008년 06월 02일 (월) 10:36:52 하재근 /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
[칼럼] 이명박이 우왕좌왕 시위대에 밀린 사연
오월이 끝나고 유월이 시작되던 그 밤, 시위대가 동십자각까지 진출했다. 거의 청와대 지척까지 간 것이다. 그 밤에 시위대는 사실상 청와대를 포위했다. 그 시간 직전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사건이다. 과거엔 시청 앞 광장 정도가 고작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는 교보문고 앞 종로 대로가 시위대가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미대사관 앞에까지 진출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 이상은 갈 수 없었다. 그나마도 다시 반복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교보문고 앞 종로 대로를 가득 메우는 것이 한국에서 시위대에게 허락된 최대한의 의사표현 행위였다. 그 이상은 경찰이 ‘허가’하지 않았다. 경복궁 앞길은 ‘그들’의 길이었지 ‘우리’의 길이 아니었다. 2008년 6월 1일은 경복궁 앞길을 국민이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대통령과 시위대라는 구도가 이번에 깨졌다. 이번 촛불집회는 양상이 다르다. 단일 지도부가 없다. 처음에 촛불집회가 촉발된 것은 인터넷의 불특정다수 여론으로부터였고, 행동에 나선 것은 누구의 지휘도 받지 않는 어린 학생들이었다. 각 조직, 단체들은 뒤늦게 가담했고 그 누구도 지휘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어느 조직이 ‘튀면’ 바로 견제당한다.
시위 현장은 중구난방이다. 행진을 하는데 한쪽에서 “프락치에요 따라가지 마세요!”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면 그 말 무시하고 계속 가는 사람, 다른 쪽으로 가는 사람 제 맘대로다. 행렬은 찢어졌다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냥 집에 가기도 한다.
이건 운동권 조직 대 대통령의 싸움이 아니라 국민의 저항이다. 노무현 정부 때 전경이 시위대를 때려 죽이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통령과 시위대끼리 싸우다 생긴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구경꾼이었다. 이번엔 시위대가 국민 그 자체다. 대통령은 갑갑하고 경찰은 부담된다. 경찰이 시위대를 때리면 노무현 정부 때는 노조를 때린 것이었지만, 이번엔 ‘국민’을 때린 셈이 된다. 행여 불상사가 터질까봐 새가슴이 된다. 시위대의 진출에 경찰이 노무현 정부 때보다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유모차 끌고, 아이 안고, 교복 입고, 태극기 들고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기란 극히 힘든 일이다. 이번엔 구호도 다르고 노래도 다르다. 태극기와 애국가와 붉은악마의 ‘대~한민국’ 구호가 울려 퍼진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때보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그래서 졸지에 경복궁 앞길을 시위대에 열어준 민주적(?) 정부가 됐다. 물론 이 건 이명박 대통령이 착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국민이 자신의 힘으로 대통령에게 ‘착해질 것’을 쟁취한 일이다. 과거 운동권 조직된 대오의 투쟁을 바라만 봤던 국민이 팔 걷고 가세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쇠고기 고시가 있던 날 밤에도 종로 대로를 완전히 점거했었지만 지휘차량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탄핵 당시엔 막강한 스피커 설비가 모든 상황을 통제했다. 이번엔 무질서다. 단일한 힘은 막을 수 있지만 무질서를 어떻게 막나? 이것이 민주정부에서 수만 명이 시도했어도 성공하지 못했던 경복궁 진출이 이루어진 이유다. 이런 일이 발생한 근저엔 인터넷 담론장의 역할이 있다. 과거엔 조직된 사람들에게만 언론과 다른 정보가 전달됐었는데 지금은 포털 게시판에 날마다 쌍방향 대자보가 붙고 있다. 이 대통령에겐 인터넷을 장악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일 것이다.
-------------------------------
유쾌 통쾌 상큼 발랄 신나는 시위 (시사인 [38호] 2008년 06월 02일 (월) 14:11:50 천관율·변진경 기자)
‘거리 시위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현기증 나는 속도다. 정부와 공안당국은 연일 헛다리만 짚는다.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 활동가’마저도 경쾌하게 내달리는 시민을 따라잡지 못해 헉헉댄다. 촛불이 처음 거리로 나선 5월24일 이후 지난 일주일은 그간 익숙했던 거리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린 시간이었다.
거리는 ‘온라인 문화’를 빠르게 흡수했다. 시민은 조직의 지도를 받는 대신 곳곳에서 스스로 조직했다 흩어졌다 자유자재로 변신했고, 리더의 결정에 의지하는 대신 집단으로 결정했다. 싸움과 놀이는 뒤엉켜서 구분이 불가능했고, 비장하게 맞서는 대신 발랄하게 비틀었다. 하나같이 온라인 세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시위 이틀째인 5월25일 밤, 서울 서대문 일대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500여 명의 시위대는 갈림길마다 멈춰 서서 다음 경로를 즉석 토론에 부쳤다. “신촌으로 가자” “아니다, 광화문이다” 결과는 종잡을 수 없었다. 독립문까지 올라간 시위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서대문 네거리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지도부의 지침 대신, ‘목소리’와 ‘쪽수’가 시위대의 경로를 좌우했다.
당연히 광화문으로 가겠거니 짐작하고 앞서가던 정보과 형사들은 연이은 방향 전환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니 대체 신촌에 뭐가 있다는 거야?” 미국 대사관이나 청와대 같은 ‘거점’으로 몰려드는 시위대에만 익숙했던 한 형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선두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던 한 참가자에게 왜 신촌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어, 우리 지금 광화문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위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의 ‘현란한 스텝’이었다는 얘기다. 이날 전경부대는 시위대의 경로를 따라잡지 못해 거의 ‘농락’을 당하다가 밤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시위대의 꼬리를 잡았다.
이런 시위대를 두고 어청수 경찰청장은 능숙한 게릴라 시위로 미뤄보아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몇 백명이라도 잡아넣겠다”라는 강경한 발언도 위협은커녕 ‘코미디’ 취급을 당했다. 시위 참가자 허승우씨(28)는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라고 두세요”라며 웃어넘겼다.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이 시위대는 지도부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들이 아니란 건 하루만 와보면 압니다. 오히려 지도부 없이 움직이니까 옛날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종잡을 수 없는 거죠.”
그 말대로다. 지도부 노릇에 익숙한 ‘프로 활동가’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도 지난 한 주는 흐름을 쫓아가기 바빴다. 촛불문화제를 거리 시위로 확장한 것부터가 활동가가 아닌 온라인에서 모여든 시민이었다.
거리 시위의 전반부는 대책회의가 주도하지만, 밤 11시를 전후로 조직 없는 시민이 주도권을 쥐는 양상은 지난주 내내 반복됐다. 5월27일 화요일 밤 명동역 앞, 대책회의는 “내일 다시 만납시다”라며 해산을 선언했다. “당신들이 뭔데 해산하라 마라냐”라는 항의가 즉각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다음 날인 5월28일에도 풍경은 비슷했다.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에는 집회 경로를 놓고 일부 시민과 대책회의가 격렬한 의견 대립을 보여, 대책회의는 밤 11시 즈음부터 깃발을 내리고 방송용 차량을 선두에서 빼야 했다.
처음에는 주도권을 쥐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시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거리의 문법을 만들어갔다. 대학생 황종원씨(21)는 5월28일 밤 마이크 대신 페트병을 잘라 만든 즉석 확성기를 들고 시위대 100여 명 앞에서 사회자로 ‘데뷔’했다. 집회의 사회는커녕 학생운동 경력도 없던 그다.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설프지 않았나”라며 고개를 젓던 그는, 다음 날인 5월29일에는 시위대 선두에서 4만명의 경로를 정하는 ‘지도부 노릇’까지 해냈다. 이날 밤에는 “아고라 모여라!”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다음 아고라에서 의견을 나누던 이들이 오프라인 집회에서도 한데 뭉쳐 목소리를 내겠다는 거였다.
시위대의 ‘배후’ 역시 온라인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담당한다. 블로거 ‘쿄코’는 가두시위가 있을 때면 보통 네댓 개의 창을 모니터에 띄워둔다. <오마이뉴스>·진보신당·웹캠방송 등의 현장 생중계로 상황을 확인하고, 자기가 활동하는 카페에서 정보도 얻는다. “요즘은 화장품이나 구두 동호회에서도 실시간 현장 정보를 올린다”라고 쿄코는 설명했다. 그렇게 모은 새 정보를 다시 현장의 지인에게 ‘공지 문자’로 뿌려준다. 기자 역시 지난주 거리 시위를 취재하며 만난 취재원들로부터 100건이 넘는 ‘공지 문자’를 받았다. “전경이 어디에 깔렸다”라느니 “어디서 몇 명이 연행됐다”라는 식의 정보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시위대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정보에 밝은 이유다. 화염병 대신 휴대전화를 손에 쥔 이 ‘처음 보는 시위대’를, 정부도 활동가도 따라잡기 버거워 전전긍긍이다.
5월27일 밤, 경찰은 일명 ‘닭장차 투어’라 불리는 희한한 저항에 맞닥뜨리고 아연실색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경에 포위된 113명은 경찰에 저항하는 대신 제 발로 ‘닭장차’(전경 수송차량)에 올랐다. 무리한 연행과 훈방을 반복하던 경찰을 조롱하는 누리꾼의 농담 ‘닭장차 투어’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386 세대’의 막내 격인 직장인 정영일씨(39)는 “시민이 집회를 거듭하면서 배운다. ‘지금 경찰이 허풍을 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부담이 없는 거다”라고 짚었다. ‘불법 연행 규탄한다’고 엄숙한 성명서를 내는 대신, ‘닭장차 투어’를 하자고 비튼다. 무장해제된 경찰은 다음 날 밤 똑같은 상황에서 가두시위대 100여 명에게 “연행은 없다”라고 직접 약속까지 하며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다.
가두시위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던 5월28일의 청계광장. 경찰은 작심한 듯 청계광장 주위를 ‘닭장차’로 완전히 둘러쳤다. 가두시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였다. 대책회의는 당황했고, 활동가들은 ‘하던 대로’ 전경과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많은 시민은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유유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정색하고 부딪치는 대신, 슬쩍 비틀어버린다. “경찰이 멍청해서 청계천 길을 막는 걸 까먹은 거다.” “아니다. 차마 ‘각하’의 치적인 청계천에 군홧발을 들이댈 수 없는 어 청장의 충정이다.” 광장을 빠져나와 가두시위에 나선 두 시민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정부와 경찰을 비웃었다.
톡톡 튀는 집회 구호도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전경의 ‘닭장차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힌 29일 밤 시위대에서는 “불법주차 차 빼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이어지는 구호는 “유가급등 시동 꺼라”였다. 게시판 댓글을 보는 듯한 순발력이다. “시위대 앞쪽에 있으면 주동 세력, 가운데 있으면 핵심 세력, 뒤에 있으면 배후 세력”이라는 ‘운동권 유머’도 새롭게 인기를 끌었다. 틈만 나면 ‘배후 세력’을 찾는 정부와 보수 언론에 대한 풍자다. 가두시위대 특유의 비장함보다, 이런 발랄한 ‘비틀기’가 지난주 거리를 지배했다.
--------------------------------
아, 이렇게 착하고 질긴 시위대 봤나요 (레디앙, 2008년 06월 02일 (월) 17:45:49 조은영 / 독자)
오늘도 촛불 사러 간다, 나 잡아 봐~라
[독자기고] "내가 오늘 어디에 있을지 나도 모른답니다"
이런 식이다. 매일 아침이면 다음 아고라를 시작해, 주요 사이트에는 ‘조중동 우아하게 끊는 법’과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은 회사들의 홍보실 전화번호가 올라온다. 혹시 이미 받은 경품 자전거나 전화기 때문에 주저하는 소심한 독자들을 위해 경품 자체가 불법이므로 되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 영업소와 일일이 상대하지 말고 ‘우아하게 본사에 전화해서 해지하라’는 코치는 퍼질 만큼 퍼졌다.
요 며칠 네티즌들의 ‘오늘의 과제’는 일단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신네 회사가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광고를 실었더라, 그렇다면 나는 당신네 회사가 광고를 철회할 때까지 항의할 것이며 안 되면 불매운동 조직할 것이다.” 요즘 <조선일보> 광고 개재 회사 홍보실은 폭주하는 전화로 골머리께나 앓는 중이다.
그뿐 아니다. 연행자가 있는 경찰서마다 전화 걸어 항의를 하고 ‘칭찬합시다’ 게시판에 들어가서 국민 잡아 가두시는 경찰님들 우리가 낸 세금으로 엿 많이 사드시라는 칭찬 글도 남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 하느라, 진보신당과 <오마이뉴스> 생중계 후원하느라, 강달프(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응원하느라 여기저기 후원하고 성금 내느라 부지런히 인터넷뱅킹 창을 클릭한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온라인에서 ‘스마일 심’으로 활동하며 악플을 달아 온 증거를 찾아냈을 때 네티즌들의 센스는 상상을 뛰어넘었다. 알바비에 보태라며 18원을 후원금으로 보낸 것이다. 세액공제를 위한 영수증 처리는 등기우편으로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 ‘확인 사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누군가는 쥐 잡는 뿅망치를 들고 나오고자 했다. 평화시위를 염원하는 뜻에서 꽃을 들고 나온 이들도 있었다. 좀더 쌈박하고 신선하며 자극적인 피켓 문구를 만들어 사이트에 뿌리며 ‘불펌 환영’ 머리말을 달았다.
‘전화질’과 ‘클릭질’은 재빠르고 또 재치가 넘치며 뜨겁고 열정적이다. 그에 비해 거리에서는 엄청나게 느리고 또 피로하다. 인도에서 차도로 경계를 넘기는 했으나, 그 다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의 저지에 직면했을 때? 모두 다 알다시피 막히면 돌아가고, 돌아가다 또 막히면 열린 길을 찾아 에둘러 갈 뿐이다.
하지 않는 건 딱 하나 있다. 포기하고 해산하는 것. 정해진 작전은 없지만 광화문에서 혹은 종로에서 그리고 지난 주말처럼 경복궁 부근에서 어찌됐든 만났다. 예정된 행로는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이고 나서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생긴 것일 뿐이다.
“어디로 간대요?” “오늘은 청와대 쪽으로 갈 것 같아요.” “일단 사람들 많은 쪽으로 붙어요.”
배후가 없으므로 해산을 명할 수도 없다. 해산하고 싶을 때 한다. 새벽녘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해산은 아니다. 내일 다시 나오기 위해서는 들어가야 할 뿐이다.
시청에서 서소문로와 서대문을 지나 경복궁 역에 이른 시민들은 더 이상 ‘고시철회, 협상무효’를 외치고 있지 않았다.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시위가 날이 갈수록 확산된 것처럼 그 사이 시위의 성격 역시 진화하고 확장된 것이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물 사유화를 비롯한 각종 민영화, 대운하, 교육정책 등 철회와 재고를 요구해야 할 것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은 촛불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상식이 돼 있다.
“저게 살수차야?”, “물이 어디서 나오는데?” 라며 시위대가 웅성거리는 사이, 취재 중인 숱한 카메라들을 향해서, 닭장차에 올라간 시민을 향해서, 그리고 ‘평화시위 보장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는 시위대들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했다.
이에 대응한 구호는 ‘세탁비! 세탁비!’, ‘물 뿌려도 안 간다!’, ‘수도요금 올랐다. 아껴 써라 내 세금!’이었다. 물대포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을 때 시민들을 경악했고, 비명을 질렀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몸으로 맞서는 이들의 뒤에는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이 있고, 함성으로 맞서는 이들 뒤에는 이 시위의 기본적인 성격을 상징적으로 구현해 내는 이들이 있다. 닭장차와 직접적으로 맞서지 않는 후미는 또 완전히 다른 세상을 실현하고 있다.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디선가 조달된 커피와 김밥을 나눠먹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새벽 세 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에 사복체포조가 삼청동 뒤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는 소문, 주변에 병력이 계속 보충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자 누군가 그럼 어떡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가능한 인도 쪽에 서 계세요.” 들려오는 대답이라곤 이게 전부다.
시위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대신 진압은 한 차원 진화한 시위를 쫓아오지 못했다. 곤봉을 휘둘렀고, 방패로 내리찍었으며, 군화발로 짓밟았다. 시민과 전경들은 하나 대 여럿으로 만났다. 촛불 대 물대포로 만났다. 비무장 대 무장으로 만났다. 비폭력 대 폭력으로 만났다.
사실 시위가 절대로 끝나지 않는 이유, 24시간 계속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용량이 부족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동 트는 새벽까지도 폭력적인 진압이 계속되는 상황은 인터넷 생중계를 타고 쉼 없이 보도됐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집으로 귀환한 이들은 이불 속에 숨어 벌벌 떨지 않는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접속한다. 연행된 경찰서에 항의 전화를 한다. 현장 상황을 왜곡해 보도한 언론사에 정확한 취재와 보도를 요구하며 다이얼을 돌린다. 해외 언론 사이트에 제보할 사진과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을 제작한다. 구호에 필요한 모금을 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 내일 시위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연락한다. 그리고 다시 ‘출동’한다. 경찰이 시민을 에워싸고 폭력을 가할 수는 있지만, 시위 자체를 고립시킬 수 없는 이유다.
무차별적 진압에 의해 인도로 몰려 있던 시민들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자 ‘이명박 퇴진’을 외치며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촛불을 들고 도로를 점거하는 것이 불법이라면, 촛불을 들고 도로를 건너겠다는 것이다.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도 응원의 박자를 맞춰 응원의 경적을 울린다. 이 와중에도 좌측통행이 이뤄졌다. 건너가는 이들과 건너오는 이들이 횡단보도 한 가운데서 엉키지 않았다. 짜릿한 새벽이었다. 빨간 불이 켜져 있는 동안에는 인도에 대기하면서 현장을 떠나는 경찰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질기고 착한 시위대를 본 적이 없다. 오늘도 다시 촛불 사러 간다. 우비도 살 거다. 누구 돈으로 사는지 그게 못내 궁금한 모양인데, 내 돈으로 산다. 들리는 얘기로는 두께 20센티미터의 스티로폼도 효과적이란다. 피켓처럼 구호를 쓸 수도 있고, 깔고 앉을 수도 있고, 경찰의 곤봉과 물 대포 세례를 막을 수도 있단다.
---------------------------------------------
물대포에 “온수!” 화나는데 미치겠다, 웃겨서 (한겨레,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2008-06-03 오후 02:57:18)
김어준의 촛불집회 현장에서
확성기에 “노래!” 경고방송엔 “개인기” 주문
배후? 있다, 혼자면서 모두인 집단지성 댓글
1. 지난 주말 밤 광화문 사거리.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목이 잠겼다. 닭장차 방벽과 인간 자물쇠. 그 폴리카보네이트 방패 앞에 교복 입은 여고생과 하이힐 신은 아가씨가 맞서 있다. 도무지 생경한 그림이다. 그들이 외친다. “비폭력, 비폭력.”
그러나 되돌아오는 건 물대포. 사람들이 쓰러진다. 받아치는 구호. “온수! 온수!” 기왕이면 따뜻한 물 뿌리란다. 경찰이 확성기를 잡자, “노래해, 노래해”가 울려퍼진다. 경고방송 나오자, 이번엔 “개인기, 개인기”를 주문한다. 미치겠다. 화나는데 웃겨서.
이 분노와 웃음이 공존하는 포스트모던한 역사의 현장을, 돌멩이 대신 노트북을 든 개인들이 생중계한다. 이제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다. 지구상 최강의 시위대가 출현한 것이다.
2. 이들의 등장에 기겁한 청와대 민정수석실, 촛불집회 1만명 참석이란 보고를 하자 우리의 대통령님, 버럭 하셨다.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는지 보고하라고. 호. 그러쎘쎄여.
“촛불은 누가 처음 켰어! 넵, 불티나 라이트로 파악됐슴다, 각하. 치밀하게 준비된 거지! 넵, 양초와 컵구멍 밀착을 위한 정밀계측이 전국적으로 횡행하고 있슴다, 각하” 청와대, 이 수준으로 놀고 있다.
3. 아이들 손 쥐고 부모들이 나섰다. 패션동호회가 정부에 반박광고 내느라 몇천만원 모금했다.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이 1100만원짜리 신문광고 샀다. 디브이디(DVD) 동호회, 에스엘아르(SLR)카메라 카페, 공동구매 커뮤니티, 요리 사이트, 주부 클럽이 또다른 모금에 나섰다. 쇠고기 고시무효 헌법소원 청구인단 신청자가 7만명이 넘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들의 배후를 찾는다. 배후라. 연행된 중학생이 울고불고 하는 대신 묵비권 행사하고 민변 찾는 시대에 배후라. 허, 그동안 대체 어느 은하계서 살다 온 걸까. 세상이 얼마나 진화했는지 감도 못 잡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을 물대포로 되돌릴 수 있다 믿는다면 멍청한 걸 넘어 불쌍한 거다.
지도부? 존재한다. 댓글 지도부가 존재한다. 서로의 견해와 정보가 댓글을 통해 무한 소통되고 어느 누구의 통제도 없이 균형점을 찾아간다. 그렇게 네트워크로 확장된 지성이 이 사태를 집단 지휘하고 있다. 더이상 선각하는 외로운 지성은 없다. 분산되었으나 동시에 모두가 연결된, 다 함께 각성하는 집단 지성이 있을 뿐. 그렇게 모두가 모두의 배후인 것이다.
4. 이 거대한 집단 지성 앞에서 정부는 그동안 거짓과 꼼수로 일관해 왔다. 왜 지지 않아도 되는 리스크를 국민들이 져야 하느냐 묻는 데 확률을 떠든다. 재협상하라는 데 달랑 편지 한장 들이댄다. 장관고시 말라는 데 중국 가서 숨는다. 그런 연출정치가 통하던 시대는 애저녁에 끝났다. 촛불 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라. 장관보다 많이 안다.
이제 사실대로 이실직고해야 한다. 잘못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고 해야 한다. 미국에 쪽 팔린다. 그럼 쪽 팔아야 한다. 대통령 하나 쪽 팔리는 게 낫다. 지금처럼 장관 명단이나 조몰락거리다간 진정 세계적으로 쪽 팔리는 게 뭔지 알게 될 터.
보라. 거리에 유모차 끄는 엄마들이 나섰다. 이러면 이야기 끝난 거다.
이런 저런 핑계 다 필요 없다. 살길은 하나다. 닥치고 재협상!
------------------------------------------
지금 광장은 진화 중, 당신은 어디쯤 있는가? (참세상, 이종필 새사연 이사, 2008년06월03일 17시17분)
5월 31일~6월 1일, 1박 2일 국민엠티 참가기
1박 2일, 따져보니 36시간 정도 될 듯하다. 하루하고 꼭 한나절 정도 되는 이 시간동안 세상 만물은 얼마만큼 진화, 발전할 수 있을까? 세상사 구석구석이야 확인할 길 없겠지만 이 시간동안 전국에서 모인 촛불들이 가득 메운 서울의 광장은 진화하고 또 진화했다. 이는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를 진화시킬 거대한 동력이 창조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첫째 날, 5월 31일 저녁
10만 명이다. 전국에서 무려 10만 명이 모여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2MB를 만나야겠다며, 청와대로 향한다. 건국 이래 몇 번째 있었던 일일까?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 앞에 모여 정권 타도를 외치는 이 역사적 장면이!
결국 이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 앞에서 경찰은 소화기와 살수차를 동원해 엄청난 양의 물량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시위대 역시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연행되며 만만치 않은 밤을 보냈다. 그리고 동이 트자마자 경찰은 본격적인 진압을 시작했고, 시위대는 해산된 채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조금은 답답한 시간이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충분히 경찰의 물리력을 이겨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쩌면 일사분란하지 않음이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연스레 한숨이 터져 나왔고, 가슴이 답답해져만 갔다.
둘째 날, 6월 1일 저녁
다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광장에 모였다. 간단한 집회 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오늘도 역시 목표는 오직 2MB이었다. 그러나 광화문 네거리에서 주차신공에 막히긴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한참동안 경찰과 시위대 간 공방이 오간다.
멀뚱하니 서서 지켜보는 심정은 역시 답답함이었다. 대통령 만나러 가는 길이 이리 험난한 이 사회가 답답했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걸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에 하릴없이 대열 맨 앞으로 향했다. 혹시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은 없을까? 아니,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뭘 모르는’ 생각은 여기까지, 정확히 여기까지였다. 한 걸음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나뿐이었다. 촛불은, 광장은 ‘한 걸음’ 이 무색할 정도로 진화하고 있었다.
장면 1. ‘주차신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밧줄견인비급’
소문을 들어보니, 주차신공을 생각해낸 경찰은 일계급 특진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이건 진짜 수출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상품이 안된다. 대응법도 함께여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대응법까지 패키지로 묶여야 히트상품이 될 수 있다.
이날 시위대는 경찰의 ‘불법주차신공’에 맞서 ‘밧줄견인비급’을 내놓았다. 어디선가 굵고 긴 밧줄이 두어 개 나왔다. 시위대는 밧줄을 차바퀴와 뒷 꽁무니에 꽁꽁 묶었고, 이어 으쌰으쌰 한판 줄다리기를 벌인다. 그렇게 3대의 트럭을 시위대 뒤편까지 끌어다 놓았다. 굉장한 힘이다. 멋진 지혜다. 사람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불법, 형사처벌’ 운운하는 경찰들에게 외친다.
“우리가 법이다! 이명박이 불법이다!”
장면 2. 살수차엔 방수포대!
전날 살수차에 제대로 당한 터라 이제 살수봉만 나와도 움찔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준비정신은 보이스카웃을 뛰어 넘는다. 어제의 울분을 목구멍으로 다 넘기기도 전에 대형 방수포대를 준비한 시위대. 시민들의 ‘밧줄견인비급’에 맞서 경찰이 살수봉을 들이대자 휘리릭 파란색 방수포대 서너장이 사람들 머리위로 씌워진다. 살수봉이 움직이는 방향을 쫓아 좌로, 우로 움직이며 대응에 들어가는 방수포대! 아, 유비무환이다. 이 말은 정녕 오늘을 위한 것이었다!
장면 3. 시위대, ‘언론자유’를 정의하다
가끔 정부와 언론 간 갈등이 불거질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논쟁이 ‘언론자유’다. 그 유래를 따져 묻자면 피곤할 만큼 케케묵은 논쟁이다. 특히 조중동마저 이를 들먹일 때면, 골치 아파진다. 하지만 이날 시위대는 광장에서 ‘언론자유’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경찰확성녀께서 살수를 예고하며 경찰 버스 위에서 취재 중인 기자들에게 내려가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언론자유 보장하라!” 를 연호하며 내려오지 말라고 응원하는 시위대. 그 와중에도 시위대는 “조중동은 내려가!” 를 연신 반복하며 외친다. 꿈쩍 않자, 한 중년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친다. “5분 후에 올라가서 기자증 검사하겠다! 여러분 그래도 되겠습니까?” 시위대가 메아리를 보낸다. “예” 중년 아저씨가 두어 번 경고를 보내자. 한 사진 기자가 슬그머니 내려간다. 조선일보 기자란다. 환호하는 시위대를 뒤로 하고 중년아저씨는 버스 위로 올라 직접 기자들을 일일이 ‘검사’한다. 검사가 다 끝난 후, ‘위험물’이 제거되었음이 확인되자 환호하는 시위대.
경찰의 부당한 요구에는 ‘언론자유보장’을 주장하다가 조중동 기자들을 철저히 단속하는 모습. 어떤 이에게는 대단히 모순적인 모습이거나, 군중들의 비논리적 행태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진정한 ‘언론자유’의 정의를 배웠다. 국민들의 이해와 독자들의 정당한 요구에 근거하지 않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또한 국민들의 이해가 철저히 관철되고, 그것이 대중들에 의해 검증될 때 언론자유는 대중들에 의해 무한대로 보호되고, 지켜진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자유’에 관한 진실임을 확신한다.
장면 4. 해학과 풍자, 21세기 비폭력 시위대의 최대 무기
비장함은 찾기 힘들다. 물론 분노도 있고, 때때로 긴장감도 흐른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바로 해학과 풍자다. 해학과 풍자는 예로부터 못된 지배층을 비판하고 심판하는 가장 대중적이고 날카로운 민초들의 무기였다. 바로 이 해학과 풍자가 촛불시위에서 되살아났다.
경찰확성녀가 고운 목소리로 경고방송을 내보내자, 시위대는 “노래해, 노래해” 를 외치고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이라며 장단을 넣어준다. 경찰 버스 위에서 취재 중이던 기자들을 내려보내기 위해 버스 위로 올라간 일단의 전경무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로 외쳐댄다. “노래해, 노래해”, “춤도 춰, 춤도 춰”, “웃겨 봐, 웃겨 봐” 장단을 한참 넣어 준 뒤 시위대에는 ‘까르르’ 해맑은 웃음이 넘쳐 난다. 비장함이나 긴장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학과 풍자의 힘은 본디 저 높은 가지에 매달린 ‘양반’들을 여기 민초들의 자리로 끌어 내려와 같은 지위에서 망신주고 욕하고 골탕을 먹이는 새로운 경지에서 비롯한다. 다시 살아난 광장에서의 해학과 풍자, 촛불시위의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다.
촛불시위를 경험하며 고민에 휩싸인 사람들을 많이 본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지나온 역사의 교훈을 넘어서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고민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 시위대 안에 있어야 한다. 그들과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진화하고 있는 광장 그곳에 서야 한다. 그 광장을 변화시키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관념에 빠지기 쉽다. 지나간 틀에 얽매여 나오지도 않을 답을 찾아 관념의 미로를 헤매이기 전에, 그들과 함께 고민을 나눠야 한다.
지금, 나도 그들과 함께 진화해야 한다.
--------------------------------------
2008. 6. 14
KBS2 시사투나잇에 나왔던 시사난타 중 명박산성, 파워레인져 편은 두고두고 볼 필요가 있는 명작이다. 이에 열받기라도 했다는 듯 검찰은 경찰관의 멱살만 잡아도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 공무집행 방해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기준이 대폭 강화하기로 했단다. 완전히 경찰국가가 되는구나.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01&articleId=1798222
시사난타 -명박산성_파워레인져.
-----------------------------------
[커버스토리]온라인·오프라인 달구는 패러디 열풍 (2008 06/17 뉴스메이커 779호, 최영진 기자)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한 구호와 재치, 공권력 철저히 무력화
한 달 이상 계속된 촛불집회를 계기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패러디 열풍이 거세다. 패러디 대상은 이명박 대통령부터 정운천 장관, 어청수 경찰청장 등 다양하다. 사진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패러디물.
40대 직장인 ㄱ씨는 요즘 저녁만 되면 시청으로 향한다. 그동안 촛불집회에는 참여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전경의 강경진압 동영상을 보고 화가 나서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처음 촛불집회 현장으로 갈 때는 “만일 전경이 강하게 나오면 또 짱돌을 집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그에게 시위는 돌과 화염병 그리고 최루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기 때문이다.
ㄱ씨는 회사 일을 마치고 저녁 7시 시청에 도착했다. TV와 인터넷을 통해 본 것처럼 촛불집회는 평화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국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연단을 중심으로 많은 시민과 학생이 촛불을 밝히고 있었다. ㄱ씨는 분위기나 보려고 집회 현장을 왔다 갔다 하는데, 시민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고 웃기 시작했다. 구호는 ‘독재타도’ ‘민주쟁취’ 정도는 아니어도 뭔가 엄숙해야 하는데, ‘2000원 주고 내가 샀다’ ‘이제 잠 좀 자자’ ‘촛불시민 10만 명이면 들고온 카메라가 5만 대. 때릴 때 조심해라. 찍히면 인터넷 스타!’ ‘핀란드는 2MB를 씹습니다’ 등 재미있는 구호가 많았다. 연단에 올라온 시민들의 이야기도 재기발랄하다.
10대들은 어설픈 구호 대신 노래를 부르고, 한 시민은 나와서 대통령을 ‘쥐박이’라고 서슴없이 부른다. 과거엔 수천 명 이상이 모인 집회장에서 연설하는 사람은 머리에 빨간 띠를 매고 있는 의장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촛불집회에서는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었다. ㄱ씨의 입에서는 “정말 세상 많이 변했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집회 현장이 축제 현장으로 변화
시민 연설을 마치고 가두 시위를 시작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ㄱ씨의 몸이 잠깐 움찔한다. “이제 진짜 시작인가.”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따라나섰다. 물대포 때문일까. 시위대에서 초대형 방수막을 펼쳤다. 경찰이 경고 방송을 하자 방수막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쏴라 쏴라’ ‘온수 온수’라고 외친다. 누구 입에서는 ‘세탁비 세탁비’라는 구호도 나온다. ㄱ씨는 ‘개인기 개인기’ ‘노래해 노래해’라는 구호를 듣고는 웃겨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 경고방송을 하기 위해 확성기를 든 경찰에게 한 말이었다.
3~4시간 정도 시위대를 따라다니다 광화문 사거리에 자리 잡았다. 청와대 길목으로 가는 길은 차량으로 모두 막혀 있다. 깃발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촛불집회 현장이 축제의 현장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기타를 메고 온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한 편에서는 북을 두드리면서 즉석에서 난타 공연도 펼쳐진다. 한 젊은 무리는 ‘쥐박이 잡기’ 놀이를 하는데, 나도 알고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벌칙으로 등을 맞는데 한 쪽에서 ‘비폭력! 비폭력!’을 외친다.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웃고 말았다. 철야 집회를 MT라고 부르면서 나오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대체 이 젊은이들은 어느 혹성에서 온 것일까. 공권력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공권력을 비웃는다. 시위가 이렇게 재미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ㄱ씨는 이제 퇴근을 하면 자연스럽게 촛불집회 현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기대하면서.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그래머 ㅊ씨는 오늘도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웃고 있다. 촛불집회 관련 패러디 작품이 인터넷을 뜨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패러디는 네티즌의 단골 메뉴지만, 요즘은 허를 찌르는 반전과 통쾌함이 더욱 강해졌다.
‘뼈의 최후통첩’ 등 패러디 인기
ㅊ씨가 기억하는 최고의 패러디물은 ‘뼈의 최후 통첩’. 유명한 영화를 가지고 패러디를 만드는 김풀빵의 실력은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뼈의 최후 통첩’은 대박감이다. 이 패러디물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고등학생을 조사한다고 경찰이 학교에 찾아온 것을 비꼬고 있다. 김풀빵은 처음으로 성우를 써서 만들었는데, 작업에 참여한 성우들은 “이러다 우리 끌려가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공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많은 네티즌이 김풀빵의 작품을 ‘강추’하고 있다.
네티즌은 한 번 터진 패러디 분위기를 계속 ‘쭈~욱’ 이어간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전경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네티즌이 가만 있을 수 있나. 바로 닭장차 무박 2일 투어 공지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포돌이와 함께하는 닭장차 타고 서울투어~’라는 제목의 공지인데, 기간은 미친 소 협상 다시 할 때까지다. 매일 저녁 2시 세종로를 출발해 무박 2일의 일정이다. 인원에는 제한이 없고, 행선지는 서울 시내 각 경찰서다. 물론 행선지는 ‘랜덤’이라는 센스 발휘해주고, 숙박 및 조식을 제공하고 경우에 따라선 중식도 준단다. ㅊ씨는 “나도 참가해볼까”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닭장차 무박 2일 패러디는 ‘청와대 투어’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냈다. 이 상품은 무박 3일간의 일정으로 모두 3개조로 나눠서 진행한다. 현지 가이드인 전경과의 강렬한 접견 및 도로 사정상 닭장차 바리게이트 넘기 특별 상품까지 마련되어 있다. 현지 가이드 측의 물대포 퍼레이드와 현지 가이드의 안내방송까지 상품으로 증정한다고 공지하고 있다.
ㅊ씨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또 다른 사이트를 클릭했다. 이번에는 닭장차 투어에 참가했던 진중권 교수가 스타로 떠올랐다. 진중권 교수가 전경에게 맞을 때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왔던 “밀지 말라고 외쳤는데, 왜 때려요. 나도 맞았는데 왜 때립니까. 왜 때립니까”라는 랩(?)을 배경으로 깐 ‘진중권 교수의 싱글 앨범’이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OST의 ‘마지막 선택’이라는 슬픈 음악에 진 교수의 랩이 절묘하게 들어가 있었다.
ㅊ씨가 찾아낸 또 하나의 히트작은 ‘5년 뒤 쇼핑몰’이다. ‘대운하 극복용 보트’ ‘눈앞에서 한우 잡아드립니다’ ‘자가 의료, 모든 수술 집에서 가능’ ‘풍력 발전기, 비싼 전기료 58% 절약’ 등 요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비꼬는 쇼핑몰이다.
네티즌은 패러디를 통해 공권력을 철저하게 무력화한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산책을 가장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하기 요령’ ‘어청수 삼행시’ ‘정운천 삼행시’ 등에 댓글을 달면서 서로 즐거워하고 있다. 요즘 떠오르는 인터넷 스타는 바로 버시바우 미 대사다. “한국인은 과학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자마자 인터넷은 버시바우를 패러디한 작품이 넘쳐나고 있다. 뽀뽀뽀를 패러디한 ‘대한민국현주소‘ 노래,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 10%대로 추락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그래프를 반등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매수 타이밍으로 패러디한 네티즌도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면 물대포는 경찰청의 비데로’라는 네티즌의 댓글은 그래도 얌전한 편이다. ㅊ씨는 오늘도 패러디의 바다에 빠져 있다.
--------------------------------------
촛불, 그 분노와 해학의 감수성 (참세상, 유영주 기자, 2008년06월16일 15시33분)
[인터뷰] 나영 문화연대 활동가
나영 활동가는 톡톡 튀는 촛불시위 문화행동 사례를 생각나는 대로 꼽았다.
무적의 김밥부대
디시인사이드 음식기타갤러리에서 시작된 무적의 김밥부대. 무적의 김밥부대는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고 시위 현장에서 김밥을 나눠주는 활동을 한다. 5.18 때 시민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던 장면과 오버랩 된다. 얼마 전 게시판에 통장을 복사한 게 올라왔는데 그동안 쓰고도 7백만 원이 남았다고. 모두 모금이고.
레이저포인트 시위
한 네티즌이 생일파티를 하다 얻은 아이디어. 이 네티즌은 친구들이 생일파티 이벤트를 한다고 깜깜한 방에 가둬놓고 레이저포인트를 쐈는데 무서움을 느꼈다고. 그래서 전경한테 쏘자고 제안하니 사람들이 진짜 들고 나왔더라고. 7일 밤 차벽에 전경들이 올라가 있었는데 레이저포인트를 쏘니 전경들이 진짜 당황하는 장면 연출. 체증카메라 막대기가 올라오자 역시 레이저포인트를 쏴 내리게 했다고.
물대포와 맞장 뜬 물총
5월 31일 물대포와 함께 폭력진압 사태가 벌어진 후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물대포에 맞설 무기로 물총을 조직. 6월 5-7일 국민엠티 중에도 시민들이 즐겨 했던 퍼포먼스다. 물대포와 관련해서는 시민들의 요구도 풍부하고 구체적이어서 화재. ‘물대포가 안전하면 비데로 써라’ 라던가 물대포에 맞은 시민들이 ‘온수’ ‘이온음료’를 달라고 외치는 모습
조선일보는 쓰레기장
6월 10일 집회, 여느 때처럼 깨끗이 청소된 광장과 거리.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쓰레기를 정리하는 깔끔한 모습을 선보이는데, 이날 주워 모은 쓰레기를 버린 곳은 조선일보 건물 앞. 조중동, ytn 기자들은 인터뷰도 안 해주는 촛불집회 분위기에 서러움을 호소하는 분위기.
마우스 끌기 행렬
특히 6월 10일 곳곳에서 마우스를 끌고다니는 시민들 포착. 쥐박이라고 쓰기도 하고 갖가지 글자를 새겨 끌고다니며 거리를 활보.
뻘쭘한 선무방송
촛불을 든 시민과 경찰의 대치가 늦도록 이어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선무방송. 경찰 방송차량의 선무방송은 대부분 여경의 목소리. 여러분은 지금 불법 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기 바랍니다... 선무방송이 나오는 중에 시민들은 우- 하는 야유를, 선무방송이 끝나면 ‘노래해’를 연호. 때에 따라서는 ‘춤춰라’ 등도.
조중동 광고 빼내서 경향,한겨레에 광고 넣기
조중동에만 광고를 한 대기업에 불매 운동 제안. 조중동에만 광고하고 경향,한겨레에는 광고하지 않은 기업들 혼쭐. 최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춘천마라톤대회에는 대기업 광고가 싹 빠졌다고.
네티즌들 오늘의 숙제
오늘의 숙제는 조중동 폐간 글 올리기, 오늘의 숙제는 청와대 항의방문...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오늘의 숙제를 확인하고 실행에 옮긴다.
나영 활동가는 지난 5-7일 국민엠티 때 72시간 문화행동에 푹 빠졌다. 인터뷰를 한 이 날(13일) 밤에는 ‘미친교육 수다떨기’가 예정돼 있었다.
“문화연대 활동가들은 보다 많은 시민과 함께 어떻게 문화적 자리를 만드느냐 고민을 많이했고, 지난 주 토요일(7일)에는 청소년, 시민들과 1인시위 포퍼먼스를 했다. 우리 관심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이 계속 앞에 선 선두차량의 구호를 따라 외치는 게 아니라 자기 의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도록 할까에 고민이 있었고..”
72시간 문화행동은 그런 취지의 일환.. 6-8일 3일에 걸쳐 공연을, 7일에는 종로1가에서 쥐덫놓기 퍼포먼스를 벌였다.
“72시간 문화행동은 대낮에도 시민들이 의사 표현하는 자리로, 문화예술인도 함께 하자는 취지로 만들었고, 인디밴드들이 참여해서 공연을 했어요. 이명박을 풍자한 리믹스 곡을 보여주기도 했고, 밴드들도 원래 가사를 조금씩 바꿔서 부르거나 해서 호응이 좋았지요.”
6일 오후 1시경, 시청광장에서 문화행동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 아고라 깃발을 든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2시가 지나면서 시위대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이처럼 공연을 즐기고 싶은 시민은 공연에, 거리 행진에 참여하고픈 시민은 거리 행진에 나서는 등 어수선한 가운데 활기가, 활기 가운데 다양성이 표출되는 현장이었다.
“아무래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광장에 모이다보니 촛불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여러 생각들이 충돌하는 것 같아요. 문화연대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밤마다 폭력 상황에 노출되고, 청와대 진격 의지를 높이는 분위기인데 문화공연을 하는 게 좋겠냐는 의견도 있었죠.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적 표현을 할 수 있어야한다는 취지로 추진한 거죠.”
나영 활동가는 “신체적 조건이나 생각이 같아도 긴박한 싸움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좀 더 다양하게 실천에 함께 할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관성에 빠진 운동권 집회 형식에 대한 비판도 덧붙였다. 초반 촛불집회에 비해 시간이 갈수록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작년 사회운동포럼에서 집회 문화를 주제로 토론한 적이 있었어요. 관성적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구호를 따라 외치고 예정된 발언을 듣다가 행진으로 생색내고... 그런 데 익숙했는데 초반 촛불집회는 중간중간 그룹이 형성되고 자유로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라 생동감이 느껴졌어요. 근데 어느 시점부터인가 대책회의가 발언대를 세우면서 초기와 같은 모습이 많이 줄어들고 있어요.”
대책회의가 자락을 편 것은 멀리서도 보이고 들리도록 한 높이 1-2미터의 연단과 빵빵한 음향장치. 이는 의도와 관계없이 옹기종기 자유토론을 벌이는 토론문화를 방해하거나 제약한다. 나영 활동가가 주목하는 건 변화하지 않는 집회 형식, 그리고 시민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대책회의의 관성적인 활동.
“지난 주에 국민대책회의 게시판에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어요. 국민엠티도 천막만 칠 게 아니라 영화제나 콘서트도 하자는 등 제안이 올라왔고, 행진할 때 방송차량이 꼭 선두에 서지 말고, 노래도 다양한 새로운 노래를 소개하거나 개사곡을 시민과 함께 불러본다거나... 소통이 안 되는 거는 이명박 대통령 만이 아니라 대책회의도 그런 분위기죠. 시민은 창의적인 의견을 올리는데 대책회에서는 잘 반영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요.”
“전반적으로 네티즌의 특성이기도 한데, 게시판 글 하나도 위트가 있고, 풍자와 패러디 게시물, 창의력 있는 게시물이 올라와요. 여기서 어떤 제안이 있고 붐베스트로 올라가면 그게 집회 현장에 반영되죠. 살수차 뿌리면 운동권은 ‘폭력경찰 몰아내자’는 결의를 호소하지만, 네티즌은 온수나 이온음료를 달라는 구호를 외쳐요. 기본적으로 감수성이 다른 거죠.”
나영 활동가는 일상 집회에 익숙한 운동권은 폭력에 대해 분노의 감수성을 보이지만,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분노로 응수하기보다 그 상황조차 희화화시키는 감수성을 보인다며 비교했다.
나영 활동가는 일반적으로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찬반 논리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여 논리와 논리의 싸움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지만, 인터넷 문화에서는 위트와 해학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경우가 많다며 인터넷이 촛불집회의 다양성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시인사이드나 엽혹진(엽기혹은진실) 같은 데서 보이듯이 그런 상황들을 위트로 풀어나갈 줄 아는 모습이 네티즌의 감수성인 거죠. 넷 상에는 쉽게 히트를 치고,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그걸 희화화할 줄 아는 감성이 살아있어요. 살수차에 분노하고 싸우자는 감수성보다는 그 상황을 희화화할 줄 아는 감수성, 결국 그게 살수차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네티즌의 힘인 거죠.”
그냥 분노만 표출했으면 싸움판만 되고 말았을 테지만, 네티즌들은 현장에서 위트로, 다시 인터넷에서 토론으로, 그리고 다시 다음 집회에서 새로운 대응책을 들고 나온다는 이야기다. 레이저포인트의 등장은 하나의 사례. 한 네티즌이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겪은 레이저포인트 체험을 전경에게 적용하자는 제안이 이루어지자 네티즌들이 다음 날 시위 때 자발적으로 들고나와 위협하는 전경이나 채증카메라에 레이저를 쏘는 행동을 벌였다. 이런 제안은 제안에 머무르지 않고 집회 현장으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몸싸움->부상->연행->석방요구집회 등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집회 시위 시나리오가 위트->비폭력->온오프토론->직접행동 제안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저항문화로 대체되는 양상이다. 나영 활동가는 문화연대 활동가들도 이처럼 빠른 변화에 허를 내두른다고 말했다.
나영 활동가는 차벽과 컨테이너가 등장하면서 만들어진 세종로의 풍경에 주목했다. 7일 밤 늦은 시간, 광화문 네거리에는 차벽을 마주한 시민들이 경찰이 쏘아대는 소화기를 맞으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대책회의 방송차가 대오를 ‘지도’했고, 아고라 깃발을 든 일부 네티즌들은 비폭력을 외치며 대책회의와는 다소 결이 다른 모습으로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뒤로 동화면세점 앞 거리 한 가운데서는 G8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프레스센터 앞 거리에는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포장마차가 자리를 차지했다.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같은 시간 시청 광장에는 식코를 관람하거나,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10일 컨테이너가 등장하고, 스티로폼 논쟁이 벌어졌던 날의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지만 시위가 장기화되고 패턴이 반복되면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요. 초기에 창의적으로 노래하고 행진하면서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는 술을 마시거나 서둘러 집에 가기도 하고.. 10일 날 앞에서는 스티로폼 논란을 벌이며 싸우고 있고, 뒤에는 술 취한 사람들이 실갱이를 하기도 하더군요. 한 쪽에서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요. 깃발이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기 전에 집에 왔는데 인터넷 채팅을 보니 386들 술 마시라고 벌인 자리냐는 이야기도 나오더라고요.”
나영은 촛불집회에서 공존하는 다양한 세대의 행동과 관련, 문화적이고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힘을 모아 저항하는 실천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적어도 술 마시는 사람들 동참하게는 만들어야죠. 컨테이너에서 싸워봤자 새벽되면 밀리고 말 거라는 걸 다 아는 사람들이 술 마시는 건데, 그런 패턴화 되는 사람들을 조직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해요. 지금 어느 누구도 그런 힘을 모아내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나영 활동가는 스티로폼 논쟁과 관련, 장벽 위로 올라간 게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라고 봤다.
“스티로폼을 무작정 쌓는 게 아니라 토론과정이 있었는데, 정부의 폭력의 상징물 앞에서 스티로폼 기획을 한 행동 자체가 창의적인 거였죠. 진행된 토론도 큰 의미가 있었고요. 그러니까 이명박 장벽 위에 올라가 자기 표현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성과라고 봐요. 그래야 지금 반복되는 투쟁 형태에 실망을 느끼고 술만 마신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 있을 테니까.
▲ 고양이 가면을 쓴 여성이 KBS 앞 촛불인간 띠잇기에 참가한 모습
앞으로 예고되는 정세 흐름과 문화적 양상에 대해 질문했다. 나영 활동가는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형태로든 저항도 계속될 것이라고 내대봤다.
“잘 예측은 안 되지만 어제(12일) KBS 앞으로 가봤어요. 그저께 밤부터 네티즌들이 KBS 공영방송 지키기 촛불집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의제가 점점 넓어지는 분위기에요. 추가협상을 하고 그 결과가 나온다 해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고, 이명박 정부가 각 의제를 놓고 국민과 전면적인 대화를 안 하는 이상 촛불 역시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듯 해요.”
나영 활동가는 계속해서 다음 아고라는 계속 영향을 유지할 것 같고, 미즈넷, 디시인사이드의 여러 갤러리, 다음 엽혹진 같은 작은 동호회도 활발한 활동이 예고될 걸로 내다봤다.
“90년대 후반에 사람들이 온라인 소통을 하며 거리로 나오고 민주주의를 대체할 거라 했는데, 이제 물꼬가 터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이 오프에서 실천하는 물꼬. 그런 게 앞으로 더 활성화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돼요.”
미즈넷 경우는 좋은 사례라고. 여성의 소통 사이트인데 특정 계층이나 연령대별 커뮤니티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기발언 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민우회가 있지만 미즈넷 커뮤니티 활동이 활성화된다거나, 청소년들이 온라인상에 있다가 오프라인으로 행동을 옮기는 배경에도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시위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대선에서 투표를 안 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투표 하지 않는 게 사람들의 정치적 무관심 문제는 아니었던 거죠. 투표율이 정치적 무관심을 가름하는 척도로 보지 않게 되었어요.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투표를 안 한 게 아니라 투표로만 하는 정치를 원하지 않았던 거죠. 결정적으로 촛불집회는 투표권이 없었던 청소년들이 판을 만든 거고요.”
'길가는 재미 > 낄낄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직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는 ‘둥신의 저주’ (2009 04/21 위클리경향 821호) (0) | 2009.04.17 |
---|---|
MB의 닌텐도 발언, 뜰 줄 알았다 (0) | 2009.02.06 |
[펌] 전설의 섬, 명박도를 아십니까? (0) | 2009.01.31 |
할 말은 하지 않더라도 개그라도 해주었으면 ... (0) | 2008.08.07 |
대박이다 (1) | 2008.08.06 |
'길가는 재미/낄낄낄'의 다른글
- 현재글유쾌한 시위가 좋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