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 관련 글

새벽길 2024. 12. 29. 22:29

12.3 내란 사태 이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에 대해서는 글들이 나오고 있지 않지만, 수집해놓은 관련기사를 담아놓는다. 기대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으므로...
 
https://abcnews.go.com/538/donald-trump-won-presidency/story?id=115556511
How Donald Trump won the presidency
We'll have to wait for fuller data, but here are 3 possible reasons.
ByG. Elliott Morris via five thirty eight logo, November 6, 2024, 8:05 PM
트럼프가 어떻게 이겼나. 파이브써티에잇이 세 가지 원인을 짚었다.
첫째, 경제가 문제였다. 출구조사에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답변한 35%의 유권자 가운데 81%가 해리스를 선택했다. 경제가 중요하다고 답변한 31%의 유권자 가운데 79%가 트럼프를 선택했다. 낙태가 중요하다고 답변한 유권자는 14%에 그쳤다. 가구 소득이 10만 달러 이상인 유권자들은 민주당 지지율이 높았고 그 이하 유권자들은 공화당 지지율이 높았다.
둘째, 인종 양극화도 변수였다. 백인 유권자의 55%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해리스는 대학 졸업 이상의 백인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높았다. 대학 졸업 미만의 백인들은 트럼프 지지율이 높았다.
셋째, 민주당 투표율이 낮았다. 2020년 투표율이 66%였는데 올해는 61% 수준으로 줄었다. 경합주 가운데서도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카운티에서 투표율 하락 폭이 컸다.
인플레이션과 불법 이민에 대한 ‘분노’가 임신중지권 박탈의 ‘공포’를 이겼다고 볼 수 있다. 백인 여성들의 결집을 끌어냈지만 대졸 이하 백인들의 결집이 더 강했다.
출구 조사를 살펴보니.
2020년과 비교해서 여성들의 해리스 지지율은 확실히 늘었다.
4년 전에는 가구 소득 10만 달러 미만에서 바이든 지지율이 높았는데 올해는 트럼프 지지율이 더 높았다.
교외와 농촌 지역,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유권자들의 트럼프 지지율이 높았다. 이들이 미국 인구의 가장 큰 집단이지만 그동안의 여론조사에서 과소 표집됐을 가능성이 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여성과 흑인들의 표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고 백인 남성들이 좀 더 강하게 결집했다.
여론조사는 왜 틀렸나.
시골 지역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는 건 ‘샤이 트럼프’가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여론조사 표집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선거를 하루 앞두고 해리스의 당선 확률을 크게 상향 조정하면서 “샤이 트럼프의 존재를 과대평가했다고 판단해 수정했다”고 밝혔지만 완전히 어긋난 전망이었다.
파이브써티에잇의 경우 경합주를 빼고 나머지 여론조사는 다 맞았다. 다만 경합주를 초박빙으로 봤던 건 네이트 실버가 말했던 것처럼 안전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네이트 실버는 “여론조사 기관들이 애리조나나 조지아 또는 네바다에서 트럼프가 5%포인트 이상 앞섰다는 수치를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첫째, 트럼프를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고 둘째, 망신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았지만 네바다와 애리조나는 격차가 5% 이상 날 가능성도 있다.
 
https://www.nytimes.com/2024/10/23/opinion/election-polls-results-trump-harris.html
네이트 실버가 말하는 트럼프가 이긴 이유 24가지.
한때 ‘예측의 신’이라고 불렸던 네이트 실버(실버불레틴 운영자)는 일찌감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분석했다. “내 직감은 트럼프다. 하지만 나는 물론이고 누구의 직감도 믿어서는 안 된다.” 다음은 네이트 실버가 정리한 트럼프의 성공 요인이다.
1. 승자독식의 선거 시스템이 트럼프에게 유리했다. 해리스에게는 트럼프에게 있는 강력한 당파성이 없었다.
2. 인플레이션이 변수였다. 2022년 6월 9.1%를 찍은 뒤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높은 상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양적 완화의 후폭풍이라 바이든이나 해리스는 억울할 수도 있다.)
3. 경제는 지표가 아니라 심리다. 기업 이익은 늘었지만 노동자들의 가처분 소득은 부진했다. (실제로 바이든 정부의 지표는 좋다. 완전 고용에 가깝고 성장률도 한국보다 높다.)
4. 해리스에게는 현직 프리미엄이 아니라 핸디캡이 컸다. (잘하고도 욕 먹는 바이든과 공동 운명체다.)
5. 포퓰리즘이 먹혔다.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열한 자들(Basket of deplorables)’이라고 비난했지만 그들이 미국 국민의 거의 절반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 사람들 이상하지 않아요?” ’위어드(wierd)’ 전략이 패인이었을 수도 있다.
6. 이민자들에 대한 반발이 컸다. (트럼프가 집요하게 몰아붙였고 해리스도 끌려갔다.)
7. 해리스는 매력적인 공약이 없었다. (낙태가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판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8. 민주당이 코로나와 범죄, 워크(woke) 등의 이슈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는 인식이 컸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작용이었을 수도 있다.)
9. 코로나 팬데믹 이전, 트럼프의 첫 3년 동안 경제가 좋았다는 착각이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힘들었던 경험이 바이든 집권 기간과 겹쳐서 인식이 좋지 않았다.
10. 민주당이 흑인과 소수 인종에게 표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고 백인 유권자들이 결집한 것도 아니었다. (바이든을 지지했던 흑인들 상당수가 해리스를 지지하지 않았다.)
11. 젊은 남성들의 박탈감도 컸다. (뉴욕타임스 조사에서는 18~29세 남성의 58%가 트럼프를 지지했다. 해리스는 37%에 그쳤다.) 대학 진학률도 줄었고 오히려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12. 트럼프가 4년 전 바이든의 나이가 됐는데 정작 바이든 사퇴 이후 나이가 이슈가 되지 않았다. 해리스가 공격하기 가장 좋은 주제였지만 나이를 건드리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트럼프의 나이를 언급하는 기사가 크게 줄었다.
13. 준비가 부족했다. 바이든 사퇴 이후 선거까지 넉 달이 채 안 됐다. 해리스의 캐릭터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14. 여성 후보의 한계도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도 부동층이 크게 이탈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15. 언론의 신뢰도 크게 추락했다. 상당수 언론이 작정하고 해리스를 지지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를 열심히 읽고 트럼프에서 해리스로 돌아선 사람은 거의 없다.)
16. 트럼프는 유권자들이 “트럼프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능숙했다. 해리스는 그게 안 됐다. (실제로는 트럼프 당선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해리스는 이들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17. 민주당은 대학 교육을 받은 엘리트 계급에게 어필했지만 그게 오히려 확장성을 떨어뜨렸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민주당이 이상한(weird) 사람 취급을 했던 한계(marginal) 그룹에서 지지를 끌어냈다.
18.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라는 주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 있다. 1월6일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이슈를 더 효과적으로 공격했어야 했다.
19. 바이든의 외교 정책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미중 관계도 악화됐다.
20. 이스라엘-하마스 전쟁도 민주당의 지지층을 분열시켰다. 공화당은 분열할 만한 이슈가 없었다.
21. 좌파 성향의 3당 후보가 많았다.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로버트 케니디 주니어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도 컸다.
22.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와 실리콘 밸리의 부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면서 ‘샤이 트럼프’들을 끌어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부끄럽지 않게 만들었다.
23. 총격 사태도 트럼프의 호감을 끌어올렸다. 실제로 트럼프는 2016년과 2022년보다 호감도가 더 올랐다.
24. 해리스는 분위기에 휩쓸려 달려왔고 명확한 국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펀더멘털이 좋았다면 달랐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https://www.arcdigital.media/p/america-chose-this
America Chose This
Unlike in 2016 and 2020, it was unambiguous, and Trump's margin was large enough that I doubt there was anything Democrats could have done
Nicholas Grossman, Nov 07, 2024
해리스는 왜 졌을까. 그럼에도 이 질문은 필요하다.
니콜라스 그로스만(일리노이대 교수)은 “해리스는 민주당 캠페인이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다”고 평가했다. 메디케어를 확대하겠다고 했고 여성의 권리를 전면에 내걸었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충분히 설명했다. 게다가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 범죄도 줄었다.
그로스만은 “전략이 불분명하거나 안일했거나 지나치게 신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충분한 지지자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졌다”고 평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를 선택했다고 해서 트럼프가 옳았다는 게 아니고 해리스가 내걸었던 가치가 틀린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앞으로 4년, 훨씬 더 힘든 싸움을 치러야 할 뿐이다.
 
https://www.newscham.net/articles/110769
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참세상, 맷 카프(Matt Karp) 2024.11.07 08:40, [번역] 김선철(기후정의운동가))
[편집자 주]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선거인단 312명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이에 대한 많은 평가가 있겠지만, 먼저 민주당 측면에서 이번 선거를 평가한 글을 싣는다.
“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다.” 오늘 아침,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서 또 한 번 압승을 거둔 가운데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 트윈 픽스에나오는 이 무서운 말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납처럼 박혀 있다. 열광적인 선거 운동의 절정이자 미국 사회의 악의적이고 부식적인 많은 것들의 승리로서 트럼프의 재선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현대사의 한 사건으로 볼 때 놀랍다 볼 수만은 없다.
첫 번째이자 가장 원론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이다. 식료품점에서 프로스티드 플레이크[가장 싼 시리얼]가 7.99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에 미국이 정말 독재자를 선출했을까?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더라도 그렇게 터무니없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2024년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은 생산보다는 소비에 의해 규정되는 글로벌 사회에서 유권자들이 가격 인상을 혐오하고 이를 관장하는 통치자를 처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이 투표에 참여한 현대 역사상 가장 큰 선거의 해에 영국의 토리당,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남아공의 아프리카민족회의, 인도 나렌드라 모디의 BJP, 지난 가을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주의 등 좌우와 중앙을 막론하고 현직 대통령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악화된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은 또 다른 현직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그 상황이 배로 심각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 정치의 결정적인 패턴은 계급 이동, 즉 노동계급 유권자들이 민주당에서 대거 이탈하고 전문직 유권자들이 공화당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었다. 이것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버락 오바마를 당선시킨 러스트 벨트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무너진 결정적 원인이었다. 그리고 2018년, 2020년, 2022년 등 민주당이 서버브[중산층 전문직이 밀집한 대도시 교외 지역]에서 더 많이 당선되어 손실을 만회한 몇 년 동안에도 이러한 움직임은 조용히, 그러나 더 강한 경향성을 가지고 계속되었다.
카멀라 해리스의 선거운동은 이러한 변화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는 신중하고 나름 성공적인 선거를 치른 것처럼 보인다. 이민자 문제에선 오른쪽으로 옮겨가고 임신중지와 관련해 트럼프를 때리고, 적어도 선거 광고에서는 ‘빵과 버터’에 초점을 맞추며 노동계급 유권자들을 구애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피적이고 전술적인 결정은 민주당 전체의 변화된 성격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해리스는 초기 2016년 힐러리의 해악스런 ‘정체성 정치’를 피해보려 노력한 면도 있지만, 실제 선거과정과 전략은 지금 민주당의 조직적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NGO, 미디어 조직, 재단의 지원을 받는 활동가들로 구성된 '그림자 정당(shadow party)'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해리스를 지지하는 백인 친구들(white dudes for harris)'이나 그와 유사한 모임/이벤트, 미디어를 통한 시도들이다. 이는 공화당 내 반트럼프 진영과 흑인 남성들의 지지를 얻겠다며 마리화나 합법화나 암호화폐 투자 보호를 약속하는 부끄러운 시도들이었다. ‘그림자 정당’은 불과 몇 달 만에 10억 달러가 넘는 역사적인 선거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해리스를 '민주주의', 임신중지권, 개인 정체성에만 집중하고 경제적인 문제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교육받은 전문직 계층의 소유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선거 운동의 마지막 몇 주, 해리스도 ‘그림자 정당’과 같은 방향으로 돌아섰다. 집회와 인터뷰에서 해리스의 초점은 트럼프 개인을 미국 기존 제도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으로 규정하고 집중 공격하는 것이었다. 해리스는 공화당 리즈 체니[이라크 전쟁의 주범이자 할리버튼이란 에너지 기업 CEO 출신 부통령 딕 체니의 딸]와 함께 경합 주를 돌며 체니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을 대통령 '실격' 사유로 규정했다. 마지막 중서부 투어에서 해리스는 자신의 연설을 잠시 멈추고 트럼프 발언 동영상을 띄우고는, 마치 트럼프가 자신의 입으로 한 말 때문에 스스로 몰락할 거라 기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의 선거 전략은 대학 학위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2020년보다 더 큰 15% 차이로 이겼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었다. 연소득이 10만 달러[약 1억 4천만원] 이상인 유권자들도 기록적인 숫자로 민주당에 표를 던졌다. 8년 전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가 시작한, 서버브의 온건 공화당원들을 민주당 쪽으로 유입하는 일도 계속되었다. 이런 전략은 중간선거에서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대선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다. 텍사스에서 뉴햄프셔에 이르기까지 농촌 유권자, 저소득층 유권자, 라틴계 유권자, 흑인 남성 유권자 등 다양한 계층에서 트럼프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계급의 쏠림이 있었고, 이로 인해 올해 ‘리즈 체니 민주당’은 왜소해졌다. 진보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은 [임신중지와 관련된 여성권을 연방 정부가 보장하도록 하는] 대법원의 돕스 결정 이후 한 세대 동안 여성 유권자들의 공화당 지지는 없을 거라 말했지만,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여성은 트럼프에게 6% 포인트 차이로 표를 던졌다.
무엇보다 해리스와 민주당은 공화당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3분의 2에 달하는, 경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실패했다. 해리스의 경제 정책은 적당한 수준의 경제 이니셔티브에 반쯤은 포퓰리즘적인 수사가 결합된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 문제로 좌절한 유권자들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놀라운 일이었을까? 경제를 가장 큰 이슈로 꼽은 유권자 중 거의 80%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민주당의 ‘그림자 정당’은 1년 넘게 낮은 실업률, 임금 상승, 주식 시장 호황 등 경제의 건전성을 선전해왔지만, 이런 광고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이 해리스가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경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았다고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는 처음부터 매우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었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이미 인기가 없는 민주당 대통령은 1년 넘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정당’은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고수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및 다른 지역에 대한 그의 정치적 능력은 물론 판단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반대자들을 몰아세웠다.
바이든이 마침내 토론에서 오작동(malfunction)을 일으킨 후에도 민주당은 그를 후보에서 제외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이 막판 노력에서 “무자비한” 역할을 한 낸시 펠로시를 칭찬하는 모든 밈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바이든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게 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무모함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해리스는 이미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처진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선본을 구성하며 선거운동에 뛰어들었다.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 초선 상원의원으로 2020년 바이든 후보 캠프에 합류했지만, 경쟁이 치열한 주 전체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이긴 경험은 없었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라는 악재와 천천히 진행되는 전통적인 정당-지지층 구도의 와해, 또한 바이든의 실패로 인해 2024년 공화당의 승리 가능성은 처음부터 높았다. 트럼프는 언론에 출연하는 전문가들보다 이를 더 잘 인식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일론 머스크와 같이 정부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억만장자들을 포용하기 위해 수사뿐이었던 자신의 '포퓰리즘’마저 내다버린 오만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나 그의 오만함은 또 다른 임기로 보상받았다. 대부분의 두 번째 임기와 마찬가지로, 그의 인기 없는 정책, 쇄도하는 스캔들, 골프장에서의 많은 시간으로 인해 그의 지지자들은 또다시 실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주당이 노동계급 유권자의 상당수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트럼프의 후계자가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높다.
[출처] It’s Happening Again
https://jacobin.com/2024/11/its-happening-again-trump-election-win
 
https://www.newscham.net/articles/110815
“노동 계급은 민주당에 계속 의존할 수 없다” (참세상/The Working Class, 네르민 샤이크(Nermeen Shaikh), 에이미 굿맨 (Amy Goodman) 2024.11.08 11:09, [번역] 이꽃맘)
[인터뷰] 역사학자 로빈 D. G. 켈리(Robin D. G. Kelley)
로빈 D. G. 켈리는 우리가 스스로를 권력을 가진 계급으로 인식하지 않으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트럼프와 같은 인물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역사학자 로빈 D. G. 켈리(Robin D. G. Kelley)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승리의 원인과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 사이에서의 지지 하락에 대해 이야기했다. 켈리는 버몬트주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이 노동 계층을 버렸다”고 한 의견에 동의했다. 아울러 해리스 선거운동에 대해 “노동자들의 실제 고통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강한 개인주의적 신자유주의 문화가 계급에 따른 조직화와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자들의 매력을 거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며 “연대가 부족하다. 우리가 계급으로서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했다.
네르민 샤이크(Nermeen Shaikh): 카멀라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화요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백악관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수요일, 해리스는 하워드 대학교에서 연설했다.
네르민: 이것은 수요일에 있었던 카멀라 해리스의 패배 인정 연설이었다. 민주당은 트럼프가 전국적으로 지지를 확장하고 공화당이 상원 통제권을 되찾으면서 위기 상태에 처했다. 공화당은 하원도 계속해서 장악할 가능성이 있다.
에이미 굿맨(Amy Goodman): 수요일,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샌더스는 성명에서 “노동 계층을 버린 민주당이 노동 계층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민주당 지도부가 현 상태를 방어하는 동안, 미국 국민들은 분노하며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고 말했다. 화요일의 선거에 대해 더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는 UCLA의 역사 교수이자 사회 운동을 연구하는 로빈 D. G. 켈리와 함께한다. 그는 ?자유의 꿈: 흑인의 급진적 상상력(Freedom Dreams: The Black Radical Imagination)?을 포함한 여러 책의 저자이다.
교수님, 다시 모시게 되어 기쁘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규모 승리, 즉 전국을 휩쓸고 국민투표에서 이긴 것은 물론 선거인단 투표에서도 이겼다는 점에 대해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 해리스는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보다 훨씬 적은 표를 얻었는데, 예를 들어 미시간의 엘리사 슬롯킨 같은 일부 민주당원은 더 높은 지지를 얻고 당선되었지만 동일한 표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민주당이 노동 계층을 버렸다는 샌더스 상원의원의 발언에 대해 말씀해달라.
로빈 D. G. 켈리 (Robin D. G. Kelley): 맞다. 샌더스 상원의원으로부터 시작하자면, 그는 완전히 옳다. 민주당은 노동 계층을 버렸다. 카멀라 해리스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선거운동을 하며, 리즈 체니의 지지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모든 계층의 노동자들의 실제 고통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다. 그건 사실이다.
이제 2024년을 2020년과 비교해 보면, 나는 트럼프의 승리가 그렇게 역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봉기가 없었다면 2020년에 승리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그 바람을 타고 있었지만, 사실 그 바람을 얻을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점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요인은 나라가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며, 노동 계층이 소외되고 버림받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첫째, 경제가 변하고 있다는 수치가 무엇을 말하든 간에, 사람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 실업, 불안정성과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내가 2016년에 쓴 기사로 돌아가면, 우리는 인종차별적이고, 이슬람 혐오적이며, 외국인 혐오적인 국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깊이 뿌리박혀 있다. 인구 통계를 보면 백인 남성들은 일관되게 트럼프를 지지한다. 백인 여성들도 물론 약간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변화는 그렇게 급진적이지 않았다. 나는 출구조사를 신뢰하지 않지만, 많은 백인 여성들이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 놀랍다. 파시즘의 메시지가 얼마나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했는지, 추방이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주요 메시지가 되었는지도 놀랍다.
나는 계급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계급이 있지만, 스스로를 계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계급이 스스로를 계급으로 생각했다면, 노동자들은 “우리는 추방을 거부한다. 우리는 인종차별을 거부한다. 우리는 트랜스포비아를 거부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급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 부족한 것은 연대다. 즉, 우리가 계급으로서 서로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트럼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 CEO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고 있는 유일한 연대, 주요 연대는 자본가 계급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2016년에서 2020년, 2024년 사이에 그렇게 급진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실패다. 바이든 정부 하에서도 민주당은 노동계층에 조금은 다가갔지만, 해리스 캠페인은 그러지 않았다.
네르민: 알겠다. 우리는 지난주에 대화했던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니나 터너(Nina Turner)로 넘어가 보겠다. 그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2020년 대선 캠페인의 공동 의장을 맡았다.  
니나 터너: 내 생각에, 시간이 지나면서 민주당은 노동 계층 유권자들과의 소통에서 길을 잃었다. 나는 모든 정체성의 노동 계층을 말하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노동 계층’이라고 말할 때, 사람들은 단순히 백인 남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모든 배경을 가진 노동 계층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내가 있는 주에서는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같은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났다. 단번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점진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역 협정들은 분명히 나의 주와 같은 중서부 주들을 황폐화시켰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다양한 배경의 노동 계층 사람들은 자신이 당에 속해 있다고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양당, 특히 민주당이 엘리트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속하지 않았다고 느낄 때,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더 최근에 ? ‘최근에’라고 할 때, 거의 4년 동안 ? 사람들은 COVID의 영향을 겪으며 고통받았고, 탈출하려고 애썼다. 인플레이션은 매우 높았고, 식료품 가격은 높았고, 가스 가격도 높았다. 이러한 물질적 조건 요소들이 있었다. 민주당은 그것을 부인했고, 바이드노믹스를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은 어른들이 느끼는 고통이 반드시 실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켈리, 이것은 오하이오 주 상원의원 니나 터너의 말이었다. 터너가 말한 것에 대해 응답해 주시고, 앞서 언급하신 노동 계층의 연대 부족이라는 맥락에서 설명해 달라. 그리고 왜 미국에서 노동 계층 간의 연대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해달라.
로빈: 맞다. 나는 니나 터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연대 결여는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오랜 기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문화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가르침받는 일반적인 연대의 부재다. 깊은 개인주의와 기업 이익, 즉 사적 이익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문제이며 정부는 방해물이다. 우리는 지난 30~40년 동안 이러한 담론을 보아왔다.
그래서 노동조합(UAW)과 같은 노동 운동에서 놀라운 발전이 일어나고, 보잉 파업과 같은 연대에 대한 논의와 이야기가 나오지만, 조직되지 않았거나 고임금 제조업 기반이 아닌 컨시어지 경제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베서머(Bessemer)의 아마존 파업은 그럴 가능성이 있었던 좋은 예지만,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진정한 연대를 생각하지 못한 실패의 조합이다. 즉, 이웃을 돌보고 우리와 달라도 같은 계급을 공유할 수도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연대의 의식, 오드리 로드가 내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그런 연대가 결여된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연대의식을 구축하기 위한 정치 교육 작업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점은 우리가 언젠가는 트럼프처럼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즉, 부와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많은 상원 선거에서 의석을 차지한 사람들이 부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우리는 이것을 대통령 선거 수준에서 볼 수도 있고, 지역 수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 이른바 '좌파 해안'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에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강제 수감 노동을 끝내기 위한 제안, 최저 임금 인상을 위한 제안, 임대료 통제에 대한 제안 등 여러 제안이 실패하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통과된 유일한 제안은 경범죄에 대한 형량을 심각하게 강화하고 형을 확대하는 제안이었다. 여기가 로스앤젤레스다, 알겠는가? 여기가 캘리포니아다.
그래서 우리는 오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든 오른쪽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이다. 우리는 왜 그것이 매력적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권력을 가진 계급,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것이 아닌 평등의 지렛대가 될 수 있는 계급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앞으로 세대에 걸쳐 트럼프들을 지지하는 상황에 갇힐 것이다.
에이미: 캘리포니아의 강제 수감 노동과 관련된 투표안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캘리포니아에서 일당 몇 푼을 받는 죄수 소방관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은 조기 석방을 추진하고 있었지만, 캘리포니아의 산불에 필요한 죄수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종종 그 조기 석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트럼프의 극단주의에 대해 묻고 싶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 집회에서 푸에르토리코를 “쓰레기 섬”이라고 언급한 것, 그 후 그 집회를 “사랑의 축제”라고 부르며 여성들을 B~로 언급한 것, 그리고 이민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작가 메그 인두르티의 흥미로운 댓글이 있다. 그는 트윗에서 “당신이 카멀라 해리스를 위해 집단 학살을 간과하고 투표할 수 있었다면, 보수주의자가 트럼프의 극단주의를 간과하고 그를 위해 투표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미 이해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 의견을 말해줄 수 있는가? 로빈 켈리, 당신은 노동 계층과 빈곤층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다. 또한 가자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로빈: 맞다, 최근 내 학생들이 내게 이 질문을 했다. 만약 미국이 작년 11월이나 12월에 이스라엘 지원을 중단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민주당이 이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스라엘 로비의 힘을 과대평가한다. 어떤 면에서 민주당은 표가 아닌 자금을 찾기 때문이다. 만약 무기 지원을 거부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보라.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전쟁이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의 매력 중 일부는 그가 집권할 때 전쟁이 없었다는 믿음, 즉 신화 같은 것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믿음이다. 그리고 민주당 하에서는 세 가지 다른 전쟁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는 어떻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극단주의와 엘리트의 문제로 돌아가면, 유독 남성성은 큰 요소다. 우익 주도의 주 의회에서 교육 과정을 공격하고,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를 공격하고, 모든 수준에서 트랜스젠더를 공격하는 흐름이 있다. 우리는 실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극단주의를 다루고 있으며, 우익의 일부 엘리트들, 특히 Project 2025를 작성한 사람들이 이러한 정책들을 지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도 동의하지만, Project 2025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주류적이며, MAGA 공화당원들 사이에서도 주류다. 공화당은 MAGA 정당이다. 구 신자유주의 질서의 옛 부르주아지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그들은 프로그램에 동참하거나 해리스와 월츠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행동했는데, 그 방법은 그들에게 효과가 없었다.
나는 정착민-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의 폭력이 계속 존재했으며, 이제는 확대되고 정상화되는 미래가 두렵다. 파시즘의 역사는 스스로 파시즘의 대상이 되는 지지자들로 가득 차 있다. 역사적으로 그런 예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트럼프에 대한 라틴계 지지가 증가했다고 해서 그것이 트럼프주의의 다문화주의의 사례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여전히 백인 우월주의와 가부장제다.
네르민: 앞에 언급하셨던 투표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왜 그런 투표안이 거부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처음에 투표안으로 올라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2016년 클린턴 선거 이후 민주당이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탓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는 점과 관련이 있는가?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할 위험이 있는가?
로빈 : 그런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제안들에 관해 말하자면, 캘리포니아는 보수적인 주다. 원래 그랬다. 가장 보수적인 주지사들 중 일부를 배출해왔다. 존 버치 소사이어티(John Birch Society, 1958년에 미국에서 설립된 극우 정치 단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보수적인 주다. 그래서 너무 놀랍지는 않았다. 캘리포니아는 또한 오랜 시간 동안, 최소한 국가에서 가장 큰 또는 두 번째로 큰 수감 인구를 가진 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제안들 중 일부는 수감된 사람들 자신이나 폐지론자들에게서 나왔다. 최저 임금 투쟁은 조직된 노동 운동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곳 캘리포니아에는 여전히 깊은 반이민 정서와 깊은 반노동 정서가 있다. 1995년 이후로 임대료 통제는 지속적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왜 그런가? 해리스 캠페인에 자금을 제공한 동일한 엘리트 중 일부가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들은 이를 통해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해 말하자면, 그에 대한 답은 없지만, 민주당에 계속 의존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민주당은 정말로 파산 상태다. 어제 랄프 네이더가 한 말이 완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진정한 제3당이 아니라면, 윌리엄 바버 목사님의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낮은 임금의 노동자들로부터 시작해 아래로부터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공동체, 사랑받는 공동체, 기업 이익에 맞서 서로 투쟁하는 계급으로 생각하기 전까지는 이를 이룰 수 없다.
[출처] The Working Class “Can’t Keep Relying on the Democratic Party,” Historian Says
https://truthout.org/video/the-working-class-cant-keep-relying-on-the-democratic-party-historian-says/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131
해리스 이긴다더니 트럼프 압승, 언론의 예측은 왜 빗나갔나
[해외 미디어 동향] 선거일 앞두고 쏟아진 “해리스 우세” 조사 (미디어오늘, 윤수현 기자, 2024.11.08 16:00)
여론조사에서 못 잡은 ‘샤이 트럼프’… “전문가들, 해명 필요하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의 승리를 예측한 미국 여론조사의 악몽이 재현됐다.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근소하게 앞설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결과는 트럼프 당선인의 압승이다. 특히 여론조사뿐 아니라 주별 경제 상황, 투표 성향, 인구 통계 등을 반영해 당선인을 예측하는 예측모델에서도 오류가 발생했다. 이를 두고 ‘샤이 트럼프’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해리스 후보 당선을 예측한 전문가들의 해명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해리스 우세를 점친 대표적 조사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선거 예측모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컬럼비아대와 함께 주 단위 여론조사와 지역 경제, 과거 투표 결과, 인구 통계 등을 반영한 예측모델을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해리스 후보와 트럼프 당선인의 승률을 5대 5로 예측했으나 지난 5일 대선을 100번 치를 경우 해리스 후보가 56번, 트럼프 당선인이 43번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해리스 후보가 미시간주, 펜실베이니아주, 위스콘신주 등 여론조사에서 평균적으로 앞서 나갔다”고 설명했지만, 실제 개표 결과 트럼프 당선인이 3개 주에서 모두 승리했다.
미국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는 당초 트럼프 당선인이 해리스 후보를 근소하게 앞설 것이라고 예측했으나 선거 당일인 지난 5일 해리스 후보가 선거인단 271명을 확보해 트럼프 당선인(267명)에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을 바꿨다. 네이트 실버가 밝힌 해리스 후보 승률은 50.015%다. 미국 CNN이 지난 5일 발표한 출구조사에서도 해리스 후보에 대한 긍정평가가 46%로 트럼프 당선인(42%)을 앞섰다.
예측모델·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대선 결과와 달랐던 점을 두고 강정수 미디어스피어 AI연구센터장은 “미국 민주당은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을 대표하고 있다. 미국의 60%가 넘는 저소득층을 트럼프가 대표하게 됐다”며 “이런 트럼프 지지층의 경우 여론조사에 잘 포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10월 초부터 트럼프가 우세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선거 막바지 튀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두고 ‘막판 변수가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유권자들이 선거를 앞두고 마음을 급격하게 바꿀 가능성은 적다”며 “(그동안의 추세를 고려하지 않고) 갑자기 해리스가 이길 것처럼 이야기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문제였다. 선거 막바지 해리스가 이긴다고 예상했던 전문가들이 해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준웅 교수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민주당 후보가 우세할 것이라는 여론조사가 있었지만 결국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언급하면서 “당시 반성이 약했던 것 같다. 당시 발견된 조사의 문제점을 개선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와 함께 예측모델을 만든 앤드류 젤먼(Andrew Gelman) 컬럼비아대 통계·정치학과 교수는 지난 6일 자신의 블로그에 <최근 선거에 대한 반성>이라는 글을 올려 여론조사에 민주당 지지층 의견이 과대 표집됐다고 설명했다. 젤먼 교수는 “민주당 지지층이 최근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층보다 여론조사에 응답할 가능성이 더 높았고, 인구 통계적 조정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했다. 
https://statmodeling.stat.columbia.edu/2024/11/06/reflections-on-the-recent-election/
Reflections on the recent election
Posted on November 6, 2024 3:29 PM by Andrew 
선거 결과 예측 실패에 대한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가디언은 지난 6일 <미국 여론조사, 트럼프 승리 예측 실패로 다시 비난받아> 보도에서 “당혹스러운 것은 선거일을 앞둔 마지막 며칠 동안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해리스가 근소하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이라며 “여론조사는 제 기능을 못하기에 사람들이 이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는 미국 보수 역사학자 릭 펄스타인(Rick Perlstein)의 SNS 게시글을 소개했다.
BBC는 지난 7일 <미국 선거 여론조사는 실패했는가> 보도를 내고 “전국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들(여론조사 기관들)은 3번째 선거에서도 트럼프를 과소평가한 것처럼 보였다”며 “평균적인 여론조사 오류는 실제로 크지 않았다. 하지만 치열한 선거운동에서 작은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BBC는 미국 여론조사의 낮은 응답률이 정확도를 낮추는 요인이었다는 전문가 분석을 소개했다. BBC는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업계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며 “알 수 없는 번호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걸러내기가 쉬워지면서 설문조사 응답률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론조사 응답) 감소 추세는 미디어와 기관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현상과 맞물려 나타났고, 이런 특징이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특히 두드러져 그들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더타임스는 지난 6일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여론조사가 또다시 틀렸던 이유는 무엇인가> 보도에서 “여론조사 기관은 자신들의 조사 방법이 민주당 유권자에게 맞춰져 있었다고 본다. 트럼프의 백인 노동자 계층 유권자 기반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언론은 여론조사가 ‘샤이 트럼프’를 잡아내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는 8일 칼럼 <또 틀린 美대선 여론조사>에서 “올해도 여론조사는 ‘샤이 트럼프’를 집어내지 못했다. 선거 막판 ‘초박빙’을 예상한 조사가 많았지만, 투표함을 열어보니 트럼프의 압승이었다”며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지지한다고 말을 안 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7일 <미국 여론조사 ‘3연속’ 예측 실패… ‘샤이 트럼프’ 표심 놓쳤다>에서 “대선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샤이 트럼프’ 파악에 이번에도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트럼프 지지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문제를 극복 못 했다는 지적”이라고 했다.
한국경제는 8일 <체면 구긴 미국 대선 여론조사> 칼럼에서 “(여론조사 업체들은 대선 결과 예측이 틀린) 가장 큰 이유로 독특한 미국 대선 방식을 꼽는다. 여론조사는 미국 전역의 평균적 의견을 반영하는데 미국 대선은 경합주 유권자들의 1~2%p 표차로 결정나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라며 “매번 조사 방식을 개선하지만 트럼프 출현 이후 미국 대선 여론조사의 성적표는 일기예보 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https://www.newscham.net/articles/110857
미국 대선 2024 : 인플레이션, 이민 그리고 정체성 (참세상,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 2024.11.11 14:31, [번역] 류민)
파이낸셜 타임즈에 따르면 “결국, 근소한 차이조차 아니었다. 칼날 위에서 춤을 출 것으로 예상되었던 대통령 선거는 빠르게 도널드 트럼프의 압승으로 판명되었다.” 트럼프는 7,460만 표를 얻어 투표한 사람 중 50.5%의 지지를 받았고, 해리스는 7,090만 표를 얻어 48%의 지지를 받았다. 제3당 후보들은 겨우 1.5%의 표를 얻었다. 트럼프가 얻은 370만 표의 격차는 2020년 바이든의 710만 표 격차나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를 앞섰던 격차와 비교했을 때 큰 변화였다. 공화당은 상원을 장악한 데 이어 하원에서도 다수를 차지해 완승을 거두었다.
트럼프의 표는 2016년 그가 승리했을 때처럼 소수 경합주에서의 근소한 차이에 의존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지지)와 블루 스테이트(민주당 지지) 양쪽의 주에서 지지를 넓혔다. 심지어 미국에서 가장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곳 중 하나인, 그가 태어난 뉴욕주에서도 23포인트의 격차를 11포인트로 좁혔다.
트럼프의 투표 승리에 대한 가장 큰 단서는, ‘대규모 투표율’이라는 통상적인 과대 선전와 달리, 2020년에 비해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가 줄었다는 점이다. 2020년에는 1억 5,800만 명 이상이 투표했지만, 이번에는 1억 5,300만 명으로 줄었다. 유권자 등록을 한 사람들 중 투표율은 2020년 65.9%에서 62.2%로 떨어졌다.
2024년 투표 연령에 해당하는 미국인의 총 수는 2억 6,500만 명이다. 그러나 이 중 42% 이상의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이는 등록하지 않은 미국인의 수가 2020년 1,200만 명에서 1,900만 명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참정권이 박탈된 수감 인구와, 등록이 어렵다고 여기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된다). 따라서 트럼프는 투표한 사람 중 50% 이상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실제로는 투표 연령 미국인 중 28%의 지지만을 얻었다. 거의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해리스는 27% 미만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자는 (다시 한 번) ‘투표하지 않은’ 집단이었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은 등록된 유권자 중 38%였으며, 투표 연령의 42%에 달했다. 2024년 선거의 차이점은 트럼프가 2020년과 비슷한 수의 표를 얻은 반면, 해리스는 2020년 바이든에 비해 1,000만 표 이상을 잃었다는 것이다.
2020년 선거 분석에서 나는 “바이든은 미국의 소수 민족이 백인 다수를 극복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바이든은 젊은 미국인들이 트럼프에 대한 노년층의 지지를 극복할 만큼 충분히 바이든에게 투표했기 때문에 승리했다. 바이든은 소도시 사업가와 농촌 지역의 투표를 넘어설 만큼 노동 계급 미국인들이 충분히 투표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결론지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해리스가 2020년 바이든이 얻었던 소수 민족 유권자, 여성, 젊은 층, 도시 거주자 및 대학 졸업자들의 투표 다수를 크게 잃은 반면, 트럼프의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남성(및 여성) 지지는 충분히 증가했다. 사실, 거의 모든 인구 집단에서 트럼프는 2020년 대비 상승세를 보였다.
https://www.newscham.net/data/article/241111m01.png
미국 노동 계급의 대다수는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았다. 우선, 많은 비율이 아예 투표하지 않았으며, 이 비투표자들은 주로 낮은 소득과 교육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나 실업자들일 것이다.
열 개의 주요 주에 대한 출구 조사에 따르면, 해리스는 가구 소득이 3만 달러 이하인 유권자들(가장 가난한 소득층)로부터 53%의 지지를 얻었고, 트럼프는 45%를 얻었다. 해리스는 연 소득 9만 5천 달러 이상을 버는 유권자들(대학 교육을 받은 '상위 소득층') 사이에서 다수를 차지했지만, 연 소득 5만~9만 5천 달러 구간에서는 표가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조직화된 노동 계급의 경우, 해리스는 노동조합원들의 54%의 지지를 얻었고 트럼프는 44%를 얻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원의 수는 현재 유권자 중에서 상당히 적은 편이다. 젊은 층은 유권자의 16%를 차지했지만, 많은 이들이 투표하지 않았다. 투표에 참여한 젊은 층 중에서는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트럼프가 다수를 차지했으며(58%-38%),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해리스가 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있다. 해리스의 선거 운동은 주로 '정체성 정치'라 불리는 것에 기반했다. 그는 트럼프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맞서 흑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트럼프의 이민자 공격에 맞서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요청했고, 트럼프의 임신중지권 축소에 맞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요청했다. 그리고 해리스는 이 집단들에서 다수를 얻었지만, 2020년보다는 훨씬 적었다. 해리스에 대한 여성 유권자들 다수의 지지도 2020년 57%에서 54%로 감소했다. 그에 대한 여성 유권자들 다수의 지지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남성 유권자들 다수의 증가된 지지율에 의해 상쇄되었다.
해리스가 선거에서 큰 차이로 패배한 이유는 민주당이 유권자들에게 덜 중요하게 여겨진 정체성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이다. 반면 트럼프는 2024년 미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들, 즉 인플레이션, 생활비, 통제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된 이민 문제에 집중하여 캠페인을 벌였다.
https://www.newscham.net/data/article/241111m02.png
지난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한 미국인 네 명 중 세 명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내가 이전 글에서 주장했듯이, 지난 4년간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생활 수준의 하락을 겪었다는 인식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견해와는 달리 신화가 아니다.
https://www.newscham.net/data/article/241111m03.png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에서 하위 50% 소득층의 세전 실질 소득 증가율은 사실상 제로였다. 팬데믹 종료 이후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20% 이상 상승했으며, 기본적인 식료품과 서비스의 경우 그 상승폭은 더 컸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가 단행한 대규모 금리 인상은 주택담보대출 금리, 보험료, 자동차 리스비, 신용카드 청구액을 증가시켰다.
많은 미국인들의 생활 수준 하락과 인플레이션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의 책임으로 여겨졌다.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팬데믹 이후의 시기를 책임진 현 정부들은 퇴출되었다. 사실, 보통선거가 시작된 이후 선진국에서 모든 현 집권당이 득표율을 잃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이 가장 최근 사례이며, 다음은 독일이 될 것이다.
https://www.newscham.net/data/article/241111m04.png
2020년, 트럼프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COVID 팬데믹에 대한 재앙적인 대응으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2024년에는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인플레이션 문제 해결 실패와 이민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많은 미국인은 '통제되지 않은 이민'이 일자리 상실과 범죄 증가를 초래한다고 보았는데, 이는 모든 증거를 반하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두려움은 특히 작은 마을과 농촌 지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바이든과 해리스는 미국 경제가 활기차고 건강하며 실업률이 낮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 나은 상태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자칭 '자유주의 엘리트'로부터 나온 이 메시지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충분히 설득력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고물가와 비용, 불안정한 일자리, 생계를 위협하는 통제되지 않은 이민 때문에 자신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월스트리트와 거대 첨단 기술 기업의 부유한 엘리트들은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물론 트럼프가 이 중 어떤 것도 바꿀 리는 없다. 오히려 그의 친구들과 재정 후원자들은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통해 더 많은 부를 얻으려는 무법 억만장자들이다.
그러나 선거는 한 순간의 여론을 포착한 한 장의 스냅사진에 불과할 뿐, 그 어떤 것도 멈춰 있지 않다.
[출처] US election 2024: inflation, immigration and identity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4/11/09/us-election-2024-inflation-immigration-and-identity/
 
https://slownews.kr/120949
미국 대선, 민주당은 인플레이션에 참패했다 (슬로우레터, 신현호 경제평론가, 2024년 11월11일)
[신현호 칼럼] 대선, 상원, 하원까지. 공화당 싹쓸이(Red Sweep)가 현실화했다. 민주당의 패배 원인은 무엇인가. 경제, 특히 인플레이션이 발목을 잡았다.
들어가며: 민주당 참배 원인
지난 주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예상보다 더 큰 패배를 당했다. 양당의 텃밭을 제외한 7개 경합주에서 트럼프 후보는 전승을 거두어 선거인단 수에서 312대 226으로 압승했다. 지역, 인종, 계층의 거의 모든 유권자 집단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2020년에 비해 상승해서 전체 유권자 득표에서도 해리스를 앞섰다. 대선과 동시에 치루어진 의회 선거에서도 공화당은 상원 다수당이 되었고, 하원 역시 다수당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공화당 싹슬이(Red Sweep)가 현실화된 것이다.
민주당 참패의 원인에 대한 많은 분석이 쏟아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유권자 구조, 후보와 정당의 매력도, 선거 운동의 유효성 등 다양한 측면이 있겠지만 나는 민주당 선거 패배의 이유로 인플레이션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4월 한겨레신문 컬럼 ‘바이드노믹스… 뜨거운 경제, 냉담한 표심’이라는 글에서 우려했던 바대로 민주당은 경제, 특히 인플레이션에 발목이 잡혔다. 

당파별로 갈라진 이슈
대선 출구 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이 자신의 표를 결정할 때 고려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정치 성향별로 뚜렷이 갈라졌다. 해리스에 투표한 유권자는 민주주의와 낙태를, 트럼프를 선택한 유권자는 이민과 경제를 꼽았다. 경제 이슈에 국한해서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바이든 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한 응징 투표를 한 것이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경제 이슈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낙태의 선택권을 지키기 위해 투표했다고 볼 수 있다.
중요한 건 경제야, 이 바보야! (It’s Economy, Stupid!)
이슈의 중요도가 진영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다면 그 중 더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었을까? 퓨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이번 선거에서 경제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81%로 모든 항목 중에서 가장 높았다. 정치성향으로 구분해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93%로 특히 높았지만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68%로 낮지 않았다. 갤럽 등 다른 조사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발견된다.

갤럽은 1996년부터 유사한 조사를 해왔기 때문에 시계열로도 비교해 볼 수 있다. ‘경제가 투표에 극히 중요하다’라고 답변한 유권자 비율은 여덟 번의 선거 중 두번째로 높았다. 조사 대상 중 이 값이 가장 높았던 것은 2008년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 한복판에서 치루어진 선거 때였다. 경제는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였고, 역대 다른 선거에 비해서도 특히 중요하게 부각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인플레이션이야, 이 바보야! (It’s Inflation, Stupid!)
경제의 구성 항목은 다양한데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압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미국 국민 중 41%가 인플레이션을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는 56%였을 뿐 아니라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28%였다. 인플레이션은 당과 무관하게 가장 중요한 경제 이슈였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인플레이션 못지 않게 선거에서 중요할 것으로 보였던 일자리를 꼽은 국민이 불과 8%여서 인플레이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이는 일자리에 대한 업적을 특히 강조하려고 한 민주당 측으로서는 안타까운 지점이었다.

인플레이션 비교 1 - 전년대비 물가상승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은 도대체 얼마나 심각했던 것인지 트럼프 정부와 비교해서 살펴보자. 통상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가상승률은 현재의 물가수준을 12개월 전 물가수준과 비교하는 것(전년동월대비)이다. 이 값을 보면 트럼프 정부는 가장 높았을 때가 2017년 2월 2.8%였다.
반면 바이든 정부는 취임 후 급격히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해서 2022년 6월 9%까지 치솟았다. 9%는 1981년 11월 이후 가장 높아 40년 이상 볼 수 없었던 값이라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 비교 2 - 임기 중 누적 물가상승
2022 중반 이후 물가상승률이 낮아져 올해 9월에는 2.4%까지 하락했으니 인플레이션 문제는 정상화되었다는 주장도 있다(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물가상승률은 대체로 2% 안팎이다).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적 관점에서 전년대비 또는 전월대비 물가수준 변화에 주목하지만 이것은 과거 상승한 물가상승의 효과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유권자가 어떤 시계에서 물가상승을 평가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4년 임기 대통령제를 고려할 때 선거에서는 취임 후 얼마나 물가가 상승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트럼프 정부는 출범부터 선거가 있는 해 9월까지 누적해서 7.2% 올랐지만 바이든 정부는 같은 기간동안 20.5% 올랐다. 한눈에 봐도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임금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물가가 더 빠르게 상승한다면 실질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게 된다. 그림을 보면 트럼프 정부의 전기간 동안 일관되게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높았고, 그 차이의 평균은 1.58%포인트였다. 반면 바이든 정부의 전반부는 임금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상승했고 후반부에 가서 이 추세가 역전되었다. 그 차이의 평균은 0.05%로 사실상 4년동안 실질소득은 거의 상승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비자심리로 본 당파성
정치권에서 유권자 동향을 살필 때 중시하는 경제 지표 중 대표적인 것이 소비자심리지수(Consumer Sentiment Index)이다. 소비자와 유권자는 거의 겹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심리를 조사해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 집권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뚜렷한 차이가 난다. 트럼프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로 넘어가면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소비자심리지수가 하락하고 반대로 민주당 지지자들의 경우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두 가지 점이 더 보인다. 첫째 양당의 지지자가 아닌 집단(인디펜던트)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아닌 공화당 지지자들과 유사한 방향으로 움직였다(강도만 달랐다). 또 공화당 지지자들의 하락 폭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상승 폭보다 월등히 컸다. 사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소비자심리지수는 두 정부에 걸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에 비해 더 당파적이다’라고 할 것이고, 공화당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 지지자들조차 바이든 정부 경제 운영에 대해 별로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주장할 것이다. 후자의 해석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정치권 논쟁
인플레이션이 선거에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양당은 서로 이름붙이기 게임을 하였다.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무책임한 대규모 재정 확대 때문이라며 ‘바이든 인플레이션(Bidenflation)’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공격했다(바이든에서 해리스로 교체된 후에는 해리스에게 ‘바이든과 무엇이 다르냐’며 따졌다). 반면 바이든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공화당을 탓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푸틴 때문(Putin Price Hike)이라고 하거나, 대기업의 탐욕 때문(Greedflation)이라고 책임을 돌리려 시도했다.
해리스는 대통령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해 바이든만큼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그 정부의 부통령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지도 못했다. 집권하면 가격통제를 도입하겠다는 무리수를 들고 나왔다가 비판을 받자 어정쩡하게 봉합했고, 바이든과의 차별성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민주당 경제학자들의 논쟁
인플레이션 자체와 그 정치적 영향에 대해 가장 일찍 또 가장 강력하게 경고했던 것은 오바마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였다. 그는 바이든이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21년 5월 ‘인플레이션 위험은 현실이다’라는 글을 통해 논란을 격발시켰다.
불과 6개월 전까지 저성장과 실업 그리고 디플레이션(!)의 위험을 주장하던 서머스는 팬더믹 종식, 연준의 제로금리 지속 전망 및 대규모 재정정책(America Rescue Plan)을 언급하며 인플레이션 위험이 현실화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1968년 리처드 닉슨의 당선과 1980년 로덜드 레이건의 당선에서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경고했다.
이 반대편에 선 대표가 바이든 정부의 수호자를 자처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재정정책의 효과가 아니라 팬더믹으로 인한 공급망의 일시적 장애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곧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위 인플레이션에 대한 ‘지속파(Team Permanent)’와 ‘일시파(Team Transitory)’의 논쟁이었다.
인플레이션이 2022년을 넘어 23년도까지 고공행진을 하자 결국 크루그먼도 ‘인플레이션, 내가 틀렸다‘라는 컬럼을 통해 미국구조플랜이 야기한 인플레이션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미국구조플랜은 바이든의 공약을 입법화한 재정정책으로 인별로 현금을 1,400달러 지급하는 등 총 1조9천억달러 규모였다.
교훈
한동안 나 역시 ‘바이든 정부의 다른 경제 지표는 나쁘지 않은데, 미국 유권자들이 인플레이션 하나만으로 너무 가혹하게 평가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이것이 현실이다. 누군가가 실업에 처하지 않고 직장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이것을 정부 정책 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모두 다 정부를 탓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심각한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약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정부의 신뢰를 근간에서 뒤흔든다. 또 인플레이션 정치가 특정 정당에게만 불리한 것도 아니다. 서머스가 닉슨과 레이건의 당선을 얘기했지만, 민주당의 지미 카터가 1976년 선거에서 승리할 때도 닉슨?포드 정부의 높은 인플레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정부의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겠지만,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지난 한국 총선에서 집권 여당이 참패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대파 가격’으로 상징되는 인플레이션이었다. 인플레이션이 고개를 쳐들면 그 정치적 후폭풍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상당 기간 지속된다. 모든 정치인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2163
트럼프의 승리가 남긴 것 (미디어오늘, 박상현 오터레터(OTTER LETTER) 발행인, 2024.11.11 11:27)
[2024 미국 대선과 미디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느껴졌던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과거에도 다른 나라에서 미국의 선거를 이렇게 마음 졸이며 지켜 봤을까? 그랬던 것 같지 않다. 예전에 미국 밖에서는 그저 민주당과 공화당 중 어느 쪽이 미국의 정권을 잡게 될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미국 내에서는 모를까, 외교·안보에 관해서만은 두 당이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은 주로 경제(무역) 정책의 향방에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2016년에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는 궁극의 엔터테이너답게 미국의 정치를 전 세계로 흥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아무도 미국의 선거를 즐겁게 바라보지는 않지만, 미국인들의 표현처럼 “교통사고 현장에서 눈을 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속도로의 사고 현장과 달리, 미국의 정치는 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트럼프 이후로 세계의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익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를 좋아하는 사람도,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눈의 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제 트럼프는 두 번째 집권에 성공했고, 각 나라는 그의 재집권이 미칠 영향이 무엇인지 계산하기 바쁘다. 그 영향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일차적인 층위에서는 트럼프의 외교, 무역 정책이 자국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게 된다. 이건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해야 하는 작업이다. 다만 자기가 예측 불허라고 말하고 다니며 그걸 개인의 브랜드처럼 생각하는 트럼프라서 훨씬 까다롭다.
두 번째 층위는 트럼프라는 개인이 아닌 현상이 미칠 영향이다. 이미 2016년 이후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반드시 트럼프라는 불꽃이 튄 거라고 보기는 힘들고, 비슷한 여건에서 일어난 자연발화에 가깝지만,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 현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16년만 해도 사람들은 트럼프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민주주의적 절차로 당선된 사람들이 독재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 분석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건 현상 전체에 속한 한 단면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카멀라 해리스와 민주당은 미국 유권자가 트럼프가 민주주의와 여성의 인권에 대한 위협임을 이해한다면 해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를 위해 표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카멀라 해리스와 팀 월즈의 선거운동은 그 위협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미국인들은 다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다. 민주당 정권(regime)이나 민주주의가 아닌, 시스템 전체를 불신하고 있었고, 그걸 무너뜨릴 후보를 찾고 있었다.
민주당과 지지자들은 2020년 선거에서 패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의회를 습격하라고 명령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 컬트’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종교적으로 세뇌가 되지 않은 이상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절반이 트럼프를 지지했을 때는, 그것도 더 이상 백인들만 아니라, 다양한 인종 집단에서 그를 지지했을 때는 더 이상 컬트라는 말로 퉁칠 수 없다. 2016년에는 맞을 수도 있었겠지만, 2024년에는 틀리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의회를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한 게 아니라, 공격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 것이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든 사람들은 트럼프가 내놓은?대개는 두서없고 즉흥적인?개별 정책 때문에 그를 지지한 게 아니라, 그가 다시 백악관에 들어가면 미국의 시스템이 파괴될 거라고 기대해서 지지한 것이다. “트럼프는 시스템에 반대하는(anti-system) 후보”라는 표현이 그래서 나왔다.
그런 구도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트럼프가 어긴) 법 제도를 수호하고,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민주당은 보수세력이 된다. 문자 그대로 현재 미국 사회가 가진 가치를 지키는(保守, 보수) 쪽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진보 세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그는 ‘변혁의 주도자(change agent)’ 타이틀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일단 그런 구도가 만들어진 이상, 에너지는 변혁을 약속하는 쪽으로 몰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 에너지는 파괴와 보복의 에너지이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생산적인 에너지가 아니다. 트럼프는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미국은 2차 대전 이후로 줄곧 세계 최강대국이었고, 지금도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강력한 기관차다. 여기에 미국의 아이러니가 있다. 최강대국의 국민이 “미국이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분노하고 있는 이상한 상황이다.
미국은 이제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는 그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내각에 많이 참여했다. 정치 경험이 없는 트럼프는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들은 트럼프가 나라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애국하는 마음으로 트럼프의 탈선을 막는 가드레일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이 훗날 “트럼프는 대통령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줄줄이 선언하면서 트럼프의 분노를 샀고, 트럼프는 다시 권력을 잡으면 능력보다 충성심을 위주로 인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가드레일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가드레일이 없는 길을 질주하는 운전자를 환호하는 사람들은 마치 대형 사고를 볼 기대에 자동차 경주를 구경하는 사람들일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차에 탄 승객들, 즉 미국 국민이다. 대통령직을 개인의 돈벌이에 사용하는 트럼프나, 그를 지지하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갑부들은 망가지는 시스템을 통해서 큰돈을 벌 수 있겠지만, 다른 국민은 무엇을 얻을지 아무도 모른다. 트럼프가 승리한 직후에 그의 공약에 관한 검색이 폭증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자기가 얻을 게 뭐고, 잃을 게 뭔지 모르고 투표를 했는지 보여준다. 그저 자기가 편입하지 못한 질서, 동의하기 싫은 룰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정서적 만족감일까?
이제 앞으로 4년 동안 미국의 민주당과 다른 나라들은 피해의 최소화에 노력할 뿐, 미국발 대형 교통사고는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 잔해에서 어떤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로운 보수가 된 미국의 민주당은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7115.html
‘러스트 벨트’의 엘레지는 한국에서도 울린다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한겨레, 조형근 | 사회학자, 2024-11-12 19:12)
혐오 정치의 화신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힘만 앞세우는 인물이라 한국에서도 걱정이 크다. 그는 이단아다. 보수정당의 지도자이면서 “기득권은 다 썩었다”며 대중을 선동하고, 노예해방을 이끈 정당 소속인데도 인종차별 언사를 서슴지 않으며,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 추방을 외친다. 극단성에 질린 공화당 지지자 일부가 떠났지만, 민주당의 든든한 주력이던 백인 노동자 계층 상당수가 그에게로 돌아섰다. 중서부, 북동부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의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이 트럼프를 만든 주역이다. 종종 무지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되는 이들이다.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본디 이들은 시골 출신이다. 애팔래치아산맥 지역 출신은 힐빌리로 불리고, 야외 노동으로 뒷목이 빨개졌다고 해서 레드넥으로도 불린다. ‘촌놈’이나 ‘노가다’쯤 된다. 화이트 트래시, 즉 ‘백인 쓰레기’라는 멸칭까지 있다. 트럼프의 파트너로 부통령에 당선된 제이 디 밴스는 러스트 벨트에서의 성장기인 ‘힐빌리의 노래’로 유명해졌다. 원제는 힐빌리의 엘레지, 즉 슬픈 노래다. 가난한 산골 사람들이 1, 2차 대전 이후 공업지대로 대대적으로 이주했다. 노동과 명예를 소중히 여기되 성차별적이고 난폭한 문화도 함께 퍼졌다. 밴스의 조부모처럼 뉴딜 이후 민주당을 노동자의 당으로 여기며 평생 지지했다.
밴스가 자라던 1980년대부터 공장이 떠나고 공업도시들이 쇠락했다. 실업자가 된 남성은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고, 10대에 출산하고 버려진 여성은 밴스의 엄마처럼 마약에 중독됐다. 가정이 파괴되고 신앙이 무너지자 복지는 가난한 이들을 더 파괴했다. 복지 시스템을 악용하는 ‘복지 여왕’(welfare queen)들은 뼈 빠지게 일하는 이들을 비웃으며 아동수당으로 노동자는 못 사는 휴대폰을 샀다. 점점 의문이 자랐다. 공장이 없는데 복지로 희망을 키울 수는 없었다. 클린턴, 오바마처럼 최고 대학을 나온, 세련되고 풍족한 민주당 지도자들이 위선자로 보였다. 밴스의 이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복지 여왕’과 이민자를 추방하고 공장을 미국으로 되돌리며 썩은 워싱턴을 갈아엎겠다는 트럼프에 열광하게 된 사정이 이해가 된다. 
그의 이야기는 진지하다. 그게 전부일까? 밴스와 동년배 작가 세라 스마시가 들려주는 이야기 ‘하틀랜드’는 밴스와 겹치고 갈라진다. 미국의 지리적 중심이자 미국적 가치의 심장으로 불리는 중서부, 캔자스의 농촌에서 가난과 폭력, 절망의 슬픈 노래가 울린다. 여성에게 고통은 더 가혹하다. 엄마는 열일곱에 그를 임신했고, 엄마의 엄마는 서른넷에 할머니가 됐다. 뭐가 문제인가? 밴스 말대로 ‘복지 여왕’으로 살면 될 텐데. 땀 흘려 일하는 걸 긍지로 삼는 문화 속에서 수급자라는 낙인은 수치였다. “내가 느낀 수치는 내 죄에서 오는 게 아니었어. 사회 전체에서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기 때문이지 … 빈민에 대한 멸시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예가 복지제도에 대한 태도일 거야.” 공공정책과 언론은 복지 수급자를 혐오스럽게 묘사했고, 그의 가족은 자격이 되는데도 신청하지 않았다. 대신 가난한 삶을 감당했다. 대학에서 만난 중산층 진보주의자들은 빈자를 동정하며 세금 내는 자신들의 관대함에 자부심을 가졌다. “애들을 먹이기 위해 수당을 받으려고 종이컵에다 소변을 받는 기분” 같은 건 몰랐다.
세상은 이들이 못 배우고 인종주의에 찌들어서 우경화됐다고 비난한다. 그렇다고 해도 일의 순서는 바뀌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진보의 보루였다. 긍지의 상실과 수치심, 경멸과 낙인, 심지어 동정의 문화 정치가 이들을 혐오의 화신으로 만들었다.
장애인이면서 생태주의 페미니스트 노동운동가인 일라이 클레어가 저작 ‘망명과 자긍심’에서 들려주는 경험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백인 남성 레드넥 사이에서 학대받고 성폭행당하며 자란 그는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 사회운동에 참여한다. 동료 환경운동가, 퀴어활동가들은 대부분 고학력 중산층 출신이다. 노동계급을 돌대가리나 꼰대라며 곧잘 경멸했다. 그때마다 땡볕 아래 빨개진 그들의 목이, 가난한 노동이 떠올랐다. 부유한 고학력 진보와 가난한 저학력 보수 사이의 정서적 적대감을 빼놓고서 지금의 미국 정치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적대감의 기초에 현대 미국 정치, 나아가 서구 정치의 거대한 구조 변화가 깔려 있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1945년부터 2010년대까지 서구 주요 국가의 선거 결과 조사를 통해 밝혀낸 사실은 놀랍다. 1970년대까지 저학력·저소득 노동자 계층의 지지에 기반하던 노동당, 사민당, 민주당 등 선거좌파는 점차 고학력·고소득 계층이 지지하는 학력 엘리트 정당으로 변모했다. 1980~1990년대를 거치며 이들은 좌파가 우파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며 세계화를 주도하고 노동시장 유연화에 동조했다. 탈락하는 이들은 복지로 달래면 된다면서. 노동자들이 수치심에 몸서리치며 보수정당으로, 극우정당으로 옮겨 갔다. 부유한 좌파 엘리트들이 ‘자해’라며 조롱하자 투표로 ‘응징’했다. 이렇게 세상이 엉망이 됐다. 이렇게 현대 정치가 학력 엘리트와 자산 엘리트의 과두제로 귀결됐다. 피케티의 비판 요지다. 미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고소득층은 민주당을, 저소득층은 공화당을 지지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노동계급을 버린 민주당을 노동계급이 버렸다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증상일 뿐이다. 원인은 엘리트 과두제에 있다.
한국 상황이 서구와 같지는 않다. 워낙 우경화된 사회여서인지 독립적인 대안 우파는 미약하다. 취약한 복지 탓인지 복지를 둘러싼 낙인의 정치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의 일일까? 농촌은 물론 공업도시조차 쇠락하기 시작했고 이주민의 대량 유입도 진행형이다. 눈부신 메트로폴리스를 벗어나면 곳곳이 절망의 그늘이다. 가난한 노인 세대, 희망 잃은 이대남의 ‘혐오스러운 선택’에 대한 고학력 중산층 진보주의자의 경멸과 조롱도 비슷하다. 이 와중에 거대 정당 더불어민주당은 금융투자세 폐지를 결정하고,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 완화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선거 전략인지 그들 자신이 부자여서인지 이제는 헷갈린다.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돌이킬 수 없기 전에 방향을 돌려야 한다. 엘레지는 한국에서도 울린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67142.html
트럼피즘의 유령 [김누리 칼럼] (한겨레,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2024-11-13 07:00)
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트럼피즘의 유령이다. 전세계의 정치인과 관료가 긴장하고, 온 세상의 억만장자와 투기꾼이 흥분하고 있다. 파시스트와 국수주의자도 덩달아 허황된 꿈을 꾼다.
트럼피즘의 유령은 참으로 불가해하고 신비롭다. “불과 4년 전 패배가 확정된 선거를 뒤집으려고 시도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가 어떻게 7200만 미국인의 표를 얻을 수 있었는가.”(니나 흐루셰바)
그러나 트럼프의 승리는 결코 우연도 이변도 아니다. 우리가 예전에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는 징후일 뿐이다. 독일 매체 슈피겔의 사설 ‘서구의 종언’은 트럼프의 귀환을 시대적 변곡점으로 본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두번째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것만큼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서구는 지배력을 잃었고, 얼마 전부터 흔들리던 공동의 가치 기반이 무너졌다. 어디서나 긴장이 감돈다. 국가 사이에서나, 사회 안에서나.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서는 극우가 전진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으로서의 서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트럼피즘의 유령은 ‘시대 전환’의 강력한 신호라는 말이다.
첫째, 트럼피즘의 승리는 미국 헤게모니의 종언을 뜻한다. 헤게모니란 ‘동의에 의한 지배’다. 조지 더블유 부시의 이라크 전쟁 이후 급격히 붕괴하던 미국의 세계 패권이 이제 트럼프의 귀환으로 마침내 확실한 종착점에 이르렀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는 미국이 세계 지배를 위해 동의를 구할 능력도 의지도 없음을 만천하에 공표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처한 위기는 바로 미국 헤게모니의 붕괴와 새로운 헤게모니의 부재 사이에 생겨난 공위기의 위기다.
둘째, 트럼피즘의 승리는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수명을 다했음을 상징한다. 민주적 제도와 법치주의에 기반한 근대 민주주의는 목하 도처에서 위협받고 있다. 유럽 전역을 휩쓸며 기세를 올리던 극우 포퓰리즘이 미국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구가했다. 이미 1940년대에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경고했던 미국의 ‘부드러운 파시즘’이 마침내 ‘거친 파시즘’으로 야수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셋째, 트럼피즘의 승리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시대가 끝났음을 뜻한다. 인종주의, 성차별, 외국인 혐오, 생태 파괴를 거리낌 없이 떠벌리는 트럼프의 정치적 승리는 68혁명 이후 서구의 자유주의 좌파가 힘겹게 쌓아온 정치적 성취와 문화적 자산이 사회적으로 소진되었음을 보여준다.
넷째, 트럼피즘의 승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도 시효가 다했음을 알려준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보호주의 정책은 국제주의, 유럽연합(EU), 세계시민 등의 기획을 ‘아름다운 옛일’로 기억하게 한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바탕으로 한 신고립주의의 확산은 이제 질적으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음을 의미한다. 장기간 헤게모니적 세계 지배를 주도해온 네오콘을 대체하는 ‘미국우선주의’의 마가(MAGA) 세력이 트럼피즘의 핵을 구성할 것이다.
다섯째, 트럼피즘의 승리는 또한 ‘진실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트럼프 1기에 이루어진 가장 치명적인 문화적 변화는 ‘거짓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탈진실, 탈사실, 대안사실’ 등의 말로 거짓을 호도하는 것이 공식적 정치 문화가 되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바이든-날리면’의 우격다짐을 보라. 이들의 거짓말이 위험한 이유는 거짓을 사실로 믿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을 하나의 ‘의견’으로 강등시키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지금 트럼피즘의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다. 지구상에서 미국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받는 지역이 한반도이다. 그렇기에 트럼피즘의 광풍에 더욱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선 미국에 대한 유아적 의존성을 벗어던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근대국가의 기본권인 국민주권과 민족자결의 권리를 회복해야 한다. 트럼프의 신고립주의가 열어놓을 새로운 국제질서를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와 김정은의 특수 관계는 향후 한반도 정세에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위기이자 기회다. 미국의 기존 한반도 정책인 ‘전략적 인내’는 한반도에 평화도 안정도 가져오지 못한 채, 북한의 핵무장을 강화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이제 트럼프 시대에 우리는 한반도를 ‘세계 최악의 위험지대’에서 ‘영구적인 평화지대’로 전환할 기회를 꼭 부여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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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년 미국 민주주의의 명백한 자멸 징후들 [특파원 칼럼] (한겨레, 이본영 | 워싱턴 특파원, 2024-11-14 16:46)
‘5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인들은 미국의 짧은 역사를 얕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치 체제의 존속 기간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248년 된 미국의 민주공화정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길다. 미국 독립을 그냥 독립이라고만 하지 않고 독립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만큼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 체제도 오래된 것이 먼저 무너지고 사라지는 게 순리일까?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248년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쳤다는 말이 나온다. 물론 많은 표를 받았기에 당선됐지만 그의 불법행위, 선거운동 방식, 지지자들의 동기, 미국 정치의 방향을 고려하면 위기론이 충분히 커질 만하다.
트럼프의 집권 비결은 아돌프 히틀러를 닮은 데가 있다. 히틀러는 유대인 혐오를, 트럼프도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외국인들에 대한 혐오를 적극 이용했다. 외부인들이 자신들 안방까지 모두 차지할 것이라는 망상에 가까운 선동으로 불안 심리를 자극한 것도 같다. 외부인들을 범죄자, 특히 성범죄자로 묘사하는 것은 언제나 집단 히스테리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이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체포됐으나 이게 오히려 그의 명성을 키워줬다. 트럼프도 ‘1·6 의사당 난동’이라는 내란이라고 볼 만한 사건을 선동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처벌 시도는 지지자들이 뭉치고 선거자금이 몰리게 만들었다. 트럼프의 비서실장을 지낸 존 켈리는 그가 독일 장군들이 히틀러에게 보인 충성심을 부러워했다고 증언했다.
에리히 프롬은 나치즘의 부상 배경을 분석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당시 독일 중하류층이 주도한 국가주의적 분노는 “사회적 열등감을 국가적 열등감에 투영한 하나의 합리화였다”고 했다. 지금의 많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대입해도 어색하지 않은 진단이다. 그들은 세계화·정보화에 대한 반감과 지위 하락 가능성에 대한 불안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를 통해 표출하고 있다.
트럼프의 오른팔이 된 일론 머스크는 또 어떤가. 선거 때 하루 한명씩 추첨해 유권자들에게 100만달러(약 14억원)씩 뿌린 것은 기발하면서도 기괴하지 않은가. 고대 로마 정치인들이 민중의 환심을 사고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제공했다는 빵과 서커스가 비슷한 예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민주정치의 중우정치로의 타락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심각한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민주주의 체제의 주권자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로 다시 세웠다는 점이다. 7500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함께 범인도피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러니 미국 민주주의가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미국 민주당 정치인들은 트럼프의 폭주에 “누구도 법 위에 없다”거나 “견제와 균형”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를 다른 말로는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선거로 공화당 쪽은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차지했다. 연방대법원은 트럼프가 집권 1기 때 대법관을 3명이나 지명했기 때문에 보수-진보가 6 대 3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다. 특정 세력이 입법·사법·행정 권력을 사실상 모두 장악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법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생겼고 견제와 균형은 무너졌다. 회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https://slownews.kr/121381
미국 대선 그 후: 그래도 계속 해야 할 이야기들 (슬로우레터, 민노씨, 2024년 11월21일)
[캡:콜드케이스] 왜 악당의 차별과 혐오가 승리했는가. 승자의 오만 혹은 패자의 체념으로 결과에 끼워 맞춰진 신화들. 미디어를 통해 반영·증폭·구성되는 문제적 현상과 인식을 ‘캡콜드’ 김낙호 교수가 분석합니다.
정체성 정치: 공화당의 적반하장
왜 악당의 차별 혐오가 승리했는가
민주당은 정말 노동계급을 버렸나
밀려난 자의 분노: 혐오와 증오의 정치학
언론의 문제, 가령 ‘제정신 세탁’
신화: 혹은 결과 끼워 맞추기
머스크와 베이조스
남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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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포퓰리즘마저 포획된 사회 (한겨레, 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2024-11-21 07:00)
미국 대통령선거가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로 끝나고 나서 선거 결과에 관한 분석이 어지러이 쏟아지고 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대체로 인정하는 것은 이제 극우 포퓰리즘 시대가 확고히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백인 남성 블루칼라는 다수가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민주당 표밭이라 여겨지던 흑인과 히스패닉 공동체에서도 트럼프 지지가 크게 늘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력 수준에 따라 지지 후보가 확연히 갈렸다는 사실이다. 대졸 이상 학력을 지닌 인구는 민주당에 몰표를 던진 반면 상대적으로 학력이 낮은 인구에서는 트럼프가 압승을 거뒀다.
말하자면 계급 정치가 작동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명확히 갈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계급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한 계층과 고학력 중간계급이 각각 두 진영의 구심 역할을 하는 정치 지형이 대두했다. 한 세기 전이었다면 전자는 사회주의의 대중적 기반이 됐겠지만, 지금은 구도가 전혀 다르다. 후자가 오히려 리버럴 혹은 중도좌파를 지지하고, 전자는 극우 포퓰리즘에서 자기 언어를 찾으려 한다. 트럼프주의가 불만에 찬 노동 대중의 언어가 되고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방향으로 역사가 펼쳐지려는 순간이다.
미국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 사회의 시계는 과연 어디쯤 와 있는지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다. 유럽과 남북미를 강타한 포퓰리즘 물결이 결국 이 땅에도 상륙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계급 정치가 혐오 정치와 만나 충격적 변종을 낳을 가능성을 미리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꼭 필요한 진지한 고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 한국의 계급 지형은 미국, 유럽과 크게 다르다는,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사실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급은 여전히 무정형의 대중에 가깝다. 좌파 전통을 통해 노동계급이 뚜렷한 가시적 세력으로 존재해온 유럽과는 다르다. 미국은 좌파 전통은 약해도 어쨌든 오랫동안 노동조합이 뉴딜연합의 일원으로 대접받은 사회다. 또한 특정 지역사회나 비백인 공동체들과 계급 균열선의 교차를 통해 노동계급 정체성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이런 유럽, 미국 사회이기에 노동계급을 주된 지지 기반으로 삼는 신흥 포퓰리즘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중간계급, 특히 고학력 중간계급의 목소리다. 노동계급은 숫자에 비해 목소리가 약한 반면 공론장은 압도적으로 중간계급에 의해 좌우된다. 교육 경쟁이나 부동산 투자가 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될수록 중간계급의 헤게모니는 더욱 강해지고, 대졸자 비중이 급증한 젊은 세대로 갈수록 이 양상은 더 심해진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서는 포퓰리즘의 전조라 할 현상조차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출현한다. 최근 정계를 뒤흔든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운동이 그 사례다. 한국은 포퓰리즘마저 노동계급 배제 질서에 포획된 사회다.
그래서 미국이든 한국이든 지금 시급한 과제는 다시 계급 정치로 눈을 돌리는 것이더라도 그 내용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분노한 노동계급이 극우 포퓰리즘과는 다른 언어를 찾도록 하는 것이 저들의 과제라면, 이곳에서는 여전히 노동계급이 ‘투명인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급선무다. 노동계급 대 중간계급의 지형이 저들의 걱정거리라면, 이곳에서는 다른 모든 집단의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중간계급 과잉 대표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 당면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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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막시무스처럼…“진보정치, 보통사람 마음을 얻어라” (한겨레, 이철희, 2024-11-22 07:00)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19 _미국 민주당 패배의 교훈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 선거다. 늘 지는 정당은 있어도 늘 이기는 정당은 없다. 정당에는 승리나 패배 모두 일상이다. 사실 성패가 뒤바뀌는 게 민주주의다. 그럼에도 어떻게 졌는지는 가혹하게 따져봐야 한다. 초점은 패배 그 자체보다 패배의 질이다. 미국 민주당은 유권자, 특히 자신이 대표하고 대변하겠다고 한 노동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 졌다. 미국 민주당의 패배는 ‘남 얘기’가 아니다. 진보를 표방한, 약자나 보통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는 정당이라면 깊이 성찰해야 할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 민주당은 져도 빈틈없이 알차게 졌다. 4년 만에 백악관을 내줬을 뿐만 아니라 상원과 하원도 모두 잃었다. 대통령 선거인단에서는 226 대 312로 완패했다. 지도로 보면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의 파란색을 빼면 온통 빨간색이다. 11월20일까지의 개표를 기준으로, 상원은 52 대 46, 하원은 218 대 212로 공화당이 승리했다. 이른바 ‘트라이펙타’ ‘레드 스윕’을 달성했다.
민주당에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일반 투표에서의 패배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생겼다. 근래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마다 민주당은 ‘중 염불하듯’ 제도 탓을 했다. 일반 투표에서 이기고도 선거인단 득표에서 졌기 때문이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일반 투표에서 280만표를 더 얻었다. 2020년, 조 바이든은 일반 투표 700만표 우위에도 불구하고 경합주에서 근소하게 앞서 승리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일반 투표에서도 500만표 뒤졌다. 전통적 지지층이 먹고 사는 건 나 몰라라 하면서 성마른 ‘B사감’처럼 훈계만 하는 민주당에 실망해 떠난 탓이다. 그 결과 2020년에 비해 대졸 미만 저학력층, 연 소득 5만달러 이하 저소득층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율이 각각 4%포인트, 5%포인트 늘어났다.
미국 민주주의가 퇴행한 이유를 반 다수결 제도에서 찾았던 학자들도 머쓱하게 됐다.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선거인단 제도가 다수결에 반한다며 미국 민주주의의 ‘민주화’를 제안한다. 그들은 꼭 필요한 개혁의 하나로 선거인단 제도의 폐지를 꼽는다.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고 이를 전국적인 보통 선거로 대체해야 한다.”(‘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다수가 권력을 차지하고, 그들이 강력하게 통치할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 그들의 개혁 비전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되자마자 다수파로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상원의 장관 인준 권한과 예산 편성권을 손보겠다고 한다. 일반 투표에서도 크게 승리한 트럼프가 다수결의 논리로 자신의 어젠다와 프로그램을 밀어붙인다니 그간 공화당이 소수임에도 전횡을 일삼아온 걸 비판하며 다수 지배를 강조한 이들로선 난감하게 됐다.
민주당의 패배에 대한 원인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 민주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일갈이 가장 통렬하다. “민주당의 선거 참패는 놀라울 게 전혀 없다. 민주당은 투표장에서 자신이 먼저 버린 노동계급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지난 선거에서는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잃더니, 이번에는 라틴계, 흑인 노동자들의 표까지 잃었다. 미국인들은 지금의 부조리에 분노하고 변화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현상 유지를 우악스럽게 고집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은 옳았다.” 얘기 끝!
전조 없는 사고는 없다. 민주당이 백인 노동자들의 마음을 잃고 있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라는 지적은 선거 오래 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중국과의 자유무역으로 인해 발생한 계급·문화적 분노는 이제 백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내재화되고, 자생력을 갖게 됐다. 여기에는 기술·문화·정치적 요인도 있었다. 산불처럼 지금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은 계속해서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불씨를 날라 사방으로 퍼뜨리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경제학 교수인 데이비드 오터의 대선 2년 전 진단이다.
하버드대 도시정책학 교수인 고든 핸슨도 그 즈음 비슷한 지적을 했다. “민주당은 지금 자유무역과 동의어나 다름없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밀어붙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성사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두 제조업 일자리를 앗아간 주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들이다.”
자신들이 지지한 정당이 그 일자리를 빼앗은 꼴이니 그들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가슴 속 응어리를 트럼프가 콕 집어 자극했다. “여러분에겐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이런 형편에도 바이든 정부는 많이 부족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불평등을 시정하기 위해 노동자의 편에 서겠다는 공약을 실천에 옮겼다. 그래서 나도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걸 다 했냐고 묻는다면 노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문제나 의료보험 부담을 줄여주는 문제는 계속해서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샌더스의 평가다. 그래서 그는 “유권자들이 트럼프에게 기대하게 되는 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카멀라 해리스 선거 캠프 역시 안이했다. 배고파 우는데 클래식 음악 틀어주는 ‘공제’(공감능력 제로)도 기가 차는데, 클래식 음악을 모른다고 또 힐난하는 식이었다. 대선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지난 10월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해리스에게 유보적인 흑인 남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혹시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는 게 불편한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미국은 인종 갈등으로 내전까지 치른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된 그조차도 불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을지도….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던지 칼럼니스트 브렛 스티븐스가 이렇게 비꼬았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흑인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트럼프 재임 중에 가파르게 오르다가 바이든 행정부 아래서는 거의 정체됐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설명을 놔두고 굳이 누군가를 꾸짖고 모욕 주는 논리를 찾는 이유는 뭘까?”
‘소셜 애니멀’의 저자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직격했다. “민주당에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불평등과 싸우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 이토록 극심한 불평등이 보란 듯이 존재하는데, 많은 민주당 사람들은 이를 보지 않았다. 많은 좌파가 인종 불평등, 젠더 불평등, 성소수자 불평등에 집중했다. … 좌파가 정체성 행위예술로 방향을 트는 사이 트럼프는 두 발 벗고 계급전쟁에 뛰어들었다. 퀸즈 출신 트럼프의 맨해튼 엘리트에 대한 분노는 미국 전역의 시골 사람들이 느끼는 계급적 적개심과 마법처럼 맞아 떨어졌다. 트럼프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이 사람들은 당신을 배신했을 뿐만 아니라 무식한 얼간이로 여긴다.”
민주당의 패배가 진보정치에 주는 교훈은 간단명료하다. 관중의 마음을 얻어라!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359
미국 노동자 서민은 왜 트럼프를 뽑았나 [데이터로 읽는 미국 대선] (시사IN 897호, 국승민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 2024.11.26 06:45)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증가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유색인종과 저소득층 이탈이 특히 뼈아프다. 30년 사이 처음으로 저소득층이 공화당에 더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11월5일 오후 10시, 조금씩 해리스 후보의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가슴 한 곳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해리스가 패해서가 아니라 여론조사의 문제점이 또다시 드러나서였다. 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정치를 연구하는 필자의 생업이 부정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렇다고 선거 결과를 복기하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가 예측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하더라도 선거 후 민심 이해에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학과 데이터는 미국 정치와 유권자의 냉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현실을 하나씩 짚어보자.
〈그림 1〉은 이번 대선을 하나로 정확히 요약한다. 올해 전 세계 모든 선거에서 집권당은 예외 없이 득표율이 떨어졌다. 1950년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도, 1980년대 인플레이션 위기 때도, 집권당들이 이렇게 참패해본 적은 없다. 올해 미국 선거 결과의 붉은 점을 보면, 그나마 전 세계 집권당 중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여준다. 반(反)트럼프 진영이 최대 결집했지만, 전 세계적 인플레에 따른 집권당에 대한 불만을 이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선거가 여러 사람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트럼프 지지세 확대가 전국 모든 곳에서 골고루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인종, 성별, 교육수준, 소득수준, 종교, 이념, 도시·농촌 거주 여부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유권자 그룹에서 트럼프 지지율이 증가했다. 민주당을 승리로 견인할 거라 여겨졌던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 유색인종 여성, 젊은 여성 모두 2020년에 비해 민주당 이탈 현상이 뚜렷했다.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트럼프 지지 증가세는 다른 지역보다 더 가파른 모양새다. 전국 50개 주에서 유타와 워싱턴주를 제외하고 모두 트럼프 지지율이 올랐다.
민주당에서 가장 뼈아파 하는 부분은 유색인종과 저소득층의 이탈이다. 가장 큰 이탈은 라틴계에서 나타났다. 라틴계 유권자 사이에서 바이든의 득표율은 트럼프보다 28%포인트 높았지만, 해리스의 승리 폭은 13%포인트로 반토막 났다. 8년 전 트럼프를 지지하던 라틴계 유권자는 29%에 불과했지만 올해 42%까지 성장했다.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 해리스의 압도적 우위는 여전했지만, 각론을 보면 다르다. 4년 전 흑인의 트럼프 지지율은 8%였지만, 올해는 16%이다. 두 배로 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인종 재정렬’이라고 평하기까지 한다.
저소득층의 이탈은 더 드라마틱하다. 최근 30년 사이 처음으로 저소득층이 공화당에 더 높은 지지율을 보여줬다. 〈그림 2〉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자리를 바꾼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다. 1996년만 하더라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저소득층과 교육수준이 낮은 유권자에게 지지를 받았고, 밥 돌 후보는 고소득층과 교육수준이 높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다. 28년 후, 트럼프와 해리스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민주당이 대학 교육을 받은 유권자의 지지를 더 받게 된 건 2016년부터라 하더라도, 저소득층의 지지를 빼앗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권자는 ‘정책’만 보고 투표하지 않았다
이런 패배를 두고 민주당 정치인들과 진보 성향 언론인들은 민주당이 노동자 지지를 받는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파한다. 심지어 한국 내 진보 성향의 언론인이나 교수들도 미국 민주당이 엘리트 정당이라며 노동자 정당으로 변모해야 한다고 엄준하게 꾸짖는다. 그러나 이런 노동자·서민을 강조해야 한다는 구호에는 ‘어떻게’가 빠져 있다. 노동자 계층을 돕는 정책을 추진하면 그들이 자연스레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부터 검토하지 않는 이상 똑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좋은 정책이 지지를 불러오지 않는다. 현대 미국 정치의 네 가지 장면을 검토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첫 번째, 미국 최대 운수노조인 팀스터스 노조가 해리스 지지를 포기했다. 노조 지도부는 기층 노조원들의 트럼프 지지가 뚜렷하다는 이유로 해리스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의 노조 친화적 기조가 그저 구호에 달했다면 기층 노조원들과 지도부의 선택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위기에 빠진 팀스터스 노조의 연금펀드에 공적자금 50조원을 투입했다. 굉장히 큰돈을 팀스터스 노조원을 위해 투자했음에도, 팀스터스 노조원도 지도부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다. 노조를 위한 정책은 표로 이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장면은 테네시주 서부에 위치한 헤이우드카운티에서 펼쳐진다. 한국에서 IRA로 알려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미국의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자동차 공장 설립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포드는 헤이우드카운티의 스탠턴에 7조8000억원을 투자해 6000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인구 1만7000여 명인 헤이우드카운티에는 상당히 큰 투자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4년 전에 비해 얼마나 지지율이 올랐을까?
민주당의 지지율은 오히려 예전에 비해 감소했다. 그것도 큰 폭으로 줄었다. 2020년 바이든은 8.9%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해리스는 0.4%포인트로 겨우 이겼다. 민주당이 700여 표를 잃는 사이, 공화당은 50여 표를 추가했다. 일자리 창출로 노동자들에게 표를 얻으려던 정책은 지지율 감소라는 결과로 끝났다. 테네시 상황을 잘 아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 지역 공화당 정치인들이 전기자동차 공장의 부정적 면모만 강조했다. 지역 주민들은 전기자동차 공장은 완성되지 않을 것이며 민주당이 표를 벌기 위한 흉내만 낸다고 믿었다고 한다. 공화당이 백악관과 상하원 승리를 거머쥠에 따라 결과적으로 IRA의 운명은 불투명해졌다.
세 번째 장면은 오바마케어와 농촌 병원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한국의 지방 병원처럼 미국의 농촌 병원도 경영난에 시달린다. 2010년 이후 농촌 병원 136개가 문을 닫았고, 추가로 700개 병원이 폐원 위기에 처해 있다. 오바마케어는 저소득층의 건강보험 접근성을 늘려주는 메디케이드 확대 정책을 담고 있어서 농촌 병원의 경영 상황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화당이 집권하는 여러 주들이 이념적 이유로 오바마케어 정책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런 주들은 오바마케어 정책을 수용한 주에 비해 농촌 병원 폐업률이 3.3배 이상 높았다. 주지사와 주의회의 잘못된 선택이 농촌 지역 주민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농촌 병원 폐업을 겪은 유권자들은 주지사와 주의회를 심판했을까? 아니다. 민주당을 심판했다. 미시간 대학 마이클 셰퍼드 교수 연구에 따르면, 농촌 폐업 병원이 있는 주변 지역에서 민주당은 1%포인트 정도 지지율을 잃고 그 지지율은 트럼프에게 갔다. 공화당이 장악한 주지사와 주의회는 지지율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주정부의 잘못된 선택의 책임을 연방정부에 떠안긴 모양새다.
마지막 장면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와 해리스 정책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 결과에서 볼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여론조사로 트럼프와 해리스의 정책을 ‘블라인드 테스트’했다. 후보 이름 없이 정책만 놓고 어느 정책이 더 인기 있는지 시험했다. 결과는? 〈그림 3〉에 따르면, 해리스의 정책 대부분은 과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트럼프는 절반 가까이가 과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해리스 정책의 16개가 75% 이상 지지를 받은 데 비해, 트럼프는 겨우 4개 정책만 75% 이상 지지를 받았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들도 해리스 정책의 절반 이상을 50% 넘게 지지했다. 정책만 놓고 본다면 민주당이 승리해야 하는 선거였다. 그렇지만 유권자들은 정책만 보고 투표하지 않았다.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책이 지지를 이끌어내지 않는다면 무엇이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가? 정치학자와 언론인이 오래 물어온 질문이다. 토머스 프랭크라는 언론인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라는 책을 통해 문화적 요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백인 노동자 계층은 문화적 이슈에서는 보수적 입장을 선호하고 이에 따라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도 미국 유권자의 투표 행태는 자기 이익보다 ‘상징적’인 것들에 대한 입장에 좌우된다고 분석했다. 흑인·불법이민자·여성·부자·기업과 같은 추상화된 상징에 대해 유권자가 평소 어떤 성향을 갖느냐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서민 대변하는 정당이 되려면
트럼프 이후 미국 정치는 정체성 그리고 ‘상징’을 둘러싼 정치가 더욱더 극대화되었다. 필자가 3년 전 기고(〈시사IN〉 제697호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인종주의야’ 기사 참조)에서 트럼프 지지 요인을 분석한 것처럼 인종에 대한 태도가 트럼프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구분하는 예측력이 가장 높은 변수다. 미국의 20대 남성을 분석한 기고(〈시사IN〉 제889호 ‘20대 남자 현상, 미국에도 있다’ 기사 참조)에서 밝힌 것처럼 ‘적대적 성차별주의’도 트럼프 지지자에 대한 예측력이 높은 변수다. 정책 지지는 트럼프 지지에 큰 예측력을 가지지 못한다. 이와 같은 분석이 트럼프 지지자를 인종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로 명명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지지자와 비지지자를 구분하는 것은 인종이나 젠더와 같은 문화적 요인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봐야 한다.
이런 현실은 미국 민주당과 진보 진영에 큰 숙제를 안겨준다. 노동자 계층은 전통적으로 인종, 젠더, LGBTQ(성소수자) 이슈 등에서 보수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노동자 계층이 민주당을 꾸준히 지지하던 1990년대에도, 아니 시간을 더 거슬러 미국 내전 이전에도 이들은 문화적 이슈에 보수적이었다. 다양한 인종과 진보적 이해집단을 아우르는 연합정당 성격을 띠는 민주당이 이러한 이슈에 보수적 입장을 갖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트럼프는 이민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이슈에 선명한 보수 색깔을 보여줌으로써 노동자의 지지를 결집할 수 있었다. 인종, 젠더 같은 이슈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이런 행보에 반발하면서 민주당으로 결집해 오늘날 미국 정치의 구도가 형성됐다.
2020년 바이든은 대선에 임하면서 나름의 이론을 제시했다. 미국 노동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제조업 고용을 늘린다면 노동자의 지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4년 후 민주당은 노동자 지지 이탈이 더 가속화한 모습을 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2008년 오바마 캠프와 같이 백인 노동자와 유색인종의 연합을 회복한다는 목표만 있지, 구체적인 실행법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정치학의 대가 래리 바텔스(벤더빌트 대학)와 크리스토퍼 에이큰(프린스턴 대학)은 〈현실주의자를 위한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잘못됐음을 지적한다. 현직 대통령의 정책과 실적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집권당이 책임을 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나이브하며, 대부분의 유권자는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기 때문에 많은 민주주의 정부들이 대중의 선호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번 대선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심판 성격으로 봤을 때는 이 책의 주장이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난 4년간 정책적 노력에 유권자들이 보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혜안이라고 할 수 있다.
유권자가 정체성을 따라 투표한다고 민주주의를 회의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정치인들이 노동자·서민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고장 난 것과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가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라는 사실을 높게 친다. 정치 불신이 바로 트럼프 지지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불신이 바로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던 것이다. 미국 민주당이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정책이 아닌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4년 뒤 그 정체성을 이해하는 정치인이 나온다면 ‘오바마 연합’의 회복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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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165610.html
“트럼프 당선은 세계경제 재앙”…막판 전문가들 경고 빗발 (한겨레, 정남구 기자, 2024-11-04 06:00)
5일(현지시각) 본투표를 하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현 부통령)가 승리하더라도 언론들은 ‘트럼프가 졌다’고 보도할 것이다. 이번 선거가 ‘트럼프의 귀환’에 대한 찬반 투표로 흘러가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캠프는 한껏 고양됐다. 이날 미국 노동부가 10월 비농업 부문 신규고용이 전달에 견줘 1만2천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10만∼11만명 수준일 것이라는 시장 예상치에 크게 미달했다. 캐럴라인 레빗 캠프 대변인은 “해리스가 우리 경제를 얼마나 심하게 망가뜨렸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부는 “허리케인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지만, 해리스 후보 처지에선 불운이었다.
앞서 트럼프 후보는 ‘현재의 미국 경제 상황이 사상 최악’이라며 물가고에 시달리는 유권자들의 반발심을 자극해왔다. 갤럽 조사(9월16~28일)를 보면 미국 유권자들은 미국 경제 상태를 좋지 않게 보고 있으며(나쁨 46%, 좋음 25%), 해리스(45%)보다 트럼프(54%)가 경제 문제를 더 잘 처리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의 판단은 이와 딴판이다. 트럼프의 처방은 ‘미국과 세계 경제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최악’이라는 트럼프 쪽 주장을 반박하려는 듯 10월17일치 ‘세계가 부러워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경제는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더 좋다”고 썼다. 센추리재단 수석연구원 스티븐 그린하우스는 10월30일치 영국 가디언에 쓴 글에서 “2022년에 인플레이션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높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훨씬 낮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우리 경제가 강력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트럼프가 승리한다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후보가 엄청난 거짓말에 기반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미국 경제의 해법으로 수입품에 대한 전면적인 관세 부과, 이주 노동자 추방, 연방준비제도(Fed)를 통한 금리 인하 등을 공약했다. 특히 관세와 관련해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10∼20%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수입품에 60∼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달 22일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무역 전쟁이 재발할 것이라며 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공동 서한을 통해 “트럼프가 당선되면 미국의 국제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국내 경제도 불안정해질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트럼프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영구 감세, 팁에 대한 면세 등도 공약했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공약이 이행되면 향후 10년간 최소 7조5천억달러의 국가 부채가 추가될 것이라고 본다. 이는 장기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미국 달러를 강세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 실제 10월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트럼프 당선에 베팅하는 투자(트럼프 트레이드)가 크게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경제학자와 보수 성향의 자문가조차도 트럼프가 지지하는 아이디어가 인플레이션의 불씨를 더 키울 위험이 있다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하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보복할 뜻도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해 올해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지난달 31일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엄청난 불확실성이 생기고 경제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가 선호하는 회사가 특별 거래를 기대할 수 있고 다른 회사가 경쟁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경제가 후퇴하는) 미끄러운 경사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후보에 대해 “미국과 전세계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1기 때에 비해 트럼프의 정책은 더 나빠지고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며 “이코노미스트가 투표권이 있다면 해리스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사실상 ‘반트럼프’ 선언을 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트럼프 경제 정책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가 약화됐음을 시사하는 조사 결과가 나온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가 함께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경제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이라는 응답은 9월엔 해리스에 비해 13%포인트 많았으나 10월 하순 조사에서는 6%포인트 우위로 격차가 줄었다.
 
https://www.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411042119005
‘트럼프 텃밭’ 뒤집는 재생산권 이슈…백인 여성이 판세 바꾼다 (경향,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2024.11.04 21:19)
공화당 강세 아이오와 조사
해리스 역전…여성 56% 지지
막판 유세 해리스, 흑인 공략
“가자 종식 노력” 아랍계 구애
트럼프, 경합주 3곳 강행군
막말·선거 불복 수위 높여
미국 대선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에도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열쇠를 쥔 경합주 유권자 표심 얻기에 매달렸다. 경제·이민 문제와 더불어 대선 쟁점인 재생산권리를 놓고 여성, 특히 공화당 지지 성향을 보여온 백인 여성들의 표심이 주목받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미시간 디트로이트의 흑인 교회 예배에 참석한 뒤 지역 식당과 흑인 이발소에서 유권자들을 만난 뒤 미시간주립대에서 유세를 했다. 그는 연설 초반 가자지구와 레바논 전쟁에 대해 언급하며 “대통령이 된다면 가자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랍계·무슬림 인구 비중이 높은 미시간에서 미국 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막아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최근 ‘반트럼프’ 메시지를 내걸고 네거티브 공세를 강화해 온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은 이례적으로 유세에서 단 한 차례도 경쟁자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를 시작으로 노스캐롤라이나, 조지아까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와 선벨트(기후가 온난한 지역)를 아우르는 광폭 행보를 했다. 펜실베이니아 리티즈에서 예정보다 늦게 유세를 시작한 그는 “(백악관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2020년의 선거 불복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에 불을 지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연단 위에) 나를 (총탄으로) 맞추려면 가짜뉴스(를 쓰는 기자)를 먼저 거쳐야 하는데, 나는 크게 신경 안 쓴다”고 발언해 언론을 적으로 대하는 태도도 내비쳤다. 트럼프 캠프는 이후 기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옹호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후 일정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이민 정책에 대한 공세에 집중했지만, “가장 두서없고 불만과 억울함에 가득 찬 최후 변론”(폴리티코)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3일 뉴욕타임스·시에나대 여론조사를 보면 경합주 중 최다 선거인단(19명)이 걸려 있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두 후보는 각각 48%로 팽팽한 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백악관 입성을 위한 필수 관문을 잡기 위해 양쪽 다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스캐롤라이나의 경우 같은 여론조사에서 그동안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온 근소한 우위를 뒤집고 해리스 부통령이 2%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선 선벨트 지지층 단속이 최대 과제가 됐다.
어느 때보다도 성별에 따른 정치 성향 분화가 두드러진 이번 선거에서는 유독 여성 유권자들의 선택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공화당을 지지한 보수 백인 여성의 표심이 중요 변수로 떠올랐다. 전날 공화당 강세 지역 아이오와의 현지 매체 디모인레지스터 여론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47% 대 44%로 우위를 보였는데, 특히 여성의 56%가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트럼프는 36%)했다.
권위가 높은 편인 이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여성들에게 재생산권 이슈가 지니는 위력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은 2022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물결(레드웨이브)이 일 것이라는 예측이 빗나갔듯이 임신중지권을 지지하는 여성 표가 결집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과 2020년 모두 여론조사 지지율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샤이 트럼프’ 건재 여부도 관심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