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군 무상버스 사례 기사를 보고 이를 알리고 싶었는데, 이송희일 감독이 다른 나라의 사례까지 함께 대중교통 무상화 실험을 잘 소개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369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보스턴·스페인·청송군등 전세계 대중교통 무상화 배우라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3.04.02 11:04)
전세계 대중교통 무상화 실험, 반향 일으켜
대중교통은 필수 공공재라는 단순한 이치
“대중교통은 공공재입니다. 공원, 도서관, 학교, 공교육만큼 필수적이며 우리는 이에 대한 자금을 조달해야 합니다… 대중교통 무상화는 우리가 경제적 평등, 인종적 형평성, 그리고 기후정의를 위해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조치 중 하나입니다.”
2022년 미국 보스턴 시장에 당선된 미셸 우의 최우선 정책은 대중교통 무상화였다. 보스턴 역사상 최초의 여성, 최초의 유색인종, 최초의 어머니로 시장에 당선됐다는 화려한 수식어들을 뒤로 하고 당선되자마자 가장 먼저 보스턴 외곽을 순환하는 세 개 노선의 버스 요금을 무료화하는 것으로 시정의 첫 씨앗을 던졌다. 저소득 노동자와 가난한 유색인종이 분포한 외곽 지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23, 28, 29번 버스가 그 대상이었는데, 2024년까지 무료 운행의 실험을 감행한 것이다.
미국 보스턴 일부 버스노선, 에스토니아는 기차 전면 무료
현재까지의 결과가 놀랍다. 2021년에 비해 승객이 두 배로 껑충 뛰었고, 요금 내는 시간이 사라지자 노선당 21% 정도 운행 속도가 빨라졌으며, 탑승객들은 적지 않은 생활비를 아낄 수 있었다. 또한 저소득층의 시내 접근성과 교육과 취업 가능성을 제고했다. 대중교통이라는 필수 서비스 강화로 유색인종과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올리고 자동차를 줄여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겠다는 포부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보스턴 시의원이었던 미셸 우는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매일 애면글면 버스로 출퇴근하는 과정에서 대중교통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걸 몸소 절감했다. 요금 인상과 서비스 삭감 문제가 터지자 그녀는 대중교통 운동의 최전선에서 내내 목소리를 높였고, 끝내는 시장 선거 공약의 일순위로 대중교통 무상화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이 성공담은 즉시 파장을 일으켰다. 먼저 보스턴이 속한 매사추세츠 주 차원에서 2022년 연말 37일 동안 일부 노선의 버스 무상화가 전개됐다. 향후에도 요금을 인하할 방침인데, 그 재원을 위해 주 의회가 ‘백만장자 조세’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연간 소득 1백만 달러를 초과하는 부자들에게 4%의 추가 세금을 징수해 대중교통 요금을 인하하자는 것이다. 주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과 하원의원 아야나 프레슬리,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주지사인 마우나 힐리에 이르기까지 진보적 색채가 두드러진 지역인 데다 무상화를 꾸준히 요청하던 시민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이런 풍경이 연출되었을 테다.
보스턴 실험은 최근 미국 대중교통 정책의 미묘한 변화 기류를 예증하는 상징적 사례다. 2015년 무료 요금 프로그램이 도입된 몬타나가 그 기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도가 도입된 이래 승객 수가 거의 70% 증가했다. 2018년에 노동자와 주민들을 위한 무료 요금제를 시도한 콜럼버스는 역대 최고 승객 수를 갈아치웠고, 궤도 전차를 신설한 켄자스시티도 2019년부터 무상화를 시행하고 있다. 2020년 팬데믹이 도래하면서 무상화 요구가 더욱 커졌다. 줄어든 탑승객을 늘리기 위해, 또 운전자와 승객 간의 거리두기를 위해 요금을 인하하거나 무료화한 것이다. 여기에 저소득층의 부담을 덜어 형평성을 올리자는 인식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올림피아, 리치몬드와 알렉산드리아, 로스앤젤레스 일부, 유타, 투손, 앨버커키, 워싱턴 D.C등이 무상화를 시행하거나 시행 예정에 있다. 뿐만 아니라 뉴욕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관련 의제를 놓고 열띤 토론이 한창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대중교통 서비스를 뒷전으로 미뤄둔 채 고속도로 건설과 보조금 등 자동차 위주의 일방적인 교통 정책을 고수해왔던 미국에서 ‘필수 서비스로서 대중교통’이라는 인식이 이렇게 퍼져나가는 과정은 기존과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팬데믹, 에너지 위기와 고물가, 도시 공공성에 대한 요구,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의 압력이 이와 같은 급격한 변곡점을 형성한 원인들이다.
부자증세로 재원 채운 미 매사추세츠·스페인…청송군 무상버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최근에 대중교통 무상화 실험을 시도한 도시는 전 세계에 100개 정도가 된다. 유럽의 경우 그 목적이 보다 명료하다. ‘불평등 해소와 탄소 배출량 감축’. 2013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이 세계 최초로 탄소와 오염을 감축하기 위해 기차와 버스를 무료화했다. 뒤이어 2018년 프랑스 덩케르크가 버스를 무상화했는데, 승객이 늘고 도시 상권이 활성화되었으며 자동차 이용이 감소했다. 국가 단위로는 룩셈부르크가 처음으로 이 대열에 끼어들었다. 또 오스트리아는 아예 ‘기후티켓’이라고 적시한 저렴한 이용권을 발매했다. 덴마크와 이탈리아 일부 도시, 몰타 등 50여개 도시들에서 무상화와 인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지난 해 시행된 독일의 ‘9유로 티켓’ 실험은 세계적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시민들의 필수 생활비를 줄이고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3개월 동안 9유로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했는데, 이용객이 늘고, 대기질이 좋아졌으며, 180만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였다. 이는 9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효과다. 스페인은 훨씬 더 파격적이다. 2023년까지 기차 무상화 정책을 시행 중인데, 기업에 대한 ‘횡재세’로 그 재원을 충당한다. “저는 이 나라의 노동계급을 위해 뼛속까지 일할 것입니다.” 이 정책에 대한 스페인 총리의 코멘트다.
어느덧 ‘대중교통 = 필수 서비스’라는 인식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물결치는 모양새다. 심지어 영국에서조차 ‘2파운드 상한제’가 시행 중이다. 한때 ‘25살 이상의 성인이 버스를 타면 루저’라고 할 정도로 대중교통을 푸대접하고 공공재를 닥치는 대로 신자유주의의 먹잇감으로 던져줬던 민영화의 왕국 영국마저 대중교통을 필수적 공공재로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버스를 재건하라(Bus Back Better)’라는 프로젝트 하에 요금 인하와 서비스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요컨대, ‘공공성’이 여러 위기를 경유하며 다시 귀환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공공재정 ‘적자’에 대한 공포를 부채질하며 무덤에 파묻었던 바로 그 공공성 말이다. 부자와 기업을 위해서는 보조금을 밤낮으로 퍼주고 여러 감세로 이익을 증가시키면서도 시민 삶을 위한 공공성 확대는 끝없이 죄악시했던, 부자들에게만 철저히 유리했던 불평등 시대의 단층에 생긴 어떤 균열의 조짐일 것이다. 하긴 이 와중에 한국처럼 거꾸로 질주하는 나라도 존재한다. 공기업 ‘적자’ 이야기만 나오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일부 환경단체들. 대중교통과 난방 같은 필수 서비스의 요금을 올리자는, 신자유주의에 강박된 그 지겨운 성화들.
물론 한국에서도 ‘3만원 티켓’, 또는 ‘1만원 티켓’ 같은 대중교통 캠페인이 서서히 분기하고 있다. 그중 청송군의 버스 무상화는 단연 돋보인다. 한 지역의 혈관이랄 수 있는 대중교통을 무상화함으로써 군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자는 이야기다. 시행 3개월만에 이용객이 20% 이상 늘었다. 중노년 군민들의 활동성도 부쩍 증대시켰다. 우리는 청송군으로부터, 그리고 지금 전 세계에서 꽃피는 저 다양한 실험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대중교통이 필수 공공재라는 그 단순한 이치를 공유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된다는 것을, 공공성을 확대하면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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