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의 의견에 동의는 하는데, 항공 산업을 부정적으로만 봐야 하는지는 제대로 판단이 안 된다. 항공기가 없을 경우의 장거리 여행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늘을 날고 우주를 향하는 꿈도 포기하기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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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의 '아편' 먹고 사는 항공 산업의 이면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감독, 2022.07.31 11:05)
[기고] 공항 건설 사업의 성장주의에 대하여
지구의 운송 수단 중 가장 불평등한 건 무엇일까? 바로 항공이다. 비행기만큼 불평등하고 소수의 이익에 복무하는 수단이 없다. ‘지구 환경 변화’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세계 인구의 2~4%만 국제선을 이용한다. 단 1%가 항공기의 이산화탄소 50%를 배출한다.
“세계 인구의 80%가 아직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성장 동력입니다.” 2017년 보잉사의 CEO 데니스 뮬렌버그는 경제방송사 cnbc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실토했다. 각종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세계 인구의 약 80%가 상업용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11%만이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며, 그 중 국제선 고객은 4% 남짓이다. 부자 10개국이 항공 온실가스의 60%, 30개국이 86%를 배출한다. 그러나 부자 국가들에서도 항공기 이용은 보편적이지 않다.
기후 캠페인 그룹 Possible의 2020년 보고서. 미국에선 인구 12%만이 항공편의 66%를 이용한다. 영국에서는 15%가 70%의 항공편을 차지한다. 네덜란드에서는 8%가 42%의 항공편을 독점한다. 중국에서는 인구 5%가 40%의 항공편을, 프랑스에서는 고작 2%가 50%를 이용한다. 이 패턴은 유럽과 북미, 그리고 동아시아에 걸쳐 비슷하게 재현되고 있다.
또한 상업 항공기는 기체 자체가 불평등한 구조다. 2019년 항공 배출량의 19%가 비즈니스와 일등석에서 발생했다. 같은 해 항공 화물의 모든 배출량(15%)보다 많다. 물론 개인용 제트기의 비합리성은 압도적이다. 2019년 기준으로 억만장자의 제트기는 21,979대. 84%가 미국과 유럽에 있다. 정기 항공편보다 1인당 오염물질을 5~14배 더 배출한다.
이렇듯 항공기는 불평등한 세계의 랜드마크다. 공짜 배수구인 양 지구 하늘에 온실가스를 뿜으며 지상을 굽어보던 비행기는 자본주의 성장은 무한하다는 자신감의 표상이었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여파 속에서 소수의 부유한 승객들을 실어나르면서 탄소를 배출하고 생태계를 오염시켜왔다. 부자 관광객들이 세계 구석구석을 셀카와 SNS로 포집하는 동안, 초국적 금융은 그 모든 공간과 사물을 투자 가치로 환원했다.
1980년대 이후 항공 산업은 각국 정부의 공적 지원 속에서 2배 이상 급성장한 반면, 긴축 재정과 민영화로 인해 철도와 버스 같은 공공교통의 질이 떨어졌다. 또 식량 체계와 필수 서비스가 망가진 남반부 도시들을 ‘관광사업’에 의존하게 해 사회 기반을 더욱 형해화하고, 탄소 배출에 거의 책임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후위기의 몫을 전가해왔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성기 모양의 우주선으로 연출한 외설적인 퍼포먼스야말로 이 불평등 신화의 정점일 것이다. 비행시간 11분 동안 쏟아낸 이산화탄소가 1000톤. 이는 아프리카 서민 2천명 이상이 1년 동안 배출할 양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항공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2.5%다. 대안적 항공 글로벌 네트워크 Stay Grounded은 5.9%(2018년)로 추정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부끄러운 비행’, ‘가장 불평등한 운송 수단’, ‘누진적 탄소세 적용’이라는 비판이 일자 항공계는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한다. 미련한 이야기다. 설령 전기 에너지로 구동된다고 해도 2050년까지 1천 킬로 미만의 단거리 비행에서만 실행 가능하다. 한편으로 바이오연료를 위해 남반부 삼림을 약탈하고 팜유와 대두 같은 단작 농장을 확대하고 있는데, 실상 바이오연료는 화석연료보다 3배 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또 그들이 칭송하는 수소 에너지는 2050년까지 현실화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달리 말해, 항공 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최근 네이처에 실린 보고서에 의하면,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에 따라 2070년까지 4천 개의 인수공통 바이러스가 인류를 향해 밀려올 거라고 한다.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판데믹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달 영국의 활주로가 녹아내린 것처럼, 폭염과 해수면 상승 등의 기후 비상 상태는 항공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성장주의를 상징하는 항공 산업에 대한 이 맹목적 신화가 바로 지상의 궁핍한 삶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다.
마치 여기 한국에서 여야 구분 없이 열광적으로 신공항 건설에 매진하는 것처럼. 이 작은 땅에 이미 공항이 15개다. 국제공항이 8개, 국내공항이 7개. 이중 10개 공항은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것도 성에 차지 않아 문재인 전 정부는 ‘6차 종합공항계획’을 제출하며 10개의 공항을 더 짓겠다 표명했다. 예산만 9조가 훌쩍 넘는다. 가덕도, 새만금 등 줄줄이 신공항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여야가 똘똘 뭉쳐 대구 신공항 특별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공항 건설 사업비의 절반은 통상 건설사로 흘러들어간다. 나머지 일부는 또 부동산 이익으로 할당된다. 신공항은 지역민의 실제적 삶과 번영에 그닥 관계가 없다. 토건 개발의 낙수 효과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갈수록 심화되는 수도권과 지역간의 격차와 박탈감에 대한 보상 심리를 자극하느라 신공항 신드롬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대안과 상상력이 없으니, 그저 ‘성장‘이라는 아편을 강박적으로 주입하는 것이다. 신공항 하나로 지역 불평등을 해소할 거라는 저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성장주의라는 우상 숭배에 다름없다.
누구나 접근 용이한 저렴하고 빠른 철도와 대중교통, 지역 시민들의 민주적 토론에 기반한 거버넌스, 촘촘히 엮인 연대경제, 지역 정체성의 재지역화, 지역정당이나 정치적 자치 같은 삶의 양식이 우선이다. 미국 디트로이트나 스페인 바로셀로나의 전환이 보여주듯, 도시의 활력과 재생은 바로 그 도시민들의 자율과 힘으로부터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운송 수단, 생태계 파괴와 기후위기에 기여하는 부조리한 항공 산업, 그리고 4년마다 선심용 선거 공약으로 남발되는 저 무의미의 찰나적인 속임수로는 결코 이 불평등한 세계를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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