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 작가의 인터뷰가 흥미로워서 옮겨온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51164.html?_ns=t0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 “진짜 공포는 이 세상에 있다” (한겨레, 포항/이유진 기자, 2022-07-16 09:00)
[한겨레S] 인터뷰
비탄과 웃음 동시 포착하는 현실주의자이자 참여작가
‘대학의 위기’로 강의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서
“현실은 픽션보다 잔혹…제가 책임져야 할 일 해야죠”
남색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20여명이 식당에서 묵묵히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마침내 누군가 더 이상 침묵을 참을 수 없다는 듯 건배를 제의했다. “축하합니다! 정보라 작가님이 한마디 하시고, 노래도 하시고.” 정 작가의 남편인 임순광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 정책국장은 손사래를 쳤다. “아, 그러지 마라니까. 러시아어로 4절까지 한다니까.” 사람들이 웃는 가운데 정보라 작가는 확고하게 말했다. “1절만 할 수도 있어.”
그렇게 노래가 막 시작될 수도 있었는데, 다들 점잖게 우물쭈물하는 사이 점심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은 축하인사를 건네며 총총 떠났다. 지난 6일 정오 무렵 경북 포항의 한 식당. 정보라 작가 부부가 코로나 탓에 결혼 2년 만에 동지들에게 늦은 첫 인사를 하는 자리이자 소설가로서 국제적 인정을 받은 작가의 성취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소설집 <저주토끼>로 지난 4월 영국 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를 그의 포항 집에서 만났다.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난 정 작가는 연세대 인문학부, 미국 예일대 러시아동유럽지역학 석사를 거쳐 인디애나대학에서 슬라브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력 20년이 넘은 베테랑 러시아어 번역가이자 150여편의 단편을 발표한 소설가이며 러시아문학과 폴란드문학 전공자로 2010년부터 대학 강단에 섰다.
정 작가는 2020년 결혼하고 이듬해 남편 고향인 포항으로 이주했다. 사회학 전공자로 대학생 시절부터 30년이 넘도록 사회운동을 해온 임 국장이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일하던 때, 위원장과 조합원으로 만난 부부의 이야기는 환상문학웹진 <거울> ‘문어’(필명 정도경)에서 만나볼 수 있다. 러시아 해양가스관 건설에 은밀히 동원된 러시아 출신 대게와, 그런 대게에게 진지한 노동 상담을 해주는 남편의 이야기를 그린 ‘대게’가 후속작이다. 지금은 경상도 지역의 토속음식인 돔배기 얘기를 다룬 ‘상어’를 쓰고 있다. “남편이 입원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진도는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임 국장은 오랜 투병중이다.
강의를 그만두다
―두분 이야기를 다룬 ‘대게’, 너무 재밌었어요. 특히 “술 취한 한국 호모 사피엔스와 술 취한 러시아 갑각류에게 노동운동과 조직화에 대해 동시통역을 해줘야만 하는 인생 최대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는 평생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같은 장면요.
“추석 때였나 설 때였나 갑자기 (시)어머니가 대국민 폭로하듯이 그러시는 거예요. ‘쟈(임 국장)는 교수가 될 줄 알았는데 빨갱이가 됐다’. 어머님이 포항 죽도 시장에서 가게를 굉장히 오래 하셨어요. 동료 상인분들이 오셔서 아드님이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해서 봤더니 데모하고 있더라고, ‘남세스러워서 살 수가 없어’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도 그대로 쓴 거예요.” (웃음)
―작가님은 역시 리얼리스트세요. 부커상 심사위원회가 <저주토끼>를 두고 ‘마술적 사실주의’라고 했던 게 떠오릅니다.
“때때로 현실이 소설보다 더 터무니없고 더 마술적이고 더 잔혹할 수 있잖아요.”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셨죠. 2010년부터 대학에서 관련 강의를 해오셨는데, 포항에 오면서 그만 두신 건가요?
“포항에 와서도 강의는 계속했어요. 연세대와 충북대에서 강의를 했는데 충북대는 전면 대면 수업으로 했거든요. 포항-청주 직행노선이 코로나로 사라져서 두 학교 강의를 하려고 포항-서울-청주-서울-대구-포항을 오갔어요. 그보다 사실 외국어를 비대면으로 가르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장애인, 외국인 학생 지원책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무소용이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듣고, 아니면 나가라’는 식이었죠. 2년 동안 전국 어느 대학도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학교는 등록금만 챙기고 학위만 팔면 다냐, 다구나…, 생각의 행간에서 메아리로 ‘다야, 다야, 다야…’ 그렇게 오더라고요.”(쓴웃음)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석사, 인디애나대 박사를 받으셨죠. 세속적으로 말하면 ‘초엘리트’이신데, 강의를 그만두신 건 아까워요.
“작년 12월에 남편이 암 진단을 받기도 했고, 여러 문제로 작년 말 사표를 냈습니다. (그 뒤 한참 동안 대학교수 임용에 대한 불합리하고 몰상식한 처사에 대해 분노 섞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대학에는 자신이 정말 초엘리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요. 저들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 게 명백해졌고요. 그런 와중에 남편이 아프다고 하니까 ‘저들을 다 합친 것보다 남편이 소중하지’ 하면서.”
―가르친다는 일이 작가님께 큰 의미였군요.
“예전엔 학생들의 강의를 한다는 것이 저의 삶을 완전히 결정했었어요. 철도민영화나 세월호 서명 나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고, 학생들을 마주 볼 때에 떳떳하고 싶어서였고, 제가 대학에 계속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세월호 피해자 학생들 동생이나 그 세대 누군가는 만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학생들 앞에서 저는 책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는 학문과 학생을 사랑했지만 교수 자리를 미끼처럼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사람을 모욕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이제는 추해보인다고 했다. 최근 출간된 소설집 <여자들의 왕>에 수록한 ‘공주, 기사, 용’ 3부작도 그의 강단 경험과 관련이 있다. 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왔다는 기사에게 공주는 “구출 좋아하네”라며 칼을 휘두른다. 정 작가는 7년 동안 검도를 수련한 유단자다.
영국판 <저주토끼> 책을 들고 있는 정보라 작가. 포항/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런던이 나를 불렀다
정 작가는 슬라브 문학의 환상성에 영향을 받아 호러, 판타지, 과학소설(SF)을 넘나들며 아이러니와 반전을 통해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인류 내면의 원형적 이야기를 잘 다루는 소설가로 평가 받는다. 소설집 <저주토끼>는 부커상 최종후보 선정 뒤 지금까지 국내에서만 5만부가량 팔렸고 18개국에 판권이 수출되었다. 시작은 영국판 발간이었다. 2018년 홍대 앞에서 열린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안톤 허 번역가가 정 작가의 책을 발견하고 번역을 제안하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부커상 후보작 낭독회에서 두 사람은 ‘팀 저주토끼’(Team Cursed Bunny)라고 적은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허 번역가의 배우자가 만들어준 것이다.
―번역가로서 안톤 허 선생님 장점을 말씀해주신다면요?
“번역이라는 직업을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하셔요. 같이 일하는 사람을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시고요. 이번 부커상 시상식장에서도 비백인 번역가는 혼자밖에 없었어요.”
(이와 관련해 안톤 허 번역가는 <한겨레>에 “저는 올해 부커상에서, 출발어와 국적을 막론하여 영어로 번역하는 모든 유색인종 번역가들을 대표하게 되었습니다. 부커상 국제부문 역사상 한번도 유색인종 번역가가 탄 적이 없습니다. 백인우월주의가 득실거리는 곳에서 번번이 지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안톤 선생님은 실력도 출중하셔서 번역할 때 망설임이 별로 없다고요?
“그거는 진짜 한국어 모국어 사용자의 힘이에요. 또 약간은 데모 동지로서 제가 생각해요. 퀴어퍼레이드 때 행진을 하다가 만났어요. 막 이러고(손을 흔들고) 좋아했더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을 하고 저를 보고 계시고, 안톤 선생님 배우자님이 ‘쟤 왜 저렇게 활기차냐’고 그러셨대요. 전 행진이 좋단 말이에요. (웃음) 지금처럼 너무 바빠지기 전에도 원래 안톤 선생님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쪽에 관심과 활동이 많으셨어요.”
―최종후보 선정 전후가 많이 달라졌나요?
“달라지면 안될 것 같은데요. 이제 강의와 공부를 안 하고 있기 때문에 전업 작가로서 방향을 새로 찾아야되겠다는 생각은 좀 들고요. 안톤 선생님이 시상식장에서 물어보셨어요. 자신이 우리 인생을 망친 거 아니냐고요.”
―그게 무슨 의미죠?
“예전엔 각자 알아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끌려 다니면서 인터뷰만 하고, 쇼윈도 마네킹 같은 입장이 된 게 아닌가, 내가 우리 둘의 삶을 그렇게 만든 거 아니냐고요.”
―<저주토끼>는 영국 현지 반응도 좋았고, 특히 수상작인 <모래의 무덤>(기탄질리 슈리) 번역가 데이지 로크웰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했다면서요.
(상자 속에서 꺼내 보여주며) “부활절 계란도 만들어 주셨어요. 영국판 표지의 저주토끼를 똑같이 그려넣고 심지어 ‘저주토끼’라고 한글로 써주셨어요. 궁서체로. 그거 너무 귀여웠어요. 13살 된 따님과 남편도 <저주토끼>를 무척 좋아했어요.” (웃음)
―지금까지 18개국에 <저주토끼> 판권이 팔려나갔다 들었습니다. 미국은 연말에 나온다고요?
“예. 미국은 표지 색깔이 보라예요. (공교롭게도 인터뷰 도중에 미국판 <저주토끼> 가제본이 작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보라색 바탕에 붉은 눈의 하얀 토끼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각국 표지가 다른데요, 저는 한국어판 초판 표지도 마음에 들어요. 원래 토끼 눈하고 글자까지 모두 다 파란색이었는데요, 인쇄소 직원님이 갑자기 상을 당해서 지방에 가셨다가 와봤더니 글자가 모두 다 주황색이더래요. 데이터값을 하나 채우지 못하고 가셔서 주황색이 된 거예요. 저는 그래서 그 표지가 좋았거든요. 그런 이상한 일들도 일어나고 그래서.”
―영국판 표지의 토끼가 저는 좋더군요.
“저도 좋은데, 혼포드스타 출판사가 한국인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서 그린 거예요. 아시아 문학 번역서만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인데 공동대표님 두분이 다 30대 백인 남자거든요. 그 나라 디자이너에게 의뢰해야 해당국 사람들도 수긍하고 백인 남성이 만든 책 같지 않대요. (웃음) 배명훈 작가님의 <타워>하고 <빙글빙글 우주군> 표지도 같은 분이 작업하셨고… 근데 그게 1920년대 소련 포스터 같은, 그러니까, 약간 부러웠습니다….” (웃음)
시위에 자주 나가는 할머니가 폭탄 테러 용의자로 지목되는 단편 ‘그녀를 만나다’는 1인칭 할머니의 시점이지만 결국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다. 2020년, 그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오체투지를 두번 했고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을 위해 또 한번 땅에 엎드렸다.
―오체투지 여러번 하셨죠. 무릎보호대 같은 게 필요한 것 같던데요.
“맞아요. 핸드볼선수용이 최고라고 해서 쓰는데 정말 좋아요. 그런데 언덕에서 내려가는 건 앞으로 쭉 미끄러지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하신 스님들은 (그 높은데서) 어떻게 하셨는지 잘 모르겠어요. 함께 오체투지를 해봤는데 다르시더라고요.” (웃음)
소설집 <그녀를 만나다>(2021) 표제작 ‘그녀를 만나다’는 변희수 하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녀를 만나다’의 시위장면도 굉장히 유머러스하면서 슬프고 감동적이었어요.
“이태원에서 트랜스젠더 추모 행진할 때 갔었는데요. 거기서 발언하시는 트랜스 젠더나 젠더 플루이드(성별이 유동적인 젠더)나 논바이너리(이분법적 성별구분에서 벗어난 이들) 당사자 분들이 그런 태도시더라구요. 사회에서 겪는 어처구니 없는 일인데 그걸 너무 웃기게 말씀하시고 그러면서 먼저 보낸 친구들에 대해서 ‘이제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니’ 하는 식이요. 여성민우회 가정폭력 피해자 집담회도 비슷했구요.”
―희비극을 섞는 건 애도의 한 방법일까요.
“이건 그냥 제 생각인데요. 세월호 학생들 동영상 250개를 만들 때 제가 인터뷰를 하거나, 따라가거나 했어요. 2014년 참사 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에, 그러니까 오래 활동하신 부모님들은 거의 즐거운 일들에 대해서 얘기하세요. 거리에서 소리라도 지르고 다른 피해자분들이랑 같이 행진이라도 하고 경찰한테 둘러싸여 보기도 하고… 이렇게 애도를 받아들이면 파묻히지 않고 슬픈 순간과 기쁜 순간을 다 같이 기억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행동이 필요한 것 같고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애도의 행동을 하지 못하면 치유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의 취미가 데모라고 알려졌는데요.
“그런 표현은 살기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께는 모욕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2013년 12월에 철도민영화 반대시위를 나갔는데 그게 평생 처음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뒤엔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 임시 분향소에 갔는데, 그렇게 무서웠던 적이 없었어요. 젊은 영정 하나만 봐도 충격이었는데, 너무 많으니까, 근데 아직도 실종자가 더 남아 있다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진짜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말로 설명할 수는, 어떻게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였어요.”
소설보다 더한 현실의 공포가 도리어 그를 ‘세월호’로 이끌었다. 정 작가는 세월호에 탄 단원고 희생자 250명의 이름과 반을 모두 외웠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서 몇반인지 헷갈리는 것도 너무 죄송하다”고도 했다.
수다체 넉살에 숨은 무서움
정 작가는 러시아어, 폴란드어, 영어를 구사한다. 단편 포함 25편 가량의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했다. 여러 언어의 책을 읽지만 국내 소설은 피하는 편. 자문을 구해오거나 추천사가 들어오는 몇몇 작품들만 한정적으로 읽는다. “잔상에 남아 혹여 표절 문제가 생길까봐 극도로 조심한다”고 했다. 최근엔 한국과학소설 작가연대 대표로서 문예지 <현대문학>의 스페셜 에디터로 참여해 7~8월호에 소속 작가 20명의 작품을 싣는 기획을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부지런히 마감을 독려하고 독촉하는 ‘악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최근 재미있게 보신 소설은요?
“장류진 작가님, 이분도 하이퍼 리얼리즘이시다 싶었어요. 글을 너무 잘 쓰시기 때문에 너무 울화통이 터져요. 또 부커상 국제부문에 같이 오른 <엘레나는 안다>(스페인어 원제 Elena sabe)라는 책이 있는데, 정말정말 좋았어요.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작가님은 지금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참여작가시래요. 소설은 딸의 죽음을 조사하는 80대 파킨슨병 걸린 어머니의 이야기로, 범죄 소설처럼 시작해서 확 바뀌어요. 진짜 좋았어요.”
―1998년에 ‘머리’로 연세문학상 받으셨죠. 특유의 수다체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제가 옛날얘기를 좋아해 그 문체도 좋아하는데요.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면서 아예 수다 떠는 문체가 이론으로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스카즈’(skaz)기법인데, 1인칭으로 말하지만 주인공은 3인칭이어야 돼요. ‘우리 언니 친구가 얘기를 해줬는데 그 친구가…’ 이런 식으로, 그리고 화자의 논평이나 추임새가 들어가요. 한국 판소리 문체에서도 보듯 구비문학은 넉살 좋은 태도가 가능하죠. 기나긴 만연체는 일부러 그 문장 속에 독자를 익사시키려고 씁니다.”
―맞아요. 저 익사 되었어요.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십니까?
“글이 안 써지는 원인이 뭔지를 생각해 보는데요. 체력이 떨어지면 자야 되고요. 에스에프를 쓰는데 뭔가 과학적인 원리를 잘 모른다, 그러면 논문을 찾아 공부를 해야 되고. 그리고 뭐를 어떻게 해도 글이 안 써진다, 그러면 귀신 얘기를 써요. 작품 구상은 여러개를 한꺼번에 합니다. 예전에 과학소설작가연대에서 구상 노트를 가지고 노트를 만든 적이 있거든요. 다른 분들은 엑셀로 정리하거나 회로도를 그리시더라고요. 손으로 쓰는 사람이 그 사업에 참여한 몇 명 중에서 저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때그때 생각나는 언어로―영어, 폴란드어, 러시아어로―마구 쓰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구요.”
문예지 <현대문학> 7월호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콜라보 기획을 담았다. 곽유진, 김정혜진, 문이소, 박문영, 이산화, 이종산, 이하진, 전혜진, 정보라, 황모과 작가의 작품을 실었다.
―소설은 어떨 때 쓰시나요.
“열 받을 때요. 근데 청계천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받을 때 몇년 동안 와서 소리 지르는 아저씨가 있었는데요. 내용을 가만히 들어봤더니 박정희와 박근혜가 다 문제였고 그래서 아이들이 죽었다는 것이고 다 맞는 얘기였는데, 영남 방언으로 굉장히 크게 소리를 지르니까 사람들이 싫어했거든요. 늘 때가 꼬질꼬질한 와이셔츠를 입으시고 항상 손에 까만 비닐봉지를 쥐고 계셨거든요. 한겨울이 돼도 얇은 와이셔츠 하나만 입고. 되게 기운 차게 소리 지르시는 걸로 봐서 건강 상태는 괜찮은 것 같은데 추우신 거는 맞는 것 같았어요. (웃음) 2017년 3월에 탄핵 인용되고 나서 4월인가, 봄이잖아요. 깨끗한 와이셔츠에 제대로 닦은 구두를 신고 차림새가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 굉장히 멋있어 보이는 가죽 서류 가방에, 까만 비닐봉지는 그냥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것 같은데, 그것은 여전히 들고 오셨더라고요. 여전히 소리 지르셨는데 그 다음에는 못 뵀어요. 뭔가 한이 풀려서 더 이상 안 오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분이 잘 계시는지 무척 궁금해요.”
―이런 게 다 글감이군요.
“글감이라기보다는 궁금해요. 잘 계시는지.”
―작가님의 단편 ‘완전한 행복’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완성되는 복수가 있다고 하셨는데, <저주토끼> 소설집은 복수 뒤에도 여전히 남는 외로움과 고독에 대해 쓰셨잖아요. 세계관이 변한 걸까요?
“제가 보기에는 양쪽 다, 제 작품의 근간이에요.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저 새끼 죽었으면 좋겠다. 그 똘마니들도 다 죽었으면 좋겠다’. 복수 뒤에 외로운 건 있지만, 앙갚음한 뒤에 내가 왜 저딴 놈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만 했을까, 그 생각이 비로소 들기 시작하는 거잖아요.”
―젊은 여성작가로서 차별 받은 적이 있나요.
“제가 장르 작가로 활동하는 동안 거의 내내 연세대 강사였기 때문에 사실은 ‘초엘리트’라는 방패가 약간 있었어요. 차별의 기억이 하나 남는 게, 예전에 어떤 순문학쪽 출판사였는데 모임에 초청돼 갔더니 출판사 사람들이 모두 제 옆에 앉은 소설 등단한 러시아문학 전공자 남자 선생님에게만 말을 걸더라구요. 그 외에 제가 여성이고 치정 같은 이야기를 쓰니까 출판사 사장님이나 독자들이 가끔 성경험이나 성생활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어 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러면 안 되는데, 좀 그만하지.” (쓴웃음)
―영국 가 계실 때 열린 서울국제도서전 에스에프(SF) 세미나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렸어요. 현장 관객 대부분이 여성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나라나 다 책을 읽는 사람도 여자고 쓰는 사람도 여자고 책을 만드는 사람도 여자고, 거의 다 여자들이 하는 거 같아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도 64명 중에 과반 정도 될 수 있어요. 김보명, 김초엽, 천선란, 정소연, 황모과, 이종산 작가님도 그렇고 최근에 눈에 띄게 활동하시는 분들이 대개 여성 작가들이시고요.”
애도와 복수 사이의 삶
―최근 쓰신 칼럼 ‘차별 없는 생존을 향하여’를 보았는데, 감염병 위기를 넘는 한국 공동체에 대한 낙관을 말씀하셔서 조금 놀랐어요. 좌파가 사회를 비판하기는 쉽지만 긍정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그때 제 미국인 친구들은 제발 백신 맞자고 페이스북에서 캠페인하고 있었거든요. 한국에서는 백신 거부가 주류가 아니잖아요. 그리고 제가 최근에 들은, 웃기면서 어처구니 없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얘기가, ‘사주에 불이 없으면 화이자, 사주에 물이 없으면 아수트라 제네카를 맞아야 한다’는 거예요. (웃음) 결론은 백신을 맞으라는 건데, 둘 다 맞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지금 이게. 이거는 한국인의 저력인가? 아닌가?” (웃음)
―일상 속의 희비극을 잘 포착하시는 거 같아요. 작가님께 가장 강렬한 상실과 애도의 기억은 어떤 것일까요.
“양가 할머니들 돌아가셨을 때요.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가 그때 쓴 거였어요. 30대 초중반에 친할머니 외할머니 두분 다 돌아가셨는데, 특히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지셨거든요. 부모님이 두분 다 치과의사셔서 외할머니가 절 키워주셨어요. 제가 방학이라서 한국에 와 있을 때 쓰러지셔서 한 달 동안 누워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장례 치르고 나서 도로 미국으로 갔는데 나흘 동안 전혀 못 잤어요. ‘이러면서 사람이 미치는 건가’하고 별 생각이 다 들었는데, 내가 이렇게 이상해진 이유가 할머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여전히 괴로운데 괴로운 게 무섭지 않게 됐어요. 할머니를 애도하는 건 정상이잖아요. 저를 키워주셨고 그래서 슬프니까 애도하는 게 정상이다, 그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까 잠을 못 자도, 계속 울어도, 무섭지 않게 되니까 잠을 잘 수 있게 됐어요.”
―마지막으로 가족 이야기를 좀 하면, 결혼을 과감하게 하신 거는 놀랐어요. 제도 안에 들어가는 것이기도 한데.
“제일 결정적이었던 게, 남편하고 연애하는 관계가 됐을 때 남편 몸 상태가 굉장히 안 좋았던 적이 있거든요. 제가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니라 주워 들은 이야긴데, 동성혼 법제화 그런 논의들을 보니까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너무 충격이었어요. 이게 가부장제의 결혼이나, 제 부모님이 저를 구겨 넣으려고 했던 그런 식의 결혼이나, 재산에서 재산으로 이어지는 결혼이라는 사고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서. 남편하고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여자친구, 손님이 아니라 병실에 들어갈 권리를 얻어야겠더라구요. 그래서 결혼했어요. 병실 침대 밑에서 ‘내가 술 마시지 말라고 그랬잖아 말 안 듣고 말이야’, 그랬더니 집에 빨리 가라고 하더라구요.” (웃음)
남편 임 국장은 “내가 수술을 하고 몸이 안 좋아서 앞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 부커상 최종후보 소식을 전해들었고 안도감이 들었다”며 “정보라 작가는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공통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는, 열성조합원이자 삶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집 거실 화이트보드엔 두 사람의 빽빽한 스케줄과 함께 서로를 향한 격려가 각자의 방식으로 적혀 있었다.
정 작가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장난기도 많아 말하는 중간중간 유머를 빼놓지 않았다. 중요한 사건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분명하게 말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책임감이 강했다. 내년 초까지는 청탁받은 소설과 번역 마감을 하느라 틈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폴란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문학 행사에 초대받아 머잖아 긴 여행도 떠나야 한다. 국내 행사도 쉼없다.
인터뷰 며칠 뒤, 지난 11일 저녁 서울 마포구 카페 다다랩에서 연 북토크에서 정보라 작가를 다시 만났다. 콜롬비아, 러시아, 중국, 한국 등 다국적 독자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영어로 진행한 이날 북토크는 남미판 ‘정보라 소설집’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재능있고 유능한 번역가 카밀라 초가 스페인어로 세심하게 선별해 번역한 이 책은 환상적인 삽화를 곁들여 콜롬비아에서 출간된다. 대담자로 참석한 콜롬비아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는 사회참여적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정 작가를 “현실의 번역가”라고 일컬었다. 카밀라 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는 한국 문학의 이전 여주인공들과 달리 정 작가가 그려낸 여성들은 진취적이고 용감해 독자로서 매료됐다”고 말했다. 정 작가는 “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내 삶 속의 인물들, 할머니들, 실제 존재하는 여성들”이라고 답했다. 또 “지난 14년 동안 단편을 써왔는데 초기엔 마술적이고 몽환적인 이야기를 썼다면, 지금은 몹시 분노 가득한 상태가 되어 글을 쓴다”며 다시 한번 인터뷰 때 했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아시다시피, 현실은 픽션보다 훨씬 잔혹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요? 원고 마감이죠. 제게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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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7 13:15
나도 데모 잘하면 연구를 잘하게 될까? 아직까지 정보라 작가의 책을 하나도 못읽어봤는데, 올해 중으로 <저주토끼>와 함께 <여자들의 왕>을 읽어봐야겠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207041754001
“취미가 ‘데모’인 이유요?···그곳엔 평생 경험 못할 삶들이 있어요” (경향, 이영경 기자, 2022.07.04 17:54)
‘저주토끼’로 부커상 후보 오른 정보라
여성주의 판타지 <여자들의 왕> 출간
남성 중심의 서사 뒤틀어···싸우는 여성들의 화끈한 이야기
한국의 입장에서 2022년 부커상의 최대 성과는 무엇일까. 소설가 정보라의 ‘재발견’이다.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작 6편 가운데 이름을 올린 정보라의 <저주토끼>는 국내에서 2017년 출간됐다. 영국에서 먼저 ‘정보라’를 알아봤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히는 부커상이 <저주토끼>를 주목하면서 한국도 5년 만에 정보라를 진지하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수상하진 못했지만 정보라는 부커상에서 얻어올 수 있는 건 다 얻어왔다.
“수상은 기대하지 않았어요. 부커상을 한 나라에 두 번 준 게 미국밖에 없어요.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 <모래의 언덕>은 힌디어를 영어로 번역한 첫 소설이죠. 첫 번역의 위용을 이길 순 없어요. 작가들을 만나고 낭독회를 하면서 다른 작가들의 삶과 독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최근 ‘여성주의 판타지’ 소설을 엮은 소설집 <여자들의 왕>(아작)을 펴낸 정보라를 지난 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정보라는 2022년 부커상 최대 성과를 “한국 번역가의 승리”라고 말한다.
“부커상 최종 후보 여섯 작품 가운데 번역가가 백인이 아닌 사람은 안톤 허밖에 없었어요.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황석영의 <해질 무렵>도 영국인 백인 번역가가 번역했어요. 백인 번역가가 아시아 문학을 발굴해야만 인정받는 관행이 있었어요. 한국인 안톤 허가 그 벽을 깨고 1차 후보작에 두 작품(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정보라 <저주토끼>)을 올렸어요. 한국 번역의 승리입니다.”
정보라는 영국에서 뜨거운 인기를 맛보았다. 런던 대형 서점에 <저주토끼> 재고가 남아있질 않았고, 현지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정보라는 그 열기를 그대로 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정보라는 “부커상 광풍”으로 쏟아지는 청탁에 “내년 말까지 소설만 써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부커상 시상식 참여를 위해 방문한 영국에서 <저주토끼> 영국판 앞에서 포즈를 취한 소설가 정보라. 그린북 에이전시 제공
<여자들의 왕>은 이전에 썼던 여성주의 판타지 작품들을 모아놓은 소설집이다. 그동안 남성들 중심으로 쓰여왔던 전통적 서사들을 비틀어 여성이 주인공으로 전투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공주·기사·용’ 3부작이 대표적이다. 악한 용에게 붙잡혀 높은 탑에 갇혀 있는 공주,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출하는 서양의 전통적인 기사 이야기는 두 번, 세 번 비틀어진다. 칼을 차고 건들거리는 공주, 알고보면 착하고 다정한 용, 마녀의 마법에 넘어가버린 기사…. 하지만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다. 전통적 서사를 비틀며 주어진 각자 운명 속에서도 주체적 선택을 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정보라는 “공주를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바꿔보고 싶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여성 청소년이 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쓰다보니 주변의 왕비, 기사 등 인물들도 같이 성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자들의 왕’ ‘잃어버린 연대기’도 피 튀기며 전투하는 여성이 나오는 이야기로, 기존 남성 중심 서사를 뒤집는다. 정보라는 “어떤 장르에선 남자들만 나오고, 로맨스에선 여자들만 나온다. 여성은 연애, 남자들은 싸움질하는 모습으로 과대대표된 장르문학 관습을 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부터 ‘검은 시위’까지···세상에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이야기 들어
문제들이 선명해지고 해결책이 명확히 보여
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로서 장르문학 작가들의 영역 확장할 것
정보라는 부커상 이후 쏟아지는 관심을 “부커상 광풍”이라고 표현했다. ‘부커상 광풍’이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으니, 정보라의 ‘취미 생활’이다. 정보라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취미가 ‘데모’라고 말해왔다. ‘데모’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14년 2월 아는 교수님 부친상에 조문을 갔어요. 바로 옆에 부산외대 경주리조트 붕괴로 숨진 학생의 빈소가 있었죠. 학생의 영정을 본다는 게 충격적이고 괴로운 경험이었어요. 두 달 뒤, 세월호가 침몰했어요. 임시분향소에 갔는데 어린 학생들이 너무 많았어요. 세상이 끝나는 느낌이었죠. 대학생이 죽고 고등학생이 죽고…다 죽으면 어쩌지, ‘멸종’이란 공포가 다가왔죠.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세월호 유가족들이 7월 단식을 시작했을 때 달려가 서명받는 일을 도왔어요.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없었다면 세월호 농성장은 무너졌을 거예요. 유족들이 탈진하면 지하 농성장에서 쉬게 해주고 도와주면서 말 그대로 밑에서 받쳐주셨어요. 제 인생에서 너무 괴로운 시기였는데, 세월호 농성장에서 함께한 여러분들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때 농성장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사람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돈바스 전쟁이 시작되고 난 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반군을 사주해서 여객기를 격추해 잔해가 영토에 떨어진 사건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의 비협조로 4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네덜란드인들이 유럽의 백인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하자 그제야 잔해가 공개되고 러시아제 미사일의 파편이 발견됐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정보라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우리도 안다”고 답했다. “저는 서명을 받으면서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없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당시 경험한 감정의 진폭은 사람이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보라는 전장연이 진행한 ‘출근길 지하철을 탑니다’ 시위에 부커상 시상식 참여를 위해 영국에 가기 전까지 함께했다. 임종린 파리바게뜨 노조 지회장이 노조 탄압에 맞서 단식투쟁을 할 때도 일정상 함께하지 못했다. 부커상 시상식장에서 그는 “사람이 죽어가는데 화려한 데 가서 잘난 체를 하고 있을 때인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결혼 후 포항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이제 포항지역에서 일어나는 ‘데모’에 함께한다. 최근엔 포스코에서 사내 성폭력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 것에 항의하는 집회에 함께했다. 그는 “데모에 나가면 평생 경험하지 못할 여러 가지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뭐가 잘못됐고, 어떻게 해결할지 알 수 없었던 문제들이 선명해진다”고 말했다.
부커상 측은 <저주토끼>에 대해 “정보라는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를 활용해 현대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참혹한 공포와 잔혹함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데모’는 참혹하고 공포스러운 세상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의 장이자, 실천의 장인 셈이다.
‘부커상 광풍’에 휩싸인 그에게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대표인 정보라는 “소속 작가들을 비롯한 장르작가들의 지면을 넓혀보고 싶다. 제가 대표 임기에 있는 동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최대한 지원할 수 있도록 활동해 영역을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정보라는 자신을 ‘장르작가’라고 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나갈 테지만, 그 영역은 광대히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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