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올림픽 한복 ‘문화공정 논란’이 놓친 것들 (한겨레, 박민희, 2022-02-09)

새벽길 2022. 2. 11. 20:08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 한복을 입은 조선족 여성이 등장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박민희 논설위원이 가장 적절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고 본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0205.html
[아침햇발] 올림픽 한복 ‘문화공정 논란’이 놓친 것들 (한겨레, 박민희 | 논설위원, 2022-02-08 13:49)
올림픽에 등장한 한복을 두고 한국 문화를 중국 문화로 왜곡하려는 문화공정으로 부르는 것은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중국 국가 주도 행사에서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함께 오성홍기를 옮기는 장면에서 소수민족들이 저마다의 전통 의상을 입었는데, 조선족의 전통 의상은 당연히 한복이다.
미국을 향해 ‘올림픽을 정치화하지 말라’고 소리 높여온 중국이 소수민족 탄압을 정당화하고 중국의 위대함을 강조해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한 업적 쌓기에 소수민족을 ‘들러리’ 삼은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중국인들의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계속되고 있는 편파 판정은 ‘중국몽’의 편협함을 전세계에 생중계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박우 한성대 교수는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 조선족들은 경제 자유화, 북중관계 해빙, 한국과의 교류 등을 통해 많은 노력을 하면서 힘겹게 민족 문화를 복원해 왔으며, 조선족의 한복과 전통 문화는 한민족 공동체의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며 “1980년대 말 이후 중국 국가행사에서 전통복장을 입은 소수민족이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지금은 오히려 이 다양성이 다시 한가지 색상의 인민복으로 수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중국의 국력이 훨씬 강해지고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은 국내에선 한족 중심의 민족 동화정책을 훨씬 강압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대외적으로는 경제력을 지렛대 삼아 주변국에 ‘중국식 국제질서’를 만들어가려 하고 있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한국이 여전히 ‘동북공정’ ‘원조 논쟁’ 프레임으로 대응해서는 본질을 놓치거나 한-중 간 ‘혐오 전쟁’으로 사태만 악화시킬 수 있다.
국제사회와 함께 중국의 소수민족 억압에 대해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중국이 ‘대국-소국’ 질서를 강요하는 행위에는 단호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중국을 비판하는 동일한 잣대로, ‘조선족’ 중국 동포들을 향해 한국 사회가 보여온 차별과 혐오도 반성해야 한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정치인들은 중국의 애국주의와 강압적 통치가 결국 한-중관계에도 큰 위기를 초래하는 엄중한 문제라는 걸 직시하되, 맹목적 혐오에 올라타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중장기적 외교·안보 청사진 제시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혐오와 선동의 경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