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프랑스 총선 2차 투표 결과와 한국 정치에 대한 함의 (장석준, 프레시안, 2022.6.21)

새벽길 2022. 6. 23. 00:13

1차 투표 결과를 고려하면 프랑스 총선 2차 투표 결과는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탈리아 좌파처럼 거의 괴멸되지 않을까 싶던 프랑스 좌파가 이 정도라도 선전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번 총선을 계기로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 등이 함께 결성한 좌파연합 NUPES('새로운 생태-사회 인민연합')가 앞으로도 의미있는 정치적 행보를 하길 기대한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62018150788025
프랑스 총선…좌파의 부활, 극우파의 약진, 마크롱의 패배 (프레시안,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2022.06.21. 11:51:58)
[장석준 칼럼] 프랑스 총선 2차 투표 결과와 한국 정치에 대한 함의
지난 19일(현지시간) 대서양 양쪽에서 중요한 선거가 있었다. 콜롬비아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와 프랑스 하원의원선거 2차 투표였다. 그리고 두 선거 모두 좌파의 승리 혹은 성공이라 평가할 만한 결과로 끝났다.
콜롬비아에서는 좌파연합 '역사적 협약'의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50.44%를 얻어 우파 포퓰리즘 세력인 '반부패 공직자 동맹'의 로돌포 에르난데스 후보(47.31%)를 누르고 당선됐다. 콜롬비아는 2000년대 남미 좌파 붐 시기에도 홀로 우파가 집권하던 나라였으나, 최근 이 나라에서 격렬히 전개되고 있는 민중운동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이 새 정부를 꾸리게 된 것이다. 이로써 중남미는 노동자당 룰라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화되는 올해 말 브라질 대선이 끝나면 2000년대의 제1차보다 더 강력한 제2차 좌파 붐 시기에 돌입하게 된다.
한편 프랑스 총선에서는 '마크롱의 패배, 좌파의 부활, 극우파의 약진'이라 요약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신자유주의의 마지막 총아 노릇을 하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큰 타격을 입은 것이나 그간 지지부진하던 좌파가 부활한 것은 반길만하지만, 극우파가 의석을 무려 10배나 늘렸다는 소식이 이 모든 낭보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여러 모로 우리 시대의 징후와 그 속에 잠복한 다양하고 복잡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거 결과라 하겠다. 
최대 패배자는 마크롱의 여당 
프랑스 총선 결과는 좀 복잡하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다. 투표가 두 차례에 걸쳐 실시되는데다 최근 개별 정당만이 아니라 정당연합이 주요 행위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19일에 실시된 선거는 '2차 투표'이지 '결선투표'가 아니다. 결선투표라면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 1, 2위 후보만 놓고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는 1, 2위뿐만 아니라 1차 투표 득표율이 유권자(투표자가 아니라)의 12.5%를 넘는 모든 후보가 선택지에 오를 수 있다. 즉, 선거연합이 좌파와 우파로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을 경우에 2차 투표에서도 3명 이상의 후보가 경쟁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프랑스 정치 지형은 과거처럼 단순히 좌파와 우파로 나뉘지 않는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세력(선거연합 명칭은 '앙상블')은 유럽연합형 신자유주의에 합의하는 세력들의 대연합이다. 대선에서 비록 결선투표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바람을 일으킨 급진좌파 '불굴의 프랑스(이하 FI)'의 전 대선 후보 장-뤽 멜랑숑은 이에 맞서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 등과 함께 좌파연합인 NUPES('새로운 생태-사회 인민연합'이라는 뜻)를 결성했다.
그런데 이 두 선택지만 있는 게 아니다. 대선 결선투표까지 진출해 마크롱 대통령과 맞붙은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파 '국민행진'('국민전선'의 새 이름, 이하 RN)이 있다. 이들은 2010년대를 뒤흔든 유럽 극우 포퓰리즘의 원조이자 중추에 해당하는 세력이다. 그리고 오래 된 드골주의 우파의 잔여 세력('공화파'라 불린다)이 이끄는 '우파-중도파 연합(이하 UDC)'이 있다. 이번 프랑스 총선은 앙상블, NUPES, RN, UDC, 이 네 세력이 벌인 경합이었다.
최종 성적을 보면, 넷 중에서 최대 패배자는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여당 앙상블이다. 프랑스 하원은 총 577석으로, 과반이 289석이다. 2017년 총선에서 마크롱 지지 세력은 의석이 과반을 거뜬히 넘어 전체 의석의 60%에 이르렀다(350석). 덕분에 마크롱 대통령은 의회를 건너뛰며 독단적인 통치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앙상블은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251석밖에 얻지 못했다. 이조차도 단순다수대표제(소선거구제) 덕택에 실제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결과다. 마크롱 세력은 지난 총선 2차 투표에서는 49.11%를 득표했지만, 5년만에 득표율이 38.57%로 줄어들었다. 반면 이번에 앙상블이 확보한 의석 비중은 43.5%에 이른다.
앙상블뿐만 아니라 UDC도 처참한 결과와 마주했다. 5년 전에 20% 가까이 됐던 득표율이 이번에는 7% 수준으로 급락했고 의석도 120여 석에서 68석으로 반 토막이 났다. 하지만 앙상블도 단순다수대표제의 왜곡 효과 덕택에 득표율보다는 더 많은 의석 비중을 차지했다(11.78%). 아무튼 전반적으로 기존 신자유주의 합의에 가장 집착하는 두 세력이 심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인 앙상블이 내각을 꾸리려면, 십중팔구 UDC를 연립정부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아니면 과반연합이 없고 따라서 안정적인 내각을 꾸릴 수도 없는 헝 의회(hung parliament, 의원내각제에서 의회 내 과반을 차지한 단일 정당이 없는 상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마크롱 대통령은 이제, 제1기에 그랬던 것처럼 노란조끼운동 같은 예기치 않은 반란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황제처럼 군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1야당이 된 좌파연합, 10배 이상 성장한 극우파 
앙상블, UDC와 달리 좌파연합인 NUPES는 의석을 크게 늘렸다. NUPES에 참여한 정당들의 기존 의석을 다 합쳐도 70여 석밖에 안 됐었으나 이번에 NUPES는 135석을 확보했다. 해외 선거구에서 당선된 좌파 의원 18명까지 합치면 150석이 넘는 영향력을 펼칠 수 있다. 
물론 1차 투표에서 앙상블(25.75%)과 거의 같은 득표율(25.66%)을 기록한 뒤에, 제1당으로 부상해 멜랑숑을 총리로 하는 좌파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던 데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의석을 2배로 늘리는 게 그리 간단하거나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프랑스 좌파라면 말이다.
대선에서부터 이어진 멜랑숑 바람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위업이다. 대선 1차 투표에서 21.95%를 득표하며 2위 르펜 후보를 바짝 따라붙고 다른 좌파 후보들(가령 1.75%를 득표한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을 압도한 멜랑숑은 이 성과를 FI만이 아니라 좌파 전체의 부활을 위한 동력으로 활용하기로 결단했다. 그가 나선 덕분에 서로 도저히 함께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사회당, 공산당, 생태주의당이 한데 모였다. FI는 이 연합을 성사시키기 위해 자당의 유력한 후보 상당수를 희생하며 다른 정당들에게 지역구를 양보하기까지 했다. 
오랫동안 패배에 익숙해져 있던 좌파 유권자들, 노동계급의 만년 투표 기권층이 이 움직임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모처럼 기운을 얻었다. 이들이 선거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기꺼이 투표소를 찾은 덕분에 NUPES 참여 정당들은 가까스로 사망을 면하거나 아니면 힘찬 도약을 했다. 의석이 30석이던 사회당은 본래 몰락할 운명이었으나 28석을 유지했다. 점점 더 화석에 가까워지는 중이던 공산당은 10석에서 12석이 됐다. 의석이 단 하나뿐이던 신생 생태주의당은 단숨에 27석이 되었다. 
그러나 가장 급성장한 것은 역시 FI다. FI는 17석이던 의석을 66석으로 늘렸다. NUPES 전체의 약진을 이끈 힘이 멜랑숑과 FI에서 나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사실 NUPES가 2차 투표에서 얻은 31.60%가 의석에 그대로 반영된다면, 의석 수가 애초 여론조사 예측대로 170석 이상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앙상블과 UDC에게는 득표율보다 많은 비중의 의석을 안겨준 단순다수대표제의 왜곡 효과가 NUPES에게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했다. 그래서 NUPES는 해외 좌파 의원 18명을 합쳐도 26.51%의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FI가 사회당, 공산당에 덜 양보하고 자당 후보를 더 많이 냈더라면, NUPES 전체가 더 많은 당선자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FI의 그러한 치열한 노력이 없었다면, NUPES가 하원 내 제2블록이자 제1야당으로 부상하는 격변도 없었을 것이다. 
올해 대선 직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유서 깊은 프랑스 좌파 역시 저 강력했던 이탈리아 좌파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점쳤었다. 그러나 이 운명이 반전됐다. 길고 넓게 보면 노란조끼운동 같은 대중운동이, 짧고 좁게 보면 멜랑숑과 FI의 정치력과 의지, 결단이 운명을 바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좌파의 두 배 약진에 찬 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반대편에서 또 다른 드라마가 펼쳐졌다. 고작 8석이던 RN의 의석이 무려 89석으로 늘어났다. 극우 포퓰리즘의 원내 영향력이 10배도 넘게 늘어난 셈이다. 프랑스는 대선 결선투표와 총선 2차 투표를 통해 극우파의 제도정치 진입을 효과적으로 차단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이 신화가 완전히 무너졌다. RN은 이제 드골주의 잔당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지닌 하원 내 제3당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인상적인 기록은 오히려 RN의 일정한 패배를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르펜은 몇 달 전 대선 1차 투표에서 813만 명의 지지를 받았고, 결선투표에서는 무려 1328만 명이 르펜에게 표를 던졌다(41.45%).
반면에 총선 1차 투표에서 RN을 지지한 이들은 425만 명이었으며(18.86%), 2차 투표에서 이 수치는 395만 명으로 줄었다(17.30%).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특히 NUPES의 활약이 마크롱 등 신자유주의 주류 연합에 실망해 르펜에게 표를 던지던 유권자를 흡수하거나 적어도 이들의 르펜 지지 열기를 식힌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8석이 89석이 된 드라마는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 100여 명에 육박하는 RN 후보들이 2차 투표 관문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그만큼 극우 세력이 각 지역구의 대중들 사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RN의 떠오르는 스타 에드비지 디아스(34세)가 보르도 외곽 한 지역구에서 거둔 승리다. 그 지역구는 노란조끼운동의 거점 중 하나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시간을 국유화하라? 생태적 계획을 향해 
그렇기 때문에 주요 정치 세력으로 복귀하며 모처럼 반격의 기회를 잡은 좌파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마도 이 기회를 여는 데 가장 기여한 멜랑숑의 리더십에 미래를 위한 힌트가 담겨 있을 것이다. 
멜랑숑은 오랫동안 '분열'의 정치가라 손가락질 받았다. 사회당을 뛰쳐나와 FI의 전신인 좌파당을 창당하고 몇 년 전까지 자기 당이었던 사회당 후보와 선거에서 맞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분열'을 감행한 대상은 무엇이었던가? '노동계급'과 '사회주의'를 내걸며 실제로는 영미형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던 당이었다. 그는 이런 당과 분리해야 할 때에 과감히 분리함으로써 노동 현장과 거리의 노동 대중에게 돌아갔다. 
정반대로 멜랑숑은 또한 '통합'의 정치가이기도 하다. 몇 달 전 대선 때만 해도 핵발전소와 채식주의를 놓고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던 생태주의당과 공산당이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결성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 누군가가 이런 미래를 예언했다면, “농담하지 말라"는 핀잔이나 들었을 것이다. 벌써 2010년대 초부터 생태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노동운동과 생태적 대의 양쪽에 발 딛고 서 있던 멜랑숑과 FI가 나서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런 장면을 만들어낸 멜랑숑의 생태사회주의는 결코 겉멋만 든 표어나 설익은 이념이 아니다. 총선 유세 막판에 멜랑숑은 “시간을 국유화하자"는 낯선 이야기를 꺼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시간을 국유화한다니, 무슨 말인가? 지금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에서는 단기라는 시간 지평이 인간과 자연의 긴 시간을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자본의 지배에서 시간을 되찾자는 것이 시간 국유화론이다. 멜랑숑은 그것의 더 정확한 표현이 '생태적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 리듬을 인간과 자연의 리듬에 맞추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헌법상 하원의원이 아니어도 총리가 될 수 있다며 멜랑숑은 이번에 의원에 출마하지 않은 채 전국을 돌며 NUPES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이제 더는 의원이 아닌 그는 더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대중들 곁에서 보내야 할 것이다. 이는 마크롱 세력만이 아니라 극우파와도 대결해야만 하는 좌파연합 지도자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무대다.
분열해야 할 대상과 분열할 줄 알고 통합해야 할 때에 통합을 성사시켜내는 정치, 의회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스스로 찾아다니는 정치, 어느 철학자나 사회과학자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내다보는 정치. 이런 정치가 사망 일보직전의 좌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것은 결코 프랑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621002200085?input=1195m
프랑스 멜랑숑 좌파연합 제1 야당 등극…분열 않고 유지될까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2022-06-21 02:59)
통합엔 반대…EU·핵에너지 등 주요 사안 이견 많아
프랑스 총선에서 제1 야당으로 도약한 좌파연합 '뉘프'가 분열의 길을 피해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을 받고 있다. 장뤼크 멜랑숑(70)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가 이끄는 '뉘프'는 전날 총선 결선에서 131석을 얻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중도연합 '앙상블'(245석)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뉘프는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녹색당(EELV), 프랑스공산당(PCF), 사회당(PS) 등으로 구성됐다. 지리멸렬한 행보를 보이던 좌파 정당들은 25년 만에 손을 잡고 총선에서 성과를 냈다.
멜랑숑 대표는 두 달 전 대선에 출마해서 3위로 낙선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득표한 데 이어 이번엔 좌파연합을 주도하며 두 번째 돌풍을 일으켰다. 
대선 직후만 해도 마크롱의 중도 여권이 안정적으로 과반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좌파연합의 부상으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멜랑숑 대표는 선거 다음 날인 20일 한 걸음 나아가 '뉘프' 내 4개 정당의 통합을 제안했다. 단독 야당으로 확실히 자리 잡자는 것이다. 현재 '뉘프'가 여러 당의 연합인 데 비해 극우 성향 국민연합(NR)은 제3당이지만 단일 정당이다.
그러나 '뉘프' 내 정당들은 즉각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회당 측에선 "좌파는 (단수가 아닌) 복수이며, 의회의 다양성을 보여준다"고 말했고 녹색당과 공산당도 반대했다. 
게다가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지금의 연합이 유지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반(反) 마크롱'으로 뭉치긴 했지만, 정당별로 유럽연합(EU)이나 핵에너지 등 굵직한 사안에서 입장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독일 마샬 펀드의 연구원 마틴 쿠언세즈는 AFP에 "녹색당과 사회당에는 마크롱과 협업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뉘프'의 한 지지단체는 7월 5일 정부 불신임 투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사회당은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를 내보내는 계획은 좌파연합의 공통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한편으론 의회에서 89석을 차지한 국민연합 견제 필요성 때문에 좌파연합 자체가 깨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좌파연합은 내부 갈등을 조율하고 단합을 도모하기 위한 조정 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0682
71세 외골수 거북이가 변했다…200만 열광 '핵인싸' 된 멜랑숑 [후후월드] (중앙일보, 박소영 기자, 2022.06.21 05:00)
 "마크롱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강력한 좌파 상대가 나왔다."(가디언) 
지난 19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자리매김한 좌파 연합 '뉘프(NUPES)'의 장뤼크 멜랑숑(71)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에 대한 평가다. 이날 하원 결선투표 집계 결과 뉘프는 전체 577석 중 131석을 얻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 중도 연합 '앙상블'(245석)의 과반의석을 저지하고 원내 의석수 2위를 차지했다. 멜랑숑 대표는 "전례가 없는 결과다. 마크롱 대통령의 완전한 패배"라면서 "우리가 프랑스의 역사적인 반란과 개혁의 부흥에 새로운 얼굴이 됐다"고 말했다.
틱톡 팔로어 200만명…젊은 세대에 인기 상승 
멜랑숑 대표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뉘프를 이끌었다. 뉘프는 LFI를 중심으로 사회당·녹색당·프랑스 공산당이 뭉친 좌파 연합이다. 사회당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동맹이 될 뻔했으나 막판에 극적으로 합류하면서 바람몰이를 했다. 앞서 지난 2017년 하원 총선에선 멜랑숑 대표가 좌파 연합을 단호하게 거부해 LFI는 17석에 그쳤다. 이번에는 고집을 꺾고 좌파를 한데 모았고 자신의 정당 LFI도 뉘프 안에서 72석이나 차지하는 ‘깜짝 결과’를 얻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멜랑숑 본인의 ‘이미지 변신’도 주효했다는 평가다. 올 대선까지 세번째 대권에 도전했던 그는 표를 위해 고리타분한 좌파 이미지를 확 바꿨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마오쩌둥 인민복 스타일 재킷 대신 날렵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다. 이전에 내세웠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와 EU(유럽연합) 재협상 등 거시적인 담론보다 환경과 생활비 등에 집중하면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젊은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소셜미디어(SNS) 세계에서 '핵인싸'로 통한다. 앞서 2017년 대선에서 SNS 활용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올해는 10대들의 놀이터로 꼽히는 틱톡에 매진해 팔로어를 200만명 이상 늘렸다. 거침없는 달변가인 그의 연설 일부만 1분 내외로 편집해 올리는데 감각적인 랩 등으로 배경음악을 사용해 인기를 끌고 있다.
외골수 거북이, 두 번 창당 끝에 좌파 리더 우뚝
멜랑숑 대표는 1951년에 아프리카의 모로코 탕헤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 아버지는 우체국 국장이었다. 부모의 이혼으로 11세에 어머니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프랑슈콩테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교직을 이수했다. 학생 운동에 참여하면서 좌파에 빠졌다. 졸업 후 고교에서 프랑스어 교사로 일하다, 1976년 25세에 사회당에 입당했다. 열렬한 사회당원이었던 그는 1986년 35세에 프랑스 최연소 상원의원이 됐다.
그는 외골수 좌파를 자처하며 ‘아웃사이더’ 행보를 고집했다. 1969년 출범한 프랑스 대표 정당인 사회당이 지나치게 우경화됐다며 2008년 탈당하고 좌파당을 창당하며 급진좌파 정치인이 됐다. 2012년에는 피델 카스트로(쿠바)나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같은 중남미 권력자들에게 매료됐다. 2016년에는 좌파당을 나와 LFI를 세웠다. 그리고 이번에 좌파 연합을 이끌면서 아웃사이더에서 리더가 됐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멜랑숑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를 확보하면 "총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보였다. 과반의석으로 국정운영 주도권을 잡고 마크롱 대통령을 압박해 자신을 총리로 지명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에 못 미치는 결과에 따라 총리가 되기는 어렵다는 것을 멜랑숑 대표가 암묵적으로 인정했다고 BBC는 전했다.
대신 이번 선거 결과를 토대로 정치적 입지가 공고해지면서 또 한 번 대권을 노려볼 기세다. 그는 이날 "한순간도 이 나라를 이끌려는 야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국민이 내 헌신을 원한다면, 숨을 거둘 때까지 대열의 선두에 서겠다"고 했다. 멜랑숑 대표가 2027년 대선에 나온다면 76세가 된다. 앞서 지난 세 번의 대선에서 멜랑숑의 득표율은 11%(2012)→19%(2017)→22%(2022)로 계속 상승했다. 특히 올해는 1차 투표 당시 2위로 결선에 오른 극우파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에 불과 1%가량 뒤졌다. 그는 느리지만 자신의 길을 간다며 스스로를 '현명한 거북이(wise turtle)'라고 부른다.
반면 불같은 성격에 설화도 잦다. 폴리티코는 그의 측근을 인용해 "미치광이에 편집증적인 면모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9년 불법 정치자금 조성 혐의로 압수수색을 나온 검사와 경찰관을 밀며 "내가 대표다. 이런 식으로 나를 대하면 안 된다"고 고함을 쳐 기소된 적도 있다.
멜랑숑 대표에게 순풍이 계속 불지는 미지수다. 그가 내놓은 공약이 실현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뉘프는 은퇴연령의 하향(62세→60세), 최저임금 인상(한 달에 1500유로·204만원), 생필품 가격 동결, 기후변화 방지 등을 공약했다. 프랑스24는 "좌파 연합이 나름의 승리를 거뒀지만 이제 동맹이 버틸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사회당과 녹색당이 모든 문제에 대해 LFI를 완전히 지지할지는 미지수"라고 전했다.
 
https://vop.co.kr/A00001615005.html
멜랑숑의 프랑스 총선 쾌거, 중도화 거부하고 대중과 함께 싸웠다 (민중의 소리, 정혜연 기자, 2022-06-21 16:36:27)
19일의 프랑스 총선 2차 투표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범여권이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마크롱의 중도 르네상스당을 포함한 여권 ‘앙상블’의 의석수는 245석으로 전체 577석의 과반인 289석에 크게 미달해 불과 두 달 전 재집권한 마크롱의 국정 운영에 비상이 걸리게 됐다. 반면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연합 ‘뉘프(NUPES)’는 131석을 얻어서 제1 야당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의석수만큼 의미 있는 것은 멜랑숑이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대표적 지도자로 우뚝 서며 범좌파를 아우르고 이끌게 됐다는 점이다. 예견됐던 멜랑숑의 쾌거를 총선 전날 이미 설명한 자코뱅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Jean-Luc Mélenchon Is Popular Because He Confronts the Powerful
https://jacobin.com/2022/06/french-elections-jean-luc-melenchon-left-socialists
자기가 이끄는 좌파연합이 총선 1차 투표에서 중도여권과 0.1%P의 득표율 차이로 사실상 동률을 이뤘기 때문에 장뤼크 멜랑숑은 2차 투표까지 타협적인 입장을 보일 만도 했다. 2차 투표까지 간 선거구의 절반 이상에서 멜랑숑의 좌파 동맹세력이 재선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신자유주의 에마뉘엘 마크롱의 지지자들과 맞붙었다.
그러나 멜랑숑은 2차 투표 후 자신이 총리가 돼 마크롱과 연립정부를 꾸리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선거운동에서 마크롱과 전혀 타협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앵주미즈)’의 대표인 멜랑숑은 오히려 이번 총선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두 비전이 충돌한다고 강조했다.
멜랑숑은 지난 화요일의 툴루즈 유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멜랑숑은 “파산한 신자유주의 질서와 갈라설 때가 됐다. 신자유주의는 자정 능력이 없는 위험한 제도이다. 코로나부터 기후 재앙까지 늘 소수에게 이익이 될 방법을 찾아내려하기 때문이다”라고 역설했다.
멜랑숑은 “자본주의의 단기적인 시각이 인간 및 자연과 맞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은 끊임없이 단기적인 방법으로 장기적인 지배를 도모하고 단기적인 수익을 통해 거대한 부를 축적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연합의 생태학적 계획 프로그램은 “생산의 리듬을 자연과 조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합리적인 생산 통제가 현재의 혼란을 대체하려면 특수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원자재인 시간을 국영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논리와 표현은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적 논쟁의 일반적인 내용보다 확실히 고차원적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흔치 않다. 물론 프랑스에는 영어권에는 없는 장시간의 정치토론 TV 프로그램들이 있다. 멜랑숑이 프랑스의 정체성, 치안, 경제, 동물복지 등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을 황금 시간대에 3시간 넘게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멜랑숑은 예를 들어 소음공해가 자연의 생명체에 미치는 영향 등 일상적인 관심사와는 동떨어진 질문을, 여가시간이나 마크롱이 밀고 있는 정년 연장에 대한 반대와 같은 더 일차원적이고 물질적인 이슈와 연결하는 데에 유독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바로 여기에 하나의 정치운동으로서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가치가 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국민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생산과정과 사회를 지배할 대안적인 가치와 연계하면서 두려움 없이 방어해 왔고, 선거 경쟁력이 커지면서 마침내 이를 주류 의제로 자리잡게 했다.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오랫동안 프랑스의 양대 정당 중 하나였던 사회당도 급진적인 표현을 사용해 활동가들을 동원할 때가 많았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는 늘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멜랑숑이 커리어 초반에 합류했던 프랑수아 미테랑 캠프도 자본주의와의 단절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권 장악후 미테랑은 1980년대 초반에 긴축으로 돌아섰다. 프랑수아 올랑드도 마찬가지였다. 올랑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직후 금융권을 ‘적’이라 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노동권을 앗아가고 젊은 마크롱을 경제장관으로 임용했다.
2016년에 창당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확실히 주류 사회당과 다른 길을 걸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창당 이래 제도정치권과 옛 사회당류의 사회적 자유주의와 줄곧 대립각을 세워왔다.
(정부는 국민투표 결과를 무시하고 조약을 체결했지만) 2005년 유럽 헌법 조약 반대 투쟁을 승리로 이끈 후 멜랑숑은 사회주의자들과 주류 정치를 떠나 짓밟힌 프랑스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며 새로운 정치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길이 항상 쉽지는 않았다. 지방정부에 뿌리를 깊이 내린 기존의 좌파정당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멜랑숑을 거부하고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와 많이 충돌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폐지하려는) 대통령제 때문에 선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정치시스템과 2012년, 2017년, 2022년 대선 출마 덕분에 멜랑숑의 비전과 정책에 대한 지지는 점점 커졌다. 대선 득표율이 11.1%에서 출발해 19.6%, 22.0%로 계속 올라 좌파와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비판을 잠재우고 다양한 대중과 습관적 투표 불참자들, 그리고 좌파세력의 대부분을 결집시켰다.
그 결과 ‘이슬람 좌파주의’와 ‘극단주의’라는 여당의 공격이 거세졌음에도 멜랑숑은 마크롱의 중도파와 르펜의 극우와 함께 프랑스의 3대 정치 세력 중 하나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자리잡았다.
4월 대선 이전까지만 해도 멜랑숑의 부상이 보장되지 않았다. 실제로 대가 약한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강성인 멜랑숑과 다른, 사람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대선 후보를 찾았다. 그리고 멜랑숑의 지지도가 급상승하자 녹색당을 선두로 소수 연성좌파 정당들은 ‘푸틴에게 너무 우호적’이라고, 사회주의자들은 ‘너무 반기업적’이라고 멜랑숑을 몰아붙이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다.
이런 좌파들을 압도해 그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따르게 만든 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큰 성과이다. 5월 결성된 좌파연합 ‘뉘프’는 최소공약수로 여러 정당을 모아 정책을 취합한 수준의 조직이 아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확실하게 이끌고 있는 조직이다. 뉘프 후보의 절반 이상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출신이고, 뉘프의 정책은 압도적으로 멜랑숑의 대선공약에 기반하고 있다. 뉘프는 이제 좌파정권을 방해하는 EU 조약에 불복종하겠다고 굳게 약속할 정도로 대담해졌다.
좌파의 균열
물론 이 과정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올랑드 전 대통령도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뉘프에 대항한 ‘반대파’ 연성좌파 중 2차 투표에 진출한 후보는 577개 선거구에서 11명에 불과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뉘프에서 좌파의 기존 분열이 다시 수면에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검문에서 멈추지 않은 운전자가 경찰의 총을 맞고 사망하자 멜랑숑은 “경찰에게 응하지 않으면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하나”라며 경찰을 비난했지만, 경찰노조는 경찰을 옹호했고 공산당의 파비앙 루셀은 “경찰이 살인을 저지른다”는 멜랑숑의 말에 강력하게 반발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지난해 의사당 앞에서 벌어진 경찰노조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뉘프 유일의 정당이고, 이슬람포비아나 인종차별 등에 대해서도 훨씬 강력한 입장을 취한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지도자 그룹의 고립성, 내부 민주주의의 결여, 다른 좌파 세력에 대한 우월성 때문에 비판을 자주 받지만, 이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점이기도 하다. 다원주의를 위한 다원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늘 자기의 비전과 정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시기에 따라 강조 지점이 변하기는 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대통령직 폐지, NATO 탈퇴, EU 탈퇴 등을 주장하며 늘 변혁적인 목표를 내세웠고, 유럽의 규정보다 자신의 공약을 우선시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의 모든 매체로부터 공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신을 굽히지 않는 모습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자기의 비전과 정책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영국에서 비슷한 언론 공격을 줄곧 받았던 제레미 코빈은 당조직과 그가 제거하지 않고 내버려둔 반대파 등 노동당 내부의 반발로 결국 무너졌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코빈의 2019년 패배 이후 멜랑숑은 브렉시트나 과장된 반유대주의에 대해 당내 반대파와 ‘공통지점’을 찾으려 했던 코빈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 내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정치적 논리를 만들어내면 패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도, 그것의 해결책도 대중 속에 있다. 대중의 기대, 대중의 의지, 대중의 필요. 코빈은 그 속에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아냈어야 했다. 그러나 코빈은 반대로 당내 기득권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찾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아울러 “코빈이 정적들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하자 코빈을 지지할 수 있었던 사람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좌파세력
이런 의미에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대중적 기반으로 당내 기득권과 그들의 조직을 압도함으로써 다른 좌파대중운동이 달성하지 못한 것을 이뤄냈다. 스페인에서 포데모스는 30년 가까이 양당체제의 주축이었던 사회노동당의 하급 파트너이고, 미국에서는 민주사회주의 의원들이 기득권 주류인 민주당 내에서 목소리만 내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키어 스타머가 당수가 되자 노동당내 좌파가 목소리조차 못 내고 있다. 이에 반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스펙트럼이 넓은 좌파세력 모두를 정치적으로 아우르고 이끌게 됐다.
앞서 말했듯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도 물론 많았다. 프랑스 사회적 자유주의를 만든 주역 중 하나인 올랑드 전 대통령은 뉘프가 공산주의를 주장하고 반기업적이며 친러시아적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발이 큰 만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숫자와 열성은 점점 커졌다. 특히 놀라운 것은 2007년 사회당 대선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이나 마크롱 진영의 공격으로부터 멜랑숑을 간간히 방어한 일간지 리베라시옹 등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몇몇 지도자와 매체가 자석에 끌리듯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를 따르게 된 것이다.
프랑스 좌파가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도 이것이다. 더 급진적인 리더십이 자리를 확고히 잡았다. 12일 총선 1차 투표에서 뉘프는 26%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것이 범좌파가 얻은 2007년의 36%, 2012년의 40%는 물론이고 2017년의 28%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좌파는 분명히 더 강해졌다. 좌파가 내세우는 정책과 좌파가 대변하려는 유권자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 프랑스 좌파를 주도했던 사회당과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녹색당은 지지하는 사람들의 구성이 달라져 중상류층이 급증했지만,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지지자들은 보다 수평적이고 실업자와 청년들의 급증이 눈에 띈다.
아직도 어려운 싸움이 많이 남아 있다. 총선 1차 투표에서 르펜의 극우세력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강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주요 도시들을 제외한 지역에서 더 많은 블루칼라 지지자들을 확보했다. 멜랑숑이 이끄는 운동이 아직 지역적으로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고, 주요 선거 때가 아닌 시기에도 대중을 동원할 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노력으로 신자유주의 중도파와 극우의 대결로 굳어질 뻔한 프랑스 정치에 변혁정치가 다시 주요 의제가 됐다. 하지만 투표율이 겨우 50%인 선거에서 4분의 1, 혹은 3분의 1을 득표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19일 총선 2차 투표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지금까지의 변화만으로도 방향은 올바르게 잡혔다. 다음 의회에는 좌파 의원들이 대규모로 유입될 전망이다. 그 중에는 22개월 간의 호텔업계 파업을 이끌었던 청소노동자 레이첼 케케나 기니 출신의 직원이 출국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11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인 제빵사 스테판 라바클리가 있을 수도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런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정치적 전투력, 강자에 맞서겠다는 결의, 그리고 적대세력에게 지도자나 정치적 의제를 바꿀 힘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로 그 기반을 다졌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지난 수년 간 좌파 안팎으로부터 독단적이고 종파적인 구시대적인 세력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멜랑숑 세력은 정치적 투지로 유권자에게 진정성을 입증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바람이 19일에도 이어진다면,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자기 정책에 맞게 현실을 변화시켜나가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