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의 전기자동차 보급과 관련된 경향신문 기사를 보다가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본 미래' 기획기사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전기차, 재생에너지,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기획기사이다. 앞으로 더 나올 기사들도 기대된다.
경향신문은 2022년 신년기획 시리즈로 ‘탄소중립 제주, 미리 가본 미래’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그동안 제주가 추진해온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의 과정과 결과가 나라 전체의 탄소중립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짚어보는 기획이다.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의 두 축은 ‘에너지 전환’과 ‘전기차 보급’이다. 현재 정부가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탄소중립 정책과 거의 같다. 2020년 현재 제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6.2%로 육지(약 6%)에 비해 훨씬 높다. 전기차 100대당 충전기 97개라는 풍부한 인프라도 갖추고 있다. 그런데도 제주의 총 탄소배출량은 탄소배출 없는 섬을 선언한 2012년에 비해 그다지 줄지 않았다. 순배출량 기준으로는 조금 줄었지만, ‘2030 탄소제로’를 달성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https://www.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2201010730001
카본프리아일랜드의 카본발전소들 (경향, 강연주·김한솔 기자, 2022.01.01 07:30)
■‘카본 프리 아일랜드’라면서요
제주 CFI 계획대로라면 화석연료 기반 발전원들의 도입은 중단하거나 기존에 있던 것도 폐지하고, 풍력과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만 더 확대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4년 새 제주에는 228㎿급의 제주복합화력발전소 1, 2기와 146㎿급의 남제주복합화력발전소가 새로 지어졌다. 모두 화석연료인 LNG 발전소다.
재생에너지 100%를 목표로 했던 제주에 LNG 발전소가 새로 들어선 주된 이유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10년대 들어 제주의 유입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필요한 전력량 또한 가파르게 늘었다.
■깨끗하지만 통제가 어려운 재생에너지
제주는 현재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분류한 재생에너지 보급 총 6단계 가운데 3단계 정도로 평가받는다. 재생에너지 선진국 수준의 보급률이다. 그런데도 전영환 홍익대 전기공학부 교수가 제주의 현 상황을 ‘어렵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전력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단순히 재생에너지만 늘려왔던 제주 전력체계의 문제가 점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의 연료인 바람과 햇빛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어 발전량을 예측하기 어렵다.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 필요한 것보다 많은 전력이 생산되는가 하면, 어떤 날은 흐려 필요한 것보다 적은 전력이 생산된다. 석탄과 LNG 발전이 ‘안 깨끗하지만 통제하기 쉽다’면, 재생에너지는 아직까지는 ‘깨끗하지만 통제가 어려운’ 에너지다.
제주에서 풍력발전 사업을 하고 있는 A씨는 “출력제한 때문에 재무모델이 깨지고 있다”며 “장기화되면 파산”이라고 말했다. 김승완 교수는 “출력제한의 문제는 재생에너지 사업의 리스크를 키운다는 것”이라며 “손해를 입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1년 동안 날 손해가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했다.
■탄소중립 한다면서 석탄발전소 짓는 육지
육지의 문제는 재생에너지 보급은 더딘데, LNG도 아닌 석탄발전소가 새로 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제주의 3분의 1가량뿐인 육지에는 7기의 새 석탄발전소들이 최근 가동을 시작했거나 2~3년 안에 들어설 예정이다.
■에너지 덧셈만큼 중요한 화석연료 뺄셈
에너지 전환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석탄에서 재생에너지로 발전원을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있는 석탄발전소들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퇴출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2030년까지 30.2%, 탄소중립 달성연도인 2050년에는 60.9~70.8%로 목표를 잡고 있다. 2030년에도 석탄발전은 여전히 국내 전력원의 21.3%를 차지한다. 2034년까지 폐쇄되는 석탄발전소들 중 90% 이상은 LNG 발전소로 대체된다. ‘가교’로서의 LNG 역할을 넘어 신규 LNG 발전소와 새 석탄발전소들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맞지 않다. 국제적 흐름과도 배치된다.
기후위기 상황이 악화되며 단위 열량당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연료인 석탄 퇴출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전 세계 금융사들이 석탄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거나 중단했다. 한국도 2020년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선언한 뒤 석탄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과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은 중단됐다. 이 모든 변화의 와중에도, 이미 허가가 난 신규 발전소들에 대한 공사는 계속 진행됐다. 이미 승인된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그에 따른 손해를 보상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들은 지금이라도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부처와 국회 모두, ‘이미 승인된 사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핵심은 화력발전의 ‘질서 있는 퇴장’
제주의 에너지 전환이 육지에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화석연료 기반으로 짜인 기존 전력 계통을 계속 유지한 채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원전은 에너지 전환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원전의 위험성과 폐기에 드는 경제·사회적 비용 등은 차치하고라도, 원전은 재생에너지의 유연성에 대응하기 어려운 경직된 발전원이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에 맞춰 실시간으로 가동을 중단하거나 발전량을 줄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화력발전의 ‘질서 있는 마이너스(퇴장)’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 퇴출하는 화력발전소에 대한 법적 근거와 보상책이 마련돼야 한다. 재생에너지가 ‘불안정하다’는 꼬리표를 떼는 것도 급선무다.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늘어나는 전력소비량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전까지는 늘어나는 전력 소비에 따라 전력 공급량을 늘려왔다면, 이제는 소비가 변화하는 전력 공급량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전영환 교수는 “전력의 공급과 소비 부문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인상된) 투명한 전기요금정책이 필요하다”며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위해서도 전기요금제도를 비롯한 기존 전력시장제도의 개선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1060600015
중앙 중심 에너지 정책에 묻힌 지역 주민들의 삶 (경향, 김한솔·강연주 기자, 2022.01.06 06:00)
당신의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에너지 전환은 ‘탄소중립’의 핵심이다. 현재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절반가량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그동안 에너지 전환 문제는 석탄에서 태양광, 풍력으로의 전환 등 ‘발전원의 변화’에만 국한돼 다뤄졌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원의 전환뿐 아니라 새로운 발전원이 어느 지역에 들어서는지, 그 과정은 적절한지, 생산된 전기는 누가 사용하게 되는지까지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를 넘어, 사회 체제를 재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땅에 발전소, 농민들의 분노
에너지 전환, 발전원 변화에 국한
어디에 어떻게는 논의에서 빠져
해 잘 들고 넓고 평평한 전남으로 태양광 발전 외지 사업자들 몰려
임차료 내며 농사짓던 농민들 본인 뜻과 상관없이 생업 그만둬
탈농촌 가속·도농 격차 심화 우려
■재생에너지 찬성하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전력 생산 는 만큼 변전소 등 필요
지역 주민들 송전탑 반대 운동도
농민들이 재생에너지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탄소중립 정책에 동의하고, 원전 같은 것보다는 태양광이 더 훌륭한 에너지원이라고도 생각해요. 창고 부지, 축사 부지, 고속도로 유휴지 같은 곳에 하는 것에 천 번, 만 번 동의해요. 그런데 지역민들의 생산 수단을 싸그리 무너뜨리는 것은 반대한다는 거예요.” 해남의 이병연씨가 말했다. 원래 태양광 시설 설치가 가능한 농지는 농업보호구역이나 농업진흥구역 외의 농지로, 농지 전용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하지만 2019년 법이 개정되면서 농업진흥구역 내의 염해 간척지에도 태양광 설치를 할 수 있게 됐다. ‘지표면으로부터 30~60㎝를 팠을 때 염도가 5.5dS/m인 곳이 90% 이상일 경우’라는 기준이 있긴 하지만, 농민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전남 지역 곳곳에서는 태양광 반대운동뿐 아니라 송전탑 반대운동도 함께 전개되고 있다. 새로운 발전원이 들어서 더 많은 전력이 생산되면, 그 전력을 실어나를 변전소와 송·배전망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에너지 전환인가
에너지 정책, 중앙집중식으로 추진
문제 생겨도 지자체가 해결 어려워
곡물 자급률이 21%(2019년 기준)밖에 안 되는 나라에서, 농사짓는 땅을 농사 외 용도로 사용하게 한다는 우려와 함께,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은 ‘도시에서 온 외지인’뿐이라는 불만도 있다. 정부에서는 일부 지역의 ‘주민참여형 재생에너지 사업’을 긍정적 사례로 홍보하지만, 현실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도 지금의 재생에너지 정책에는 ‘지역 감수성’이 빠져 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유럽에서는 이런 갈등이 별로 없었다. 농민과 지역의 필요에 의해 에너지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며 “에너지 가격 자체가 비싸니까, 사서 쓰는 것보다 내가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해외선 태양광이나 풍력을 농민이나 지역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까지의 에너지 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 주도의 ‘중앙집중식’으로 추진돼 왔고, 이 과정에 지자체가 개입할 여지는 적었다. 예컨대 보성군은 송전망 건설 예정지역을 관광코스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던 중 갑자기 해당 지역에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있다 보니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방 생산·도시 소비 구조, 더는 안 돼
전력 소비, 수도권 비중 높은데
발전원 대부분은 지방에 세워져
정부도 ‘수급 불균형 심화’ 인지
지역별로 들어와 있는 발전원의 규모와 전력 사용량을 비교해 보면, 전기가 주로 생산되는 곳은 지방이고, 소비되는 곳은 도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승완 충남대 교수는 “재생에너지 친화적인 사람들도 ‘전국에 송전망을 아주 신속하게 깔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서울의 관점”이라며 “지방의 관점은 더 이상 서울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에 대규모 발전원을 집중적으로 짓고, 그렇게 생산한 전력을 대도시가 소비하는 시스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최근 10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 공급을 하기 위해 들인 송전망 등 인프라 투자 지출액은 2600억원이 넘는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에서는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 공간을 일치시키는 지역별 소규모 분산 에너지 시스템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지역이나 인근에서 에너지를 생산·공급하는 것이다. 올해 산업부 업무계획에도 ‘안정적 전력망과 분산 에너지 시스템 구축’이 있다. 하지만 관련 법인 ‘분산 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안’(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내가 쓰는 전기는 내가 만든다
‘수요지 중심 생산’ 법안 국회 계류
대형 발전소 줄여 탄소중립 하려면 시민들도 ‘에너지 자립’ 동참해야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도 노력해야 하지만, 시민들도 내가 쓰는 전기는 내가 만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 박사는 ‘RE100 시민클럽’ 같은 시도를 좋은 예로 든다. ‘RE100’은 기업이 자기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하겠다는 선언으로, 현재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기업의 RE100처럼 시민들도 내가 쓸 전기는 내가 만드는 ‘에너지 자립’을 하자는 것이다.
태양광발전협동조합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출자금을 모아 건물 옥상이나 유휴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짓는 식으로 에너지 자립을 하는 것이다. 전국에 100여개가 있다. 오수산나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사무처장은 “소비자들이 요구하지 않는 한 기업의 RE100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소비자들이 ‘RE100 해라, 우리가 그런 상품을 사겠다’고 해야 한다”고 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시민들이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결국 ‘좋은 에너지 정책’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에너지 전환에는 누군가의 부담이나 희생이 따르고, 그걸 나누어 지고 가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시민들이 인식해야 하는 거죠. 그럼 올바르고 공정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겠죠. 모든 사람이 에너지 문제에 참여할 때 책임있는 에너지 정책도 만들어지고 정책 수용성도 높아지게 됩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1130600045
육지보다 10년 앞선 제주의 전기차 시대…내연차도 늘어 탄소중립 더 멀어졌다 (경향, 박미라·박은하 기자, 2022.01.13 06:00)
전기차 충전기, 돌하르방보다 많다는데
■돌하르방보다 더 흔한 전기차 충전기 ‘2만대’
전기차 비중 6.3%로 전국서 최고
과잉 전력 충전 땐 ‘포인트’ 지급도
‘해·바람 충전’ 등 인프라 개선에도
보조금 낮아지고 차 가격 오르면서
전기차는 제주에서도 여전히 소수
어느덧 제주의 도로에서 ‘하늘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개인주택과 상가, 관광지, 관공서 등 곳곳에 보급된 1만9496대의 전기차 충전기는 지역 상징물인 돌하르방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다.
제주의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지난해 11월 말 기준 2만5381대. 전체 차량 대비 전기차 비중은 6.3%로 전국 평균(0.9%)을 크게 상회하며 전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높다.
바람 부는 날엔 충전하러 가자
가속 붙지 않는 전기차 보급
‘전기차 마니아’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제주에서 전기차는 소수다. 제주도는 지난해까지 목표한 전기차 보급 대수(4만4244대)를 채우지 못했다. 보조금은 낮아진 반면 차 가격은 오르면서 보급 속도가 더뎌졌다.
1회 충전에 따른 주행거리가 크게 늘었으나 충전에 대한 부담감도 여전하다. 전기차의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전기차 늘었지만 내연차는 ‘더’ 늘어
탄소배출 없는 섬 정책 추진 10년, 공교롭게도 제주의 도로는 더욱 혼잡해졌고 주차난은 가중됐다. 제주를 달리는 자동차 수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1년 25만7154대에서 2021년 40만2416대(제주에 등록됐지만 다른 지역에서 운행하는 역외 세입 차량 제외)로 10년 사이 56.4% 증가했다. 전기차가 2만5000여대 늘어나는 동안 내연기관 차는 그의 5배가량인 12만대 급증했다.
지난해 제주 지역의 1인당 차량 보유 대수는 0.595대로 전국 평균(0.481대)을 뛰어넘는다. 가구당 차량 보유 대수 역시 1.310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민이 차량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인데, 제주지역 특성상 자동차 없이 이동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제주도는 버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2017년 버스우선차로 신설과 준공영제 시행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대적인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실시했다. 대중교통 이용 만족도는 올라갔지만 수송 분담률 개선에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주의 버스 수송분담률은 대중교통 개편 이후에도 14%대에 머무르고 있다.
제주의 핵심 먹거리인 관광산업 역시 렌터카 위주로 돌아간다. 렌터카는 지난해 2만9800여대로, 10년 만에 갑절 가까이 늘었다. 최근엔 렌터카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시골 깊숙이 숨겨진 ‘인스타 핫플’을 찾아다니는 게 인기 있는 여행방식이 됐다. 제주도는 빠르게 늘어나는 렌터카의 수요관리를 위한 렌터카 총량제를 추진했으나 업계와의 소송에서 번번이 패소하면서 정책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더 늘어난 도로 위 탄소배출
김정도 탈핵·기후위기 제주행동 실행위원장은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거나 대중교통, 자전거, 보행 이동을 촉진하는 정책보다 도로 건설과 확장, 전기차 보급 확대와 같은 자동차 이용 중심 정책이 우선되면서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자동차 수요관리 없이 전기차 공급에만 치중하다보니 내연기관차에 전기차를 더한 ‘1+1’ 정책이 됐고, 교통과 환경문제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전기차만으론 탄소 감축 안 돼
정부는 2030년 수송 분야의 탄소배출량을 2018년 대비 37.8%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전기·수소차 450만대를 보급하고, 내연차 총 주행거리를 4.5% 줄이겠다고 밝혔다. 고속철도역과 중소도시를 연결하는 간선급행버스(BRT)·광역급행버스 확대, 환승센터 구축 등을 통한 대중교통수단 다양화 방안도 있다. 내연차 주행거리 감축을 위한 주차요금 개선, 단계적 차량 부제 시행, 공유 모빌리티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이재영 대전세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 목표를 달성해도 온실가스 감축 규모는 430만t 정도로, 도로 부분 탄소 감축 목표의 11.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버릴 수 있을까
손상훈 제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10월 승용차를 이용하는 제주도민 201명에게 어떤 환경 변화가 있을 때 승용차 대신 버스를 이용할지를 물었다. 응답자들은 ‘정류장까지의 거리와 시간 단축, 대기시간과 통행시간의 단축’을 가장 높은 비중으로 꼽았다. 보행과 자전거 이용환경에 있어서는 ‘안전한 자전거 전용도로 추가 확보’ ‘밝고 오픈된 보행공간 확보’를 원했다. 편리하고 안전한 환경이 1순위로 꼽힌 셈이다.
시민들은 대체 교통수단이 활성화될 때뿐만 아니라 승용차 보유가 ‘불편’해질 때도 차를 포기하겠다고 답했다. 손 연구위원은 “월별 일정 요금을 지불하고 희망하는 교통수단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구독 서비스인 ‘마스(MaaS)’ 시행, 도시철도와 같은 신규 대중교통 수단이 시행될 때 등은 물론 주차요금이 부과되거나 증가될수록, 혼잡통행료나 환경세 부과 및 자동차 보유세가 증가할수록 기존 보유하는 승용차를 줄일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교통수단에 대한 풍부한 정보도 시민들을 대체 교통수단으로 가게 만들 확률을 높여준다. 손 연구위원은 “버스 노선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버스 이용 의향이 높게 나왔다”며 “대체 교통수단에 대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때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재홍 제주녹색당 정책위원장은 “‘자동차 없는 사회가 과연 가능한지’ 등 어렵지만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쉼터·그늘 없는 거리를 걷고 구릉 많은 길을 자전거로 다니라는 등 어려운 조건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며 “차선을 줄여 걷기 좋은 도로를 만들고 자전거를 안전하게 타고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도시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동차 지옥 ‘노면전차’ 타고 탈출해 볼까
인구 줄며 밀도 낮아진 지방 도시
경제·환경 고려, 트램에 눈돌려
착공한 서울 위례선 비롯해
대전·부산·울산 등 설치 추진
밀도가 느슨한 도시에서 대중교통을 운영하려면 돈이 더 든다. 정부가 대중교통에 돈을 쓰는 일도, 시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점점 더 비효율적인 일이 되고 만다. 지방 도시들이 빠진 ‘자동차 개미지옥’이다.
도시를 살리고 교통 부문의 탄소배출도 줄일 묘수로 트램(노면전차)이 떠오르고 있다. 서울 위례선이 2025년 개통을 목표로 착공했으며, 대전과 부산도 트램 설치를 확정짓고 노선, 차종 등을 논의하고 있다. 청주, 성남, 인천, 대구, 울산, 고양, 창원, 부천, 시흥, 구미 등도 트램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트램은 1960년대 지하철과 자동차에 밀려 세계 각지에서 퇴출됐지만 1990년대 이후 부활하고 있다. 지하철보다 건설비용이 저렴하고,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고, 바닥과 지면 높이가 비슷해 휠체어를 탄 사람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탑승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계대중교통협회(UITP)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389개 도시가 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트램 도입을 추진하는 국내 도시들이 롤모델로 곧잘 드는 도시는 프랑스의 리옹이다. 프랑스 제2 광역도시인 리옹의 인구는 150만명으로, 대도시답게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2001년 트램 2개 노선이 개통한 뒤로 변화가 찾아왔다. 자동차 대수는 2006~2015년 11% 감소했다. 자동차 없는 가구의 비율은 22%에서 29%로 늘었다. 1995~2015년 자동차의 수송분담률은 53%에서 44%로 떨어졌고, 대중교통 이용률은 13%에서 19%로 높아졌다.
이 같은 변화는 트램이 도시구조를 바꾼다는 목표를 갖고 계획적으로 설계돼 가능했다. 리옹은 1992년 교통계획을 수립하면서 시민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 자동차 간 균등한 공간분할을 원칙으로 하는 도시개조 계획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다. 리옹의 트램 노선은 총 7개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트램을 추진하는 도시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정부가 밀어주는 신기술을 얼마나 빨리 채택하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통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 없이 ‘신기술’에만 초점을 맞춰 트램을 들여오면 전기차, 수소차, 버스, 트램이 뒤섞여 총교통량만 많아지는 도시가 될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램을 통해 탄소감축을 이뤄내려면 단지 트램만 도입할 것이 아니라, 도시의 통합교통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체계까지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유자전거 체계를 활성화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도 대폭 늘려 트램 정거장에 대한 접근을 쉽게 하고, 버스 노선과 트램 노선의 유기적인 연결성을 높이는 방안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왕좌왕 행정 정책 > 환경,건설,교통,주택,토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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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피아'의 완벽한 부활…문재인정부의 완벽한 실패 (박흥수) (0) | 2021.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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