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시, 소설도 보고

마흔, 그리고 서른 즈음에...

새벽길 2008. 7. 29. 18:43
이제 마흔이 넘은 걸까. 만으로 하면 아직도 30대라고 우길 수 있건만, 그러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직 올라갈 곳이 있는 듯하다. 벌써 내리막길이라고 하기엔 남은 길이 많다.
 
나희덕 시인의 [서른이 되면]은 지금은 마흔이 넘은 작가가 서른이 되기 직전에 지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 자신이 쓴 이 시를 어떻게 느낄까. 그리고 최승자 시인은 또 어떻게?
 
마흔이라는 최승자 시인의 시를 담아오면서 이와 관련되는 네이버블로그의 내 글들을 함께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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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최승자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였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 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서른이 되면
                                             나희덕
 
어둠과 취기에 감았던 눈을
밝아오는 빛 속에 떠야 한다는 것이,
그 눈으로
삶의 새로운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이,
그 입술로
눈물 젖은 희망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렵다.
 
어제 너를 내리쳤던 그 손으로
오늘 네 뺨을 어루만지려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
결국 치욕과 사랑은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가을비에 낙엽은 길을 재촉해 떠나가지만
그 둔덕, 낙엽 사이로
쑥풀이 한갓 희망처럼 물오르고 있는 걸
하나의 가슴으로
맞고 보내는 아침이 이렇게 눈물겨웁다.
 
잘 길들여진 발과
어디로 떠나갈지 모르는 발을 함께 달고서
그렇게라도 걷고 걸어서
나 서른이 되면
그것들의 하나됨을 이해하게 될까.
두려움에 대하여 통증에 대하여
그러나 사랑에 대하여
무어라 한마디 말할 수 있게 될까.
 
생존을 위해 주검을 끌고가는 개미들처럼
그 주검으로도
어린것들의 살이 오른다는 걸
나 감사하게 될까 서른이 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