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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로렌스 - 제대로 된 혁명

새벽길 2008. 10. 25. 05:43
제대로 된 혁명
                                           D.H.로렌스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쫓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를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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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 |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지은이), 류점석 (옮긴이) | 아우라(2008)
 
제대로 된 혁명의 상이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항상 염두에 두면 좋을 듯 싶어서 담아왔다. 아마도 로렌스는 혁명이 가진 정신에 대해 말했을 터이다. 그리고 이런 시를 썼던 시대적 상황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이고...
 
하지만 1930년에 45세의 나이로 죽은 것을 감안하면 아주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인데도 꼭 최근에 쓴 것처럼 느껴진다. 혁명이라는 것 자체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이들이나 '혁명보다 어려운 개혁'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제목 자체에서 거부감을 가질지도 모르겠지만, 그 자체로 유쾌하게 혁명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로렌스가 시까지 썼을 줄, 그것도 이렇게 불경한 시를 썼을 줄은 몰랐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책으로도 보고, 실비아 크리스털이 주연한 영화로도 보았지만 잘 연결이 안된다. 나는 문학예술작품으로서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세미 포르노로서 접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긴 20대 초반에 뭘 알았으랴. 
 
내가 그의 시선집까지 볼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표제시만 담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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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혁명도 재밌게 하라” (경향, 한윤정기자, 2008년 08월 22일 17:20:47)
제대로 된 혁명…D H 로렌스 | 아우라
 
‘제대로 된 혁명’은 이중 152편의 대표작을 뽑아서 번역한 시선집이다. 이렇게 많은 분량의 로렌스 시가 시대별로 추려져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그의 소설이 ‘불온서적’으로 취급된 것처럼 그의 시 역시 당대에는 ‘삶을 생경하게 재현했다’ ‘기본 시작법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폄훼됐다.
   
1·2부가 개인사와 관련이 깊다면, 3부 ‘뱀’과 4부 ‘우리의 날은 저물고’에 실린 시들은 후대학자들이 로렌스를 높이 평가하도록 만든 생태주의 철학,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도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걸작시 ‘뱀’은 아침에 낙수대롱에서 물을 마시러 온 뱀을 발견하고 그것을 쳐죽이라는 고정관념의 발동과 뱀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는 감정 사이의 어긋남을 통해 인간의 자연지배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을 한순간에 바꿔놓는다. 이어 그의 생명공존사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나아간다. ‘사람이라면 일에 생기 없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사람이라면 임금만 받으려 일하는 똥무더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사람이라면 임금노예로 일하는 것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시 ‘우리가 가진 전부는 삶이다’ 일부)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