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시, 소설도 보고

노래가 된 김지하의 시 - 새, 녹두꽃

새벽길 2022. 5. 21. 23:51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지하 시인은 타는 목마름과 오적이라는 시로 알려져 있다. 특히, 타는 목마름으로는 노래로도 만들어져 김광석이 부른 버전을 들어본 이도 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PW7W6lmmxc
1982년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에는 <타는 목마름으로>말고도 노래로 만들어진 몇 개의 시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 시와 노래들을 옮겨온다.
우선 새라는 노래는 안치환의 버전으로 아는 이들이 많겠지만, 이 노래의 작곡자는 미상이다. 80년대 운동권 언저리에 있는 이들이라면 뒷풀이 자리에서 이 노래를 안들어본 이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광주의 노래패 '친구'의 임을 위한 행진곡 8집(1989)에 수록된 버전으로 감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DZ629G9KquY 

                             김지하
저 청청한 하늘
저 흰구름 저 눈부신 산맥
왜 날 울리나
날으는 새여
묶인 이 가슴
 
밤새워 물어뜯어도
닿지 않는 밑바닥 마지막 살의 그리움이여
피만이 흐르네
더운 여름날의 썩은 피
 
땅을 기는 육신이 너를 우러러
낮이면 낮 그여 한 번은
울 줄 아는 이 서러운 눈도 아예
시뻘건 몸뚱어리 몸부림 함께
함께 답새라
아 끝없이 새하얀 사슬소리여 새여
죽어 너 되는 날의 길고 아득함이여
 
낮이 밝을수록 침침해 가는
넋 속의 저 짧은
여위어 가는 저 짧은 볕발을 스쳐
떠나가는 새
 
청청한 하늘 끝
푸르른 저 산맥 너머 떠나가는 새
왜 날 울리나
덧없는 가없는 저 누부신 구름
아아 묶인 이 가슴
 
김광석이 부른 노래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김지하의 시에 곡을 붙인 명곡이 있다. 바로 녹두꽃이다. 나는 처음에 갑오농민전쟁을 묘사한 노래로만 알았지, 김지하의 시에 조념이 곡을 썼다는 것은 몰랐다.
조념은 해방 직후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던 원로 음악인으로, 당연히 해방 직후의 좌파 노래운동의 경험을 했고, 아마도 이런 경험을 곡으로 남겼을 거라는 얘기가 있다. 노래를 들어보면 웅장한 느낌과 함께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 호흡과 애초에 김지하 시인이 의도했던 시의 호흡과는 맞지 않는 느낌. 그래서 시 없이 노래 자체로 즐겼는지도 모른다.   
이 노래는 정식음반에 실려있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술자리에서 노래 좀 한다는 사람들이 부르는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다. 물론 당연히 이 노래를 잘못 부르면 목이 나갈 수 있다. 나는 시는 잘 외우지 못하지만, 이렇게 노래로 만들어진 시를 알게 되면 쉽게 까먹지 않게 된다. 아래 노래는 1987년 10월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노래를 찾는 사람들 1회 정기 공연 실황녹음에서 김광석이 부른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oVDJoEqlk  

녹두꽃  
                                        김지하 
빈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
벽에도 쇠창살에도
노을로 붉게 살아
타네
불타네
깊은 밤 넋 속의 깊고
깊은 상처에 살아
모질수록 매질 아래 날이 갈수록
흡뜨는 거역의 눈동자에 핏발로 살아
열쇠소리 사라져버린 밤은 끝없고
끝없이 혀는 짤리어 굳고 굳고
굳은 벽 속의 마지막
통곡으로 살아
타네
불타네
녹두꽃 타네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 횃불 아래
횃불이여 그슬러라
하늘을 온 세상을
번뜩이는 총검 아래 비웃음 아래
너희, 나를 육시토록
끝끝내 살아.
 
그리고 시집에서 <녹두꽃> 바로 뒷장에 나오는 <서울길>이라는 시도 조념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졌다. 이건 이번에 검색해보고 알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wZdc8xUU0
서울길
                                    김지하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