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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새벽길 2022. 3. 13. 21:11

한겨레 3월 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하종강 샘의 칼럼을 보고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를 보여준 김학철 선생의 자서전 내용이 생각나서 담아온다. 하종강 샘의 칼럼에는 역사학자 박준성 선생이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노동운동사 강의 중에 “원산 총파업 당시 항구에 정박해 있던 일본 상선의 일본인 선원들이 ‘조선 노동자들 파업 승리 만세!’를 외치며 박수를 쳤다는 장면을 김학철의 <격정시대>에서 읽은 뒤로 저는 ‘일본 놈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라고 얘기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김학철 선생의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문학과지성사, 1995)에도 유사한 대목이 있어서다. 
 
부두 노동자들이 일으킨 파업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삽시간에 원산 일대의 공장 제조소와 모든 작업장들이 완전히 마비가 돼버렸다. 명석동에 본거를 둔 적색 노조 즉 '원산노동연합회'가 총파업의 지령을 내린 것이다. 
...
경찰대가 담벼락처럼 둘러서서 뒷받침해주는 데 기운을 얻은 깨기꾼(파업 파괴자, 구사대)들이 사기가 와짝 올라 최후의 일격을 가해왔을 때였다.
안벽(岸壁)에 선복(船腹)을 붙이고 정박해 있던(파업 때문에 여러 날째 화물을 부리지도 싣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 있던) '쓰루가마루(敦賀丸)'라는 화물선의 갑판 위에서 관전을 하고 있던 일본 선원들이 별안간 고함을 지르며 발들을 굴러댔다. 
"파업 만세!"
"형제들 버텨라!"
이것을 신호로나 한 듯이 안벽에 정박해 있던 다른 일본 기선의 선원들도 모두 다 응원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일제히 우렁차게 기적(뱃고동)들을 울려줌으로써 파업자들의 기세를 와짝 올려주었다. 
나는 금세 우쭐우쭐 어깻바람이 났다.
- 잘한다. 우리 편이 이긴다!
그러나 다음 순간
-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편을?……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 왜
놈들은 다 악당이어야 하잖는가…… (41-42쪽, 원산 제네스트 중에서)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3033.html
[하종강 칼럼] 모든 진실한 것들은…식상하다 (한겨레, 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2022-03-01 14:48)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야욕”, “세력 균형과 민족 분쟁” 등 보는 관점이 제각각이지만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드는 시민이나 러시아에서 연행될 것을 각오하고 전쟁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억압적 지배에 반대하며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원하는 것이지 ‘친서방’과 ‘친러’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볼 일은 아니다.
1931년 5월31일 <조선신문>에 실린 ‘우리나라 최초 고공농성 노동자’로 불리는 ‘을밀대 체공녀 강주룡’이 아버님에게 남긴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불초여식은 소원이 성취되면 다시 뵙겠으나 그렇지 아니하면 훗날 땅속에서 뵙겠습니다.” 그 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노동자들이 비슷한 유언을 남기며 산화했다. 그 유언들을 식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