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관련 기사 추가.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415400004458?did=NA
직무정지에 빛바랜 '최장수' 총리... 한덕수가 지키려던 가치는 (한국일보, 나광현 기자, 2025.01.05 12:00)
길었던 공직생활의 마지막 장은 '탄핵 직무정지'
헌법재판관 임명 유보 결정, "무책임" 비판 많아
합의 강조 韓?... 헌재 무결성에 '흠결' 우려한 듯
'尹 호위부대' 전락 與 최근 행보... 요원한 기대
국정 안정 약속했지만 돌아온 더 큰 '국정 불안정'
지난 3일은 한덕수 국무총리의 오랜 공직생활 중에서도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한 총리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재임기간이 가장 긴, '최장수 총리'의 반열에 오르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22년 5월 21일 윤석열 정부 초대 총리로 부임해 이날 임기 '959일'을 맞았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이낙연 전 총리가 보유한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958일)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한 총리의 장수 배경엔 현 정부 들어 극한의 여야 갈등이 심화되며 '야당의 임명 인준을 받을 만한' 마땅한 대체 총리 후보군을 찾기 어려웠던 정국 상황이 있습니다. 다만 한 총리 본인이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사실상 '대체불가' 수준의 폭넓고 꼼꼼한 일처리 능력과 안정적 국정 운영에 대한 소신으로 정부 내에서는 압도적인 신뢰를 받아온 인물이라는 점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운'만 가지고 최장기간 국무총리직을 유지한 건 아니니, 한 총리에게도 영예로운 기록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사뭇 씁쓸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며 정부서울청사를 떠난 한 총리는 '직무정지' 상태로 임기의 959번째 날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자신을 전격 발탁한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수괴(우두머리)' 혐의로 발부된 체포영장에 쫓겨 관저 안에 꽁꽁 숨은 신세가 됐습니다.
무도한 불법계엄을 자행한 윤 대통령에게 '탄핵안 가결'은 피하기 어려운 운명이었겠지만, 그 뒤를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한 총리는 상황이 분명히 달랐습니다. 결정적으로 한 총리 본인이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에서 유보적 태도를 취하며 사실상 '탄핵을 자초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긴 공직생활의 마지막 페이지에 '오점'으로 남을 수 있는 선택으로 이끈 신념이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집니다.
韓, 탄핵 가능성 알고도... 무책임한 결정인가?
한 총리는 관가에서는 '전설적 인물'로 통합니다. 관세청과 산업부를 거쳐 김대중 정부 시절 경제수석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장관을 지냈습니다. 주미대사도 지냈지요.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는데, 이번 정부 들어 또 총리로 발탁됐습니다. 대체자를 찾기 어려워 이대로 윤석열 정부 5년을 함께하는 '오(五)덕수'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는가 싶더니, 윤 대통령이 '12·3 불법계엄' 여파로 직무정지되면서 일거에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는 2주도 가지 못하고 좌초했습니다. 한 총리가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정계선·조한창·마은혁)의 임명을 사실상 거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즉각 탄핵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가 들어선 직후부터 '탄핵 속도전'과 향후 집권을 염두에 둔 '국정 안정' 사이에서 전략적 저울질을 해왔지만,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만큼은 가차 없었습니다. 이 상태로 마냥 놔뒀다가는 윤 대통령의 탄핵 인용 자체가 불투명해질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한 총리도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면 탄핵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 선언은 이튿날 직무정지를 자초하는 직접적 원인이 됐습니다.
한 총리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일단 한 총리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권한대행은 안정적 국정 운영에 전념하되,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게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인데, 여야의 정치적 합의 없는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건 헌정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 쉽게 정리하면 '권한대행은 여야 합의 없이 중대한 결단을 내릴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니 국회에서 합의 먼저 하라'는 말입니다.
요즘처럼 극단으로 치닫는 갈등의 시대에 '합의'의 가치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라겠죠. 하지만 동시에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입니다.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과거 탄핵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대통령 결사호위'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만장일치'로만 탄핵 인용이 가능한 '헌재 6인 체제'를 필사적으로 지키는 건 전략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반대로 민주당 입장에서 이 같은 여권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방탄 전략'일 뿐입니다. 즉, 애당초 양자 합의가 가능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결국 한 총리가 키를 쥐고 있음에도, 정치적 책임과 보수 진영의 반발을 피하려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입니다.
'헌재 무결성' 우려 가능성... 결말은 국정 불안정
한 총리도 결정을 앞두고 많은 고심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 총리는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가 정국의 최대 뇌관으로 떠오른 상황에서 자신의 일방적 결단이 자칫하면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 나아가 헌재 결정의 무결성에 '흠'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당이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대행의 권한이 아니다"라며 길길이 뛰고 있는 와중에 한 총리가 임명을 강행하면, 추후 여당이 헌재 구성의 합헌성을 비롯해 단계 단계 시비를 걸고 늘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종국에 헌재의 어떤 결정이 나오든 국민의힘과 지지층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심각 수준인 정치적 양극화가 사실상 해결 불가능한 단계로까지 악화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여야의 '정치적 합의'를 마지막까지 강조한 건 발언 그대로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선의로 해석할 때 그렇습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 총리가 '여야 합의'를 강조한 게 사실은 여당을 압박하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전쟁 같은 탄핵 정국이 한창인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실상 '윤석열 호위부대'로 전락해버린 듯한 국민의힘의 지난 한 달간 행보를 감안하면 한 총리의 기대처럼 상황이 '올바르게' 흘러갔을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입니다. 대통령의 권한을 승계하며 '국정의 조속한 안정화'를 약속한 한 총리지만, 그의 과도한 신중함으로 인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를 맞는 사상 초유의 상황으로 흘러갔습니다. 한 총리가 스스로의 선택을 뼈아프게 되새겨봐야 하는 대목입니다.
한 총리 뒤를 이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3명 완전체는 아니지만, 정말 오로지 '국정 안정'만 생각했다는 듯 한 총리와 달리 길게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즉각 반발했고 정부 내에서도 크고 작은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지만, 헌법재판관 임명은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인 만큼 이젠 정국의 '뉴노멀'로 점차 받아들여져 안정되는 분위기입니다. 물론 여권이 향후 헌재 판결의 무결성을 공격하고 나설 가능성은 남아있기는 하나 과연 민심이 얼마나 동조할지 의문입니다.
탄핵 정국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한창입니다. 그 역사적인 과정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기나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장을 끝내 직무정지로 허무하게 장식한 한 총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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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1 00:15
한덕수가 어떤 인간인지 보여주는 기사. 이 자를 중용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계승세력인 민주당 또한 반성해야 한다. 뭐, 그리 따지면 윤석열을 검찰총장으로 올렸던 문재인 정부 또한 오십보 백보이고... 김수영의 시가 아깝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75502.html
[박찬수 칼럼]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 ‘미스터리’ (한겨레, 박찬수 대기자, 2024-12-30 15:55)
“풀보다 먼저 눕는 사람.”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일한 적 있는 전직 정부 고위 인사가 한 총리를 가리켜 한 말이다. 김수영의 시 ‘풀’에 빗대서, 누구보다 시류에 빠르게 적응하는 걸 표현했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통상산업부 차관이던 그는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통상교섭본부장과 오이시디(OECD)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의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97년 3월 통산부 차관 인사 프로필에 ‘서울’로 적혀 있던 고향은 이듬해 3월 통상교섭본부장 인사에선 ‘전북’으로 바뀌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임기가 끝나가자 다시 살길을 모색했다. 경기고 선배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차기 대통령’이란 전망이 무성하던 시절이었다. 2001년 3월 어느 날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의 일이다. 파업 중인 발전노조 집행부가 명동성당에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한덕수 수석은 경제 악영향을 이유로 ‘경찰력을 동원해서 농성 중인 지도부를 끌어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다른 수석비서관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는 건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걸 김 대통령에게 하라는 말이냐”고 반박하자, 한 수석은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옷을 벗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 수석은 2002년 7월 중국과 마늘 협상 파동의 책임을 지고 경제수석을 그만둔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인사는 “그때 한 수석은 무슨 일만 나면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형식이었지만, 내부에선 ‘나가고 싶어 하니 내보내자’는 기류가 강했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에선 예상과 달리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 무렵 한 전 수석과 저녁을 같이 했던 정치부 기자의 얘기다. “한 전 수석에게 ‘1년쯤 쉬시면서 천천히 진로를 모색하시라’고 말하니까 대뜸 ‘○형, 이광재씨나 안희정씨를 좀 소개해주시오’라고 나한테 부탁했다. 좀 놀랐다.” 한덕수씨는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까지 지냈다.
그가 이명박 정부의 주미 대사로 임명된 과정을 정확히 알긴 어렵다. 그러나 전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였던 인사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새 정부의 주미 대사로 발탁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초기 이명박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인사는 “한-미 간엔 자유무역협정(FTA)을 잘 마무리하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내 기억으론 한덕수씨가 우리와 노 전 대통령 양쪽에 이걸 잘 끌어가는 데는 자신이 최적임자라고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게 세번의 정권교체에도 살아남은 한덕수는 2022년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로 발탁됐다. 지금은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다 탄핵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를 잘 아는 인사들은 “누구보다 권력 이동에 민감하고 순응했던 한 총리가 대세를 거스르며 용서받기 어려운 악수를 뒀다”고 말한다. 어느 원로 언론인은 열흘 전쯤 그에게 전화를 걸어 헌법재판관 임명을 촉구했다고 한다. 한 총리는 “이런 헌법적인 문제를 권한대행에게 맡기면 어떻게 하냐”며 여야 합의가 먼저라는 태도를 반복했다. 이 언론인은 “그래도 설마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이 풀보다 먼저 눕던 한덕수를 바꾼 것일까. 그를 아는 인사들은 두가지 가능성을 말한다. 하나는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의 친분이다. 박지원 의원은 “한 총리 부인과 김건희 여사가 굉장히 가깝다. 두 사람이 무속으로 연결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인사는 총리실 쪽에서 들은 얘기라면서 “한 총리 부인이 점집 5곳을 다니면서 점을 보는데 그중엔 김건희 여사와 공유하는 점집이 여럿 있다고 한다. 아마 두 사람이 공유한 점괘가 ‘버티라’는 게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말도 흘려 넘길 수 없는 게 현 정권의 실상이다.
이보다는 한 총리가 예상보다 훨씬 깊숙이 계엄 선포에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윤 대통령이 올해 3월부터 김용현 전 장관 등과 비상계엄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에게서 계엄 얘기를 들은 사람은 더 많다. 여권의 한 인사는 “설마 했지만 나도 계엄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훨씬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개입의 결정적 증거를 윤 대통령이 쥐고 있으니 한 총리로선 끝까지 그와 한배를 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버들가지처럼 휘어져도 부러지진 않았기에 한덕수는 4개 정권에 걸쳐 권력을 누렸다. 국가 혼란을 장기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니, 특유의 처세술도 이제 엄정한 심판을 받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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