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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불통 점철된 2년 반...윤석열은 몰락을 자초했다

새벽길 2025. 1. 13. 08:51

핵을 계기로 윤석열 정권 2년 반을 평가하는 기사가 나왔다. 2025년 1월 13일 기사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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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526
[다시 광장, 퇴행은 없다 ②] 문재인이 낳은 윤석열, 2년6개월간 남긴 것 (매노, 제정남 기자, 2024.12.30 07:30)
‘장시간 노동·노조탄압’ 칼자루 쥐고 질주 … 민주당-노동계 노란봉투법 연대, 계속 이어질까
윤석열 정권 탄생은 짧은 한국 민주화 역사 속에서도 매우 특이하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임기 말 국정운영 평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높았다. 김대중·이명박 정권이 임기 말 국정 지지도가 매우 낮았는데도 집권 여당이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 속에서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 등장의 핵심 원인은 강력한 ‘정권교체’ 바람이었다.
문재인 정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 중 정권유지를 지지하는 비율은 2020년 8월 80%에서 이듬해 12월에는 76%로 낮아졌다. 정권에 부정적인 이들이 정권교체를 원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73%에서 83%로 높아졌다. 문 정부 지지자들의 결속력이 약화했다는 의미다. 20대 대선의 주요 의제가 부동산값 폭등, 경제회복, 코로나19 대처, 일자리·고용, 민생문제 등이었다는 점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문재인 정부 실책이 정권교체 바람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주동현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문재인 정부 기획재정부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대출 활성화를 통해 민간에 다 맡겼다”며 “그 결과로 촛불을 통해 세운 정권이 민심의 눈 밖에 나며 달랑 5년 만에 끝나고 윤석열로 넘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2017년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박석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임시의장은 “(문재인 정권은) 촛불동맹으로 이어 가지 않고 항쟁의 성과를 독식·탐닉했고 그 결과 정권을 윤석열에게 갖다 바쳤다”며 “촛불항쟁 주체들이 안이했던 면이 있고, 이들이 정치 문제에서 손을 놓으니 문재인 정권은 광장 목소리와 더 멀어져 버렸다”고 주장했다.
정상을 참작해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주도성장,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등 취약계층을 겨냥한 정책을 전면화한 정권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재인 정권 노동정책에 관여했던 노동계 관계자는 “광화문의 에너지를 국정 운영 과정에 반영했으나 정교하지 못했고, 완수하지 못했다”며 “다만 코로나19의 영향이 너무 컸고, (코로나 때문에) 문재인 정권은 사실상 2년6개월짜리 정권이었다는 한계도 평가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대화 상대 아님” 통보로 시작한 윤석열표 노동정책
문재인 정부 반대 지지자와 이탈자 등을 흡수해 당선한 윤석열 정권은 노동 부문에서 문재인 지우기를 노골화했다. 노동시간·임금·노조 관련 정책에서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렸다.
윤석열 정권의 첫 노동정책은 ‘노조는 대화 상대 아님’ 통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가동 전 2022년 5월23일 고용노동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부터 발족했다. 노조를 배제하고 전문가와 정부를 중심으로 노동정책을 설계하겠다고 공표했다. 같은해 9월29일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을 임명하면서 노동계에 다시 충격을 줬다. 대화 당사자인 한국노총은 “노동계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국노총이 어렵게 이어 온 사회적 대화의 끈을 놓지 않도록, 경사노위 위원장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주기 바란다”는 다소 유연한 입장을 냈지만 내부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지난해 2월2일 발족한 상생임금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를 배제한 채 직무·성과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다 최근에야 경사노위로 논의를 넘겼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2월 각각 ‘노사관계 제도·관행개선 자문단’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를 발족하며 한국노총 없는 사회적 대화를 시도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5월 포스코 하청 노조 교섭을 지원하기 위해 농성하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현 금속노련 위원장)을 경찰이 과잉진압한 데 반발해 경사노위 대화를 중단했다. 같은해 11월 공무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논의를 위해 울며겨자 먹기로 복귀했으나 이후 사회적 대화에는 진전이 없었다.
주 52시간은 너무 적어, 69시간은 돼야지
윤석열 정부가 정책으로서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직무·성과급과 노동시간 유연화다. 노조 배제·탄압의 주목적은 이런 정책의 걸림돌인 노조 힘을 빼기 위해서라는 것이 정설이다. 2022년 6월23일 당시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 발표하면서 초과 노동시간 산정단위를 노사합의로 월 단위로 전환하고, 호봉제의 직무·성과급제 전환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곧바로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 공식 발표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무부처 장관 입장이 머쓱해졌다. 같은해 12월 전문가 중심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출범 6개월 만에 연장근로를 현행 주 단위에서 월·분기·연 단위로 확대하라는 취지의 권고를 내놓으며 다시 노동시간제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 파견 허용 업종을 확대하라는 재계 요구도 빼놓지 않고 담았다. 지난해 3월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한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 가능하게 하는 입법안이라는 반발이 확산하자 다시 대통령실이 “의견 청취 후 방향을 잡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같은해 11월 ‘근로시간 제도개편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노동부는 주 52시간 틀 안에서 유연근로제를 활성화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대법원이 같은해 12월7일 연장근로 주 12시간 초과 판단은 “1주간의 근로시간 중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이라고 제시하면서 정부의 노동시간 유연화 추진에 힘을 보탰다.
노조 때릴 수만 있다면
있는 제도 전부 활용, 없으면 만들고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동시간제 개편을 권고한 며칠 뒤인 2022년 12월26일, 당시 이정식 장관은 그 유명한 ‘노동조합의 재정 투명성 관련 브리핑’을 내놓는다. 조합원 1천명 이상 노조와 총연맹에 재정서류 비치와 보존이행 의무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회계 결산결과를 노동포털에 공시할 것과 불응시 세액공제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까지 노조회계 공시와 세액공제 문제를 연동했다. 화물연대 노동자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건설노조의 노조활동을 공갈·강요 행위로 처벌,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워 화물·건설기계 노동자의 단체행동을 담합과 사업자단체금지행위로 규정해 제재한 것도 역사에 남을 일이다. 노동부 일개 부처가 아니라 국교교통부·공정거래위원회·기획재정부 등 범정부 차원에서 노조 압박용 정책에 보조를 맞춘 사건이다. 노동계와 야권은 이런 노조 탄압 정책 지휘소가 어디인지를 찾고 있다.
만만한 곳이 공공부문
공공부문 정책은 기획재정부가 2022년 7월 발표한 ‘새 정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을 통해 추진했다. 기능, 조직·인력, 예산, 자산, 복리후생의 효율화 추진을 공언했다. 인력과 복지를 줄이고, 공공기관 자산은 매각한다는 내용이다. 지침에 따라 한국전력은 그룹사인 한국전력기술 지분 15%를 매각했다. 한전KDN까지 매각하려 했으나 전력노조 등이 격하게 반발하면서 중단했다. YTN은 민영화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치적으로 자랑했지만, 노동이사의 노조탈퇴를 의무화하고 임원 추천권을 배제하는 등 권한·역할을 축소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기재부는 공공부문 노조와 실질적인 협상을 하라는 ILO 권고를 사실상 수용하지 않으며 총액인건비제 등 지침으로 공공기관 노동조건을 정하고 있다. 철도노조와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는 전면파업으로 노사교섭을 무력화하는 총액인건비 제도 실상을 알렸다.
윤석열이 만든 노동시장·격차
윤석열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2023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은 5.0%, 2024년 인상률은 2.5%, 내년 적용 인상률은 1.7%다. 세 차례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결정한 해의 물가상승률보다 모두 낮다. 이를테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인데, 최저임금위는 내년 인상률을 이보다 훨씬 낮은 1.7%로 정했다. 실질임금은 3년 연속 뒷걸음질이다. ILO 세계임금보고서(2024~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임금 상승률은 2022년 -0.2%, 지난해 -1.3%로 나타났다. 올해도 -0.5%가 되리라 전망했다. 3년 연속 마이너스가 될 것으로 예측된 나라는 분석국가 157개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해 5개국뿐이다. 임금감소는 취약계층에 더 큰 충격을 준다. 통계청의 올해 3분기(7~9월) 가계동향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저소득층(1분위)의 근로소득은 25만4천원으로 1년 전보다 3.4% 감소했다. 상위 20%인 고소득층(5분위) 근로소득은 802만4천원으로 같은 기간 5.0% 늘었다. 5분위 소득을 1분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하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69배로 나타났다. 1년 전(5.55배)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양극화가 심화했다는 의미다. 올해 고용형태공시 결과에 따르면 상시노동자 300명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 비중은 지난해보다 1.3%포인트 증가한 27%다. 
노란봉투법으로 함께했는데, 12·3 내란사태 이후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권에 맞선 이들을 한데 붙여 놓은 접착제로 역할 했다.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하청노동자·특수고용직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시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와 야당은 밀어붙였고, 정부·여당과 재계는 방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두 번이나 재의요구(거부권)를 했다. 9월26일 되돌아온 노조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12·3 내란사태 이후 노조법 개정안은 되살아 날 것인가. 노중기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민주당은 윤석열을 괴롭히는 데 노란봉투법을 써먹었다”며 “앞으로도 그대로 추진할 것인지,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한 산별교섭 활성화를 추진할 것인지를 기준 삼아 노동계가 내란사태 이후 정국에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2020390003498?did=NA
손에 '王' 새겼던 尹...87년 체제는 대통령 폭주를 막지 못했다 (한국일보, 김지현 김동욱 기자, 2025.01.01 10:00)
◆ 대통령제, 새로고침
<상> STOP 권력 쏠림
① 눈엣가시 이준석 축출
② 권력 분산? 말만 책임 총리
③ 인사 전횡, 시행령 꼼수 정치
④ 야당과 힘 싸움, 결국 계엄
"이준석을 축출할 때 말렸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때부터 제왕의 길을 걸었다." -前 대통령실 비서관 A씨
8년 전 탄핵의 강에서 보수를 구했던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엔 보수를 계엄의 바다 속 깊이 빠뜨렸다. 임기 반환점을 갓 도는 기간 윤 대통령은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막무가내로 휘둘렀다. 거대 야당의 어깃장에는 대화와 설득이 아닌 비상계엄 선포라는 막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1987년 헌법 이후 취임한 8명 대통령 중 유례없는 끝장의 정치. 자신과 보수는 물론 대한민국 전부를 침몰의 위기로 몰아넣는 최악의 수였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 개인에서 이유를 찾는다. 또 다른 측에선 '제왕적 대통령제'로 평가받는 '5년 단임 대통령제'에 눈을 돌린다. 한쪽은 "물러가라"고 외치고, 다른 쪽은 "헌법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본보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과 각 부처, 국민의힘에서 참모와 실무진으로 일한 10여 명에게 '지난 3년'을 물었다. 그들은 디테일에서는 조금의 차이를 보였지만, 윤 대통령이 헌법이 몰아준 권한을 고집스레 사용하려고 했고, 그의 폭주를 법도, 또 다른 권력도 막을 길이 없었다는 결론엔 큰 차이가 없었다.
#1. 이준석 축출..."합리적 목소리를 짓밟았다"
'정치 초보' '0선 대통령'의 출발은 산뜻해 보였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겨버렸다. 이를 '개방과 소통'의 상징으로 삼았다. 검찰에서 자주 경험했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도 선보이며, 대국민 소통에 대한 의지를 내보였다. 국민의힘 의원 100여 명과는 광주를 찾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는 '영호남 화합'의 행보도 보였다. 국민들은 이에 화답했다. 취임 22일 만에 치러진 6·1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국민의힘에 광역단체장 17곳 중 12곳을 몰아준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의지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2022년 7월을 윤 대통령의 극적 변화에 대한 기점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바로 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성 접대 의혹'으로 징계·퇴출한 때였다.
이 전 대표 퇴출은 윤 대통령과 사사건건 맞섰던 걸림돌 제거의 성격이 다분했다. 대통령실 비서관으로 일했던 A씨는 이를 "권력의 무서움"이라고 표현했다. "법적 처리 결과를 보고 결정해도 될 사안"을 "친윤계가 (징계를) 밀어붙였다"는 설명. 그는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합리적 목소리로 얘기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당을 대통령의 하수인으로 만든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와 논란을 만들었던 윤 대통령에게서 '제왕의 그림자'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때다.
#2. 윤심(尹心) 논란..."여당은 대통령의 하수인"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당인 국민의힘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정상적이라면 여당은 대통령에 쓴소리를 하면서, 국정 운영의 '비판적 동반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한 헌법(제7조 2항)을 무시한 채,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임하며 여당을 하수인으로 부리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이었다.
실제 국민의힘은 전당대회 때마다 윤심 개입 논란에 홍역을 치러야 했다. 비윤(석열)계였던 나경원 의원의 당대표 출마를 막아선 이른바 '연판장' 사태가 대표적이다. 대선 승리에 일정 부분 공을 세웠던 안철수 의원마저 당대표 출마 결심만으로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란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한때 '윤의 황태자'라고까지 불렸던 한동훈 전 대표도 예외 없었다.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등 현안을 두고 갈등을 겪다, 종국엔 '배신자'로 철저히 배척을 당해야 했다.
대통령실 비서관 출신 B씨는 "윤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정 분리를 시도한 후 여당과 불화하며 국정 지지율이 떨어져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던 사례를 자주 예로 들었다"고 전했다. 당권을 유지하고 당을 장악해야 임기 끝까지 대통령으로서 힘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거대 야당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기 때문에 '1호 당원'인 대통령과 여당이 확실하게 힘을 모아야 국정과제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임기 내내 윤 대통령에게 끌려다녔다. 그 결과는 2024년 총선 대패였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무리하게 김태우 전 구청장을 출마시켰다가 홍역을 치렀음에도 대통령 눈치만 보다 정권 심판의 회초리를 호되게 맞은 것이다. 이로 인해 압도적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고, 불법 계엄 사태까지 부른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제어할 기회도 놓쳐버렸다.
#3. 권력은 오로지 대통령에게...말뿐이었던 "책임 총리"
윤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인사권을 국무총리와 일정 부분 나누겠다고 선언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국무총리에게 헌법(제 87조 1·3항)이 보장한 국무위원 제청권과 각료해임 건의권 등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보장하겠다고 약속, 일종의 '책임 총리제'를 실시하겠다고 했다. 약속의 상징으로, 한덕수 초대 총리가 사인을 한 1기 내각 국무위원 추천서도 보여줬다. 
하지만 공약(空約)에 불과했다. 대통령실과 여권 주변에선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를 전환점으로 꼽았다. 한 총리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경질을 주장하면서 윤 대통령과 크게 충돌했고, 이후 두 사람은 국무위원 인사와 관련된 얘기를 잘 나누지 않게 됐다고 전해진다. 윤 대통령의 대권 도전 초반부터 캠프에 합류했던 C씨는 "역대 모든 정권이 책임총리로 권한을 나누겠다고 하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DJP 연합'과 같은 선거 연대가 아니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 총리는 대선 과정에서 기여가 없고 대통령과 인연이 없었으니 목소리를 내기 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4. 인사전횡 그리고 정책 독주…"실세 차관 세우고 시행령 통치"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과 내각의 주요 자리에 서울대 출신, 검사 출신, 극우 인사, 김건희 여사 라인을 주로 앉혔다. 대통령이 결정한 주요 인사가 누구의 추천을 받았는지, 어떠한 검증과정을 거쳤는지는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법이 정한 국회의 반대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만 31명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5년 임기 동안 강행했던 34명 인사를 임기 반환점에 이미 다다른 것이다. 대통령실에선 윤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청년 비서관·행정관들이 수석·비서실장은 물론 장·차관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논란이 됐다. 경찰·검찰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법무부의 수장에는 서울대 법대 후배(이상민)나 측근 검찰 출신(한동훈·박성재)을 앉혔다.
윤 대통령은 또한 '인의 장막'을 완성한 이후 여지없이 자신만의 성(城)을 쌓고 독주하기 시작했다. 소통 방식의 문제, 여권 내부의 갈등,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처신이 도마에 오르자 취임 194일 만에 출근길 문답까지 중단했다. 대신 국무회의·국정과제점검회의·비상경제회의 등 각종 회의 생중계를 통해 국회, 관료, 국민에게 '일방으로' 정책을 전파했다. 대통령실에선 장·차관들에게 적극적인 정책 홍보를 하지 않는다고, 방송 출연 등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마치 라디오 연설에 열을 올렸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았다.
국정지지율은 20%대를 좀체 벗어나지 못하면서, 3대 개혁(연금·노동·교육)을 과감하게 강행했다. 정책의 방향도 '꼼수'로 점철됐다. 장관 인사청문회를 피해 '차관 정치'를, 입법부와 대화하는 대신 '시행령 통치'를 택한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 △시민단체를 겨냥한 보조금 제도 개편 △전기요금에 포함된 KBS 수신료 분리징수 △검찰 수사 범위 확대 △경찰국 설치 등이 대표 사례다.
#5. 김건희 특검법 3차례 거부..."수명 좀먹는 '제왕 권력'"
윤 대통령의 최대 리스크는 김건희 여사였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디올백 수수 사건에 대한 의혹과 비판은 윤 대통령 임기 내내, 바람 잘 날 없었다. 윤 대통령은 사과 등에 인색한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공세적으로 추진하자, 윤 대통령은 3번 연속 재의요구권(거부권·헌법 제53조2항)으로 맞섰다. 국민적 비판이 거세진 후엔 어정쩡한 사과만 했다.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D씨는 "대통령이 한 발짝 움직이기 위해선 여러 사람이 대오를 짜 간언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면서 "윤 대통령에게 김 여사 문제를 자신 있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또한 제2부속실과 특별감찰관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비판이 쇄도했는데, 지난해 10월 들어서 제2부속실만 설치했다. 이미 윤 대통령 부부와 명태균씨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며 공천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 번진 뒤였다.

#6. 거대 야당과 극한대립… 마지막 선택 '불법계엄'
윤 대통령은 야당과 대화하고 타협하며 정치를 하는 대신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고 고집하는 데만 골몰했다. 총선 직후 윤 대통령과 만났던 국민의힘 E의원은 "(사실상 여당 입법은 어려우니) 대통령이 헌법의 권한에서 거부권과 예산편성권을 적극 활용하도록 도울 테니 당 차원에서도 방법을 고민하라더라"고 기억했다. 윤 대통령은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만 11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리고 야당의 계속된 입법 공세에 지난달 3일에는 급기야 "헌정질서를 파괴한 괴물"이라며 불법계엄을 실행했다.
정치권에선 87년 헌법 체제에선 대통령이 잘못된 선택을 해도 사전에 막을 장치가 없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윤 대통령이 감행한 극단의 계엄 선포도 헌법(제77조)상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에선 심의를 하지만 찬반 의결을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정무 조직인 대통령비서실도 역할을 할 수 없다. 정부조직법(제14조)에서 대통령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한다', '대통령비서실에 실장 한 명을 둔다'는 규정이 전부다.
김근식 국민의힘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마이웨이' 대통령이 간신만 가까이하고 잘못된 판단을 해도 당이든 대통령실이든 부처든 시스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면서 "대통령제의 가장 큰 폐단"이라고 짚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12123005
검찰개혁 실패·적폐청산 합작품 ‘윤석열 집권’…‘민주주의 탑’ 흔들다 (경향, 박명림 연세대 교수, 2025.01.01 21:23)
② 윤석열 내란의 뿌리
문재인 정부 내내 영향 끼쳤던 적폐청산 성공과 검찰개혁 실패
진보와 윤석열 사단 ‘기괴한 결합’
보수 정당이 권력에 귀환하고 무능한 윤석열의 집권으로 이어져
견제 안 받는 검찰 권력은 비대화
정치·제도 ‘공공적 시스템’ 붕괴
민주주의 학습 안 된 대통령은 공사 구분 없이 군대까지 사사화
군·검찰을 사적 조직처럼 이용
민주공화국 원리인 치안과 안보
나라 안팎 평화 유지에 필수인데 최고 권력자에 무참히 훼손당해
국가 최고 공직자가 일으킨 초유의 윤석열 내란은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에 깊은 분석과 무거운 과제를 던져준다.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의 직접적 산물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를 등장시킨 검찰개혁 실패와 진영대결의 연장이다. 셋째, 좀 더 근본적으로는 민주화 이후 누적된 한국정치 구조와 제도의 최악의 부정적 효과이다.
무엇보다 윤석열 내란은 국가를 위한 공공적·정치적·정책적 준비가 안 된 한 개인의 철저한 실패요, 파탄적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정도의 세계적 규모를 갖는 국가의 운영은 정치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고도로 훈련된 인물조차 실로 매우 버거운 과제다.
본시 정치는 ‘나라의 모든 일’이라는 의미다. ‘서로 다른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균형’, 즉 바름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때 균형이라는 말은 부분들의 합이라는 뜻이 아니라 부분들이 타협하고 어우러져 만든 또 다른 전체를 의미한다. 그래서 정치는, 수리와 합리의 영역인 생산·경제·과학·기술과는 달리, 자연·전쟁·예술과 함께 분별과 통합기예의 영역으로 불린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민의 수렴과 국민·국가 통합을 위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정치에 참여하였고 갑자기 승리하였고 갑자기 집권하였다. 그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0선의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 번도 공적 선출직을 경험하지 않은 채 국가 최고 공직에 선출된, 민주화 이후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권력의지는 차고 넘쳤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자 보수진영 대통령을 두 명이나 구속시켰으면서도, 강고한 진영계선을 넘어 보수정당 후보로 출마를 강행한 것을 보면 그의 권력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알 수 있다.
게다가 그는 평생을 하나의 직업인 검사로 일관하였다. 인류의 오랜 지혜처럼 정치와 법률은 상보적인 동시에 매우 상충적이다. 특히 검사는 일도양단의 유죄와 무죄, 법률가와 범죄자, 합법과 불법, 정의와 불의라는 이분법과 흑백논리에 가장 익숙한 직군이다. 또 흑백논리가 없다면 능력 발휘나 성공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불행하게도 상대를 타도해야 하는 전쟁 및 폭력 조직과 동일한 논리를 갖는 이유이다. 하여 견제와 균형, 대화와 타협, 조정과 합의와 같은 민주주의의 원리와는 정면으로 충돌한다. 즉 검찰주의와 민주주의는 상극적이다. 0선에다 평생 검사 직분에 종사하다보니 국민 의사를 수렴하고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전무한 상태에서 대통령에 출마하고 당선이 되었던 것이다.
집권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자신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국민 및 단체들과 항상 충돌하고 대립한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기에는 이념 및 진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광복회, 의료계, 과학기술계, 해병대 전우회도 포함된다. 대체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이 단체들과 왜 그렇게 심하게 다투는지, 나만 옳다는 유아독존과 절대 오만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과 통치방식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여당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집권 이후 국회 및 야당과 가장 적게 대화한 대통령이었다. 게다가 그의 집권 이후 지금까지 여당 대표는 무려 13명에 달했다. 임기 절반 동안 집권당 대표 숫자로는 건국 이래 단연 최다 기록이다. 그나마 선출된 정상적인 당대표는 3인에 불과하고 나머지 10인은 모두 한시적 권한대행이거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검사동일체의 원칙처럼 수직적으로 부하나 죄인 다루듯 여당을 운영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정당 정치의 완전 부재였다.
더 언급되어야 할 점은 그의 지도자로서 개인적 언행과 태도의 차원이다. 불행하게도 윤석열 대통령은 정책이나 노선에 앞서 이 부분에서 먼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 공직자다운 공적 품새와 품격을 말한다. 고래로 동서에서 정치의 본령은 동일하였다. 정치는 지도자의 덕성(德性, 능력)에 달려 있고, 덕성이 마음과 사람(人材)을 모으며, 사람의 결집은 또 그의 몸 닦기(修身)에 달려 있다. 그럴 때 윤석열 대통령은 과연 공적 직책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수신, 즉 국민을 대면하는 언행과 태도, 스타일과 자세, 공사 구분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의문이다. 황당하게도 최고 공직자가 사용한 모국어의 정확한 어휘가 - 의미가 아니라 -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국가의 공적 기구와 매체와 국민 여론이 온통 달라붙어 논쟁을 했어야 하니 다른 영역의 공사 구분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공적 공간에서 언급하기조차 싫지만 주술과 이성의 영역을 보자.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근대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과거의 주술과 미신과 무속(인)을 국가의 공적 결정과 영역, 논의와 언급 범주 자체로부터 단연코 절연시키는 것이었다. 근대 이행의 최소 필수 요소였다. 대통령 선거 방송 토론을 포함해 그러한 최소한의 근본 원칙마저 수시로 의심받고 논쟁적이었으니 공적 영역의 공사 구분은 말할 나위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21세기 문명국가 대한민국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공식적인 결정을 통해 드러난 공사 붕괴의 대표적인 사안은 김건희 여사 문제였다. 선출되지 않은 사인의 과도한 국정개입 자체도 문제였지만, 동시에 그러한 논란에 대처하는 대통령의 방식도 지극히 사적이었다. 과거에 더 사소한 이유로 자식들을 처벌한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엄정한 공사 구분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사실 이는 대통령 탄핵의 한 요인을 제공한 최순실 사태보다도 엄중하였다. 공적 규범과 법치의식이 붕괴되다보니 근대 민주공화국과 법치국가의 근본 중의 근본 원리, 즉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Nemo Judex in Causa Sua)는 원칙조차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과 가족이 직접 연루된 김건희 여사와 채 상병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공화국과 법치의 최소 원칙마저 무너뜨린 것이다. 그러나 내란과 탄핵소추에 이르도록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의회와 국민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대통령의 잘못된 의지와 선택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최악의 윤석열 내란 사태에 직면하여 윤석열 성공이 먼저였다는 객관적인 현실을 엄격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 집권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첫째는 적폐청산의 성공 때문이었고 둘째는 검찰개혁의 실패 때문이었다. 둘 모두 진보진영과 운동권의 숙망이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었다. 적폐청산은 문재인 정부의 제일 국정과제였다. 이를 계기로 검찰은 기구와 역할 측면에서 문재인 정부 국정의 최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분노(resentment)와 분노의 결합이자 연대였다. 즉 적폐 보수에 대한 진보진영 및 운동권의 분노와, 보수 정부에서 밀려났던 윤석열 사단의 분노가 만나서 일으킨 분노지수와 청산주의의 증폭 효과는 문재인 정부 전반을 지배하였다. 전반기는 동조로, 후반기는 충돌로.
적폐청산을 향한 운동권(運動圈) 논리와 적폐청산의 실제 칼을 쥐고 있던 검찰권(檢察權) 행사가 만난, 기괴한 이중 분노와 이중 정의감의 폭발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 조국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결합을, 검찰개혁을 위한 ‘환상적 조합’이라고 언명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과거에 노상 검찰개혁을 운위하던 진보세력이, 광장 및 의회와의 탄핵연대의 유지가 아니라, 반대로 탄핵연대의 해체를 감수하더라도 검찰과 굳게 손을 잡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라 교조적 과거청산과 흑백논리의 당연한 접합이자 귀결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수정당은 권력에 귀환하였고, 그것도 자신들과 함께 보수청산에 나섰던 검사 출신이 집권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광장의 열기를 통한 보수탄핵에도 불구하고, 보수의 집권과 검찰의 집권을 동시에 이루어 주어, 적폐청산도 검찰개혁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보수적폐 청산 이후에 검찰적폐를 청산한다? 동서의 권력 역사에서 자주 보았듯 이는 불가능한 현실이었다. 특히 민의를 통해 주기적으로 권력을 교체하는 선거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불가능하였다. 물론 반대였다면 성공하였다. 즉 탄핵에 찬성한 국민 80%와 의회 80%를 반영하여, 최소한 보수당 62명, 중도당 38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탄핵연대를 잇는 탄핵연정·개혁연정을 구축하여, 의회와 정부에 적폐과제를 추출하고 극복하는 합동기구를 만들었다면 검찰개혁은 성공하고도 남았다.
권력은 결코 추상적 조직과 제도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실질적 행사의 산물이며 결과다. 칼에는 눈이 없듯 권력에도 눈이 없다. 눈은 칼을 쥔 사람이 갖고 있다. 권력은 칼과 똑같아서 사용하는 자의 것이다. 동시에 사용할수록 커진다. 적폐청산을 통해 최고 권력으로 부상한 검찰이 검찰개혁 국면에서 순순히 권력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상이었다. 적폐청산 국면이 검찰개혁 국면으로 전이하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그 사단은 문재인 정부에 격렬하게 저항하였고, 이 저항은 국민들에게 이들을 마치 진영을 넘는 상식과 공정의 표상처럼 밀어올렸다.
여기에 덧붙여 한국 정치의 뚜렷한 구조적 특징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강고한 진영 대결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수의 반복적인 한계였다. 진영 대결은 - 진영이라는 말 자체의 뜻처럼 - 자기쪽 눈에는 악(惡)인 상대를 제압할 수만 있다면, 출신과 도덕과 과거 경력을 묻지 않는다. 중국·그리스·로마·한국·프랑스·일본을 포함해 동서의 권력투쟁에서 누천년 지속된 이른바 출노입주(出奴入主)와 입주출노(入主出奴)의 권력 현상이다. 원한 관계인 지금의 적을 제거해줄 수 있다면 원주인의 노예를 빼내어 자기 쪽의 새 주인으로 세워주는 것이다. 역사에는 이러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비록 보수 대통령 둘을 구속시키고 보수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현재의 진보를 제압하고 청산해줄 수 있다면, 진보정부 출신 검찰 수장처럼 좋은 최고의 출노의 재원은 없었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정당은 스스로 대통령 후보를 발굴하고 배출한 적이 없었다. 모두 밖으로부터의 영입이었다. 그들은 전부 야당(김영삼), 법조계(이회창), 기업(이명박), 2세(박근혜) 출신이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검찰 출신일 뿐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인간은 말을 갈아탄 현재의 소속에 더 강한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과거의 자신과 자기 진영에 대한 배반과 배신은 훨씬 더 격렬하고 잔인하다. 깊은 고전들이 보여주듯 종교와 이념, 인간관계, 정치와 국가를 넘어 이 배반성은 진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과거 선례들처럼 퇴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쪽에도 정치적 발을 딛지 못하는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동안 두 개의 공공 시스템이 작동해왔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공식적 개인 시스템과, 대통령 밖의 공공적 국가 시스템이었다. 대통령제의 장점이자 한계다. 전자는 5년 동안 국가 정점을 장악하여 후자를 진두지휘하며 변화를 주도하려 한다. 후자는 그것과 같이 가거나, 또는 그에 맞선다. 전자와 후자가 서로 긴장되게 조응할 때는 국가의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지나, 둘이 완전히 일치하거나 계속 충돌할 때는 국가가 한쪽으로 너무 쏠리거나 휘청댄다. 노태우부터 노무현까지는 전자에 근접하였다면 이명박부터 윤석열까지는 계속 충돌하는 후자에 접근한다.
특히 윤석열은 후자의 범형에 가깝다. 윤석열 내란은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가 공공성의 중심 근간인 군대와 경찰마저 사사화하고 말았다. 검찰 내에 사적 윤석열 사단을 거느리듯 최고 국가 공조직인 군과 경찰을 사사화하여 내란에 동원하였던 것이다. 최악의 이중 사사화가 아닐 수 없다. 전두환 하나회 이후 이토록 군을 특정 인맥과 출신을 고리로 사사화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윤석열 사단을 통해 검찰조직 내에 사적 인맥을 구축하여 공공성을 파괴한 데 이어, 이번 내란은 군의 정치 중립을 넘어 국가 안보와 전체 공공성의 막대한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인류 선현들이 안보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 동시에 정치로부터 가장 멀 때 가장 확고하다고 언명한 까닭이다.
결국 대통령제 리스크와 대통령 개인 리스크가 만난 최악의 산물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였다. 만약 내부의 내란사태가 조기에 진압되지 않고 악화되었을 때 휴전선 너머의 군사적 움직임으로 인해 실제 국가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았다면, 우리의 민주주의, 국제관계, 국민 심리, 대외신인도, 경제와 무역, 국가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이번 내란의 잠재적·실질적인 반국가적 파괴성과 위험성은 이리도 큰 것이었다. 그만큼 국가 전체로는 대통령 개인이 들어왔다 나간 자리가 너무도 크고 깊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위해 개인에 따른 이 위험과 편차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우리 시대의 책임이다.
대통령 한 사람의 무지와 무능, 무법과 무도가 저지른 폭거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가 입은 내상과 상처는 앞으로 참으로 길고 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내란이라는 최악으로 치달은 인물과 제도, 표피와 근본, 표출과 근원을 동시에 혁파하는 일대 장정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다음 세대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우리들의 이 참담한 공동 실패를 물려주지 않기 위한 우리 세대 전체의 공통 임무이자 소명이 아닐 수 없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0314210005048?did=NA
[메아리] 윤석열과 잃어버린 30년 (한국일보, 한준규 경제산업부문장, 2025.01.03 17:00)
물가·성장률·가계빚…윤 정부 내내 ‘최악’
경제 실패 책임 민주주의 파괴만큼 심각
거취 정리해 ‘장기불황’ 일본 전철 피해야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기록적인 가계 부채를 줄이며, 평균 소득을 늘리거나 기업 환경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지난 31개월은 한국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었다."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954일에 대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의 평가다. 앞서 포브스는 계엄을 ‘국내총생산(GDP) 킬러’로 표현하며 “이기적인 계엄 선포의 대가를 5,100만 한국 국민이 할부로 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데, 이미 계엄 이전부터 윤 대통령의 무능이 한국 경제를 위기 상황으로 몰아넣었다고 본 것이다.
포브스의 ‘뼈 때리는’ 지적이 아니더라도 윤 대통령 집권 시기만큼 ‘먹고사는 문제’가 국민들의 걱정거리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21년 359만9,000원으로 정점을 찍은 근로자 월평균 실질임금은 윤 정부 출범 이후 계속 감소(2022년 359만2,000원, 2023년 355만4,000원, 2024년 상반기 354만3,000원)했다.
실질임금이 줄어든 것은 사상 처음이었는데, 고물가 영향 탓이다. 윤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22년 물가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였던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았다. 2023년 3.6%, 2024년 2.3%로 물가상승률이 하락했지만, 기준이 되는 전년 수치가 워낙 높아 상대적으로 당해 수치가 낮아지는 기저효과 덕이 컸다. 이마저도 물가상승률이 최저 0.4%에서 최고 1.9%에 불과했던 2013~2020년과 비교하면 엄청난 고물가 시대였다. 그런데도 지난해 “물가 상승세 안정화로 대외 충격을 최소화했다”고 자찬했던 게 윤 정부다.
물가는 오르고 실질 소득은 줄어드니 쉽게 돈을 쓰지 못한다. 소비동향을 나타내는 소매판매액 지수도 공교롭게 윤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2분기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10분기 연속 마이너스인데,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장 기간 감소다. 소매판매액 지수는 백화점,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의 판매금액을 조사해 작성한다. 이 지수가 윤 정부 내내 감소했으니 그동안 국민들의 소비가 얼마나 얼어붙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내수 침체의 직격탄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향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3년 폐업 신고를 한 개인·법인 사업자는 98만6,487명으로 역대 최다였다. 지난해 1~8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19.7%로, 196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 아래로 떨어졌다. 웬만해선 자영업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환경이 된 것이다. 윤 대통령의 1호 공약 ‘소상공인·자영업자 살리기’가 무색한 결과다.
1,480원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 경제성장률 1%대 고착화, 1,913조 원을 돌파한 가계 빚…. 윤 정부의 수많은 경제지표들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나쁘거나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최악의 숫자들이다.
탄핵소추로 불확실성이 다소 걷혔다고 하지만, 포브스는 여전히 “향후 6개월 동안 한국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노력은 거의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이 일본형 장기 불황에 접어들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불법 계엄으로 파괴된 민주주의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으로 차근차근 회복을 시도할 수 있겠지만, 붕괴된 경제는 트럼프의 복귀로 예고된 ‘글로벌 쇼크’에 적응할 절대적인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런데 한국 경제에 폭탄을 터뜨린 윤 대통령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용산 관저에서 버티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경제의 ‘잃어버린 31개월’이 향후 ‘잃어버린 30년’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를 모두 파괴한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일만큼은 피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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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9949
'尹의 시간' 949일만에 멈췄다…김건희 리스크에 계엄 자충수 (중앙일보, 허진 기자, 2024.12.14 17:01)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 14일 멈췄다. 2022년 5월 10일 국회 앞마당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며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949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탄핵안 가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탄핵안 1차 표결 당일이던 7일의 ‘저자세 담화’와는 정반대였다. 새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물색하고,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를 국회에 요청하는 등 직무 수행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지만 비상계엄 선포라는 대형 사고가 출발시킨 탄핵 열차는 멈춰 세울 수 없었다.
0.73%포인트라는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직에 오른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권을 차지한 ‘초보 정치인’이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 정부의 간판인 초대 국무총리 인선 부터 야당 눈치를 보며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 한덕수를 14년 만에 다시 발탁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신세와 다름 없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사실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나름 점수도 땄다. 지난해 8월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와 그 결과물인 ‘캠프 데이비드 성명’이 대표적이다. 당시 3국 정상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도발·위협에 대해 3국이 신속하게 협의한다”고 했고, 이는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의 상징이 됐다. 강제징용 해법 제시와 셔틀 외교 복원 등 한·일 관계 정상화는 한·미 동맹 강화의 지렛대가 됐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채택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 성명’ 등 핵 억지 분야에서의 성과로 이어졌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통한 원전 생태계 복원, 한국수력원자력의 24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으로 국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왔다. 국정의 방향 그 자체보다 국정 운영의 방식이 주로 문제였다.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의 태도와 소통 방식의 문제, 인선 실패, 여권 내부의 갈등,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처신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지지율 침체와 여야 갈등 속에 국정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2년 9월 미국 방문 도중 불거진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은 임기 초반 윤 대통령의 이미지와 국정 동력의 약화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 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두고 ○○○이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논쟁이 격화했고, 상당수 국민은 대통령실의 해명을 믿지 않았다. 불신이 증폭됐다.
최대 리스크는 김건희 여사였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논란이 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뿐 아니라 2022년 9월 최재영 목사가 준 300만원짜리 디올백 수수 사건이 더해지면서 임기 내내 ‘김건희 리스크’가 따라다녔다.
지난 10월 15일 공개된 김 여사와 명태균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명태균 사건’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덮치는 계기가 됐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라는 문장에 등장한 ‘오빠’를 놓고 윤 대통령이냐, 김 여사의 친오빠냐 공방까지 벌어지며 국정의 품격이 현저하게 훼손됐다. 결정타는 지난 10월 31일 공개된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 녹취였다. 공천 개입 의혹이 짙어지면서 지난달 7일 기자회견 때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가뜩이나 소수인 여당이 끝없는 내전 상황에 휘말리며 균열을 일으킨 것도 윤석열 정부의 위기에 큰 몫을 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거푸 이끈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성상납 사건’으로 엮어 자격을 박탈시킨 게 시작이었다. 대선 승리의 밑바탕이 된 2030세대와 6070세대의 세대 연합 전선이 붕괴되면서 국정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황태자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관계는 치명적인 뇌관이었다. 갈등은 지난해 12월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한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중용해 놓고, 윤 대통령 스스로가 갈등을 키웠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서 시작된 둘의 갈등은 윤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새 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4·10 총선의 역사적 참패로 돌아왔다. 갈등은 총선 이후에도 이어졌고, 한 대표가 여당을 접수한 뒤엔 여권의 일상적인 시한 폭탄이 됐다. 그리고 결국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 결정적 이유로 작동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에 비해선 폭발력이 작았지만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역시 윤석열 정부의 큰 상처였다. 대형 참사를 겪고도 주무장관인 충암고 후배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건 불통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켰다. 해병대원 사건을 둘러싼 은폐 의혹,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통한 도피 논란 등은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개중엔 ‘좋은 의도’로 출발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온 일도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특히 그런 경우다.  4·10 총선 전 첫 추진 당시엔 여론이 호응했지만, 부작용과 국민적 우려가 커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메랑이 됐다.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문답)도 마찬가지다. 여과되지 않은 거친 태도가 국민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며 권위와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떠나겠다”며 추진한 대통령실 청사 이전도 각종 악재 속에 당초 의도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이전 비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더니 관저 이전 공사업체 선정 과정의 비리 의혹까지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임기 동안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해 모두 25차례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거대 야권과 갈등해 왔다. 이런 현실에 대한 극단적 반작용, 비상계엄 발령이란 이해할 수 없는 무리수는 직무 정지 상태로 자기 스스로 몰아넣는 자충수가 됐다.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2/14/2024121490185.html
대선승리 1000일만에 '계엄 자충수'…집권 2년 반 만에 멈춘 '尹의 시대' (TV조선 황민지 기자, 2024.12.14 20:07)
[앵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지난 3일은, 대선에서 승리한 지 1000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포함한 각종 비판을 맞닥뜨릴 때마다 소통하기보단 거칠게 대응한단 비판을 받았고, 끝내 계엄 선포로 탄핵을 맞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난 2년 7개월을, 황민지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022년 5월 10일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헌법 준수를 약속하며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정 사업은 집무실 이전이었습니다.
2022년 3월 20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360억 넘는 예산을 들여 군 핵심 기관들까지 연쇄 이동시키며 용산 시대를 열었지만, 막상 공언했던 소통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논란 이후 언론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2022년 9월 27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이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야당을 포함한 국회와 대화와 협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1987년 이후 국회가 문을 여는 날 불참한 첫 대통령이 된 겁니다.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때도 국회를 가지 않고 국무총리를 대신 보냈습니다.
지난달 7일 "박수 그냥 한 두 번만 쳐주면 되는데 그거는 기본이고 악수도 거부하고 야유도 하고 '대통령 그만두지 여기 왜 왔어요' 이런 사람부터 뭐 참…. 그런데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첫 회동을 가진 건 지난 4월, 취임 720일만이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도 갈등 관계를 이어오며 정국 혼란의 한 변수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고, 이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대응 또한 논란이 됐습니다.
2월 7일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그리고 지난 3일 밤 내려진 비상계엄 선포.
지난 3일 "종북·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 대통령이 집권 2년 반 동안 보여준 거친 국정 운영 스타일이 끝내 사상 초유의 파문을 일으켰다는 평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73112.html
윤석열의 3년…공정과 상식 걷어차고 ‘헌정 파괴’로 폭주 (한겨레, 이승준 기자, 2024-12-14 19:00)
윤석열 탄핵안 가결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인 2019년 10월 자신이 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고 했다고 한다. 2022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난 2년7개월은 ‘헌법주의자’와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친 자기부정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곳곳에서 퇴행을 보이던 한국 사회는 급기야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45년 전 ‘군사독재의 시간’으로 돌아갈 뻔했다.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퇴행은 일단 멈췄다. 이날 저녁 대통령실에 탄핵소추 의결서가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했지만, 이날 국회 주변을 가득 메운 200만(주최 쪽 추산)의 인파는 탄핵소추안 가결에 환호성을 질렀다.
‘V0’ 앞에서 무너진 공정과 상식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서 야당 대선 후보가 된 그의 정치적 자산은 문재인 정부와 불화하며 앞세운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였다.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와 이후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극한 갈등으로 정치적 몸집을 불려온 그는 2021년 3월 총장직을 박차고 나온 뒤 같은 해 6월29일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썼다.
그러나 국민의힘 대선 후보(2021년 11월)가 되고 이듬해 3월10일 0.73%포인트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5월10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자신의 상징이자 자산이었던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특히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 앞에서 공정과 상식은 늘 무력했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검찰의 ‘특혜 조사’ 논란 속에 기소를 피해갔다. 그는 ‘김건희 특검법’엔 세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시중엔 김 여사가 ‘브이 제로’(V0)라는 말이 돌았다. 자신의 직권남용 논란과 연관된 ‘채 상병 특검법’도 연거푸 거부했다. 윤 대통령에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인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3월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를 임명한 것은 공정·상식·법치를 모두 내팽개친 상징적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사건 핵심인물인 명태균씨의 폭로로 드러난 국정농단 정황도 마찬가지다.
통합 뭉개고 불통과 좌충우돌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연히 국정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국회와의 소통과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 첫해부터 당무에 개입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쫓아냈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야당과 자기를 비판하는 세력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 ‘공산 전체주의 세력’ 등으로 공격했다. 4·10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뒤 4월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뒤 처음으로 만나 일대일 회담을 했지만 평행선만 달렸다. 이후엔 다시 만나지 않았다.
‘불통’은 국민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임 첫해 만 5살 취학연령 하향, 지난해 6월 수학능력 시험 ‘킬러문항 배제’ 지시, 의대 증원 등 체계적인 준비와 추진 전략 없이 던진 정책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4대 개혁’(연금·의료·노동·교육) 추진을 강조했지만 사회적 숙의 과정 없는 개혁 논의는 공허했다.
공정·상식에 더해 국익과 실용도 국정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념에 치우친 외교와 좌충우돌 국정 운영에서 빛바랜 구호가 됐다. 나라 안팎의 여러 우려에도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 대결로 기운 외교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고, ‘강제동원’ 인정 없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행사 등으로 ‘굴욕외교’ 논란만 남았다.
불통과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에 윤 대통령은 귀를 닫았다.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2022년 9월),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등에 제기된 의문과 국민적 분노에 대한 공식 사과에 인색했다. 오히려 ‘문화방송 전용기 탑승 배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전격 중단’ 등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공무원 탄핵 추진, 예산 삭감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야당을 향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국헌 문란 세력”이라고 적개심을 드러냈고,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헌법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정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3일 밤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다수 국민은 그가 야당을 향해 한 말을 고스란히 그에게 돌려주고 있다.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를 멈추기 위해 수사기관은 ‘내란 피의자’로 입건했고,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입장문을 내어 “저는 지금 잠시 멈춰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에 따른 국가적 혼란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8년 전 이맘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기각을 기대했고, 그의 열성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는 거리로 나와 헌재를 압박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의 12일 담화 직후 용산 대통령실 주변은 ‘탄핵 반대 화환’으로 가득 찼고, 8년 전의 그 ‘태극기’와 후예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깊은 상흔이 하나 더 추가됐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4159791&code=11121600&cp=nv
비상계엄 ‘최악의 패착’… 취임 2년7개월 만에 자멸한 尹 (국민일보, 이경원 기자, 2024-12-15 01:00)
巨野와 불화… 정치력 부재 극복 못해
국회의원 체포 지시 등 정황 치명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때까지 모든 직무와 권한이 정지됐다. “지난 2년 반 오로지 국민만 바라봤다”는 윤 대통령은 이날 탄핵소추 자체로 사실상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었다”는 비상계엄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는지의 여부를 헌재로부터 낱낱이 심판받게 된다. 헌재가 윤 대통령의 국민 신임 배반을 판단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된다.
헌법주의자를 자임하던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자마자 비상계엄 선포 행위의 반헌법성을 판단받을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됐다. 취임 이후 한결같이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내세웠으나 이와 완전한 대척점에 선 비상계엄을 선택, 한순간에 자기 손으로 탄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개인의 법적 권리를 말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자체가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 손실이라고 과거 헌재는 개탄했었다.
현대사의 비극 격인 대통령 탄핵소추를 낳은 원인은 윤 대통령과 야당의 뿌리깊은 불화, 그리고 이를 해결할 정치력의 부재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나 범죄자 집단으로 인식하며 올 들어 국회 개원식이나 시정연설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겠다는 지난 12일 담화에서도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 크게 대립하기 시작한 분기점은 그가 검찰총장이던 2019년 하반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꼽힌다. 문재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잇따라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 수사 이후 인사권이 배제되고 징계를 청구받았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저항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졌다. 이 무렵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전까지는 검찰에 박수를 쳐 왔는데, 근자의 일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면야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해에 바로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인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자신을 신임한 정권에도 칼을 겨눌 수 있는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연이어 거부하며 자신이 말하는 공정과 법치에 금이 가게 했다. ‘가짜뉴스’ ‘반국가세력’을 빈번하게 언급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단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치적 극단화, 여론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태도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로 이어졌다. 취임 직후 50%를 웃돌았던 지지율은 취임 80일 만에 20%대로 떨어졌고,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실정을 탓하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이후에는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로 더욱 큰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이후에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민의를 받들겠다는 모습이 실질적으로 감지되진 못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렇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이 있었느냐”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이성적 흥분 상태’에서 행한 것으로 보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이대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체포를 지시하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방송사를 접수하려 했다는 의혹, 음모론 수준인 부정선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정황 등은 이미 그에게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진지한 반성과 설득보다는 강성 지지층의 결집만을 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재의 아픔이 남은 국민들에게 비상계엄을 꺼내든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한 정치권 인사는 “야당은 원래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원로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1312120003403?did=NA
오만·불통 점철된 2년 반...윤석열은 몰락을 자초했다 (한국일보, 윤현종 기자, 2024.12.15 07:00)
"의회 소통, 야당 협치" 당선 인사 무색
거부권만 총 25회, 6공화국 최다 기록
무리한 개혁 추진, 국민 생명 위협
편협한 사고 갇혀 소통 외면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후 2년 반 동안 대화나 타협은 실종됐다. 야당 등 정치적 상대를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으로 몰았고 의대 증원 등 주요 정책도 자기주장만 고집했다.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초유의 비상계엄이란 자책골을 넣은 후 결국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근본 원인은 불통과 오만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불통은 갑작스러운 집무실 용산 이전에서 시작됐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거액을 들여 굳이 이전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을 일축한 것은 물론, 이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호소마저 묵살하고 한 달 내 이전을 고집했다.
인사도 불통의 상징이었다. 취임 후 대통령실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까지 '친정'이었던 검찰 출신으로 요직을 채웠다. 대통령이 된 지 약 3개월 만에 지지율이 24%까지 내려갔지만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정치적 국면 전환이라든가 지지율 반등 때문에 인사 쇄신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그러한 기조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만 15명을 넘겼다.
의회와의 소통도 외면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 그 시작이었다. 같은 해 12월 1일엔 노동계 등이 내놓은 노란봉투법 등 4개의 법안에 대해 한꺼번에 거부권을 내기도 했다.
친인척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요구에도 거부권을 남발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 가족 또는 친인척 비리가 있으면 특검 등을 통해 단죄받게 한 것과 대조된다. '김건희 특검법'은 지난해 12월 28일, 올해 9월 19일 2차례나 국회 본회의를 넘었지만 연거푸 거부권에 막혔다. 윤 대통령이 행사한 재의요구권은 무려 25차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부권 행사 최다 기록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은 국민의 일상까지 위협했다.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을 밀어붙인 의료개혁 추진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목전에 둔 4월 초 의료계와 소통하겠다며 TV 담화를 했지만 "집단행동을 하지 말고 늘어날 의대생 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가져오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의 반응은 냉담했고 현장을 떠난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여당은 22대 총선에서 개헌저지선(100석)을 겨우 넘긴 의석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총선 참패 후에도 불통과 오만의 리더십은 이어졌다. 총선 직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자신의 국정방향이 옳다는 고집은 계속됐다. 김 여사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제한 없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정확히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무례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입장이었다. 바꾼 것이라곤 대통령 부부의 휴대폰뿐이었다.
시대착오적 이념에 경도된 사고방식도 재임기간 내내 바뀌지 않았다. 그가 취임식 때 초청한 한 극우 유튜버는 4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지금까지 이어왔다. 급기야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계엄군이 진입한 이유가 "부정선거로 치러진 총선 결과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상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법적 구성요건마저 무시한 계엄을 선포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결과는 '탄핵'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913198
'강골'에서 '불통'으로…결국 탄핵 심판대 (SBS뉴스, 박수진 기자, 2024.12.15 21:16)
<앵커> 탄핵 위기에 놓인 윤 대통령, 검사 시절에는 강골 검사로 주목을 받았었죠. 대통령에 된 뒤에는 이 강골이 불통과 독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지금까지, 윤 대통령 그간의 주요 발언들을 박수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3년 여주지청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 한마디는 살아 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팀장으로 부활했습니다.
[윤석열/당시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 :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문재인 정부는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며 적폐 수사를 맡겼는데, 칼날이 조국 당시 법무장관 일가로까지 향하면서 문 정권과 충돌했고, 결국 검찰총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윤석열/당시 검찰총장 (2021년 3월 4일) : 우리 사회가 오래 쌓아 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보수 진영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만든 반전의 계기가 됐고, 부침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20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인사와 이념 논란, 김건희 여사 감싸기 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7월 5일 출입기자단 문답) :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자 다음 질문.]
불편한 질문이 이어지자 출근길 문답도 일방 중단했습니다. 급기야 전 국민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던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느닷없이 선포됐고, 계엄 관련자들의 잇단 고백과 폭로에도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 12일 대국민담화) :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에도 사과는 없었고,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어제 대국민담화) :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합니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52%로 출발한 윤 대통령 지지율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 취임 뒤 최저치인 11%까지 떨어졌습니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274
[계엄의 씨앗] ‘제왕적’ 망상, 949일간 노조 때린 윤석열 (매노, 이재 기자, 2024.12.16 07:30)
친기업 노동정책 추진하다 막히자 ‘노사 법치’ … “파업은 북핵” 위험한 인식에도 박수친 여론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지난 14일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정권은 2022년 5월10일 출범 이후 949일 내내 노동과 반목했다. ‘일할 자유’를 주장하며 주 69시간 근로시간 확대를 추진하고,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희화하며 실업급여 삭감을 추진했다. 특수고용직 노조에는 공정거래법을 들이밀었고 노조에는 장부 공개를 요구했다. 원청과 교섭하게 해 달라는 요구는 묵살했다. 세계적인 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 찾기’는 지웠다. 자신의 반대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며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려 한 12·3 내란사태의 씨앗은 출범 초기부터 싹텄다.
조선하청·화물노동자 ‘때리기’ 학습효과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은 이른바 ‘노사 법치주의’로 대변된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 초반인 2022년 6월14일 시작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1차 파업에서 단 한 차례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을 시사하는 합의를 했을 뿐 이후 줄곧 노동정책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물론 그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같은해 6월2일부터 7월22일까지 전개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조선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과 관련해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과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하청노동자가 조선소를 점거한 것은 불법이라며 엄정 대응을 강조했고 경력 투입까지 고려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싸움은 잠잠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입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최근 조선하청 노동자 파업에 선거브로커인 명태균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는 하청노동자 파업 뒤 ‘원·하청 상생협약’을 체결했는데 다시 임금체불 등 문제가 불거졌다. 노조를 배제하고 기업 선의에 기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책의 한계를 드러냈다. 지회는 올해 다시 파업 중이다.
또 다른 ‘엄정 대응’은 화물노동자 파업이다. 같은해 6월과 11월 파업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윤석열 정권에 학습효과를 줬다. 11월 파업을 ‘엄정 대응’한 윤석열 정부는 집권 직후 3개월 만에 30%선이 무너졌던 지지율이 반등했고, 이후 ‘노조를 때리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해 12월 2주차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 33%로 올랐는데, 긍정평가 이유 1위가 노조 대응(16%)이었다. 공정(12%)이 뒤를 이었다.
두 사안은 모두 특수고용직과 간접고용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과 처우 인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매도하고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집권 1년 만에 건설노동자 분신
금속노련 위원장·사무처장 폭력 연행
그 결과 사람이 죽었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건설노조를 향한 모진 수사, ‘건폭몰이’의 결과다. 그해 윤석열 정권은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집회를 열거나 산업안전 문제를 관리당국에 고발한 것은 모두 공갈·강요 행위가 됐다. 3천명 가까운 건설노동자가 수사를 받았다.
지난해 노동절인 5월1일 결국 사달이 났다.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맡았던 양회동씨가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고 이튿날 사망했다.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짧은 유감을 표했지만 건설노동자 수사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는 무감했다. 조선 하청노동자와 화물노동자 파업을 박살 낸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023년 1월 1주차 37%로 2022년 7월 1주차(32%)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긍정 평가 1위가 노조 대응(14%)이었다. 그해 2월 4주차에도 똑같이 37%를 기록했는데 역시 노조 대응(24%)이 1위로 꼽혔다. 고 양 3지대장의 분신이 전해진 이후 지난해 5월 1주차 긍정평가는 33%였고 지지율 1위는 35%가 꼽은 외교였지만, 노조 대응(4%)은 여전히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이 시기 민주노총은 사회 각계 최초로 집권 1년이 막 지난 윤석열 정권을 향해 ‘퇴진’ 구호를 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스코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던 김만재 당시 금속노련 위원장이 같은해 5월30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끌려갔다. 다음날에는 같은 장소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현 위원장)이 경찰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철수로 이어졌다. 계엄령 이전 노조탄압의 서사다.
법인세 인하 등 친자본 정책 꾸준히 시도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을 친기업정책으로 규정한다. 노동시간을 주당 69시간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근로시간 개편안과 고소득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말자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최저임금 인상 억제 등이다. 최저임금 인상 억제 외에는 제대로 추진된 것은 없다. 노동정책은 아니지만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각종 규제완화도 대표적 친자본 정책으로 꼽힌다.
노조는 친기업정책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담화에서 29분 동안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며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을 거듭 썼는데, 이보다 앞서 노조파업을 북핵에 비유하는 등 이미 유사한 행태를 반복했다. 노조회계 공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근로감독, 노조의 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 등은 직접적으로 노조를 타격한 조치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윤석열 정권은 친자본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된 노조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했다”며 “자신을 제왕적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에 반대한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계엄이라는 위헌적 조치로 분쇄하려는 것과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62137005
“윤, 소통 대신 거부 일관 ‘불통의 2년 반’…탄핵에도 과제 남아” (경향, 배시은·강한들 기자, 2024.12.16 21:37)
‘거부권’으로 거부당했던 이들의 목소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총 25차례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 최다 기록이다. 어렵사리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해 국회로 반려돼 최종 폐기되거나 천신만고 끝에 되살아난 법안에는 당사자들의 울분과 피땀이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은 “소통 대신 거부만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탄핵안이 통과됐어도 과제는 쌓여 있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권혁주 전농 사무총장
“농업 책임지지 않는 국가
쌀값은 임의로 낮추면서 기후 재난 대응도 안 해”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1호 법안이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 탄핵이 계엄 때문에 ‘갑자기’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권 사무총장은 “계엄을 계기로 촛불이 폭발한 것도 맞지만 지난달부터 퇴진 총궐기를 이어오며 정권의 폭력적인 태도를 규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는 쌀값을 포함해 농산물 가격을 임의로 낮추고 기후재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농업을 책임지지도, 위기 대응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곡법은 탄핵정국에서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부 완화된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법안은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앞서 여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법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정부가 안을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전세사기 특별법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 위원장
“목소리 들으려는 태도 그 자체가 없었던 정부
지금도 전세사기 여전”
지난 5월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야는 개정안을 논의했다. 새로 마련된 법안에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이 빠지고 피해자가 피해 주택에서 최대 10년간 살 수 있게 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는 ‘불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전세사기 문제는 곧 민생 문제인데, 당시 정쟁으로 거부권이 행사된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컸다”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지난 8월 다시 통과됐다. 안 위원장은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탄핵이 된다고 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이 모두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세사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간호법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이제까지 정부 의료정책
당사자들과 논의보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결정”
‘간호법 제정안’ 역시 지난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가로막혔다가 지난 8월 다시 통과됐다. 간호법 제정을 위해 첫발을 뗀 지 19년 만의 일이었다. 간호법에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간호인력의 처우 개선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간호정책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정작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이 심화하자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간호법 찬성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때까지 정부의 의료정책은 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보다는 사실상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비판했다. 송 부위원장은 “간호법 통과 이후 진료지원 인력 시범사업을 정부에서 시행하며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며 “간호법이 통과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정부가 정책 내용을 많이 보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김형수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장
“노동자 권리 투쟁에 ‘불법’ 딱지 붙이는 사회
유지될 수 없을 것”
윤 대통령은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 지난해 12월과 올해 8월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정당한 파업을 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노란봉투법 운동에 불을 붙인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이 됐지만, 하청노동자의 삶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 올해 한화오션에서만 하청노동자 5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1일까지 21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는 데 대한 항의였다. 사측은 2022년 파업과 관련해 47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지회장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김 지회장은 “원·하청 차별을 유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불법’ 딱지를 붙이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다시 노조법 2·3조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4법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공정방송 제도들 무너져
이사 추천 다양화했다면 ‘파우치 사장’ 안 나왔다”
윤 대통령은 방송4법(방통위설치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했다.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추천 주체를 다양화해 정치권의 입김을 줄이자는 취지의 법안들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박민·박장범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사장에 임명되면서 정권에 비판적인 인기 시사프로그램이 정식 개편 절차 없이 줄줄이 폐지됐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어떤 사장이 오더라도 마음대로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공정방송 제도들이 무너졌다”며 “정치적 후견주의를 덜어내고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다양화했다면 극단적인 사장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시민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입김이 일방적으로 반영되거나, 정치권에 휘둘리는 공영방송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1225/130724600/2
[사설]권위주의로 퇴행 기도한 尹, 뭘 하려고 했나 (동아일보, 2024-12-25 23:30)
윤석열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12·3 계엄 선포와 당시 국방장관 등 핵심 가담자들의 망동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윤 대통령이 재임 2년 7개월여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엇이었나.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헌법이 딛고 서 있고, 현실에선 국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민주와 공화의 정신과는 먼 것이었다.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걸 꿈꿨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한밤중 무장 병력을 국회에 보냈고, 계엄 해제 표결에 나선 의원들을 끌어내도록 지시했다.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문 부숴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특전사령관의 말은 국헌문란 내란 행위를 입증하는 듯하다. 법적 판단 이전에, 무력으로 국회를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퍼 나르는 부정 선거론에 사로잡혔다는 점은 두렵기까지 하다.
국회를 비효율 집단으로 보던 대통령은 올 총선 이후엔 아예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니 협치하라는 조언과 당부를 그토록 외면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나 국회나, 모두 민심의 대리자란 사실을 망각했다. 윤 대통령 본인은 2022년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이겼을 뿐인데,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해 버렸다. 대통령이 계엄의 밤에 경찰청장에게 건넨 체포 대상 명단에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전직 대법원장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결정적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한 장면이 많았다. 대통령은 올 들어 국회에 발을 끊었다. 국회 개원식 불참은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이고,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은 11년 관행을 깬 것이었다. 국군의날 군사 퍼레이드를 10년 만에 부활시켰고,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실시한 것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이다. 정치 시계를 45년 전으로 돌렸다는 말이 틀린 게 없다. 대선 후보 시절 했던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전두환이)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공직 생활 26년을 했다지만, 조직 운영은 민주적이지 못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정보에 취해 절제를 잃고 회의 때 발언을 독점했다. 국무위원들이 스스로를 “고양이 앞의 쥐”라고 부를 정도로 위압적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축인 법치도 무너뜨렸다. 야당엔 가혹하고 아내에겐 관대한 이중 잣대로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총선 개입 혐의로 기소해 놓고도, 자신은 아내와 함께 브로커 명태균 씨와 어울리며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녹음까지 등장했다. 이젠 기자회견 때 거짓 해명한 것이 들통나게 생겼다.
윤 대통령이 자초한 파국은 계엄 때문만은 아니다. 몸에 밴 독단, 자기 생각만 중요할 뿐 참모건, 야당이건, 여론이건 귀 닫아 버리는 낡은 스타일이 쌓이다가 둑이 터진 쪽에 가깝다. 지금의 헌법과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최정점에 선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면모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