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을 계기로 윤석열 정권 2년 반을 평가하는 기사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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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9949
'尹의 시간' 949일만에 멈췄다…김건희 리스크에 계엄 자충수 (중앙일보, 허진 기자, 2024.12.14 17:01)
윤석열 대통령의 시간이 14일 멈췄다. 2022년 5월 10일 국회 앞마당에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며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949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지난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탄핵안 가결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태도를 드러냈다. 탄핵안 1차 표결 당일이던 7일의 ‘저자세 담화’와는 정반대였다. 새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물색하고,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를 국회에 요청하는 등 직무 수행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지만 비상계엄 선포라는 대형 사고가 출발시킨 탄핵 열차는 멈춰 세울 수 없었다.
0.73%포인트라는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직에 오른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정치 입문 1년도 안 돼 대권을 차지한 ‘초보 정치인’이 국회에서 압도적 의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을 상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새 정부의 간판인 초대 국무총리 인선 부터 야당 눈치를 보며 노무현 정부 마지막 총리 한덕수를 14년 만에 다시 발탁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는 신세와 다름 없었다.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사실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나름 점수도 땄다. 지난해 8월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와 그 결과물인 ‘캠프 데이비드 성명’이 대표적이다. 당시 3국 정상은 “공동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지역적 도전·도발·위협에 대해 3국이 신속하게 협의한다”고 했고, 이는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의 상징이 됐다. 강제징용 해법 제시와 셔틀 외교 복원 등 한·일 관계 정상화는 한·미 동맹 강화의 지렛대가 됐다. 지난 7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채택한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 성명’ 등 핵 억지 분야에서의 성과로 이어졌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통한 원전 생태계 복원, 한국수력원자력의 24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으로 국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간 동안 윤 대통령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왔다. 국정의 방향 그 자체보다 국정 운영의 방식이 주로 문제였다.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 윤 대통령의 태도와 소통 방식의 문제, 인선 실패, 여권 내부의 갈등, 대통령 주변 사람들의 처신이 자주 도마에 올랐다. 지지율 침체와 여야 갈등 속에 국정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22년 9월 미국 방문 도중 불거진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은 임기 초반 윤 대통령의 이미지와 국정 동력의 약화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국회에서 이 ××들이 승인 안 해 주면 ○○○ 쪽팔려서 어떡하나”를 두고 ○○○이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 논쟁이 격화했고, 상당수 국민은 대통령실의 해명을 믿지 않았다. 불신이 증폭됐다.
최대 리스크는 김건희 여사였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논란이 됐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뿐 아니라 2022년 9월 최재영 목사가 준 300만원짜리 디올백 수수 사건이 더해지면서 임기 내내 ‘김건희 리스크’가 따라다녔다.
지난 10월 15일 공개된 김 여사와 명태균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명태균 사건’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덮치는 계기가 됐다.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라는 문장에 등장한 ‘오빠’를 놓고 윤 대통령이냐, 김 여사의 친오빠냐 공방까지 벌어지며 국정의 품격이 현저하게 훼손됐다. 결정타는 지난 10월 31일 공개된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 녹취였다. 공천 개입 의혹이 짙어지면서 지난달 7일 기자회견 때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가뜩이나 소수인 여당이 끝없는 내전 상황에 휘말리며 균열을 일으킨 것도 윤석열 정부의 위기에 큰 몫을 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연거푸 이끈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를 ‘성상납 사건’으로 엮어 자격을 박탈시킨 게 시작이었다. 대선 승리의 밑바탕이 된 2030세대와 6070세대의 세대 연합 전선이 붕괴되면서 국정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황태자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의 관계는 치명적인 뇌관이었다. 갈등은 지난해 12월 한 대표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한 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중용해 놓고, 윤 대통령 스스로가 갈등을 키웠다. 김건희 여사 문제에서 시작된 둘의 갈등은 윤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 새 도약의 발판을 만들기 위해 사활을 걸었던 4·10 총선의 역사적 참패로 돌아왔다. 갈등은 총선 이후에도 이어졌고, 한 대표가 여당을 접수한 뒤엔 여권의 일상적인 시한 폭탄이 됐다. 그리고 결국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 결정적 이유로 작동했다.
박근혜 정부 때의 세월호 참사에 비해선 폭발력이 작았지만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역시 윤석열 정부의 큰 상처였다. 대형 참사를 겪고도 주무장관인 충암고 후배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경질하지 않은 건 불통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켰다. 해병대원 사건을 둘러싼 은폐 의혹, 이 과정에서 불거진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을 통한 도피 논란 등은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개중엔 ‘좋은 의도’로 출발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정권에 큰 부담으로 되돌아온 일도 있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특히 그런 경우다. 4·10 총선 전 첫 추진 당시엔 여론이 호응했지만, 부작용과 국민적 우려가 커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부메랑이 됐다. 소통 강화를 목적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 문답)도 마찬가지다. 여과되지 않은 거친 태도가 국민들에게 그대로 노출되며 권위와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역효과를 낳았다.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떠나겠다”며 추진한 대통령실 청사 이전도 각종 악재 속에 당초 의도가 전혀 부각되지 못했다. 이전 비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더니 관저 이전 공사업체 선정 과정의 비리 의혹까지 불거졌다.
윤 대통령은 임기 동안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해 모두 25차례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으로 거대 야권과 갈등해 왔다. 이런 현실에 대한 극단적 반작용, 비상계엄 발령이란 이해할 수 없는 무리수는 직무 정지 상태로 자기 스스로 몰아넣는 자충수가 됐다.
https://news.tvchosun.com/site/data/html_dir/2024/12/14/2024121490185.html
대선승리 1000일만에 '계엄 자충수'…집권 2년 반 만에 멈춘 '尹의 시대' (TV조선 황민지 기자, 2024.12.14 20:07)
[앵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했던 지난 3일은, 대선에서 승리한 지 1000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포함한 각종 비판을 맞닥뜨릴 때마다 소통하기보단 거칠게 대응한단 비판을 받았고, 끝내 계엄 선포로 탄핵을 맞았습니다. 윤 대통령의 지난 2년 7개월을, 황민지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2022년 5월 10일 "선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헌법 준수를 약속하며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첫 국정 사업은 집무실 이전이었습니다.
2022년 3월 20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제왕적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께 돌려드리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360억 넘는 예산을 들여 군 핵심 기관들까지 연쇄 이동시키며 용산 시대를 열었지만, 막상 공언했던 소통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논란 이후 언론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2022년 9월 27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이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야당을 포함한 국회와 대화와 협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22대 국회 개원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1987년 이후 국회가 문을 여는 날 불참한 첫 대통령이 된 겁니다.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때도 국회를 가지 않고 국무총리를 대신 보냈습니다.
지난달 7일 "박수 그냥 한 두 번만 쳐주면 되는데 그거는 기본이고 악수도 거부하고 야유도 하고 '대통령 그만두지 여기 왜 왔어요' 이런 사람부터 뭐 참…. 그런데 이거는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첫 회동을 가진 건 지난 4월, 취임 720일만이었습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도 갈등 관계를 이어오며 정국 혼란의 한 변수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잇따라 제기됐고, 이를 대하는 윤 대통령의 대응 또한 논란이 됐습니다.
2월 7일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그리고 지난 3일 밤 내려진 비상계엄 선포.
지난 3일 "종북·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윤 대통령이 집권 2년 반 동안 보여준 거친 국정 운영 스타일이 끝내 사상 초유의 파문을 일으켰다는 평가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73112.html
윤석열의 3년…공정과 상식 걷어차고 ‘헌정 파괴’로 폭주 (한겨레, 이승준 기자, 2024-12-14 19:00)
윤석열 탄핵안 가결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인 2019년 10월 자신이 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고 했다고 한다. 2022년 3월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지난 2년7개월은 ‘헌법주의자’와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친 자기부정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 동안 곳곳에서 퇴행을 보이던 한국 사회는 급기야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비상계엄 선포로 45년 전 ‘군사독재의 시간’으로 돌아갈 뻔했다.
14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며 퇴행은 일단 멈췄다. 이날 저녁 대통령실에 탄핵소추 의결서가 전달되면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윤 대통령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했지만, 이날 국회 주변을 가득 메운 200만(주최 쪽 추산)의 인파는 탄핵소추안 가결에 환호성을 질렀다.
‘V0’ 앞에서 무너진 공정과 상식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서 야당 대선 후보가 된 그의 정치적 자산은 문재인 정부와 불화하며 앞세운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였다.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수사와 이후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극한 갈등으로 정치적 몸집을 불려온 그는 2021년 3월 총장직을 박차고 나온 뒤 같은 해 6월29일 대선 도전을 선언했다. 출마 선언문에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썼다.
그러나 국민의힘 대선 후보(2021년 11월)가 되고 이듬해 3월10일 0.73%포인트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5월10일 대통령에 취임한 뒤 자신의 상징이자 자산이었던 공정과 상식을 스스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특히 부인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 앞에서 공정과 상식은 늘 무력했다.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은 검찰의 ‘특혜 조사’ 논란 속에 기소를 피해갔다. 그는 ‘김건희 특검법’엔 세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시중엔 김 여사가 ‘브이 제로’(V0)라는 말이 돌았다. 자신의 직권남용 논란과 연관된 ‘채 상병 특검법’도 연거푸 거부했다. 윤 대통령에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인들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3월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오스트레일리아 대사를 임명한 것은 공정·상식·법치를 모두 내팽개친 상징적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사건 핵심인물인 명태균씨의 폭로로 드러난 국정농단 정황도 마찬가지다.
통합 뭉개고 불통과 좌충우돌
윤 대통령은 임기 내내 여소야대 상황에 놓여 있었다. 당연히 국정을 원활히 운영하려면 국회와의 소통과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취임 첫해부터 당무에 개입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를 쫓아냈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야당과 자기를 비판하는 세력을 싸잡아 ‘반국가 세력’ ‘공산 전체주의 세력’ 등으로 공격했다. 4·10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뒤 4월29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취임 뒤 처음으로 만나 일대일 회담을 했지만 평행선만 달렸다. 이후엔 다시 만나지 않았다.
‘불통’은 국민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취임 첫해 만 5살 취학연령 하향, 지난해 6월 수학능력 시험 ‘킬러문항 배제’ 지시, 의대 증원 등 체계적인 준비와 추진 전략 없이 던진 정책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4대 개혁’(연금·의료·노동·교육) 추진을 강조했지만 사회적 숙의 과정 없는 개혁 논의는 공허했다.
공정·상식에 더해 국익과 실용도 국정 원칙으로 내세웠지만 이념에 치우친 외교와 좌충우돌 국정 운영에서 빛바랜 구호가 됐다. 나라 안팎의 여러 우려에도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 대결로 기운 외교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고, ‘강제동원’ 인정 없는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행사 등으로 ‘굴욕외교’ 논란만 남았다.
불통과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에 윤 대통령은 귀를 닫았다.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논란(2022년 9월), 이태원 참사(2022년 10월) 등에 제기된 의문과 국민적 분노에 대한 공식 사과에 인색했다. 오히려 ‘문화방송 전용기 탑승 배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전격 중단’ 등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일 때가 많았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공무원 탄핵 추진, 예산 삭감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야당을 향해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 “국헌 문란 세력”이라고 적개심을 드러냈고,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헌법은 비상계엄 선포 요건을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로 정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3일 밤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다수 국민은 그가 야당을 향해 한 말을 고스란히 그에게 돌려주고 있다.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그를 멈추기 위해 수사기관은 ‘내란 피의자’로 입건했고,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입장문을 내어 “저는 지금 잠시 멈춰서지만 지난 2년 반 국민과 함께 걸어온 미래를 향한 여정은 결코 멈춰 서서는 안 될 것”이라며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에 따른 국가적 혼란에 대한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8년 전 이맘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재의 탄핵 기각을 기대했고, 그의 열성 지지층인 ‘태극기 부대’는 거리로 나와 헌재를 압박했다. “저는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는 윤 대통령의 12일 담화 직후 용산 대통령실 주변은 ‘탄핵 반대 화환’으로 가득 찼고, 8년 전의 그 ‘태극기’와 후예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깊은 상흔이 하나 더 추가됐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4159791&code=11121600&cp=nv
비상계엄 ‘최악의 패착’… 취임 2년7개월 만에 자멸한 尹 (국민일보, 이경원 기자, 2024-12-15 01:00)
巨野와 불화… 정치력 부재 극복 못해
국회의원 체포 지시 등 정황 치명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윤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때까지 모든 직무와 권한이 정지됐다. “지난 2년 반 오로지 국민만 바라봤다”는 윤 대통령은 이날 탄핵소추 자체로 사실상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었다”는 비상계엄은,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는지의 여부를 헌재로부터 낱낱이 심판받게 된다. 헌재가 윤 대통령의 국민 신임 배반을 판단하면 윤 대통령은 파면된다.
헌법주의자를 자임하던 윤 대통령은 임기 반환점을 돌자마자 비상계엄 선포 행위의 반헌법성을 판단받을 탄핵심판 피청구인이 됐다. 취임 이후 한결같이 자유와 법치의 가치를 내세웠으나 이와 완전한 대척점에 선 비상계엄을 선택, 한순간에 자기 손으로 탄핵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윤 대통령은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개인의 법적 권리를 말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통령의 탄핵소추 자체가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 손실이라고 과거 헌재는 개탄했었다.
현대사의 비극 격인 대통령 탄핵소추를 낳은 원인은 윤 대통령과 야당의 뿌리깊은 불화, 그리고 이를 해결할 정치력의 부재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반국가세력이나 범죄자 집단으로 인식하며 올 들어 국회 개원식이나 시정연설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겠다는 지난 12일 담화에서도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리기 위해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야당과 크게 대립하기 시작한 분기점은 그가 검찰총장이던 2019년 하반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가 꼽힌다. 문재인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잇따라 맡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이 수사 이후 인사권이 배제되고 징계를 청구받았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된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저항해 검찰총장직을 내던졌다. 이 무렵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종전까지는 검찰에 박수를 쳐 왔는데, 근자의 일로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면야 내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직을 내던진 해에 바로 정치에 입문했고, 이듬해인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국민의힘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자신을 신임한 정권에도 칼을 겨눌 수 있는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가 된 이후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연이어 거부하며 자신이 말하는 공정과 법치에 금이 가게 했다. ‘가짜뉴스’ ‘반국가세력’을 빈번하게 언급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단화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치적 극단화, 여론보다 신념을 중시하는 태도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로 이어졌다. 취임 직후 50%를 웃돌았던 지지율은 취임 80일 만에 20%대로 떨어졌고,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실정을 탓하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이후에는 “박절하지 못했다”는 말로 더욱 큰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이후에는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으나 민의를 받들겠다는 모습이 실질적으로 감지되진 못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이렇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이 있었느냐”는 말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비이성적 흥분 상태’에서 행한 것으로 보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윤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이대로 마무리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체포를 지시하고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방송사를 접수하려 했다는 의혹, 음모론 수준인 부정선거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했다는 정황 등은 이미 그에게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도 진지한 반성과 설득보다는 강성 지지층의 결집만을 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독재의 아픔이 남은 국민들에게 비상계엄을 꺼내든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집권여당 대표를 지낸 한 정치권 인사는 “야당은 원래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원로는 “비극적인 일이지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21312120003403?did=NA
오만·불통 점철된 2년 반...윤석열은 몰락을 자초했다 (한국일보, 윤현종 기자, 2024.12.15 07:00)
"의회 소통, 야당 협치" 당선 인사 무색
거부권만 총 25회, 6공화국 최다 기록
무리한 개혁 추진, 국민 생명 위협
편협한 사고 갇혀 소통 외면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나 이후 2년 반 동안 대화나 타협은 실종됐다. 야당 등 정치적 상대를 척결해야 할 '반국가세력'으로 몰았고 의대 증원 등 주요 정책도 자기주장만 고집했다. 지지율은 신경 쓰지 않았다. 초유의 비상계엄이란 자책골을 넣은 후 결국 탄핵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쓴 근본 원인은 불통과 오만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의 첫 불통은 갑작스러운 집무실 용산 이전에서 시작됐다. 멀쩡한 청와대를 두고 거액을 들여 굳이 이전해야 하느냐는 반대론을 일축한 것은 물론, 이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국방부의 호소마저 묵살하고 한 달 내 이전을 고집했다.
인사도 불통의 상징이었다. 취임 후 대통령실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국가정보원까지 '친정'이었던 검찰 출신으로 요직을 채웠다. 대통령이 된 지 약 3개월 만에 지지율이 24%까지 내려갔지만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선 "정치적 국면 전환이라든가 지지율 반등 때문에 인사 쇄신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반발했다. 그러한 기조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만 15명을 넘겼다.
의회와의 소통도 외면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난해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이 그 시작이었다. 같은 해 12월 1일엔 노동계 등이 내놓은 노란봉투법 등 4개의 법안에 대해 한꺼번에 거부권을 내기도 했다.
친인척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요구에도 거부권을 남발했다. 역대 대통령 모두 가족 또는 친인척 비리가 있으면 특검 등을 통해 단죄받게 한 것과 대조된다. '김건희 특검법'은 지난해 12월 28일, 올해 9월 19일 2차례나 국회 본회의를 넘었지만 연거푸 거부권에 막혔다. 윤 대통령이 행사한 재의요구권은 무려 25차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부권 행사 최다 기록이다.
윤 대통령의 불통은 국민의 일상까지 위협했다.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을 밀어붙인 의료개혁 추진이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목전에 둔 4월 초 의료계와 소통하겠다며 TV 담화를 했지만 "집단행동을 하지 말고 늘어날 의대생 수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가져오라"며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계의 반응은 냉담했고 현장을 떠난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여당은 22대 총선에서 개헌저지선(100석)을 겨우 넘긴 의석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총선 참패 후에도 불통과 오만의 리더십은 이어졌다. 총선 직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지만 자신의 국정방향이 옳다는 고집은 계속됐다. 김 여사 의혹을 해소하겠다며 제한 없는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정확히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무례하다'는 게 대통령실의 입장이었다. 바꾼 것이라곤 대통령 부부의 휴대폰뿐이었다.
시대착오적 이념에 경도된 사고방식도 재임기간 내내 바뀌지 않았다. 그가 취임식 때 초청한 한 극우 유튜버는 4월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지금까지 이어왔다. 급기야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에 계엄군이 진입한 이유가 "부정선거로 치러진 총선 결과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상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윤 대통령의 사고방식은 법적 구성요건마저 무시한 계엄을 선포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결과는 '탄핵'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913198
'강골'에서 '불통'으로…결국 탄핵 심판대 (SBS뉴스, 박수진 기자, 2024.12.15 21:16)
<앵커> 탄핵 위기에 놓인 윤 대통령, 검사 시절에는 강골 검사로 주목을 받았었죠. 대통령에 된 뒤에는 이 강골이 불통과 독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지금까지, 윤 대통령 그간의 주요 발언들을 박수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기자> 지난 2013년 여주지청장이던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수사 당시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습니다.
[윤석열/당시 여주지청장 :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 한마디는 살아 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팀장으로 부활했습니다.
[윤석열/당시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 : 검사가 수사권 가지고 보복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
문재인 정부는 윤 대통령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며 적폐 수사를 맡겼는데, 칼날이 조국 당시 법무장관 일가로까지 향하면서 문 정권과 충돌했고, 결국 검찰총장에서 물러났습니다.
[윤석열/당시 검찰총장 (2021년 3월 4일) : 우리 사회가 오래 쌓아 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런 행보는 보수 진영 대선주자로 떠오르게 만든 반전의 계기가 됐고, 부침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20대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취임식) :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취임 후 인사와 이념 논란, 김건희 여사 감싸기 등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지만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2년 7월 5일 출입기자단 문답) :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 자 다음 질문.]
불편한 질문이 이어지자 출근길 문답도 일방 중단했습니다. 급기야 전 국민을 충격과 혼란에 빠뜨렸던 불법적인 비상계엄이 느닷없이 선포됐고, 계엄 관련자들의 잇단 고백과 폭로에도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지난 12일 대국민담화) :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에도 사과는 없었고,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어제 대국민담화) :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을까 답답합니다. 저는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52%로 출발한 윤 대통령 지지율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 취임 뒤 최저치인 11%까지 떨어졌습니다.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5274
[계엄의 씨앗] ‘제왕적’ 망상, 949일간 노조 때린 윤석열 (매노, 이재 기자, 2024.12.16 07:30)
친기업 노동정책 추진하다 막히자 ‘노사 법치’ … “파업은 북핵” 위험한 인식에도 박수친 여론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지난 14일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정권은 2022년 5월10일 출범 이후 949일 내내 노동과 반목했다. ‘일할 자유’를 주장하며 주 69시간 근로시간 확대를 추진하고,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희화하며 실업급여 삭감을 추진했다. 특수고용직 노조에는 공정거래법을 들이밀었고 노조에는 장부 공개를 요구했다. 원청과 교섭하게 해 달라는 요구는 묵살했다. 세계적인 플랫폼 노동자의 ‘사용자 찾기’는 지웠다. 자신의 반대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매도하며 제왕적 권력을 휘두르려 한 12·3 내란사태의 씨앗은 출범 초기부터 싹텄다.
조선하청·화물노동자 ‘때리기’ 학습효과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은 이른바 ‘노사 법치주의’로 대변된다. 윤석열 정권은 집권 초반인 2022년 6월14일 시작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1차 파업에서 단 한 차례 안전운임제 일몰 연장을 시사하는 합의를 했을 뿐 이후 줄곧 노동정책에서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물론 그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 결과 같은해 6월2일부터 7월22일까지 전개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조선 하청노동자의 51일간 파업과 관련해 4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과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다. 윤 대통령은 하청노동자가 조선소를 점거한 것은 불법이라며 엄정 대응을 강조했고 경력 투입까지 고려했다.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싸움은 잠잠했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입법에 다시 불을 지폈다. 최근 조선하청 노동자 파업에 선거브로커인 명태균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나며 또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는 하청노동자 파업 뒤 ‘원·하청 상생협약’을 체결했는데 다시 임금체불 등 문제가 불거졌다. 노조를 배제하고 기업 선의에 기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책의 한계를 드러냈다. 지회는 올해 다시 파업 중이다.
또 다른 ‘엄정 대응’은 화물노동자 파업이다. 같은해 6월과 11월 파업한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윤석열 정권에 학습효과를 줬다. 11월 파업을 ‘엄정 대응’한 윤석열 정부는 집권 직후 3개월 만에 30%선이 무너졌던 지지율이 반등했고, 이후 ‘노조를 때리면 지지율이 오른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해 12월 2주차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 33%로 올랐는데, 긍정평가 이유 1위가 노조 대응(16%)이었다. 공정(12%)이 뒤를 이었다.
두 사안은 모두 특수고용직과 간접고용 노동자 근로환경 개선과 처우 인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며 매도하고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집권 1년 만에 건설노동자 분신
금속노련 위원장·사무처장 폭력 연행
그 결과 사람이 죽었다.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건설노조를 향한 모진 수사, ‘건폭몰이’의 결과다. 그해 윤석열 정권은 건설현장의 불법행위를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건설노조가 조합원 채용을 요구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집회를 열거나 산업안전 문제를 관리당국에 고발한 것은 모두 공갈·강요 행위가 됐다. 3천명 가까운 건설노동자가 수사를 받았다.
지난해 노동절인 5월1일 결국 사달이 났다.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맡았던 양회동씨가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고 이튿날 사망했다. 이정식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짧은 유감을 표했지만 건설노동자 수사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는 무감했다. 조선 하청노동자와 화물노동자 파업을 박살 낸 윤석열 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2023년 1월 1주차 37%로 2022년 7월 1주차(32%)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긍정 평가 1위가 노조 대응(14%)이었다. 그해 2월 4주차에도 똑같이 37%를 기록했는데 역시 노조 대응(24%)이 1위로 꼽혔다. 고 양 3지대장의 분신이 전해진 이후 지난해 5월 1주차 긍정평가는 33%였고 지지율 1위는 35%가 꼽은 외교였지만, 노조 대응(4%)은 여전히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이 시기 민주노총은 사회 각계 최초로 집권 1년이 막 지난 윤석열 정권을 향해 ‘퇴진’ 구호를 들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스코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던 김만재 당시 금속노련 위원장이 같은해 5월30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끌려갔다. 다음날에는 같은 장소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현 위원장)이 경찰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며 연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한국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철수로 이어졌다. 계엄령 이전 노조탄압의 서사다.
법인세 인하 등 친자본 정책 꾸준히 시도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권의 노동정책을 친기업정책으로 규정한다. 노동시간을 주당 69시간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한 근로시간 개편안과 고소득 노동자에게는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말자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최저임금 인상 억제 등이다. 최저임금 인상 억제 외에는 제대로 추진된 것은 없다. 노동정책은 아니지만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각종 규제완화도 대표적 친자본 정책으로 꼽힌다.
노조는 친기업정책을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됐다. 윤 대통령은 12월 담화에서 29분 동안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며 “반국가세력”이라는 표현을 거듭 썼는데, 이보다 앞서 노조파업을 북핵에 비유하는 등 이미 유사한 행태를 반복했다. 노조회계 공시,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근로감독, 노조의 탈퇴 금지 규약에 대한 시정명령 등은 직접적으로 노조를 타격한 조치다. 이병훈 중앙대 명예교수(사회학)는 “윤석열 정권은 친자본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된 노조를 적으로 규정하고 공격했다”며 “자신을 제왕적 존재로 인식하고 자신에 반대한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해 계엄이라는 위헌적 조치로 분쇄하려는 것과 닮아 있다”고 지적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412162137005
“윤, 소통 대신 거부 일관 ‘불통의 2년 반’…탄핵에도 과제 남아” (경향, 배시은·강한들 기자, 2024.12.16 21:37)
‘거부권’으로 거부당했던 이들의 목소리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총 25차례 행사했다. 민주화 이후 대통령 중 최다 기록이다. 어렵사리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해 국회로 반려돼 최종 폐기되거나 천신만고 끝에 되살아난 법안에는 당사자들의 울분과 피땀이 담겨 있었다. 윤 대통령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은 “소통 대신 거부만 있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탄핵안이 통과됐어도 과제는 쌓여 있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권혁주 전농 사무총장
“농업 책임지지 않는 국가
쌀값은 임의로 낮추면서 기후 재난 대응도 안 해”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1호 법안이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사무총장은 윤 대통령 탄핵이 계엄 때문에 ‘갑자기’ 온 것은 아니라고 했다.
권 사무총장은 “계엄을 계기로 촛불이 폭발한 것도 맞지만 지난달부터 퇴진 총궐기를 이어오며 정권의 폭력적인 태도를 규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는 쌀값을 포함해 농산물 가격을 임의로 낮추고 기후재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농업을 책임지지도, 위기 대응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곡법은 탄핵정국에서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부 완화된 양곡법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예정대로라면 이 법안은 17일 국무회의에 상정된다. 앞서 여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했다. 법적으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정부가 안을 정치적 부담이 크다.
전세사기 특별법
안상미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 위원장
“목소리 들으려는 태도 그 자체가 없었던 정부
지금도 전세사기 여전”
지난 5월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야는 개정안을 논의했다. 새로 마련된 법안에는 ‘선 구제 후 회수’ 방식이 빠지고 피해자가 피해 주택에서 최대 10년간 살 수 있게 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인정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안상미 전세사기·깡통주택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는 ‘불통’으로 일관했다고 말했다. 안 위원장은 “전세사기 문제는 곧 민생 문제인데, 당시 정쟁으로 거부권이 행사된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컸다”며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지난 8월 다시 통과됐다. 안 위원장은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탄핵이 된다고 해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고통이 모두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전세사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간호법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
“이제까지 정부 의료정책
당사자들과 논의보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결정”
‘간호법 제정안’ 역시 지난해 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가로막혔다가 지난 8월 다시 통과됐다. 간호법 제정을 위해 첫발을 뗀 지 19년 만의 일이었다. 간호법에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고 간호인력의 처우 개선을 심의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간호정책심의위원회’를 운영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지만 정작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법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의·정 갈등으로 의료공백이 심화하자 정부는 이를 메우기 위해 간호법 찬성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때까지 정부의 의료정책은 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보다는 사실상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됐다”고 비판했다. 송 부위원장은 “간호법 통과 이후 진료지원 인력 시범사업을 정부에서 시행하며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너무 넓어졌다”며 “간호법이 통과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정부가 정책 내용을 많이 보완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김형수 금속노조 조선하청지회장
“노동자 권리 투쟁에 ‘불법’ 딱지 붙이는 사회
유지될 수 없을 것”
윤 대통령은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에 대해 지난해 12월과 올해 8월 연거푸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범위를 넓히고, 정당한 파업을 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노란봉투법 운동에 불을 붙인 대우조선해양은 한화오션이 됐지만, 하청노동자의 삶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 올해 한화오션에서만 하청노동자 5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형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11일까지 21일간 단식 투쟁을 했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며 단체교섭에 나서지 않는 데 대한 항의였다. 사측은 2022년 파업과 관련해 47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지회장은 업무방해 등 혐의로 형사재판도 받고 있다. 김 지회장은 “원·하청 차별을 유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에 ‘불법’ 딱지를 붙이는 사회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다시 노조법 2·3조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송4법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
“공정방송 제도들 무너져
이사 추천 다양화했다면 ‘파우치 사장’ 안 나왔다”
윤 대통령은 방송4법(방통위설치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모조리 거부권을 행사했다. 공영방송 이사 수를 늘리고, 추천 주체를 다양화해 정치권의 입김을 줄이자는 취지의 법안들이었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공사(KBS)에서는 박민·박장범 등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사장에 임명되면서 정권에 비판적인 인기 시사프로그램이 정식 개편 절차 없이 줄줄이 폐지됐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어떤 사장이 오더라도 마음대로 방송을 장악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공정방송 제도들이 무너졌다”며 “정치적 후견주의를 덜어내고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다양화했다면 극단적인 사장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윤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시민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입김이 일방적으로 반영되거나, 정치권에 휘둘리는 공영방송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1225/130724600/2
[사설]권위주의로 퇴행 기도한 尹, 뭘 하려고 했나 (동아일보, 2024-12-25 23:30)
윤석열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12·3 계엄 선포와 당시 국방장관 등 핵심 가담자들의 망동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국민들에게 근본적인 의문이 생겼다. 윤 대통령이 재임 2년 7개월여 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대한민국의 정치는 무엇이었나. 대통령이 보여준 것은 헌법이 딛고 서 있고, 현실에선 국민 희생으로 쌓아 올린 민주와 공화의 정신과는 먼 것이었다.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가는 걸 꿈꿨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한밤중 무장 병력을 국회에 보냈고, 계엄 해제 표결에 나선 의원들을 끌어내도록 지시했다. “의결 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문 부숴라”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특전사령관의 말은 국헌문란 내란 행위를 입증하는 듯하다. 법적 판단 이전에, 무력으로 국회를 짓밟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일부 극우 유튜버들이 퍼 나르는 부정 선거론에 사로잡혔다는 점은 두렵기까지 하다.
국회를 비효율 집단으로 보던 대통령은 올 총선 이후엔 아예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듯하다. 그러니 협치하라는 조언과 당부를 그토록 외면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이나 국회나, 모두 민심의 대리자란 사실을 망각했다. 윤 대통령 본인은 2022년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이겼을 뿐인데,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해 버렸다. 대통령이 계엄의 밤에 경찰청장에게 건넨 체포 대상 명단에는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 전직 대법원장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결정적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과거로 되돌아가는 듯한 장면이 많았다. 대통령은 올 들어 국회에 발을 끊었다. 국회 개원식 불참은 1987년 개헌 이후 처음이고,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 불참은 11년 관행을 깬 것이었다. 국군의날 군사 퍼레이드를 10년 만에 부활시켰고,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실시한 것은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이다. 정치 시계를 45년 전으로 돌렸다는 말이 틀린 게 없다. 대선 후보 시절 했던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전두환이)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공직 생활 26년을 했다지만, 조직 운영은 민주적이지 못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정보에 취해 절제를 잃고 회의 때 발언을 독점했다. 국무위원들이 스스로를 “고양이 앞의 쥐”라고 부를 정도로 위압적이었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핵심 축인 법치도 무너뜨렸다. 야당엔 가혹하고 아내에겐 관대한 이중 잣대로 검찰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을 총선 개입 혐의로 기소해 놓고도, 자신은 아내와 함께 브로커 명태균 씨와 어울리며 국민의힘 공천에 개입한 녹음까지 등장했다. 이젠 기자회견 때 거짓 해명한 것이 들통나게 생겼다.
윤 대통령이 자초한 파국은 계엄 때문만은 아니다. 몸에 밴 독단, 자기 생각만 중요할 뿐 참모건, 야당이건, 여론이건 귀 닫아 버리는 낡은 스타일이 쌓이다가 둑이 터진 쪽에 가깝다. 지금의 헌법과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최정점에 선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면모가 대한민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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