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아직 가고픈 곳이 많은데... (해외여행)

2023년 몽골 홉스골 여행기 3 - 9월14일(쳉헤르 온천, 카라코룸)

새벽길 2023. 10. 17. 23:32

○ 23.09.14(목) 

몽골에서의 둘째날이다.
새벽에는 날씨가 어떤지 잘 몰랐다.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흐린 것은 확실했다.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을까 우려가 되었다.
5시반에 일어나서 6시반부터 온수가 나온다니 그걸 기다렸다가 샤워를 하기로 했다.
암튼 화장실에 갔더니 어르신들이 벌써 세면을 하고 있더라. 아마도 관광버스로 온 분들 같았다. 역시 나이가 들면 잠이 없어지는 건가.
6시반이 조금 못되었을 때 샤워를 하러 나섰다. 먼저 화장실에 간 후 샤워를 했는데, 온수가 제대로 안나오는 듯해서 당황했다. 6시반부터 온수가 나온다고 했는데, 왜 이러나 싶었다. 샤워꼭지를 이리저리 돌려보니 방향이 반대였다. 그래서 다행히 샤워는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세면도구를 넣어온 비닐봉투에 바디워시를 분명 가지고 온 것 같았는데, 안보이더라. 당황할 수밖에... 하지만 일회용 비누를 가져와서 그걸로 비누칠. 그렇게 샤워실에서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7시 20분이다. 밖은 다시 비가 오고 있었고...ㅠㅠ 

아침식사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바안고비에서의 아침. 게르가 다 똑같아서 우리 숙소를 찾기 힘들었는데, 문 앞에 내놓은 맥주 캔박스로 우리 숙소를 확인했다.

이번 몽골 여행의 동행들. 모자이크가 넘 약한가?
짐을 다 넣으니 차량 뒷공간이 꽉 찼다.

아무래도 이날 낙타를 타기는 어려울 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7월 고비사막, 홍고링 엘스에 갔을 때에는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낙타체험은 대충했더라도 오히려 모래썰매 타는 건 괜찮았는데, 미니사막에서도 그리 되면 안될텐데 염려를 했다.

우리들이 올라타기를 기다리고 있는 낙타들.

하지만 낙타를 타는 데에는 날씨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낙타 타는 걸 주저하는 이도 있었으나, 모두 올라탔고 30여분 정도를 낙타를 타고 이동했고, 낙타를 올라탄 채 사진도 찍었다. 저번 7월에는 낙타 타는 게 나 스스로도 상당히 힘들었고 위험해보였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탔다는 데 의미가 있을 뿐 탑승감이 좋거나 더 타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이제 몽골의 옛 수도인 카라코룸으로 이동. 몽골의 옛 수도 터전이라 할 수 있는 카라코룸(Хархорин)에서 에르덴 조 사원(Эрдэнэ Зуу хийд)에 들렀다. 이는 1585년에 지어져 18세기에 재건되었다가 1939년에 일부가 소실된 티베트 불교 수도원이다. 내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하였지만, 촬영금지 표시판도 없고 해서 다들 사진을 찍더라. 우리는 가이드가 함께 하면서 설명을 해주면서 주의를 줘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가는 길에 잠시 쉰 곳의 푸세식 화장실. 갈 만한 곳이 못 된다.

사실 중국이나 한국, 일본의 절이나 사원과 비교해보면 소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건축물도 몽골의 다른 곳에선 없고, 몽골 하면 유목민 생활만을 떠올리고 이런 것조차 생각하지 못한 이들에겐 인상적이라 할 만하다. 일부러 들를 필요는 없지만, 울란바토르에서 쳉헤르 온천에 가는 길이라면 멈춰서 들여다봐도 좋을 듯하다.

촬영금지라고 하기 전에 모르고 찍은 것.

관람을 마치고 나서 카라코룸의 킹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한시가 넘은 시각. 식당은 물론 화장실도 깨끗하고 양고기도 잡내가 나지 않고 맛있다. 여기는 피자가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러 고기가 함께 나오는 음식을 먹었다. 그것도 먹을만했다.

계속 포장도로를 달리다가 Цэнхэр сум 캠핑장 근처에서 쳉헤르 온천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로 접어들었다. 포장도로로 가면서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게 되면 정말 힘들 거라고 계속 말했는데도 다들 설마 하더라. 하지만 25km 정도 되는 쳉헤르 온천 가는 비포장도로는 정말 악마의 길이었다. 비까지 와서 길이 엉망이었고, 평소 차량이 다니던 길도 골이 너무 깊게 파여서 쉽사리 지나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숙소까지 25km 되는 길을 두 시간여 만에 도착했다. 
게다가 숙소 바로 앞도 차량이 지나가기 힘들어 조금 떨어진 곳에 차량을 세우고 짐을 숙소로 옮겼다.
우리가 묵을 곳은 Duut Resort Mongolia(Дуут ресорт жуулчны бааз)라는 리조트였다. 각 리조트마다 온천이 있는 듯한데, 듀트 리조트 또한 온도가 제각기 다른 3개의 실외온천이 있었다. 
ㄱ은 전날 마신 보드카 때문인지 컨디션이 안좋아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골아떨어졌다. 숙소는 비 때문에 다른 곳보다 그리 좋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었다. 귀찮아서 교체 요구는 하지 않았다.

난 도착해서 저녁식사하기 전까지 온천욕을 했다. 한 시간 정도 온천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다양한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울란바토르의 한국학교에서 온 교사 3명과 아이들 3명, 해외여행 도중에 몽골에 들른 커플들 등. 물론 우리 일행도 함께였다. 대부분 한국인이었고, 몽골인은 별로 없었다.
많은 이들이 쳉헤르 온천을 추천하는데, 난 추천할 정도는 아니었다. 몽골에서도 온천을 즐길 수 있구나 하는 정도?

온천욕을 하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 또한 색다른 체험이다. 몽골 로컬 맥주인 알탄 고비는 상당히 맛있는 편이다.

저녁식사 후에 남성 숙소는 ㄱ이 잠들어 있어서 여성 숙소로 이동하여 술자리를 가졌다. 이날은 ㄴ이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와인과 로컬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각종 안주도 함께... 
항상 그렇듯이 이런 술자리는 너무 즐겁다. 난 술꾼인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생각난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난로에 끊여먹은 라면도 맛있어보였다. 난 이날 라면을 먹지 않았다.
화장실과 식당. 식당에 가서 직원에게 와인을 따달라고 했다.

여행에서 이날처럼 일찍 잠에 든 건 오랜만인 듯하다. 전날 마신 보드카로 인해 시달린 ㄱ을 빼고 나머지 4명이서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7시에 식사를 하고 7시반에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자르갈지구르까지 7시간, 도중에 식사 및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10시간 이상 소요될 듯하여 일찍 서두른 거다.
비가 오는 상황에서 비포장도로를 어두운 밤길에 가는 건 넘 위험한 듯 보였다. 그래서 운전기사가 모두에게 화장실 문제 등으로 쉬는 일이 없도록 이날은 술을 자제하라고까지 했다. 그래도 이날 와인 한병을 ㄴ과 마시고 맥주 한캔을 마셨다. 처음에는 맥주가 세 캔밖에 남지 않았나 싶었으나, 내가 싸놓은 게 따로 10캔 정도 있더라. 한 동안 마트는 따로 들르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도록 버너에 맞는 가스를 구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