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엄쉬엄 가는 길/시, 소설도 보고

송경동,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새벽길 2022. 8. 3. 00:19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하면서는
한진 노동자들이 조남호 회장과 교섭하며
자신들 정리해고 철회뿐만 아니라
정규직인 자신들보다 우선해고된 1500여명의 비정규직과
필리핀 수빅조선소에 고용되어 있다는
2만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 권리와 관련된 문제를
의제로 삼아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조남호는 수빅조선소로 수주 물량을 빼돌려
한진중공업의 일거리를 없애 만든 인위적인 경영상 위기를
정리해고 명분으로 삼았다. 그런 필연적인 연유를 떠나서도
처지가 같은 노동자들끼리 함께 살기를 모색하는 것
난 그게 온당한 노동자들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꿈꾸는 소리는 하지 말라 했다
 
박근혜의 노동3권 개악에 대항해
'을들의 국민투표' 운동을 할 때는
정부를 참칭해 대통령선거 전국 투표소 수인
1만 4천개소를 조직해보자 했다
민주노총 총파업과 노농빈이 중심이 된 민중총렬기에 더해
시민사회 전체가 참여할 수 있는 주요 전략으로 제안되었다
황당했는지 별반 얘기들이 없었다
벗들과 함께 2500개소까지는 만들어본 듯하다
1차 민중총켤기 때 경찰 물대포에 백남기 농민이
뇌사상태에 빠지며 조성된 공안정국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고 나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
 
박근혜 퇴진 광화문 캠핑촌을 할 때 꿈은
2011년 세계 자본의 중심인 뉴욕 월가에서
1퍼센트의 금융자본주의에 맞선 99퍼센트의 저항운동을 외쳤던
주코티 공원 텐트촌을 상상하며
광화문광장에서부터 청와대 앞 도로까지를
분노한 사람들의 텐트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꿈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이 겨울에 누가 여름용 텐트를 젊어지고 나오겠냐
명백한 불법농성을 공권력이 가만히 있겠냐
하지만 이 역시 나처럼 꿈꾸기와 전복을 좋아하는
벗들이 있어 배낭을 메고 나갈 수 있었다
결국 야심 찼던 퇴진촌 택지분양에 실패해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아래에 세운
모델하우스 규모 텐트촌에 만족해야 했지만
광장상설무대, 촛불기원탑, 광장극장 '블랙텐트', 
궁핍현대미술광장, 광장신문발행위원회, 광장토론위원회, 마을회관, 
마을진료소, 새마음애국튀근혜자율청소봉사단 등을 둔
작은 꼬뭔은 만들어본 듯하다
 
그때마다 운동권 내부들로부터도
그렇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하지 말라는 질책과
힐난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것 있는가
이제 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
 
이 시는 창작과 비평 191호(2021년 봄)에 실렸다. 그리고 이 시를 제목으로 한 시집이 나왔다. 물론 아직 이 시집을 사보진 못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에 송경동 시인의 인터뷰가 실렸길래 이를 담아오면서 다른 관련기사도 옮겨온다. 이번 여름엔 헌책방 가서 SF소설만 사보는 게 아니라 이 시집을 사서 읽어야겠다. 
그러고 보니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이후로 송경동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지 못했구나. 발제문, 연구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와 논문, 그리고 예외적으로 SF소설들 몇 개만 읽지 말고 시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 보선이가 쓴 시집도 사놓고 읽질 못했네. 읽을 건 많구나.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8011119001
[인터뷰] “쓰여선 안 될” 추모시, 송경동의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이름 없이 쓰러져간 삶의 이야기 (경향, 김종목 기자, 2022.08.01 11:19)

송경동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엔 실명(實名)과 활동명이 많이 나온다. 대부분 죽은 자들 이름이다. 김용균, 백남기, 황유미 같은 이름에다 ‘혁이’, ‘숲속홍길동’ 같은 별명이 이어진다.
숲속홍길동은 “발전소 정규직 노동자로 혼자 잘 사는 게/ 미안하다고 그만두고 나와선/ <노동의 소리>에서 현장 영상 활동가”(‘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중)로 살다 생활고 등으로 죽었다. 죽기 전 재산 3만 원으로 소주를 사 “뇌를 마비시켰다”고 한다. 마지막 남긴 e메일엔 1만 원도 2만 원도 좋으니 조금씩만 부쳐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혁이는 용산참사현장, 서울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 KTX 비정규직 승무원 투쟁, 2008년 촛불시민운동 등에 참여했다. 여인숙 달방에서 주인 핸드폰을 빌려 돈을 조금만 부쳐달라는 말을 남기곤 세상을 떠났다.
송경동은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된 채 이름 없이 쓰러져간 사람들의 삶의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20년 동안 사람들 보고 싶어서, 사회를 알고 싶어서 늘 현장의 사람들을 쫓아다녔다. (죽은 이들은) 그곳에서 늘 나를 가르쳐준 사람들이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 명사처럼 어떤 아픔이나 어떤 꿈을 상징할 수 있겠다 싶었다”고 했다. 시집 제5부는 추모 시만 모았다.
그간 추모 시를 100편 가량 썼다고 한다. 대부분은 송경동이 알던 사람들이다. 노동운동, 사회운동 현장에서 함께 활동했다. 정서적 교감도 나눴다. 이들의 죽음을 불러내 생애를 다시 복기해 시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의 삶과 죽음, 아픔과 고통이 쌓여나가는 듯했다.
“삶보다 죽음에 관해 숙고했죠. 그 시간 동안 죽음 속에서 산 거예요. 이미 죽은 사람, 죽겠다는 사람, 단식이나 고공 농성을 하며 죽음을 불사하는 사람들 곁에서 산 거죠.” 이들의 죽음이 부당하고,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점에서 송경동은 추모 시가 “다시 쓰여선 안될 시”라고 말한다.
시를 좇으며 살지는 않았다. 여러 투쟁 현장 사람들과 수년, 10여 년을 넘는 시간을 함께 했는데, 각각의 현장에 관해 발표한 시가 서너 편 정도뿐이다. 시는 가장 큰 위안을 주는 친구다. 기운이 빠지거나 맥이 풀릴 때 시를 쓴다. “모든 푸념과 아픔을 받아주는 게 시”라고 했다.
네 번째 시집인 <꿈꾸는 소리…>엔 자성과 반성의 시를 많이 넣었다. 그는 “청년 시절 그래도 맑고 투명했는데, 지금은 세사에 찌들고 속화되는 것 같다. 열정도 식는 듯하다. (어떤 사안에) 기계적으로 다가간다. 학습도 게을리한다. 아픔과 교감하는 능력도 좀 떨어진 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시로 표현했다.
“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 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 눈곱만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 더 많아진 원숭이// 자신이 어떤 좁디좁은 철망 속에 다시 갇혔는지도 모른 채/ 몸집만 커다래진”(‘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 중).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중).
자본,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 사그라든 건 아니다. 문제의식은 더 깊어지고 비판의 날은 더 각이 섰다. ‘돼지열병’에선 사회적 참사나 천재지변에서도 ‘00주’로 베팅하는 한국 주식 자본주의 문제를 동지들의 죽음과 연계해 제기했다.
“누군가는 비명에 스러져갈 때 어떤 이들의 먹튀통장엔/ 천문학적인 단기수익이 빼곡히 들어찼다”.
이제 노동, 자본, 계급, 재벌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문인은 손꼽을 정도다. 유명 문인일수록 더 그렇다. 김용균의 죽음 때 산재 문제를 계속 지적한 건 보수로 분류되던 김훈 정도였다. 이른바 ‘이명박근혜 정권’ 때 여러 사안에 목소리를 높이던 ‘진보 문인’들은 문재인 정권 이후 노동과 자본 같은 한국 사회 근본 문제는 침묵한다. 대신 정파와 진영을 옹호하는 언어를 쏟아냈다.
송경동은 일관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 문제를 줄곧 직시했다. 모두의 평화를 막는 게 자본주의 체제와 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선의를 표방하는 기만적 이들도 결국 같은 세력이다. 또 다른 기득권이 된 이들의 내로남불과 패권주의를 지적한 시가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다.
“촛불혁명이 요구한 폐정개혁 100대 과제는/ 다시 저들의 또 다른 패권과/ 내로남불의 기득권과 특권/ 나태와 모멸과 협잡과 직무유기 속에 빠져/ 형체도 없군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소설과 철학의 기원’에선 촛불집회 무대에 서려는 유명 철학자와 카메라에 잡히려는 소설가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송경동은 “전체 사회가 자본의 세상이 됐다. 지금 더 극악한 시대로 가면서 사람들의 삶은 깨지고, 소외는 더 깊어진다. 조직이나 집단 힘이 없는 상태에서 개개인들은 굉장히 아프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응하는 작가들 층이 엷어진 것을 두곤 “작가들의 연대 정신을 어떻게 더 넓히고, 연대 공간을 확보할지, 자본주의 거대한 물살을 거스를 대안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송경동 시는 쉽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며 문학을 공부할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의 감각이나 정서, 사상, 감정이 전혀 반영이 안 된 작품을 보면서 소외감을 느끼고, 괜스레 마음에 상처를 느끼곤 했다. 글이란 건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그 뜻을 알고, 쉽게 접해야 한다고 그때부터 생각했다”고 말했다. “상징이나 비유 같은 게 많이 들어간,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학적이고 해독할 수 없는 글은 문학이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그에게 문학은 “불의와 모순 현장을 정직하게 증언”하는 것이고, 시 쓰기는 “쉬운 말로 인간과 세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헌신의 마음”을 담는 것이다.
2011년 낸 산문집 제목은 <꿈꾸는 자 잡혀간다>였다. “꿈은 지금은 소박해진 것 같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고, 아프지 않고, 소박하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세계를 살면 좋겠다”고 했다. “생명이 고통, 착취 받거나 소외되지 않고 주어진 생명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요원해 보인다. 송경동은 낙관을 경계하지만, 비관에 빠지지도 않았다. “언젠가 이 세상의 모순은 극복될 것”이라는 전망은,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중)라는 달관한 듯하면서도 굽히지 않으려는 의지와 맞닿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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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건강은 괜찮으냐고 사람들이 자꾸 묻는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끌려가는 일보다
밥을 굶어야 하는 일이 늘었다. 그게 오히려 고됐다.
단식만 도합 71일을 했으니 29일만 더 채우면
마늘도 쑥도 먹지 않고 정진한 나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이 들어갈수록
그게 좀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난 곡류와 단백질만을 섭취하며 자라오지 않았다.
대다수 인류가 실현하는 끊임없는 사랑과 노동과 헌신,
그 선한 힘을 나눠 받으며 이만큼이나마 자라왔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모든 생명과 물질들에게 감사드린다.
 
…얼마 전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이 발견되었는데
129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에렌델’이라 한다.
빛의 속도로 가도 129억년이 걸린다는 머나먼 곳.
내가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믿어주면, 고맙겠다.
 
2022년 4월 송경동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40883.html
‘투사 시인’ 송경동의 꿈 (한겨레, 최재봉 선임기자, 2022-04-29 04:59)
[한겨레BOOK]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송경동 지음 l 창비 l 1만1000원
‘투사 시인’ 송경동의 네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싸움의 현장에서 쓰였다.
“자결한 수많은 이들의 영결식장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추모시를 읽는 게/ 일상이기도 했지”(‘‘결’자해지’ 부분)
시집에는 유성기업 조합원 한광호의 자결,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황유미 추모제,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추모제, 세월호 참사 추모제, 백남기 농민 추도식,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영결식, 촛불 항쟁 소신공양 정원 스님 추모, 종로고시원 쪽방 희생자들 추모, 재야 투사 백기완 영결식 등에 즈음해 쓴 추모시들이 여럿 들어 있다. 전국노점상대회, 평화의 소녀상 건립,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30주년, 인권 운동가 박래군 석방 촉구 문화제,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 복직 등을 다룬 시들도 함께 들었다. 시의 말미에는 해당 사안에 관한 설명을 각주로 달아 놓아 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죽은 자는 있는데/ 죽인 자는 없었다/ 사라진 자는 있는데/ 감춘 자는 나타나지 않았다”(‘가는 길 험난하여도’ 부분)
“이 불의한 세상은/ 어떻게 세정해야 할까/ 어떤 방진복을 입어야/ 우리의 삶은 안전할 수 있을까”(‘다른 세계를 상상하라’ 부분)
치열한 싸움과 비통한 애도의 현장에 온몸을 던져 참예하며 그는 슬픔과 분노를 변화의 질료로 삼고자 한다. 때로는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부분)라며 결기를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목소리에 대한 명상’), 그의 바탕에는 어디까지나 시인의 심성이 깔려 있다. 그의 시 ‘혜화경찰서에서’를 떠오르게 하는 다음 작품을 보라.
“그런 나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어디엔가 더 깊이깊이 연루되고 싶다/ 더 옅게 엷게 연루되고 싶다//(…)/ 이젠 선선한 바람이나 해 질 녘 노을에도/ 가만히 연루되어보고 싶다”(‘연루와 주동’ 부분)
이번 시집의 표제작 역시 싸움과 시 쓰기를 병행하는 시인의 딜레마와 각오를 보여준다. 얼핏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제안들을 내놓을 때마다 그는 투쟁 동료들의 이견에 맞닥뜨렸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꿈을 꾸겠다고 다짐한다.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부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7741
'사랑' 때문에 투사가 된 시인, 그가 6년 만에 내놓은 시집 (오마이뉴스, 22.05.29 11:21 l 김병기(minifat))
[이 사람, 10만인]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출간한 송경동 시인①
"사랑 때문에..."
'거리의 시인', '투사 시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쉽게 튀어나올 줄 몰랐다.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으로 몰려가 공장 담벼락을 넘자고 주동했다가 0.95평 독방에 갇혔던 그였다. 넉달 반 동안 광화문광장 텐트에서 엄동설한을 버티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대형 포클레인 위에 올라 점거농성하다가 떨어져 발뒤꿈치뼈가 열 네 조각이 났다.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이전 확장 반대투쟁을 할 때 경찰이 던진 벽돌에 머리가 터졌다.
"나의 시는 나의 무기"라고 목 놓아 외칠 것 같은 그에게 '왜 시를 쓰냐'고 묻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메아리가 사랑 때문이라니...
지난 12일 영등포역 근처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서울 영등포구 도신로 51길 7-13)에서 송경동 시인(55)을 만났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어 그가 최근 펴낸 4번째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를 들고서다. 6년 만에 시집을 내놓은 소감부터 물었다.
그는 "촛불항쟁 성과를 5년 만에 거덜내고 수구·보수·재벌 정부를 맞게 되는 시점에 시집이 나와 기쁨보다는 씁쓸함과 함께 분노가 인다"고 말했다. 그 심정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촛불정부'...
왕조명만 바뀌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군요
사색당파는 끊이지 않고 계급사회는 여전하군요
빌어먹을, 다시 죽 쒀서 개 줬군요
다른 꿈을 꾼다는 건 여전히
뼛속 바닥까지 쓸쓸하고/외로운 일이군요.
- <영풍문고 앞 전봉준씨에게> 중에서
 
[시평] "오랜만에 느끼는 서정적 투지"
한 시인이 언론 입길에 오르는 일은 흔치않다. 간혹 등장해도 문화면 정도가 시인의 자리다. 그는 주로 사회면을 장식했다.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박근혜 정부 노동법 개악에 맞선 '을들의 국민투표'도 그가 앞장섰다. '예술인 블랙리스트'에 반발해 광화문광장에 차린 유쾌, 통쾌하고 발랄한 '예술인 텐트촌'은 박근혜 탄핵 분위기를 이끌었고, 그곳 촌장도 그였다.
점거, 단식, 천막농성... 보수언론들은 이런 그를 '전문 시위꾼'으로 몰기도 했지만 적어도 명성을 쫓아 문단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사회운동가로 알려진 그의 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어떨까? 불문학자인 안삼환 선생과 김윤태 문학평론가는 페이스북에서 이런 평가를 올렸다.
"하이네의 경향성이 엿보인다."
하인리히 하이네는 괴테와 함께 독일의 국민 시인이다. 우리에게는 서정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냉혹한 현실에 대한 풍자를 곁들인 정치 참여시의 선구자였으며 혁명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송 시인은 이런 평가에 대해 "시와 현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예술적 감수성으로 승화시킨 하이네의 시와 비교된 것 자체로도 영광이고 고마웠다"면서 겸연쩍어했다.
그런데 류근 시인도 자기 페이스북에 이런 성찬을 올렸다. "창비 시선의 마지막 전사 같은 육성이 우렁우렁 살아난다. 모처럼 마주하는 생목소리다. 나는 쉰 듯도 하고 고음인 듯도 하고 아주 저음인 듯도 한 송경동의 음성을 들으며 참으로 오랜만에 '창비스러운' 서정적 투지를 느낀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오늘 밤 꿈에 송경동의 살냄새 피냄새 땀냄새가 범람할 것 같다."
서평가인 김미옥씨도 페이스북에 "양립 불가한 투쟁과 서정이 이렇게 어깨를 겯고 아름다울 수 있다니!"라고 적었고, 하응백 문학평론가는 "송경동은 리얼리스트로 위장 취업한 도도한 낭만주의자다"라고 평했다.
평론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송 시인의 투지 앞에 '서정'이라는 수식을 단 게 무엇보다 생소했다. 학창시절, 우리는 서정시와 참여시는 양극단의 시로 배웠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나치 치하의 독일을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절망했던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시적 서정은 아름다운 꽃 한송이, 눈부신 자연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그는 공장 노동자 등짝에 핀 소금꽃에서도 빛나는 서정을 길어 올렸다.
[시인의 꿈] "나는 계속 꿈꾸는 하는 소리 하다가..."
오랜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 58편. 시인에게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냐'는 속된 질문을 던졌다. 그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인지, 세상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진다"면서 "과거에는 시집이 나오면 보수,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들이 짧은 출간 소식 정도는 내줬는데 이번에는 감감무소식이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자본의 광풍이 여러 사회적 가치를 덮어버리는 세상이기에 작가적 응전이 쉽지 않지만, 나라도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면 내 시쓰기 역시 또 하나의 사회적 투쟁 전선"이라고 말했다.
그의 투쟁 대상에는 부조리한 외부로만 향해 있지 않다. 이번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는 운동권 내부의 조합주의와 패배주의, 냉소주의에 대한 풍자이자, 기성 제도와 권위에 굴하지 않고 '꿈꾸는 소리'를 하고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선언이었다.
 
그때마다 그러잖아도 바쁘고 일 많은데
꿈꾸는 소리 좀 그만하라는 질책과
비웃음을 듣곤 했지만
뭐 사는 게 별거 있는가
이제와 무슨 권력이나 부나 명성 얻을 것도 없고
뒤늦게 철든 이들 따라 무슨 욕심 차리는 것도 추해
나는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
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네"
-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중에서
 
<토대>라는 시에서는 "나는 대장만 하고 싶은" 일부 운동권 지도자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담았다. <소설과 철학의 기원>에서는 "한 저명한 소설가께서 허둥지둥 현장을 휘젓다가/방송카메라가 보이자 저돌적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면서 우리 안의 허위의식도 꼬집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체 게베라의 녹색노트에 적힌 시 한 구절을 인용했다.
"가장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운동을 함부로 만드는 이도 혁명의 적이다."
[성찰] "마음의 독, 좋지 않은 정서적 찌꺼기가 쌓여간다"
시는 시인의 삶에 농축된 시간의 결과물이다. '투사 시인'의 시에는 투쟁의 깃발만 나부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찾기 어렵다. 되레 자성과 성찰의 시가 여럿 들어 있다. <관변 시인>에서는 "한 번만 더 지면을 주면 시키는 대로 말랑말랑한 시 얘기만 할 텐데라는 상념이 더 많은 나는 아무래도 관변 시인이 될 기질이 농후하다"고 읊었다.
<내 안의 원숭이를 보라>는 시에서는 "내 안에도 들어와 사는 큰 원숭이 한 마리를 본다/작은 재주에 으쓱하고 쉬지 않고 재롱을 부리며/광대처럼 무대에서 박수만 받고 싶어 하는 원숭이/사회를 검색하는 일보다 자신을 검색하는 일이 더 많고/숨겨진 진실을 캐는 일보다/눈곱만한 자산을 계량하는 일이/더 많아진 원숭이"라고 성찰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해 온 그도 바람에 쉼 없이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그는 "파쇼와 싸우다 보면 파쇼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제 안에 좋지 않은 정서적 찌꺼기가 쌓여간다"면서 "한편으로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세상의 고통을 받고 스스로 깨지고 마모되면서 그 하중에 눌려서 생성된 '마음의 독'이자 산재"라고 표현했다.
시적 언어로 이를 세상에 풀어낸 것은 스스로를 경계하고, 자기성찰을 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실험시] 현장을 기록한 또 다른 한 편의 산문시와 생태시
시의 뒷부분에 산문으로 주석을 단 것도 있다. <해산명령>에는 유성기업 한광호 조합원이 자결한 배경과 함께 노조파괴 시나리오 등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들을 누가 죽였지>에서는 콜텍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의 13년에 걸친 싸움을 기록했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라>는 시에서는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들의 투쟁을 두 장에 걸쳐 해설했다.
시집으로서는 익숙지 않은 구성이지만 그 산문을 접하면 그게 또 한 편의 시 같다. 처음 그 사건을 접하는 사람의 이해를 도우면서도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한 사람들의 서정과 서사를 담았다. 그 이유를 물었다.
"첫째는 시를 잘 쓰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시에서 잘 풀어냈다면 굳이 필요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쌍용자동차, 삼성반도체, 콜트콜텍 등의 싸움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15년 동안 지속된 사회적 투쟁이었습니다. 그 시의 맥락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덧붙인 짧은 산문입니다."
산문체의 기록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도 현장을 함께 지켰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고귀한 시의 권위를 허물고 현실의 강력한 개입을 위한 일종의 실험시로 너그럽게 보아 주셨으면 좋겠다"면서 "노동 현장의 피눈물을 이런 식으로라도 기록하려는 전위적 고민의 산물이자, 기존 시의 권위에 대한 야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돼지열병>은 생태시로의 확전을 고민한 흔적이다. 그는 이 시에서 "상수원인 임진강의 한 지류는/살육당한 돼지 핏물로 그득 차 취수가 중단됐다"면서 그 와중에 돼지열병 테마주를 띄우며 돈벌이에 골몰하는 투기자본의 모습을 고발했다. 이어 그는 "이 땅/모든 개돼지들의 처지가/위와 같다"면서 "동물들이 사육당하는 것처럼/인간 개체 대부분도 사육당한다"는 동질성을 부각시킨 뒤 인간과 개돼지의 연대를 호소했다.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축산과 축적의 대상물인
이 땅의 모든 개돼지들은
서로가 서로를 뜯어먹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비참과 오물을 집어삼키지 않으며
어떻게 자유롭고 평온한 생명으로
존엄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 <돼지열병> 중에서
 
그에게 이 시집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아직도 전근대적인 폭력과 야만과 차별, 불평등으로 인한 수많은 인간과 자연의 소외 현상이 벌어지고 있죠. 수많은 절규와 아수라들의 죽음들이 만연해 있어서 가끔은 지옥 같은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애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서로에 대한 자비와 배려, 협동, 환대의 문화가 더 많은 곳이죠.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고 있지만, 아름다운 계절과 물과 바람과 향기를 맡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지구별이 이 우주에 또 있을까요? 이 곳에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죠. 이런 거룩한 삶과 생명을 이윤과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 소수의 독점과 폭력을 거둬내야 하는 힘든 숙제가 남았지만..."
사랑 때문에 시를 쓴다는 말은 이런 의미였다. 야만과 폭력의 세상에 대한 분노를 넘어서기 위해, 사랑 때문에 그는 싸움의 거리에 선다는 의미였다.
[후원] 오마이뉴스 후원하는 까닭
노동 현장과 거리, 광장에서 온몸으로 시를 쓰는 그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마이크를 들고 거리에서 몸싸움하면서, 농성 천막이나 한 평 남짓 감옥에서 <오마이뉴스>를 통해 세상에 쏘아 올린 기사는 80여 편에 달한다.
그에게 <오마이뉴스>는 어떤 언론인지에 대해 물었다. 그는 "<오마이뉴스>의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는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해방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면서 "소수자들의 소중한 이야기를 다루는 게 시인데, <오마이뉴스>는 언론으로서 그런 자리를 지켜주고 있다, 시적인 언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10년 넘게 <오마이뉴스>를 후원해 온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상임이사로 재직하기 전까지는 30여 년 동안 전업활동가로 살면서도 월급을 받기는커녕 변변한 돈벌이도 하지 못한 그였다. 하지만 그는 "사실, 제가 아니라 <오마이뉴스>가 저를 후원해왔다"면서 "그동안 <오마이뉴스>는 제가 쫓아다니던 수많은 현장을 찾아와 힘들게 투쟁하는 이들의 사연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고, 지난 십수 년간 <오마이뉴스>는 저의 제일 가까운 동지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37744
47일 단식 끝내고 온 연락... 송경동이 '대통령상' 거부한 이유 (오마이뉴스, 22.05.29 11:22 l 김병기(minifat))
[이 사람, 10만인]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집 출간한 송경동 시인②
"거리와 광장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입법의 공간입니다. 영광이죠."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에게 붙은 이 수식어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더니 되돌아온 대답이다.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 이은 그의 시집이 출간됐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창비 출간).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 쉼터 '꿀잠'에서 그를 만났다. 시집 4편을 펴낸 50대 중반의 송 시인이 여전히 거리에 남은 까닭이 궁금했다. 소외된 노동현장, 정규직도 아닌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하면서 현장을 지킨 그 힘의 근원과 강도를 알고 싶었다.
[첫 시] 봄비... 나의 손을 잡아줬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단다. 국어선생님이 내준 숙제로 <봄비>라는 시를 썼는데, 벼락 칭찬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용은 한 구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악동이고 문제아였던 제가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것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면서 "그 뒤에도 시를 쓰는 게 좋아서가 아니라 칭찬이 그리워서 가끔씩은 시를 끄적였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내가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청소년기에 저의 삶은 바닥이었어요. 집안은 풍비박산 났고, 소년원에서 나온 뒤에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떠돌았죠.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시를 붙잡았습니다. 시는 저의 이야기를 유일하게 들어주는 친구였어요."
시작은 지독한 고독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사회와 역사를 알게 됐고, 소외된 사람들의 서글픔과 아픔, 이 사람들을 외면하는 사회구조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면서 "결국 사랑에 대한 갈구, 우리 모두가 사랑받고 존중받는 공동체였으면 좋겠다는 열망과 간절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나의 손을 잡아준 게 시였다"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너 이 자식, 예전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왜 다르게 살려고 해'라고 질책하는 최대 감시자"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이번에 낸 시집에서 현재 시인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시로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을 꼽았다.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모두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
-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중에서
 
그간 열정적으로 거리에 섰던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기자로서는 공감하기 어렵지만, 이렇듯 그는 스스로를 견책해왔다.
[예술원 풍경] "대통령상? 영장이라면 모를까"
전남 벌교 출신인 송 시인은 2001년에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그는 "그간 많은 사건에 연루되었다/더 연루될 곳을 찾아 바삐 쫓아다녔다"(<연루와 주동> 시 중에서). 그 대가는 연행과 구속이었다.
 
축구 선수도 야구 선수도 아닌 내가
국가로부터 여섯 번씩이나
헹가래를 받아보았으니 원 없다
 
'저 새끼, 연행해'... 진압조가 올라와 밀쳐 던진 나를
아래에서 토스 받아 럭비 선수들처럼 뛰던 경찰들
- <잊지 못할 여섯 번의 헹가래> 중에서
 
그를 더 괴롭혔던 건 검찰이었다. 기소된 건만 20~30건은 된단다. 그는 "한 재판이 종료되려면 7~8년씩 걸리는데 그 자체가 엄청난 탄압"이라면서 "재판 받는 게 일상이 되다보니 간이 부었는지 어떤 날은 결심 선고 날인데도 까먹고 못간 적도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20년간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치열했고, 사회적 여파도 상당했기에 운동권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그 와중에 시집을 냈고, 신동엽 창작상, 천상병 시문학상 등도 수상했다. 이쯤 되면 시적 성취에 대한 평가에 더 욕심을 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 미당 서정주 문학상을 발로 걷어찼다. 2021년에는 대한민국 예술상을 거절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예술상을 받아보라고 연락이 왔다
대통령상이라고 했다 영장이라면 모를까
김진숙이나 복직시키지 비정규직 양산법이나 없애지
개성공단 열고 남북열차나 잇지
몇년 전 약속했던 차별금지법
예술인권리보장법이나 통과시키지
단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안 받겠다고 했다
- <대한민국 예술원 풍경> 중에서
 
그는 "한쪽에서는 서정주를 최고의 시성으로 추앙하는데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했고, 80년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에게 '일해'라는 호를 지어주며 탄신 송시까지 쓴 인물"이라며 "중앙일보가 그를 기리는 문학상으로 문인들을 줄 세우고 문단을 어지럽혔는데, 제가 거부한 뒤에 사회적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상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통령상인 대한민국 예술상을 받는 건 가문의 영광일 수 있지만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청와대 앞에서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의 복직을 요구하며 47일 동안 단식투쟁을 마친 직후에 제안이 왔다"면서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을 요구하며 싸우는 문화예술인들, 차별금지법 제정과 비정규직 악법 철폐를 외치는 이들을 놔두고 대통령 상 받으러 가는 건 용납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눈물] '숲속 홍길동' '윤활유'...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시인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었다.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다>는 시에는 그가 지금도 닉네임들로만 기억하는 세 사람이 등장한다.
'숲속 홍길동'은 발전소 노동자 정규직이었는데, 안정된 직장을 팽개치고 카메라를 들고 이주노동자·장애인 투쟁 현장 등을 전전하며 다큐를 찍었다. 생활고에 허덕이던 그는 인천 반지하 셋방에서 자결했다. 그에게 남은 돈은 2700원.
성씨를 모르는 '혁'도 허름한 여인숙 방에서 피를 쏟은 채 주검으로 발견됐다. 용산철거민 참사 당시 빈집 점거를 함께 했던 '촛불전국연대' 운영진이었고, 2009년 대한문 앞 노무현 분향소를 최초로 짓고 시민상주 역할을 했던 이다. 만성혈전증으로 하혈을 해서 기저귀를 차고 노점을 한다는 혁은 죽기 얼마 전, 송 시인에게 전화를 했단다.
"감을 떼다 팔아보고 싶은데/충북 영동에 아는 사람 있으면/소개 좀 해달라고".
마지막 등장인물은 '윤활유'다. "2008년 광우병 촛불항쟁 당시/항쟁의 중심이었던 '안티MB' 카페지기였다/항쟁 후에도 MBC정상화 투쟁 등/촛불 시민운동의 주요 리더로 현신했다"는 이다. 그는 "시간이 흘러 일당 칠만원 받으며/일요일도 없이 조경 일을 다니"다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모두가
왁자지껄 한자리에 모였던
잔치 같던 날도 있었다
2008년 10월 21일
기륭전자 앞에 기습적으로 망루를 쌓고 오를 때
숲속 홍길동은 카메라를 들고 분주히 뛰어다녔고
혁이는 건설일용노동자 출신답게 망루 위로 뛰어 올라가
수많은 채증 카메라 앞에서 구속을 각오하고
아시바를 받아 쌓던 단 한 사람이었고
윤활유는 치고 들어오는 용역깡패들을 막아서다
원투 펀치에 한 눈이 피투성이
실명되는 부상을 입고 앰블런스에 실려갔다
나도 그 자리에서 표적 연행되었다가
구속영장 기각으로 간신히 나오긴 했지만
나는 지금껏 비겁하게 살아남았고
오늘도 여전히 비루하게 살아가고 있다
-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시에서 발췌
 
한 편의 기록 영화같다. 송 시인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썼다는 시, 지금도 눈물이 나서 차마 읽을 수 없다는 시다.
[시낭송] "추모시 만큼 쓰기 힘든 시가 없다"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송 시인을 아끼고 좋아했다. 백 선생은 송 시인과 함께 찾아간 기자에게 "송경동, 나는 이 자식이 쓴 시가 가장 좋아! 최고의 시인이지"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2019년 2월 19일, 송 시인은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영결식에서 추모 헌시를 낭송했다. 그의 목소리가 서울광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내 배지만 부르고 내 등만 따스하려 하면
몸뚱이의 키도 마음의 키도 안 큰다 하셨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온몸이 한줌 땀방울이 되어
저 해방의 강물 속에 티도 없이 사라져야 하느니
'딱 한발 떼기에 일생을 걸어라' 하셨죠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야 한다 하셨죠
- <백발의 전사에게> 중에서
 
백발의 갈깃머리를 휘날리며 거리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해방을 외쳤던 백 선생이 살아 돌아오신 것 같았다. 그의 시집에는 여러 편의 추모시가 들어있다. <아무도 그 새벽을 떠나오지 않았다>(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 7주기 추모식), <세월호를 인양하라>(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제), <진상을 규명해야지요>(고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영결식) 등이다.
"추모시는 전선시입니다. 서정시나 연예시로 분류되는 시들보다 좀 딱딱하고 목소리가 높아서 시의 영역에서 밀어내려는 경향도 있지만, 모든 좋은 시는 쓰러져가는 것, 죽어가는 것, 사라지는 것, 묻혀가는 것들의 가치를 담습니다. 추모시는 사회적 주검까지 담아야 하고 함께 현장을 지키고 있어야 하기에 오히려 쓰기 힘든 시이기도 하죠."
추모제나 영결식에서 낭송한 그의 애도시는 100여 편에 달한다. 그는 또 "문예지들은 아무래도 제가 불편한지 청탁이 없는데 오히려 1년에 20여 편 정도의 현장 낭송시 청탁이 들어온다"면서 "무대 위에 올라가 낭송을 해야 하는 투쟁시인데, 그간 100여 편 정도 썼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투쟁시를 낭송하는 자리는 기성 문단에서 볼 때 시적인 공간이 아니다. 김지하 <오적>, 박노해 <노동의 새벽>, 백무산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등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수많은 투쟁시가 낭송되기는 했다. 시를 공유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시를 혼자 읽는 시대이다. 광장에서 읽히는 시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윤석열 시대] "전면적, 총체적인 후퇴... 싸움의 전선 복구시켜야"
문학평론가 김명환 서울대교수는 이 시집에 쓴 해설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 5월 이후 "그(송경동)가 외면하지 못할 사건들이 터질 것이고, 또 어떤 풍파에 휘말리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에게 '윤석열 정부에서의 노동, 어떻게 달라질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부터 성토했다.
"노동법 개악 등으로 자산가 계급들만 행복한 재벌공화국을 완성시키려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반기를 들었던 민중들이 평화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과제였죠. 하지만 여러 적폐청산 과제를 외면하며 촛불항쟁으로 어렵사리 세운 공공의 가치와 윤리도 허물어버렸습니다. 이게 윤석열 정부를 불러왔죠. 꺼리길 것 없이 취임식 앞자리에 재벌 총수들을 즐비하게 앉히고 특별만찬까지 베풀고... 윤 정부가 아주 기고만장하게 날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줬죠."
그는 "윤석열 정부는 약탈적 돈의 가치만이 최상이자 전부인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전선을 전면화, 총체화하면서 한국 민주주의가 그나마 획득해 온 평화와 평등의 가치 지대를 급격히 허물고, 초토화시키려 할 것"이라면서 "사회적 세력이 약화됐지만, 무너진 저항선을 시급히 복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쓰기에 앞서 행동하는 시인, 시처럼 살아가는 시인. 이런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4.19 혁명 직후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고 외쳤던 김수영 시인, 그가 남긴 이 말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송 시인은 가장 닮고 싶은 시인으로 해방 이후 <진혼가>, <나의 칼 나의 피> 등의 시집을 펴낸 혁명시인 김남주를 꼽았다.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을 당했고 15년 형을 선고받았던 김 시인의 시 중 송 시인과 함께 떠오르는 4행의 짧은 시는 '종과 주인'이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주인은 종을 깔보자/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렸다/바로 그 낫으로"
'거리의 시인' '광장의 시인'으로 불리는 송 시인은 사회적 부조리와 불의, 불평등에 맞서며 지금도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다. 김해자 시인은 이런 '투사 시인'의 시집 뒤표지에 그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우리 사회에) 한낮의 거리에서 한바탕 큰 꿈 꾸다 간 전봉준과 대작하며, 이제 대놓고 '계속 꿈꾸는 소리나 하다/저 거리에서 자빠지겠'다는 이런 시인 몇쯤 있어야 이 시대의 울화증 삭이지 않겠나."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1046452.html
[책&생각] 주식, 부동산이 다가 아닌 세상에 대한 꿈 (한겨레,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2022-06-10 05:00)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 송경동 지음 l 창비(2022)
송경동 시인의 시집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를 읽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많은 것을 ‘얻고’ 싶어하지만–인기, 명예, 돈, 인정, 안정, 먹을 것, 그리고 사랑도–송경동 시인의 시는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이 아니라 ‘알아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해준다. 그 아이들은 왜 죽었지? 그 청년은 왜 죽었지? 왜 진상은 규명되지 않지? 그의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지?’, ‘그런 세상이 되려면 나는 뭘 해야 하지?’ 애틋한 꿈 비슷한 것을 마음에 품게 된다.
물론, 시 속에 질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욕탕 순례기’는 연대단식 농성하던 친구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는 날이 나온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가난한 사람들 곁이었지만 참 행복했던 시간들.’ 읽는 나로서는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굶어서 앙상해진 사람들이 목욕탕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복해했을까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먹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송경동 시인은 간장과 두부를 좋아하니 간장에 조린 두부가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을까? 두부조림을 먹는 이 지상의 행복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송경동 시인은 많은 시간 누군가의 ‘곁'에 있었다. 대체로 침묵당하는 사람들 곁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우정, 고통과 연대 속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시 속에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은 사랑받고 또 사랑받는다. 나는 이것이 제일 좋다. ‘그들도 사랑받았단 말이지?’ 시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고통도 있지만 다 같이 웃을 만한 멋진 기억도 있다. 우정과 사랑, 연대는 절대 상상의 산물이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행복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여서 가능했다.
그러나 정말 고통스러운 시도 있었다. ‘돼지열병’에는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농민들은 제발 돼지들이 돼지열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던 그 시각 한편, “(…)한국의 증권가에선/ 정부의 첫 확진 발표와 더불어/ 빅수익, 대박 등의 환성이 터지며/ 돼지열병 테마주 찌라시들이 돌았다/ (…)우선 돼지고기 3개사, 대체육 3개사 동물의약품 9개사/ 사료 8개사, 방역 1개사 등 26개 종목이 급등했다/ 하루 새 239억원을 불린 회사도 있었다/ (…)포항 지진 발생 5분 만에 내진설계 종목을 띄웠고/ 월성 원전의 지진 감지 경보 발생 때는/ 신재생에너지 탈원전 관련주를 띄웠다/ 강원도 고성에서 초대형 산불이 났을 때는/ 화재 감지 시스템 개발업체 주식을 띄웠다/ 세월호 참사 때는 안전 관련주가/ 인양이 논의되던 시점엔 선박 인양 관련주가 테마였다/(…)” 이 시에 나도 한 줄 정도는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백신 운송 문제가 나왔을 때는 참치냉동컨테이너 관련주가 올랐다는 것을.
이 시를 읽을 때 나는 외로웠다. 이 시에 없는 것, 우리가 ‘함께’라는 생각이다. 비극은 투자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다. 주로 우리가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영혼, 그 영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과 추억들이 드나드는, 이런저런 관계로 복작이는 곳이다. 그래서 이 시를 읽을 때 언제가 읽었던 문구 하나가 떠오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당신이 혼자일 때 얼마나 외로운지 압니다.” 그러나 이 시도 나에게 꿈을 꾸게 만들었다. 우리의 꿈, 우리의 탈출구가 주식, 코인, 부동산, 로또가 다가 아닌 세상에 대한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