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포털, 언론, 인터넷

우크라이나침공과 글로벌 인터넷

새벽길 2022. 3. 23. 09:59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러시아의 선전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 이용된다고 지적받아온 러시아 국영 방송사 <러시아 투데이(RT)>와 통신사 <스푸트니크> 접속을 차단했고,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도 러시아에서 각종 서비스 중단과 제한에 나섰다고 한다.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 정부도 자국민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접속 차단 등에 나섰고... 물론 러시아와 같은 행태는 중국이나 인도, 이란, 북한 등에서 이미 시도된 바 있다.
하지만 갈수록 글로벌화하고 있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개별 국가가 폐쇄적인 온라인 환경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인터넷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개별 국가 권력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다양한 명분으로 세계적 정보기술기업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제한하는 행태 또한 우려되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별로 없는 듯하다. 
물론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아이칸, ICANN)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요청했음에도 아이칸 회장은 이를 거부하며 “아이칸은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구축된 중립적 플랫폼이지 인터넷을 중단시키는 조정 역할을 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고, 인터넷협회(ISOC) 회장도 “인터넷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전세계가 저항해야 하며 개방적인 하나의 글로벌 인터넷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초국적 자본과 미국의 압박에 아이칸이 앞으로도 중립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유지해나갈지는 잘 모르겠다. 공개적으로는 아니겠지만,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걸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중요할 텐데, 석사학위논문을 쓴 이후 거의 20여년 동안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서는 손을 놨더니 뭐라고 말하기 힘드네.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35579.html
세계를 하나로 묶은 인터넷 ‘바벨탑 이후’처럼 쪼개지나 (한겨레,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2022-03-21 04:59)
우크라이나침공과 글로벌 인터넷
빅테크들 러시아 서비스 제한
러시아는 자국망 분리 테스트
중국 인도 이란 베트남 북한 등
글로벌망과 별도망 증가 추세
아이칸, ‘인터넷은 중립 플랫폼’
우회로있어 통제 성공 ‘미지수’
초국경적 소통도구인 인터넷이 전쟁과 대립으로 쪼개지면서 세계 정보통신 환경에 신화 속 바벨탑 붕괴와 같은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1세기 신냉전과 미국주도의 일극체제 해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라는 평가와 함께 인터넷에 거대한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이 부상하고 있다. 인터넷은 전세계 3만2000여개의 네트워크가 연결된 네트워크로, 표준화된 통신규약을 통해 전세계인이 장벽없이 소통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제공해왔다. 인터넷은 월드와이드웹이 되어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세계를 하나로 연결시키며 오늘날의 세계화와 정보화를 가능하게 한 기술적 토대이자 실질적 구현 공간이다.
초연결 환경의 정보기술 시대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은 유례없는 정보전으로 치러지며 네크워크는 치열한 전투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선 세계적 정보기술기업들의 잇단 서비스 중지와 제한, 러시아의 독자화 정책으로 인해 단일한 네트워크가 특징인 글로벌 인터넷이 쪼개지고 있으며 파편화하고 있다.
쪼개지는 글로벌 인터넷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는 러시아의 선전과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데 이용된다고 지적받아온 러시아 국영 방송사 <러시아 투데이(RT)>와 통신사 <스푸트니크> 접속을 차단했다. 구글, 애플, 넷플릭스 등도 러시아에서 각종 서비스 중단과 제한에 나섰다. 러시아 정부도 자국민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접속 차단 등으로 대응했다. 러시아는 2019년 말 자국의 인터넷망을 글로벌 인터넷과 분리해 국내망(루넷)으로 운영하는 인터넷 주권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발표한 바 있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검색과 소셜미디어 분야에서 자국 서비스인 얀덱스와 브콘탁테가 압도적 1위다. 영국 서리대학의 컴퓨터공학자 앨런 우드워드는 최근 <비비시(BBC)> 회견에서 “러시아의 인터넷 주권 실험 당시엔 그 필요성을 이해하는 사람이 적었지만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보면 이해가 잘 된다”고 밝혔다.
러시아에 고유한 상황도 아니다. 중국은 2003년부터 국가 차원에서 인터넷을 검열하는 거대한 방화벽(만리장벽)을 구축해 서비스와 콘텐츠를 차단하고 있다. 중국과 갈등중인 인도는 틱톡, 위챗, 웨이보와 같은 중국 앱을 금지했다. 이란은 국영 통신사가 네트워크를 오가는 모든 정보를 통제하며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베트남, 리비아, 모로코 등도 중국과 유사한 검열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북한은 아예 국가 차원의 내부망을 구축 운용하며 외국과의 통신을 철저히 차단한다. 2011년 아랍의 봄 등 소셜미디어가 활용된 민주화시위를 경험한 독재국가들의 한결같은 선택이다.
“파편화는 인터넷의 종말”
인터넷은 표준화된 통신규약에 따른 개방과 공유의 원칙을 통해 전세계를 연결하는 초국경적 네트워크로, 개발 단계에서 핵전쟁 등 통신망이 마비되는 상황에서도 우회로를 찾아 통신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설계된 초연결 수단이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갈등과 일부 국가들의 정책은 인터넷의 기본 속성과 반대되는 파편화 현상(스플린터넷)을 부추기고 있다.
인터넷 거버넌스 국제위원회는 지난 2016년 보고서를 펴내 ‘파편화된 인터넷’이 현실화할 경우 혁신과 성장, 소통을 방해하고 신뢰도가 떨어져 인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당시 하버드대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는 이를 언급하며 인터넷의 파편화는 인터넷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도 2018년 “2028년이면 인터넷이 미국 중심과 중국 중심으로 쪼개질 것”이라고 세미나에서 발표한 바 있다.
인터넷의 기술구조상 국가 단위의 네트워크가 상호 연결되는 지점(노드)과 주소 할당에 대한 통제력을 이용하면 통제가 가능하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요청한 배경이다. 하지만 괴란 마르비 아이칸 회장은 요청을 거부하며 “아이칸은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구축된 중립적 플랫폼이지 인터넷을 중단시키는 조정 역할을 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터넷협회(ISOC) 회장 앤드류 설리번도 “인터넷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전세계가 저항해야 하며 개방적인 하나의 글로벌 인터넷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확산 초기엔 물리적 국경없는 사이버 공간이 국가 단위의 각종 제약과 관행을 뛰어넘는 탈영토화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했지만,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국가 차원의 개입과 통제가 확대되는 정반대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컬럼비아대 법학교수 팀 우는 <인터넷 권력전쟁>에서 사이버 공간의 현실세계 영향력 증대에 따라 각국 정부가 인터넷을 통치 범위 안에 넣으려는 시도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의 영향력 증대를 우려한 국가 권력의 개입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온라인 통제 강화를 위해 여러 해 동안 암호화 메시지앱인 텔레그램 접속을 방해해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또한 갈수록 글로벌화하고 동기화하는 네트워크 환경에서 국가가 통제하는 콘텐츠와 서비스 위주의 경제가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