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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문제를 보는 시각 (미디어오늘, 08-08-25, 이정환)

새벽길 2008. 8. 25. 20:46
기본적으로 아래 글의 첫번째 시나리오처럼 론스타가 변양호 전 국장 등에게 금품을 건네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론스타의 투자자금은 범죄자금이기 때문에 몰수할 수 있으며, 2003년의 외환은행 인수를 원인무효시키고 론스타는 원금+이자만 받고 나가야 한다는 홍성준 동지의 입장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고, 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주체 또한 취약하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외환은행 매각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그 전후관계를 잘 정리해주지 않아 보통은 그냥 대충 넘어가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 이정환 기자의 아래 글은 외환은행 매각 문제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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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매각,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자" (미디어오늘, 2008년 08월 25일 (월) 11:08:29 이정환 기자)
[뉴스분석] 벌금·세금 받아내고 시세차익 인정? "외환은행 독자생존 확보가 더 중요" 
 
외환은행 문제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2003년의 외환은행 매각이 불법이고 원천무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에게는 원금+이자 정도만 쥐어주고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외환은행이 부실은행은 아니었더라도 경영상황이 안 좋은 건 사실이었고 론스타도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했고 경영을 잘한 덕분에 주가가 올랐으니 그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언론 보도도 이 두 가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진보적 성향의 신문들이 론스타의 '먹튀'를 거세게 비난하는 반면, 보수·경제지들은 국민들 정서를 의식해 노골적으로 론스타 편을 들지는 않지만 먹튀를 기정사실화 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머니투데이는 4일 "론스타, 박수치며 보내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론스타의 산업자본 논란과 관련, "우리 정부가 예외조항을 둬 허용하고는 이제 와서 시비를 건 것이어서 모양새가 사나울 따름"이라면서 "이젠 억지를 그만 부리자"고 제안했다. 박종면 편집인은 이 칼럼에서 "현재 진행 중인 외환카드 주가조작이나 헐값매각 관련 재판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은 사실상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서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HSBC에 외환은행을 파는데 제약이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중앙일보는 "헐값매각 괴담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배 아픈 병' 증세가 이윽고 '막대한 국부유출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선동적인 주장이 더해지면서 괴담으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 김종수 논설위원은 이 칼럼에서 "감사원 감사결과는 괴담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검찰은 애꿎은 관련자 몇 사람을 기소했지만 뚜렷한 증거를 대지 못한 채 지루한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을 뿐"이라고 단정짓는다. 김 위원은 "괴담의 진상이 이렇다면 부질없는 헐값매각 재판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동안 괴담에 놀아난 것이 허망할 뿐"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이들 칼럼은 기본적으로 사실관계부터 잘못돼 있다. 언론이 거의 보도하고 있지 않지만 만약 재판 결과 론스타가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이들이 그 대가로 애초에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예외조항을 적용해 외환은행을 넘긴 것으로 드러난다면 2003년 매각을 원천무효로 만들 수도 있다. 또한 이와 별개로 최근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론스타의 산업자본 여부와 관련, 론스타가 고의로 정보를 은폐하고 정부가 이를 묵인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시 이 경우도 검찰과 법원이 의지만 있다면 원천무효로 밀어붙일 수 있다.
 
중앙일보의 칼럼은 이처럼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을 괴담으로 평가절하하고 구체적인 논의를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외환은행을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 '배 아픈 병'이든 국부유출이든 이와 별개로 핵심은 그 당시 외환은행이 경영권을 통째로 팔아넘겨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느냐, 만약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느냐는 의혹을 밝혀내는데 있다. 의혹의 상당부분은 이미 밝혀진 상태고 남은 것은 법원의 최종 판단과 정부의 결단이다.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만약 론스타가 변 전 국장 등에게 금품을 건네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2003년의 외환은행 인수를 원인무효시키고 론스타는 원금+이자만 받고 나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정부는 론스타와 힘겨운 소송을 감수해야 한다. 뇌물의 대가성 여부나 헐값매각의 상관관계는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두 번째, 법원이 정부 관료들, 이를테면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에게만 유죄 판결을 내리고 론스타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릴 경우, 론스타는 HSBC 등에 외환은행을 팔고 유유히 떠날 수 있다. 헐값매각 등 관련 재판에서 론스타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으니 애초에 재판 결과와 론스타의 먹튀는 큰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재판을 질질 끌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론스타가 HSBC 등에 외환은행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 최근 분위기로는 재판이 올해를 넘겨 내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외환은행 매각은 금융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만약 재판 결과가 외환은행 매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금융위로서도 승인을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금융위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아 2003년의 매각을 원인무효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를 최종 승인한 것이 우리 정부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론스타는 당연히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것이고 우리 정부가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의 선택의 폭은 좁다. 일단 재판 결과를 보고 결정한다는 입장인데 마냥 미뤄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론스타의 먹튀를 지켜보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굳이 찾자면 재판 결과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을 감안해 벌금과 세금 등을 공탁금으로 걸고 나머지 지분을 매각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매각 대금이 5조원이라면 이 가운데 2조원 가량을 공탁금으로 걸고 3조원을 챙겨서 나간다는 이야기다. 론스타 입장에서는 만약 재판에 이기면 2조원을 마저 챙겨서 나갈 수 있고 지더라도 매각을 앞당길 수 있으니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외환은행 문제를 조기에 매듭지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러나 만약 론스타가 불법을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면 5조원이든 3조원이든 먹튀를 허용해도 되는 것일까. 외환은행 되찾기 범국민 운동본부 김준환 사무처장은 "원인무효시키고 원금+이자만 줘서 내보내는 게 원칙적인 해법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벌금과 세금을 내고 떠나게 하되 외환은행을 다시 원상회복시키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국민주를 발행한다거나 5% 미만 지분으로 쪼개 팔도록 해서 분산된 지배구조를 만들자는 이야기다. 이게 이른바 사회적 대타협 이론이다.
 
그러나 투기자본 감시센터 홍성준 사무국장은 불법과는 타협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홍 국장은 "만약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사장이 론스타의 로비 청탁을 받고 변 전 국장 등에게 대가성 금품을 건넨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론스타 투자자금은 범죄자금이기 때문에 몰수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홍 국장은 "훔친 돈 가운데 일부만 돌려주겠다는 발상인데 이처럼 적당히 좋게좋게 끝내자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홍 국장은 여전히 원인무효와 원금+이자+퇴출을 유일한 대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김 처장 역시 비슷한 입장이지만 다만 "론스타의 먹튀를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외환은행을 되찾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외환은행 노조의 입장은 이들과 또 다르다. 이들은 "국민은행이나 하나은행 등에 흡수합병 되기보다는 이왕이면 HSBC에 팔려서 외환은행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언론은 여전히 시장주의와 민족주의 담론의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고 정부는 마냥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과연 사회적 대타협은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