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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 경제부처 개편 관련 글 3 - 이젠 기재부 해체다 (민중의 소리, 2021.11.22-25)

새벽길 2021. 12. 23. 02:25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첫번째 기획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시리즈를 5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② 경제부시장=기재부 출신…예산에 멱살잡힌 지방 분권
③ 국회 쥐락펴락 기재부,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④ ‘기재부의 나라’ 드러낸 문재인 정부 다섯 장면
⑤ 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https://www.vop.co.kr/A00001603028.html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민중의 소리, 홍민철 기자, 2021-11-22 17:58:54)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①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83% 삭감, 기재부가 폐기한 것은 예산만이 아니었다
기획재정부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삭감률이 83.3%에 달한다. 사실상 정책 폐기다. 충격적인 삭감률도 문제지만, 과정이 더 심각하다. 과정을 따라가면, 기재부 예산권 독점 폐해가 드러난다. 기재부는 정책 폐기 권한이 없다. 국민 누구도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당당했고 오히려 국회와 국민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받아들이라 강요한다.
기재부가 하달하는 ‘예산지침서’
12월까지 이어지는 예산 프로세스의 시작
지난 3월 31일, A4용지 크기 386페이지 두툼한 책자가 각 부처에 하달됐다. ‘2022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 줄여서 예산지침서다. 작성 주체는 기획재정부다. 맨 첫 장엔 제목보다 큰 글씨로 ‘기획재정부’라고 적혔다.
각 기관 인건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등 기본경비에서부터, 일자리·연구개발·IT·환경·토목공사 등 정부가 내년도 추진할 사업 예산을 어떻게 짤지 촘촘하게 규정했다.
‘총사업비 50억원 초과 국제행사는 기재부 장관과 사전 협의된 전문연구기관 타당성 조사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거나 ‘국립대학 시설은 입학자원 감소, 대학 구조조정 필요성 등을 고려해 신규사업을 원천적으로 억제’하라는 등의 지침이다. 대부분 지침은 ‘삭감’을 요구한다.
예산지침서 하달은 다음해 예산 편성 작업이 본격 시작됐음을 뜻한다. 대개 3월 말 지침서가 하달된다. 각 부처는 지침에 따라 사업 예산을 추정하고, 추정 예산을 담은 요구서를 기획재정부에 보낸다. 기재부는 예산요구서가 지침에 따라 작성됐는지 검토·협의한 뒤, 9월 말 국회에 제출한다.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하고, 그해 12월 최종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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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대폭 삭감’ 지침...반발한 행안부
기재부가 하달한 예산지침서 183페이지를 보면 ‘한시지출 사업’ 항목이 있다. ‘코로나 위기 대응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증액된 사업의 적정수준이 무엇인지 전면(zero-base) 재검토해 예산을 요구’하라는 게 골자다.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등 소비회복 프로그램을 콕 짚어 ‘전면 재검토’ 예시로 들었다. 한시적으로 실시한 지역사랑상품권 사업 예산을 축소하라는 뜻이다.
지역상품권 담당인 행정안전부는 기재부 지침에 동의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상황이 내년에 더 나아지리란 보장이 없었다. 더구나 현장에서 호평을 얻고 있는 지역상품권 예산 삭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기재부 지침대로 사업을 ‘전면 재검토’ 하더라도 삭감이 아닌 증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행안부는 2021년보다 4천억원 가량 많은 1조4,402억원을 예산신청서에 적었다.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1) 광역단체 현장 의견과 수치들
기재부와 행안부 입장차는 컸다.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다. 민중의소리가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확보한 자료를 보면 두 기관은 지난 4월을 시작으로 매달 한 차례씩 공식 미팅을 하고 예산을 협의했다. 첫번째, 두번째 미팅은 담당 실무자끼리 가졌고 이후 실무 책임자, 책임자인 실장과 국장, 최근에는 차관까지 나서 예산 증액을 설득했다.
기재부와 협의했던 행안부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발생한 소상공인 피해가 내년에 정상화할 것이라고 볼 증거는 지금도 없다. 직접 혜택을 받는 소상공인은 물론 이용자인 국민들과 지자체 모두 만족하는 사업 예산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최초 요구한 1조4천억원 수준의 예산을 한번도 낮추지 않았다.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던 지난 7월, 행안부는 추가 자료를 기재부에 제출했다. 핵심은 광역단체로부터 취합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수요 현황이었다. 17개 광역단체를 집계한 결과 수요는 전년 대비 28.9% 늘었다. 행안부는 이를 근거로 증액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17개 광역단체는 현장 요구를 근거로 수요를 예측했다. 광주광역시는 매월 지역상품권 발행량을 근거로 삼았다. 상품권 발행량은 올해 1월 745억원이었던 것이 매월 꾸준히 증가해 5월엔 1천억원을 넘었다. 9월엔 1600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었다. 불과 8개월만에 발행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광주시는 이를 근거로 내년 지역상품권 발행 예상액을 올해보다 2조원 많은 12조원으로 추산했다. 대전광역시는 상품권 결제자 숫자를 근거로 삼았다. 지난 1월 31만명이던 결제자는 8월 44만명으로 늘었다. 1인당 상품권 사용 금액도 꾸준히 30만원대를 유지했다.
현장에서 지역사랑상품권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자체가 상품권 발행량을 늘렸다고 해도, 수요자인 시민들이 구매하지 않으면 결제자 숫자나 1인당 상품권 사용액이 늘어날 수 없다. 공급과 수요가 탄탄한 정책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를 무시했다. 자신들 지침대로 삭감을 고집했다. 결과는 기재부 완승이었다. 지난 9월, 기재부가 통보한 지역상품권 예산은 2,403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행정안전부가 요구한 1조4,402억원에서 83.3%가 삭감된 결과였다.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2) 주무부처, 그리고 국민들
5~10% 내외의 예산 삭감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예산 낭비, 비효율 견제 측면에서 기재부의 권한이자 의무다.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83.3% 삭감은 단순한 예산 감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업을 폐기한다는 의지가 읽힌다.
기재부는 지역상품권 정책의 의미와 효과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한국 자영업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구조적인 경쟁 격화로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국민적 합의를 이뤘다. 최근 5년여간, 지역상품권은 자영업자에 대한 중요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유통 재벌 대기업에 밀리고 모바일·온라인 홍수에 치인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방법이었다. 기재부의 말대로 ‘한시적 사업이니 없애야 한다’는 논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는 2018년부터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인 ‘소상공인·영세 중소기업 지원대책’의 일환으로 상품권 발행을 적극 권장해왔다. 2020년에는 ‘지역사랑상품권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국가적 시책 사업이 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발행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지역 내 소비가 촉진된다. 지난해 1월부터 7월까지 전국 신용카드 사용액 51.7%가 서울에 집중된 반면, 지역사랑상품권과 마찬가지 형태로 사용을 제한한 긴급재난지원금은 전체 사용액 중 20.6%만 서울에서 사용됐다. 나머지 소비는 지역상권으로 돌아갔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때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 지난 9월 소득 상위 12%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민에게 지원금이 지급됐다. 이 기간 이마트 등 대형마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9% 이상 대폭 감소했다. 추석 대목이라 감소 폭은 더 컸다. 유통업계에선 감소 폭 만큼의 소비가 지역 상권으로 갔다고 보고 있다. 대형마트가 가져갈 이득을 지역 상권이 가져간 것이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따르면 지역상품권 도입 이후 역내 자영업자 매출은 지난해 10월 기준, 월평균 87만원이 증가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쇼핑이 익숙한 소비자들은 다소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할인으로 소비자 불편을 보상한다. 5~10%를 할인받는다. 10만원짜리 상품권을 9만원에 살 수 있다. 할인된 1만원은 중앙과 지방 정부가 6:4 혹은 8:2로 각각 부담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어려운 지역 상권을 직접 보조하는 형태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중앙 정부가 지역 경제를 직접 보조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논쟁이 있다. 전 국민이 낸 세금이 특정 지역에 갇히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문제 제기다.
전문가들의 소모적 논쟁과 무관하게, 여론은 우호적이다. 상품권 사업 확대는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은 바가 크다. 대기업보다는 지역 상권을 도와야 한다는 국민이 더 많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0월 지역상품권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 71%는 정책 취지에 적극 공감하고 있다. 지역상품권을 이용하는 이유를 묻자(복수응답) ‘소비자와 사업자가 상생할 수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 등 도입 목적에 공감한다’는 응답이 36.5%,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영세 상인들을 도울 수 있는 간편한 방식’이라고 답한 비율이 35.1%였다. 두 답변 비율을 합하면 71.6%로 단순히 ‘할인이 좋아서 사용한다’고 응답한 비율 (71.1%)를 근소한 차이로 넘어선다. 국민들은 ‘물건값 깎아주니 상품권 쓴다’는 단순 논리를 넘어 ‘지역 살리는 착한 소비’의 연대와 협동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가 삭감한 것이 단순한 예산이었을까. 지역상품권으로 취약 계층인 골목상권,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는 정책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책 취지에 동의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상품권을 구매한 국민들 의사가 무시당했다. 우리 국민 누구도 기재부에 지역사랑상품권 사업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준 적 없지만, 기재부는 “한시적 사업이니 재검토해야 한다”는 자신들 주장을 관철했고, 예산 83%가 삭감됐다.
기재부가 무시한 것들
3) 분권, 그리고 지역 경제
예산 삭감으로 논란이 일자, 기재부는 “올해는 지역에도 돈이 많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웠다. 어불성설이자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라고 자인하는 것 같아 보인다.
중앙정부가 지방에 내려주는 돈을 교부금이라고 한다. 법은 지방에서 필요한 재원이 부족하지 않도록 일부 세금에서 교부금을 만들고 이를 지방정부에 교부하도록 규정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국회에서 “추가 교부금이 대폭 늘어나 지자체에도 상품권 발행 예산 충당 여력이 있지 않겠느냐 판단했다”고 말했다.
중앙에서 받은 교부금을 어디에 쓸지 정하는 것은 지방정부 권한이다. 교부금에는 ‘어디 어디에 쓸 돈’이라는 꼬리표가 없다. 지방정부가 스스로 세운 사업 계획에 들어간다. 홍 부총리는 ‘지자체에 교부금이 많이 내려가니 지역 예산으로 상품권을 발행하라’는 지침을 내린 셈이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지방교부세는 지자체가 지역환경에 맞게 꼭 필요한 곳에 써야할 돈”이라며 “기재부가 지역사랑상품권을 소상공인에게 지원되는 소멸형태의 재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꼴”이라고 말했다.
지역 경제 현실에 대한 책임감 문제도 있다. 경제부총리는 단순히 예산 낭비를 막아 국가 재정을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다. 더욱 넓은 시각으로 국가 경제 전체를 바라봐야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를 구분하며 지역사랑상품권은 지역 사무라는 점을 에둘러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역 상황이 안 좋아 3년간 한시적으로 중앙정부가 도와준 것이고 이제 정상화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을 활성화 할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한다.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0여년 뒤, 인구 절벽을 맞는 한국 경제부총리 시각치고는 지나치게 편협하다”며 “우리보다 앞서 인구고령화를 맞은 일본 대장성(우리의 기재부)이 지역 살리기를 두번째 중요한 국가 시책으로 삼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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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시장=기재부 출신…예산에 멱살잡힌 지방 분권 (민중의 소리, 윤정헌·조아영·홍민철 기자, 2021-11-24 07:52:20)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②
현직 경제부시장·지사 10명 중 6명이 기재부 출신
관리의 기재부 손바닥 안에 있는 지방정부...“창의성 말살” 우려도
경제부시장 혹은 경제부지사를 두고 있는 광역시도 10곳 중, 6곳에 기재부 출신이 재직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기재부 출신 비율이 60%에 달한다. 예산 확보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지방정부의 ‘기재부 종속’을 우려하고 있다.
23일 민중의소리가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경제부시장·부지사직을 운영하고 있는 10개 시도의 최근 10년간 부시장·지사 54명 이력을 확인한 결과 기재부 출신은 모두 14명, 25.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 현재, 10개 시도 중 6명이 기재부 출신이다. 현직 경제부시장·지사 기재부 출신 비율이 6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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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중은 최근 들어 높아지고 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를 세 시기로 구분해 보면 1기인 2010~2013년까지 단 3명뿐이던 기재부 출신 경제부시장·지사는 2기에서 4.5명으로 소폭 늘고, 2018년부터 현재까지인 3기에선 9명으로 늘어난다. 기재부 출신을 영입하는 지자체가 점점 많아진 것이다. 울산은 전체 7명 중 4명이 기재부 출신이었다. 충북은 4명 중 3명, 부산도 9명 중 3명으로 비중이 높았다. 강원도는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연이어 기재부 출신을 경제부지사로 영입했다.
예산·세제·재정 담당 고위직 비율이 높았다. 조사 대상 14명 중 6명이 예산 편성과 관련된 실무를 맡았거나 실무 책임자인 과장(4급, 서기관)을 거쳤다. 2014년부터 2년간 부산시 경제부시장을 거친 김규옥(행시 27회)씨는 기획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강원도 경제부지사로 재직 중인 김명중 부지사(행시 40회)는 기재부 예산총괄과장, 예산정책과장, 지역경제정책과장 등을 거친 예산통이다.
기재부 출신을 영입하며 이른바 ‘전관 예산’을 기대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재정 취약한 지방자치…
재정자립도 높은 서울·세종·경기는 기재부 출신 0명
구조적 문제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근본이 허약하다.
세금은 크게 중앙정부에 내는 국세와 지방정부에 내는 지방세로 나뉜다. 비율은 대략 국세 8, 지방세 2다. 한 해 세금이 100조원 걷힌다면 80조원은 중앙정부가 가져가고 20조원만 지방정부에 돌아간다. 지방에서 걷을 수 있는 세금 자체가 별로 없다. 전문가들은 지방세 비중을 높여야 실질적 지방자치가 될 것이라 본다.
지방정부 수입 중 스스로 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재정자립도다. 2021년 기준 전국 17개 광역시도 평균 재정자립도는 40.2%에 불과하다. 부족한 재원 60%는 중앙정부에서 받는 교부금과 국가 보조금으로 채운다.
교부금은 재정자립도와 인구수 등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나눠준다. 나름 합리적 기준이 있다. 지방정부 사업을 충분히 뒷받침할 만큼 규모가 크다고 볼 순 없지만, 공평하게 분배된다.
문제는 국가 보조금이다. 부분 경쟁 체제다. ‘좋은 사업’을 중앙정부가 채택하면 국가 보조금을 많이 받는다. 국가 보조금도 교부금처럼 지방 안배를 하지만 모두 공평하게 분배 받는 시스템은 아니다.
지자체가 기재부 출신 경제부시장이나 부지사를 뽑으며 바라는 '전관 예산’은 바로 이 국가 보조금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한 방편이다. 2021년 기준 광역시도 재정자립도 1위는 서울시(75%)다. 2위는 세종시(58%), 3위는 경기도(57%)다. 세 곳 모두 지난 10년간 지역경제 책임자로 기재부 출신을 영입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광역단체 17곳 중 15위를 기록한 강원도(24%)의 기재부 출신 비율은 28%, 13위인 충북은 75%로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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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으로 예산 쟁탈전, 기재부 갑질(?)과 기재부 출신의 활약상?!
“안면 행정하는 거죠.” 기재부 출신 지역경제 책임자가 있는 A광역시도 예산지원팀 팀장 허명우(가명, 5급 사무관)씨의 말이다. 예산 확보로 가는 길이 막힐 때, 안면(인맥)으로 뚫어보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만나기 어려웠던 ‘기재부 사람들’이었다. 코로나 시국이 기재부엔 좋은 핑곗거리가 된 것처럼 보였다. “오지 마시라”고 말하기 쉽다. 예산 확보는 경쟁이다. 무턱대고라도 찾아가야 한다. “오지 말랬더니 왜 왔느냐”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다. 허씨는 “복도에 멍하니 서 있다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자료만 건네주고 오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말했다.
기재부 출신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수월해진다.“안면 행정”을 한다. 후배를 통해 실무진 간 약속이라도 잡아준다. 중요한 국면엔 직접 나선다.
“예산 심의할 때는 세종에 있던 기재부 사람들이 서울 사무국으로 올라오죠. 이때 우리 지역경제 책임자도 서울에 상주합니다. 직접 기재부와 접촉하고, 실무진 다리도 놔주죠. 아무래도 선후배니까…”
지역민 관심사가 집중된 도로 개설·교량 건설 사업이나 시장이 주력하는 국비 보조 사업 예산이 중요하다. 시장이나 도지사가 강조하는 사업 예산은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
광역시도 국비 보조 사업은 중앙정부 부처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도로 개설은 국토교통부와, 인공지능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하는 식이다. 중앙 정부가 사업을 선택하면 1차 문턱은 넘어선 것이다. 이제 2차 기재부 관문을 뚫어야 한다.
4급 서기관(광역시도 과장)이 기재부 5급 사무관을 만나기 위해 굽신댄다. 말 한마디 잘 못했다 예산 수억원이 사무관 손에서 칼질당하는 경우도 많다. 직접 예산은 놔두고 일반경비를 조금씩 삭감하며 ‘길들이기’하는 기재부 사무관도 적지 않다는 것이 광역시도 ‘예산지원팀’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지방정부 종속현상만 심화…”기재부가 창의성 막아”
기재부 출신의 ‘전관 예산’을 명확하게 확인하긴 힘들다. 실제 예산 확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확인할 수단은 많지 않다. 통계만 놓고 보면 한 지역에 예산을 편중했다간 나머지 지역의 반발을 감당할 수 없다는 기재부 내부의 정치적 고려가 더 강하게 작용한 듯 보인다.
최근 4년간, 7개 광역도 국가 보조금 총액 추이를 살펴본 결과 기재부 출신 경제부지사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국가 보조금은 평균 1.7배 늘었다. 전북(1.3배)과 경기(2배)를 제외하면 나머지 광역도 국가 보조금은 증가폭은 대동소이했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보조금도 영향을 미친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지역간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신설했다. 나라살림연구소 브리핑 자료를 보면 지난 14년간, 균특보조금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은 전남(22조원)이다. 전남은 재정자립도 22.2%로 17개 광역시도 중 꼴찌다. 재정이 가장 취약한 곳에 보조금을 많이 투입해 형평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광역시도의 기재부 출신 모시기는 심리적 측면이 더 강해 보인다. ‘남들 다 하는데, 나도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대는 지방정부의 기재부 종속현상을 심화시키고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예산을 집중해야 새로운 시도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데, 관리의 기재부 손바닥 안에서 창의적 시도가 약해진다는 뜻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기재부의 기획 기능은 사라지고 관리(지역 안배·균형) 기능만 강해지고 있다”며 “기재부가 모든 사업의 정점 역할을 하기 때문인데, 지역 상황에 맞는 반짝이는 사업에 과감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 정부가 마치 산하 기관처럼 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https://www.vop.co.kr/A00001602543.html
국회 쥐락펴락 기재부,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민중의 소리, 홍민철 기자, 2021-11-24 19:38:53)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③ 회계적으로 부풀린 예산, 국회는 감액하고 자기사업 증액…최종 결재권자는 기재부
604조원. 2022년 한국 예산 규모다.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짜고, 국회는 심의를 거처 최종 확정한다.
예산엔 기재부가 숨겨둔 것으로 의심받는 ‘국회용 선물’이 담겨있다. 전문가의 교묘한 숫자놀음으로, 국민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는 기재부가 준 선물 보따리에서 지역구 예산을 주섬주섬 챙긴다. 기재부는 국민 세금으로 마련한 예산 선물에 생색을 낸다. ‘OK 그 선물은 가져가시고, 요건 안되니 내려 놓으세요’라는 식이다.
표현이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이다. 믿지 못하겠다면 다음 내용을 천천히, 그리고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무관심 속에, 기재부는 매년 수백조원 짜리 판을 벌이고 ‘첫판부터 장난질’을 쳐왔다.
기재부가 국회에 준 선물 보따리
해마다 부풀린 수상한 예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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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안은 18개 부, 5개 처, 18개 청, 17개 광역단체 등이 다음 해 진행하는 8천여개 사업에 쓸 돈의 총합이다. 기재부는 8천여개 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1번 사업은 늘리고 2번 사업은 줄여’라고 검열한다. 검열은 ‘예산 협의’라는 이름으로 연초부터 12월까지 사실상 1년 내내 이어진다.
9월경, 기재부와 협의를 마친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 전달된다. 국회는 정부 예산을 심의한다. 국민이 낸 혈세를 정부가 허투루 쓰지 않도록 감시한다. 다소 과도한 예산이 있다면 삭감한다.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국회의원은 놀고먹는 직업’이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지만, 예산 심의 국면에선 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국회의원 300명이 정부가 제출한 8천여개 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적게는 수천만원, 많게는 수백억원 예산을 삭감한다. 의원 중에서 엄선된 15명은 중요한 사업 수백개 예산을 또 한 번 분석한다. 예산 삭감 작업은 보통 한 달가량 걸리고, 막판 1주일 동안엔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14시간 넘는 마라톤 심의 강행군이 이어진다.
8천개 사업 중 눈여겨봐야 할 예산이 몇 가지 있다. 기재부가 매년 엇비슷한 규모로 예측한 사업을 국회가 엇비슷한 규모로 삭감하는 예산이다.
‘국채이자상환’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빌려온다, 빌려온 자금에 따라 그에 맞는 이자를 줘야 하고 필요한 예산을 이자상환 사업에 배정한다. 기획재정부 담당이다. 서민들이 주택담보대출 받을 때 매월 이자를 계산해 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관건은 이율이 몇 %냐다. 아직 빌리지 않은(내년에 빌릴) 돈(예산)이기 때문에, 이자를 얼마로 잡아야 할지 확정하지 못한다. 기재부가 2.5% 이율을 예상하면, 1.5%로 가정할 때보다 많은 돈을 내년 예산에 이자 비용으로 잡아야 한다.
예측의 영역이다. 시기 각각 변하는 금리에 대한 전망은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2022년 11월 금리가 몇% 일지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기재부 예상 이자율보다 국회 예상 이자율이 낮다면, 국채이자상환 예산은 삭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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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간 기재부가 제출한 ‘국채이자상환’ 예산과 국회가 감액한 규모를 살펴보면 수상한 패턴이 발견된다. 감액 비율이 매년 비슷비슷하다. 국회는 기재부 제출 예산을 평균 6%씩 깎았다. 해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지난 10년간 감액 비율은 최소 4%에서 최대 9% 사이를 오갔다. 문재인 정부 3년 동안은 매해 5%로 동일했다. 감액 액수까지 9천억원으로 똑같다.
약속이나 한 듯 반복된다. 확인된 것만 10년째다. 이 수상한 비율을 계산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은 “추계가 어려워 생기는 오차라면 한해도 빠짐없이 일정한 비율이 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계속되는 예산 과다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봐야한다”고 말했다.
“고의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받는 예산은 더 있다. 국민연금급여지급액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지급 대상이 되는 가입자에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국채 이자’ 보다 쉽게 예측이 가능한 구조다. 매년 대상자가 되는 연령대 인구가 정해져 있고, 연금 가입자가 낸 돈에 따라 연금액은 자동 계산된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정부가 제출한 국민연금 예산은 매년 평균 3,360억원 가량 감액됐다. 정부가 과도하게 예상하고, 국회가 감액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공무원연금 퇴직급여·수당 예산처럼 예측 가능한 사업도 정부는 부풀려 제출했고, 국회는 기다렸다는 듯 삭감했다. 이렇게 삭감한 ‘수상한 예산’은 2021년 기준 2조4,500억원에 달한다.
정부와 국회의 예산 증·감 문제점을 수년째 제기하고 있는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회계적으로 감액된 예산은 사실상 기재부가 국회에 주는 선물 보따리다. 기재부가 국민을 상대로 거대한 예산 감액 쇼를 벌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재부가 감액하라고 준 예산
의원들 민원 사업 증액
기재부가 준 감액 선물 예산은 국회의원들의 민원사업 증액에 쓰인다. 기재부가 예산 감액쇼의 주범이라면, 국회는 공범이다.
총 감액 규모가 결정되면, 감액한 만큼 다른 사업 예산 증액 논의가 시작된다. 지난해 기준, 감액된 예산은 9조원이었다. 감액 예산 9조원은 의석수 비율대로 여야에 각각 배정된다는 것이 관련 업무를 담당한 국회 의원과 실무진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국회의원 정원의 57%를 차지하는 여당은 5조원을, 34%를 차지하는 국민의힘은 3조원을 챙겨가는 식이다.
각 당에 배정된 예산 중 일부는 각자 집중하는 정책 사업 증액에 우선 배정된다. 남은 예산은 의원들 민원성 사업 증액에 쓰인다. 대표나 정책위의장처럼 실세 의원이거나, 예산 심사에 직접 참여한 의원 지역구 사업은 일반 국회의원 지역구 사업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증액된다.
2019년 예산심의 담당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한국당 안상수 의원 지역구 예산은 46억원 넘게 늘어났고, 여당 간사였던 조정식 의원은 20억원, 야당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80억원 규모로 지역구 예산을 증액했다. 이해찬 당시 여당 대표는 국립세종수목원 예산이 대폭 증액되면서 200억원대 지역구 예산이 늘었다.
예산 심의에 직접 참여한 의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안배가 진행된다. 참여 의원 지역구가 충청도면 충청도를 지역구로 둔 의원과 광역단체 사업을 형평에 맞게 증액하는 것이다.
2019년 국회에서 증액된 사업 상위 목록을 살펴보면 상당 부분이 지역 SOC사업이다. 전남(보성-임성리), 경남(포항-삼척), 경기(서해선), 충청(도담-영천)에 건설되는 철도·전철 사업 예산이 똑같은 금액으로 증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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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정부가 제시한 예산 규모는 각기 달랐다. 전남 철도 예산은 2,600억원이었고, 경남 철도는 1,200억원, 경기도 복선 전철화 5,800억원, 충청 3,300억원이었다. 하지만 국회 증액 과정에서 이들 예산은 1천억원씩 나란히 증액됐다. 사업마다 공사 진행률이 다르고, 때문에 필요 예산이 달라지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늘어난 공사 예산은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같았다. 합리적 심의 없이 지역 안배 차원의 예산 배분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으로 의심받는 예산을 국회가 삭감하고, 이렇게 삭감된 예산은 국회의원 민원성 예산 증액에 사용되는 구조다.
국회의원 민원사업, 최종 결재권자는 기재부
각 당 예산 배분 과정에도 기재부는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증액을 최종 결정하는 것이 기재부다. 2021년 예산안 국회 총 감액 규모는 9조원이었지만 실제 증액 예산은 이보다 1조2천억원 적은 7조8천억원이었다. 9조원을 모두 증액할 것인지, 얼마나 줄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경제부총리와 기재부 고위 관료다.
청와대와 여당이 핵심 사업 몇백개는 직접 개입해 연초 계획 단계에서 증액할 수 있다. 하지만 8천개가 넘는 전체 사업 예산을 일일이 컨트롤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사각지대로 남은 대부분의 예산은 기재부가 결정한다.
감액 규모가 확정되면 국회 예산을 심의하는 여야 간사는 소속 당, 의원들이 요구하는 증액 사업 리스트를 만든다. 리스트 작업에는 기재부 예산실장 등 고위 관료가 함께하는 것이 관례다. 어떤 사업을 증액할지 검토하는 것이다.
예산 심사 과정을 잘 아는 국회 관계자에 따르면, 각 당이 요구하는 증액 사업 리스트가 담긴 파일은 기재부로 넘어간다. 파일을 받은 기재부는 해당 사업마다 X표시 1개, X표시 2개, X표시 3개로 증액 의사를 국회에 전달한다. 이 관계자는 “X표시 한 개는 증액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업이고, X표시 2개는 불확실, 3개는 증액 불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회가 특정 사업을 아무리 증액을 하고 싶어도 정부, 즉 기재부가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조다. 헌법이 국회에 예산 감액권을 보장한 것처럼, 기재부는 국회가 요구하는 예산 증액 사업에 대해 동의권을 갖고 있다. 만약 기재부가 국회 증액 요구에 동의하지 않으면 국회가 심의한 예산은 위법을 넘어 위헌적 예산안이 되는 구조다.
결국, 기재부는 예산 편성권을 휘둘러 국회에 줄 예산을 부풀릴 수 있고, 그 선물을 받은 의원들이 요구하는 예산 증액도 최종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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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의 나라’ 명확히 드러낸 다섯 장면들 (민중의 소리, 김백겸·홍민철 기자, 2021-11-25 09:26:25)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④
소득주도성장 부정하고, 부자 증세 뒤엎고, 재난지원금 반대하고
임기말, 청와대 경제라인까지 모두 장악한 기재부
관료는 정권을 잡은 정치세력의 철학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기획재정부는 가장 유능한 관료 집단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내내 걸림돌 같아 보였다. 청와대와, 때로는 여당과, 마침내는 국민의 발목까지 잡았다. “여기가 기재부 나라냐”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 됐다.
홍남기와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만들어낸 5개의 상징적 장면을 추렸다.
#1. 장하성과 김동연의 어색한 웃음
2018년 8월 29일.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가 악수하며 환하게 웃었다. 관심이 집중됐다.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다. 갈등설이 격화한 시점이었다. 장 실장은 “매일 보다시피 하고 이렇게 사이가 좋은데 왜 뉴스거리가 되냐”고 말했지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세간에선 ‘언론플레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두사람의 골은 깊었다.
발단은 최저임금이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 경제정책의 대표 공약이었다.
집권 첫해, 최저임금은 16.4% 올랐다. 역대 인상률 중 가장 높았다. 경영계와 보수언론의 ‘흔들기’가 시작됐다. ‘경비원 1만명 해고 위기’라거나 ‘청년 취업 한파에 알바까지 사라져’라는 등의 뉴스가 연일 전파를 탔다. 을들의 전쟁도 부추겼다. 편의점이나 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이 부각됐다.
논란 초기, 김동연 전 부총리는 “인상 부담 경감을 위해 여러 대책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 소득주도 성장에 우호적인 듯 보였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하자 김 전 부총리는 돌아섰다. 그가 본격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에 반기를 든 것은 2018년 5월 취업인구가 3개월 연속 10만명대를 보이면서부터다.
통계청이 당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최저임금 인상이 적용된 2018년 1월 취업인구는 33만명이었다. 이후 급감했다. 2월부터 10만4천명, 3월 11만2천명, 4월 12만3천명으로 3개월 연속 취업인구 10만명대를 기록했다.
당시 김 전 부총리는 공개석상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고용과 임금에 영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같은 고용동향 자료를 두고 “최저임금으로 인한 고용감소 효과는 없다는 것이 현재까지 결론”이라며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고 봤다. 경제 ‘투톱’인 장 실장과 김 부총리 메시지가 다르게 나오자 갈등설이 시작됐다.
청와대는 장 전 실장에 힘을 실어주면서 갈등설을 해소하려 했지만, 김 전 부총리는 “2020년까지 1만원 목표를 신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속도조절론을 계속 주장했다.
결국 그해 7월 14일 최저임금 인상률은 전년도(16.4%)보다 5.5%포인트 낮은 10.9%로 결정됐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목표를 달성하려면 15.2% 수준으로 인상 됐어야 했다.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은 무산됐다. 이틀 뒤인 16일 문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갈등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전체를 두고 확전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그간 추진한 경제정책 효과를 되짚어 보고, 필요하다면 개선·수정하는 방향도 검토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앞서 장 실장이 “송구스럽지만 정부를 믿고 기다려 달라”고 말한 발언과 대조를 이루면서 갈등설은 격화됐다.
논란이 확대되자 문 대통령이 진화에 나섰다.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결과에 직을 걸라”고 경고하는 한편 “우리는 원팀”이라며 강력한 자제 메시지를 내놨다.
장하성 전 실장과 김동연 전 부총리가 웃으며 손을 맞잡은 그날은, 대통령의 경고 메시지가 나온 직후였다. 두 사람의 미소가 어색해 보였던 이유다.
두 사람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 전 부총리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부정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다시 논란이 일었다. 한 달 여 뒤인, 10월 18일 국회 국정감사에 나온 그는 “최저임금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동의하느냐”는 질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도발이었다.
이후 11월 진행된 예산 심사 과정에서도 두 사람 갈등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결국, 청와대는 11월 9일, 장 전 실장과 김 전 부총리를 동시에 경질했다. 예산 심사 기간중 이뤄진 충격적 인사였다.
#2. ‘조세개혁특위’는 모르겠고…“우리는 현행유지”
“경제 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위 건의안과는 달리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2018년 7월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조세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구성한 재정개혁특위 결론이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단박에 무시되는 순간이었다.
재정개혁특위는 ‘100년을 갈 조세개혁’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출범했다. 재정개혁특위는 출범 3개월여만인 7월 3일 첫번째 결과물인 조세개혁권고안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내용은 금융소득종합과세(금소세) 기준 금액을 2,0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낮추는 것과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인상안 등 ‘부자증세’가 골자였다. 그러나 김 전 부총리는 금소세 강화에 대해선 하루만에 ‘검토해봐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보였고, 종부세 강화안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해버렸다.
기재부가 공식발표한 정부안에서 금소세 기준 인상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 부담으로 인해 부동산 시장의 자금 쏠림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종부세도 조세개혁특위의 권고안보다 후퇴했다. 권고안은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연 5%포인트씩 인상해 2022년까지 100%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기재부가 발표한 정부안에는 90%까지만 인상하는 것으로 한계를 뒀다. 특위는 토지분 종부세도 소폭 올리는 방안을 내놨지만, 기재부는 이를 아예 거부했다.
특위가 내놓은 종부세 개편안도 당시 여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맹탕’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기재부가 그보다 더 후퇴한 안을 내놓은 것이다. 기재부의 폭주에도 청와대는 “조율된 안”이라며 “특위는 자문 기구일 뿐”이라고 말해 묘한 뒷맛을 남겼다.
조세개혁특위는 기재부의 벽을 넘지 못했고, 청와대의 옹호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특위는 더 소극적으로 운영됐다. 특위 당연직 위원으로 명단에 올랐던 기재부 세제실장과 재정관리관은 2018년 하반기 이후에는 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대를 모았던 특위는 2019년 2월, 초라한 성과만 남기고 활동을 마무리했다. 당시 참여연대는 “용두사미”라고 촌평했다.
#3. “여기가 기재부 나라냐!” 버럭한 국무총리
“여기가 기재부 나라냐!!”
2020년 4월 22일, 정세균 국무총리 방에서 고성이 터져나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향한 고성이었다. 홍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은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고, 말을 듣지 않자 정 총리 입에서 큰소리가 나온 것이다.
기재부는 이후 ‘재정건전성’이란 옹벽에 갇혀 청와대·여당·여론과 끊임없이 부딪혔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보인 재정운용은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홍남기 부총리를 중심으로 한 기재부는 2020년 이후 지금까지 청와대·여당·여론에 끊임없이 반발했다. 지난해 4월 ‘전국민 재난지원금’ 국면이 대표적이다.
초기 재난지원금은 재난기본소득으로 불렸다.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가 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했다. ‘기본소득’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논의는 처음부터 전국민 지급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단순한 재난지원금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이라는 철학이 담긴 이름이었다.
같은 해 2월 IMF(국제통화기금)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충격을 우려하면서 “한국은 재정 여력이 충분하니 적극적인 재정·통화 정책을 유지해달라”고 주문한 것도 ‘재난기본소득’ 주장에 힘을 실었다.
기재부는 처음부터 재난지원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1차 추경예산을 추진하던 홍 부총리는 3월 11일 국회에서 “재정 여건을 감안하면 굉장히 선택하기 어려운 옵션”이라고 말했다.
여당이 강력 반발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여론이 움직였다. 긴급한 시기에 전국민 지급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당시 총선 국면을 맞아 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마저도 여론에 눈치를 보며 전국민 지급에 동의했다.
국무총리도 움직였다. 정세균 당시 국무총리는 홍 부총리를 두번이나 불러 전 국민 지급을 설득했다. 여당과 국무총리가 기재부에 동의를 구하는 옹색한 장면이 자꾸 드러났다.
당시 보도에 다르면 정 총리는 홍 부총리에게 ‘고소득자 자발적 기부’라는 중재안을 건넸다. 홍 부총리가 이마저도 거부했다고 알려진다. 정 총리가 “여기가 기재부의 나라냐”라고 고성을 질렀다는 게 바로 이 대목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정 총리의 중재안에 힘을 실어줬다는 것이 정설이다.
결국, 홍 부총리의 기재부는 청와대와 여야, 국무총리는 물론 여론과도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됐다. 홍 부총리는 마지못해 “‘고소득자 등의 자발적 기부’를 전제로 긴급재난지원금의 전 국민 지급을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불편한 심기는 감추지 않았다. 재난지원금을 위한 2차 추경예산안 국회 심사 과정에서 “(소득하위) 70%(지급)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며 ‘뒤끝’이 작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최근까지도 6차 재난지원금 선별지급을 고수하고 있다. 기재부의 ‘재정건전성’은 전가의 보도처럼 이곳 저곳에서 문재인 정부 정책을 칼질했다.
#4. 유력 차기 대권주자에게 “철없다” 나무란 경제 부총리
“철 없는 발언이죠?”
임의자 미래통합당 의원이 홍남기 경제부총리에게 물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국민에게 오해 소지를 줄 수 있는 발언입니다”
홍 부총리가 답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경기도지사 시절 “재난지원금을 30만원씩 50번, 100번 지급해도 선진국 국가부채비율에 도달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한 질의와 답변이었다.
재난지원금의 전국민 지급을 강하게 주장하는 이 후보와 선별지급을 고수하는 홍 부총리가 본격적인 설전이 시작된 장면이다.
재난지원금 논의 과정에서 홍 부총리와 가장 격렬하게 부딪힌 것은 이 후보였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정부가 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하기도 전에 도민 1인당 10만원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결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특히 이 후보는 '재정건성성'을 이유로 재난지원금에 반대하던 홍 부총리와 기재부를 향해 "(기재부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상황에 전혀 적응을 못하고 있다"며 날 선 비판을 했다.
이에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던 홍 부총리는 임 의원의 질문에 “철 없는 발언”이라고 응수한 것이다.
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황스럽다”면서 “존경하는 홍남기 부총리께서 ‘철없는 얘기’라 꾸짖으시니 철이 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불쾌함을 표하면서도 “재정 건전성 걱정에 시간만 허비하다 ‘경제 회생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와 이 후보는 예산을 두고서도 설전을 벌였다. 같은 해 12월 22일 이 전 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정부가 광역버스 예산을 삭감한 것을 두고 “아무리 ‘기재부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소불위라지만 기재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사감으로 정부기관 간 공식합의를 마음대로 깨지는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같은 날 SNS에 올린 또 다른 글에선 한국의 재정 적자가 42개 주요 국가 가운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것을 두고 홍 부총리를 향해 “뿌듯한가”라고 반문하면서 “만약 그렇다면 경제관료로서 자질 부족을 심각하게 의심해 보셔야 한다”고 비꼬았다.
홍 부총리도 반박했다. 이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기재부와 저의 업무에 대해 일부 폄훼하는 지나친 주장을 듣고 제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문득 법구경 문구가 떠올려졌다”라며 “비여후석 풍불능이 지자의중 훼예불경(譬如厚石 風不能移 智者意重 毁譽 不傾) 즉 ‘두텁기가 큰 바위는 바람이 몰아쳐도 꿈쩍하지 않듯 진중한 자의 뜻은 사소한 지적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 전 지사의 비판을 우회적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두 사람의 설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 후보는 기재부 해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재부의 예산 권한을 (기재부에서) 분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도 탁상행정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5. 기재부에 포위된 청와대 경제라인
올해 3월 29일 ‘전셋값 논란’으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물러났다. 후임으로 기재부 출신 이호승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임명됐다. 경제수석의 공석은 안일환 당시 기재부 2차관이 채웠다. 기재부 차관보 출신인 이형일 경제정책비서관까지 청와대 경제정책라인이 모두 기재부 출신으로 구성되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8년만에 일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까지 학자 출신을 정책라인을 이끄는 정책실장에 영입하면서 등 ‘헤드(리더)는 절대 관료 출신을 쓰지 않는다’는 기조를 강조했으나, 현재는 청와대와 행정부 대부분의 자리를 관료출신들이 메우고 있다.
현재 경제관계장관회의 참석자(부처 17곳+경제수석) 중 기재부 출신은 홍 부총리를 비롯해 3명이다. 이달 교체된 안일환 전 경제수석과 지난 8월에 퇴임한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까지 포함하면 기재부 출신만 5명일 때도 있었다. 관료 출신으로만 따지면 현재 9명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경제관계장관회의 구성원 중 기재부 출신만 3명이 있던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통상 정권 말기에는 인재들이 공석에 가기를 꺼려하거나, 정부 스스로도 안정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김앤장(김동연, 장하성)’ 갈등으로 대표되는 관료사회와의 심한 갈등을 겪어온 만큼 이런 경험이 조직 장악이 수월한 관료를 선호하는 쪽으로 선회하도록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6명의 정책실장 중 3명을 관료 출신으로 임명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에서 이런 상태를 “관료에 포획됐다”라고 적었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백기를 들고 관리를 중심으로 관료들의 전문성에 의존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 초기에 보였던 진취성은 관료와의 갈등속에서 약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핵심 자리가 기재부 출신이고, 파견나온 공무원들도 기재부 출신이니까 대통령의 눈과 귀를 다 가리고 있다"며 "초기에 문재인 정부에서 외부인사로 청와대로 들어간 장하성 전 정책실장, 홍장표 전 경제수석이 상징적인 존재인데 관료들에게 밀려나면서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재부 관료들이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에게 '얼마나 버틸수 있는지 두고보자'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정도"라며 "무조건 관료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지만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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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민중의 소리, 조한무·홍민철 기자, 2021-11-25 18:37:27)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⑤
기재부 핵심 권한 예산권, 청와대 직속으로 둘 수 있을까
김대중의 도전과 실패, 문재인의 소극적 시도
기획재정부는 국가 경제 전반을 총괄한다. 비전을 세우고 세금을 추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짠다.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국제금융 상황에 대응해 외환을 관리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멋대로 휘두르는 검찰과 닮았다. 국민 살림살이에는 검찰보다 훨씬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곳이 기재부다. 이젠, 해체할 때다. 김대중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무엇을 시도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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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넘어 권력된 예산권의 정상화 방안
예산 편성권은 기재부 핵심 권한이다.
편성은 기재부 예산실에서 담당한다. 각 부처 사업 심사·조정 등 예산 편성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예산 총괄 심의관 아래 사회·경제·복지안전·행정국방 예산 심의관이 있다. 4개 심의관 아래 세부 분야별 과가 있다. 이들이 정부 사업 8천여개를 총괄한다. 현재 기재부 예산실 정원은 약 200명이다. 대통령 비서실이 모두 합해야 400명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거대한 조직이다.
예산권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것이 기재부 해체의 출발이자 끝이다.
예산권을 청와대로 이관하는 방안이 있다.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산하로 예산실 기능을 옮기는 방안이다. 청와대로 예산권이 넘어가면 공약과 정책의 괴리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공약 실행에 대해 평가받으면서 책임이 강화되는 원리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정책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인 예산 편성은 관료가 할 일이 아니다. 관료가 예산권을 쥐니까 반(半) 정치인이 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대통령 비서실보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예산실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예산 편성은 각 부처 사업을 법령과 절차에 따라 반복 검토하는 일이다. 각 부처와 빈번한 소통이 필수다. 효율성을 감안하면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신뢰하는 인사를 예산실 수장으로 두면 굳이 청와대 직속으로 두지 않아도 대통령 뜻을 예산에 반영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쟁 속 ‘절반의 성공’ 그친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예산권을 청와대에 두려 했다. 당시, 예산권은 김영삼 정부에서 꾸려진 재정경제원에 있었다. 재정경제원은 현재 기재부와 닮은 꼴이다. 조세·금융을 담당하는 재무부와 예산권을 쥐고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경제기획원을 합한 조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재경원 해체를 추진했다. 1998년 IMF 사태 주범 중 하나가 재경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 권한 집중으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국가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예산 관리에 나설 필요성도 대두됐다.
개편 요지는 재정경제원 예산권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예산권을 제외한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부로 축소했다. 예산권은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이양하고,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방안이었다.
당시 연합정부(DJP연합)를 구성했던 자민련이 반발했다. 예산권을 재경원에서 떼어내자는 데는 공감했지만, 청와대 예산권 집중엔 반대했다. 자민련은 당시 김종필 총재가 맡게 될 국무총리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두자고 주장했다.
개편안은 누더기가 되기 시작했다. 타협안이 나왔다. 예산 기획과 편성을 분리하는 안이었다. 기획권은 청와대가 갖고, 편성권은 또 다른 조직을 만들자는 안이었다.
기획예산처가 아니라 기획예산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위원회는 예산 기획만 하자는 것이었다. 핵심인 예산 편성은 독립 외청인 예산청을 만들어 재경원에서 분리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 발의되자 야당도 반대했다. 예산권을 대통령이 가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예산만 갖고 있으면 국가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며 “중요한 예산 기능을 몽땅 대통령한테 뺏기고 마는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야당은 자민련 의견에 동조하며 예산권을 국무총리 산하에 두자고 주장했다.
자민련과 야당 반대가 거세지며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는 무산됐다. 통과된 정부조직법은 반대세력의 의도대로 됐다.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위원회는 재정 계획만 세우고, 예산 편성 지침을 내리는 수준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당시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이었던 고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논문에서 “결국은 기이한 형태의 기구가 탄생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김 명예교수는 “원안이 꽤나 왜곡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의 분리”라고 적었다.
예산 기획과 예산 편성 기능이 이원화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또 다른 쟁점이 됐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와 관료 조직 간 긴밀한 협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옆에 자리를 잡았고, 예산청은 정부 과천청사에 있었다. 물리적 거리 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었다.
두 조직이 출범한 직후부터 통합 얘기가 나왔고 이듬해, 두 조직은 기획예산처로 통합됐다. 통합된 기획예산처는 대통령 직속이 아닌 총리실 소속으로 편제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 시도는 그렇게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무산됐다.
예산권 분리에 속 태운 경제 관료…10년 흘러 ‘공룡 부처’ 부활
재경원 해체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 윤곽이 드러나면서 경제 관료는 속을 태웠다. IMF 사태 책임으로 장관과 국장급이 경질되는 상황이었다.
예산권이 떨어져 나가는 데 대한 재경원 내부 반발심은 간접적으로 감지된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한 국장급 간부는 예산권 이관에 대해 “업무가 제대로 되겠냐”고 말했다. 해당 언론은 재경원 대다수 고위관리가 ‘공룡 부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보도에서는 재경원 해체 과정에서 ‘파워엘리트’ 관료 집단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전해지기도 했다.
전면적인 저항에 나설 수 없었던 재경원 관료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재경원 관료의 저항이 정치권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진 교수는 “재경원 관료 입장이 국회의원의 입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전부터 종종 있었다”며 “예산권 분리가 논의되는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는 “도도한 경제 관료의 힘은 아무리 외환위기라 해도 막강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모델은 이후 폐지된다.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되던 때도 스멀스멀 올라오던 ‘재경부 부활론’이 10여년 뒤 이명박 정부의 기재부로 실현됐다. 형식적으로나마 분리됐던 예산권은 다시 관료집단의 통제 아래에 들어갔다.
문재인 정부 ‘타협안’ 재정기획관…예견된 한계, 현실로
문재인 정부도 기재부 예산권에 대한 청와대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2017년 5월 첫 청와대 조직 개편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속으로 재정기획관을 신설했다. 재정기획관은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재원 배분을 기획·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통령 공약이 예산에 반영되는지 살핀다.
재정기획관 신설은 예산실 이관을 완화한 형태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예산권을 가져오는 데 대한 기재부 반발을 의식해, 재정기획관이 큰 틀에서 기재부와 예산을 조정하는 정도로 타협했다는 것이다.
2017년 초,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 방안을 제시했다. 예산 기획(경제전략, 공공기관 관리) 부문을 분리해 기획예산처를 설립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연구소의 제안은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도, 집권 이후 인수위 성격으로 꾸려진 국정기획자문위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당시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기재부 해체 방안을 제기했던 홍일표 경제인문사회 연구소 사무총장은 “세부적인 검토 과정 없이 기재부와 같은 거대 조직 개편을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대신 등장한 것이 재정기획관 신설이었다.
재정기획관 신설은 기재부 반발과 현실적 제약으로 마련된 타협안이지만, 기재부 내부에서는 이마저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언론을 통해 ‘청와대에 예산 관련 비서관을 둔다는 건, 부처에 자율성을 준다더니 청와대에 상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비쳤다.
재정기획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기재부 관계자의 의견처럼 ‘상전’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소득주도성장이 성과를 평가할 만큼 충실히 추진됐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비상 국면에서 긴급 대응과 재정 확대가 충분했느냐에는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박상인 교수는 “내부적으로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3자 입장에서는 재정기획관 모델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학자 출신이 재정기획관으로 와서 기재부를 강하게 그립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기획관 사례는 예산실을 청와대로 이관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범진보진영, ‘기재부 조직 개편’ 한목소리
범진보진영 대선 후보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를 구상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가장 명확하고 선명하게 대안을 제시한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재부로부터 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기재부가 예산 권한으로 다른 부처의 상급 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의 제일 문제는 기획·예산·집행 기능을 다 가진 것"이라며 "그 문제를 교정해야 각 부처의 고유 기능이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5일에도 “기재부를 해체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미국은 백악관에 예산실이 있다. 그런 것도 고려할 때가 됐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미국은 대통령실 직속 예산관리국(OMB)이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를 예산에 반영한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기재부 예산실 분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재연 선거운동본부는 지난 4일 논평을 통해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경부로 분리해 견제와 균형을 실현하고, 공공성을 기준으로 중장기적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예산이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캠프도 기재부 해체를 골자로 한 정부 조직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 캠프 측은 “아직 안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조직 개편 핵심은 기재부”라고 설명했다.
보수·중도진영에서는 대체로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기재부 조직 개편은 전체적인 정부 조직 개편 방향성 내에서 움직인다”며 “현재로서는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 조직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공개하기 이른 감이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도 향후 공약 발표 일정에 맞춰 정부조직개편 관련 구상을 내놓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새로운물결(가칭) 김동연 후보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기재부 예산 기능을 청와대로 옮겨 대통령이 예산 편성과 집행을 직접 하면 많은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며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방안도, 책임총리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과 노하우 측면에서 썩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기능과 조직이 비대해 역할과 기능 조정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