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국제, 평화, 민족

망각을 거부하라 (박민희, 2021.03.03)

새벽길 2021. 3. 4. 19:13


중국의 현실을 보면 전혀 사회주의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애국주의가 만연하고, 잘못된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도 거부한 채, 스스로 인민임을 참칭하는 당과 국가만이 있을 뿐 민주주의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는 물론 서구자본주의 국가에서 보장되는 언론의 자유,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3권, 집회시위의 자유, 결사의 자유조차 무시되고 억압되는 국가를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입으로만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떠벌리는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박민희 논설위원의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은 중국의 현 상황에 대해 진지하게 통찰할 수 있는 소재들을 준다. 이전의 글들도 읽어볼 만하다.

 
망각을 거부하라 (한겨레, 박민희ㅣ논설위원, 2021-03-03 02:42)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8
장잔에 대한 가혹한 처벌, 그리고 다른 시민기자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실종’에는 ‘중국이 공산당의 지도 아래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공식 역사 이외의 내용은 모두 지우려는 중국 당국의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의 성공 스토리에 흠집이 나는 것을 막으려는 중국 당국과 중국의 초기 대응 실패로 전세계가 겪는 고통을 상기하려는 외부 세계 사이에 ‘기억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전세계에서 중국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높아진 가운데, 중국은 ‘우리는 코로나19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극복했다’는 성과를 과시하면서, 초기 방역 실패의 교훈은 망각으로 밀어넣으려 한다. 중국의 코로나 대응은 극과 극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발병 초기 정보를 은폐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통제 국가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한 봉쇄 이후 강력한 국가권력의 힘으로 효율적으로 상황을 통제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당국이 초기 대응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실을 지우려 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외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고, 중국 내에서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을 억압한다.

중국 당국이 초기에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우한 시민들이 국내외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했다면, 세계는 지금 어떤 상황일까. 코로나19의 고통 속에서 우리가 중국에 바란 것은 ‘우리가 처음에 조치를 해서 이런 혼란을 막았어야 했는데 미안하다. 새로운 전염병이라서 대처에 미흡했다. 함께 진상을 규명하고, 극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과가 아닐까.

시진핑 시대 들어와 당의 영도와 애국주의가 강조될수록, 사회의 문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보도하려는 언론인들의 침묵을 강요하는 압박은 점점 강해졌다. 

당내 문제를 비판한 지식인과 학생 등 55만명이 우파로 몰려 숙청된 반우파투쟁(1957~1959), 수천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숨진 대약진운동(1958~1960), 문화대혁명(1966~1976)의 혼란, 천안문 시위 유혈진압(1989년)에 대해 중국 당국은 피해자들에게 사과한 적이 없고 진상 규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코로나19의 진상 규명도 그렇게 또 하나의 금기어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은 세계를 향해 ‘코로나는 우리 책임이 아니고, 우리는 승리했다’는 서사를 강요하고 있다. 진실을 지우려는 권력에 도전한 시민기자들은 자신들을 희생해 우리에게 외친다. ‘망각을 거부하라’고.

 

망각을 거부하라

박민희의 시진핑 시대 열전 _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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