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로 가는 길/진보정당과함께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인터뷰

새벽길 2021. 2. 28. 00:03

권영길 지도위원의 전반적인 인터뷰 내용은 동의할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 또한 많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이자 지도위원이라면 일절 발언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보수언론과 보수양당에서 쏟아지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동운동에 대한 왜곡과 비난에 대해 맞부딪히고 싸웠어야 했다. 더욱이 그는 서울신문노조, 언론노련의 위원장이었지 않은가? 누구보다 언론대응의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 그간 침묵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총파업이라 할 수 없는 총파업이 남발되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총파업이 왜 남발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그만큼 총노동이 밀리고 있다는 반증일 텐데, 누군들 철저하게 준비된 총파업을 하고 싶지 않겠나. 지도위원이라면 그런 걸 요청할 게 아니라 준비된 총파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쌓아나가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러했는지...

 

권영길 지도위원은 "공공의료 체계가 강화되고 공공의료 노동자도 대폭 증원돼야" 한다는 점을 내걸고 민주노총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국민을 위한 파업이라며 나서야 하고, 공세적 입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권영길 지도위원의 생각과는 달리 오히려 수세적이고 의미 없는 노사정 대화에 집착했던 김명환 민주노총 집행부와 보건의료노조의 행태에 대해 비판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에게는 끊임없이 공공의료 확충과 사회공공성 강화를 주장해왔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모범을 보인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의 투쟁은 보이지 않나 보다. 의료연대본부는 그러한 '국민을 위한 파업'을 꾸준히 해왔고, 보건의료노조는 여기에 함께 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제로 무엇을 안겨줄 것인가를 대정부 교섭과 투쟁으로 얻어내야 하는데, (민주노총은) 그런 걸 하지 않았다"고? 현실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비판과 대안도 헛다리를 짚는다. 민주노총이 그런 걸 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철이 되지 않았다. 민주노총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권영길 지도위원은 민주노동당 분당이 노동자, 농민, 빈민에 대한 역사적 죄를 저지른 것이며,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것을 뼈아프게 성찰하고 반성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 당도 저 당도 갈 수 없다고 얘기한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진보정당의 통합을 주장할 수는 있다. 하지만 본인이 민주노동당 분당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진보정당의 통합을 주장하기에 앞서 권영길 지도위원의 자기성찰과 반성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당을 사당화하려는 패권주의 세력에 초대 당대표이자 대통령후보였던 권영길 지도위원 등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리면서 당원민주주의가 사라지고 당이 진보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 상황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분당하면서 국민이 차려준 밥상을 걷어찼다고 보는 인식 자체에 동의하기 어렵다. 민주노동당이 쪼개질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려 들지도 않으니 단지 이권다툼으로 보는 시각을 그대로 따라하게 된다. 권 지도위원 스스로 책임을 통감해야 할 부분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진보정당의 통합 운운하는 것에 공감할 수 없다.

 

진보정당이 십년 앞을 바라보는 장기적 사업을 해야 하고, 하나가 될 구체적 사업을 통해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누가 그걸 모르나? 민주노동당 초대 당대표라면 그런 장기적 사업이란 이런 것이라고 밝히고, 하나가 될 구체적 사업이 무엇인지 얘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 당연한 말을 반복하시니 인터뷰가 아쉬운 거다.

 

권영길 지도위원은 '공익 노동'을 제안하였지만, 변화된 사회의 비전은 별로 새롭지 않다. 로봇기업은 국유화하고, 지구 지키기나 생태환경 보호, 돌봄노동 등을 일자리의 장으로 넘기며, 플랫폼 기업도 과감하게 국영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국유화의 대상만 다를 뿐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변혁의 비전을 얘기하고자 한다면, 4차 산업혁명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그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국유화의 대상만 바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유구조, 지배구조에 대해 고민하며, 국가의 역할 강화가 단지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관료 권력의 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동자 민중의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고, 이른바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대해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출해야 한다. 이를테면 공공의료 강화 또한 무엇을 위한, 누구에 의한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말뿐인 공공의료 강화는 이미 문재인 정부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권 지도위원은 촛불혁명 정권인 문재인 정권이 한국 사회 전체를 대개혁해야 하고, 보육·교육·주택·의료·노후보장의 문제를 총괄적으로 논의하는 사회대개혁위원회를 구성해 노동 문제도 그중 한 파트로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미 문재인 정권이 촛불항쟁을 참칭했을 뿐이며, 그들이 한국 사회 전체를 대개혁할 의지도, 역량도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 지금, 사회대개혁위원회가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노동이 거기에 들어간다고 뭐가 바뀔 것인가? 이는 권영길 지도위원의 정세 인식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가 남은 1년동안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사회적 의제 하나만이라도 했으면 하길 바라기보다, 이 정부는 그러하지 못한다는 걸 명확히 하고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근본적인 민중적, 사회적 의제를 제시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끝맺음했으면 더 울림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건 헛된 기대였겠지만...

 

이 인터뷰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는 이가 있어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권영길 지도위원에 대해 그나마 그 분보다는 더 안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비판적인 코멘트를 하다 보니 길어졌다. 이것도 나름의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애정이 없으면 아예 관심을 껐겠지.

덧. 이걸 빼먹었다. 코로나19가 진보정당을 불러냈다고? 글쎄다. 코로나19에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국가의 역할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 노동자민중운동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코로나가 진보정당 불러내…자본주의 찌꺼기 없애는 게 새 진보정치”

신승근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정의당, 토지공개념·국공립대 통합·무상의료 등 전면에 내세워야젠더성 강화하되 노동자·농민 등 지지계층 이해 충실히 대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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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진보정당 불러내…자본주의 찌꺼기 없애는 게 새 진보정치” (한겨레, 신승근 논설위원, 2021-02-24 19:22)
신승근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정의당, 토지공개념·국공립대 통합·무상의료 등 전면에 내세워야
젠더성 강화하되 노동자·농민 등 지지계층 이해 충실히 대변을
정의당·진보당 등 소멸할 수도…눈앞만 보지 말고 통합 나서야
민주노총 총파업 남발…준비 안된 파업 안할 위원장 결단 필요
4차 산업혁명 반대론 일자리 못 지켜…‘공익노동’ 등 대안 찾아야
문 대통령, 보수세력 반발 걱정하다 개혁 못해…이제라도 결단을
“철저하게 준비된 총파업을 하라는 것이다. 1년이든 2년이든 조합원들에게 왜 우리가 파업을 해야 하는지, 뭘 내건 파업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또 모든 노동자가 함께 해야 한다. 임금을 많이 받든 적게 받든, 노동조건이 좋든 나쁘든 연대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파업의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그런 파업을 하라는 것이다. 나는 민주노총 내부에서 용기 있는 위원장이 돼라, 왜 파업을 안 하냐는 얘기를 듣더라도 준비되지 않으면 차라리 하지 말라고 얘기해왔다.”
“가장 중요한 게 ‘방역 안보’인데, 그 주체는 보건의료 노동자다. 공공의료 체계가 강화되고 공공의료 노동자도 대폭 증원돼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료 병원과 인력을 늘리겠다고 약속하고 예산은 전혀 반영을 안 했다. 합의하고, 실천은 안 했다. 바로 이것을 민주노총과 보건의료 노동자들이 관철해야 한다. 지금부터 이것을 내걸고 노동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한 파업이라고 얘기해야 한다. 임금인상 투쟁, 노동조건 개선 투쟁 이건 기본 임무다. 그와 함께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환경을 제대로 갖추는 투쟁을 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국가운영의 주체라는 걸 항상 인식해야 한다. 정부에 호소하고 간청하고, 정부가 어떤 법을 만들면 이런 법 만들지 말라고 반대하는 수세적 입장을 벗어나 공세적 입장으로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