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한겨레를 통해 국방부가 23권의 책들에 대해 불온서적 딱지를 붙였다고 할 때 이거 커지겠네 싶었다. 역시나 돌고돌아서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책들이 '국방부 추천도서'가 되어 팔리는 꼴이 되었다. 알라딘에서는 이를 잘 포착하고 이슈화하여 엄청난 광고효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을 선정한 기준을 알 수가 없다. 기껏 추측할 수 있는 게 군 내부에서 문제가 되었던 책이 아닐까 하는 것 뿐이다. 이미 품절된 책들도 포함된 것을 보면 최근의 문제작을 선정한 것은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북한을 노골적으로 선전하는 책들도 빠져 있다.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었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이 중에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벗>, <소금 꽃나무>,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사>,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추천할 수 있다. 이 중에 벗은 북한 소설이기는 하나, <민중의 바다> 등의 북한 소설들과는 달리 이념적인 색채가 진하진 않다. <대학시절>은 고리끼의 책일 수도 있고, 북한 소설일 수도 있다.
사실 이 중에 내가 읽은 것은 몇 권 되지 않는다. <벗>, <핵과 한반도>, <소금 꽃나무>,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사>, <세계화의 덫> 정도이고,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김남주 평전>은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던 것들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책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우회적으로 국방부의 무식성을 진중권과 우석훈이 비꼬기도 했지만, 내가 볼 때에도 그들의 책이 그리 체제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국방부의 선정기준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주체사상 비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같은 책도 포함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불온서적 선정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겠나. 혹시나 문화부에서 판을 확대하지는 않나. 그러면 재미있을 텐데...
-------------------------------------------------------- 군, 대학교재·베스트셀러도 “불온서적” (한겨레, 노현웅 기자, 송지혜 인턴기자, 2008-07-31 오전 09:45:20) 국방장관 지시따라 책23권 차단·수거명령 ‘나쁜 사마리아인들’ ‘삼성 왕국의…’ 등 포함
국방부가 대중성 높은 인문교양서와 십수만권이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불온 서적’ 딱지를 붙여 수거명령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은 또 장병들의 개인 우편물 내용을 간부 입회 아래 확인하는 등 불온 서적 차단 대책도 전군에 지시했다.
30일 <한겨레>가 입수한 공군참모총장 명의의 공문을 보면, 공군본부는 지난 24일 각급 부대에 7월28일~8월8일 불온 서적 반입 여부를 일제 검검해 8월11일까지 상급부대에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이 조처는 지난 19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국방부 보안정책과에서 육·해·공군 등 각군에 내린 ‘군내 불온서적 차단대책 강구(지시)’에 근거한 것으로 돼 있다.
공문은 “불온서적 무단 반입시 장병 정신전력 저해요소가 될 수 있어 수거 지시하니 적극 시행”하라며, ‘북한 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 등 세 분야로 나눈 23개 ‘불온서적 목록’을 제시했다. 군 당국이 분류한 불온서적 목록에는, 세계적인 석학의 저서와 대중적인 인문교양서, 일반적인 문학작품과 베스트셀러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지난해 10만부 이상 팔리며 상당수 언론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인데도 ‘반정부·반미’로 분류됐고, 대학 교양수업 교재로도 널리 읽히고 있는 <북한의 우리식 문화>(민속학자 주강현 지음)는 ‘북한 찬양’ 딱지가 붙었다. 또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의 저서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는 ‘반정부·반미’ 도서로, 삼성의 불법 비리 의혹과 맞서 싸워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반자본주의’ 책으로 각각 분류됐다.
공문은 또 ‘군내 불온서적 반입 차단대책’으로 △불온서적 취득시 즉시 기무부대 통보 △휴가 및 외출·외박 복귀자의 반입 물품 확인 △우편물 반입시 간부 입회 하 본인 개봉(확인) 등을 제시했다. 군은 지난해에도 문화관광부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한 <국가의 역할>, <한국사회의 성찰>, <민주화, 세계화 ‘이후’ 한국> 등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해 모두 거둬들인 바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공군의 한 장교는 “기무사령부가 아니라 일반 지휘 계통을 통해 이런 지시가 내려진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서적이 발간되면 국가보안법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반국가적인 내용이 포함됐는지 등을 판단하고 있다”며 “군인복무규율에 의해 군인은 불온도서 등 표현물을 소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 IMF 정책 비판했다고 ‘반정부 딱지’ (한겨레, 김일주 기자, 2008-07-31 오전 09:44:09)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족쇄…‘대한민국 사’는 북한찬양 분류 학계·출판계 “창의성·비판력 봉쇄 의도…시대착오적” 반발
국방부가 대중성이 높은 교양서와 문학 작품에까지 ‘불온’ 딱지를 붙여 검열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나자, 학계와 출판계는 “발상 자체도 시대착오적이지만 책 목록을 보니 더욱 기가 차다”고 비판했다.
국방부의 ‘불온도서 목록’에 오른 책 23권은 ‘북한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의 세 항목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반정부·반미’ 책으로 분류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특히 눈길을 끈다. 영어로 쓰인 이 책은 지난해 10월 우리말로 번역돼 10만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더욱이 영어판도 한때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판매 순위 100위권에 들며 2만부 이상 팔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 책의 한국어판을 낸 부키 출판사 박윤우 대표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노벨경제학상에 버금가는 ‘레온티예프 상’ ‘뮈르달 상’을 받은 <사다리 걷어차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풀어낸 해설서 성격의 책”이라며 “신자유주의 경제논리의 위험과 위선을 지적한 책을 불온서적으로 규정한 것은 신자유주의를 국시라 해석한 셈인데,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 국방부가 지정한 ‘불온 서적’ 목록
저자인 장 교수는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도 불온서적 개념이 있는지 몰랐는데 놀랍다. 책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세히 보지도 않고 싫어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책에서 19·20 세기에 미국이 이룬 경제발전을 칭찬했는데 어떻게 반미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 책은 반미, 반자본주의, 쇄국을 지지하는 내용이 전혀 아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반정부, 반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역시 ‘반정부·반미’ 책으로 분류된 <대한민국 사>(한겨레출판)는 진보 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한겨레21>에 2002년부터 5년 동안 연재한 글을 다듬어 묶은 책이다. 현재까지 15만부 이상 판매됐고, 해마다 수만부가 팔리는 대중적인 역사교양서다.
‘북한찬양’ 도서로 분류된 소설가 현기영씨의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지난 2003년 문화방송 독서 프로그램에서 권장 도서로 뽑혀 수십만 부가 팔리기도 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읽은 역사교양서와 문학 작품까지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것은 다양성과 창의성, 비판력을 모두 봉쇄하려는 의도”라며 “군대에 간 사람들의 반발만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 국방부 “불온서적 선정·차단 계속하겠다” (한겨레, 손원제 기자, 2008-07-31 오후 09:16:20) “분류 과도했는지 여부는 재검토”
국방부가 대중적 교양서와 베스트셀러까지 ‘불온서적’으로 분류해 군 장병의 접근을 차단토록 하는 공문을 육·해·공군에 내려보냈다는 보도와 관련해, 국방부는 31일 “문제가 된 이번 분류에 대해 재검토를 하겠다”고 밝혔다.
원태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공문은 보안부서에서 장관 재가를 받아 내려보낸 것”이라며 “도서 분류는 보안부서에서 직접 한 것으로, 일부 도서에 대해선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만약 과도한 부분이 있다면 재검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 대변인은 이어 “앞으로 검토위원회를 만들든지 해서 다각적이고 객관적인 검토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원 대변인은 “장병 정신교육에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서적에 대한 회수 지시는 당연히 군에서 하는 것”이라며, 불온서적 선정과 차단 조처는 계속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대중적 교양서를 ‘불온’으로 분류한 근거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괜찮을 수 있지만, 부분적으로 세계화나 공기업 민영화 등 현정부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 나름의 분석과 기준에 의해 분류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분류 근거를 공개하라는 요구에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인데, 괜히 공개를 통해 논란이 확산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거부했다.
------------------------------ 알라딘, '국방부 불온서적' 특별사이트 개설 (프레시안, 성현석/기자, 2008-08-01 오후 12:11:07) 누리꾼들 "뭘 읽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잘 됐다"
온라인 공간에는 누리꾼들의 격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그리고 1일, 알라딘은 군 당국이 선정한 '불온서적'을 한데 모은 자리를 열었다. 알라딘 측은 "23종의 불온서적 가운데 자신이 읽은 책에 200자 평을 댓글로 달면, 알라딘 적립금 1000원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어 다양한 '200자 평'이 쏟아졌다.
이날 '200자 평'을 게재한 누리꾼 '스위스'는 "<우리들의 하느님>이 불온서적에 끼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이명박 정부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곳인지 잘 알게 됩니다. 이 기회에 <우리들의 하느님> 홍보가 잘 되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저 책 잘 모르는 분이 많아서 안타까웠는데 차라리 바람직한 일이 되었네요"라고 밝혔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쓴 <대한민국 사>에 대한 '200자 평'을 쓴 누리꾼 '넷게릴라'는 "'가뜩이나 이 심난한 시대에 뭘 읽어야 하나'하고 고민하던 새 세대들에게 국방부, 추천도서 목록 확실히 작성해 주셨다"라며 군 당국의 조치를 비웃었다. 이어 그는 "이제 이 목록들 열심히 퍼나르기만 하면 되겠다. 국방부뿐만 아니라 여러 부처에서 이런 양서목록 두루 만들어 주셔서 널리널리 보금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적었다.
<프레시안> 기자들이 쓴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에 대해 '200자 평'을 쓴 누리꾼 '쏘녀'는 "삼성 왕국이 대한민국의 진정한 이름인 것을 알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과감히 불온 서적 목록에 올린 것인가"라고 적었다.
-------------------------------- 국방부 ‘불온서적’ 외려 인기절정 ‘판매량 최고 20배 급증’ (데일리서프 민일성 기자, 2008-08-01 15:38:00) 알라딘 ‘2008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 공개’ 이벤트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한나라당 임태희 원내대표도 심취해서 읽고 있는 애독서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 23선은 ‘권장도서 목록(?)’으로 둔갑하며 시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알라딘 관계자측은 “‘불온서적’으로 선정된 23권 중 품절된 책을 빼고 20여권이 되는데 31일 이전까지는 하루에 20~30권이 나갔으나 31일 기사가 나간 후 150여권이 판매됐다”고 밝혔다. 특히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30일까지는 하루 5~10권이 팔렸으나 31일에는 80~90권이 나갔으며 오늘 오전에도 50여권이 판매됐다”고 말했다.
교보문고 측 관계자는 “‘불온서적’에 포함된 서적들 상당수는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책들”이라며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올랐던 책이며 전주에 비해 판매량이 두배 이상 늘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으로 선정하더라도 우리는 유통업체이기 때문에 판매 중단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알라딘은 아예 8월 한달 간 ‘2008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 공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알라딘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대한민국 사’,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은 많은 분들의 사랑을 고루 받았던 이 책들의 어떤 면이 ‘불온’한 것일까?”라며 “23종의 불온서적 목록 중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200자평을 댓글로 달아 달라. 200분께 알라딘 1천원 적립금을 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누리꾼들은 자신이 읽은 책에 감상평을 달며 국방부의 ‘금지조치’를 비판했다. 누리꾼 ‘상대성이론’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박정희식 성장정책에 대한 찬양이라는 말까지 나온 책이 불온서적이라니 어이가 없을 뿐”이라며 “국방부 정책이 80년대로 되돌아간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의 ‘정복은 계속된다’에 200자평 남긴 누리꾼 ‘dedojjang’은 “휴가라서 뭐 할까 고민이었는데 휴가비 모두 책을 사겠다”며 “23권의 우량도서 선정 고맙다”고 비꼬았다.
민속학자 주강현씨의 ‘북한의 우리식 문화’에 글을 남긴 누리꾼 ‘asadarl’은 “이 책의 출판사에 제안 드린다. 예전에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서 선정한 도서마다 무슨 표시를 해서 다시 출판하던데, 이 책들도 그런 표시를 해서 다시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는 “그 표시는 ‘불ON’이어야 하니까, 촛불이 좋을 듯하네요”라고 덧붙였다.
하랄드 슈만의 ‘세계화의 덫’에 대해 누리꾼 ‘creative81’은 2004년 사회복지 일반대학원 예비학교 때 수업교재였다고 소개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었는데 불온서적이라고요? 세상을 다양하게 깊이 있게 보지 못하는 현 정부의 단편을 보는 것 같다”고 오히려 적극 추천했다.
알라딘은 또 지난달 14일부터 도서 4만 원 이상 주문시 라면 2개를 주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는데 증정라면이 한국야쿠르트의 팔도비빔면과 삼양라면이다. 이에 알라딘측은 “이벤트를 시작할 당시 조선·중앙·동아 광고주 불매 운동이 한창인 상황이어서 농심라면을 넣을 수는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젊은이한테 책추천 해주는 국방부 어르신 (오마이뉴스, 최종규 (함께살기), 2008.08.01 16:17) [책이 있는 삶 67] '국방부가 뽑은 나쁜 책(불온서적) 스물세 권' 소식을 듣고
마침, 이렇게 술담배에 절고 가벼운 사랑놀이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보기에 딱하게 느껴졌는지, 젊은이를 군대로 잡아가려는 국방부 어르신께서는 '너희들 군대에 오기 앞서 이런 책이라도 좀 읽어!'하면서 스물세 가지 책을 숙제처럼 내어주기로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국방부에서 뿌린 보도자료에는 '지상의 숟가락 하나'로 적혔으나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맞습니다. <대학시절>이라는 책이 목록에 있는데, '대학시절'은 누가 쓴 책인지 알쏭달쏭입니다. 이 이름으로 나온 책이 워낙 여럿이라서. 다만, 러시아 소설쟁이 고리끼 님이 쓴 작품이 아닐까 싶기는 한데.
책이름을 하나하나 살피며 알아보니, 세 가지 책은 '품절'이고(<북한의 미사일 전략>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 <21세기 철학 이야기>), 세 가지 책은 '절판'입니다(<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 <미군범죄와 한미sofa>).
이렇게 하여 국방부에서 추천해 준 스물세 권 가운데 자그마치 여섯 권은 쉽사리 구경하기 어렵게 됩니다. 꼭 열일곱 권이 남습니다. 문득, 이 스물세 권 목록에 든 책을 쓴 분이 쓴 다른 책도 추천목록에 들어가는지, 아니면 아닌지 궁금합니다.
이 가운데 틈틈이 다시 들추어보곤 하는 권정생 할아버지 책 <우리들의 하느님>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펼쳐 봅니다.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길러지려면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 자라야 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오염된 도시환경에서 오직 기술인간만으로 교육되어 감정이 메마를 대로 메말랐다. 교통사고 세계 1위라는 대한민국은 이런 삭막한 교육가치관이 낳은 결과이다. 무서운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는 거의가 도시의 뒷골목이다. 사실은 뒷골목을 통해서 노출된 것이지, 보이지 않는 범죄는 도시의 한가운데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수많은 수사기관이 있고 방범시설이 완벽해도 근본적인 것이 잘못되었는데,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음악학원에만 일찍부터 보내면 곧장 훌륭한 음악가가 되는 건 절대 아니다. 고향과 어머니와 자연이 없는 음악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자연과 어머니의 품은 무한한 사랑을 심고 길러 준다. 사랑이 없는 예술은 감동을 일으키지 못한다. 베토벤의 음악도 차이콥스키의 음악도 밀레나 고호의 그림도 모두가 자연의 사랑이 낳은 예술이다. 예술은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서 만들어지는 제품이 아니다. 기계로 찍어내는 물건은 똑같은 것을 수없이 만들 수 있지만,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 건 하나밖에 못 만든다… (88쪽)"
지금 우리 나라 군대 형편이 많이 나아져서, 군대에서도 '느긋하게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일'을 할 수 있는가 하고. 군대 도서관은 얼마나 갖추어져 있고, 이 도서관은 군인들이 얼마나 홀가분하게 자주 드나들 수 있는가 하고. '정훈도서'라는 이름으로 군인이 읽을 책을 대고 있다고 하나, 이 정훈도서 이름을 단 책들이 군인들 하나하나한테 얼마나 쥐어지고 있는가 하고.
읽지 말라는 책을 스물세 권이니 몇 권이니 하고 뽑아서 '이 책을 가지고 있는 장병이 있나 없나 샅샅이 살피느'라 아까운 시간을 헤프게 버리지 말고, 그 시간에 '장병이 읽으면 좋을 책'을 골고루 갖춰서, 젊은 군인들 마음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추스르도록 이끌어 주면 고맙겠습니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분류한 베스트셀러와 대학교재 등이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국방부의 '불온서적' 명단이 알려진 지난달 31일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 99부가 팔려 평소 판매량의 10배에 육박했다. 1일 오후에도 100권이 넘게 팔리는 등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책은 또 31일 인터넷 서점 YES24에서는 7월 하루 평균 판매량의 7배인 140권, 교보문고에서는 평균의 2배를 웃돌았다.
알라딘측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도 하루 평균 판매량의 10배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고 '대한민국史'는 8배 이상 팔렸다"며 "불온서적 목록에 선정된 것이 오히려 광고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서점가에선 '불온서적 마케팅'이 한창이다. 알라딘은 '2008년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이란 코너를 만들어 책을 읽은 독자들의 200자 서평을 댓글로 받고 있으며 YES24도 목록에 포함된 책들을 따로 안내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네티즌 '라주미힌'은 "희한하게 좋은 책들만 골랐다"며 "국방부내 '프락치'의 업적으로 길이길이 남을 것"이라고 적었다. 아이디 '된장'도 "요즘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으니까 애써 23권을 골라서 읽으라고 하는 것"이라며 "('우리들의 하느님'의 저자)권정생 할아버지를 젊은이들이 잊지 않도록 추천목록에 넣은 국방부 관계자들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올린다"고 밝혔다.
1일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평균 판매량은 평소보다 7~10배 늘어났다. 특히 케임브리지대 장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31일 하루 주문량만 99부였다.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이전에 비해 10배가량 늘었다. 김성동 마케팅팀장은 “1일 오후 1시 현재 69부가 나갔다. 오후 판매량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여부 판매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알라딘은 공격적인 불온서적 마케팅에 들어갔다. 알라딘은 “‘북한찬양’ ‘반정부·반미’ ‘반자본주의’로 낙인찍은 23권의 책을 읽은 독자들의 200자평 댓글 중 200명을 선정해 적립금 1000원을 지급하는 독자이벤트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불온서적 마케팅에는 국방부 조치에 항의하는 뜻도 담겨 있다.
------------------------------------ 국방부 ‘홍보’ 덕분에…‘불온서적’ 판매 불티나네 (한겨레, 김일주 기자, 2008-08-01 오후 07:13:32) 인터넷서점서 5~7배 급증 ‘불온도서 23선’ 이벤트도
국방부가 대중성 높은 인문교양서와 수십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까지 ‘불온도서’로 선정해 군대에서 수거 및 반입 금지 명령을 내린 사실이 드러난 뒤 해당 책들의 판매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은 평소 ‘불온도서’ 23권의 전체 판매량이 20권 정도에 그쳤는데, 지난달 31일 하루에만 150권 이상 팔렸다고 1일 밝혔다. 특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평소 판매량이 10부 안팎이었는데, 31일에 90부, 1일 오전에는 50부 이상 판매됐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도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7월에 하루 평균 20여 권이 팔리다 지난 31일 하루에만 140권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독자들의 호응이 커지자 알라딘은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선’ 특별전을 마련하고 독자들의 200자평을 댓글로 받고 있다. 알라딘에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불온서적이란 게 말도 안 되지만 우리나라에 불온서적이란 개념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개념”(CoolDreamer), “나머지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좋은 책 소개해줘 고맙다, 국방부”(임영박)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한편, 한국작가회의는 1일 성명을 내 “불온도서 지정은 집필 당사자들과 출판사, 그리고 창작을 업으로 삼는 모든 사람들의 인격을 살해하는 행위이자, 책을 탐독한 수백만 명에 대한 사상적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며 “국방부는 세계적 웃음거리인 금서목록을 폐기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 ‘불온서적’에 선정안돼 반성합니다 (한겨레, 노현웅 기자, 2008-08-03 오후 07:55:37) 우석훈·진중권 등, 국방부 조처에 익살·조롱
3일 인터넷 서점 등 업계에 따르면 국방부가 선정한 23권의 불온서적이 알려지면서 이들 도서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 모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등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특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경우 판매량이 평소보다 10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하루 평균 10권 안팎의 판매되던 것이 국방부가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저면서 발표 당일에만 100여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현기영씨의 소설 '지상의 숟가락 하나'와 삼성그룹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다룬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인터넷 상에서 평소 1~2권도 채 판매되지 않았지만 이달 들어 하루 평균 30여권 이상 판매되고 있다.
한 서점 관계자는 "평소 거의 판매되지 않았던 책들이 대부분인데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 소식이 전해진 이후 주문량이 급증하고 있다"며 "독자들의 궁금증이 판매량 증가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진중권 "국방부, 적화 선동하는 내 책은 왜 뺐나" (프레시안, 이대희/기자, 2008-08-04 오전 9:55:42) 우석훈 "말랑말랑하게 쓴 건 아닌지 반성"
진 교수는 지난 1일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국방장관의 해명을 촉구한다'는 글을 올려, 자신의 책이 불온한 서적으로 분류되지 않은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를 비꼬는 우스갯소리를 통해 국방부의 이번 조치를 비판한 셈이다.
진 교수는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저자 소개를 보면 노골적으로 적화를 선동하고 있는데 왜 그 책이 배제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 <빨간 바이러스>의 경우 '빨간' 색깔을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바이러스'까지 붙여 강력한 전염성을 경고했음에도 국방부 리스트에서 제외됐다"며 "누가 봐도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조처"라고 했다. 진 교수는 나아가 "국방부는 23권 선정 과정에서 출판사측과 검은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도서 선정의 기준과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우석훈 연구위원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통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노래를 하더니, 순식간에 30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며 "사회과학이 금서가 되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사회과학이 찬란하게 꽃피던 사회과학 르네상스가 정말로 오기는 올 것 같다"고 국방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특히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정부-반미' 항목 서적으로 분류된 것을 두고 "경천동지할 일이다. 전세계 경제학계 최대의 경천동지할 사건이다"라며 "막스 베버의 책을 '맑스 책 아니냐'고 하며 잡아가던 80년대를 회상하게 한다"고 했다. 우 연구위원에 따르면 장하준 교수는 경제학계 내부에서 "중도 우파 학자로 후기 케인스주의자와 제도학파, 그리고 독일 역사학파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다.
우 연구위원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책이 불온서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두고 "정말 깊이 반성했다. 이 시대착오의 세상에 '너무 말랑말랑하게 쓴 것이 아닌가', 정말 마음 속 깊이 반성한다"고 했다.
----------------------------------- 네티즌, "우리가 선정한 불온도서는 '신화는없다'" (바이러스, 정혜규 기자, 2008년 8월 4일 11:25) [사회] 국방부 도서 발표 이후 반발한 네티즌들, 자체 불온도서 선정해
네티즌 ‘고모곰호’는 지난 1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기사형식의 글을 통해 “카페 쌍코에서 국민들의 정신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책 68권을 '불온 서적'으로 지정, 가정 내 반입 금지와 폐기 조치에 나섰다”고 소개했다.
이 글에서 ‘고모곰호’는 “'독재 찬양'과 '반민중·반인권', '반민주주의', '사기·자랑질'등 4개 분야 총 68권의 책 목록이 첨부됐다"면서 '신화는 없다(저자 이명박)', '이명박의 흔들리지 않는 약속(저자 이명박)', '불멸의 리더십 이명박(저자 김대우)' 등이 불온도서에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 관련 도서 외에도 박정희 대통령, 박근혜 전 대표, 전여옥 의원 관련 책들도 네티즌들이 선정한 불온도서에 포함됐다. 이같은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쌍코의 불온도서 선정’을 지지하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 "국방부, 으째야쓰까잉!" (프레시안, 안건모/<작은책> 발행인 겸 편집인, 2008-08-08 오전 10:36:53) [기고]불온서적으로 선정해줘 영광(?)이지만…
---------------------------------------- 아래 글은 네이버 카페 '김진숙에게 반한 사람들'에서 laborfever님이 작성한 것을 담아온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린 일면식도 없군요. 세상에, ‘우리’라는 말이 이토록 어색하고 깔끄러울 수 있다니요. 사는 동네가 비슷해 쓰레기 버리다 마주칠 일도 없고 제가 워낙 학벌이 민망한 관계로 동문모임에서 만날 일도 없고 생활수준이 같아서 오다가다 지하철 안에서 부딪힐 일마저 말복날 개털만큼도 없으니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그러고 보면 우린 다른 별에 사는 것만큼이나 머나먼 종들이 아닐런지요.
저도 결혼이란 걸 했다면 아마 지금쯤은 둘째 아들 정도가 그 신성하다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을테고 아마 국방부 장관 명의로 보내 온 편지에 감읍하여 내 아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귀하의 권위는 천지신명급으로 우러러지고 있을 겝니다. 아마 그런 상황에서 제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소금꽃나무 라는 책이 불온도서로 찍혔다면 제 손으로 그 책들을 수거하여 손수 분서를 하는 일도 서슴칠 않았겠지요. 제 신념이나 그 일의 옳고 그름을 넘어 제 아들이 군대에서 당할 고통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테니까요. 이미 스물 몇 살의 무렵부터 그런 일을 충분히 당해 온 전 그래서 가족을 만드는 종류라면 어떤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의사와 상관없이 기존에 만들어진 가족들이 저 때문에 받아 온 고통만으로도 전 괴로웠습니다. 경찰이나 안기부에서 늙고 병든 아버지를 찾아다니고 쓰러져 입원하신 병원에까지 경찰들이 지켜서고 어린 조카들 학교까지 따라오고.. 독하기로 저명한 사람도 가족들을 그런 식으로 앞세우면 흔들립디다.
얘가 날도 더운데 무슨 씨나락을 이렇게 맥락도 없이 까고 있나 싶으시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소금꽃나무 라는 책을 들어보셨나요?(읽어보셨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아무래도 욕심일 듯합니다)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도서에 떡하니 껴있는 걸 저도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기분이 묘합디다. 영광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가 불온도서 한권이 한 사람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알기에 황송스럽기도 했다가 좀 복잡하긴 했습니다만 별로 나쁜 기분은 아니었습니다. 작년에 책 나오고 연말에 문광부에서 우수교양도서에 선정되었단 소식을 들었을 땐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야, 이거 이러다가 체제내화 하는 거 아냐. 그 짱짱하던 선배들이, 같이 싸우던 동지들이 어떻게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지를 적잖이 지켜본 저로선 당연한 긴장이었지요. 귀하들이 분실 당했다고 길길이 뛰는 10년, 아군들마저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그 민주주의라는 게 사실은 얼마나 얄팍한 것 이었나 확인하게 된 게 이제나마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구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도 비판적 지지를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버글버글 했습니다. 이인제씨가 노동부장관이 되고서는 해고자들 복직시켜준다고 신청하라고 해서 도장을 새로 파기도 했구요. 몇날 며칠을 복직에 대한 기대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무렵이었나. 대대적인 사면복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면복권의 꿈을 이루게 되질 않았겠습니까. 신문 한 면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뒤덮일 정도로 그야말로 대대적이었고 그게 그물이었다면 그야말로 일망타진이었습니다. 근데..아무리 찾아도 내 이름이 없는 거예요. 처음엔 착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랬지요. 너만 빠졌을 리가 없다. 확인해봐라. 주변에서 다 그러니까. 그리고 그때는 진짜 세상이 천지개벽이라도 한 줄 알았으니까. 검찰청에 전화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착오 아니랍디다. 으찌 쪽팔리고 민망하던지. 물론 속으로만 그랬고 겉으로는 일망타진의 그물을 표표히 빠져나온 행세를 한동안 하고 다니는 걸로 그 씁쓸한 배제를 즐겼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의 일입니다. 자식들을 군대에서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잃거나 감옥에서, 혹은 학교에서, 더러는 저수지에서 퉁퉁 불은 자식을 건져 낸 부모님들이 수 백일을 싸워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를 회복시켜준다는 법안이 만들어졌습니다. 감옥갔다 온 것도 보상해주고 해고자들은 복직도 시켜주고. 긴가민가했지만 다들 신청이라도 해보자는 분위기라 저도 신청했습니다. 그게 2000년도의 일이고 같이 신청한 사람들은 대부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만 전 아직도 심사중입니다. 만 8년째. 아마 조만간 그 법률도 사라지겠지요.
노무현 정권 때의 일입니다. 귀하들이 잃어버렸다고 방방 뛰는 그 정권 때도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감옥으로 끌려갔고 길거리로 쫓겨났고 다리난간으로 올라갔고 크레인에도 올라가고 그리고 죽어갔습니다. 오다가다 얘기를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한진중공업에선 김주익이라는 노조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 홀로 129일을 매달려있다 그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맸고.. 2주일 만에 지회장의 죽음을 견딜 수 없었던 곽재규라는 노동자가 도크바닥에 몸을 던져 지회장이 홀로 가는 머나 먼 길을 동행 했습니다. 그 일로 한진중공업에는 86년도에 해고된 동료들까지 복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빠졌구요.
저는 새로 개업한 동네 슈퍼에서 행운권 추첨을 할 때도 밀가루 한 봉다리나마 걸려 본 적이 명실상부하게 없습니다. 사소하나마 복되고 영광된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말입니다. 종당 우리가 누려야 할 세상이 이런 모습이다 싶게 완연히 평화롭고 자유로운데다가 발랄함이 불꽃놀이 같던 촛불집회의 현장에서마저 때때로 적적함을 감출 수가 없었으니 전 정말 이상한 피를 타고 난걸까요. 1000일을 넘게 싸운 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관을 죽부인처럼 옆에 끼고 50일을 넘는 단식을 이어가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1000일을 향해 거침없이 육박하는 KTX승무원들, 이미 400일을 넘어선 이랜드 노동자들, 코스콤 노동자들.. 죽는 거 말곤 다 해본 그들의 얘기를, 이미 860만을 넘어 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얘기를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그 집회가 전 왠지 쓸쓸하더란 말입니다. 태생이 원래 그러려니 하기에 불온도서의 저자라는 난생처음의 직함도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왠 씨나락을 이리 길게 까먹냐구요? 날도 더운데. 제 불만은 한 가지입니다. 소금꽃나무가 반정부 반미로 분류된 걸 납득할 수가 없어서요. 283페이지를 가로지르는 동안 반미는커녕 미국을 언급이라도 한 부분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니 그렇다면 반정부라는 말씀인데. 그 책은 이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귀하들이 그렇게 같잖아 하고 시답잖아 하는 노무현정부 때 나온 책이란 말씀이올시다. 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동질감을 느끼시나요? 아니라면 적의 적은 동지란 말씀이시온지? 전 그 점을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사와 외람되나마 한 가지 정중히 부탁을 드리옵건대 반자본주의 코너로 옮겨주시던가 반체제 코너를 신설해서 그쪽으로 분류를 해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만. 어차피 꼴리시는대로 하실 일이오나 가급적이면 그쪽이 피차간에 덜 우사일 듯하여 한마디 씨부려봤습니다.
오늘 아침에 한진중공업엘 다녀왔습니다. 노조에 볼일이 있어 잠시 다녀오는 길에 몇 명의 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바람처럼 스치는 찰나에도 그들에게서 훅 끼쳐오는 쉰내가 코를 찔렀습니다. 소금꽃나무는 그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등짝에 소금꽃이 수백 번 피고 지도록 집을 만들고 도로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배를 만들고 그렇게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살게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귀하들이 지금 한 개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눈이 벌건 황금의 열매들을 만들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살아왔으나 지금은 구조조정으로 쫓겨나거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하루하루 절망의 늪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국방부장관으로서 사병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건 지당한 일이올시다. 제겐 올해 환갑이 되는 큰언니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주제로 제 한 몸 건사하고 거기다 새끼들 넷을 먹여살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한나절만 같이 살아봐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사람입니다. 그 신산스런 삶을, 나도 팔 달고 나왔으면 언젠간 흔들어볼 날이 올 거라는 근거 희박한 낙관하나로 사는 사람입니다. 위로 쪼로니 딸 셋을 두고 막내가 아들인데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이 언니도 아들 군대 보내놓고는 웁디다. 지금 생각하니 우울증이다 싶은 수심이 꽤 깊었습니다. 장마통에 군대 막사가 비에 쓸려 장병들이 실종됐다는 뉴스를 귀도 밝지, 저 바깥에서 듣고는 비누거품을 뚝뚝 흘린 채로 방으로 뛰어 들어와 넋을 놓고 앉았질 않나. 누군가 탈영했단 소식이 뉴스에 들리면 그이의 신상이 밝혀질 때까지 밤새 화닥거리질 않나.군대 간 청년들이 지나가면 굳이 불러서 휴가 나왔냐. 은제 입대했냐. 부대가 어디냐. 때리진 않디. 밥은 잘 주디. 딴데 가지 말구 집으로 곧장 가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붙잡고 헌병처럼 미주알고주알 캐묻질 않나. 수해복구에 나선 장병들의 얘기가 텔레비전에서 나오면 “남이 구이헌 아들덜을 데리가선 왜 저 쌩고상을 시킨댜~ 집이서 저만침 일을 허만은 쌀이 만석은 나오것다” 탄식이 늘어지곤 했었습니다. 그 마음들을 헤아려주십시오. 그리고. 군대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부모님들. 부디 그 분들의 한을 풀어 주십시오. 지금도 많이 늦었습니다. 그게 국방부 장관으로서 귀하께서 진정을 내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인정하실지 모르겠으나 지금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가혹행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학대는 원조가 모두 메이드 인 군대입니다. 논리적으로 인간을 설득할 수 없을 때 폭력이 동원되는 법입니다. 이성적으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없을 때 완력이 지배하게 되는 법입니다. 군대가 자존심을 빼앗기고 인격을 짓밟히고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통제되는 조직이 아니길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천금같은 아들들인 이 나라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군번과 서열의 힘이 아니라 빛나는 지성과 안목으로 청춘을 갈고 닦을 수 있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도 세금내고 새끼 낳아 키우고 사는 땅에서 가급적이면 인간의 꼴을 갖추고 살게 하는 일에 때로는 피도 흘리고 눈물도 쏟아가며 기신기신 이만큼이나마 온 게 법이고 제도였고 역사였습니다. 그 나날의 과정들이 속절없이 고무줄 튕기듯 되돌아가는 걸 보면서 10년 민주정부를 참칭했던 자들이 귀하들에 비하면 얼마나 대책없는 인종들인지 한심하기가 짝이 없는 요즈음입니다. 마치 지들이 잘나서 그 자리가 만들어진 것 마냥 천년만년이나 누릴 것처럼 기고만장에 안하무인으로 그들이 권력을 낭비하는 동안 귀하들께선 절치부심 권토중래를 치밀히 도모해온 결과들을 우린 지금 눈 번연히 뜨고 목격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책을 내고 견딜 수 없이 불편한 것 중에 또 하나는 그게 사실이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느냐는 확인들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말할 수 없이 극악무도한 살인범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그게 사실이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있냐.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봐라. 마치 그런 일로 제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이제 애써 제가 그런 일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다들 눈으로 몸으로 확인하게 될테니까. 이미 많은 것들이 득의양양하게 권토를 중래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제 경험에 의한 통박으로는 이제 조만간 불온도서 명명 다음에는 명예훼손이든 국가보안법이든 쌔고 널린 이현령 비현령들이 누군가의 귀에도 걸리고 코에도 척하니 걸리겠지요. 그리고.. 군복을 입은 사람들은 총알이 박힌 자살자가 되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은 바다에서 혹은 저수지에서 퉁퉁불은 시신이 되어 허리춤에 돌멩이를 매달고 떠오를 일만 남았나요. 두둥실~~ 국방부가 지켜야 하는 게 권력과 그들의 기득권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이고 안전이라면 그런 불행한 일은 없을텐데 말입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은 귀하들과 일면식도 없이 사는 게 어쩌면 천복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귀하께서 맡은 구역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시면 그게 만인의 천복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