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생각/사회, 문화예술, 일상

대한민국 0.1%만 누리는 ‘초호화 특혜’ (경향, 2008-07-31)

새벽길 2008. 7. 31. 12:35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면 참 씁쓸하다. VVIP 마케팅을 하는 업체들이나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과연 돌을 던질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자신들도 돈이 있으면 그렇게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대부분 아닐까. 이러한 우리안의 영혼부터 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현진, 진중권의 글이 생각나는군.
 
정의가 실종된 부끄러운 아버지들의 제국을 만든 데 일조한 것은 뻔뻔한 자식들이었고, 그 아버지들의 힘을 더욱 강고히 만든 것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사양하지 않으리라’ 는 자세로 그것을 바라본 나와 같은 ‘없는 집’ 자식들이었다. 옳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죄였다. 내가 이 후보의 자식 사랑을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내 아버지에게 그와 같은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너무 허약해서 기회가 없었을 뿐,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버지가 먹여주는 단물을 얼마든지 빨았을 것이다. 제 가족, 제 집단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것을 얼른 받아 삼키는 뻔뻔한 자식이 이루는 부정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는 바로 나처럼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행여나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면 눈감아줄 준비가 언제라도 된 그 눈빛 역시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진보란, 좋은 날이란 이토록 호락호락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올 리 없는 것인데도.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시사인 [11호] 2007-11-26 김현진)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사실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는 점이다. '경제만 성장시켜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게 지난 대선의 표심이 아니었던가.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MB식 교육정책을 낳은 것 역시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 요란하게 사교육을 탓하는 학부모들에게 솔직하게 물어 보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된다.' 아니, '다른 아이들이 못할수록 내 아이에게는 유리하다.' 솔직히 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
왜 주경복을 지지하는가, 프레시안, 진중권, 2008-07-26)
 
물론 이런 면만 보면 안된다. 추가한 글에 나오는 것처럼 저들은 품위와 교양마저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와 영혼을 중요시하는 진정한 상류층이 없다"고 하찮게 봐서는 안된다.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도 저들은 강력한 계급투표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
대한민국 0.1%만 누리는 ‘초호화 특혜’ (경향, 유인경선임기자, 2008년 07월 30일 15:23:42)
불황 아랑곳 않는 ‘V V I P 마케팅’ 씁쓸한 현주소 
 
서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불경기로 더이상 졸라맬 허리도 없지만 부유층은 풍족한 돈 덕분에 곳곳에서 풍성한 혜택을 누린다. 최근 내수 경기가 위축되면서 백화점, 신용카드, 고급자동차, 은행 등 각종 업계가 VVIP 마케팅에 총력전을 펼치는 덕분이다.
 
한 대에 10억원을 호가하는 럭셔리세단 마이바흐의 신차 발표회. 이건희 회장이 탄다고 알려지면서 한 해에 20대가 넘게 팔려 독일 본사에서도 놀랐다고 한다.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란 VIP보다 더욱 중요한 사람인 초우량 고객을 일컫는 말. 일반시장은 불황에 시달리지만 이들이 이끄는 명품시장은 올 상반기에만 40% 이상 성장했다. 과거에도 VIP들을 위한 귀족 마케팅이 성행했지만 이를 넘어 왕족 마케팅 수준의 ‘럭셔리하면서도 감동적인’ 상품과 행사들로 부자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골프대회나 음악회 초대 등은 물론 해외에서의 오페라 관람, 자녀 골프 레슨, 전세기 이용권, 비슷한 수준 집안의 중매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0.1%를 대상으로 하는 VVIP 마케팅은 상상을 초월한다.
 
최고급 와인에서 전세기까지 서비스
사업가인 정모씨(55·서울 강남구 청담동)는 최근 두바이의 6성급 마디나트 주메이라호텔에 머물며 세계 100대 드라이브 코스로 뽑힌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제빌 하피트 산간 및 아부다비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했다. 현대자동차의 베라크루즈를 구입한 고객에게 주어진 혜택 덕분이다. 그는 또 지난 5월 말엔 신라호텔에서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추천하는 최고급 와인을 시음하는 만찬에도 참석했다. 매달 1000만원 정도를 삼성카드로 긁어 초우량회원에 등극한 결과다.
 
세계적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
“깡촌에서 태어나 중학교에 갈 때까지 서울구경도 못하고, 어린 시절엔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하던 내가 두바이 여행에 와인 파티라니 참 돈이 좋구나 싶습니다. 그래도 난 세금 추적이 무서워 외제승용차는 못타는데 변호사인 내 친구는 연달아 벤츠를 탔더니 자식 골프레슨까지 시켜주더라고요. 은근히 기가 죽죠.”
 
정씨처럼 VVIP 마케팅의 즐거움을 누려본 이들은 더욱 특별한 서비스를 원한다. 각 업체들 역시 최상위층 고객들을 적게는 수십명, 많게는 1000명 안팎의 VVIP들로 더욱 세분화하고 있다. 경기가 불투명한 때일수록 고소득 소비자들을 겨냥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것이 매출 극대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백화점업계. 백화점들은 올해 내수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매출 부진을 0.1% 마케팅으로 만회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위 20% 고객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77%에 이른다. 지난해 본점 기준으로 상위 1%의 매출 비중은 23%, 상위 5%의 매출 비중은 44%에 달했다. 시시한 고객 100명보다 알짜 VVIP 한 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이다.
 
롯데백화점은 3만명에 달했던 MVG(most valuableguest) 회원들을 이달부터 △프레스티지(1600명) △크라운(4년 연속 MVG·5000명) △일반 MVG로 구분해 서비스를 차등화했다. 프레스티지 회원에겐 개인도우미인 ‘콘시에즈(concierge)’ 서비스를 제공해 쇼핑할 때 대동하게 한다. 현대백화점도 연간 구매액 3억원 이상이던 초우량 고객 관리체계를 5억원, 7억원, 10억원 이상으로 세분화했다. 10억원 이상 고객에게는 연 2회 전세기 이용권, 50일짜리 크루즈 세계일주 여행권 등 초호화 사은품을 마련했다. 신세계백화점은 트리니티클럽(999명)을 대상으로 6월에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카드회사 역시 VVIP를 겨냥한 상품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연회비 100만원, 이용한도 월 1억원에 달하는 슈퍼 프리미엄급 카드 ‘블랙’을 출시한 데 이어 국내 상위 5%에 속하는 프리미엄 계층을 위한 카드 ‘더 퍼플(the Purple)’을 출시했다. 세계적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가 디자인을 맡았고 표면의 미세한 금속장식과 마감은 100% 수작업으로 이뤄져 카드를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단다. 회원에게는 300만원 상당의 선물꾸러미와 더불어 항공권 업그레이드, 유명인사와의 만남 등 특별한 경험의 기회가 제공된다. 지난해에는 명품업계의 대표 브랜드 루이비통의 이브 카셀 루이비통 대표와 조찬을 하거나 권상우·김희애·손예진씨 등 톱스타와 각계 유명인사들이 참석하는 파티에도 초대받았다.
 
수입차업체도 VVIP 마케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BMW코리아는 제주도에서 열린 ‘발렌타인챔피언십’ 골프대회에 고객 50명을 초청하고, 이 중 8명에겐 프로 골퍼와의 라운딩도 주선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도 ‘메르세데스 카드’를 가진 고객이 아시아나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을 구입하면 무료로 일등석으로 승급해준다.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금융업계도 마찬가지. 이들은 VVIP 회원들만을 위해 뮤지컬, 연주회를 마련하고 요트 선상파티도 열어준다.
 
대기업, 백화점 등에서만 VVIP 마케팅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브리오니는 단골고객을 브리오니섬으로 초대해 섬 관광은 물론 맞춤양복을 제작해 주었고, 페라가모도 이탈리아에서 직접 제화사를 파견해 고객들의 발에 꼭 맞는 수제화를 디자인해 주었다. 강남의 모 피부과에서는 수시로 이곳저곳을 수술하고 관리를 받으러 오는 단골 고객들에게 주문 제작한 300만원 상당의 모피숄을 선물하고, 보석전문점을 운영하는 여사장은 단골들에게 자신이 직접 간장게장, 김치 등을 담가 선물한다. 화랑의 큐레이터였던 신정아씨도 전시회에 협찬해준 VVIP 고객에게 ‘대장금’ 요리로 유명한 한복려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김치를 주문, 방짜 유기에 담아 선물하는 등 철저하게 고객관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와 영혼이 없는 VVIP
그렇다면 이렇게 대접을 받는 VVIP 고객은 누구일까. 블랙카드를 선보이며 카드업계에서는 처음으로 VVIP 마케팅을 시도한 현대카드가 블랙카드 회원들을 분석한 결과, 회원의 평균연령은 50세이고 회원의 약 68.1%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임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은 17.6%였고 이어 외국계 회사, 연예 및 언론 등 사회문화계 종사자, 공공기관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은 대부분 서울(75%)에 살며 이 중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가 58%를 차지했다. VVIP 고객들은 또 항공(14%), 골프(10%), 특1급호텔(8%) 이용에 주로 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카드 사용금액은 월평균 630만원에 달해 웬만한 직장인 월급의 2~3배에 달했다. 분기별로는 2분기와 4분기에 카드 사용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구성비는 대략 남성 6, 여성 4였고 카드 사용금액에 따른 성비는 남성 70%, 여성 30% 정도였다.
 
부자들이 자신의 돈을 척척 쓰는 것은 경제를 활성화시킨다. 또 매출을 올려주는 고마운 우량고객들에게 업체들이 다양한 혜택과 보은을 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VVIP 마케팅은 어쩐지 입맛이 쓰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정호 연구원은 “양극화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VVIP 마케팅은 유용하고 불가피한 생존전략이지만 납득할 만한 명분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자칫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평론가 홍현종씨는 “미국의 경우 록펠러 등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부자(Old Money)들은 물론 빌 게이츠 같은 신흥부자들도 자신만을 위해 돈을 쓰기보다는 박물관·병원 설립, 학교나 자선단체 기부 등으로 나눔의 기쁨을 중요시하는데 우리나라는 소비와 그로 인한 혜택만 추구하는 것같아 씁쓸하다”면서 “VVIP 마케팅 역시 그들에게 즐거움만 줄 뿐 봉사나 자선활동 등의 프로그램은 너무 빈약해 가뜩이나 양극화에 참담해진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VVIP 마케팅의 극성으로 피곤해하는 이들도 많다. 음악애호가인 김효선씨는 “얼마전 안나 소피 무터의 연주회에 갔는데 초대받은 모 은행의 VVIP 회원들이 연주 도중 수시로 박수를 치는 바람에 연주자도 당황해하고 제대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없었다”고 불쾌해했다. 또 모 백화점의 VVIP 회원들은 국제기구가 주최한 자선 패션쇼에서 다른 이들은 행사후 자선기금을 테이블 위에 놓인 봉투에 넣었지만 아무도 넣지 않아 담당자들의 입맛을 쓰게 했다.
 
한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구입이 자신의 기호나 직업 등이 아니라 누가 탔느냐에 좌우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대에 10억원이 넘는 마이바흐가 이건희 회장이 구입한 후 1년 사이에 20대가 팔렸고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아우디 차량이 많이 팔린 이유도 리움미술관 오픈 때 홍라희 여사가 아우디를 몰고 나타났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나라에는 문화와 영혼을 중요시하는 진정한 상류층이 없다”고 꼬집었다.